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11월 2017
4차산업혁명 시대에 벤처캐피탈이 시너지를 내려면
지난 수년간 한국의 스타트업생태계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크게 성장했다. 특히 지난해 한국의 벤처투자액은 2조1천5백억원으로 사상최대치를 기록했고 올해도 이같은 투자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 추경예산 8천억원의 모태펀드 추가 투입으로 또 수많은 벤처펀드가 결성되서 내년도 벤처투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의 변화 속도 이상으로 실리콘밸리나 중국의 스타트업생태계가 더 빨리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4년 1조가치가 넘는 유니콘스타트업이 전세계에 약 1백개정도였는데 지금은 230여개가 됐다. 그중 절반은 미국에, 그리고 4분의 1은 중국에 있다. 한국의 유니콘스타트업은 2014년 쿠팡, 옐로모바일이 탄생한 이후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한국에 4차산업혁명과 관련된 스타트업이 적다는 점이다.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라이드쉐어링, IoT, 로봇 등과 관련된 소위 딥테크(Deep tech) 스타트업의 절대 숫자가 부족하다. 이런 기술을 가진 이공계 대학 인재, 연구원, 대기업 엔지니어들이 활발하게 창업에 도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과도한 규제 등 여러가지 요인이 지적되고 있지만 이런 분야에 대해 과감한 투자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VC주도로 4차산업혁명시대를 이끌어갈 스타트업이 많아지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VC생태계가 변화해 나갔으면 하는 방향에 대해서 적어본다.
우선 스타트업에 돈만 투자해 주는 것이 아니고 차별화된 가치를 주는 VC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좋은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명문VC들도 각자 자기들이 줄 수 있는 가치를 창업자들에게 제시하며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가치를 만들기 위해 VC들도 열심히 공부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인맥을 쌓는 등 노력한다. 내가 만난 많은 실리콘밸리VC들은 기본적으로 열린 사고와 폭넓은 인맥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 자산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이 사업을 확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휴선을 소개해주거나 추가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주고, 심지어는 M&A딜까지 VC들이 만들어낸다. 반면 한국의 창업자들은 아직도 VC는 돈만 투자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앞으로는 이런 인식이 바뀔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변화를 만들기 위해 좀 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VC세계로 들어왔으면 싶다. 실리콘밸리에서 보면 성공한 창업가출신으로 VC로 변신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페이팔을 창업한 피터 틸부터 앤드리슨호로비츠의 마크 앤드리슨, 벤 호로비츠 같은 사람들이다. 애플, 구글 같은 회사에서 임원으로 많은 경험을 쌓은 뒤에 VC로 변신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산업경험이 풍부한 인재들이 VC가 된다면 스타트업의 성장과정과 창업자의 입장을 잘 이해하며 투자후 도와줄 수 있다. 반면 한국VC는 창업이나 산업계 경험이 있는 심사역이 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창업해서 엑싯을 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 파트너로 포진하고 있는 본엔젤스 같은 회사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 (모태펀드나 성장금융 같은 LP들이 몇년이상의 투자경력이 있는 심사역을 펀드매니저로 요구하기 때문에 이런 산업경험이 있는 심사역을 뽑기 어렵다는 얘기도 들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인재들이 VC업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이런 조항도 좀 완화됐으면 한다.)
안정적인 수익율을 찾아 클럽딜을 추구하기보다 벤처캐피탈의 본질인 고위험 고수익의 딜에 과감하게 베팅해 큰 수익을 올리는 VC가 많아졌으면 한다. 남들이 절대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미친 아이디어에서 대박이 나올 수 있다. 유행을 쫓아 다같이 공평하게 나눠서 투자하는 것보다는 변화의 길목이 어디인지 미리 내다보고 남들보다 먼저 과감하게 투자하는 눈밝은 VC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모르는 타인의 집 침대에서 어떻게 자냐?”고 황당한 아이디어 취급을 받았던 초기 에어비앤비에 세콰이어캐피탈의 그레그 맥커두는 58만불을 과감하게 투자했다. 이베이에 일찍 투자해 성공을 거둔 그는 남는 유휴공간도 거래할 수 있는 마켓플레이스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비즈니스모델을 가진 스타트업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마침 눈에 뜨인 에어비앤비에 과감히 투자했고 세콰이어캐피탈의 에어비앤비 투자 지분은 지금 5~6조원 가치가 됐다.
