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7월 2012
직접 이용해본 Airbnb의 가능성
지난 5월 개인적인 일로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왔다. 모교인 UC버클리에서 열리는 Reunion 행사와 샌프란시스코시내에서 열리는 벤처창업관련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숙소는 샌프란시스코시내의 교통이 좋은 곳에 자리한 값싼 호텔에 묵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정일을 며칠 안남겨두고 호텔예약을 하려고 했더니 웬만하면 모두 세금포함해 2백불이 넘는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모텔은 자동차가 없이는 접근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렌터카비용을 생각하면 결국 2백불이하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없었다. 바쁜 일정속에 내가 필요한 것은 단지 잠만 자면 되는 장소인데 그렇게 큰 돈을 지불하기는 너무 아까왔다. 잘못하면 2박에 한화로 50만원 가까운 돈을 쓰게 되는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Airbnb라는 웹서비스가 떠올랐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화제를 모으기 시작한 이 서비스는 값싼 숙박을 원하는 여행자와 집안의 남는 방을 대여해 수입을 얻고자하는 집주인을 인터넷으로 연결해주는 일종의 공유서비스다. Airbnb라는 이름은 간이침대를 뜻하는 공기침대(Air bed)와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여관인 B&B(Bed and breakfast)를 결합한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 같지만 나는 사실 이 서비스에 대해 좀 부정적이었다. 어떻게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을 자신의 집에 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또 어떻게 낯모르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편안히 묵을 수가 있을까? 이 두가지가 나의 가장 큰 의문이었다. 그래서 그다지 적극적으로 이용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샌프란시스코여행의 너무 비싼 숙박비용이 나로 하여금 Airbnb.com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도록 했다. 이 사이트에서 샌프란시스코와 버클리근처를 중심으로 검색해봤다. 그러자 샌프란시스코에서 멀지않은 오클랜드와 버클리쪽에 생각보다 많은 방들이 나왔다. 그중에 마음에 드는 방을 하나 발견했다. 1박에 겨우 54불이었다. 지하철역에서도 겨우 5분거리의 위치여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대중교통으로 3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30명이 넘는 예전 숙박객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실명으로 긍정적인 리뷰를 남겨놓았다는 것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또 집주인입장에서도 나를 페이스북 계정과 휴대전화번호로 실명인증을 해서 기본적인 신원확인은 할 수 있다는 점이 안심이 될 것이다. (몇몇 집주인들은 나에 대해 기본정보이상의 추가설명을 메일로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낮에 체크인하려고 갔는데 집주인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사소한 걱정이 있었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질문했다. 그러자 걱정할 필요 없고 그 시간에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답장이 몇시간안에 도착했다. 내 우려는 대부분 해소된 셈이다. 그래서 바로 웹사이트에서 카드로 결제했다. 2박 108불외에 Airbnb로 가는 12%의 커미션 13불을 더해서 총 121불을 냈다. 그러자 집의 약도, 주소, 집주인의 휴대폰, 이메일 등 연락처가 표시된 깔끔한 영수증이 이메일로 날아왔다.
실제 집에 묵은 경험은 내가 원하던 딱 그대로였다.(즉, 잠자는 것 이외에는 별로 바라는 것이 없었다.) 집주인인 젊은 부부는 내게 아파트의 현관과 집열쇠를 넘겨주었고 나는 그들을 방해할 필요없이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 내가 필요한 대로 아침 일찍 샤워한 후에 집을 나서서 볼 일을 보고 저녁에 들어와서 취침하는 방식으로 무사히 깔끔한 방에서 이틀을 보냈다. 집의 무선인터넷을 썼으므로 인터넷접속도 쉽고 속도도 빨리서 마음에 들었다. 체크아웃도 그냥 열쇠를 집주인에게 건내주는 것으로 끝이었다.
집을 떠나면서 이렇게 여분의 방을 렌트하기 시작한지 1년이 넘었다는 집주인에게 얼마나 자주 예약이 들어오느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믿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거의 매일 예약이 되어 있다”고 대답했다. 지하철역에서 워낙 가까와서 그런 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또 내가 체크아웃하면 바로 다음날 숙박비 108불이 Airbnb에서 자신의 계좌로 입금된다고 한다.
그 집을 나서면서 이거야 말로 비용을 절약하기를 원하는 여행자와 남는 방을 활용해 여분을 돈을 벌고자 하는 집주인 모두에게 윈윈(Win-win)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irbnb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여행에서 최소한 3백불은 더 숙박에 지불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친 김에 6월에 워싱턴DC를 방문하는 길에 Airbnb를 또 이용했다. DC도 샌프란시스코못지 않게 시내의 호텔비가 비싼 도시였기 때문이다. 1박 2백불이하로는 거의 호텔방을 구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DC 다운타운에서 버스로 10여분거리의 주택가에 있는 스튜디오를 1박에 120불에 빌렸다. 이번에는 집주인과 얼굴을 마주칠 필요도 없었다. 그가 이메일로 보내준 안내서에 따라 아파트앞에 달아둔 Lockbox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키를 꺼내 아파트에 들어갔다.
