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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코스 이야기 12] 직장내 경조사 문화
한가지 한국과 미국이 많이 다르다고 느낀 것은 직장내 경조사문화다.
한국에서는 직장인이 결혼한다고 하면 회사내의 관련부서를 돌면서 열심히 청첩장을 돌리는 것이 상례다. 보통 주말에 열리는 결혼식에 같은 부서의 사람들은 많이 참석해 축의금을 내고 축하해주는 편이다. 결혼당사자의 직속상관은 거의 반드시 참석하며 친한 직장동료들이 오지 않으면 섭섭해한다. 회사의 총무부서에서는 사장님 명의로 축하화환을 보내준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장이 주례까지 서주는 일도 드물지 않다.
동료가 아닌 회사 상사의 자녀가 결혼하는 경우에도 회사직원들이 열심히 결혼식에 참석하기도 한다. 결혼시즌이 되면 사내외에서 지나치게 많은 청첩장을 받아 부담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반면 미국에서는 직장상사는 물론 회사동료까지 거의 아무도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자신의 결혼소식을 주위에 알리기는 해도 같은 팀의 동료들도 전혀 초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교회 등에서 하는 격식을 갖춘 결혼식일수록 더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초대받지 못하는 것을 주위에서도 당연하게 여긴다. 많은 사람을 초대하는 캐주얼한 결혼식의 경우 직장동료를 초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도 그 직장동료들과 회사를 떠나 좋은 친구관계이기 때문에 초대하는 것이다. 직장동료여서 초대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결혼식을 회사에는 전혀 알리지 않고 숨기는 경우도 있었다. 라이코스에서 오래동안 근무한 데비는 역시 10년동안 같이 일한 자신의 상사 짐이 결혼식을 숨겨서 섭섭하고 화가 났었다고 내게 털어놓은 일이 있다. 짐이 일주일동안 휴가를 간다고 사라졌는데 회사밖의 지인중 누가 “그가 결혼한다”고 말해줬다는 것이다. 그래서 데비는 지역신문을 뒤져서 그의 결혼식소식을 확인했다. 그런데 일주일뒤 ‘허니문’에서 돌아온 짐은 아무 말없이 계속 시치미를 떼었다는 것이다.

유대계인 신부 도리와 결혼한 조는 유대식 결혼식을 올렸다. 그래서 랍비가 주례를 보고 후파라는 차양밑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서약이 끝나고 신랑이 보자기로 싼 유리컵을 오른발로 깬다. 바로 그 순간.
하지만 나는 회사직원의 결혼식에 초대받는 행운을 누렸다. 회사의 IT담당 매니저인 조는 자신의 결혼식에 나와 다른 몇몇 동료를 초대해줬다. 그의 신부가 유대인이었던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랍비가 주례를 서는 유대식 결혼식을 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 결혼식에는 보통 축의금은 내지 않는다. 대신 결혼할 커플이 자신들이 필요한 물품을 담은 ‘위시리스트'(Wish list)를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보낸다. 보통 아마존같은 온라인쇼핑몰의 링크로 되어 있는데 보통은 그 중에서 선착순으로 선물을 골라서 ‘웨딩기프트’로서 결혼식에 가지고 간다. 나의 경우는 책을 좋아하는 신부를 위해서 전자책리더인 ‘킨들’을 선물했었다. 하지만 조가 직장동료들을 결혼식에 초대한 것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라고 나중에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이 열렸다. 신랑, 신부가 부모님과 함께 춤을 춘다.
그리고 미국회사는 보통 결혼하는 직원에게 공식적으로 화환을 보내거나 축하금을 지급하는 경우는 없는 편이다. 라이코스도 그랬다. 하지만 일부 회사문화에 따라 축하금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장례식문화도 다르다. 한국에서는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가급적이면 회사동료의 가족장례식에 문상을 가는 문화다. 궃은 일일수록 더 챙기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직원본인이 사고로 고인이 된 경우나 고인이 된 동료의 가족을 직접적으로 아는 경우가 아니면 회사동료에 관련된 장례식에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직원가족의 부음을 알게 되면 회사에서는 과일바구니나 꽃바구니를 보내서 조의를 표시한다. HR매니저인 다이애나는 회사대표로서 장례식에 간 일도 가끔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가족의 장례식을 회사동료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주위에서 이야기를 들었더라도 본인앞에서는 일부러 모른 척해주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본인이 감추고자 하지 않는 경우에는 회사에서 꽃바구니를 보내서 조의를 표시했다. 하지만 내가 장례식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이런 문화는 경조사는 개인의 사생활 영역이라고 여기고 침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듯 싶다. 특히 자신의 가족사 등 사생활을 주위에 노출시키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이런 경우 가까운 주변 동료들에게도 결혼여부 등 자신의 사생활을 전혀 털어놓지 않는다. 주위에서는 그런 사람을 가르켜 “그는 아주 비밀스러운 사람이다(He’s very private person)”란 표현을 쓰곤 했다.
싫든좋든 이런 문화 덕분에 내가 라이코스CEO로 재직한 3년동안 조의 결혼식에 참석한 일이 내 유일한 미국에서의 직장내 경조사경험이었다. 내 생각에 라이코스는 백인중심문화의 뉴잉글랜드에 위치한 회사라 좀 보수적이고 드라이한 편이었을 것 같다. 회사마다 문화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이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5년전 나를 결혼식에 초대해주었던 조는 지금 아브람이라는 귀여운 아들을 얻어서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아들바보인 그의 모습을 가끔 접한다. 참 좋은 세상이다.)
[라이코스 이야기 11] 재택근무 문화

라이코스 사무실에서 바깥을 내다본 풍경. 가을 모습.
미국의 직장생활에서 한국과 다르다고 느낀 것중의 하나가 재택근무에 너그러운 분위기였다.
재택근무는 회사에 나오지 않고 집에서 근무하며 회사업무를 보는 것을 말한다. 우리 회사에서는 보통 ‘Work from home'(WFH)이라고 했는데 텔레커뮤팅(Telecommuting)이라고도 한다. 꼭 집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면 ‘원격근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인터넷, PC, 스마트폰, 화상회의소프트웨어 등 기술의 발전으로 어디서나 회사안에 있는 것처럼 업무를 볼 수 있게 된 최근 10년간 이런 원격근무가 미국에서는 급증추세다.
처음에는 재택근무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내 시각
한국의 웬만한 회사 관리자들은 다 그렇듯 나도 처음에는 이런 재택근무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팀관리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팀원들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일을 하고 있는지 놀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또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있으면 일에 집중할 수가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일과 가정생활이 분간할 수 없게 섞여버리지 않을까.
라이코스에 간지 얼마되지 않아서 재택근무에 대한 그런 내 부정적인 시각을 더욱 굳히게 한 일이 있었다.
재무담당임원이었던 케빈이 매주 금요일에 회사에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그는 자동차로 한시간이상 떨어진 곳에서 출퇴근했다. 출퇴근시간의 살인적인 교통체증을 고려하면 하루에 3시간까지 길에서 소비할 수 있는 경우였다. 그래서 그는 예전 사장에게 매주 금요일은 재택근무를 하겠다고 허락을 받아놨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집에서 일할때 주위의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에 가장 생산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좀 뜨악했다. 당시 회사는 흑자전환을 위해서 강도 높은 비용절감, 각 부문 사업 재진단 등 할 일이 많았다. 그런데 핵심업무를 맡고 있는 임원이 매주 4일밖에 회사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꺼림칙했다. 자진해서 철회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재택근무는 자신의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말하는 그에게 계속 금요일 재택근무를 허용해줘야할지 고민이 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알고 보니 재무팀의 직원들은 케빈이 금요일에 거의 일을 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왜냐하면 그가 금요일에는 별도 미팅(컨퍼런스콜)도 잡지 않고 이메일에 답도 잘 안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일부 직원들은 골프애호가이며 케이프콧의 골프코스내에 위치한 집에서 사는 그가 매주 금요일에는 골프를 즐길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결국 그는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떠났다.
