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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for 9월 2010

전자책가격=종이책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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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코스트코에 들렀다가 서적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 베스트셀러작가 Ken Follett의 신작 Fall of Giants.

이 책을 추천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두께에 압도됐다는 얘기. 촘촘한 활자로 985페이지!(오디오북으로 들으면 30시간 분량)

이런 책이야말로 킨들에 넣어서 Ebook으로 읽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다. 무겁고 부피도 많이 차지해서 가지고 다니기가 정말 부담스럽다.

참고로 코스트코에서는 하드커버를 $19.99에 판매. 킨들전자책도 똑같은 $19.99. 아마존에서는 하드커버가 $19.40으로 오히려 전자책버전보다 싸다.

가격은 iBooks에서도 똑같다. 생각해보면 종이값, 유통비용도 안드는 전자책이 더 싸야할 것 같은데 이런 경우도 있다 싶다.

과연 같은 가격이면 휴대에 편리한 전자책을 살 것인가. 아니면 읽고 나서도 멋지게 책장에 꽃아놓을 수 있고 친구에게 빌려줄 수 있는 종이책을 선택할 것인가.

Written by estima7

2010년 9월 29일 at 6: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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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혁명’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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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초에 나온 ‘아이패드혁명’(도서출판 예인)이란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비록 10명이나 되는 쟁쟁한 저자분들중 1명으로 불과 35쪽을 썼을 뿐이지만 감회가 새롭다. 어쨌든 내 이름이 적혀나온 첫번째 책이기 때문이다. (기회는 몇번 있었는데 게을러서 엄두도 못냈다. 글솜씨도 없고.) 책을 내게 된 곡절은 이렇다.

6월중순 출판사를 하는 친구 준용이에게 메일이 왔다. 아이패드에 관한 책을 기획하고 있는데 저자로 내가 적임자인 것 같다는 것이다. 4~6주안에 아이패드에 대한 책 한권분량의 원고를 써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말도 안돼! 물론 손사래를 쳤다. “아이패드 나오자마자 사서 써보고 블로깅 몇번 한 것 가지고 무슨 소리냐. 회사일 때문에 바빠서 사실 시간도 전혀 없고 능력도 안된다”라고 했다. 더구나 당시에는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라이코스 매각협상건 때문에 무지무지 스트레스받던 상황이었다.

그래도 완전히 거절하긴 그렇고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아이패드유저입장에서 체험기 정도는 쓸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적당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섭외해서 공동으로 책을 쓰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 나도 한 챕터정도 거들 수 있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불과 2주일만에 쟁쟁한 저자들을 다시 섭외해서 연락이 왔다. (그 빠른 순발력에는 탈모)  그리고 첫 챕터, 도입부를 나에게 써달라고 다시 부탁이 왔다. 거절할 수 없었다. 쓰기로 했다.

프롤로그1

1장. 아이패드 폭풍, 비즈니스를 강타하다 (임정욱)

미국, 일본, 유럽에 상륙한 아이패드쓰나미

한국을 뒤흔든 아이폰과 아이패드 충격

아이패드가 가져올 비즈니스 혁명의 모습

위처럼 목차가 정해져서 왔다. 그런데 다른 챕터를 맡은 저자들과 내용이 겹칠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하고 무슨 얘기를 써야할지 막막했다. 쓰고 싶은 마음이 들어 내킬때 가볍게 써버리는 블로그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대충하면 안될 것 같은 부담감이 컸다. (지금까지 책을 내본 일이 한번도 없었다)

7월중순인가까지 마감을 해달라고 했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8월중순인가 꼴찌로 원고를 보냈다. 주중에서는 바빠서 쓸 수가 없었고 주말에 가족들과 멀리 나들이 하면서 차안에서 원고를 쓰고는 했다. (책이 나온 뒤에 보니 겨우 이 정도양을 쓰는데 이렇게 낑낑댔다니 한심했다. 도대체 책 한권을 통째로 쓰시는 분들은 얼마나 대단한가.)