조용하고 깔끔한데다 집 바로 앞이 버스정류장이어서 특히 편리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집주인에게 메일로 물어보면 금새 답이 왔다. (집주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체크아웃도 집열쇠를 다시 Lockbox에 넣고 잠그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 이 스튜디오 역시 내 앞 뒤로 계속 숙박객이 있었다.
이처럼 내 Airbnb 경험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아마도 내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고, 집주인과 대면하기도 원하지 않았으며, 개인적인 여행이었기 때문에 괜찮았던 것 같다. 업무상 출장을 가는데 만약 집주인이 없어 집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집에 문제가 있어서 일정을 변경해야 한다면 큰 문제일 것이다.
김동주님(@mynameisdjkim)의 GeekTrip #2 – 불쾌했던 Airbnb 경험 포스팅에 보면 Airbnb로 예약을 하고 갔는데 집주인이 나타나지 않아서 발을 동동구른 상황이 묘사되고 있다.
호스트의 말에 따르면 아파트에 도착하면 현관문은 열려 있을 것이고, 탁자위에 키가 있을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철썩같이 믿고, 그 아파트에 도착을 했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다행히 집주인의 전화번호가 있어서 그 번호로 연락을 했는데 집주인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시간은 이미 오후 5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타지에서 오후5시가 넘었는데 숙소를 못 구할때의 당황스러움은 겪어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을것이다.
결국 김동주님은 Hotels.com을 통해 다른 숙소를 구했다. 물론 조성문님처럼 환상적인 Airbnb경험을 한 경우도 있다. 새로운 플랫폼 위에 지어진 비즈니스, Airbnb-조성문의 실리콘밸리이야기. 하지만 조성문님도 지금까지 4번정도 Airbnb를 이용해봤는데 이용경험이 그닥 좋지 않았던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Airbnb는 주목할 만한 모델임이 분명하다. 모델자체도 신선하지만 웹사이트를 참 잘 만들었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도 많지만 예약에서부터 결제, 이용까지 깔끔한 사용자경험을 제공한다.
이런 서비스는 외국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지만 적당한 가격의 호텔방은 찾기 힘든 서울에서도 잘 될 수 있는 모델이 아닐까?
사실 이미 비앤비히어로, 코자자 같은 한국형 소셜민박사이트들이 이미 한국의 Airbnb를 꿈꾸며 성업중이다. 이런 공유경제형 인터넷서비스가 페이스북이나 리뷰문화가 약한 한국에서도 제대로 뿌리내리며 성장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지켜봐야지.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 나이를 잊고 일한다는 것
미국에서 일하다 보면 여러 면에서 한국의 직장문화와 다른 차이를 느끼게 된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서로 나이에 비교적 연연해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 직장문화의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연공서열이나 장유유서의 개념이 희박한 미국 회사에서는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상관이거나,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부하로 두고 일하는 것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후배가 자기보다 먼저 승진하거나, 나이는 들어 가는데 일정 직급 이상 승진하지 못하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직을 떠나야 하는 한국 문화와는 확실히 다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우선 따로 존대어가 없는 영어를 쓴다는 것이 크다. 상하관계를 의식하지 않고 수평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호칭이나 직함을 쓰지 않고 이름만으로 서로를 부르는 문화도 크게 작용한다. 회사 사장에게 “정욱” 하고 이름만으로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언어습관 외에 제도적인 뒷받침도 크다. 직장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배제하기 위해서 많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3년 전 라이코스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놀란 것 중의 하나는 사장도 직원들의 인적사항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 80여명 되는 직원들을 좀 더 잘 알고 싶어서 인사담당 매니저에게 직원들의 신상파일을 보여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그는 “사장도 직원들의 나이·인종·결혼 여부 등의 인적사항은 볼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인사 업무상 필요한 담당 직원 이외에는 누구도 직원들 개개인의 인적사항을 알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직원을 채용할 때도 내가 최종면접을 하겠다고 하니 그는 “면접 때 물어봐서는 안 될 것”이 적힌 메모를 한 장 보여주었다. 그 메모에는 지원자의 나이, 종교 등은 물론이고 결혼 여부, 자녀가 몇 명인지, 아이를 가질 예정인지, 시민권은 갖고 있는지, 질병 이력이 있는지 등을 물어봐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었다. 또 고교나 대학을 언제 졸업했는지, 어떤 명절을 쇠는지, 어떤 억양을 쓰는지 등 나이, 종교, 출신국가 등을 유추해낼 수 있는 질문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력서에 사진, 주민등록번호, 키, 몸무게, 부모의 직업·학력까지 적는 문화에 익숙한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직장에서 상대방이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는 가급적 개인의 인적사항을 물어보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선입관을 갖지 않게 된다는 측면에서 장점이었다. 주어진 일만 잘하면 되지 나이, 성별, 인종 등이 무슨 상관인가. 물론 사람이 일하는 회사이니 친해지면 비공식적으로 나이나 결혼 여부 등 개인 신상을 대충 알게 된다. 하지만 적어도 채용 과정에서는 최대한 그런 요소를 배제하고 해당 직무에 적합한 사람인지만을 본다.