한국의 VC들이 좀 더 글로벌화가 됐으면 한다. VC가 국내스타트업에만 투자해서는 글로벌한 시각을 가지기 어렵다. 글로벌한 기술 트렌드를 깊이 있게 알기도 어렵고 해외 VC와 공동투자를 하면서 인맥을 쌓기도 힘들다. 그러다 보니 포트폴리오회사가 해외진출을 하거나 해외투자를 필요로 할 때도 적절한 도움을 주기가 어렵다. 반면 실리콘밸리출신으로 한국의 스타트업투자에 적극적인 알토스벤처스의 김한준 대표는 매년 알토스 코리아펀드의 해외LP들을 서울로 초청해 한국의 스타트업생태계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추가 투자를 권유한다. 쿠팡이 세콰이아캐피탈의 투자를 받고, 비바리퍼블리카가 페이팔에게 추가투자를 받는데 이런 김대표의 글로벌 인맥이 큰 도움이 된 것은 물론이다.
조급하게 투자금 회수를 요구하기 보다는 투자스타트업이 충분히 성장할 때까지 인내력을 가지고 기다려주는 VC가 많아졌으면 한다. 해외에 비해 우리 펀드의 수명이 짧아서 그렇기는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고 들었다. 기업이 본격적인 성장가도에 들어서기 전에 투자를 회수해서 조로하게 만들기 보다는 가능성이 있다면 인내력을 가지고 성장할 때까지 충분히 기다리고 도와주는 VC가 됐으면 한다.
또 초기단계나 시리즈A보다 시리즈 B, C, D… 단계에서 수백, 수천억원을 투자할 수 있을 정도로 국내 VC들의 투자여력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국내VC들에게 받을 수 있는 투자자금은 200억원정도가 한계인 것 같다”고 불평하는 창업자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글로벌한 스타트업투자생태계가 점점 더 거대자본이 주도하는 ‘쩐의 전쟁’이 되고 있는 만큼 국내VC들의 펀드규모도 더 커져야 한다. 4차산업혁명 관련 스타트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는 1000억불, 즉 100조원이 넘는 규모다. 한번에 수천억에서 1조원까지 인공지능, 로봇, 핀테크 회사 등에 투자하고 있다. 우리 VC들의 투자사이즈도 글로벌수준으로 커져야 한다.
이런 변화들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현재 펀드조성을 공공자금에 의존하는 국내 VC생태계의 체질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다행히 한국스타트업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LP가 될 수 있는 국내외 대기업, 펀드 등이 늘어나고 있다. 국내외에서 다양한 민간LP를 확보해 큰 펀드를 만들고, 훌륭한 스타트업을 발굴해 성장하도록 도와줘 창업자들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VC들이 앞으로 많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필자가 민간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도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블루홀스튜디오 같은 유니콘스타트업을 직접 키워내고 수많은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해온 장병규 위원장은 “성장기에 접어든 스타트업에 큰 투자가 일어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의 VC투자생태계가 ’혁신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혁신스타트업을 쭉쭉 밀어줄 수 있도록 역시 혁신적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해 본다.
/벤처캐피탈협회가 발행하는 벤처캐피탈뉴스레터 1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택시 vs. 라이드쉐어링 안전문제
중앙일보의 “카풀, 종일 영업은 불법” vs “공유경제 싹 자르나” 기사중 다음과 같은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승객 안전 문제를 놓고도 입장은 크게 갈린다. 양 과장은 “서울시는 택시 운전자의 전과기록을 면허 취득단계부터 관리하고 입사 후에도 범죄 기록을 꾸준히 조회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공 분야는 문제 발생의 소지를 제도를 만들어 방지하고 있지만 민간 서비스는 책임이 불분명하다는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과연 민간서비스는 책임이 불분명해서 더욱 위험할까. 이와 관련해서 중국의 라이드쉐어링 유니콘스타트업인 디디추싱의 광고에서 본 인상적인 부분을 소개하고 싶다. 디디추싱은 중국에서 우버를 이긴 라이드쉐어링 스타트업으로 하루 2천5백만번의 승차횟수를 자랑하는 종합교통앱이다. (참고 포스팅 : 우버를 능가하는 디디추싱앱 들여다보기) 1분당 2천번이상의 승차가 이뤄지는 셈이다. 그만큼 중국인의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서비스가 됐다.
