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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코스 이야기 3] 미세한 문화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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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한다고 해놓고 너무 글을 안써서 무안. 그래서 이번에는 가볍게 쉬어가는 글. 미국직장에서 느낀 미세한 문화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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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라이코스에 CEO로 부임해 갔을 때의 내 사무실이다. 비어 있던 방 하나를 쓰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이런 매니저들의 방을 ‘오피스(office)’라고 부른다. 당신 방(room)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오피스에 간다고 한다. 처음 라이코스에 갔을 때 임원들과 General Counsel(법무팀장정도), HR매니저가 자기 오피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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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반 직원들과 중간매니저들은 이런 큐비클에서 근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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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공간은 좀 넓은 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무실안에 혼자 있으니 직원들과 도통 소통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얼마 안있어 직원들과 가까이 있기 위해서 사무실을 포기하고 직원 근무공간 구석으로 HR매니저와 함께 옮겨 갔다. 그렇게 하니 출퇴근할 때나 커피 한잔 하러 갈 때나 화장실을 드나들때 복도에서 직원들과 마주치는 기회가 수십배는 늘어났다. “Hi Jungwook”, “Hi Chris” 그렇게 인사를 교환하고 잡담 한마디라도 더 하게 되니 직원들과 휠씬 가까워 졌다.Screen Shot 2015-08-02 at 9.11.57 AM

그런데 오피스에 있건 바깥 오픈된 자리에 있던 처음에 적응이 안되는 일이 있었다. 사람들이 내가 자리에 없을 때 종이 서류를 놓고 갈 때는 책상위에 놓지 않고 내 의자위에 놓고 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모르고 깔고 앉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황당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니 중요한 서류를 놓치지 않고 바로 발견하는 장점은 있었다. 미세한 문화의 차이다.

사족 : 라이코스를 떠난 뒤 몇년간 이런 습관을 잊고 있다가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이기대이사가 내 의자에 서류를 이렇게 놓고 가서 다시 떠올렸다. 역시 미국에서 일할 때 배운 습관이라고 한다. 테크앤로 구태언변호사도 김앤장에서는 이렇게 한다고 전해줬다. (경칭생략)

Written by estima7

2015년 8월 2일 at 10:08 오전

[라이코스 이야기 2] 낮에 하는 무비나잇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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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코스 이야기를 연재하겠다고 해놓고 벌써 몇주가 흘렀다. 출장 등으로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왠지 뭔가 글을 잘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전혀 글을 못쓰겠다. 아무도 안 읽어도 되고 내 자신을 위해 기록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그냥 대충 쓰려고 한다. 우선은 스토리볼에 연재했던 내용을 좀 보완해서 하나씩 기록해 나가기로 다짐.

*****

라이코스CEO로 2009년 3월에 공식적으로 부임한 이후 한동안은 악착같이 비용을 줄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흑자 전환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재무 팀장과 엑셀 시트의 비용 항목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이건 무엇인지 줄일 수 있는 것인지를 하나하나 물어보면서 몇백, 몇천불이라도 줄여나갔다.

Pasted Graphic

콘트롤러(재무팀장)과 앉아서 이 비용이 무엇을 뜻하고 왜 필요한 것인지 물어봤다. 예를 들어 위는 각종 사무실운영비용인데 ‘아이언 마운틴’이라는 항목이 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어보니 종이로 된 오래된 서류를 아이언마운틴이란 회사에 보내면 아카이빙해서 보관해준다는 것이다. 미국회사들은 대부분 이용하는 서비스라는데 한국에서 온 CEO로서는 하나하나 물어보기 전에는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필요없는 출장, 컨퍼런스 참가 등도 모두 줄였다. 출장을 갈 경우에도 CEO부터 전 임원이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는 것으로 했다. 출장항공권이나 호텔예약조차도 비서나 여행사에 부탁하는 것이 아니고 익스피디아를 통해 직접 예약했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 복지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하지만 회사가 어려운 상황인 만큼 다들 이해하고 참아주었다.

