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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실리콘밸리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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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과도한 기업 가치 거품이 빠지며 투자사인 소프트뱅크에 거액의 손실을 안긴 ‘위워크 사태’ 때문에 드디어 유니콘 스타트업의 거품이 빠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또 너무나 비싼 집값과 물가 때문에 실리콘밸리 탈출 현상이 벌어진다는 얘기도 있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닷컴붐이 2000년처럼 꺼지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2000년 버클리로 유학을 갔을 때 정말로 닷컴거품이 붕괴하면서 테크기업들이 채용을 동결하고 감원에 나서고 실리콘밸리의 경기가 얼어붙는 경험을 한 일이 있다.

과연 그런 일이 또 벌어질까. 실리콘밸리에서 사람들이 떠나고 있을까? 궁금해하던 중에 1년 만에 실리콘밸리에 11월초 다시 방문하게 됐다. 그리고 산호세부터 샌프란시스코, 버클리, 심지어 북쪽으로 소살리토, 보데가베이까지 짧은 시간에 많은 지역을 다녀봤다.

갈 때마다 항상 느끼지만 그 동네의 날씨는 정말 예술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체감한 실리콘밸리의 테크 열기는 예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여전하다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 얘기하면 집값은 피크에 비해 조금 빠졌고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도 조금 조정기기는 하다.) 다음은 내가 이번 실리콘밸리 방문에서 느낀 몇가지다.

우선 교통체증이 살인적이었다. 거의 30년 가깝게 실리콘밸리를 오가고 유학시절을 포함해 한 4년가까이 살아 보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길이 심하게 막히는 것을 본 일이 없다. 화요일 저녁 산호세 코트라 실리콘밸리에서 가질 테헤란로커피클럽 행사를 위해서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 근처 500스타트업 본사에서 미팅을 마치고 나름 3시쯤 일찍 차로 출발했다.

그런데 산호세까지 2시간반이 걸린다고 구글맵에 나왔다. “그럴리가…길이 막혀도 1시간반이면 가는 거리인데..”하면서 운전을 시작했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80 고속도로로 들어가는 길이 벌써 꽉 막혀있다. 한 블록을 움직이는데 15분 가까이 걸려서 간신히 탈출했다. 그리고 101고속도로쪽으로 나갔는데 역시 막혀서 잘 나가지 않았다.

두 명 이상이 동승해야 달릴 수 있는 카풀 차선이 나오는 것을 기대했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됐다. 카풀차선 구간이 얼마 안되기도 하고 카풀 차선을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을 준 테슬라 같은 친환경 전기차가 너무 많아진 탓인지 카풀 차선을 이용해도 길이 막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6시가 넘어서 코트라 실리콘밸리에 지각 도착했다.

특히 테크기업이 밀집한 샌프란시스코로 들어가고 나가는 것이 큰 스트레스였다. 워낙 교통체증이 심하고 주차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와 버클리에서 일정이 있던 날에는 샌프란시스코 바깥쪽에 있는 칼트레인 주차장에 아침에 일찍 가서 차를 세우고 대중교통으로 샌프란시스코와 버클리를 다녀온 다음 차를 픽업해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갔다.

아니 도대체 요즘에는 회사에 안나가고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들도 많고 교통혼잡을 피해 미리 움직이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는데 도대체 왜 이럴까 싶었다.

호텔 숙박비도 살인적이었다. 1년 전 1박에 약 200달러에 묵었던 호텔이 가격이 두 배 이상으로 치솟아 있었다. 코트라 실리콘밸리 차장님이 “예전에 200불 하던 호텔이 지금은 600불 합니다”라는 한 말씀으로 요즘 상황을 정리해주셨다.

일년전 호텔투나잇으로 1박에 205불(세금제외)를 주고 묵었던 샌프란시스코 닛코 호텔을 지금 검색해보니 1백에 거의 1천불이다. 4~5배 오른 것이다. 여기서 5박을 하면 약 700만원을 내야한다. 5성이 아니라 4성호텔의 일반 객실이다. 이처럼 주중에는 말도 안되는 호텔 가격이 나온다.

평범한 별 셋짜리 호텔에서 하룻밤 자는 데 50만~60만원을 줘야 한다. 모텔6 같은 거의 바닥권의 모텔에 가야 한 20만원대에 숙박할 수가 있다. 별로 좋지도 않은 호텔에 이 정도 돈을 지불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해서 사실 친구집에 가서 잤다. 실리콘밸리에 20여년 넘게 출장을 다녀봤지만 이처럼 호텔비가 말도 안되게 비싸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도 주중 주요 지역의 괜찮은 호텔은 방이 거의 없었다. 왜 그럴까.

이벤트가 워낙 많이 열려서 그렇다고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콘퍼런스가 샌프란시스코부터 새너제이까지 곳곳에서 열린다. 예전보다 더 많아졌다. 이런 이벤트에 참석하려고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든다. 큰 이벤트가 없는 날에는 호텔가격이 내려간다. 하지만 문제는 거의 매일처럼 이런 이벤트가 있다는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한 모빌리티 이노베이터스 포럼

나만 해도 지난 7일 오전에는 현대자동차의 샌프란시스코 콘퍼런스에 참석했다가 오후에는 팰로앨토의 트랜스링크 애뉴얼 미팅 이벤트에 참석했다.

