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넷 옐런 교수에 대한 기억
아침에 중앙일보 이상렬 뉴욕특파원의 ‘미국 중앙은행 총재가 부러운 이유’를 읽고 모교 은사인 자넷 옐런교수에 대한 기억과 미국의 고위직 인사시스템에 대해 간단히 써보고 싶어졌다. 칼럼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CEO 주가’라는 게 있다. 괜찮은 CEO가 오면 시장이 먼저 알아보고 주가가 뛰는 것을 말한다. 어디 CEO 주가뿐이랴.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중앙은행 총재 주가’라는 것도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지난 11일 그가 취임 후 첫 공개석상인 하원 청문회에서 “기존 통화정책 고수”를 선언하자 세계 주가가 급등했다. ‘버냉키 시대’가 가고 ‘옐런 시대’가 도래했음을 시장이 노래한 것이었다.
그러나 옐런의 성공적인 데뷔는 그 자신만의 성취가 아니다. 연준 의장을 뽑는 미국의 정교한 정치시스템이 그 이면에 있다. 버냉키 의장의 후임을 뽑는 작업은 대략 반 년 전부터 본격화됐다.
미국에 있을때 WSJ를 사무실에서 구독하면서 그래도 헤드라인정도는 매일 훑어봤던 내 기억으로 옐런이 처음 언론에 연준의장 후보로 언급되기 시작했던 것은 재작년쯤이었던 것 같다. 벌써 꽤 오래됐다. 왜 기억하냐하면 옐런은 내가 MBA학위를 받기 위해 버클리 Haas경영대학원을 다니던 2001년에 경제학을 배운 은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직접 강의를 들은 교수님이 소위 ‘세계경제대통령’후보로 거론된다는 기사가 눈에 확 들어왔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연준의장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워낙 쟁쟁한 남성후보들이 많았고 그녀가 그런 경쟁을 뚫고 올라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거물인 래리 서머스와 경합하면서 언론상에서 엄청난 검증과 찬반이슈가 이어졌다. 난 당연히 래리 서머스에게 밀릴줄 알았다. 내 오산이었다.
두 사람이 떠올랐다.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였던 래리 서머스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과 연준 부의장인 옐런이었다. 그러자 각계에서 검증과 찬반이 일어났다. 급기야 서머스가 오바마에게 연준 의장 포기 편지를 쓰고 자진 하차했다. 민주당 상원의원 3명의 공개적인 인준 반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곡절 끝에 인준을 통과한다 해도 인준 과정의 불협화음이 연준의 위상에 흠집을 낼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끝에 옐런교수는 지난해 10월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됐다. 학교 다닐때 상당히 ‘외유내강’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지루한 여론검증과정에서도 확신에 찬 모습으로 자신이 연준의장을 잘 수행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칼럼을 읽어보면 마지막까지 버냉키를 존중하면서 2인자처세도 탁월했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결국 지난해 10월 옐런을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했다. ~중략~ 옐런의 2인자 처세는 탁월했다. 버냉키가 물러나는 순간까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올 1월 초 상원 인준 통과로 연준 100년 역사상 첫 번째 여성의장으로 확정됐지만 자기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 덕분에 버냉키는 마지막까지 레임덕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특히 칼럼에서 공감한 부분은 아래와 같다.
옐런의 연준 의장 등극기는 솔직히 부럽다. 차기 연준 의장이 거론-지명-확정되는 6개월 이상의 과정엔 미국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한다. 연준 의장을 세계의 경제대통령으로 만드는 파워는 단순히 달러를 찍어내는 권한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미 의회와 월스트리트의 금융인들과 상공인들이 연준 의장을 뒷받치고 있다.
서머스가 낙마하고 옐런이 유력 후보로 혼자 남자 백악관은 민주당 상원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옐런의 보호를 요청했다. 연준 의장이 취임도 하기 전에 정치적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되면 자리에 합당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떤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가 3월 말 끝나는데도 새 총재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더구나 이번부터는 혹독한 국회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데도 그렇다. 우리는 언제까지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공개하는 한은 총재를 맞아야 하는가.
