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9월 2013
블랙베리의 몰락-더글로브앤메일의 기사를 읽고
일주일전에 썼던 ‘블랙베리의 몰락-업데이트‘라는 글에서 아래와 같이 끝을 맺었었다. (1만회이상의 조회수를 올린 인기포스팅이었다.)
개인적으로 블랙베리가 이런 운명을 맞게 된 것은 전적으로 짐 발실리, 마이크 라자리디스 두 창업자 겸 CEO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 그 향후 파괴력을 이해하고 빨리 대응만 했어도 이런 비극적인 결말은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50%의 마켓쉐어에 도취해서 잘난척하며 오만을 떨고 있는 동안 그들은 기둥뿌리가 썩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뭔가 바꿔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버스는 한참전에 지나간 뒤였다. 기업을 이끌어가는 선장, CEO의 역할이 너무너무 중요한 이유다.
이 두 창업자는 블랙베리의 몰락과 함께 세계 언론과 월스트리트의 비판과 조롱에 시달렸다. 그래서 나도 위처럼 그들의 책임이 크다고 비판적으로 썼던 것이다.

9월28일자 더 글로브앤메일 1면. 왼쪽부터 블랙베리 공동창업자인 짐 발실리와 마이크 라자리디스 그리고 현 CEO인 토스텐 하인즈. 발실리는 비즈니스부문, 라자리디스는 제품개발부문을 맡아왔다.
그런데 오늘 캐나다 최대 일간지인 더 글로브앤메일의 심층 취재기사 “블랙베리몰락의 내막: 스마트폰의 발명자가 어떻게 변화에 대한 적응에 실패했나”(Inside the fall of BlackBerry: How the smartphone inventor failed to adapt)라는 기사를 읽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 기사는 20여명의 블랙베리 내부인들을 인터뷰해서 쓰여진 것으로 아이폰의 등장이후 블랙베리의 중역진과 이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주 재미있다.)
두 창업자들이 꼭 오만을 떨면서 아이폰의 위협을 무시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은 나름대로 대처하려고 했지만 그 당시까지의 성공을 이뤄낸 블랙베리의 문화와 경영의사구조가 오히려 방해가 됐던 것이다. 바꿔 말하면 블랙베리라는 주로 기업고객을 대상으로 하며 오래된 소프트웨어플렛홈을 가진 제품이 아이폰이라는 파괴적인 혁신제품의 등장으로 인해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대처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명의 창업자와 새로운 CEO로 분권화된 내부 의사결정구조가 혼란을 가중시키며 중요한 전략적 판단실수를 여러차례 가져왔다. 공동창업자간에도 의견이 대립했으며, 나중에는 새로운 CEO인 하인스의 반대에 두 공동창업자들은 좌절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 같은 통찰력 넘치는 강력한 단일리더의 존재가 아쉬운 부분이다.
기사에서 인상적으로 읽은 몇개 부분을 소개한다.
2007년 초 발표된 아이폰을 처음 접한 라자리디스(제품 개발부분을 담당한 창업자)의 이야기다.
2007년초 마이크 라자리디스는 러닝머신에서 운동하면서 TV를 보다가 처음으로 애플 아이폰을 접하게 되었다. 아이폰에 대해서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몇가지 있었다. 그래서 그해 여름, (아이폰이 출시되고 나서) 그는 아이폰을 분해해서 내부를 들여다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마치 애플이 맥컴퓨터를 휴대폰안에 구겨넣은 것 같잖아(It was like Apple had stuffed a Mac computer into a cellphone)”라고 그는 생각했다.
고교때부터 직접 오실로스코프와 컴퓨터를 만들었던 라자리디스에게 있어서 아이폰은 모든 게임의 규칙을 부수는 물건이었다. OS만 메모리에서 7백메가를 차지했고 프로세서가 2개 들어있었다. 반면 블랙베리는 프로세서 한개 위에서 돌아가며 겨우 32메가만 차지했다. 블랙베리와는 달리 아이폰은 인터넷이 제대로 돌아가는 브라우저를 가지고 있었다. 그 말은 아이폰이 AT&T 같은 이통사의 망을 교통체증상태로 빠뜨릴 것이란 얘기였다. 그런 일은 이통사가 허용하지 않던 것이었다. 반면 RIM(블랙베리)은 데이터사용량을 제한하는 원시적인 수준의 브라우저를 제공하고 있었다.
“”난 도대체 애플은 어떻게 AT&T가 이것을 허용하게 한 것이지?”라고 반문했습니다. “이것은 네트웍을 다운시킬텐데..” 그리고 실제로 나중에는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공개적으로 라자리디스와 바실리는 아이폰의 부족한 배터리수명, 약한 보안성, 부족한 이메일기능 등을 조롱했다. 덕분에 나중에 그들은 거만하며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평을 받았다. 라자리디스는 “그건 마케팅입니다. 상대방의 약점에 대비해서 우리의 장점을 부각시켜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그렇게 말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내부적으로는 그는 아주 다른 메시지를 전파했다. “만약 아이폰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노키아가 아니라 맥과 경쟁하게 되는 겁니다” 그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고 회상했다.
아이폰의 가능성은 일찍 인지했지만 블랙베리를 쉽게 변화시킬 수는 없었다. 자바에 기반한 레거시OS소프트웨어에 기반하며 기업고객들을 상대하는데 특화된 블랙베리와 그에 맞게 형성된 내부 조직문화를 쉽게 바꿀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첫번째 기회를 날려버렸다. 아이폰이 등장한지 얼마 안돼 아이폰을 독점하고 있었던 AT&T에 대항하기 위해 버라이존은 블랙베리에 터치스크린 아이폰킬러를 만들어줄 것을 의뢰했다. 블랙베리는 ‘스톰’이라는 제품을 만들었지만 기대에 못미쳤다. 사용하기 어렵고 복잡한데다 버그가 많아서 반품이 늘어났다. 버라이존은 할 수 없이 구글과 모토로라에 의뢰해 안드로이드폰 ‘드로이드’를 내놓는다. 이때 블랙베리는 큰 기회를 날려버렸다고 할 수 있다. 드로이드를 계기로 안드로이드진영은 급성장하면서 점점 블랙베리의 마켓쉐어를 빼앗아간다.
또 흥미있는 부분은 실패로 돌아간 짐 발실리의 SMS 2.0계획이다.
2011년 마케팅부분을 담당한 공동창업자중 한명인 짐 바실리는 블랙베리의 최대강점중 하나인 인스턴트메시징소프트웨어인 BBM을 다른 기기까지 개방하는 것을 구상한다. BBM은 사실 왓츠앱, 카카오톡, 라인 같은 모바일메신저앱의 원형 같은 제품이다. 사용하기 편하고 안정성과 보안성도 높아서 블랙베리의 킬러앱이라고 할 만했다. 게다가 유료였다. 블랙베리는 당시 분기당 거의 9천억원상당의 매출을 BBM에서 올리고 있었고 마진은 90%에 달했다.