팔로알토에서 열린 트랜스링크 애뉴얼 미팅

그날 내가 만난 KTB벤처투자 이호찬지사장은 “오늘만 4개의 행사에 참석해야 한다”며 바삐 움직였다.

한국, 일본, 중국에서 온 대기업관계자, 투자자들이 많았던 트랜스링크 애뉴얼 미팅 행사

생각해보면 실리콘밸리에는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수만명의 직원들을 거느린 공룡 테크 기업들이 즐비하다. 18년전 내가 유학할 당시만 해도 테크기업이 별로 없던 샌프란시스코에는 세일즈포스, 트위터, 우버 등 수십조 가치의 테크 상장기업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실리콘밸리지역 전체에는 줄잡아 100개가 넘는 1조원 이상 가치의 유니콘 스타트업이 있다. 내가 가본 샌프란시스코의 소파이(SoFi)라는 핀테크 유니콘만 해도 벌써 직원이 1500명이란다.

샌프란시스코의 SoFi 본사 로비

이들이 모두 빠르게 사무실을 확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회사에 적어도 각각 수백, 수천명의 직원이 있고, 또 성장을 위해 맹렬히 추가로 직원을 뽑고 있는 것이다. 4년전 스트라이프라는 회사에 방문했을 때 직원이 200명쯤 된다고 했는데 지금은 3천명이 넘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스트라이프는 이제 약 40조원 가치의 유니콘으로 성장했다.) 이렇다보니 실리콘밸리에 더이상 뽑을 사람이 없다. 그러니 전 세계에서 데려온다.

이런 혁신 기업에 좀 더 가까이 있고자 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또 실리콘밸리에 사무실을 연다. 한국 기업만 해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외에 한화, GS, 두산 등이 속속 지사를 만들고 있다. 트랜스링크 행사장에서 한화 드림플러스, 삼성화재 분들을 만났는데 이렇게 한국에서 실리콘밸리로 주재원으로 새로 나온 한국 대기업분들이 예전보다 휠씬 많아졌다.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네델란드 등 전세계 대기업에서 이런 식으로 실리콘밸리 주재원을 내보낸다. 주재원에 그치지 않고 아예 혁신센터를 만드는 회사들도 많다. 그러다보니 심지어 각국 언론에서 보내는 실리콘밸리 주재 기자들도 더 많아졌다. 실리콘밸리의 첨단 기술 트렌드를 미리 파악하고 본사와 나누고자 하는 것이다. 안테나 역할이다.

이처럼 다들 실리콘밸리로 들어가려고만 하지 철수한다는 얘기는 (내가 과문해서 그런지) 별로 듣지 못했다. 딴 지역으로 갔던 사람들도 일자리가 여기 더 많다며 다시 실리콘밸리로 돌아온다.

출처 : NBC Bay Area

새로 들어온 이들의 가족이 정착할 새로운 주택단지가 올라간다. 하지만 더이상 교통체증과 혼잡을 원하지 않는 기존 주민들은 새로운 단지 개발을 맹렬히 반대한다. 내가 살던 쿠퍼티노의 오래된 쇼핑몰을 허물고 대규모 주택단지를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데 주민들의 반대로 교착상태다. 땅값, 인력비용도 비싼데다 주민반대까지 극심하니 실리콘밸리의 주택 건축비용이 전세계에서 가장 비싸게 됐다는 보도까지 나올 정도다.

집값이 올라가 젊은 부부들이 쿠퍼티노로 들어오지 못하니 초등학교에 들어갈 아이들이 줄어든다. 그래서 이번에 쿠퍼티노의 초등학교 하나가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또 학교교사, 경찰관, 소방관 등 지자체의 중심역할을 하는 직업군 사람들이 비싼 실리콘밸리에 살 수가 없어 먼 지역에 살면서 힘들게 통근해야 한다는 뉴스도 자주 나온다.

애플, 페이스북 등 테크 기업들은 수조원을 기부해 캘리포니아의 주택 문제를 해소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런 이유로 해결은 쉽지 않다. 나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고 들어오는 사람들만 넘쳐나는 탓이다.

이런 중에 실리콘밸리 북쪽 소노마카운티에서 큰 산불이 났다. 인접 지역인 밀밸리에 사는 지인인 레베카 황은 “5일 동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모든 것이 정지했다”고 말했다. 교통신호는 물론이고 슈퍼마켓, 병원 그리고 주유소까지 모든 것이 다 불통이 됐다는 것이다. 더 북쪽인 보데가 베이에 사는 또 다른 지인은 산불의 위협으로 피난 명령이 떨어져 모든 동네 주민들이 집을 비우고 3일 동안 피난까지 갔었다고 말했다. 예전에 없던 규모의 큰 자연재해다.

