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10월 2015
다양한 물고기가 사는 기업생태계의 중요성
나는 2006년부터 3년간 다음커뮤니케이션을 다닐때 임원으로서 여러가지 다양한 일을 맡았었다. 서비스지원본부, 서비스혁신본부, DKO, 대외협력본부, 글로벌센터 등 짧은 기간동안 다양한 일을 했다. 그러면서 많게는 150명쯤 있는 본부의 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라이코스CEO로 발령받아 미국 보스턴으로 떠났다.
다음시절 내가 맡았던 분야들은 처음에는 마케팅부터 영화, 금융, 미즈넷 등 미디어정보섹션쪽, 로그인, 빌링, 회원정보 등 인프라, 고객지원, 사업제휴, 대외홍보, 법무까지 정말 다양했다. 그야말로 포털회사에서 일하는 거의 모든 직군의 사람들과 같이 했던 느낌이다. 모두 20대와 30대중반의 젊은 직원들이었다. 그런데 요즘 그때 같이 일하던 본부원들을 테헤란로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일이 있다. 지난 9년간 다음이 어려가지 곡절을 겪으면서 그때의 동료들이 많이 회사를 떠났다.
그런데 요즘 느끼는 것이 그들중 쿠팡이나 카카오(다음과 합병전에 미리 가있었다는 뜻이다) 같은 회사에 가있는 친구들이 많다. 이들은 모두 밝은 표정으로 나에게 인사한다. 예전에 다음에서 같이 일할 때 주니어였던 친구들도 이제는 시니어로서 팀장이나 프로젝트리더로서 일을 하고 있다. 얼굴을 보니 일을 재미있게 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요즘에는 이들이 배달의 민족, 쏘카 등 더 다양한 스타트업회사로 퍼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처음 다음에 다니다가 라이코스를 떠나기 직전인 2006~2008년쯤에는 이직을 하려고 해도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네이버 아니면 SK컴즈(싸이월드)로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있었던 야후코리아도 사라지고 파란닷컴(KTH)도 사업을 접고 싸이월드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선택지는 더욱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나도 혹시 다음을 떠나야 하는 일이 생기면 어디를 가야하나 생각해봤는데 업계안에서 갈만한 회사가 네이버나 SK컴즈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 암담했었다.
그런데 좋은 스타트업이 많아지는 지금은 선택지가 넓어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중견급 팀장들도 경험있는 인재가 필요한 스타트업에 가서 CTO 등을 맡아 즐겁게 일하고 있다. 이제는 꺼꾸로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쪽의 인재유출을 걱정해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
고래만 몇 마리 있는 기업생태계보다 이처럼 많은 다양한 물고기가 있는 기업생태계가 휠씬 더 사람들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이렇게 다음 다닐때의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다. 내가 미국에 있으면서 목도한 보스턴이나 실리콘밸리의 기업생태계가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너무 좋은 회사들이 많고, 인재들이 나와서 새로 창업한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넘쳐 흘러서 인재들이 회사를 골라서 갈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들은 인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직원들에게 열심히 잘해줄 수 밖에 없다. 고용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
대기업에게 청년고용을 늘리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청년희망재단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이처럼 좋은 기업들이 많이 나오고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면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
혁신적 스타트업, 왜 한국에서는 쉽게 등장하지 못할까
미국에서 5년간 살다가 2013년말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국의 스타트업을 돕고 바람직한 스타트업생태계를 만드는 일을 시작한지 이제 2년이 되어 간다. 그런데 그동안 관찰한 결과 정부가 창조경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창업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지만 생각만큼 다양한 분야에 걸쳐 스타트업이 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 쿠팡으로 대표되는 소셜커머스분야나 배달의 민족이 있는 O2O분야, 선데이토즈, 데브시스터즈가 떠오른 모바일게임분야를 제외하고는 아직 많은 성공사례가 나오지는 않았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다.
특히 몇몇 분야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불모지에 가까왔다. 금융분야에서 혁신을 추구하는 핀테크스타트업이 전세계적으로 수천개씩 쏟아나와 있는데도 한국에는 지난해까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스마트폰과 택시를 연결해주거나 일반인이 자신의 차로 직접 택시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미국의 우버, 리프트나 중국의 디디타처 같은, 교통분야에서의 혁신을 추구하는 서비스들이 전세계적으로 다양하게 뜨고 있는데도 한국은 최근에 카카오택시가 인기를 끌기 전까지는 유사한 서비스가 거의 없었다.