또 라이코스는 당시 캘리포니아와 뉴저지에 재택근무를 하는 영업담당 직원을 1명씩 채용하고 있었다. 매출확대를 위해 실험적으로 채용해 본 것이었지만 역시 이렇다할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들도 몇달뒤 회사를 떠났다.
이렇게 나는 “집에서 무슨 일을 한다는거야?”라는 재택근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미국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보니 필요할 때 재택근무를 하는 것은 아주 일상적인 미국의 직장문화였다. (물론 모든 미국 회사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렇다고 할 수 있겠겠다.) 재택근무에 대한 내 부정적인 시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재택근무의 필요성에 대해 이해하게 되다
내게 직접 보고하는 매니저들중에서도 “의사와 약속이 있다”, “베이비시터가 오지 못해서 애들을 대신 봐줘야 한다”, “집에 고장난 곳을 고치러 수리공이 오기로 되어 있다. 그래서 집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등등 다양한 이유로 오늘은 집에서 근무하겠다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의 직장 같으면 나부터도 “집에서 일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설령 개인 용무가 생겨서 반나절이상을 회사에 못가게되면 개인반차를 냈을 것이다. 그런 재택근무 문화가 없는 많은 한국의 직장상사들은 부하들이 그런 요구를 하면 “당신 제 정신이냐”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천재지변이 나도 웬만하면 직장에 출근을 해서 상사에게 눈도장을 찍는 것이 한국직장의 미덕이 아니던가. 나도 그렇게 배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개인용무를 위해 휴가를 쓰지 않고 재택근무를 요청하는 이런 일을 불편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미국인들의 생활을 이해하게 되니 그들이 재택근무를 해야하는 이유가 납득이 되기 시작했다. 일단 직장주변의 아무 병원이나 쉽게 갈 수 있는 한국과 달리 의료보험제도가 복잡한 미국에서는 몸이 아플때 자신이 지정한 집근처의 의사에게만 가야하는 경우가 많다. 또 어린 아이들을 혼자 놔두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으며 차가 없으면 꼼짝도 할 수 없는 미국의 상황에서 부부가 교대로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일이 잦다. 더구나 웬만한 미국의 가정은 2명이상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부부가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을 통학시키느라 분주한 경우가 많다. 아파트같은 공동주택이 아닌 단독주택에 사는 경우가 많은 미국인들의 경우 집에 생기는 잦은 하자를 직접 처리하고 수선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가까이 모시고 사는 연로한 부모님을 수발하기 위해서 재택근무를 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면서 나는 재택근무에 대해서 너그럽게 변했다. 주어진 일을 기한안에 처리하고 집에서도 바로바로 이메일이나 전화에 응답하기만 한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재택근무 허용은 중요한 복지혜택중 하나”
더구나 나와 같이 일한 HR매니저 존과 다이애나는 재택근무에 대해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대기업과 비교해 고액의 연봉을 줄 수 없는 우리같은 회사는 필요한 경우에 재택근무 같은 유연한 근무시간제도를 제시하는 것이 좋은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재택근무허용은 직원에 대한 중요한 복지혜택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채용인터뷰를 진행하다보면 후보자가 회사가 재택근무를 허용하는 분위기인지 물어보는 경우가 있었고 그것이 입사를 결심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직하겠다고 알려온 엔지니어중에 새로 일할 회사가 재택근무를 완전히 허용하기 때문에 옮긴다고 이야기한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소프트웨어엔지니어 구인난이 심각한 미국에서는 사는 지역에 관계없이 실력만 있으면 무조건 채용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리고 재택근무의 장점으로 꼽은 것이 집에서 일하는 것이 생산성이 더 높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잦은 전화나 동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일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독주택에 사는 많은 미국인들은 집에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오피스공간(Home office-일종의 서재같은 곳)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자동차기름값이 해마다 치솟는 상황에서 재택근무는 기름값을 절약하고 친환경적인 새로운 시대의 근무형태라는 것이다. 부정하기 어려웠다.
재택근무는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회사밖 주위에도 재택근무를 하는 분들이 많았다. 이웃에 사는 한 한국 선배는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미국대기업으로 이직했다. 그런데 그 회사는 보스턴에 지사가 없는 관계로 선배는 100%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처음에는 편하고 좋다고 하던 선배는 1년여가 지난 뒤에 그 회사를 떠났다. 하루종일 집에서 일을 하는 것이 답답하기도 하고, 대화를 같이할 동료가 없으니 뭔가 소외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게다가 승진과 커리어 관리에 있어서도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서 걱정하던 선배는 오히려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며 재택근무를 잘 허용하지 않는 엄격한 분위기의 미국회사로 옮겨갔다. 꼭 재택근무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그때 느꼈다.
반면 나는 미국에서도 규칙적으로 일찍 사무실에 나가고 적당한 시간에 너무 늦지 않게 퇴근했다. 집이 20분거리로 가깝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기도 했다. 사장이 항상 회사에 같이 있다는 존재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장은 언제나 회사내의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더 익숙하고 능률이 높았다. 모두 자신에게 맞는 근무형태를 찾아서 실천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재택근무 문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
그렇다면 직장에서 재택근무를 자리잡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무엇보다도 그에 걸맞는 문화가 먼저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첫번째로 회사가 직원을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직원들이 일을 성실히 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재택근무를 요청하는 경우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다고 믿어주고 직원들도 누가 보지 않더라도 성실히 일하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
두번째로 성과로 직원을 평가하는 문화가 있어야 한다. 아침에 일찍 나오고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고 남아있는 근태로 직원을 평가하는 회사라면 재택근무에 대해 너그럽지 않을 것이 당연하다. 반면 어디에서, 하루 몇시간동안 일을 하느냐와 상관없이 주어진 일을 얼마나 잘 완수하는지 성과위주로 평가하는 회사라면 재택근무자체에 대해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번째로 직원들이 해야하는 일과 목표 등이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어야 한다. 회사의 비전과 목표가 확실하지 않고 직원의 평가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회사라면 재택근무를 악용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디서나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회사의 IT업무시스템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쓰기 편한 이메일, 메신저, 전자결재시스템, 화상회의소프트웨어 등이 준비되어 있고 보안시스템도 너무 복잡하지 않아야 회사밖에서도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재택근무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미국에서도 재택근무를 전면적으로 허용해야 하느냐에 대해 아직도 말이 많다. 예전에 마리사 마이어 야후CEO가 전면적으로 사내에서 재택근무를 금지한 것도 미국전역에서 큰 논란을 불렀다. 특히 일과 육아, 가사를 동시에 가져가야 하는 경우가 많은 여성의 입장에서 재택근무전면금지는 가혹한 조치라는 비난이 뒤따랐다.
마지막으로 이런 재택근무문화때문에 미국회사가 부럽다고 하지 말자.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가차없이 해고당할 수 있는 곳이 미국직장문화다. 미국에서도 승진에 욕심이 있는 야망있는 직장인의 경우 재택근무여부에 관계없이 어디서나 밤낮없이 일하고 한밤중이나 주말에도 이메일에 답장을 보낸다.