이렇게 인구가 늘어나는데도 대중교통 시스템은 낙후된 그대로다. 샌프란시스코와 새너제이를 연결하는 칼트레인은 수십년 동안 변한 것이 없다. 느리고 이용하기 불편하다. 그나마 조금씩 확장하고 있는 지역 전철 바트도 한국의 지하철에 비하면 비싸고 지저분하다. 어쩌면 이렇게 나아지는 것이 없는지 이용할 때마다 기가 차다는 생각을 한다. 그나마 실리콘밸리의 많은 지역에서는 이런 대중교통수단은 그림의 떡이다. 직접 차를 운전하거나 우버를 이용해야만 어디엔가 갈 수 있다.

길거리의 노숙자들은 더 많아졌다. 샌프란시스코 곳곳에는 아예 길에 텐트를 치고 사는 노숙자들이 많이 보였다.

자동차 유리를 깨고 귀중품을 훔쳐 가는 도난 사고도 빈번하다. 카페에서도 갑자기 랩탑컴퓨터를 채가서 훔쳐 가는 도둑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여기저기 보인다. 억대 연봉을 받는 주민들이 가득한 실리콘밸리의 역설적인 모습이다.

이처럼 실리콘밸리의 명과 암은 극명하다. 세계최고의 고소득을 자랑하는 혁신가들이 살고, 최고의 경제호황을 구가하고, 덕분에 지방정부는 많은 세수를 올릴텐데도 사회인프라는 이렇게 열악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과연 실리콘밸리가 전세계 나라들의 롤모델로 맞을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한편 한국인에게 희망도 보였다. 실리콘밸리 테크 업계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의 숫자가 매년 크게 늘고 있는 것을 갈 때마다 체감한다. 센드버드, 타파스미디어, 몰로코 등 현지에서 쑥쑥 성장하는 한인 스타트업도 많아졌다. K그룹, 82스타트업 등 테크 업계 한인들의 모임도 활발하고 많은 이들이 참여한다.

82스타트업에서 인사말을 하는 사제파트너스 이기하 대표

그래서 현지 테크 기업에서 일하는 젊은 한인 엔지니어들이 창업을 꿈꾼다. 현지에서 열린 82스타트업 행사에는 60여명이 와서 창업자들의 발표를 듣고 있었다. 세마트랜스링크 김범수 대표, 사제파트너스 이기하 대표, 빅베이신캐피탈 윤필구 대표 등 막 창업한 초기 한인 창업가들에게 활발히 조언해 주고 투자하는 이들도 생겼다. 내가 만나본 한인 창업자들은 거의 다 이 분들을 만나서 창업 관련된 조언을 들어본 것 같았다.

한국 스타트업과 창업자들의 역량과 실력도 많이 올라가서 제품, 서비스의 질이나 투자유치에서 실리콘밸리 톱 스타트업들과의 격차도 많이 줄어들었다고 느꼈다. 예전에는 수백억이상 투자받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이야기를 들으면 살짝 기가 죽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에도 그 정도 투자를 받고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못지 않게 잘 성장하는 훌륭한 스타트업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인도계와 중국계가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인들이 쑥쑥 성장해 한국과 실리콘밸리를 잇는 가교가 되기를 기대한다.

테크기업들이 전세계를 좌지우지하게 된 지금 전세계의 테크 캐피탈이라고 할 수 있는 실리콘밸리가 번영을 구가하면서도 한편으로 겪고 있는 몸살은 넥스트 실리콘밸리를 꿈꾸는 다른 나라의 도시들에게도 뭔가 시사점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Written by estima7

2019년 11월 17일 , 시간: 9:57 pm

3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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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용한 글 잘 읽었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 댓글 남깁니다. 마지막에 “인도계와 중국계가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실리콘밸리”라고 하셨는데, 이게 minority 중에서 그들이 잘 하고 있다는 뜻인지 아니면 현지 미국인들까지 포함해서 말씀하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후자라고 이해하면서 읽었으나 좀 더 명확히 듣고 싶어서요)

    전 네덜란드에 있는 부킹닷컴 본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곳은 유럽이라 그런지 동아시아계는 아직 많진 않습니다. 인도계는 좀 있구요. 리더급들은 아직 백인이 많습니다.

    Inyong Suh

    2019년 11월 18일 at 7:35 am

    • 실리콘밸리의 중심부인 쿠퍼티노, 산타클라라, 서니베일 등에 가보면 얼마나 인도계가 많은지 느낄 수 있습니다. 코스트코 같은 곳에 가보면 “내가 지금 인도에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조차 하게 되죠. 점점 더 핵심 포스트를 인도계가 장악하고 있고, 창업도 많이 하고 구글 같은 회사의 CEO가 되기도 합니다. 중국계도 마찬가지로 강하지만 요즘 미중무역전쟁 때문에 조금 위축된 느낌이긴 하고요. 생각보다 일본계는 별로 없습니다. 물론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의 리더십은 아직 백인들이 많지만 점점 더 다양하게 되어 가는 느낌입니다.

      estima7

      2019년 11월 18일 at 9:0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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