발실리는 인스턴트메시징플렛홈의 미래성장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이것이 모바일시대의 킬러앱이 될 것이며 이 카테고리에서 구글이나 페이스북사이즈의 회사가 나올 수 있다고 여겼다. 그는 유료였던 BBM을 이통사와 제휴해서 무료로 풀고 수익을 이통사와 나누는 SMS 2.0을 만드는 것을 꿈꿨다. 이통사와의 협상을 통해서 일부 회사의 동의도 얻어냈다.
하지는 2012년초 그는 그 계획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회사내에서는 그 엄청난 수익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는 중역이 많았고 또 서비스보다는 하드웨어개발에 집중해야 한다는 새 CEO 하인스와 공동창업자인 라자리디스의 반대에 이 계획은 이사회에서 좌초되어 버렸다. 화가 난 발실리는 이후 모든 직위에서 사임하고 블랙베리를 떠났다. 심지어는 가지고 있던 주식도 다 팔아버렸다. (블랙베리는 2013년 후반인 이제야 BBM을 안드로이드와 iOS버전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이미 모바일메신저시장은 경쟁사들에게 다 선점된 상황이며 지금 내놓은 앱도 불안정한 서비스로 홍역을 앓고 있다.) 지난 2년간 왓츠앱, 카카오톡, 라인, 위챗의 눈부신 성장을 고려해보면 당시 그의 생각은 옳았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다른 공동 창업자인 라자리디스가 좌절할 차례였다. 지난해 그는 완전한 터치스크린폰인 블랙베리Z10의 개발에 반대했다. 그 이유는 블랙베리유저들은 물리적 쿼티 키보드가 달린 기기를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최소한 물리적 키보드가 있는 제품을 터치스크린 버전과 같이 내놔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새로 CEO가 된 하인스와 그의 중역들은 라자리디스의 말을 듣지 않고 Z10의 개발을 강행했다. 그리고 올초에 발매된 Z10의 결과는 최악이었다. 블랙베리의 기존 사용자들은 아직 물리적 키보드가 있는 신제품을 원했다. 터치스크린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이미 아이폰과 안드로이드에 만족하고 있었다. 기존 블랙베리와는 다른 새로운 터치스크린 OS로 업그레이드하면서 많은 아기자기한 블랙베리의 장점도 사라졌다. 지난 분기 블랙베리는 Z10 때문에 거의 1조원의 손실을 봤다.
크게 보면 두 창업자의 판단은 옳았다. 하지만 실행과정은 험난했다. 시장상황은 너무나 빨리 변했다. 쌍두마차로 사이좋게 이끌어가던 경영은 위기상황에서 걸림돌이 됐고 결국 새 CEO까지 가세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전략적 오판을 내리게 됐다.
경영이란게 어렵긴 하지만 IT업계의 변화도 너무 빠르다. 무서울 정도다. 블랙베리의 두 창업자들을 너무 혹독하게 비판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에 글로브앤메일의 기사 내용을 소개해 봤다.
훌륭한 보스의 12가지 사인

What great bosses know라는 팟캐스트 리더십강의로 유명한 질 가이슬러. 사진 출처(http://whatgreatbossesknow.com/?p=1232)
리더쉽에 있어서 많은 통찰력있는 조언을 해주는 포인터인스티튜트의 질 가이슬러가 오래전에 쓴 훌륭한 보스의 12가지 사인(12 Signs of a Great Boss)이라는 글. 피드백, 명료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 등 조항 하나하나가 곱씹어 읽어보면서 과연 나는 좋은 상사인가를 생각해볼만한 내용이다. 기억해두고 가끔 내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번역해서 블로그에 올려둔다. 가끔씩 다시 읽어봐야겠다. 이 중 몇가지 항목이나 나의 리더십스타일과 부합되는가 생각해본다. 참 어렵다.
- You get genuine pleasure from helping others do their best work; you measure your own success by theirs. 당신은 다른 이들이 최상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에서 진정한 기쁨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라고 여깁니다.
- You don’t treat everyone the same. You know your people well enough to manage them as individuals.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사람들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으며 한명한명을 하나의 개체로서 대합니다.
- You understand that your title gives you power, but intelligence and integrity give you influence, which is invaluable. 당신은 직함, 직위에서 힘이 나온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당신의 명석함과 청렴함이 아주 소중한 조직내에서의 영향력을 가져다 준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 Your feedback is specific, sincere and constructive. People know where they stand with you. 당신의 부하에 대한 피드백은 구체적이며, 진솔하고, 건설적입니다. 부하들은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 More than a few people on your team have saved notes of praise you’ve sent them. Your words carry that much impact. 팀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그들에게 보낸 칭찬의 메모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메시지는 그들에게 그 정도로 가치가 있습니다.
- Your constructive response to mistakes and problems leads people to feel they can safely bring you bad news, when necessary. 실수와 문제점에 대한 당신의 건설적인 반응은 사람들로 하여금 나쁜 소식도 필요하면 무사히 당신에게 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줍니다.
- You communicate your plans and goals clearly, and people understand their roles and responsibilities as members of your team. 당신은 계획과 목표를 명료하게 커뮤니케이션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팀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이해합니다.
- You hire people smarter than you are and aren’t intimidated by their knowledge. You can look out your office door and see your replacement. 당신은 당신보다 똑똑한 사람들을 뽑으며 그들의 명석함을 질투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사무실 옆에는 당신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앉아있습니다.
- Your staff members feel ownership of ideas and initiatives, even those you originate, because you share power and control. 비록 당신의 제안으로 시작을 했더라도 당신의 부하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도에 대해 주인의식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들에게 통제권과 권한을 나눠주었기 때문입니다.
- You know the occasions when only a top-down decision will do: times of crisis, high risk or high conflict. And your staff appreciates it. 당신은 톱다운 의사결정이 필요한 때가 언제인지 압니다. 위기상황이거나, 큰 위험이나 이해상충이 발생할 때입니다. 그런 단호한 의사결정을 당신의 부하들은 높게 평가합니다.
- You’re a continuous learner, always looking to improve your skills and knowledge. 당신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항상 자신의 역량과 지식을 늘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 Your employees know what you stand for and are proud to stand with you. 당신의 직원들은 당신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 당신과 함께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진정성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중 하나는 진정성이라고 한다. 진정성을 보여주는 리더는 부하들이 믿고 따라가게 만든다. 픽사출신인 박석원 성균관대교수의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기고글 “박석원교수, 픽사에서 7년간 일해보니”에서 스티브 잡스의 진정성을 느끼게 한 대목이 있어서 소개한다.