야후CEO 마리사 마이어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성과리뷰에서 목표에 미치지 못한 직원 5백명정도를 해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리 회사 좋은 회사라고 그런 복지혜택에 취해서 일을 게을리 하다가는 어느날 갑자기 일자리를 잃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곳이 미국이다.
[라이코스 이야기 10] 승진과 수시 연봉인상

라이코스의 한 팀이 프로덕트 개발과정에서 토론하는 모습.
2009년 라이코스에 CEO로 부임했을 당시 그 전년도에 있었던 리먼브러더스은행 붕괴여파로 미국경제는 완전히 얼어붙은 상태였다. 더구나 적자행진을 거듭하던 라이코스는 직원 수십명을 잘라내는 구조조정을 진행중이었다. 그래서 직원들의 연봉도 전원 동결하기로 했다. 당시 분위기가 너무 암울했던지라 누구도 임금동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저 잘리지 않고 회사에 다닐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하는 분위기였다고 할까.
어쨌든 매정하기는 했지만 인건비절감을 위해서 올해는 전혀 임금인상을 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을 만났다.
6월쯤이었나. 한 직원을 승진시켜주게 되었다. 직함이 그냥 ‘엔지니어’였는데 ‘시니어 엔지니어’로 올려주기로 했다. (라이코스는 관리자커리어로 가지 않고 계속 코딩을 하는 엔지니어의 경우는 SW Engineer/Senior SW Engineer/Principal SW Engineer의 타이틀을 부여했다.)
HR매니저인 존은 본인에게 예전부터 약속했던 승진이기 때문에 꼭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이 계속 약속했던 승진을 요구하고 있고 안해주면 회사를 나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 정도 타이틀을 바꿔주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허락했다. (미국에서는 서로 이름만 부르지 직함을 부르는 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직함을 바뀌어도 본인과 주위 사람 몇몇 외에는 거의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존의 설명에 따르면) 승진과 함께 연봉인상도 같이 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전사적으로 연봉동결을 선언했는데 그 친구의 연봉만을 꼭 올려줘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연말에 상황을 봐서 성과를 평가하고 전직원의 연봉을 인상해줄 때 같이 하면 안되냐고 말했다. 근무연수와 직급에 따라 연봉테이블이 정해져있는 호봉제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일단은 승진만 시켜줘도 본인에게는 충분히 고마운 일이 아닐까 싶었다. 연봉조정과 맞물리는 연말승진인사가 아닌 경우 한국에서 팀원하다가 팀장이 됐다고 바로 연봉도 따라 올려준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존은 한사코 안된다는 것 아닌가. 타이틀을 바꿔주면 거기에 맞춰서 연봉도 바로 올려줘야한다는 것이었다. 단 1천불이라도 올려줘야 하고 미국에서 그것은 상식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직원입장에서도 당연히 승진과 함께 연봉인상도 기대한다는 것이다.
옥신각신하다가 결국은 내가 졌다. 전체 연봉동결은 했지만 이번 건만은 예외상황으로 인정하고 약간 연봉을 인상해줬다.
한번은 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직원에게 일을 조금 더 많이 맡기게 되었다. 디자이너로서 자기가 맡은 일만 하던 한 평직원의 능력을 인정해 다른 부서의 디자이너까지 같이 관리하게 한 것이다. 그러자 이번에도 HR매니저는 “그 직원의 책임과 일이 늘어나게 되었으므로 어느 정도 연봉인상을 해줘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도 “연말에 가서 성과평가할때 한꺼번에 같이 적용해주면 안되는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존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일이 늘어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 연봉에 반영해주고 성과에 대한 평가는 나중에 따로 적용하는 것이 공평하다”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도 결국은 그렇게 했다.
나중에 지나고 보니 승진이나 업무범위 확대에 대해서 즉각 연봉에 반영해주는 것은 미국직장에서 일반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사자가 바로 반발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합리적인 것 같았다. 승진이나 업무범위확대는 결국 일을 더 시키고 책임을 늘린다는 뜻인데 바로 그에 맞게 보상도 늘려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후에도 연말이 아니라 연중내내 수시로 연봉을 조정할 일이 있었다. 어떤 직원은 다른 곳에서 더 좋은 오퍼를 받았다며 연봉인상을 안해주면 회사를 떠나겠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괘씸하게 여겨질 때도 있었지만 그 친구가 나가고 새로 직원을 뽑고 적응시키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해보면 맞춰주는 것이 합리적일 때가 많았다.
아니면 어떤 직원의 담당매니저나 HR매니저가 그 직원의 연봉수준이 시장의 평균수준에 비해 너무 낮다며 미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회사를 떠날 수도 있다고 선제적인 연봉인상을 제안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모든 요구를 다 수용한 것은 아니지만 꽤 자주 연봉조정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런 선제적인 연봉인상이나 수시연봉조정은 취업시장에서 몸값이 높은 엔지니어의 경우에만 주로 적용이 됐다. 쉽게 대체가 가능한 경영지원, 마케팅 등의 직원들은 이런 요구를 하는 법이 없었다. 미국경제가 회복되면서 엔지니어에 대한 스카우트 전쟁이 더욱 치열해졌고 능력있는 엔지니어들은 충분히 몸값을 올려서 이직이 가능해졌기 때문인 것이다. 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필요할 때마다의 연봉인상은 최소한의 조치였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헤드헌터의 전화가 오고 링크드인을 통해 각종 제안이 오는 좋은 엔지니어들에게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할 여지를 주면 안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일을 겪으면서 미국직장에서는 구성원에게 승진과 책임의 확대를 요구할 때는 반드시 보상도 그에 맞춰서 해줘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핵심인재들의 보상은 반드시 시장수준(market rate)에 맞춰서 해줘야 나중에 탈이 없다는 것도…
[라이코스 이야기 8] 해고문화
라이코스에 항상 명랑하고 친절하며 동료들의 대소사를 잘 챙겨주는 인간미 넘치는 여성직원이 있었다. ‘줄리’라고 해두자. 줄리는 자신이 직접 만든 쿠키나 케이크를 회사로 가지고 와서 동료들에게 나눠준다든지, 동료직원의 생일을 기억해뒀다가 꼭 챙겨준다든지, 점심시간에 자신이 주도해서 게임시간을 마련하는 일 등을 좋아하는 일종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당연히 직원들사이에 평판도 좋고 인기있는 사람이었다. 내 생일도 세심하게 챙겨줘서 감동했다. 회사분위기를 살리는데 이런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은가.
그런데 하루는 HR매니저인 존이 심각한 얼굴로 와서 미팅을 청했다. 그는 “줄리에게 문제가 생겼다. 당장 해고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다. 일단 줄리가 무슨 문제를 일으킬만한 사람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사 무슨 문제가 있더라도 어떻게 그렇게 매몰차게 당장 회사에서 내쫓을 수가 있는가.
자초지종을 확인해 봤다. 줄리는 직원들의 급여를 처리하는 페이롤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세금, 의료보험료 등을 떼고 직원들의 급여를 계산해 매달 입금하는 일을 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급여는 일반 직원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해 원래 받아야하는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가져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담당 팀장이 발견했고 존에게 알려왔다는 것이다. 존은 사내변호사인 마크에게 그 사실을 의논했는데 회사가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는 당사자를 바로 해고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마크의 의견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줄리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 본인에게 알리고 한번 기회를 줘야하지 않냐고 이야기했다. 내가 보기에 아주 큰 거액을 더 가져간 것도 아니었다. 한번에 한 백불이 될까.