중국의 DJI 같은 기업이 일반 대중이 즐길 수 있는 드론을 만들어 세계시장을 호령하고 세계적으로 다양한 드론기업이 수백개 쏟아져 나올 동안에도 한국에는 드론파이터라는 드론을 만드는 바이로봇외에 눈에 띄는 드론기업이 없었다.
스마트폰시장에서도 샤오미나 원플러스 같은 새로운 중국 스마트폰 스타트업들이 등장해 중국은 물론 세계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동안 한국시장에는 새로운 기업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팬택은 쓰러지고 LG전자의 스마트폰비즈니스는 더욱 고전하는 중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왜 한국에서는 이런 핀테크, 드론, 교통, 스마트폰 분야의 혁신스타트업이 잘 나오지 않을까. 단지 시장이 작아서 그런 것인가. 그 이유를 몇가지 생각해봤다.
미국의 규제스타일은 네거티브형, 한국은 포지티브형.
미국의 도로에서는 아무 교차로에서나 유턴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유턴을 할 수 없는 곳에만 금지표시가 되어 있다. 규제시스템도 비슷하다. 안되는 것(Negative)만 표시해놓고 규제대상으로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은 자유롭게 해봐도 되는 시스템이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를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에서 도전을 하는 기업이 많이 나온다.
한국같으면 위법이라 못할 사업도 미국에서는 거침없이 한다. 2015년 2월 삼성전자가 약 2천5백억원을 주고 인수한 루프페이 윌 그레일린CEO를 컨퍼런스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직접 물어봤다. 루프페이는 신용카드정보를 읽어서 스마트폰에 집어넣는 방식인데 기존 카드회사들의 허락을 받고 했냐고 했다. 그랬더니 “그런 규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해도 된다. 허락받지 않고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덕분에 루프페이는 이런 신기술을 킥스타터를 통해 ‘시도’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삼성전자의 연락을 받았다.
한국같으면 카드정보를 스마트폰에 저장한다는 것부터 위법일 가능성이 있고 또 카드회사들의 반발로 시작도 하지 못할 아이템이다. (실제로 모카드회사분에게 물어본 일이 있는데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루프페이의 기술을 이용해 삼성페이를 개발해 8월20일부터 국내서비스를 시작했고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루프페이가 만약 한국회사였다면 이런 기술을 개발해 선보이고, 삼성 같은 대기업에 인수될 가능성은 아주 희박했을 것이다.

지금은 6조가 넘는 기업가치의 회사가 됐지만 2007년 렌딩클럽도 아주 미약하게 시작했다. 2007년 페이스북위에서 투자자와 돈을 빌리고자 하는 사람들을 중계해주는 회사로서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스타트업이 규제를 신경쓰지 않고 시작했더라도 회사가 덩치가 커지면 그때 규제당국이 나선다. 소비자보호를 위해 필요할 경우다. 개인간의 투자와 대출을 연결해주는 렌딩클럽의 경우 2007년 창업후 규제에 상관없이 비즈니스를 키우다가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의해 영업정지를 당했다. 하지만 6개월뒤 규제기관과 합의를 했고 P2P대출이 제도권에서 인정을 받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P2P대출은 미국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의 도로에서는 유턴은 무조건 안된다. 허용되는 곳에만 표지만이 있다. 규제시스템도 비슷하다. 허용되는 것만 촘촘하게 규정해놓은 가이드라인이 있고 그곳에 없는 것을 하면 무조건 위법이다. 규제에 걸릴 것 같더라도 소비자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으면 우버처럼 일단 질러보는 미국의 스타트업들과는 달리 한국의 스타트업은 시작하기도 전에 법령을 세심히 살펴야 한다. 사후규제가 아니고 사전규제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국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필요이상으로 법률지식에 해박하다. 제품개발보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이라든지 전자금융거래법 몇조 몇항을 외울 정도로 해박하게 알고 있는 스타트업창업자들을 만나서 놀라기도 했다. 이런 꼼꼼한 규제는 창업자들의 상상력을 제한한다. 그리고 결국 그들을 좌절시키고 포기하게 만든다.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인 트랜스링크캐피탈의 음재훈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규제시스템은 방목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커다란 목장에 양떼를 풀어놓고 울타리를 쳐놓는 식이죠. 울타리안에만 있는 한은 마음대로 뭐든지 해보라는 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혁신이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더 많은 데이터를 공개하는 미국, 데이터를 감추는 한국.