디디추싱은 승객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5가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이 코믹한 5꼭지의 광고를 통해서 홍보하고 있다. 소위 ‘중국식 안전’이다. (디디추싱의 거의 모든 광고는 이런 식으로 여성승객을 출연시키면서 ‘안전’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우선 개인자가용을 가지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디추싱 드라이버의 신원을 신분증, 운전면허증, 자동차등록증을 통해 다 확인한다.
두번째 (통화를 위한 임시번호가 표시되는) 안심번호를 통해서 고객의 전화번호가 드라이버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것이다.
세번째 디디추싱 드라이버는 운전을 시작할 때 얼굴인증을 통해서 본인임을 증명해야 한다. 마치 아이폰X의 페이스ID 등록을 하듯이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인증한다. 또 음성인증도 통과해야 한다고 한다. (우버에서도 부정행위가 의심될 때는 이런 얼굴인증을 요구한다고 한다.)
네번째, 여정공유기능을 통해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내가 타고 있는 차량번호, 도착장소, 도착 예정시간 등을 공유해줄 수 있다. 카카오택시의 안심메시지와 비슷한데 디디의 경우는 실시간으로 추적이 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기능을 활용하면 자녀나 배우자가 돌아오는 시간에 딱 맞춰 집앞에서 마중을 나갈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긴급구조버튼이다. 이 버튼을 누르면 원터치로 현재상황이 그대로 녹음되어 디디추싱에 전달되며 안전요원이 도움을 주기 위해서 조치를 취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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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기술을 이용해 민간 라이드쉐어링회사가 이 정도의 안전조치를 취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카카오택시나 풀러스 등 국내 회사들도 다는 아니지만 디디추싱처럼 이런 기능과 제도를 통해 안전한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중이다. 그런데도 “공공 분야는 문제 발생의 소지를 제도를 만들어 방지하고 있지만 민간 서비스는 책임이 불분명하다는 문제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나는 오히려 공공부문의 안전대책이 미흡한 것 같아 유감이다. 지난 3월 시사저널에는 아래와 같은 기사가 실렸다.
범죄 전력자 채용 제대로 검증 안 돼…근본대책 시급히 마련해야
2월18일 전남 목포에서 20대여성이 성폭행을 피하려다 택시기사에 살해당했다는 끔찍한 내용이다. 범인은 전과 9범에다 여성을 감금하고 폭행한 전력까지 있었는데 택시기사로 채용되어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이런 일이 전국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범죄를 방지하고 지금 타고 있는 택시의 정보를 가족과 친구에게 쉽게 공유해준다는 취지로 정부에서 보급한 안심택시 태그 서비스는 아무도 사용하는 사람이 없어 예산만 낭비하고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출처 매경 : “불편하기만 하고…”길잃은 ‘택시 안심서비스’ ) 사실 이 서비스는 안드로이드폰에서만 사용 가능하고 그나마 사용법이 복잡해 처음부터 아무도 안 쓸 것 같았다.
그리고 위 동영상에 소개된 것처럼 여성들은 지속적으로 택시를 이용하면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내가 이야기해본 대부분의 여성들은 택시를 타면서 불쾌한 일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다는 얘기를 한다. 승차거부, 성희롱적인 발언, 카드결제 거부 하지만 이런 문제가 전혀 시정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는 스타트업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업계질서를 흐뜨러트린다”고 무조건 거부를 할 것이 아니다. 왜 전세계적으로 이런 라이드쉐어링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좋은 점은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새로운 서비스가 자극이 되서 기존 택시서비스도 함께 개선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특히 여성, 노약자, 외국인 관광객 등 택시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불편을 겪고 있는 층을 위해서 어떤 혁신적인 서비스가 나올 수 있는지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특히 이웃 일본의 택시업계는 우버시대를 대비해서 자신들의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고 있다. (참고 : 우버시대를 대비하는 일본의 택시업계) 이번 풀러스 규제이슈에 있어서 시민의 편익을 높이기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전향적인 자세 변화를 기대해 본다.