업계의 전문가들이신 다른 저자들과 내가 차별화될 수 있는 점은 미국현지에 있다는 점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거의 내 느낌 그대로 내 경험, 내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썼다. 좀 글이 거칠어지고 두서가 없는 느낌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4월3일 아이패드 발매일 아침에 애플스토어에 가서 직접 아이패드를 산 경험부터 가능한한 어려운 이야기보다는 쉽게 내 생각과 미국현지의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시사인 칼럼 원고주문도 들어왔다. (보통 3주에 한번씩 온다) 전혀 준비된 것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이 책(아이패드혁명)에 집어넣을 내용 한꼭지를 빼내서 원고로 보냈다. 여름 애들 방학동안 보스턴을 방문하신 아버지께 사드린 아이패드이야기였다. 조잡하게 글을 써서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잘 읽었다는 인사를 많이 받은 글이었다. (나중에 ‘아버지와 아이패드’라는 제목으로 내 블로그에도 공개했다.)

제사에서 아이패드를 영정사진으로 썼던 사진이 트위터에 확산(?)되어 좀 당황하기도 했다

책 편집이 놀랄만큼 빨리 진행되서 9월1일 한국을 방문한 길에 출판사 예인을 방문, 조준용대표와 예병일선배에게 책을 받아서 볼 수 있었다. 책이 너무 깔끔하게 편집되어 나와서 또 놀랐다. 순발력! (아이패드 한국발매전에 내려고 특히 서둘렀다는 설명)

내 인생에 또 색다른 경험을 갖게 해준 예병일선배, 내 친구 조준용대표 그리고 편집하느라 수고한 예인 송상미편집팀장에게 감사드린다.

책이 나오고 나서 쏟아져나오는 갤럭시탭, 블랙베리 플레이북, 샤프 갈라파고스 등의 온갖 타블렛컴퓨터들을 보니 “아이패드혁명”이란 제목이 과연 과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내년 이맘때 과연 타블렛컴퓨터는 얼마나 보급되어 있을 것인가.

서점에서 내가 저자로 참여한 책이 진열되어 있는 모습은 내게 새로운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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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28일 at 7: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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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의 관료주의, 혁신의 숨통을 막다(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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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에 최근에 선장이 바뀐 노키아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제목하여 “Nokia’s Bureaucracy Stifled Innovation, Ex-Managers Say” 노키아의 관료주의가 혁신을 막았다(고 전직매니저들이 말했다). 무슨 내용인가 가볍게 읽어보니 세계휴대폰업계를 선도하는 한국의 전자업체들에게도 참고가 될만한 기사다. 몇군데 흥미로운 부분을 인용해본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능한한 원문기사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터치스크린 프로토타입을 기각시킨 경영진

A few years before Apple introduced the iPhone in early 2007, the prototype of an Internet-ready, touch-screen handset with a large display made the rounds among upper management at Nokia. The prototype developed by Nokia’s research centers in Finland was seen as a potential breakthrough by its engineers that would have given the world’s biggest maker of mobile phones a powerful advantage in the fast-growing smartphone market. (애플이 2007년 아이폰을 들고나오기 몇년전, 노키아 내부상위경영진은 인터넷이 가능한 커다란 터치스크린프로토타입디바이스를 검토했다. 노키아의 리서치센터에서 개발된 이 프로토타입은 노키아가 급성장하고 있는 스마트폰시장에서 큰 진보를 이룰 수 있는 제품으로 기대됐다)

“It was very early days, and no one really knew anything about the touch screen’s potential,” said Ari Hakkarainen, a former manager on Nokia’s Symbian Series 60 marketing team, who handled and demonstrated the prototype to business customers at Nokia’s headquarters in Espoo, Finland, in 2004. (2004년 당시는 정말 이른 시기였고 누구도 터치스크린의 잠재력을 이해하지 못할 때였습니다.)

“And it was an expensive device to produce so there was more risk involved for Nokia,” he said. “So management did the usual. They killed it.”(그리고 그 프로토타입은 제조하기에 너무 비싼 기기였고 노키아에게 있어서 위험부담이 더 큰 것으로 판단됐지요. 그래서 경영진은 항상 하던대로 했습니다. They killed it.)