하지만 존도 단호했다. 바로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은 줄리와 ‘친구’라고 할 정도로 가깝지만 일은 일이라는 것이다. 안그러면 나중에 회사가 큰 피해를 입는다는 얘기였다. 줄리와 만나서 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정말 (고의적으로) 그랬다는 것이 인정되면 바로 해고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불과 몇시간뒤 존과의 미팅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줄리는 총무담당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자에 짐을 꾸려 바로 회사를 떠났다. 약 5년동안 라이코스에 재직했던 그녀는 회사에서 아주 평판이 좋은 직원이었지만 동료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이 사건에서 내가 놀란 것은 너무나 신속한 해고절차와 그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본인,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고 비교적 냉정하고 무관심한 직원들의 태도였다. 소위 ‘정’으로 묶인 한국의 직장문화에서는 이런 경우 적어도 며칠간은 시간을 두고 의사결정을 하거나 주위 동료들이 구명운동을 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해고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해고가 결정되는 순간 전산담당직원에게 연락해 해고되는 직원의 회사메일계정부터 정지시킨다. 법적으로 그 직원의 회사메일계정은 회사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해고되는 당사자도 담당 팀장과 배석한 HR담당자에게 그 사실을 통고받고는 속으로는 화가 나겠지만 크게 감정을 노출하지 않고 짐을 싸서 바로 회사를 떠난다.

영화 Up in the air에서의 조지 클루니
보통은 직원들의 고충을 잘 들어주는 HR매니저도 유사시에는 이처럼 전광석화처럼 해고절차를 진행한다. 존은 예전 직장에서 마치 영화 업인디에어에 나오는 해고전문가 조지 클루니처럼 해고를 많이 해야하는 일을 담당했었다고 한다. 아무리 해도 개선이 되지 않는 문제직원을 식별해내 담당매니저와 함께 의논을 하고, 해당직원에게 시한부 경고를 주고, 그래도 변화가 없으면 해고절차에 들어가는 식이다. 사람이 좋아보이다가도 유사시에는 아주 단호하고 냉정하게 해고당사자에게 해고사실을 통고한다. 그는 해고를 통고하는 면담자체를 힘들어하는 담당매니저를 도와서 일을 처리해준다.
공식적으로 미국에는 법적으로 회사가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하지만 회사규정에 따라 ‘세버런스 패키지(Severance package)‘라는 일종의 위로금이 해고당사자에게 지급된다. (근속 기간에 따라 적립해두는 퇴직금이 아니기 때문에 이직 등의 이유로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나는 경우는 이 세버런스를 받지 못한다.) 대기업들은 대개 근속연수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세버런스를 지급한다는 사내규정이 있다. 하지만 작은 회사들이나 그리 너그럽지 않는 규정을 가지고 있는 회사의 경우는 세버런스를 아예 지급하지 않거나 겨우 2주치~한달치 봉급정도를 주기도 한다.
세버런스는 저축을 거의 하지 못하는 미국직장인들에게 다음 직장을 잡을 때까지 생활비로 쓰라는 의미가 크다. 회사와 협상(보통은 HR매니저와 담판)을 통해서 의료보험연장이나 스톡옵션 보전 등 보다 좋은 조건의 세버런스를 챙기는 경우도 있다. 회사는 세버런스를 주면서 해고되는 직원이 각서에 서명하게 한다. 이 돈을 받는 대신 회사에 소송을 걸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소송을 걸면 받은 돈을 다시 돌려줘야 한다.
회사를 떠날바에야 제발로 나가는 것보다 해고절차를 밟아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경우도 있다. 자기가 자진해서 그만두면 한푼도 받을 수 없는데 반해 해고가 되면 세버런스도 받을 수 있고 주정부에서 제공하는 실직자수당도 받을수 있는 자격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회사가 직원을 쉽게 해고할 수 있다. 미국 노동법에는 ‘At-will employment’라고 나와 있는데 회사는 특별한 이유없이도 언제든지 직원을 해고할 수 있다는 계약관계를 말하는 용어다. 당사자가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았더라도 회사의 경영사정으로 부서 하나를 다 날려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다만 나이, 성별, 인종 등에 따라 차별해서 부당하게 해고했다가는 큰일이 날 수 있다. 꺼꾸로 부당해고라고 회사가 소송당해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굉장히 조심을 한다.
줄리 사건이후 나는 이런 미국의 해고문화에 익숙해졌다. 떠나는 사람도 안에 남는 사람들도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이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조직문화에 균열을 일으키거나 업무에 적합하지 않은 직원의 경우는 HR매니저가 담당 매니저 등 여러 직원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본인면담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한다. 보통 한달정도의 시간을 준다.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내게 와서 해고가 필요하다고 설명하곤 했다. 망설이는 내게 존은 “(그 직원이) 적합하지 않은 업무에 남아있는 것은 본인에게도 불행이고 팀웍에도 큰 해가 된다”고 설득하곤 했다. 문제직원 때문에 다른 더 능력있는 직원이 회사를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리더십에 문제가 있어 팀원들의 원성을 사던 한 매니저의 경우는 해고가 진행되고 나서 팀분위기가 살아나기도 했다.
또 해고가 되서 회사를 떠난 직원들의 경우 오래지 않아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엔지니어들의 경우는 쉽게 좋은 직장을 잡았다. 워낙 좋은 회사들이 많고 새로운 스타트업이 계속 태어나는 보스턴지역의 특성 덕분인 것 같았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다고 해야 할까. 정말 부러운 부분이었다. 링크드인으로 해고된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확인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한 경우가 많았다.
일견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이런 미국의 해고문화는 큰 국토에 개인주의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미국이라는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자기가 사는 교외의 집과 회사사무실만을 자동차로 챗바퀴 돌 듯 하는 미국인들은 해고된 직장동료를 평생 다시는 볼 일이 없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저녁에 따로 회식문화도 없고, 동문회 같은 것도 없는 편이기 때문에 동료간에 끈끈한 정이 쌓일 틈이 없다. 일에서 ‘감정’이 분리되어 있다. 다시 말하지만 ‘드라이’한 문화다. 미국의 해고문화는 그 드라이한 직장문화의 한 단면이다.
우리와는 정서가 다르다. 술먹고 푼다는 것은 없다.
[라이코스 이야기 7] 컨퍼런스콜 문화
좁은 국토를 가진 나라에 사는 탓인가. 우리 한국인은 웬만하면 얼굴을 맞대고 일을 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회의가 있으면 무조건 모두 하나의 방에 모여서 서로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하는데 익숙하다. 이메일이나 전화로 소통하는 것보다 웬만하면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선호한다.
을위치에 있는 회사가 갑회사에 뭔가 제안을 하려면 아무리 멀어도 직접 가서 얼굴을 맞대고 미팅을 해야한다. 중요한 계약을 놓고 상대방에게 “전화로 회의하자”고 하는 것은 실례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봐야 안심이 되는 편이다. 식사나 술 한잔을 통해 더욱더 친밀감을 쌓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런데 직접 경험해본 미국의 비즈니스문화는 달랐다. 얼굴 안보고 전화로만 회의를 해도 전혀 문제가 안된다.

라이코스의 회의실중 하나
처음 라이코스에 가서 경험한 일이다. 세일즈팀의 콜린과 이야기하는데 “곧 미팅에 들어간다”고 한다. 누구와 만나냐고 했다. 야후란다. 아니 우리회사의 중요거래처중 하나인 야후사람이 캘리포니아에서 보스턴까지 출장을 왔나? 그런데 왜 이 친구는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지? 그런 의문이 순간 꼬리를 문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야후사람이 우리 사무실을 방문한 것이 아니고 전화로 그쪽과 컨퍼런스콜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외부사람들과 하는 웬만한 회의는 전화로 하는 컨퍼런스콜이다 보니 그냥 ‘미팅’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사내직원들끼리 하는 회의를 빼고 외부쪽과 하는 대부분의 회의는 컨퍼런스콜이었다.