미국은 공공데이터를 되도록 많이 공개한다. 법원의 판례정보, 부동산거래정보 등등 수많은 공공데이터가 공개되어 있고 그 데이터를 가공해서 판매하는 데이터업자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해서 자동으로 투자를 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거나 개인이나 기업의 공개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용분석을 해주는 핀테크기업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빅데이터 산업도 이런 기반위에서 성장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공공기관도 사기업도 데이터를 꽁꽁 싸매고 공개하지 않는 편이다. 공개를 하더라도 가공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엄격한 보안규정도 그렇고 개인정보보호법이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스타트업이 공공데이터에 기반한 사업을 시작하기가 어렵다.
아웃소싱문화의 미국, 전부 직접 내부에서 해야 하는 한국.
미국기업들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핵심비즈니스에만 집중한다. 그렇지 않은 것은 주저 없이 외부기업의 제품을 사서 쓴다. 예를 들어 휴렛패커드 같은 대기업이 사내 인사관리시스템은 워크데이라는 외부기업의 인사관리 소프트웨어를 계약해서 쓴다. 내부에서 직접 만들어 쓰지 않는다. 핵심에만 집중하기 위해서다. 이런 풍토가 뛰어난 역량을 지닌 외부 소프트웨어회사들이 클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반면 한국기업들은 어떤가. 외부 회사의 제품을 쓰지 않는다.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그룹내 계열IT회사를 시켜서 직접 제작하거나 하청을 줘서 만들어서 쓴다. 최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가져다 쓰기 보다는 좀 품질이 떨어져도 내부 계열사의 것을 우선해서 쓴다. 그렇게 하다보니 역량있는 독립 소프트웨어회사들이 클 수 있는 자리가 없다. 올해부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제품을 쓰지만 삼성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문서작성을 하는데 내부에서 만든 훈민정음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했다.
좋은 품질의 외부제품보다 내부 계열사의 제품을 쓰는 것을 우선시하는 이런 문화는 기업들의 전체적인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 그리고 국내에서 큰 B2B(엔터프라이즈)소프트웨어회사가 나올 수 없게 한다. 정부나 기업이 사주질 않으니 나올 수가 없다. 기업들은 하청업체처럼 쓸 수 없는 오라클, SAP, 마이크로소프트 등 외국대형소프트웨어회사들의 소프트웨어정도를 직접 구매한다.
혁신에 둔감한 리더
그리고 한국은 정부나 기업의 최고의사결정권자들이 혁신을 받아들이는데 둔감하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은 요즘 이메일 때문에 궁지에 몰려있다. 국무장관시절 사설 이메일서버를 써서 주고 받은 이메일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FBI가 힐러리가 사설이메일서버를 통해 국가기밀이 담긴 이메일을 주고 받은 일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는데 그 이메일갯수가 3만여통이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장관들이 얼마나 업무에 이메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지 알 수 있다.
또 젭 부시 등 공화당 대선후보들은 우버를 옹호하며 유세중에 우버차량을 불러서 이용하기도 한다. 4백60만명의 팔로어를 가진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의 달인’이다. 이처럼 미국의 교수, 기업인, 관료 등 지식인들을 만나보면 능수능란하게 트위터, 블로그 등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며 우버 등 새로운 혁신서비스를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금태섭변호사의 신간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에는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이야기가 나온다. 국가의 IT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이메일도 쓸 줄 모른다는 것이다. 얼마전 나는 장관 등 고위직을 역임한 분들이 많은 그룹에 강연을 하면서 인터넷쇼핑이나 인터넷뱅킹을 직접 하시는 분이 계신지 물어보았다. 20여분의 그룹에서 단 2명이 손을 들었다.
지금은 정부부처의 상당수는 세종시로 옮겨가 있고 많은 정부산하기관들이 전국으로 이전해있다. 그런데 내가 만나보는 상당수의 공무원이나 산하기관직원들은 출장을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화상회의나 컨퍼런스콜을 하면 간단히 끝날 일을 위해 하루를 날린다. 물어보면 고위층일수록 이메일이나 화상회의에 익숙하지 않다고 한다. 그냥 오라고 한다는 것이다. 클라우드서비스조차 다 차단해놓아서 외부에서 업무를 보는 것도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
이처럼 최종의사결정권자인 사회고위층이 혁신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미국보다 한국이 휠씬 보수적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혁신기업이 더디게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런 경우 혁신기업에 대해 우호적인 정책이나 투자, 인수합병 등의 의사결정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뭔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 가치를 제대로 산정하고 투자를 하겠는가.
한국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의 혁신스타트업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위에 열거한 규제시스템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 한국에서 창조경제가 불을 뿜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통령과 장관들부터 직접 솔선수범해서 혁신트렌드를 배우고, 혁신스타트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직접 쓰는 모습을 보고 싶다.