The decision, which has not been previously reported, allowed Apple; Research In Motionof Canada, the maker of BlackBerry phones; Samsung and LG of South Korea; and others to steal a beat in a main battle for the industry’s future.(이 결정은 애플, RIM, 삼성, LG가 휴대폰업계의 미래를 결정짓는 주전장에서 노키아에게서 주도권을 빼앗아오는 계기가 된다)

-혁신의 숨통을 막은 노키아의 경영위원회

For example, Juhani Risku, a manager who worked on user interface designs for Nokia’s Symbian operating system from 2001 to 2009, said his team had offered 500 proposals during his tenure to improve Symbian’s performance but could not get even one adopted.(심비안OS의 UI디자인을 맡았던 한 매니저는 2001년에서 2009년까지 500개의 심비안성능개선을 위한 500개의 제안을 올렸지만 단 한개도 채택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Mr. Risku, who now designs environmentally sound buildings 300 kilometers, or 185 miles, above the Arctic Circle in Ivalo, Finland, compared Nokia’s design approval processes to a “Soviet-style” bureaucracy. “It was management by committee,” Mr. Risku said. “You know what comes out of committees.” (노키아의 디자인승인시스템은 “소비에트스타일” 관료주의라고 한다. 위원회의 결정에 의해 승인된다는 것이다. 특히 노키아의 경영위원회는 제안된 혁신에 대해 “Payoff가 너무 적다”는 이유로 기각시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2004년 모바일앱스토어 아이디어도 좌절

Mr. Hakkarainen, a manager on a Nokia Series 60 smartphone development team, said that in 2004, his team came up with the early design for a Nokia online applications store. “We created a prototype that included a piece of software on the phone and a piece of software on the server, which made the applications store possible,” said Mr. Hakkarainen, who worked at Nokia from 1999 through 2007. “We demonstrated it within Nokia and said this is what we needed,” he said. “We tried to convince middle and upper management. But there was no way.” (2004년 노키아 스마트폰개발팀은 노키아 온라인 애플리케이션스토어의 초기디자인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노키아의 매니지먼트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Nokia in a sense is a victim of its own success,” said Jyrki Ali-Yrkko, an economist at the Research Institute of the Finnish Economy. “It stayed with its playbook too long and didn’t change with the times. Now it’s time to make changes.” (노키아는 어떤 면에서 자신의 크나큰 성공에 의한 희생자다.)

-하드웨어부문 출신들이 장악한 경영진, SW중심 패러다임변화를 이해못해

The company is a source of national pride in Finland, and its stumblings have been front-page news in a country that recently dipped back into recession. Nokia, by far the largest private employer in Finland, accounts for 1.6 percent of gross domestic product and more than 10 percent of exports. (노키아는 핀란드에서는 나라의 자랑이다. 그리고 노키아의 최근의 고전은 불황에 빠진 이 나라에서 항상 1면뉴스다. 민간기업으로서는 핀란드의 최대고용주기도 한 노키아는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1.6%과 수출의 10%이상을 차지한다)

Nokia’s background as a maker of hardware — in the past, top managers at Nokia typically came from the network equipment side of the business — has made it ill-suited to grapple with the shift in the industry’s focus from communications hardware to software-based services, Mr. Risku said. “The business changed from signal technology to design and what people want from services, content, and games,” he said. “They didn’t have the knowledge and ability to deal with those things.” (과거 노키아의 상층부 관리자들은 전통적으로 네트워크장비사이드에서 온 사람들로 채워졌다. 이런 하드웨어메이커로서의 노키아의 백그라운드는 업계의 중심이 통신장비에서 소프트웨어중심서비스로 바뀌어가는 변화에 잘 맞지가 않았다. 비즈니스는 신호기술개발에서 고객들이 서비스, 콘텐츠, 게임에서 원하는 바를 디자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노키아의 경영진들은 그런 것들을 잘 처리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문제가 많았던 심비안, 결국 노키아전체의 발목을 잡다

