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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스탠포드, MIT에 참 약한 우리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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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스탠포드대에 동시합격했다는 천재소녀 해프닝을 보면서 다시 한번 우리가 하버드, 스탠포드, MIT 등 미국 명문대 브랜드에 약하다는 생각을 했다.

저런 내용을 기사로 쓰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많다. 팩트체킹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도 분명히 문제다.

그런데 가만보면 우리가 너무 미국 명문대 브랜드에 유독 약하다. 일반 대중이 미국명문대에 붙은 학생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니까 언론이 쓰는 것이다.

예전에 출판사분들과 이야기하면서 안 사실인데 번역서의 경우 한국에서는 미국 명문대교수가 쓴 책이라고 해야만 잘 팔린다고 한다. 책 내용이 아무리 좋고 해외에서 화제가 된 책이라도 지명도가 떨어지는 미국대학의 교수가 쓴 책이라면 별 반응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래처럼 원저 표지에는 나오지 않는 학교 타이틀이 번역서에는 대문짝만하게 등장하고는 한다. 출판사 편집자가 학벌을 숭상하는 속물이어서가 아니다. 극심한 출판불황속에서 어떻게 해서라도 책을 한권이라도 더 팔아보고자하는 노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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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스타트업바이블의 원제는 ‘Disciplined Entrepreneurship’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잘 훈련된 창업가정신’이라고 해야 할까. 창업해서 회사를 키워가는 과정을 잘 정돈해서 가르쳐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책 표지에는 MIT라는 말이 어디에도 없는데 한국판역서에는 대문짝만하게 ‘MIT’라고 박혀서 나왔다. 저자 이름보다도 크게 추천글을 쓴 교수의 이름이 나와있는데 하버드교수다. 물론 책의 내용에는 MIT창업센터의 센터장인 빌 올렛씨가 MIT에서 경험한 내용이 많이 나와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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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책도 마찬가지다. 하버드대 교수가 쓰기는 했지만 저자 이름 아래 조그맣게 ‘HARVARD BUSINESS REVIEW PRESS’라고 출판사명이 들어있는 것을 빼면 어디에도 하버드가 강조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도 번역서의 제목은 하버드 창업가 바이블이다.

한국에서 2백만부가 넘게 팔렸다는 ‘정의란 무엇인가’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책을 쓴 마이클 샌델이 하버드대교수가 아니고 무슨 주립대 교수였다면 과연 이 책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 일이 있다. 아마 어렵지 않았을까.

Written by estima7

2015년 6월 13일 at 10:05 오후

보스턴의 스타트업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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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아시아비즈니스컨퍼런스에 초청받아 다녀왔다. 아시아의 창업분위기에 대한 패널토론에 참가.

MIT 아시아비즈니스컨퍼런스에 초청받아 다녀왔다. 아시아의 창업분위기에 대한 패널토론에 참가.

3월초 샌프란시스코와 보스턴을 일주일간 출장 다녀왔다.

나는 2009년부터 보스턴근교인 매사추세츠 월쌤(Waltham)에 위치한 라이코스CEO로 3년간 일했다. 덕분에 보스턴지역에서 3년반을 살았다. 미국 동부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런만큼 그 지역의 분위기를 잘 아는 편이다.

보스턴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혁신지대다. 보스턴은 실리콘밸리에 밀리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하버드, MIT 등명문대를 비롯해 수많은 크고 작은 대학들이 포진한 세계적인 교육도시이자 연구센터다. 전세계에서 인재들이 밀려드는 곳이다. 훌륭한 병원들이 많이 있고, 그래서 그런지 바이오메디컬기업들이 특히 많다.

그런데 이번에 가서 보니 샌프란시스코만큼은 아니지만 보스턴도 스타트업붐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참고 : 스타트업의 성지가 된 샌프란시스코)

4년만에 두번째로 참가한 이번 MIT아시아비즈니스컨퍼런스의 중심테마는 스타트업이었다. (4년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컨퍼런스전날 컨퍼런스참가 스피커들에게 제공되는 캠퍼스투어의 첫번째 행선지도 MIT창업센터였다. (4년전에도 같은 투어에 참가했는데 그때는 이곳을 들르지 않았다.) MIT에서 만난 학생들도 상당수가 졸업하고 스타트업에 참여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학교전체가 스타트업열병에 걸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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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에서 일하시는 교포 지인분을 만났다. 내가 라이코스에 있을 때 알게 된 분인데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아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라고 부탁하신 일이 있다. 그 아들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해야할지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이런저런 회사를 알아보던 중이었다. 자신이 앞으로 평생 계속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당시 만났던 그 청년은 지금은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 청년은 이제 보스턴 시내의 한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에 다닌다고 한다. Yesware라는 회사인데 최근 급성장중이다. 찾아보니 지금까지 200억정도를 투자받은 회사로 영업사원들을 위해 기존 이메일에 추가기능을 넣는 소프트웨어서비스를 만드는 회사다. 회사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요즘 아들은 아침에 눈만 뜨면 바로 자전거를 타고 회사로 일하러 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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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코스 있을때 자문을 구하던 변호사분을 만났다. 하버드-코넬을 졸업하고 오래동안 이 지역의 테크기업들 변호사로 일하신 뉴잉글랜드토박이다. 몇년전 불황일때 법대를 간 딸의 진로를 걱정했었다. 그런데 그 딸이 캠브리지에서 잘 나가는 스타트업에 인턴으로 들어가서 열심히 노력한 끝에 정직원이 됐단다. 얼마전 상장까지 한 허브스팟이란 회사다. 그리고 곧 결혼을 하는데 엔지니어인 남편과 함께 언젠가는 실리콘밸리쪽으로 가는 것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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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바로 앞인 캠브리지의 켄달스퀘어. 오른쪽 빌딩이 CIC가 입주한 곳이다.