픽사에서 가장 나를 감동시킨 경험은 스티브 잡스가 디즈니와 합병한다는 소식을 발표한 2006년이었다. 사실 그때 직원들은 잡스에게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불과 한 달 전에 디즈니와 합병하는 건 루머일 뿐이라고 해명했기 때문이다. 우린 디즈니와 사이가 최악이어서 픽사가 디즈니에 소속되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잡스는 차분하게 이렇게 말했다.
“디즈니의 CEO(밥 아이거)는 제가 사적으로 만나보니 좋은 사람이에요. 디즈니는 지금 픽사의 배급사이죠. 그런데 만약 다른 배급사와 계약한다면 전과 같이 흥행할 것이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디즈니만 한 배급사가 없으니 말입니다. 특히 2004년 췌장암 진단 이후 건강이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픽사의 문화가 변할 것이란 염려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디즈니 최대 주주가 됩니다. 그러는 한 픽사의 문화는 안 바뀝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초상집 분위기는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잡스에게 감동한 것이다.
저렇게 대단한 사람이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공개하면 부하들은 믿고 따르게 되지 않을까. 자신의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는 잡스의 이야기에 직원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애플본사에서 픽사본사까지는 80km거리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운전하고 다녀오기에 만만치 않은 거리다. 건강이 좋지 않은 잡스로서는 두 회사를 동시에 경영한다는 것이 무리였으리라.
위 발언이 혹시 어디에 보도된 것이 없을까 열심히 검색해봤는데 픽사 내부 미팅에서 나온 말이라 그런지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스티브 잡스가 육성으로 왜 디즈니가 픽사의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MP3 파일이 있어서 소개한다. 링크 : Steve Jobs talks about why he thinks Disney is a good fit for Pixar. (MP3) 윗 발언과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블랙베리의 몰락-업데이트
1년 9개월전에 끝없이 추락하는 블랙베리(당시 회사명은 RIM)에 대해 짐 콜린스의 명저 “How the Mighty Fall”에 비유해서 글을 써본 일이 있다. 이른바 잘 나가던 기업이 침몰하는 5가지 단계묘사에 블랙베리가 딱 떨어진다고 생각해서다. 참고 링크 블랙베리의 몰락-How the Mighty Fall
그리고 블랙베리의 1조 적자와 4천명 감원 뉴스에 맞춰서 그 내용을 한번 업데이트해봤다.
Stage 1: Hubris Born of Success 1단계. 성공에 도취된 자만.
아이폰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세상은 일반소비자위주 마켓으로 바뀌고 있는데 기업시장, 공공시장고객위주로 큰 블랙베리는 계속해서 비즈니스시장을 고집한다. 스프린트같은 이통사조차도 카메라, 빅스크린, 뮤직플레이어 등의 기능을 넣어야하는 것 아니냐고 블랙베리에 건의했지만 공공시장고객들이 싫어할지도 모른다며 개발을 거부한다. 마진도 박하고 경쟁도 치열하다며 컨슈머마켓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한다. 성공에 도취한 자만이다.
Stage 2: Undisciplined Pursuit of More 2단계, 원칙없는 확장.
그러다가 2007년 아이폰이 등장한다. 이 시기 짐 발실리, 마이크 라자리디스 RIM의 두 공동창업자 겸 CEO들은 금전관련한 법적분쟁과 미국의 아이스하키구단인수 등 다른 일에 주의력을 빼앗기고 있었다. 아이폰이 가져올 파괴력을 과소평가한다. 하지만 아이폰 덕분에 스마트폰시장이 급팽창하면서 블랙베리도 같이 순탄하게 동반 성장을 하게 된다.
Stage 3: Denial of Risk and Peril 3단계, 위험신호 무시, 긍정적인 데이터를 맹신.
아이폰의 도전에도 “우리는 여전히 잘나간다. 캐쉬가 많다. 펀더멘털은 끄떡없다”라고 블랙베리의 두 창업자들은 계속 언론에 나와 큰소리친다. 미디어가 우리의 잠재력을 몰라준다며 서운해한다. 당시에 아이폰이 급속히 뜨고 있었지만 블랙베리의 기업시장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안드로이드폰은 이제 겨우 기지개를 펴는 시기였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블랙베리는 북미스마트폰시장의 거의 절반정도를 점유했다. 2008년 중반 주가는 최고치를 치면서 80조원가까운 시가총액을 자랑할 정도였다. 위험신호를 무시할 만했다고 할까.
Stage 4: Grasping for Salvation 4단계, 구원을 위한 몸부림. 추락을 막기 위한 급진적인 딜이나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
아이폰의 부상과 함께 2009년말 모토로라 드로이드가 등장하면서 안드로이드도 급부상을 시작한다. 블랙베리도 점점 OS에서 좋은 유저경험(UX)을 제공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고 외부인재 영입을 시작한다. QNX등 OS업체를 인수한다. 이처럼 변화를 시도하지만 역부족이었다. 터치스크린제품 등 어중간하면서 초점을 잃은 다양한 모델을 내놓으면서 모멘텀을 잃어갔다.
명확한 전략부재와 설익은 개발상태에서 2011년 타블렛 제품 ‘플레이북’을 내놓고 대실패를 했다. 5백불에 발표한 모델을 결국 2백불까지 떨이 판매하고 5천억이 넘는 손실을 반영했다. 2010년 붕괴가 시작된 블랙베리의 시장점유율은 2009년 49%에서 2011년 10%로 급감했다. 2011년 6월 전체 직원의 11%인 2천명을 감원했다.
2012년 1월 두 창업자는 물러나고 COO였던 토스텐 하인즈가 새 CEO가 됐다. 하인즈는 사운을 걸고 신제품인 블랙베리 10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동시에 비용절감, 감원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기대감에 주가는 약간 오르기도 했다.
2013년 3월 블랙베리 Z10이 발표됐다. 블랙베리의 트레이드마크인 퀄티자판을 버리고 터치스크린을 채택한 제품이었다. 나름 미디어의 반응도 좋았다. 이런 제품을 좀 진작 내놓았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반응이 많았다. 3분기동안 계속되던 영업적자도 소폭의 흑자로 반전됐다. 아직 회사의 현금이 많은 만큼 잘 하면 블랙베리가 부활할 수 있을 거라는 일각의 기대도 생겼다.
이처럼 몇년동안 블랙베리는 추락을 멈추고 다시 살아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Stage 5: Capitulation to Irrelevance or Death 5단계. 시장에서 무의미한 존재가 되거나 죽음을 향해 다가감.
하지만 2013년 후반기부터는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5단계에 진입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내부적으로 Z10도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했는지 8월 블랙베리는 특별위원회미팅을 갖고 회사의 매각을 포함한 전략적 옵션을 고려한다고 발표했다. 이 뉴스는 많은 기업고객들이 완전히 블랙베리에서 다른 경쟁제품으로 돌아서도록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회사직원들이 사용할 중요한 보안 커뮤니케이션기기를 향후 진로가 불투명한 회사의 제품으로 구매할 리가 있겠는가.