In 2003, Nokia did introduce the industry’s first touch-screen device, the 3108. Kai Nyman, formerly chief architect for Nokia’s enterprise domain strategy, said the problem with the early touch-screen devices was that the Symbian operating system could not deliver a smooth interface. “Symbian was the weak link in the chain,” said Mr. Nyman, who worked at Nokia for 26 years until last year. “There were plenty of years to make Symbian better. We could have rewritten the whole code several times over,” he said. “We had the resources and the people. But we didn’t do it.” (2003년 노키아는 업계최초의 터치스크린기기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문제는 심비안OS가 부드러운 인터페이스를 지원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심비안은 언제나 그렇듯이 “The weak link in the chain”이었다. “노키아는 심비안을 개선할 수 있는 몇년간의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심비안의 모든 코드를 몇번은 다시 쓸 수 있었다. 리소스와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하지 않았다.”)

언제나 실행이 문제다. 큰 성공은 반드시 새로운 실패의 시작이다. 자만에 빠지는 순간 기울기 시작한다. 기우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사실 매출이나 판매량(특히 판매대수)는 별 문제없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하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는 계속 좌절되고 결국 좋은 사람들은 조직에서 떠나기 시작한다.

새로운 캐나다인 CEO (최초의 비핀란드인CEO)와 함께 노키아가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주목해본다.

Written by estima7

2010년 9월 26일 at 7:58 오후

ABC’s My Generation 아이패드앱-TV드라마와 아이패드앱이 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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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s My Generation Sync라는 아이패드앱을 막 시험해보다. @gemong1님이 TV쇼의 소리를 인식해 싱크하는 ABC의 아이패드 앱이란 포스트에서 자세히 설명해주신 흥미로운 앱이다.

마이제네레이션은 도큐멘터리형식을 빌린 코미디드라마로 오늘 첫 방영을 시작하는데 아이패드앱을 통해 시청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셈이다. 특히 방송내용에 따라 자동적으로 앱의 내용을 갱신하는 것이 아니고 드라마에서 흘러나오는 특수신호(사운드)를 이용해 앱과 싱크를 해서 시청자와 상호작용을 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실제로 프로그램이 시작하자마자 앱을 작동시키고 Sync버튼을 눌렀더니 몇초간 “Listening”을 통해 TV프로그램과 동기화가 됐다. 그 다음부터는 TV프로그램의 진행에 맞춰 질문도 던지고 질문에 대한 결과를 보여주고 새로운 등장인물이 나오면 관련정보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위 캡처화면처럼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Brenda라는 새 인물이 나오면 팝업이 떠오르면서 인물소개가 나온다. 그리고 이 캐릭터의 진로를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2000년의 부시 vs 앨고어 대선이었다는 내용이 나오면서 시청자에게 “2000년 선거당시 당신의 기분은 어땠느냐”라는 질문이 나온다. 약 20~30초간의 시간안에 터치해서 답을 하면 된다.

그런다음 즉시 시청자들이 어떻게 답을 했는지가 실시간으로 %로 나타난다.

생각보다 아주 정확하게 TV프로그램과 싱크가 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1초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TV내용과 딱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기술이 앞으로 다양한 TV프로그램에 전반적으로 쓰일 수 있고 특히 퀴즈프로그램 등에 응용하면 아주 재미있겠다 싶었다.

다만 TV스크린과 아이패드에 시선이 분산되는 바람에 TV드라마 내용에 신경을 집중하기가 어려운 점이 흠이라면 흠일까. 어쨌든 재미있는 세상이다.

Written by estima7

2010년 9월 23일 at 7: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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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ablets are coming-라이코스트랜드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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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래간만에 사내 트랜드미팅을 갖고 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능하면 자주 이런 시간을 갖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최신 테크놀로지 트랜드에 대해 업데이트를 했으면 하는 바램인데 최근 몇달간은 회사매각관련 일에 신경을 쏟느라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얼마전 한국에 다녀오고 느낀 점도 직원들과 나누고, 세상이 타블렛중심으로 변해간다는 트랜드도 전하고, 회사의 최근 실적도 공유할 겸 겸사겸사 트랜드미팅을 가졌다.