MIT바로 앞인 캠브리지의 켄달스퀘어. 오른쪽 빌딩이 CIC가 입주한 곳이다.

MIT바로앞 켄달스퀘어는 지금 여기저기 대형빌딩 건설붐이다. 많은 글로벌 바이오메디컬기업들이 들어오고 있고 기존 기업들은 사무실을 확장하고 있다고 한다. 스타트업들도 빠르게 늘고 있다.

MIT바로 앞에 있는 CIC(캠브리지이노베이션센터)라는 곳에 가봤다. 스타트업인큐베이터인데 그 규모에 깜짝 놀랐다. 상당한 규모의 큰 빌딩인데 거의 절반정도를 쓴다고 한다. 입주한 기업수가 800개쯤이라고 한다. 공짜로 사무실을 주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입주기업들이 다 임대료를 내고 쓰는 것인데도 그렇다. 그야말로 “스타트업을 키우는 사업이 급성장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Screen Shot 2015-03-10 at 11.32.53 PM 마침 그런 제목의 기사가 CIC게시판에 붙어있길래 사진으로 찍어놨다. “The business of growing startup is growing”. CIC는 찰스강건너 보스턴시내에도 지점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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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국제협력단 단장님. 식사를 하면서 "오늘은 내가 PC에서 맥으로 바꾼 기념비적인 날"이라고 했다. ㅎㅎ 적응이 어렵다고 토로.

MIT 국제협력단 단장님. 식사를 하면서 “오늘은 내가 PC에서 맥으로 바꾼 기념비적인 날”이라고 했다. ㅎㅎ 적응이 어렵다고 토로. (사진 MIT아시아비즈니스컨퍼런스팀 촬영)

MIT아시아비즈니스컨퍼런스 전날밤에 열린 VIP디너에 갔다. 나는 MIT 국제협력단장님 옆자리에 앉게 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요즘 스타트업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니 “보스턴시내 워터프론트지역에는 스타트업이 흘러넘칩니다. 요즘엔 그곳에 들어가고 나가는 차들 때문에 길이 막혀서 몸살입니다. 난리예요. 난리..”라는 얘기를 했다. 정말 찾아보니 그렇다. 예전에 쓰레기매립장이었고 내가 있을때 조금씩 재개발되고 있었던 Seaport district이야기인데 요즘에는 켄달스퀘어에서 그쪽지역으로 스타트업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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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내가 라이코스CEO로 임명되서 보스턴에 처음 갔을때는 정말 암울했다. 실업률이 두자리수를 넘으며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을까봐 공포에 떨었다. 집값은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6년이 지난 지금 많은 것이 변했다. 샌프란과 보스턴을 보면서 진심으로 미국경제가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활기가 넘치고 도시 곳곳에 새 건물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니 마치 중국 심천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중국과 다른 점은 이곳에는 휠씬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독특한 회사들이 많다는 점일 것이다.

이번에 만난 분은 “임센터장, 그때 여기 살때 집 하나 사두었으면 정말 좋았을텐데”라고 말했다. 그만큼 부동산시장도 좋단다. 하지만 무엇보다 스타트업붐으로 인해 위에 쓴 것처럼 젊은이들에게 많은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 부럽다. 많은 건강한 스타트업의 탄생을 통해 대기업직원, 공무원, 변호사, 의사 같은 길외에 새로운 커리어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런 자생적으로 활활 타오르는 스타트업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까. 많은 연구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Written by estima7

2015년 3월 15일 at 10:11 오전

“MBA가 이끄는 회사에 다녔다면 백번은 잘렸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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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에 살 당시 근교인 플레밍햄을 지나다가 우연히 Bose본사건물을 본 일이 있다. 고급스피커로 유명한 Bose브랜드에는 익숙해있기에 “아니 저 회사가 여기 있었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과 그 이야기를 하다가 Bose는 원래 MIT출신 교수가 창업한 회사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교수가 회사의 대부분의 주식을 MIT에 기부했다는 뉴스를 접하기도 했다. 보스턴지역에 넘쳐나는 비즈니스감각을 갖춘 백인사업가일 것이라고 여기고 지나갔다.

그런데 어제, 7월12일 그 Amar G Bose교수가 향년 83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트위터를 통해 처음 접했다. 그리고 읽어본 NYT의 부고기사가 너무 좋아서 간단히 소개해 본다. 그가 인도계였다는 것을 비롯해 몇가지 의외인 점이 있었다.