그러다 보니 반 년 후 조금씩 월별 수지가 개선되면서 소폭의 혹자로 돌아섰다. 기쁘기도 하고 너무 비용 절감만 외친 것이 미안하기도 해서 HR매니저 존과 상의해서 직원 사기진작을 위한 이벤트를 갖기로 했다.

movie_night_image

큰 돈 들이지 않고 어떤 행사를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나온 것이 무비나잇(Movie Night)이었다.  직원들이 모두 다같이 근처 극장에 가서 영화를 관람하고 팝콘, 음료 정도를 회사비용으로 사준다는 것이다. 소박한 아이디어였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도 비슷한 행사를 가진 일이 있기에 쉽게 이해가 됐다. 회사 일과가 끝나고 다같이 극장으로 출발해서 영화를 관람한 다음 나와서 맥주 한잔을 하고 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 운전을 하고 귀가해야 하고 근처에 술집도 거의 없는 보스턴 교외지역에서 영화를 보고 맥주 뒤풀이까지 하기에는 좀 무리다 싶었다. 그래서 영화만 보는 것으로 생각하고 HR매니저와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무비 나잇 당일이 됐다. 오후 2시쯤 존이 내 자리로 와서 “이제 전 직원들과 극장으로 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난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 무비 나잇은 이름 그대로 밤에 하는 행사가 아닌가? 왜 그걸 시퍼런 대낮에 하자고 하는 것이지? 게다가 회사에서 돈을 대주고 가는 것인데 왜 업무시간을 빼먹고 가야 하는 것이지?”

한국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안됐다. 솔직히 좀 화가 났다.

존에게 왜 2시에 나가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질문했다. 그러자 그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영화가 끝나는 시간이 오후 5시를 넘으면 안됩니다. 5시이후는 패밀리 타임입니다.”

난 그 이야기를 듣고도 라이코스 직원들이 군기가 빠져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다른 미국회사도 그런지 궁금했다. 트위터를 통해 트친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다른 회사도 그런지 물어봤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회사에 다니는 다른 한국 분들의 대답이 돌아왔다. 대부분 자기들 회사도 똑같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영화를 보러 갈 때는 일찍 가서 저녁시간이 되기 전에 영화가 끝나고 귀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직원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간 Burington의 AMC영화관. (사진출처 Yelp)

직원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간 Burington의 AMC영화관. (사진출처 Yelp)

결국 나는 순순히 직원들과 다같이 극장에 가서 즐겁게 영화를 관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영화도 꼭 다같이 같은 영화를 볼 필요가 없었다. 본인이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해서 삼삼오오 같이 들어가서 감상했다.

몇몇 안 보이는 얼굴들도 있었다. 물어보니 영화에 별로 흥미가 없는 직원들은 회사에 남거나 일찍 집으로 갔다고 한다. 회사 행사라고 모든 직원들을 다 강제로 가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 일을 통해 한국과 미국의 직장 문화의 차이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예전 직장에서는 직원들의 단합회식은 업무시간이 끝난 저녁에 하는 것이 당연했다. 심지어 단합대회 워크숍을 토요일에 가는 것도 당연하게 여겼다. 그리고 열외는 인정되지 않았다. 중병이 걸린 것이 아니면 모두 참석해야 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이런 문화가 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최소한 미국의 직장은 한국보다 더 구성원들이 가족 중심적으로 살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다.

Written by estima7

2015년 7월 26일 at 10:54 오후

무거운 짐을 내려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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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주년기념으로 한 직원이 직접 만들어온 컵케이크.

라이코스CEO로 정식부임한지 벌써 2년하고도 11개월이 됐는데 어제 드디어 그 짐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어제자로 CEO를 사임했습니다.

