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1월 14th, 2019
내가 토스를 응원하는 이유
요즘 한국에서 가장 화제의 스타트업은 단연 간편송금서비스 ‘토스’를 제공하는 비바리퍼블리카입니다. 한달전인 12월 토스는 실리콘밸리의 명문VC인 클라이너퍼킨스와 리빗캐피탈에서 약 900억원을 1조3천억원 기업가치로 투자받아 10억달러가치가 넘는 유니콘 스타트업이 됐습니다. 쿠팡, 배달의 민족과 함께 한국의 몇 안되는 유니콘스타트업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또 토스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180명 전 직원에게 당장 1억원 가치가 되는 스톡옵션을 부여하고 전 직원의 연봉도 무조건 50%씩 올려주기로 했답니다. 스톡옵션이 다 행사되면 (기업가치가 현재보다 더 오른다는 가정하에) 180억원이상이 들어가는 큰 결정인데 참 놀랍습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보다 한국의 스타트업은 스톡옵션 등의 보상에 인색하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불식시키는 토스의 배포가 놀랍습니다. 물론 최고의 인재를 토스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입니다. 예전부터 토스는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좋은 엔지니어를 빼내간다는 말이 들렸는데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지난 5년사이 만난 한국스타트업중 가장 감탄스럽게 지켜보는 회사가 토스입니다. 생각난 김에 제가 지난해 6월에 토스블로그에 기고했던 글을 제 블로그에 업데이트해서 소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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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이 중요하다고 만방에 알리는 일을 하다 보니 강연요청을 많이 받습니다. 오래된 대기업부터 공공기관, 대학교까지 다양한 곳에서 강연을 합니다. 스타트업이란 무엇인가부터 유니콘스타트업까지 설명하면서 저는 왜 이렇게 온 세상이 스타트업으로 뜨거운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런 다음에 실제 스타트업의 사례를 가지고 스타트업이 어떻게 매너리즘에 빠진 업계에 변화를 일으키며 성장을 하는지 알기 쉽게 설명을 합니다. 그럴 때 제가 거의 반드시 사례로 드는 회사가 비바리퍼블리카(토스)입니다. 스타트업의 탄생에서 성장 과정 그리고 창업자가 갖춰야 할 특징까지 토스가 모두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항상 “여기서 토스 앱을 쓰고 있는 분이 계신가요?“하고 묻습니다. 젊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조직일수록 토스를 많이 쓰는 편이고 연령대가 높고 보수적인 조직일수록 토스에 대해서 잘 모르는 편입니다. 특히 대학생들을 만날 때는 항상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손을 번쩍 들어 토스를 쓴다고 해서 깜짝 놀라고는 합니다.
이승건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약 4년 전인 2014년 5월입니다. “미국에는 벤모라는 혁신적인 송금 앱이 있다“고 트윗을 했더니 누가 “한국에는 토스가 있습니다“라고 알려줬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스타트업얼라이언스 바로 길 건너편에 사무실이 있던 이 대표를 만나게 됐습니다.

당시 이 대표는 “한국에서는 공인인증서, 액티브엑스 등 복잡한 절차 때문에 돈을 송금하기 너무 어렵다“며 “이를 해결하는 혁신적인 서비스를 개발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비바리퍼블리카는 막 프로토타입 앱을 내서 아이디어를 테스트해본 단계였습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은행이 통신요금 등 정기 자동계좌이체에 사용하는 CMS망을 활용해서 상대방의 계좌번호를 몰라도 전화번호만 가지고 쉽게 돈을 보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정 한도까지는 무료로 송금할 수 있도록 해서 더 많이 사용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열정적인 이 대표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저는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보수적인 대형시중은행이 이 작은 스타트업과 제휴해서 송금망을 열어줄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당시 한국에는 벤처 특별법하에 모태펀드의 자금을 받은 벤처캐피탈은 금융업과 부동산업회사에는 투자를 할 수 없는 규제가 있었습니다. 송금서비스도 금융에 해당하니 한국 투자자들에게는 투자받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무료로 돈을 송금해준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돈은 어디서 벌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일었습니다. 적은 돈이라도 송금수수료를 은행에 줘야 할 텐데 그 비용을 작은 스타트업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투자를 받지 않고서는 진행하기 어려운 사업인데 똑똑해 보이는 친구인데 안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러다 포기하겠지 싶을 만큼 무모해 보였습니다. 솔직히 그것이 제 첫인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약 한, 두 달 뒤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비바리퍼블리카가 10억 원의 투자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첫 투자로 10억 원이면 상당히 큰돈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온 알토스벤처스가 투자했습니다. 무릎을 쳤습니다. “아, 실리콘밸리 VC라면 한국의 규제를 받지 않으니 금융업 투자제한에 신경 쓰지 않고 투자할 수 있겠구나.”