2013년 9월 블랙베리는 거의 10억불의 손실과 함께 4500명의 직원을 해고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기대를 모았던 신제품 Z10이 거의 안팔린 탓에 할수없이 거의 1조원의 재고를 손실처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2011년 플레이북의 재고 5천억을 손실처리한 일의 데자뷰다.
위 발표가 놀라운 것은 월스트리트는 2분기매출을 30억불로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그 절반밖에 안되는 16억불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만큼 Z10 등 블랙베리폰이 안팔렸다는 것이다. 또 그나마 줄어들지 않고 유지하고 있었던 31억불정도의 현금보유고가 2분기에 5억불이 줄어든 26억불로 떨어졌다. Z10의 마케팅비용과 재고물량 때문에 현금이 빠르게 소모되기 시작한 것이다. 현금까지 바닥이 난다면 블랙베리의 미래는 없다.
1년9개월전에 블랙베리의 몰락에 대해서 처음 글을 썼을 때는 그래도 혹시나 블랙베리가 재기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충성스러운 고객과 좋은 제품을 보유한 회사 아닌가. 주위에 블랙베리를 쓰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지만 Z10의 발표로 조금이라도 다시 약진을 할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제 블랙베리를 쓰는 사람은 거의 멸종단계에 접어들었다. 요즘에는 정말 블랙베리를 쓰는 사람을 주위에서 본 기억이 없다.
오늘 블랙베리에 대한 NYT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At their peak, just a few years ago, BlackBerry smartphones were symbols of corporate and political power. When President Obama took office he made keeping his BlackBerry a personal priority, and when BlackBerry service had a hiccup so did business on Wall Street.
But after being upstaged time and again by industry rivals, the devices may soon remain only in memories.겨우 몇년전 그들의 전성시대에 블랙베리스마트폰은 기업과 정치파워의 상징이었다. 오바마가 백악관에 입성할때 그는 블랙베리를 개인적으로 챙겼다. 그리고 블랙베리서비스가 장애가 생기면 월스트리트도 몸살을 겪었다.
하지만 업계의 경쟁자들에게 추월당한 지금 블랙베리는 곧 우리의 기억속에만 남게 될 것 같다.
정말 냉정하고 잔인한 테크업계의 현실이다. 아까 TV에서 본 블룸버그뉴스의 기자는 “이제 곧 블랙베리의 부고기사를 써야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블랙베리는 이제 어딘가로 통째로 헐값에 인수되던가, 사모펀드 등에 넘어가 상장폐지되서 특허, 소프트웨어 등을 나눠서 조각조각 팔리던가하는 수순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블랙베리가 이런 운명을 맞게 된 것은 전적으로 짐 발실리, 마이크 라자리디스 두 창업자 겸 CEO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 그 향후 파괴력을 이해하고 빨리 대응만 했어도 이런 비극적인 결말은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50%의 마켓쉐어에 도취해서 잘난척하며 오만을 떨고 있는 동안 그들은 기둥뿌리가 썩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뭔가 바꿔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버스는 한참전에 지나간 뒤였다. 기업을 이끌어가는 선장, CEO의 역할이 너무너무 중요한 이유다.
아이폰 5s, 5c 구경하기
오늘은 아이폰 5s, 5c 발매일. 호기심에 애플스토어에 한번 들러봤다. 스탠포드쇼핑센터에 얼마전 새로 문을 연 애플스토어. 오전 11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는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밖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구입을 원하는 사람들은 한명씩 입장시키는듯. 나는 그냥 들어가서 제품만 구경했다.
제품을 그냥 구경만 하려는 사람보다 구매하려는 사람이 더 많아서 그런지 의외로 내부는 한산한 편. 아마 토요일, 일요일에는 새 아이폰을 실제로 만져보려는 사람들로 붐빌 것이다.
아이폰 5s. 솔직히 이미 내 아이폰5를 iOS7으로 업데이트한 내 입장에서는 기존 아이폰5와 차이점을 느끼기 어려웠다. 폼팩터가 변한 것이 없기에 그립감은 완전히 동일하다. 터치ID가 적용된 홈 버튼만 모양이 다르게 생겼다. 데모로 터치ID를 시험해 볼 수 있도록 해놓았는데 웬지 지문을 남긴다는 것이 꺼림칙해서 해보다가 말았다.
속도는 확실히 빨랐다. 쉽게 체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기존 아이폰5의 속도도 큰 불만이 없기에 업그레이드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뒷면을 보니 지금 거의 품절상태라는 ‘골드’ 아이폰이다. 아주 황금색이 진한 것은 아니고 엷은 편인 소위 ‘샴페인 골드’다. 특별히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카메라 플래쉬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 눈에 띈다.
조금 테스트로 찍어봤는데 카메라 성능은 확실히 향상된 것 같다. 특히 Slow motion 기능이 재미있었다. 동영상을 찍고 재생하면 슬로우모션으로 나오는 것인데 아주 잘 작동했다. Burst 모드는 깜빡하고 테스트해보지 못했다.
5c는 뭐랄까 틴에이저를 위한 장난감 같은 느낌이다. 플래스틱으로 된 뒷면의 그립감도 나쁘지 않고 아주 고급스러워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싸보이지도 않는다. 커버색에 따라서 바탕화면 색도 맞춰져 있어서 웬지 귀여운 느낌이 드는 제품이다. 젊은 여성들에게 꽤 인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진열대의 아이패드로 커버를 맞춰볼 수 있도록 했다.
이 애플스토어는 스탠포드대학 옆에 있어서 그런지 다양한 종류의 스탠포드대 아이폰 커버가 구비된 것이 눈길을 끌었다. 35불정도로 꽤 비싸다. 다른 대학들도 이런 아이템이 있는지 궁금. (아마 있겠지)
어쨌든 애플스토어에는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데 반해서 바로 옆의 소니매장에는 거의 사람이 없어서 대조를 이뤘다. 다른쪽에 마이크로소프트스토어도 있는 것 같던데 그곳은 들르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아주 몇분 만져본 것에 지나지 않아 섣불리 결론은 내리기는 어렵지만 기존 아이폰5 사용자가 업그레이드할 이유는 없어보였다. iOS7으로만 업데이트해도 절반 정도는 새 아이폰을 구입한 것 같은 느낌을 얻을 수 있다. 2년 약정기간이 절반정도 지난 시점에서 무리해서 업그레이드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내가 아이폰4나 4s 사용자이며 애플의 iOS 사용에 만족한다면 5c나 5s로의 업그레이드를 심각하게 고려해 볼 것 같다.
