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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역동성 : 대만친구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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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퍼티노 커뮤니티센터.

쿠퍼티노 커뮤니티센터.

MBA동기가 서울에 출장을 와서 만났다. 그 친구는 대만출신인데 2002년에 버클리하스를 졸업한 이후 실리콘밸리에 남았다. 역시 MBA동기인 대만출신 여성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팔로알토에서 살고 있는 친구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올때 미처 연락을 못해서 미안했는데 페이스북 메시지로 “한국출장을 왔는데 볼 수 있냐”고 연락이 왔다. 내 페이스북 포스트의 사진을 보고 내 근황은 대충 알고 있다고 한다. 포스트를 몽땅 한글로 하는데도 이처럼 외국친구들이 내 존재를 페이스북에서 느끼고 연락해오는 경우가 많다. 참 놀라운 세상이다.
이 친구는 실리콘밸리에 살지만 IT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 일하지는 않았다. 주로 제조업분야의 회사에서 일을 했다. 조용하고 진중한 사람이다. 그런데 최근에 독일계 제조업 회사로 옮겨서 남가주의 어바인(Irvine)으로 이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 친구와 가진 잡담을 기억해두고자 메모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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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인, 좋다. 그런데 너무 평화롭다. 실리콘밸리의 역동성을 항상 느끼던 나에게 조용한 어바인에 사는 것이 괜찮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팔로알토에서는 애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일주일에 하루 이틀 오전에 스타벅스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거의 항상이라고 해도 될만큼 옆자리에서 VC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피치하는 사람들을 본다. 거의 예외가 없이 매번 갈때마다 이처럼 아이디어를 설명하는 사람들을 본다. 이런 사람들을 보며 나는 실리콘밸리는 위험을 감수하는 (risk taking) 사람들이 넘쳐흐른다는 생각을 한다. 실리콘밸리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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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A 동기생인 아내는 지금 산호세의 모 글로벌IT기업 재무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이직하지 않고 어바인으로 이사가더라도 그냥 텔레커뮤트(Tele commute)하기로 했다. 완전히 재택으로 일하는 것이다. 어차피 그 회사 재무파트는 인도, 유럽 등 전세계에 흝어져 있어서 어디서 일하는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 어바인으로 옮긴다고 해서 연봉이 줄었다든지 금전적으로도 손해보는 것도 없다. 다만 향후 승진 등을 고려하면 본사 동료들과 계속 얼굴을 보고 일하는 것이 좋기는 하다.”
확실히 이제는 일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결과, 성과가 중요할뿐 직원이 어디에서 일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미국회사들이 이런 면에서도 가장 앞서나간다. 대만기업들도 이런 면에서는 너그럽지 않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새로운 일의 방식을 회사가 받아들여야 글로벌인재들을 계속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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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내가 어바인으로 옮겨야 하는 것을 알게 된 아내가 자기도 새로 일자리를 어바인쪽에서 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구직활동에 나섰었다. 그런데 얼마 안되서 페이스북에서 오퍼를 받았다. 그것도 지금과 비교해서 굉장히 좋은 패키지로 오퍼를 받았다. 다만 실리콘밸리에 계속 있어야 하는 조건이다. 어바인으로 이사를 가야하는 바람에 페이스북에 못가게 되서 아주 아쉬워했다. “대신 당신이 나 평생 먹여 살려야 해”라고 농담을 한다. 이처럼 지금 구글, 페이스북 등이 미친듯이 사람을 뽑는다. 또 다른 내 친구는 최근에 스냅챗에서 좋은 일자리를 구했다. 요즘 정말 실리콘밸리는 인재전쟁이다.”
지난 2월에 스타트업으로 초호황을 누리는 샌프란시스코 출장을 다녀와서 “창조경제가 불을 뿜는 지역을 탐험한 느낌”이라고 썼었다.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여전히 그렇다는 생각을 했다.

Written by estima7

2015년 4월 26일 at 12:11 오전

Webtrends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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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넷 옐런 교수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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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버클리 하스경영대학원건물과 자넷 옐런 연준의장(출처:위키피디아)

UC버클리 하스경영대학원건물과 자넷 옐런 연준의장(출처:위키피디아)

아침에 중앙일보 이상렬 뉴욕특파원의 ‘미국 중앙은행 총재가 부러운 이유’를 읽고 모교 은사인 자넷 옐런교수에 대한 기억과 미국의 고위직 인사시스템에 대해 간단히 써보고 싶어졌다. 칼럼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CEO 주가’라는 게 있다. 괜찮은 CEO가 오면 시장이 먼저 알아보고 주가가 뛰는 것을 말한다. 어디 CEO 주가뿐이랴.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중앙은행 총재 주가’라는 것도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지난 11일 그가 취임 후 첫 공개석상인 하원 청문회에서 “기존 통화정책 고수”를 선언하자 세계 주가가 급등했다. ‘버냉키 시대’가 가고 ‘옐런 시대’가 도래했음을 시장이 노래한 것이었다.