알토스 김한준 대표님에게 왜 투자했는지 직접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돈을 보내는 것이 불편해서 고생하고 있잖아요. 저는 토스 이승건 대표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어요. 그리고 첫 제품을 만드는 데 비용이 많이 들 것 같아서 넉넉하게 10억 원을 투자했죠.”
하지만 은행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송금서비스를 만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비바리퍼블리카에게는 또 운이 따랐습니다. 2014년 가을부터 한국에 핀테크 바람이 불어닥친 것입니다. 정부부터 나서서 핀테크 보급에 나섰습니다. 마침 2015년 1월 청와대에서 금융위의 업무보고 회의가 있었는데 저와 이승건 대표가 업계 대표로 같이 참석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핀테크 스타트업이 성장하는데 은행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이 대표의 발언이 있었고 당시 기업은행 행장의 화답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다음 달부터 첫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토스에 대형시중은행으로는 기업은행이 유일하게 들어가 토스의 성장에 큰 도움을 줬습니다.

그다음부터 비바리퍼블리카는 스타트업의 교과서에 나올 법한 성장을 보여줍니다. 스타트업은 목표했던 성과(마일스톤)을 보여주면서 자신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그 성장단계에 맞는 투자를 정기적으로 받습니다. 10억 원의 초기투자금을 받은 지 거의 1년만인 2015년 7월에 비바리퍼블리카는 KTB네트워크, 알토스벤처스, IBK기업은행 등에서 50억 원의 시리즈 A 단계 투자를 받습니다. 토스가 제대로 작동하는 서비스인 것을 보여준 만큼 이제 제대로 성장하기 위한 자금이었죠.
일 년 뒤인 2016년 8월에 256억 원의 시리즈 B 투자를 받습니다. 토스가 이제 본격적으로 성장하면서 좋은 인력을 확보하고 마케팅, 인프라 등에 투자하기 위한 자금이었습니다. 2017년 3월에는 미국의 온라인송금 1위 회사인 페이팔까지 들어와 550억원의 거액 시리즈 C 투자를 받습니다. 그리고 2018년 6월에는 싱가포르투자청(GIC)과 세콰이어 차이나로부터 440여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마침내 12월에는 실리콘밸리의 클라이너퍼킨스와 리빗캐피탈에게 900억원을 투자받아 1조3천억원기업가치의 유니콘이 됐습니다.
제가 처음에 단순히 송금서비스로 생각했던 토스는 이제는 제가 상상했던 이상의 서비스가 됐습니다.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금융 포털이 된 것이죠. 토스는 이제 송금뿐만이 아니라 제 모든 은행 계좌, 신용카드 등을 토스에 연동해 두고 수시로 확인하는 편리한 앱이 됐습니다. 제 신용도도 가끔 조회해보고 목돈을 펀드 등에 넣기도 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정부의 은행라이센스를 받고 수천억 원의 자본금을 모아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있습니다. 이들과 달리 비바리퍼블리카는 자신의 가설을 한 단계 한 단계 증명해 가며 투자금을 모으고 그에 맞게 성장해 이제는 1천1백만 명이 이용하는 한국의 대표 핀테크 회사가 됐습니다.
토스의 수익모델에 대해서 걱정했던 것도 기우였습니다. 지난해 토스는 수수료를 통해 560억 원의 매출을 냈습니다. 물론 아직 적자를 내고 있지만, 세계적인 스타트업들이 그렇듯 고객이 원하는 기능을 추가하면서 가치를 만들어내 흑자를 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저는 성공한 스타트업의 공통점을 설명할 때 토스 사례를 들어 이렇게 말합니다.
사물을 보는 남다른 문제 인식에서 출발한다
많은 한국인이 돈을 보내는 데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한국에서는 원래 그러려니” 했습니다. 문제의식을 느끼고 고쳐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스타트업 창업가는 이런 문제를 남다르게 인식하고 해결에 나섭니다.
많은 경우 자기 자신이 느낀 불편함에서 출발한다
본인이나 본인주위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인식하고 해결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창업자가 치열한 열정, 분석력, 실행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창업자는 열정뿐만 아니라 시장을 이해하고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울 줄 아는 분석력, 그리고 아이디어에서 끝나지 않는 실행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승건 대표는 금융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CMS망을 통해서 쉽게 송금을 하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말 뿐이 아니고 프로토타입 제품을 만들어서 자신의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바퀴벌레 같은 생존력을 가지고 있다
스타트업이 원래 처음 계획대로 성장하는 일은 드뭅니다. 생각대로 되지 않아 중도에 포기하게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좌절하지 않는 창업자의 용수철 같은 회복력, 생존력이 없이는 성공까지 도달하지 못합니다.
규제의 틀이라는 박스속에 갇히지 않은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안 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모든 것을 기존 법규, 관례 등에 적용해서 생각하면 도대체 될 일이 없습니다. 비바리퍼블리카가 “어차피 한국의 VC는 금융업에 투자를 못 하는 규제가 있어서 투자를 받을 수 없다“고 일찌감치 포기해버렸으면 오늘의 토스가 안 나왔을지 모릅니다. 규제에 적용받지 않는 실리콘밸리 VC를 공략한 것이 성공의 출발점이 됐습니다.
담대한 아이디어를 믿고 투자해준 초기 투자자의 존재
아무리 뛰어난 제품 아이디어가 있어도 적절한 자금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남들이 다 안 될 것이라고 하는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자를 알아보고 밀어주는 눈 밝은 투자자가 없으면 큰 기업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구글, 페이스북, 우버, 에어비앤비 등 세상을 바꾼 기업의 뒤에는 일찍이 남들이 다 안 된다고 할 때 그 가능성을 보고 밀어준 투자자의 존재가 있습니다. 2014년 여름 알토스의 첫번째 대담한 투자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토스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토스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쑥쑥 성장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느끼는 문제를 풀기 위해 나선 열정적인 창업가를, 눈 밝은 투자자가 밀어주고, 정부와 대기업이 도와줘서,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핀테크 혁신기업이 나왔다”는 멋진 스타트업 스토리로 완결되기를 희망합니다.