-인도 독립운동가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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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한 Amar Bose. 출처 유튜브 동영상.

1929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서 자란 그는 영국지배에 저항하다가 인도에서 옥살이를 하고 미국으로 탈출한 독립운동가의 아들이다. 일찌기 기계를 다루는데 재능이 있었던 그는 13살때 용돈벌이로 라디오수리를 시작했는데 2차대전당시 어려웠던 집안살림을 돕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Bose를 창업한 계기

Bose 901 스피커시스템(출처:ebay사진)

Bose 901 스피커시스템(출처:ebay사진)

클래식음악 애호가였던 그는 50년대 MIT학생일 당시 샀던 고가의 스테레오시스템의 소리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데 실망했다. 그때부터 음향공학에 대한 관심이 싹텄다. 그는 콘서트홀에서 경험하는 소리의 80%가 사실은 벽과 천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청중에게 전달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 원리를 응용해 새로운 디자인의 스테레오스피커를 개발해냈고 64년에 멘토이자 MIT교수인 Y W Lee교수의 권유로 Bose를 창업한다. 이후 68년 그가 만들어낸 Bose 901 Direct/Reflecting 스피커시스템은 25년간 베스트셀러가 되어 Bose가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후 Bose는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카스테레오시스템 등을 내놓으며 급성장한다.

-Bose Corporation은 비공개회사

2012년 매출이 2조8천억원정도로 추정되며 직원수도 1만명에 육박하는 Bose가 상장기업이 아니라는 것에도 놀랐다. 이것은 Bose박사가 장기적인 비전을 갖는 R&D를 위해서는 기업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매분기 실적을 발표해야하는 공개기업이 되면 월스트리트의 압력에 굴복해 단기실적을 맞추는데 급급하기 쉽다.

“I would have been fired a hundred times at a company run by M.B.A.’s. But I never went into business to make money. I went into business so that I could do interesting things that hadn’t been done before.”-Dr. Bose.

“MBA가 이끄는 회사에 있었다면 백번은 잘렸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결코 돈을 벌기 위해서 비즈니스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흥미로운 것들을 해볼 수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를 시작한 겁니다.”-Dr. Bose.

-가르침에 대한 열정

그의 연구에 대한 열정 못지 않게 가르치는 것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다. 그는 56년에 MIT교수가 된 이후 45년간 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의 강의는 특히 공학뿐만 아니라 인생이야기까지 곁들인 MIT에서 소문난 명강이었던 것 같다. 동료교수와 학생의 이야기.

“He talked not only about acoustics but about philosophy, personal behavior, what is important in life. He was somebody with extraordinary standards,” Professor Oppenheim said.

“그는 음향학뿐만 아니라 철학, 개인의 자세,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대단히 훌륭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His class gave me the courage to tackle high-risk problems and equipped me with the problem-solving skills I needed to be successful in several careers. Amar Bose taught me how to think.”

“그의 수업은 높은 위험을 가진 문제를 대처할 수 있는 용기와 여러 커리어에서 성공하는데 필요한 문제해결능력을 배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아마르 보스는 ‘생각하는 방법’을 제게 가르쳐주었습니다.”

Bose교수는 엔지니어링에 대해 자세히 가르치면서도 풍부한 사례와 관련된 배경을 설명해서 큰 그림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자신의 소유주식 대부분을 MIT에 기부

2011년 그는 자신의 주식 대부분을 MIT에 기부했다. 다만 MIT는 매년 현금배당금을 받을뿐, 이 주식을 양도하거나 회사경영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Majority stock’이라고 나와있으므로 이 주식에 Voting right이 있다면 회사경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정도의 규모인 것 같다. 구체적인 기부금액은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2008년 포브스 미국부자랭킹에서 15억불의 자산가치로 321위에 올랐을 정도의 부호였으므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MIT기부금액은 조단위 가치일 것이 분명하다.

Vanu Inc 홈페이지에서 Bose박사의 아들 Vanu의 소개페이지

Vanu Inc 홈페이지에서 Bose박사의 아들 Vanu의 소개페이지

그는 억만장자였지만 소박하게 살았다. 그가 2011년 한 영국신문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이다.

 “I don’t want a second house, I have one car, and that’s enough. These things don’t give me pleasure, but thinking about great little ideas gives me real pleasure.”

“나는 별장을 갖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차 한대가 있는데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런 것들은 내게 기쁨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지만 훌륭한 아이디어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나의 진정한 즐거움입니다.”

그는 슬하에 자녀가 둘이 있는데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고 한 것 같지는 않다. 아들인 Vanu는 MIT를 공학전공으로 졸업하고 역시 아버지처럼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 Vanu Inc를 창업해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참 멋진 인생, 멋진 부고기사다. 위 내용은 대충 요약한 것이니 원문을 한번 읽어보시길.

Amar G. Bose, Acoustic Engineer and Inventor, Dies at 83 (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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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estima7

2013년 7월 13일 at 11:42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