삼성, HTC 등 경쟁제품에 비해서 아직도 화면이 작은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iPhone 5s, 5c는 아직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잘 조화된 가장 잘 만들어 진 스마트폰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안드로이드가 시장의 대세가 되버린 한국에서는 역부족이겠지만 미국, 일본, 유럽 등지에서는 여전히 잘 팔리며 그동안 안드로이드에게 빼앗겼던 마켓쉐어를 어느 정도 다시 가져오는데 성공하지 않을까. 안정적으로 출시되었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iOS7도 아이폰의 진격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중국에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아래 동영상은 미국 코미디언 지미 킴멜의 “아이폰5s 첫인상”이다. 아이패드미니를 아이폰5s라고 속여서 보여주면서 어떻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깜빡 속아넘어가는 일반인들의 모습이 재미있다. 솔직히 웃자고 만든 동영상이라 믿기지는 않는데 그래도 일반인들은 실제 스펙은 잘 모르면서 “신제품”이라는 말에 껌뻑 죽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c가 잘 될 것 같은 이유다.
에버노트에서 보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컬처
에버노트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을 담당하는 트로이 말론 GM의 초대를 받아 레드우드시티에 위치한 에버노트 본사에 다녀왔다. 101고속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항상 길가에 보이는 건물이다. 이 5층짜리 건물의 한 층을 제외하고 모두 다 쓴다고 한다. 이 빌딩에 근무하는 직원은 약 280명.
모두 다 이미 쓰고 있거나 한번쯤은 다운을 받아봤겠지만 에버노트는 “뇌를 확장해주는” 앱이다. 뭐든지 찍고, 녹음하고, 적어둬서 클라우드에 저장해 정리해둘 수 있도록 해주는 앱이다. 스마트폰을 정말 가치있게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몇 안되는 가치있는 앱이라고 할까.
지난해 7천만불의 자금을 벤처캐피탈로부터 유치하면서 회사가치를 10억불, 즉 1조원대로 산정받아 큰 화제가 되기도 한 회사다. 모든 직원들에게 한달에 두번씩 도우미를 보내 집안 청소를 해주는 복지혜택을 제공한다고 해서 많은 실리콘밸리 직장인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이 급성장하는 회사의 사무실을 둘러보면서 일반적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문화를 다시 느꼈다고 할까. 그래서 간단히 소개해 본다.
1층 로비에 들어가면 크게 보이는 글이다. “Evernote California Remember Everything”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에버노트의 모토다.
1층에는 식사를 제공하는 카페테리아가 있다. 수요일은 스시를 제공하는 날이다. 상당히 맛있는 정통일본스시와 야키소바, 아게다시두부 등 맛깔나는 일본요리가 제공되고 있었다.
이런 맛있는 스시가 제공되는 이유는 이 분 덕분이다. (트로이가 꼭 기념사진을 찍으라고 강요^^) 에버노트 CEO 필 리빈의 단골 스시레스토랑의 셰프였던 하워드는 식당을 정리하고 은퇴를 하고 싶었는데 그러기에는 노후 자금이 넉넉하지 않아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사정을 필이 알게 되자 “일주일에 한번씩 에버노트에 와서 일해주면 어떠냐”고 제안해서 매주 수요일에 스시를 제공하게 됐다고 한다.
죽기전에 단골 스시레스토랑의 셰프를 애플카페테리아에 취직시킨 스티브 잡스의 일화와 비슷해서 놀랐다. 어쨌든 훌륭한 일본음식이었다.
트로이가 에버노트의 문화를 설명한다고 보여준 자판기다. “Take what you need.” 블루투스 키보드, 이어폰, 마우스, 아이튠스카드, 구글플레이카드 등등 각종 소모품을 꺼내갈 수 있는 자판기다. 사원증을 터치하고 꺼내가면 된다. 가져갈 수 있는 수량에 제한이 없다. 직원을 전적으로 믿기 때문에 이렇게 운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10불짜리 아이튠스카드와 구글플레이카드는 필요한 경우 유료앱을 다운로드받아서 테스트해보라고 제공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 이런 자판기는 페이스북에서도 본 일이 있다. 이렇게 직원을 믿고 필요한 소모품을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것이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몇개나, 얼마나 자주 가져가는지 기록이 완벽하게 남기 때문에 이 제도를 악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인상적인 것은 1층 로비에 자리한 ‘The Dialog Box’다. 고급 커피머신이 있어서 직원들이 식사를 마친 후에 맛있는 커피를 받아가는 곳 같았다. 그런데 여기서 커피를 만들어주는 바리스타는 에버노트의 중역이라고 한다. CEO 필 리빈은 중역들이 직원들과 조금이라도 더 접촉을 하고 대화를 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의무적으로 돌아가면서 매일 점심시간이후 1시간동안 여기서 커피를 제공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 날은 법무담당 중역이 커피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필 리빈 본인도 자기 차례가 오면 이렇게 직원들을 위해서 커피를 만들어준다고 한다. (트로이의 폰에서)
사무실의 분위기는 이렇다.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사무실 분위기다. 오픈스페이스이며 애플 디바이스로 가득한 모습이다. 그리고 하나. 자세히 보면 전화가 하나도 없다. 휴대폰시대에 전화가 필요없기도 해서 없앴다는 것이다. 회의실에만 컨퍼런스콜용 전화가 있다. 덕분에 조용한 사무실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다고.
CEO부터 임원들도 따로 방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들 평등하게 똑같은 크기의 책상을 이용한다. 사실 웬만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대부분 그렇다. 페이스북, 구글도 그렇고 심지어 넷플릭스의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자기 자리도 없이 메뚜기처럼 회사내를 돌아다닌다고 한다. 어쨌든 창가 끝에 앉아있는 사람이 에버노트 CEO 필 리빈이고 (사진에서는 안보임) 그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COO 켄이다.
모든 벽은 칠판이다. 메모가 가능하다. 어디서나 아이디어를 가지고 토론을 벌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직원은 4층과 5층에서 근무하는데 층간의 소통을 위해서 위 아래층을 뚫고 계단으로 연결해 두었다고 한다. 그 계단을 아주 크게 만들어서 여기서 전체직원 미팅까지 할 정도라고 한다. (만약 이 빌딩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게 되면 원상복구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이건 아주 큰 비용이 드는 일이다. 사실 똑같은 사례를 예전 도쿄의 NHN재팬 사옥에서 본 일이 있다.) CEO 필 리빈은 직원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특히 물리적인 공간을 직원들끼리 자연스럽게 접촉할 수 있도록 디자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있어 장애가 되는 것을 없애는데 열심인 것이다.
텍사스 오스틴에도 지사가 있는데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이렇게 화상 TV로 24시간 연결해 두었다.
재미있는 것은 한쪽 창가쪽에 러닝머신+데스크를 마련해두었다는 점. 운동하면서 일하고 싶은 직원은 랩탑을 가지고 와서 놓고 걸으면서 일을 할 수 있다.