그러나 옐런의 성공적인 데뷔는 그 자신만의 성취가 아니다. 연준 의장을 뽑는 미국의 정교한 정치시스템이 그 이면에 있다. 버냉키 의장의 후임을 뽑는 작업은 대략 반 년 전부터 본격화됐다.

미국에 있을때 WSJ를 사무실에서 구독하면서 그래도 헤드라인정도는 매일 훑어봤던 내 기억으로 옐런이 처음 언론에 연준의장 후보로  언급되기 시작했던 것은 재작년쯤이었던 것 같다. 벌써 꽤 오래됐다. 왜 기억하냐하면 옐런은 내가 MBA학위를 받기 위해 버클리 Haas경영대학원을 다니던 2001년에 경제학을 배운 은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직접 강의를 들은 교수님이 소위 ‘세계경제대통령’후보로 거론된다는 기사가 눈에 확 들어왔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연준의장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워낙 쟁쟁한 남성후보들이 많았고 그녀가 그런 경쟁을 뚫고 올라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거물인 래리 서머스와 경합하면서 언론상에서 엄청난 검증과 찬반이슈가 이어졌다. 난 당연히 래리 서머스에게 밀릴줄 알았다. 내 오산이었다.

두 사람이 떠올랐다.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였던 래리 서머스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과 연준 부의장인 옐런이었다. 그러자 각계에서 검증과 찬반이 일어났다. 급기야 서머스가 오바마에게 연준 의장 포기 편지를 쓰고 자진 하차했다. 민주당 상원의원 3명의 공개적인 인준 반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곡절 끝에 인준을 통과한다 해도 인준 과정의 불협화음이 연준의 위상에 흠집을 낼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끝에 옐런교수는 지난해 10월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됐다. 학교 다닐때 상당히 ‘외유내강’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지루한 여론검증과정에서도 확신에 찬 모습으로 자신이 연준의장을 잘 수행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칼럼을 읽어보면 마지막까지 버냉키를 존중하면서 2인자처세도 탁월했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결국 지난해 10월 옐런을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했다. ~중략~ 옐런의 2인자 처세는 탁월했다. 버냉키가 물러나는 순간까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올 1월 초 상원 인준 통과로 연준 100년 역사상 첫 번째 여성의장으로 확정됐지만 자기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 덕분에 버냉키는 마지막까지 레임덕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특히 칼럼에서 공감한 부분은 아래와 같다.

옐런의 연준 의장 등극기는 솔직히 부럽다. 차기 연준 의장이 거론-지명-확정되는 6개월 이상의 과정엔 미국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한다. 연준 의장을 세계의 경제대통령으로 만드는 파워는 단순히 달러를 찍어내는 권한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미 의회와 월스트리트의 금융인들과 상공인들이 연준 의장을 뒷받치고 있다.

서머스가 낙마하고 옐런이 유력 후보로 혼자 남자 백악관은 민주당 상원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옐런의 보호를 요청했다. 연준 의장이 취임도 하기 전에 정치적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되면 자리에 합당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떤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가 3월 말 끝나는데도 새 총재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더구나 이번부터는 혹독한 국회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데도 그렇다. 우리는 언제까지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공개하는 한은 총재를 맞아야 하는가.

미국의 인사시스템을 살펴보니 정말 이런 식이 많다. 후보로 점찍어놓은 사람이 있으면 대통령이 갑자기 발표하는 것이 아니다. 의회나 언론에 살짝 흘려서 간을 본다. 중요한 자리일수록 더욱 그렇다. 지난해 오바마대통령은 수전 라이스 유엔대사를 국무장관후보로 흘려서 여론을 살폈으나 공화당과 여론의 거센 반발과 검증공세속에 결국 케리를 국무장관으로 선택했다. 내가 보기엔 중요한 자리일수록 이런 시스템이 필요한 것 같다. 정말 우리는 언제까지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공개하는 OOO를 맞아야 하는가.

***

자넷 옐런교수에 대한 기억.

