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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3월 6th, 2019

제로페이가 스타트업의 서비스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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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말에 시범서비스를 시작한 제로페이의 올 1월 결제 실적이 8천633건, 결제 금액은 약 1억9천949만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내용이 오늘 보도됐다. (연합뉴스 기사 링크)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참담한 실적이다. 왜 잘 안될까.

KBS뉴스 경남의 최근 보도다. 제로페이가 잘 보급되지 않는 것은 소비자와 상인도 너무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에서는 제로페이가 간단하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는 무척 사용하기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제로페이를 사용한다고 특별히 체감되는 혜택이 없다. (소득공제혜택은 내년에 정산하는 것이고 그게 얼마가 될지는 체감이 안된다.) 연매출 3억원 이하 영세소상공인입장에서도 이미 카드수수료가 체크카드 0.5%, 신용카드 0.8%인데다 부가가치세 매출세액공제한도를 적용하면 실질 수수료율은 0.1~0.4%로 떨어진다. 즉, 1만원을 결제할 때 이미 기존 카드로도 수수료가 10원~40원밖에 안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정도라면 굳이 수수료를 아끼기 위해 고객에게 제로페이를 써달라고 할 이유가 없다. 하루에 제로페이로 10만원 매출이 나면 카드결제와 비교해 400원 이익이 나는 것인데 현실은 한달에 몇번 결제도 없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 가맹점앱을 깔고 영문자, 숫자, 특수문자를 혼합해 9자리의 비밀번호를 만들고 6자리 별도 핀코드를 만드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 회원가입, 가맹점 등록을 해야 한다. 직원을 위해서는 또 앱을 깔게 하고 직원용으로 따로 다시 등록을 하도록 해야 한다. 고객이 제로페이로 결제를 하고 종이영수증을 달라고 하면 폰에서 확인을 하고 POS단말기에 다시 입력을 해서 영수증을 줘야 한다. 고객이 취소하겠다고 하면 또 난감하다. 한달에 고작 몇백원 아낄려고 누가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겠는가. 연배가 있는 상인들에게는 더 어려울 것이다. 안쓰는 것이 당연하다. 의도가 선하다고 저절로 잘되는 일은 없다.

난 제로페이를 혹시 스타트업이 한다면 어떻게 했을까 상상해봤다. 린스타트업 이론을 적용해 소수의 고객들에게 치열하게 의견을 물어보고 그를 반영해서 첫 서비스앱을 디자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고객의 반응을 수렴해 계속 빠르게 불편한 점을 개선해 갈 것이다.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뒤에도 이런 처참한 성적이 나온다면 아예 서비스를 중단하고 고객의 ‘불편함’을 파악해 전면적으로 앱과 서비스를 재설계할 지도 모른다.

얼마전 만난 뱅크샐러드 김태훈대표에게 배운 것이 있다. 실패를 애써 외면하거나 서로 책임을 돌리지 않고 다같이 그 원인을 찾고 정면 돌파하는 용기다.

2012년 회사를 창업한 김대표는 여러 서비스를 만들다 2014년에 개인의 카드사용내역에 따라 최적화된 카드를 추천해주는 핀테크서비스를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우여곡절끝에 2016년 뱅크샐러드라는 모바일앱을 처음으로 내놨다. 그런데 반응이 거의 없었다. 겨우 5만다운로드에 하루 사용자가 500명도 안됐다.

“우리가 야망차게 기획을 하고 서비스를 내놨는데 사람들이 너무 안쓰니까 직원들이 타조가 됐습니다. 지표도 확인하지 않고 현실을 외면을 하는 것이죠. 타조가 호랑이를 만나면 땅에 얼굴을 파묻고 가리거든요. 우리가 타조처럼 현실을 기피하게 된 겁니다. 서로 책임을 떠 넘기고 분위기가 안좋았어요.”

5개월쯤 지난 어느날 김대표는 전직원 10명을 다 모았다.

“용기를 냈어요. 앱비즈하는 사람으로서 뭐가 잘못됐는지 반성을 해보자고. 무엇이 부족했고 어떤 전략이 실패했는지 제대로 회고를 하고자 한달동안 공부만 했습니다. TED도 보고 뛰어난 앱은 왜 성공했는지 공부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하나의 도약이 있었어요. 그것을 기점으로 달라졌고요. 지금은 어떤 분야라고 해도 제가 사용성이 뛰어난 앱을 만들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뱅크샐러드는 이때를 기점으로 더 단단해지고 내공이 깊어졌다. 자기들이 풀려는 문제와 고객, 그리고 금융시스템에 대해서 보다 근본적으로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내놓은 뱅크샐러드2.0은 구글에서 올해의 앱으로 뽑힐만큼 성공했다. 하지만 이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해 또 한번 다시 3.0버전을 만들어서 2017년 내놨고 지금은 누적 350만 다운로드가 이뤄졌을 정도로 큰 성공을 만들고 있다. 뱅크샐러드는 누적으로 189억원을 투자받았고 지금 직원은 80명이 됐다. (나라경제 인터뷰 기사 참고)

제로페이도 처음부터 이런 스타트업에게 예산을 다 투자해주고 실행을 맡기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왜 잘 안되는지, 고객이 정말로 불편해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서비스를 재설계하도록 말이다.

출처 소상공인 방송 캡처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자꾸 높은 분들이 시장에 나가서 제로페이 사용하라고 독려에 나선들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다. (물론 여러가지로 제로페이를 활성화하려는 정책을 내놓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고민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기본적으로 공무원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Written by estima7

2019년 3월 6일 at 11:52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