국민비즈니스앱 리멤버를 만든 최재호대표
한국국민 누구나 쓰는 ’국민앱’인 카카오톡. 나는 카톡이 없어도 사실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없으면 내 업무에 큰 지장을 초래하는 앱은 따로 있다. 명함관리앱 ‘리멤버’다. 지난 3년여간 내가 일하면서 주고 받은 약 7천장의 명함이 고스란히 이 앱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받은 명함을 즉석에서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기만 하면 마치 마술처럼 정확하게 내용이 입력된다. 나중에 이름, 직장명 등으로 검색하면 어디서나 바로 찾을 수 있다. 7천장의 정보를 하나하나 컴퓨터에 입력해 넣거나 수십개의 명함첩에 넣고 일일이 찾아보는 엄청난 수고를 덜어준다. 이게 없었으면 얼마나 힘들까. 리멤버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런데 무려 이 앱은 공짜다.
(사진 출처: 나라경제)
이런 고마운 앱을 만든 스타트업 드라마앤컴퍼니의 최재호대표를 만났다. 2013년 7월 창업해 이제 4년이상을 달려온 리멤버는 현재 170만명이 사용하는 앱으로 성장했다. 명함은 누적해서 9천만장이 입력되어 있다. 대한민국 인구보다도 많은 숫자다. 중복된 명함을 제외하면 약 1천여만명의 정보가 입력되어 있다. 한국의 경제활동인구 3명중 1명은 리멤버에 정보가 들어가 있는 셈이다. 가히 국민 비즈니스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대표에게 창업동기를 물었다. “한국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명함을 교환하죠. 그런데 명함관리만큼 어렵고 불편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시중에 이미 많은 명함관리 솔루션이 나와있지만 입력이 불편하거나, 이동중에 찾아보기 어렵거나, 입력한 명함정보의 정확도가 떨어지거나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명함정보를 가장 편하게 잘 관리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보니 대기업임원들이었습니다. 이 분들은 비서에게 받은 명함을 주고 그냥 입력하라고 하면 되는 것이었죠. 그래서 우리도 명함관리비서를 만들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첨단기술이 아니고 수작업으로 명함입력을 처리하는 ‘발상의 전환’
스타트업이 가내수공업을 할 생각을 하다니 ‘기가 차다’는 말을 듣기도
그런데 당시 나와있는 많은 명함관리앱은 광학이미지자동인식(OCR)방식으로 자동으로 정보를 입력했다. 첨단기술을 이용한 것이지만 정확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리멤버는 이 문제를 ‘발상의 전환’으로 해결했다. 고객이 카메라로 찍은 명함사진을 사람이 수작업으로 입력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기가 차다’고 말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스타트업이면 첨단 기술로 문제를 해결해야지 어떻게 가내수공업을 할 생각을 하냐고요. (웃음) 무료로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그 엄청난 인력 비용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대표는 단호했다. 불완전한 기술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현실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리멤버의 이런 ‘구식’ 접근방법에 실망해 투자를 꺼리는 벤처투자사들도 있을 정도였다.
입력되는 명함숫자는 늘어났지만 기술을 통해 입력속도와 비용 낮춰
하지만 이후 리멤버는 고객의 명함데이터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입력해주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력되는 명함숫자는 급속히 늘어났지만 오히려 기술을 통해 명함의 입력속도와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겨우 수작업으로 명함을 입력한다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이많았는데 이제는 중복해서 다시 입력되는 명함은 자동처리하는등 자동화 시스템이 개선되서 지금 한달에 입력되는 3백만장중 약 1백만장만 수작업으로 처리합니다. 예전에는 1천5백명의 타이피스트가 재택근무로 명함을 입력했는데 지금은 8백명정도로 반으로 줄었습니다. 명함을 찍어서 올린뒤 입력되는데 걸리는 평균 시간도 2시간에서 지금은 5분으로 단축됐습니다. 그 결과 전체 명함입력비용도 예전보다 80%나 줄어들었습니다.”