2009년 3월초 뜻밖의 발령을 받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보스턴으로 오게 됐을 때는 솔직히 두렵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한번 없는 제가 80명의 직원이 있는 미국회사를 맡아서 경영한다니요. 더구나 계속되는 적자로 경영위기와 패배주의에 빠져있는 회사를 살려낼 수 있을지 큰 걱정이었습니다. 솔직히 가봐서 회사가 상태가 안좋으면 정리해야하는 것 아닐까하는 불길한 예감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서 일을 할 수 있었던 힘은 “밑져야 본전이다”, “실패해도 뭔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영어는 늘겠지” 등의 낙관주의였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첫 전체 직원미팅에서 제가 썼던 슬라이드들.

그리고 2009년 첫해 많은 우여곡절끝에 흑자전환을 이뤘고, 2010년에는 회사를 매각했고 더 많은 확실한 흑자를 올리며 확실한 흑자기조를 만들었으며, 2011년에는 새로운 모회사가 된 Ybrant의 이스라엘부문과 회사를 통합해 시너지를 올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회사가 매각된후 1년동안은 제가 CEO로 의무복무(?)하는 것이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정대로라면 지난해 10월에 물러났어야 했는데 사정상 생각보다 좀더 오래있게 됐던 것입니다. 어쨌든 백수가 되니 시원섭섭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 3년간 제가 배운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봤습니다.

미국회사 경영하기-인사, 재무, 법무 등

첫번째로 미국회사를 경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2009년부터) 처음에 한국에서 라이코스를 바라볼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면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여기에 와서 부대끼며 일을 하고 매일 의사결정을 내리면서 미국회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에서도 회사마다 천양지차입니다.) 특히 인재를 뽑고, 키우고, 동기부여를 하는 법,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내보내는 법 등 사람에 관해서 많은 고민을 하면서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또 직원들과 회사의 경영상태를 솔직히 나누며 소통하면서 진실된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미국인이나 한국인이나 결국 사람은 다 똑같습니다. 진실되게 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또 특히 법무이슈에 대해서 특이하게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이 회사가 옛날부터 수많은 소송이 걸려있었고 다양한 특허를 가지고 있는지라 사내변호사와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서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특히 2009년에 재판에서 져서 3백만불을 배상하라고 판결이 났을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결국 총 2백50만불정도에 합의를 보고 몇년간의 소송전에 일단락을 지었습니다.) 꺼꾸로 작년에는 특허매각딜을 통해서 전혀 기대하지 않던 수익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은 한번 경험해보지 않으면 진짜 알기 어려운 귀중한 경험인 것 같습니다.

M&A의 어려움-겉보기보다 휠씬 어렵다

두번째로 회사를 매각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배웠습니다.(2010년) 언론에서 M&A발표기사를 보면 아주 쉽게 거래가 이뤄진 것 같은데 그것은 단지 겉으로 그렇게 보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라이코스의 경우는 한국회사가 미국회사를 인도회사에 파는 것이었는데 상대방회사의 딜담당은 콜로라도에 있고 실제 비즈니스오퍼레이션을 맡을 회사는 이스라엘에 있었습니다. 결국, 서울, 덴버, 보스턴, 뉴욕, 하이드라밧, 텔아비브를 이리저리 연결하며 가진 백번도 넘는 컨퍼런스콜과 수많은 문서작업끝에 듀딜리전스를 시작한지 6개월만에 발표하고 또 2달있다가 클로징을 했습니다.

그 기간동안 직원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몇몇 핵심매니저들을 달래가면서 방대한 문서작업을 시키는 일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이 일이 끝나면 제 운명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말이죠. 이 딜이 과연 성사될지 계속 확신을 갖지 못하면서 자기자신에게 계속 동기부여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어쨌든 이 과정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M&A이후 새로운 문화와의 충돌, 문화배경이 다른 사람들과 이해하면서 통합해 나가기