왜 그럴까. 일단 국토가 광활하고 지역에 따라 시차가 존재하는 미국에서는 직접 얼굴을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뉴욕같은 대도시에 위치한 회사들을 제외하고 웬만한 큰 미국회사가 모든 거래처를 한두시간 이내에 직접 운전하고 가서 만날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예를 들어 라이코스의 가장 중요한 거래처인 야후와 구글은 모두 서부 실리콘밸리에 있다. 비행기로 보스턴에서 6시간반을 가야하며 시차도 3시간이나 난다. 쉽게 갈 수 없는 곳이다. 야후와 구글의 라이코스 담당자는 일년에 한번정도 보스턴에 들러서 보스턴지역의 파트너들과 같이 식사를 하는 시간을 갖곤 했다. 그 정도다.
그렇다고 비즈니스상대방에게 전화를 쉽게 걸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는 서로 웬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서는 다짜고짜 상대방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거의 없다.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기 전에 미리 이메일로 “몇날 몇시에 무슨 용건으로 전화를 걸어도 되겠느냐”고 확인하는 것이 매너다. 다른 시간대에 있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다.
미국에는 본토에 동부, 중부, 마운틴, 서부시간대 등 4개 시간대가 있고 그밖에도 알라스카시간, 하와이시간 등 총 9개의 다른 시간대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에 근무하는 사람이 무심코 오후 4시에 보스턴의 비즈니스상대방에게 전화를 건다고 해보자. 보스턴은 이미 저녁 7시다. 그는 귀가해서 가족과 함께 식사하고 있는 상대방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무례를 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주 위급한 경우가 아니면 이렇게 하면 안된다. 페이스북이 유달리 미국에서 인기를 끈 이유도 서로 다른 시간대에 흩어져 사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서로 안부를 전하기가 쉬워서인 까닭도 있다.
어쨌든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회의시간이 잡히면 대개는 캘린더(일정)관리 소프트웨어로 참석자들에게 초대메일(인바이트메일)을 보내서 참석자명단과 컨퍼런스콜 전화번호를 공유한다. 메일을 받은 사람은 참석(Attend)한다고 확인 버튼을 눌러주면 된다.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이렇게 캘린더로 서로 일정을 공유한다. 이렇게 해주면 자동으로 스마트폰 등의 캘린더에도 서로 싱크되기 때문에 편리하다.
처음 들어보는 회사라도 지인을 통해 이메일로 소개를 받으면 일단 관심을 갖고 이메일로 대화를 시작한다. 어느 정도 서로 목적이 파악이 되면 컨퍼런스콜 시간을 잡은 다음, 전화로 회의를 해서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서로 협업할 거리가 있으면 다시 이메일이나 추가 컨퍼런스콜로 일을 진행한다. 계약서도 이메일로 주고 받으며 수정하다가 확정이 되면 PDF파일로 만들어 교환한다.
계약서를 인쇄해서 사인한 다음 다시 스캔해서 보내면 끝인 경우가 많다. (인감도장, 막도장을 찍는다든지 하는 불필요한 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아주 중요한 계약이 아니면 계약시작부터 종료까지 상대회사 담당자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않는 일도 흔하다. 회사의 신용도는 신용평가회사의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해서 확인한다. (보통 D&B 같은 신용평가회사의 데이터를 확인한다. 물론 이 데이터베이스에서 신용도가 낮은 것으로 나오면 거래하지 않는다.)
이처럼 전화통화로만 일을 하다가 실제로 상대방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업계컨퍼런스다. 일년에 한번씩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라스베가스 같은 대도시에서 열리는 CES, 애드텍 같은 업계컨퍼런스는 업계사람들을 실제로 만나고 식사라도 한번 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다. 주로 사업개발이나 영업팀 사람들이 가는 편이다. 그래서 이런 컨퍼런스에 갈때마다 미리 ‘진짜’ 미팅약속을 빼곡히 잡아두고 떠난다. 이런 자리에서 진짜 중요한 계약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처럼 미국의 직장문화는 ‘드라이’하다. 반면 실용적이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미팅 한번하려고 몇시간을 길에서 버리는 낭비가 없다. 심지어는 한 1시간이나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회사도 컨퍼런스콜로 미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얼굴봐야 할 일도 아닌데 뭐하러 가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업을 담당하는 사람의 얼굴보다는 상대방회사의 제품이 주는 가치(Value)를 보고 결정을 내리는 편이다. 드라이하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이런 문화가 편해졌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고백. 나는 사실 이런 컨퍼런스콜을 처음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솔직히 영어가 딸리기 때문이었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는 회의에서도 100% 알아듣고 자유롭게 내 의견을 피력하기가 힘든데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으로서 전화로 회의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내 나라말로 이야기를 하지 않을때는 잠깐만 딴 생각을 해도 중요한 부분을 놓치기 쉽다. 더구나 통화품질이 좋지 않을때는 더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상대방의 얼굴표정을 보면서 대화의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 좋은데 음성으로만 하는 콘퍼런스콜에서는 그것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이런 컨퍼런스콜이 곤혹스러웠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역시 쉽지 않다. 그래서 가능하면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스카이프나 페이스타임을 이용해서 회의를 하자고 유도하는 편이다.
(외국회사가) 한국회사와 일을 할때면 이처럼 언어의 장벽 때문에 컨퍼런스콜을 기피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하지만 이메일을 끝도 없이 주고 받는 것보다 컨퍼런스콜을 한번 하면 단번에 일을 진행시킬 수 있다. 알아듣기가 어려울 때는 상대방에게 천천히 아니면 반복해서 말해달라고 주문하면 된다. 글로벌비즈니스에 관심이 있다면 컨퍼런스콜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것이 좋다.
사족 하나. 미국회사라도 다 이런 원격 회의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문화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컨퍼런스콜을 싫어해서 보고를 들을 일이 있으면 무조건 담당자를 애플본사가 있는 쿠퍼티노로 오라고 해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 위의 라이코스의 경우 컨퍼런스콜을 많이 하는 것으로 쓰기는 했지만 스타트업의 투자피칭이나 중요한 계약을 따내기 위한 미팅, 즉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미팅은 가급적이면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는 것이 낫다. 특히 우리 같은 한국회사가 외국회사나 투자자를 설득해야 할 경우에는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것이 미팅을 성공시킬 확률이 휠씬 더 높을 것이다.
[라이코스 이야기 6] 직원면접
라이코스 이야기를 쓰겠다고 선언하고 5편까지만 쓰고 중단한지 5개월이 됐다. 예전에 스토리볼에 썼던 글을 더 잘 가다듬어 써보겠다고 하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안되겠다. 그냥 그 글을 블로그에 그대로 옮겨놓는다고 생각하고 빨리 마무리해야겠다. 이번에는 직원면접 이야기다. 예전에 썼던 내용인데 또 재탕한다.
*****
2009년초 라이코스에 CEO로 간지 얼마되지 않아 새로운 직원을 뽑아야 할 일이 생겼다. 나는 당시 말단 직원을 뽑더라도 최종면접은 CEO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직원이 수천~수백명도 아니고 80명정도의 회사였으니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마음에 걸렸던 것은 한국에서 온지 얼마되지 않은, 영어도 어눌한 CEO가 인터뷰를 할 경우 오히려 입사지원자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만약 회사의 다른 점은 다 마음에 드는데 CEO가 별로라서 안오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돌이켜보면 참 소심한 생각이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느꼈다.