간혹 민감한 개인정보가 명함을 입력하는 타이피스트들에게 유출되는 것이 아니냐고 보안을 걱정하는 고객도 있다. 이것도 직장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주소 등 한 명함에 있는 정보를 각기 분리해서 서로 다른 사람에게 입력하도록 한 뒤 나중에 병합하는 방법으로 문제의 소지를 없앴다.
메신저, 선물하기, 팀명함첩, 인맥라운지 등 새로운 기능을 속속 선보이는 중
몇년간에 걸쳐 지속적인 노력끝에 가장 중요한 명함입력프로세스를 빠르고 안정되게 정비한 리멤버는 올해부터 새로운 혁신을 계속 시도중이다. 우선 메신저, 선물하기 기능을 붙였다. 명함을 주고 받은 사람들끼리 앱안에서 카톡처럼 메시지를 쉽게 보낼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커피나 꽃 등 선물을 보낼 수 있는 기프트샵도 개설했다. 회사내에서 같은 부서에 있는 사람들끼리 명함DB를 공유하는 팀명함첩기능도 추가했다. 수익모델을 만들기위한 첫 시도로 지난해부터는 광고도 붙이기 시작했다. 각자의 인맥으로 도움을 주는 인맥라운지도 만들었다. 즉, 리멤버의 혁신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라는 것이다.
[고객들이 리멤버에 보낸 응원메시지를 붙여둔 드라마앤컴퍼니 사무실 입구]
이렇게 훌륭한 서비스를 만든 덕분에 리멤버에는 열혈 고객이 많다. 사과상자 몇개분의 명함을 보내서 입력을 의뢰해 명함을 수만장씩 저장해둔 고객도 꽤 많다. 이런 분들은 리멤버가 돈을 벌어야 한다고 걱정해 준다. 자신의 귀중한 데이터를 맡겨둔 리멤버가 망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리멤버의 고객중 제일 많은 직급은 ‘대표‘다. 한국의 대기업임원 2명중 1명은 리멤버를 쓴다. 오히려 평직원으로 내려갈수록 적게 쓴다. 젊은층에게 더 인기있는 다른 모바일앱과는 반대의 경향이다. 대한민국의 비즈니스 리더들은 다 리멤버를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즘에는 입소문이 나서 장차관이나 국회의원 등 공무원들의 사용도 많이 늘었다.
최대표는 공대를 졸업하고 바로 온라인쇼핑몰을 창업해서 쓴 맛을 보고, 경영컨설턴트로 6년간 일하며 많은 비즈니스 경험을 쌓았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그때 쌓은 시행착오가 스타트업을 운영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는 화려함, 겉멋보다는 실용을 중시하는 겸손한 사람이다. 무작정 회사의 규모를 키우기 보다 회사의 문화에 맞는 인재를 신중히 채용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30명정도의 직원들과 함께 하고 있다. 문제해결중심으로 빠른 시도와 실패를 권장하는 것이 스타트업다운 드라마앤컴퍼니의 문화다. 톱다운으로 무조건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기 보다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는데 주력하는 리더십이다. 그런 그와 리멤버를 신뢰한 벤처캐피털 등 투자자들이 2017년 중반까지 약 95억원을 드라마앤컴퍼니에 투자했으며 최근 10월에는 네이버가 5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명함교환문화는 세계적, 해외에서도 충분히 승산 있어
최대표는 리멤버가 해외에서도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서부나 중국의 IT업계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전세계적으로 아직도 명함을 교환하는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리멤버가 명함관리앱으로서 경쟁력을 확보하면 해외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즈니스용 SNS로 14년전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한 링크드인은 “그게 되겠냐”는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하고 성장해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에 31조원의 거액에 인수됐다. 비즈니스인맥정보가 이처럼 큰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세계를 석권한 링크드인은 유독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는 아직도 약하다. 아시아특유의 명함중심의 비즈니스문화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리멤버가 없었으면 내 7천장의 명함을 어떻게 관리했을까 싶다. 리멤버만큼 한국인의 핵심 비즈니스인맥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회사도 없다. 이 금맥을 이용해서 리멤버가 어떻게 비즈니스를 키워갈지 앞으로 주목해볼만하다. 리멤버가 아시아의 링크드인이 되길 바란다.
/지난 7월 나라경제에 기고했던 내용을 업데이트해서 블로그에 재발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