트랜드미팅을 하면서 간단한 식사를 제공하는데 오늘은 피자에서 탈피해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제공했다. 추석이라고 송편을 가지고 가려고했는데 한인마켓에 가니 다 떨어지고 없다고 해서 할 수없이 일본찹쌀떡을 제공. 하지만 누구도 일본떡인지 알아채지 못했다는....

특히 지난 1년간 두번 한국을 방문하면서 나도 놀랄 정도로 급격하게 변모하고 있는 한국의 모바일마켓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이 최근 1년사이에 놀랄 정도로 빠르게 스마트폰대국(?)이 되고 있다는 것을 다양한 사진을 통해서 보여줬다. (트위터를 통해 많은 분들이 사진을 찾는데 도움을 주셨다)

(아이폰4의 인기를 설명하면서 한국판으로 제작된 아이폰4광고동영상을 관람. 대뜸 나오는 반응이 “아니 왜 한국광고에 배경음악이 미국노래냐. 좀 부자연스럽다” ㅎㅎ “애플이 모든 로컬라이즈된 아이폰4광고에 같은 배경음악을 쓰는 것같은데 나도 그건 실수라고 생각한다. 전혀 안어울리는 것 같다”고 대답.)

특히 아이폰의 인기도 폭발적이고 9개월만에 1백만대를 돌파했지만 삼성도 그에 못지 않게 분발해서 갤럭시S도 2개월여만에 1백만대를 돌파하고 아이폰과 갤럭시S가 동반성장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그래도 조금 뿌듯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이 브로드밴드인터넷에서 그랬던 것처럼 스마트폰보급율에서도 세계 최고수준이 될 것 같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 다음에는 아이패드로 넘어가서 “사람들의 컴퓨터를 사용하는 습관이 우리의 예상을 뒤집을 정도로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 컴퓨팅은 타블렛을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며 우리도 이런 트랜드를 이해하고 빨리 대비해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사례 동영상으로는 잘 알려진 iPad+Velcro 동영상을 보여준 다음,  “Samsung Strikes Back”의 사례로 삼성 갤럭시탭 프로모션동영상도 함께 보여줬다. 지금 타블렛마켓에서 나름 가장 근접하게 아이패드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사실인 만큼 삼성의 분발을 기대한다.

이런 정보위주의 트랜드 이야기를 마친 다음에는 각 프로덕트매니저들이 자신이 맡은 부문에서의 성과를 공유하는 시간을 갖고 새로 입사한 친구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미국인들이 흔히 하는 말로 “Everyone is on the same page”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런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시간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 더 좀 자주 가져야지.

Written by estima7

2010년 9월 23일 at 7:22 오후

일본 아이폰유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가라퐁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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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수백만 아이폰, 아이패드사용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흥미로운 기계가 나왔다. 이름하여 가라퐁TV. (ガラポンTV)

이런 좀 수상한 기계를 집에 설치하면 7개의 TV채널을 24시간 30일분을 알아서 녹화해주고 그 방송내용을 어디서나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PC로 검색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출처. 가라퐁TV) 가격은 3만엔. 한달치 TV프로그램을 몽땅 집어넣고 볼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렇게 비싸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설치 구성도는 위와 같은데 지상파디지털TV안테나와 PC를 연결해야한다. 한가지 단점은 일반지상파방송을 녹화하는 것이 아니고 Oneseg, 즉 일본의 모바일방송을 수신해 녹화하는 것이다. 즉, 한국으로 따지면 지상파DMB방송을 수신해 녹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해상도가 320*240밖에 안나오긴 하는데 그래도 아이폰에서 시청은 충분하다. 또 아이패드에서도 괜찮게 나올듯 싶다.