그래도 (CEO로서의 책임감에) 새로 뽑기로 한 직원은 마지막으로 내가 한번 만나는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로 충원하는 직원은 보통 HR매니저의 도움을 받아 담당매니저와 같이 일할 팀원들이 인터뷰를 해서 뽑는다. 채용이 거의 확정된 마지막 단계에서 내가 가볍게 만나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HR매니저인 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오히려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예전 CEO들은 중요 포지션을 뽑는 경우가 아니면 직접 면접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면접때 뭘 질문할 작정이냐고 물어본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문화적 차이를 이해못하고 직무와 불필요한 질문을 면접당사자에게 하는데 그건 위험하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차별혐의로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 아니 날 뭘로 보고… 뭘 그렇게 과민반응을 하나 싶었다.
그런데 몇시간 있다가 존은 정말 걱정이 됐는지 “면접시 물어봐서는 안될 것”이 적힌 한 장의 메모를 내게 줬다. “DON’T ASK”라고 그 메모에 적힌 해서는 안될 질문들은 내 예상이상으로 범위가 넓었다. 대충 다음과 같다.
- 당신은 Miss/Ms./Mrs./Mr. 어디에 해당하나요?
- 독신/기혼/이혼자인가요?
- 자녀가 있나요? 있다면 몇살인가요?
- 앞으로 자녀를 가질 계획이 있나요?
- 누군가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요?
- 생년월일은 어떻게 되나요?
- 고교나 대학의 졸업연도가 어떻게 되나요?
- 체포된 일이 있는지요?
- 미국시민인가요? 원래 어디 출신인가요?
- 당신의 영어 액센트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요?
- 군대 다녀왔나요?
-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지 모두 알려주세요.
- 어떤 휴일을 쇠는가요? (각 종교나 민족의 문화에 따른 휴일을 쇠는지 물어보는 것)
- 복지수당을 받아본 일이 있나요?
- 노조원이었던 경험이 있나요?
- 예전에 아팠거나 부상을 당했던 경험이 있나요?

존이 준 리스트를 기억해두고자 그때 바로 사진까지 찍어두었다.
이 질문리스트를 읽고 사실 깜짝 놀랐다. 결혼여부, 자녀유무나 어느 나라-지역 출신인가, 학교졸업연도 등은 인터뷰를 하면서 상황에 따라 물어볼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아무 생각없이 물어볼 수 있는 것들을 물어보면 안된다니 놀랐다.
존의 설명은 “뽑고자 하는 포지션의 업무와 관련된 질문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최소한 “미국시민이냐”정도는 물어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법적으로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느냐”고 돌려서 직무적합성과 연결해서 물어보면 되지 단도직입적으로 국적 등을 물어보면 안된다는 것이다.
존의 조언을 명심하고 잠재 후보자인 한 백인엔지니어와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내가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결국 그 사람은 라이코스에 입사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심한 나는 그뒤부터는 내게 직접 보고하는 포지션의 직원을 뽑는 경우가 아니면 각 담당매니저들이 알아서 뽑도록 했다. 대신 입사가 확정된 직원은 따로 점심을 같이 하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중에 보니 미국사람들도 경우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밥먹으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보면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불행한 결혼생활, 아이들 문제 등등을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놓는 사람도 많았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신상은 절대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가까운 동료에게도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He (or she) is a very private person”이라며 주위 사람들이 가끔 결혼여부 등 개인신상을 궁금해하긴 하지만 그 이상 나가는 법은 없었다.
심지어 모 임원은 늦게 결혼을 했는데 회사전체는 물론 자기 부서부하들에게까지 전혀 알리지 않은 일도 있었다. 나중에 지역 신문의 웨딩란에서 결혼소식을 발견하고 일부 부하들이 섭섭해했지만 그뿐이었다. 어쨌든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니 이처럼 남의 사생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일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일만 하고 개인적인 시간은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 미국의 보통 직장 풍경이다.
어쨌든 직원채용과정에서 나중에 차별로 느껴질만한 질문은 절대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존에게서 내가 배운 교훈이다. 이후로 항상 명심하고 조심하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인터뷰를 하다보니 업무와 관련된 그 사람의 능력만을 평가하게 되는 장점이 있었다.
나이가 많아서, 딸린 식구가 많아서, 특정 인종이 아니라고, 영어발음이 이상하다고, 이혼했다고 등등의 이유로 능력은 충분히 있는데 채용과정에서 떨어진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다양한 물고기가 사는 기업생태계의 중요성
나는 2006년부터 3년간 다음커뮤니케이션을 다닐때 임원으로서 여러가지 다양한 일을 맡았었다. 서비스지원본부, 서비스혁신본부, DKO, 대외협력본부, 글로벌센터 등 짧은 기간동안 다양한 일을 했다. 그러면서 많게는 150명쯤 있는 본부의 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라이코스CEO로 발령받아 미국 보스턴으로 떠났다.
다음시절 내가 맡았던 분야들은 처음에는 마케팅부터 영화, 금융, 미즈넷 등 미디어정보섹션쪽, 로그인, 빌링, 회원정보 등 인프라, 고객지원, 사업제휴, 대외홍보, 법무까지 정말 다양했다. 그야말로 포털회사에서 일하는 거의 모든 직군의 사람들과 같이 했던 느낌이다. 모두 20대와 30대중반의 젊은 직원들이었다. 그런데 요즘 그때 같이 일하던 본부원들을 테헤란로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일이 있다. 지난 9년간 다음이 어려가지 곡절을 겪으면서 그때의 동료들이 많이 회사를 떠났다.
그런데 요즘 느끼는 것이 그들중 쿠팡이나 카카오(다음과 합병전에 미리 가있었다는 뜻이다) 같은 회사에 가있는 친구들이 많다. 이들은 모두 밝은 표정으로 나에게 인사한다. 예전에 다음에서 같이 일할 때 주니어였던 친구들도 이제는 시니어로서 팀장이나 프로젝트리더로서 일을 하고 있다. 얼굴을 보니 일을 재미있게 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요즘에는 이들이 배달의 민족, 쏘카 등 더 다양한 스타트업회사로 퍼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처음 다음에 다니다가 라이코스를 떠나기 직전인 2006~2008년쯤에는 이직을 하려고 해도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네이버 아니면 SK컴즈(싸이월드)로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있었던 야후코리아도 사라지고 파란닷컴(KTH)도 사업을 접고 싸이월드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선택지는 더욱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나도 혹시 다음을 떠나야 하는 일이 생기면 어디를 가야하나 생각해봤는데 업계안에서 갈만한 회사가 네이버나 SK컴즈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 암담했었다.