***
지난 8월 31일 한국일보에 기고했던 글을 다듬어서 다시 블로그에 써봤습니다.
마션의 원작자 앤디 위어의 1년8개월전 구글강연
화제의 소설 마션(The Martian)을 읽고 영화도 봤다. 맷 데이먼 주연,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은 원작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살린 훌륭한 영화다. 다만 원작을 읽은 분들은 책에서 마크 와트니가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이 많이 생략되어 있어서 아쉬웠을 것이다.
책과 영화의 여운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나는 유튜브를 검색해서 마션의 원작자인 앤디 위어가 1년8개월전에 구글에서 가졌던 강연동영상을 찾아냈다. 호기심에 약간 들여다본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끝까지 다 봤다.
흥미로웠던 포인트 몇가지를 메모.
- 앤디 위어가 소설 집필을 위해 만든 Orbit이라는 프로그램. (14분 40초지점 소개)
위어는 마션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쓰기 위해서 실제 지구, 화성, 그리고 헤르메스호의 궤적을 시뮬레이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소설내에 나오는 헤르메스호의 항해궤도와 지구와의 통신소요시간 등은 모두 이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뒤에 쓴 것이라고 한다. 작품에 묘사되는 내용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직접 코딩까지 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소설가가 얼마나 많이 있을까.
2. 그가 마션을 출간하게 된 과정.(22분지점)
마션은 원래 그가 블로그에 토막토막 쓰던 글이다. 인기를 얻자 독자들이 “읽기 쉽게 한권의 전자책으로 엮어줄 수 없느냐”는 요청을 했다. 그래서 킨들에 넣어서 읽기 쉽도록 하나로 모아서 ePub, mobi 포맷으로 만들어서 그의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그러자 그것도 어렵다며 “킨들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도록 아마존에 올려줄 수 없느냐”는 요청이 들어왔다. (전자책파일을 다운받아 킨들에 파일로 전송하는 것은 처음해볼때는 조금 복잡하긴 하다.)
그래서 그가 아마존 킨들플랫폼을 확인해보니 누구나 전자책을 쉽게 출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다만 아마존은 자선단체가 아닌지라 최소가격으로 99센트를 부과하도록 되어 있었다. 어쨌든 독자를 위해서 그는 99센트에 아마존 킨들버전으로 책을 공개했다.
그리고 그는 아마존의 전자책 유통능력에 놀랐다. 그의 웹사이트에서 공짜로 공개한 것보다 휠씬 많은 사람들이 킨들을 통해서 그의 책을 99센트에 구매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SF소설 랭킹 톱 10에 오르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됐다.
그렇게 조금씩 주목을 받게 되자 랜덤하우스의 줄리안이란 편집자가 그의 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위어에게 바로 접촉하지는 않고 북에이전트인 데이빗에게 “이 책 한번 읽어보고 출간계약을 할만한지 의견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데이빗은 책을 읽고 나서 “충분히 출간할 만한데 잠깐만 내가 먼저 이 작가의 전속에이전트로 계약해야 겠다”고 하고 위어에게 연락해서 먼저 에이전트계약을 했다. 순발력이 대단하다. 그리고 데이빗이 나서서 랜덤하우스와 출간계약을 해줬다.
한마디로 위어는 돈에도 관심이 없었고, 책을 유명출판사와 계약하는데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콘텐츠의 내용이 워낙 좋으니 독자의 호응으로 SF웹소설이 저절로 주류시장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자가출판(Self publishing)이 가능한 아마존 킨들이라는 플랫폼의 힘이 있었다. 즉, 이런 전자책 플랫폼을 통해 앞으로는 숨겨진 좋은 작가들이 더욱 더 쉽게 나올 수 있게 될 것 같다.
3. 화성의 모래폭풍.(32분40초지점)
마션은 대단히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쓰여진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옥의 티가 있는데 그것은 도입부에 나오는 모래폭풍이다. 화성의 대기밀도는 지구에 비해서 극히 낮기 때문에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부상을 입고 날라갈 정도의 모래폭풍이 생길 가능성은 아주 낮다. 작가인 위어는 이 강연 동영상에서 “비밀인데 사실은 화성에 강력한 모레폭풍은 없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극적인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 이 부분은 타협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
앤디 위어는 이 구글에서의 강연을 책이 정식 출간된지 이틀만에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편한 분위기다. 유명해지기 전이어서 그런지 청중도 많지 않다. 덕후스러운 분위기가 넘치는 구글직원들의 질문도 재미있고, 그런 질문에 자신있게, 재치있게 답하는 위어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NASA의 조직과 내부 정치가 너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고 혹시 직접 취재하고 쓴 것인지 상상한 것인지 물어보는 질문에 “다 만들어낸 것이다.(Made it all up!)”이라고 일말의 주저도 없이 자신있게 대답하는 모습이 매력적이다.(29분20초지점)
낙천적인 성격에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문제의 해결방법을 과학적으로 모색하는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의 캐릭터는 앤디 위어 그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20세기 폭스사가 판권을 사갔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 책이 영화화될지 모른다는 얘기도 한다.