사상 최고 투자기록이 나온 2018년 미국벤처투자시장
미국의 벤처투자 통계와 투자트렌드를 집계해 발표하는 피치북과 NVCA, 미국벤처캐피탈협회가 지난 한해의 미국 벤처투자현황을 집계한 벤처모니터자료를 공개했다. 들여다보니 2000년의 닷컴버블기를 능가하는 역사상 사상 최고 투자기록이 나왔다. 지난 한해 한화로 147조원이 스타트업에 투자된 것이다. 기억해 두고자 주요 현황 그래프를 여기 공유한다.

2017년 투자금이 83B이었는데 2018년에는 130.9B로 껑충 뛰어올랐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점프다. 사실 100B을 넘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엄청나다. 12월20일에 발표된 담배회사 Altria의 Juul Labs에 대한 12.8B 투자가 포함되서 더욱 늘어났다. Juul은 실리콘밸리의 전자담배 스타트업이다.
이전의 기록은 닷컴버블이 최고조였던 2000년의 105B투자가 최고였다고 한다. 이 기록을 가볍게 뛰어넘은 것이다. 130.9B는 지금 환율로 147조원이다. 지난해 한국의 벤처투자액도 사상최고를 기록해서 약 3조4천억원이 투자됐는데 이것의 43배쯤 된다.
투자금은 저렇게 늘어났는데 딜 숫자는 거의 9천개로 2014~2015년의 1만개에 비해 오히려 줄어들었다. 딜사이즈가 커진 것이다.

사모펀드와 CVC가 들어온 딜이 늘어나고 있고 무엇보다 딜의 사이즈가 커졌다.

또 100M이상, 즉 1천억원이상 투자되는 메가딜이 2018년에는 이렇게 많이 늘어났다.

엑싯 마켓에서는 (사모펀드의) 바이아웃과 IPO의 비중이 커졌다. 2018년의 전체 엑싯볼륨은 120B였다. 2018년에는 85회의 IPO가 있어 활발했다. M&A중에서는 7.5B짜리 MS의 GitHub인수가 가장 컸고 그 다음이 시스코의 2.4B짜리 Duo시큐리티 인수였다.

실리콘밸리바깥에도 스타트업이 많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미국 전체투자건수의 약 40%, 투자가치로는 약 60%가 서부에 몰려있다.

서부의 비중은 오히려 더 늘어났다.

대기업계열 벤처펀드인 CVC가 들어간 투자딜이 이렇게 많이 늘어났다. 기록이다. CVC전성시대다.

성장펀드 투자도 이렇게 늘어났다.

전체 엑싯 밸류도 2012년이후 최고치다.

엑싯밸류중 절반이상을 IPO가 차지하고 있다.

평균 IPO엑싯 사이즈는 348M, M&A사이즈는 105M이다. 상장하면 거의 4천억원에 가까운 엑싯이고, M&A는 보통 1천억원이 좀 넘는 사이즈다. 한국은 어느 정도 나오는지 궁금하다.

VC펀드조성도 55B가 커미트됐다. 이것도 사상최고액이다.

1B이상의 거대펀드도 11개나 나왔다.

기존 벤처투자자들이 스핀오프해서 새로 만든 첫번째 펀드도 52개나 나왔다.
이처럼 큰 벤처펀드가 많아졌다는 것은 투자붐이 당분간은 이어질 것이란 신호다. 2018년에는 또 큰 IPO기대주들이 대기하고 있다. 우버, 리프트, 에어비앤비, 슬랙이다.
하지만 4분기에 테크주가 크게 빠졌다는 점, 미중무역전쟁의 여파로 미국밖 해외자본의 미국회사 투자를 제한한 Foreign Investment Risk Review Modernization Act (FIRRMA)의 등장 등 악재도 있다.
어쨌든 2018년은 정말 벤처투자에 있어서 기록적인 해였다. 이런 붐이 계속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위 자료는 여기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