어쨌든 트로이 덕분에 또 멋진 회사를 견학했다. 트로이 말론은 한국선교사 출신이다. 한국말도 유창하고 한국에 대한 애정도 넘친다. 그와 필 리빈의 부인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요리가 뭔지 아냐고 맞춰보라고 한다. ‘떡볶이’란다. 필 리빈은 지난번 한국 출장때 한국 ‘김치맛 김’을 한 상자 사왔다고 한다. 왜 에버노트가 한국에서 잘 나가는지 알만하다. 우리는 한국 최고의 에버노트 에반젤리스트인 ‘혜민아빠’ 홍순성님 이야기도 많이 했다.
어쨌든 그가 내게 연락해온 계기는 아래 이 트윗 때문이다.
누군가 내 이 트윗을 트로이에게 알려줬고 그는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겠다고 다음의 민윤정님을 통해 연락해왔다. 놀라운 SNS의 파워다.
하여간 에버노트 필 리빈 CEO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열정과 함께 창업가들을 위해서 통찰력 넘치는 좋은 조언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의 말중에서 내가 인상적으로 느낀 부분이다. 위 동영상에서 가이 가와사키와 대담하면서 이야기하는 부분인데 스타트업과 대기업이 무엇이 다른지, 에버노트가 수만명 직원의 회사가 되더라도 꼭 잃지 않았으면 하는 것에 대한 말이다.
“나는 에버노트의 직원 누구도 일을 하면서 내가 왜 이것을 해야하는지 모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나는 누구도 자기가 해야할 일을 하면서 “이건 위에서 시켜서 하는 거야. 한심한 일이지만 말이지”라고 여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모든 직원이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자기가 왜 그 일을 하는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보스가 시켜서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시간낭비를 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회사에서 자신의 업무에 대해 “내가 왜 이 일을 해야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을까?
5년전부터 쓰기 시작한 에버노트앱을 만드는 회사가 이처럼 큰 회사가 될지는 정말 몰랐다. 아마 몇년 뒤에는 NYSE나 나스닥에 상장되서 조단위 시장가치를 자랑하는 회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위 트윗에 소개한 인터뷰도 꼭 읽어보시길.
Update : 알고 보니 정확히 일년쯤 전에 블로터에서 이미 에버노트사무실방문기를 다룬 일이 있다. 내 글보다 휠씬 낫기에 링크해둔다. [off피스] 에버노트, 사무실도 개방과 소통
적국 정상의 글도 실어주는 신문
지난주 <뉴욕 타임스>는 백악관과 미국 의회를 발칵 뒤집어놓는 글을 실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기고문을 게재한 것이다. 이 글에서 푸틴은 “점점 많은 세계인들이 미국을 민주주의 모델이 아닌 폭력에만 의존하는 국가로 여긴다”고 썼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시리아 공격 계획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 비유하면 한국의 대표 신문이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한국 비판 글을 받아서 실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푸틴이 글에서 주장하는 내용의 정당성은 차치하고라도 나는 이처럼 다양한 인물의 다양한 견해를 과감히 수용해 게재하는 뉴욕타임스의 편집 방침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사설과 칼럼이 실리는 지면을 미국 신문에서는 옵에드(Op-Ed)면이라고 한다. 푸틴의 기고문이 실린 옵에드면을 의견-사설면(Opinion-Edtorial)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여기서 옵에드는 ‘사설의 반대’(Opposite-Editorial)의 약자다. 논설위원들이 무기명으로 작성하는 신문사의 공식적인 주장인 사설과 대치되는 의견이라는 뜻이다. 1970년에 처음 등장한 뉴욕타임스 옵에드면은 회사 외부인들의 뉴욕타임스와는 다른 의견을 소개하고자 만들어졌다.
이런 외부인의 다양한 시각을 담은 글은 뉴욕타임스의 지면을 차별화한다. 그리고 간간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는 글이 나온다.
2012년 골드만삭스의 간부였던 그레그 스미스는 ‘왜 나는 골드만삭스를 떠나는가’라는 기고문으로 월스트리트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글이 뉴욕타임스에 실리는 날 새벽에 보스에게 사직 이메일을 보낸 그는 작심하고 직접 경험한 탐욕스러운 골드만삭스의 문화에 대해서 기고문을 통해 조목조목 고발했다. 골드만삭스의 주가는 그날 3.4% 하락하고 이후 월스트리트의 탐욕에 대한 보도가 잇따랐다.
2011년에는 억만장자 워런 버핏이 ‘슈퍼리치 감싸기를 멈추라’라는 글을 기고해 자신의 소득세율이 자기 직원들의 그것보다 훨씬 낮다고 고백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부자들이 솔선수범해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정치권부터 언론까지 광범위한 토론이 이어졌다.
얼마 전에는 유명 할리우드 배우인 앤절리나 졸리가 ‘나의 의료 선택’이라는 글을 기고해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졸리가 유방암 예방 차원에서 이중 유방절제술을 받은 사실을 용기 있게 밝히면서 세계적으로 유방암의 위험에 처한 여성들에게 조명이 집중된 것이다.
이런 글들은 뉴욕타임스에 실린 뒤 텔레비전·신문·라디오·SNS에 후속 보도와 토론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에게 ‘생각해볼 거리’를 던진다. 꼭 뉴욕타임스 독자가 아니더라도 웬만하면 내용을 알게 될 만큼 파급효과가 엄청나다.
뉴욕타임스는 매주 수천통씩 들어오는 기고문을 모두 읽어보고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 대부분은 거절되지만 채택하기로 결정된 글의 경우에는 면밀한 사실확인과 편집을 거쳐 작성자 본인의 동의를 받은 뒤에 발표된다. 이런 글들은 뉴욕타임스 사설과 유명 칼럼니스트의 글과 나란히 게재된다.
유명인사라고, 외국의 정상이라고 우대해서 글을 실어주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시의성이 있고 색다른 시각을 제공해 논쟁을 유발할 수 있는 좋은 글이어야 한다. 푸틴의 기고는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시의적절하게 들어왔으며 논쟁점을 잘 부각한 좋은 글이었기 때문에 게재했다는 것이다.
갈수록 당파성이 심해지는 한국의 신문에서 신문사의 논조와 배치되는 시각을 담은 외부 기고자의 글을 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됐다. 회사 논조와 다르더라도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겸허히 경청해 소개하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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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7일자 한겨레지면에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 칼럼으로 기고한 내용.
이번 칼럼차례에서는 유독 마지막까지 어떤 내용을 써야할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곤혹스러웠다. 꼭 데드라인이 닥쳐야 글을 쓰는 평생의 버릇 때문에 일요일을 소비한다. (한달에 한번씩 일요일오후가 데드라인이다.)