자그마한 체구에 항상 온화한 미소를 띄고 있던 할머니교수(당시 나이는 사실 그리 많지 않아서 55세정도)라는 느낌이었다. 당시 버클리교수로 재직하다가 90년대말 클린턴정부에서 경제자문역으로 일했었고 2001년 부시정부로 바뀌면서 다시 학교로 돌아와있던 참이었다.

부드러운 말투로 어려운 경제학을 잘 가르친다는 것이 (기억은 잘 안나지만) 당시 내 느낌이었다. 하지만 부드러운 인상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철학은 확고하게 서있는 분이었다.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의 유연한 고용시스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유럽출신 학생이 미국시스템을 비판하자 상당히 강하게 논쟁에 나서면서 옐런교수는 미국시스템의 장점을 옹호했던 기억이 있다. 학생들은 교수가 미국시스템의 신봉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어쨌든 옐런교수도 유명한 분이라고 들었지만 내게는 당시 하스스쿨의 학장이던 로라 타이슨교수가 더 거물인 느낌이었다. (여성 파워!) 결정적으로 2001년 3월 옐런교수의 남편인 조지 애컬로프 버클리경제학과교수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수상소식이 발표되고 아마 다음날 있었던 경제학 수업시간에 모두 일어나서 옐런교수에게 남편의 수상소식을 박수를 치며 축하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옐런교수는 노벨상수상자남편을 둔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훗날 옐런교수가 노벨상수상자인 남편 애컬로프교수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될지는 정말 몰랐다. (내 기억에 의외로 학점도 박했다…ㅠ.ㅠ)

어쨌든 교수시절과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부드러운 화법으로 의회증언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옐런 연준의장의 모습을 보니 한국에서도 보다 많은 여성들이 고위직에 진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온갖 구설수끝에 어이없이 장관직에서 중도하차한 윤진숙장관의 케이스가 참 안타깝다. 뒤따르는 여성인재들을 위해서 좋은 롤모델이 됐었어야 하는데…

Written by estima7

2014년 2월 15일 at 9:21 오전

Mobile Biz in Japan-KAIST MBA강의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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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선교수님의 초청으로 가진 KAIST 정보미디어MBA 차세대웹수업 강의.

지난해 12월에 한 모바일 컨퍼런스에서 가진 발표가 계기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일본의 모바일인터넷에 대한 관심은 우연히 시작됐다. 일본을 자주 왕래하면서 그냥 지나치던 모바일관련정보에 대해 조금씩 더 알게 될 수록 신기하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는 일본의 모바일환경은 한국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PC인터넷환경이 뒤떨어진 탓에 기형적으로 모바일인터넷이 발전한 것이라고 낮춰보기까지 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렇게만 생각할 것이다)

내가 알게 된 것, 신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조금씩 사내 직원, 주위사람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일본갈때마다 관련 서적 한두권 사보기 시작하고 일본인들에게 궁금한 점은 물어보았다. 그리고 내가 알게 된 것을 더 많은 사람들과 효율적으로 나누기 위해 Keynote슬라이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대강이긴 하지만)
그 내용을 우연한 기회에 모바일 컨퍼런스에서 소개하게 됐고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한교수님이 그 내용을 다시 한번 MBA학생들과 나눠주길 부탁한 것이다.

사실 모바일 분야에 전혀 몸담아 보지 않은 ‘비전문가’의 어설픈 분석이지만 나름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학생들 덕에 힘이 났다. 한시간여의 내 이야기 다음에 계속된 학생들과의 질의응답도 재미있었지만 블로그를 통한 강의후기 공유도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9년전 내가 MBA수업을 들을때와 강의실의 모습과 형식은 별 변함이 없지만 이처럼 온라인, 블로그를 통해서 열띤 추가 학습과 토론이 이뤄진다는 점은 정말 감동. 인터넷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 힘이 나는 일이다.

Social Media 등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다른 주제들도 또 한번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아이폰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미국 모바일업계의 이야기도 더 흥미로운 내용이 많은데 그쪽 이야기를 많이 할 수가 없어서 아쉽기도 했다.

사족-미국의 비즈니스스쿨 여러 곳을 경험해본 나로서는 KAIST경영대학원은 시설과 분위기가 해외와 거의 동일했다. 강의실 모습도 마찬가지. 30대초반에 공부했었던 추억이 되살아 나면서 다시 한번 나에게도 ‘재교육’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강의실에서 자기 Name Plate를 앞에 끼워놓지 않았다는 점이 해외비즈니스스쿨과 달랐다. 이상하네 카이스트는 그렇게 안하나?

Written by estima7

2009년 2월 21일 at 12:47 오전

일본웹트랜드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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