흥미롭고 신기한 점은 방송내용이 검색이 된다는 점이다.(위 그래픽 중간부분참조) 원세그방송은 EPG(전자프로그램가이드)와 방송에 같이 따라붙는 자막(일본도 미국처럼 방송에 자막정보가 포함되는 모양)을 검색해서 원하는 장면을 바로 찾아서 볼 수 있게 검색결과가 나온다. 검색결과를 클릭하면 바로 원하는 그 장면부터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구글TV가 따로 없다. 너무 편리할 것 같다.

실제 사용모습을 찍은 동영상이다.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입력하고 접속하도록 되어있다.

아이패드를 사도 전자책을 구입할 수가 없어 급기야는 자신이 소장한 종이책을 직접 스캔해 전자책으로 변환하는 일본인들에 대해서 예전에 포스팅한 일이 있다. 출판업계가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등장을 따라가지 못하니 생기는 웃지못할 현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방송쪽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기는 것이다.

보수적이고 저작권에 민감한 일본방송국들은 한국에서는 이미 10년여전부터 시작한 그 흔한 인터넷 VOD서비스도 안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일본인들은 DVD로 구하기 전에는 일본인기방송콘텐츠를 인터넷으로 보기도 어렵고 아이튠스에서 구할 수도 없다. 대부분 직접 DVR로 녹화해서 본다. 비디오콘텐츠를 공짜, 아니면 유료로 다양한 기기를 통해 즐길 수 있고 또 다양한 비즈니스모델이 실험되는 미국과는 천양지차의 상황이다.

그렇게 되다보니 그런 맹점을 파고든 이런 가라퐁TV같은 상품이 등장한 것이다. 일본의 인터넷, 트위터를 보면 아이폰, 아이패드 유저들이 이 제품에 보이는 관심이 장난이 아니다. 종이책을 편리하게 스캔할 수 있는 양면스캐너가 1백만대나 가볍게 팔린 것을 보면 이 제품도 적어도 수십만대는 팔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연 일본의 방송업계가 이 제품에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Written by estima7

2010년 9월 22일 at 7:43 오후

1달러지폐의 여행을 쫓는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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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판기에서 콜라캔 하나를 뽑으려고 지갑에서 1달러를 꺼내다가 멈칫. 빨간 잉크로 위처럼 도장이 찍혀있는 것 아닌가?

귀중한 화폐에 이런 장난(?)을 치는 것이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재미있는 시도다 싶어서 한번 웹사이트에 입력해보기로 했다. 장난인가 아니면 진짜로 이 화폐의 유통경로를 추적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는 것인가도 궁금했다.

www.wheresgeorge.com이란 사이트에 들어가서 화폐발행연도와 시리얼넘버, 내가 있는 곳 zip code 등 몇가지 입력하니까 아래와 같이 이 화폐의 Tracking경로가 나왔다.

내 앞에 이 1달러지폐의 위치를 입력한 사람이 1명밖에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나름 잘 만들어진 사이트내용에 감탄. 이 지폐는 약 3달전에 보스턴서쪽 30마일쯤 떨어진 Leominster에 있었던 것 같다.

이 웹사이트에서 추적된 지폐중 가장 긴 여행을 한 녀석은 3년간 465마일을 여행한 99년 발행 1달러지폐다.

지폐의 여행을 기록하는 사이트라… 하여간 뭐든지 상상해 만들기 나름이다.

Update: @yy님이 바로 아래 댓글을 달아주셔서 알게 됐는데 뉴욕타임즈 기사에 따르면 이 웹사이트는 데이터베이스프로그래머 행크 에스킨이라는 사람이 (99년 당시 34세) 97년에 만든 사이트로 99년시점에 이미 5만5천명이 90만개의 화폐데이터를 입력했다고 함. 또 2009년 뉴욕타임즈기사에 따르면 이 사이트의 데이터는 Swine Flu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들의 이동패턴을 연구하는데도 쓰였다고. 2006년 당시 이 사이트에 입력된 누적 지폐의 수는 1억장이라고. (좀 믿기지 않음) 한국에서 비슷한 실험을 하면 과연 사람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했을까?

Written by estima7

2010년 9월 20일 at 4: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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