그러다가 NYT 목요일자에 실려 화제가 된 푸틴의 기고문을 떠올렸다. 안그래도 오바마와 푸틴이 서로 사이가 안좋아 불편하고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됐고, 시리아사태에 있어서도 양국이 완전히 상반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데 오바마의 앙숙과도 같은 푸틴의 글을 과감히 받아서 실은 NYT의 편집이 신기했다. 특히 진보적이며 항상 오바마의 정책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NYT 아닌가.
그리고 떠올려보니 ‘왜 나는 골드만삭스를 떠나는가'(그레그 스미스), ‘수퍼리치 감싸기를 멈추라'(워런 버핏), ‘나의 의료선택'(앤절리나 졸리) 같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NYT Op-ed면 기고문들이 생각났다. 당시에 얼마나 화제가 됐는지 내 기억에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글들이다. NYT에 실린 날, 이 내용을 미국의 거의 모든 언론이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래서 이 내용을 가지고 칼럼을 쓰기로 하고 Op-ed면의 역사에 대해서 몇개의 글을 읽고 공부했다. 위키피디아의 Op-ed소개 항목 외에도 NYT의 Op-ed에 대한 자세한 소개글 ‘And Now a Word From Op-Ed‘, 푸틴의 글이 실리게 된 경위를 소개한 NYT 퍼블릭에디터의 글 ‘The Story Behind the Putin Op-Ed Article in The Times’ 등을 참고했다.
다만 좀 쫓겨서 쓴 탓에 글이 나가고 나서 몇가지 비판을 받았다.
우선 제목을 ‘적국 정상의 글도 실어주는 신문’으로 한 점. 러시아가 미국의 라이벌국가이긴 하지만 적국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며 많은 부분에서 미국의 외교정책과 러시아의 외교정책이 대척점에 있고 특히 푸틴과 오바마의 사이가 나쁘다는 점에서 좀 강력하게 제목을 써봤다. (미국 뉴스에서 푸틴을 “Foe”라고 지칭하는 것을 들은 일도 있다.) 그리고 사실 좋은 제목 아이디어가 없어서 급하게 붙이고 한겨레에 보냈는데 수정 않고 그대로 내보내주셨다. 그래서 문제제기성 코맨트를 여러번 받았다. 내가 좀 경솔했다.
두번째로 Opposite-Editorial의 Opposite를 ‘반대’로 번역했는데 ‘반대편’이 조금 더 적절할 뻔 했다. 사실 ‘반대’와 ‘반대편'(다른쪽)의 두가지 의미가 혼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NYT를 너무 미화한 것 같아서 찜찜하기도 했다. 짧은 분량 탓에 충분히 설명할 수가 없었는데 미국신문들도 자신들의 성향에 따라 입맛에 맞는 외부기고를 받는 경향이 물론 있다. WSJ 같은 경우 보수적이고 항상 오바마를 비판하는 칼럼으로 가득하다. NYT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번 푸틴 칼럼의 경우처럼 전혀 의외의 인물의 다양한 시각을 담은 글을 게재하는 경우가 NYT는 많은 편이다. 그래서 소개하고 싶었다.
영어적인 표현이 많아서 문장이 부자연스럽다는 지적도 받았다. 미국에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은 것 같고, 또 퇴고를 소홀히 한 탓이기도 하다.
어쨌든 한겨레 지면을 포함해서 너무 한쪽의 정치적인 주장만 넘쳐나는 글이 가득찬 한국신문의 오피니언면은 좀 피곤하다. (나만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세상을 좀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생각거리, 논쟁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글들이 실리는 오피니언면을 바라는 마음에서 좀 주제넘은 글을 써봤다.
아이폰과 페이스북에 고객을 뺏기는 자동차업계
며칠전 자동차업계에 계신 지인과 이야기를 하는데 “자동차보다 아이폰이 더 좋다고 하는 젊은이들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가 자동차업계의 숙제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설마 누가 자동차보다 아이폰을 더 좋아할까요”라고 대꾸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즘 사람들은 자동차보다 스마트폰과 휠씬 더 많은 시간을 보내므로 이 분의 이야기가 엄살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십여년전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일반 대중의 차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 뉴욕타임즈의 “유럽의 자동차회사들은 테크놀로지가 젊은 자동차구매자들을 유혹하기를 바란다“라는 기사를 읽어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서유럽의 자동차판매는 20%가 떨어졌으며 93년이후 최악이라는 것이다. 물론 경제불황탓에 얇아진 지갑탓도 있다. 하지만 유럽의 젊은이들은 더이상 자동차를 구매하려하지 않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그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고 친구들과 채팅을 즐긴다는 것이다. 꼭 차가 필요하면 렌트하거나 요즘 유행인 공유경제형 쉐어링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이런 새로운 세대를 자동차로 다시 끌어당기기 위해서는 테크놀로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자동차가 아이폰과 경쟁하기 위해서 온갖 특이한 전장기능을 가져다 붙이는 것이다.
100% 전기동력의 스포츠카인 테슬라 모델S의 17인치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를 보면 자동차의 미래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는 것 같다. 관심있는 분은 이 동영상을 자세히 보시길.
위 동영상을 보면 확실히 자동차도 소프트웨어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거대한 스크린을 지닌 움직이는 아이폰이라고 할까. 이 차에서 물리적인 콘트롤은 핸들과 기어스틱, 방향키, 와이퍼, 비상등 버튼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컨슈머리포트의 기사에 따르면 터치스크린만으로도 조작이 생각보다 편하고 반응이 빨라 이용하기 쉬운 편이라고 한다. 마치 아이패드나 아이폰의 터치 반응이 경쟁사에 비해 더 좋은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컨슈머리포트는 테슬라의 터치스크린시스템이 GM 등 경쟁사보다 휠씬 작동이 쉽고 반응이 빠른 것이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덕분에 애플 등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데려와서 처음부터 프로세서에 맞게 코딩을 했기 때문이라고 썼다. 소프트웨어가 자동차 경쟁력의 중심축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자동차왕국인 독일도 자동차시장의 침체는 피할수가 없는 상황이다. 자동차구매자의 평균연령이 52세이고 베를린장벽 붕괴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자동차연간판매량이 3백만대이하로 떨어졌다고 한다. NYT기사의 마지막 부분에 소개된 독일교수의 코맨트가 흥미롭다.
“Google and Facebook are taking away the young customers,” Mr. Dudenhöffer said. “But none of the automakers has a big idea, none of them.”
“구글과 페이스북이 젊은 고객들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자동차회사도 커다란 아이디어는 없습니다. 아무도요.”
실리콘밸리발 자동차업계의 Disruption이 슬슬 시작되는 듯 싶다. 아이폰이 휴대폰업계를 완전히 바꿔놓은 것처럼. 이 Disruption은 휴대폰의 그것보다는 느리게 진행되겠지만 별 것 아니라고 간과하는 자동차업체는 노키아나 블랙베리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르겠다.