미국의 인사시스템을 살펴보니 정말 이런 식이 많다. 후보로 점찍어놓은 사람이 있으면 대통령이 갑자기 발표하는 것이 아니다. 의회나 언론에 살짝 흘려서 간을 본다. 중요한 자리일수록 더욱 그렇다. 지난해 오바마대통령은 수전 라이스 유엔대사를 국무장관후보로 흘려서 여론을 살폈으나 공화당과 여론의 거센 반발과 검증공세속에 결국 케리를 국무장관으로 선택했다. 내가 보기엔 중요한 자리일수록 이런 시스템이 필요한 것 같다. 정말 우리는 언제까지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공개하는 OOO를 맞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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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넷 옐런교수에 대한 기억.
자그마한 체구에 항상 온화한 미소를 띄고 있던 할머니교수(당시 나이는 사실 그리 많지 않아서 55세정도)라는 느낌이었다. 당시 버클리교수로 재직하다가 90년대말 클린턴정부에서 경제자문역으로 일했었고 2001년 부시정부로 바뀌면서 다시 학교로 돌아와있던 참이었다.
부드러운 말투로 어려운 경제학을 잘 가르친다는 것이 (기억은 잘 안나지만) 당시 내 느낌이었다. 하지만 부드러운 인상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철학은 확고하게 서있는 분이었다.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의 유연한 고용시스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유럽출신 학생이 미국시스템을 비판하자 상당히 강하게 논쟁에 나서면서 옐런교수는 미국시스템의 장점을 옹호했던 기억이 있다. 학생들은 교수가 미국시스템의 신봉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어쨌든 옐런교수도 유명한 분이라고 들었지만 내게는 당시 하스스쿨의 학장이던 로라 타이슨교수가 더 거물인 느낌이었다. (여성 파워!) 결정적으로 2001년 3월 옐런교수의 남편인 조지 애컬로프 버클리경제학과교수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수상소식이 발표되고 아마 다음날 있었던 경제학 수업시간에 모두 일어나서 옐런교수에게 남편의 수상소식을 박수를 치며 축하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옐런교수는 노벨상수상자남편을 둔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훗날 옐런교수가 노벨상수상자인 남편 애컬로프교수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될지는 정말 몰랐다. (내 기억에 의외로 학점도 박했다…ㅠ.ㅠ)
어쨌든 교수시절과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부드러운 화법으로 의회증언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옐런 연준의장의 모습을 보니 한국에서도 보다 많은 여성들이 고위직에 진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온갖 구설수끝에 어이없이 장관직에서 중도하차한 윤진숙장관의 케이스가 참 안타깝다. 뒤따르는 여성인재들을 위해서 좋은 롤모델이 됐었어야 하는데…
미국 학교들에서 한국식교육 받은 사람들은 좋은 학점 받기 어렵다. 틀려도 좋으니 다양한 각도로 나름대로 논리를 세우면 좋은 학점 받으나 정답달기식 틀에 짜인 답변은 별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미국교육제도가 추구하는 것은 답을 찾으라는게 아니라 논리적으로 주관을 세우는 생각을 찾는 훈련을 원한다. 정답은 세월이 지나면 바뀔 수 있지만 생각하는 훈련이 되면 더 나은 발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Gilbert Park
2014년 2월 16일 at 1:31 am
현재 미국에서 대학 학부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으로써,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씀해드리고 싶네요. 실제로 저희 학교 (미국 탑 학부)에 재학중인 한국 학생들 (고등학교까지 한국 교육 과정을 거친 친구들)은 굉장히 우수한 성적을 받고 있고, 성적 뿐만 아니라 교수님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식 교육의 문제점을 말하자면 끝이 없겠으나, “한국식 교육을 받은 한국인은 유연한 사고가 불가능하고 틀에 짜인 답변만을 내놓는다” 라는 것도 하나의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대학 재학 중인 친구들도 논리가 날카로운 경우 많이 봤습니다.
jjessoh
2014년 2월 17일 at 11:46 am
좋은 글 감사합니다. 래리 서머스도 괜찮은 학자이긴 한데, 하버드 총장 때 물의를 빚은 전력도 있고 해서 어렵지 않나 싶어요. 물론, 전 자세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 분이 그 유명한 애커로프 교수 부인인 건 처음 알았는데, 말씀하신대로 이제 남편보다 더 유명해지겠네요^^ Another lean in 인데요!!
jaeykim2
2014년 2월 16일 at 6:45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