그런데 좋은 스타트업이 많아지는 지금은 선택지가 넓어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중견급 팀장들도 경험있는 인재가 필요한 스타트업에 가서 CTO 등을 맡아 즐겁게 일하고 있다. 이제는 꺼꾸로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쪽의 인재유출을 걱정해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
고래만 몇 마리 있는 기업생태계보다 이처럼 많은 다양한 물고기가 있는 기업생태계가 휠씬 더 사람들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이렇게 다음 다닐때의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다. 내가 미국에 있으면서 목도한 보스턴이나 실리콘밸리의 기업생태계가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너무 좋은 회사들이 많고, 인재들이 나와서 새로 창업한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넘쳐 흘러서 인재들이 회사를 골라서 갈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들은 인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직원들에게 열심히 잘해줄 수 밖에 없다. 고용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
대기업에게 청년고용을 늘리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청년희망재단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이처럼 좋은 기업들이 많이 나오고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면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
[라이코스 이야기 5] 미국직장의 점심문화
한국의 직장문화에서 점심은 누군가와 같이 식사하는 시간이다. 적어도 신문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는 그렇게 배웠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아서 식사를 하면서 사람을 사귀고 정보를 얻는 시간이 점심식사시간이었다. 아니면 따로 약속이 없더라도 같은 부서의 동료들과 같이 나가던지 아니면 어느 누구라도 잡고 둘이서 나가서 밥을 같이 먹어야 되는 문화였다. 혼자서 가서 식사를 하면 웬지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루저’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점심약속을 미리미리 잡아놓고는 했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나서는 대개 다같이 찻집이나 카페로 이동해 커피나 차를 마시는 과정이 뒤따른다. 일이 바쁘거나 입맛이 없어서 점심을 거르거나 간단히 하겠다고 하면 “다 잘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하면서 같이 식당에 가자고 권유하는 선배들이 많았다. 비생산적일 수는 있지만 이런 문화를 통해서 동료들과 더 많이 소통하게 되고 외부인맥도 늘리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보니 사뭇 문화가 달랐다. 미국직장인들은 특별한 점심약속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라이코스의 경우 일단 구내식당이 없고 샐러드나 샌드위치를 파는 카페테리아는 걸어서 5분정도 떨어져 있는 옆 건물에 있었다. 그외의 식당은 제일 가까운 곳도 차를 몰고 가야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서 도시락을 싸오거나 간단히 가까운 곳에서 먹을 거리를 사와서 혼자 먹는 정도였다.
동료들과 같이 담소하면서 먹는 것을 즐기는 몇몇 직원들은 냉장고와 싱크대가 있는 ‘키친’에 앉아서 식사를 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냥 자기 책상에 앉아서 가볍게 점심을 먹는다. 그야말로 우걱우걱 먹는다.
사람들이 싸오는 그 도시락이라는 것도 천차만별이어서 중국인등 아시아인들은 우리처럼 제대로 밥이 들어간 도시락을 싸오기도 하지만 보통은 간단히 샐러드나 샌드위치를 싸온다. 심지어 전자렌지에 데워먹는 파스타나 햄버거 같은 냉동식품을 가지고 오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 저런 것을 먹나 싶은데 다른 사람의 눈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몇명이서 같이 피자를 주문해서 한조각씩 먹기도 한다.
즉, 한마디로 미국인들의 직장 점심문화를 정의하면 “대충 때운다”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구내식당이 있더라도 음식을 자기자리로 가지고 가서 책상에 앉아 혼자 먹는 사람들이 많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직장인의 67%가 책상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할 정도다. 뉴저지에 있는 삼성전자의 미국지사 구내식당에 가본 일이 있는데 그 곳에서도 한국인들은 자리에 앉아서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외국인들은 식사를 가져다 자리 자리에 가서 혼자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호화로운 공짜점심을 제공하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미국전체로 보면 아주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들 회사가 공짜점심을 제공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직원들이 점심시간을 통해 소통을 하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회사에서도 점심거리를 식당에서 받아다 자기자리에 혼자 앉아 먹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점심을 간단히 먹는 문화는 아마도 식사시간을 최소화하고 일에 집중하기 위한 이유가 크다. 식당이 멀어서 밖에서 먹고 오면 한시간이 훌쩍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그럴 시간이 10분만에 식사를 후딱 해치우고 일을 빨리 끝내려는 것이다. 상사의 눈치를 보는 야근이 없는 문화기 때문에 일을 빨리 끝낸만큼 집에 제시간에 갈 수 있다.
솔직히 이런 미국인의 점심문화는 내 마음에 안들었다. 미국직장에서 동료간에 ‘정’이 한국과 비교해서 없고 개인주의적인 것은 아마 이런 드라이한 점심문화의 영향도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라이코스에 갔을 때 꺼꾸로 이런 문화를 이용했다. 나는 한국식으로 적극적으로 직원들에게 점심을 같이 하자고 청했고 같이 인근 식당에 가서 식사했다. 점심같이하자고 물어보면 상대방이 선약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므로 쉽게 식사상대방을 구해서 점심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을 데리고 차로 한 15분 거리에 있는 렉싱턴시내 한국식당에 가서 돌솥비빔밥을 시켜주고 한국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많은 직원들과 서로 간의 벽을 허물 수 있었다. 음식을 앞에 놓고는 업무미팅때는 할 수 없는 가볍고 사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러다보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놀라울 정도로 개인사를 털어놓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디에서 자라났으며 학교를 다녔고 형제자매는 어떻게 되고 자녀들은 어떤 상황인지 심지어는 기구한 가족사와 이혼경력까지 술술 털어넣는 경우도 있었다. 덕분에 미국인들의 삶과 고민 등에 대해서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서로간의 신뢰를 쌓았다고 할까. 그들도 알고보면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식당에 내 차를 타고 나란히 앉아 같이가고 식당에 마주 앉아 대화하면서 덤으로 영어회화실력도 많이 늘었다.
이처럼 미국에서 직원들에게 저녁식사를 청하는 것은 “NG(No Good)”이지만 점심식사를 청하는 것은 미덕이다. 밀린 일을 따라잡기 위해서든, 공부를 위해서든, 인맥을 넓히기 위해서든 점심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은 직장인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라이코스 이야기 4] 나이와 호칭을 따지지 않는 문화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게 가장 편했던 것은 ‘나이와 호칭을 따지지 않는 문화’였다. 물론 미국이라고 나이와 호칭이 전혀 상관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과 비교해서는 상대적으로 적게 따진다는 얘기다.
반면 한국에 돌아와서 짜증이 나는 것은 끊임없이 나이를 따지는 문화다.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누가 연장자인지 따진다. 감추려고 해도 감추기가 어렵다. 참석명단을 돌리면서 무신경하게 요구하는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서로의 나이를 쉽게 알게 된다. 관에서 하는 행사에 가면 필수요건처럼 이름옆에 나이를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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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라이코스에 가서 직원들 면담을 하면서 가끔 상대방의 나이가 궁금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알수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보는 것은 실례라는 것쯤은 알아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직원들의 인적사항을 볼 수 있는 회사 인트라넷이 있느냐”고 인사담당(HR)매니저인 존에게 물어봤다. 펄쩍 뛴다. 직원들의 개인적인 인적사항 정보는 사장이라고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입사나 퇴사 등의 행정적인 절차 때문에 HR정보를 확인해야 경우에 한해 HR담당자인 자신만 보는 것이지 그외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줄 수 없단다. 이력서나 지원서에 나이를 적는 것이 당연시 되고 또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항상 타인에게 자신의 나이를 드러내보일 수 밖에 없는 한국의 문화와 달라서 좀 놀랐다.
그래도 직원 면담을 할때 내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도는 미리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존에게 이야기하니 이메일로 사전에 취합된 이력서를 보내준다. 하지만 사진, 성별, 나이 등이 없이 학력과 경력이 건조하게 나열된 이력서를 봐서는 정확히 나이를 알기 어려웠다. 그나마 학교졸업연도 등으로 대강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나마 졸업연도도 안 쓴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직원들의 나이가 궁금할 일은 없었다. 나이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보다 휠씬 나이가 많아보이는 일부 엔지니어들이 있어서 조금 궁금하기는 했다. 하지만 존이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어차피 중요한 것이 아니니 나이는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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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따지지 않는 것보다 내가 더 편하게 여긴 것은 이름을 그대로 부르며 존댓말이 없는 영어 언어습관이었다.