2년 전부터 인사담당 부장으로 나와 함께 일한 다이애나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다. 나는 50살 정도로 생각했는데 한번도 나이를 물어본 일이 없었다. 같이 일하면서 나이가 부담스럽기는커녕 오히려 그분의 다양한 경험과 연륜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조직을 원만하게 운영해가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러다가 최근 처음으로 그의 나이를 알게 되었다. 내 추측보다 10살이나 많은 60살이었다.
한국의 직장에서 60살 여성이 자기 아들뻘을 상관이나 동료로 삼고 부담 없이 일할 수 있을까. 미국이 이렇게 된 것은 지난 수십년 동안 소수자들이 줄기차게 차별에 항의하고 소송을 내어 고용차별을 철폐하는 법안이 제정되는 등 계속해서 감시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우리도 진지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7월 3일자 한겨레신문 오피니언란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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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 상관없이 일할 수 있는 문화는 예전부터 해보고 싶은 이야기여서 한겨레신문에 칼럼형식으로 써봤다. 그런데 지면의 제한 때문에 쓰고 싶은 내용을 다 쓸 수 없었다.
윗 글을 읽고 오해하면 안될 것은 모든 미국회사의 문화가 다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회사에 따라 연장자를 존경하고 나이를 중히 여기는 회사도 있을 것이다. 채용시에 겉으로는 차별하지 않는 척하면서 은근히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법적으로 물어봐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면접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지원자의 자녀가 몇명이라는 것이 드러나기도 한다. (본인이 먼저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또 사내 추천을 통해서 들어오는 경우 추천자를 통해서 알려지기도 한다.)
한번은 멀리서 출퇴근하는 어린 두 아이의 엄마를 채용할 일이 있었는데 한 임원이 “저 사람을 뽑으면 나중에 자르기 어렵다”고 뽑지 않는 것이 좋다고 내게 이야기한 일도 있었다. (그래도 뽑았다) 새로 들어오는 직원이 아이 5명의 엄마라고 해서 화제가 된 일이 있었는데 본인은 아주 불쾌해 하며 다음부터는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일도 있었다.
한 백인직원은 남부의 어떤 회사에서 일한 일이 있었는데 백인들이 흑인들을 차별하는 문화에 질려서 그만뒀다는 얘기를 내게 한 일도 있었다. 회사마다 분위기가 참 많이 다르다.
하지만 위에 적은 것처럼 어쨌든 한국과 비교해서는 미국의 직장문화가 상대적으로 휠씬 나이나 호칭, 상하관계를 덜 신경쓰고 일할 수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미국사람들이 특별히 더 나이스하고 훌륭한 사람들이어서 이렇게 나이차별이 없는 문화를 가지게 됐다는 것이 아니다.
언어습관 등의 문화도 있지만 이것은 오랜 시간동안 부당한 차별에 항거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정적으로 보지만 소송대국이라는 것도 한 몫을 했다. 뭐든지 차별이 있다고 보면 계속해서 소송이 이어졌고 그래서 한단계씩 직장에서의 차별이 법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법시스템이 바로 서있고 그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물론 미국도 한국못지 않게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상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것은 물론 부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역시 상대적으로보면 한국보다는 휠씬 법이 서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HR디렉터인 다이애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미국도 옛날에는 똑같았다”는 말을 한다. 매드맨이란 드라마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백인 남성들이 사무실에서 시가를 피우고 위스키를 마시는 남성위주의 세계, 여성들은 곱게 차려입고 비서나 타이피스트로만 일하는 세계가 매드맨에서는 펼쳐진다. 그 직장공간에 흑인이나 소수민족은 보기도 어렵다.
지금도 다이애나는 가끔 유럽에서 온 이력서를 보면 사진이나 생년월일, 여권번호 같은 개인정보들이 붙어있어서 놀란다고 한다.
나는 마틴 루터 킹목사를 비롯한 많은 선구자들 덕분에 미국내 아시안들도 비교적 차별없는 사회에서 살게 됐다고 생각한다.(세상을 바꾼 선구자들-여성마라톤의 경우 포스팅 참고)
한국에서도 말로만 차별이 있다고 하지말고 법적, 제도적 장치를 꾸준히 만들어나가고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그 부당성을 끈질기게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