세번째로 M&A이후 Integration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배웠습니다.(2011년) 특히 같은 나라, 같은 지역에서 같은 언어를 쓰는 회사끼리도 쉽지 않은데 인도, 이스라엘 사람들과 새로 서로를 알아가면서 조직문화를 통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요. 특히 라이코스는 서쪽으로 1만1천km떨어져있는 서울과 일하다가 갑자기 동쪽으로 8천8km로 떨어져있는 텔아비브와 일하게 된 경우입니다. (다음에 인수되기 전에는 또 스페인의 텔레포니카가 모회사였습니다. 얄궃은 운명입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사람들이 한국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영어를 더 잘하고 국제감각이 있어 통합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지나고 보니 그것보다 더 큰 도전은 문화와 가치관(Values)의 차이였습니다. 처음 허니문 기간이 지나고 서로의 단점이 많이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갈등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일년여동안 워낙 공격적이고 다혈질인 이스라엘인들과 일하면서 많은 도전이 있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웠고 느낀 것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유대인에 대해서, 중동에 대해서 새롭게 눈을 뜨고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큰 수확으로 생각합니다. (중동관련 뉴스를 열심히 보고 읽게 됐습니다.)

아쉬운 점-프로덕트에 신경 못쓴 것, 미국인맥의 부족함, 여전히 부족한 영어

물론 아쉬운 점도 많습니다. 많은 행운이 따라서 회사가 흑자로 반전하고 회사의 재무구조가 탄탄해졌지만 라이코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의미있는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고 핵심고객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몇년간 회사는 안정이 됐지만 워낙 Legacy가 켭켭이 쌓여있는 회사의 제품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매각, 통합 과정을 거치면서 워낙 distraction이 많아 진짜 핵심제품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변명이지만) 또 항상 회사내부를 챙기느라 바빠서 미국의 인터넷업계를 뛰어 다니며 인맥을 쌓지 못한 점도 아쉽습니다. 생각보다 보스턴 밖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더군요. 영어도 생각만큼 늘지 않았습니다. 워낙 제가 공부를 게을리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보스역할을 하다보니 좀 절실함이 없었는지도…) 사실 이런 실패담, 시행착오에서 더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트위터, 블로그를 통해 엄청나게 많이 배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혀 생각지도 않게 덤으로 얻은 것이 있습니다. 트위터, 블로그를 통한 한국에 계신 분들과의 소통입니다. 사실 그래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보스턴에 와있으면서도 생각보다 외롭지 않게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트위터를 통해 소통하면서 제 자신을 채찍질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배운 지식을 회사직원들과 내부 미팅 등을 통해서 나누면서 더 좋은 회사분위기를 만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참고: 나의 트위터 2주년소회)

어쨌든 정확히 3년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인생의 방향전환이 됐고 그 과정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성장한 것 같습니다. 제 인생의 또 다른 한 챕터가 열리고 닫혔다는 점에서 기념으로 간단히 블로그에 써봤습니다.^^ (써놓고 보니 인생은 항상 새로운 배움의 여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Written by estima7

2012년 2월 16일 at 11:33 오전

경영, 짧은 생각 길게 쓰기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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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cos라는 이름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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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테크놀로지 디렉터인 Joe가 회사 복도에 써놓은 글과 사진. 트위터를 통해서 애견이름을 Lycos라고 지은 라이코스유저를 만났고 너무 반가와서 “회사에 전시하고 싶으니 애견의 사진을 꼭 보내달라”고 요청해서 받았다고.

한국도 그렇지만 가만 보면 참 오래동안 한 서비스를 애용하는 로열한 유저들이 미국에는 많이 있음. 3억인구중 이런 로열한 유저 수천, 수만명이 기꺼이 가치있는 서비스에 매달 몇달러에서 수십달러의 비용을 지불하고 이런 매출이 많은 니치웹서비스를 지탱하는 힘이 되는 듯 싶음.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10년가까이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라이코스를 10년간 이용해온 고객들이 이렇게 존재한다는 자체에 감사할 뿐. 이제는 좋은 서비스로 보답할 때.

Written by estima7

2010년 2월 22일 at 7:24 오후

짧은 생각 길게 쓰기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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