참고 포스팅 : 닛산리프와 테슬라 모델S가 주도하는 실리콘밸리의 전기차 붐
스마트기기로 운동에 동기부여하기
얼마전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약간 과체중에 콜레스테롤수치가 높은 편이라고 한다. 나도 이제 마흔중반이 되어 가는 만큼 규칙적으로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의사선생님에게 받았다.
사실 아파트 헬스센터에서 일주일에 3~4일은 조금씩 운동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매일 규칙적으로 하기는 쉽지 않다. 거의 대부분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미국생활에서는 더욱 신체활동량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 보통 주차장에서 집이나 사무실정도의 거리만 걸어다닐 뿐이다. 저녁 약속이나 출장 등이 있으면 운동을 건너뛰는 경우도 많다.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문명의 이기를 사용해서 운동량을 관리해보기로 했다. 핏빗(Fitbit)이란 회사에서 나온 플렉스(Flex)라는 제품을 거금 108불(세금포함)을 들여서 샀다. 요즘 서서히 주목을 받고 있는 나이키 퓨엘밴드(Nike FuelBand)나 저본업(Jawbone UP) 비슷한 팔찌형 운동량 측정기구다. 스마트폰과 연결되는 새로운 디지털만보계라고 하면 될까.
(원래는 Misfit Shine이 좋다고 누가 추천해서 그것을 사려고 했으나 내가 간 가게에는 아직 나와있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플렉스를 구입했다. 마침 한겨레신문에 이 제품의 리뷰가 나와서 링크 : 미스핏 샤인: 팔찌로, 목걸이로도 변용 디자인 돋보여…활동량 측정은 부정확 Update: 알고 보니 미스핏 샤인이 한국업체가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자그마한 액정이 달린 만보계는 이미 많이 나와있지만 목에 걸거나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해서 불편하고 스마트폰과 연계해서 데이터를 관리하기가 불편해서 쓰지 않았다.
핏빗 플렉스는 새끼손가락반만한 작은 측정기기를 플라스틱형의 팔찌에 삽입해서 항상 몸에 착용하고 다닐 수 있게 해준다. 차고 있는 동안 내 걸음수, 이동거리, 운동시간, 소비칼로리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해준다. 그리고 내 스마트폰의 앱과 블루투스로 연결해 언제든지 원하면 앱을 통해서 현재 운동량을 확인해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스마트폰과 직접 연결해 데이터전송을 해야 저본업 같은 제품과 비교해 강점이 있는 부분이다.)
나는 워낙 거추장스러운 것을 싫어해서 초등학생이후 손목시계를 거의 찬 일이 없다. 시간은 항상 휴대폰으로 확인해왔다. 그런데 플렉스는 다행히 아주 가벼워서 손목에 차고 있다는 부담감이 들지 않는다. 방수제품이라 샤워할 때도 그대로 착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시도해보지는 않았다.)
가벼운 만큼 현재 시간을 보여주는 기능등은 없고 운동량을 측정하는데 충실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톡 치면 LED램프로 오늘의 운동목표량을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보여준다. 5개의 LED불빛중 2개가 나오면 40%를 달성한 것이다. 기능이 단순한 만큼 배터리도 오래 지탱하는 편이다. 한번 충전에 5일정도 간다.
기대이상의 동기부여효과
사실 조금 써보고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품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미 몇주동안 잘 사용하고 있다. 매일 목표량을 정해놓고 모바일앱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 덕분에 매일매일 일정량이상의 운동을 지속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서 만족하고 있다.
처음에 기본으로 설정된 하루 1만보를 달성하면 찌릿찌릿 진동하면서 불빛이 번쩍거리는데 뭔가 달성했다는 쾌감을 준다. 덕분에 착용한지 한달이 되어가는데 단 하루를 제외하고 모두 1만보목표를 채웠다. 약속이 있어서 늦게 들어온 날도 조금이라도 운동을 더 해서 1만보를 채우려서 노력하게 됐다.
얼마전 만난 한 대기업임원분도 손목에 이런 기구를 차고 있었다. 나이키 퓨얼밴드였다. 잘 쓰고 있냐고 묻자 “평생 대기업에서 목표량을 채우는 인생을 살아와서 그런지 금세 익숙해졌다. 이 팔찌를 찬 이후 매일 한걸음이라도 더 걸어 운동목표량을 채우려고 한다. 평소 가까운 거리도 택시를 타고 다니던 내가 이젠 웬만하면 걸어다니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선물받아서 착용한지 4개월동안 자신도 놀랄 정도로 더 규칙적으로 움직이게 됐다는 것이다.
걷기-달리기이외의 운동측정은 어려운 것이 단점
하지만 단점도 있다. 걷기-달리기 이외에의 활동은 잘 측정해주는 것 같지 않다. 특히 자전거를 타는 것은 거의 기록이 되지 않아 아쉬웠다. GPS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을 것 같기는 하다.
또 기대와는 달리 수면시간을 자동으로 측정해주는 기능은 없었다. 번거롭지만 취침시에 매번 앱을 통해 취침을 시작함을 입력해 줘야 한다. 귀찮기도 하고 손목에 플렉스를 착용하고 자는 것이 불편해 이 기능은 이용하지 않았다. LED가 단순히 불빛 5개로 대략적인 목표대비 운동량을 보여주는 것도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단순하게 만들어서 배터리사용량을 늘리고 무게를 줄인 것은 장점이다.
스마트폰앱만으로도 운동량을 측정 가능
꼭 비싼 착용하는 측정기기를 사지 않아도 스마트폰만으로도 운동량을 측정할 수 있는 앱도 나와있다. 스포츠트래커(Sports Tracker, 안드로이드-iOS), 무브스(Moves, iOS), 런키퍼(RunKeeper, 안드로이드-iOS) 등이 있다. 이들 앱은 스마트폰의 GPS위치측정기능을 이용해 사용자의 이동궤적까지 챙겨서 보여준다. 하지만 무거운 스마트폰을 운동할 때도 항시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앞으로 구글글래스, 삼성스마트와치 등 몸에 착용하는 방식의 스마트기기가 쏟아질 것이고 사람들은 이를 통해 건강 및 자신의 모든 생활궤적을 관리하게 될 것이다. @gemong1님이 “나를 알아서 기록하라“포스트에 쓰신 것처럼 나와 주변환경의 데이터를 자동으로 기록해주는 이런 기기와 앱이 일반화될 것이다. 가격은 갈수록 싸질 것이고 성능은 향상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빅데이터를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해 여러가지 새로운 서비스가 창조되지 않을까 싶다.
편리한 세상이긴 하지만 가면 갈수록 더욱더 스마트기기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닌지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건강관리를 위해서 이런 Wearable device 사용을 한번 고려해볼 때가 된 것 같다.
/최근 시사인 기고내용을 보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