한국에서는 나이나 출신학교, 출신지역에 따라 손윗사람의 경우 형님, 선배로 부르거나 아랫사람의 경우는 “준현”, “준현씨”하는 식으로 그냥 이름을 부른다. 연배가 높은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을 “정희”, “재현”하는 식으로 이름만 부르는 것은 큰 실례일 수 있다. 또 이름이 아니고 성에 대표, 부사장, 전무, 국장, 과장, 대리 등 직함을 꼭 붙여서 불러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뭔가 어색해서 상대방을 부를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누구나 상대방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서 망설인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한국의 호칭문화와 달리 미국에서는 직함없이 상대방 이름을 그대로 부르면 된다. 영어의 특성상 존댓말도 없다. 아무나 그냥 이름만 기억하고 부르면 된다. 심지어 가족간에도 그렇게 한다.
직원들과 복도에서 마주치면 “헤이, 정욱 하우아유”(Hey Jungwook, how are you?)라고 말을 건넨다. 한국의 대기업에서 사장에게 말단직원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렇게 이름을 부르기 때문에 한국에 있을 때보다 직원들과 휠씬 평등한 관계에서 말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팀에서 일을 할 때도 서로 나이와 직위를 (한국과 문화와 비교해서) 덜 의식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한 편이다. 미국에서도 동부보다는 서부가, 기존 전통산업계보다는 IT업계의 신생기업일수록 더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일반적인 미국인의 경우 이름이 참 기억하기 쉽다. 크리스, 존, 조, 다이애나, 케빈, 에드, 티파니, 마크… 이들이 내가 밀접하게 일하던 라이코스 핵심매니저들의 이름이다. 몇년이 지나도 잊어버릴 수가 없을 정도로 이름이 쉽다. 크리스처럼 너무 흔한 이름은 사내에서 동명이인이 여럿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성은 보통 다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안된다.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이름을 쉽게, 더 자주 불러주기 때문이다. 이름을 불러주다보면 쉽게 친근감을 가지게 된다.
복잡한 호칭없이 퍼스트 네임만을 불러주고 쉬운 이름을 쓰는 문화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생활속에서 매일 마주치는 주위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라이코스의 동료들은 자주 다니는 샌드위치가게의 점원이름이나 헬스클럽의 매니저이름이 제니퍼라든지 톰이라는지 하는 것을 모두 기억하고 그들을 이름으로 불러줬다. 심지어 매일 아침에 사무실을 청소해주는 여성도 “제인”이라고 이름으로 불러줬다. 더 인간적으로 상대방을 대할 수 있는 것이다.
매일다니는 식당의 종업원이름이나 방을 매일 청소해주는 분의 이름도 “아줌마, 아가씨, 아저씨”, 아니면 “저기요”로 호칭할 수 밖에 없는 한국의 문화와 비교해 나는 이런 미국의 호칭문화를 참 부럽게 느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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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미국인이라고 나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일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는 재무팀장인 티파니에게 한 재무팀원의 나이를 아느냐고 물어본 일이 있다. 그랬더니 펄쩍 뛴다. 자기가 어떻게 그걸 아느냐는 것이다. 알 필요도 없고 관심도 없단다.
나중에 다른 미국인 임원과 이야기했더니 티파니의 이런 반응은 과장이란다. 절대로 나이를 안드러내는 사람도 있지만 일하다보면 편하게 나이를 공개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비공식적으로는 대충은 서로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대충이다.)
솔직히 자신보다 드러나게 나이가 많은 사람의 매니저가 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가만히 관찰해보면 나이가 많은 사람이 팀에서 적응을 못하는 것은 나이가 많고 적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게 아니고 그 사람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보다 젊은 세대와 일하는 것을 불편해 하는 경우에 문제가 됐다. 나이가 많더라도 유연하게 젊은 마인드로 일할 줄 아는 사람들은 나이가 어린 동료나 매니저와 일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어쨌든 직장에서 서로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나보다 나이어린 사람이 상관이 되더라도 개의치 않고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 때문에 회사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스트레스도 적은 편이다. 후배가 자기보다 위로 승진하거나, 나이는 들어가는데 일정 직급이상 승진하지 못하면 자의반타의반 조직을 떠나야 하는 한국문화와는 확실히 다르다.
인사담당인 존의 후임으로 들어와서 1년반동안 나와 같이 일했던 HR디렉터 다이애나는 처음 면접때 만났을때 나이가 나보다 휠씬 많아보였다. 어림짐작으로 나보다 10살은 위일 것 같았다. 하지만 존의 강력한 추천도 있었고 일을 잘 할 것 같아서 뽑았다. 그리고 이후 한번도 나이를 물어본 일이 없었다. 본인도 절대 나이를 밝히지 않았다. 같이 일하면서 나이가 부담스럽기는 커녕 오히려 다이애나의 다양한 경험과 연륜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그녀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조직을 원만히 운영해가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몇년뒤 둘다 라이코스를 그만두고 나온 뒤에 같이 점심식사를 하면서 나이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는 빙그레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자기 나이가 얼마나 될 것 같냐고 맞춰보라고 했다. 그녀의 실제 나이는 내 예상보다 거의 십년은 위인 60세였다. 같이 일하면서 그녀의 나이를 몰랐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알았으면 쓸데없는 편견에 사로잡혀 “다이애나는 나이가 많아서 이런 일은 못할거야”라고 지레 짐작하지 않았을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라이코스 이야기 3] 미세한 문화의 차이
연재한다고 해놓고 너무 글을 안써서 무안. 그래서 이번에는 가볍게 쉬어가는 글. 미국직장에서 느낀 미세한 문화의 차이.
처음 라이코스에 CEO로 부임해 갔을 때의 내 사무실이다. 비어 있던 방 하나를 쓰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이런 매니저들의 방을 ‘오피스(office)’라고 부른다. 당신 방(room)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오피스에 간다고 한다. 처음 라이코스에 갔을 때 임원들과 General Counsel(법무팀장정도), HR매니저가 자기 오피스가 있었다.
그리고 일반 직원들과 중간매니저들은 이런 큐비클에서 근무한다.
개인 공간은 좀 넓은 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무실안에 혼자 있으니 직원들과 도통 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얼마 안있어 직원들과 가까이 있기 위해서 사무실을 포기하고 직원 근무공간 구석으로 HR매니저와 함께 옮겨 갔다. 그렇게 하니 출퇴근할 때나 커피 한잔 하러 갈 때나 화장실을 드나들때 복도에서 직원들과 마주치는 기회가 수십배는 늘어났다. “Hi Jungwook”, “Hi Chris” 그렇게 인사를 교환하고 잡담 한마디라도 더 하게 되니 직원들과 휠씬 가까워 졌다.
그런데 오피스에 있건 바깥 오픈된 자리에 있던 처음에 적응이 안되는 일이 있었다. 사람들이 내가 자리에 없을 때 종이 서류를 놓고 갈 때는 책상위에 놓지 않고 내 의자위에 놓고 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모르고 깔고 앉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황당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니 중요한 서류를 놓치지 않고 바로 발견하는 장점은 있었다. 미세한 문화의 차이다.
사족 : 라이코스를 떠난 뒤 몇년간 이런 습관을 잊고 있다가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이기대이사가 내 의자에 서류를 이렇게 놓고 가서 다시 떠올렸다. 역시 미국에서 일할 때 배운 습관이라고 한다. 테크앤로 구태언변호사도 김앤장에서는 이렇게 한다고 전해줬다. (경칭생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