또 그는 당시 모바일아이언이라는 회사의 안드로이드개발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다음 책이 계약되면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될 것이라는 말을 한다. 지금은 아마도 그렇게 됐을 것이다.
어쨌든 그의 강연동영상에서 기술의 진보에 대해 항상 낙천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모습을 봤다. 이 책을 쓴 계기도 사람을 화성에 보낸다면 어떻게 할까를 과학적으로 상상해보면서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앤디 위어에게서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긱(Geek-덕후)의 모습을 봤다. (자기는 자신을 Dork이라고 표현한다. Dork은 Geek보다도 더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다. 좀 심한 오타쿠라고 할까.)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실리콘밸리가 실리콘밸리인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달은 것. 미국에서는 이런 과학소설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우주탐사에 대한 동기부여를 해주는 강력한 로켓같은 추진력을 낸다. 그렇게 해서 미국의 과학기술이 항상 세계를 리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어려운 한국의 기업생태계
대기업간의 불공정한 내부거래는 그 기업의 자체 경쟁력을 갉아먹는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스타트업들의 비즈니스 기회를 앗아간다.
어떤 대기업이 글로벌시장에 내놓고 경쟁해야 하는 하드웨어제품이 있다고 해보자. 그리고 그 하드웨어는 인터넷에 연결해 사용하는 요즘 유행하는 사물인터넷(IoT)제품이다. 그런데 이 제품을 개발하고 서비스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클라우드(Cloud)서비스도 IT계열사에서 만든 것만 써야 하고, 그 콘텐츠플랫폼을 올릴 통신망도 계열통신사의 것만 가능하고, 핵심부품도 관련계열사가 만든 것위주로 써야 한다면 어떨까. 제품을 배송하는데 필요한 물류도 관련 계열사를 써야 하고, 광고 마케팅도 계열사인 광고대행사만 써야 한다면 어떨까. 각 분야에서 최고로 잘하는 회사들의 서비스를 써서 제품을 만드는 경쟁사와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그리고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 쓰는 사무용소프트웨어까지 계열 IT회사에게 의뢰해서 개발시킨다면 어떨까. 설사 외부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쓰더라도 관련 계열사를 통해서만 구입하게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제품의 원가가 높아진다. 제품의 경쟁력도 떨어진다. 계열사끼리의 비즈니스는 결국 거져먹는 장사라고 생각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도 안할 것이다. 한마디로 그 안에서는 경쟁이 없는 것이다.
해외 같았으면 이런 방식으로 경영하는 회사는 일찌감치 경쟁에서 밀려서 탈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하는 것이 그동안은 먹혔다. 덩치를 키워서 그룹의 물량만 내부에서 소화해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계열회사를 통해서 외부소프트웨어 등을 구입할 때는 갑을관계를 이용해 최대한 가격을 깎아서 오히려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심지어 그룹 임직원들에게 다른 경쟁사의 제품을 쓰지 못하게 하고, 계열사의 제품을 그룹임직원과 가족에게 강매하는 경우도 있다.
그룹의 대표상품을 만드는 핵심회사는 이렇게 해서 국내시장을 장악했고 여기서 얻은 힘을 바탕으로 해외에는 국내보다 더 싸게 제품을 팔아서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갔다.
이런 식으로 하다보니 이런 성을 쌓은 성의 성주(소위 오너)들 입장에서는 왕국의 규모를 크게 키우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일단 성의 규모가 커지면 정부와 언론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가져가는 것이 중요했다. 각종 사업권, 면허를 정부로부터 얻고, 독점시장에 경쟁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규제의 틀을 지키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런 카르텔을 언론이 문제삼지 않도록만 하면 웬만해서는 이 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오너들은 계열사의 사장은 누가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게 됐다. 어차피 내부거래로 쉽게 장사하는 이상 계열사의 사장들은 말 잘 듣는 충성스러운 사람을 월급쟁이로 앉히면 된다. 능력보다는 이런 문화를 깨지 않는 충성심이 우선이다. 그러니 이런 문화를 이해 못하는 외국인 경영자는 못 데리고 온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타겟으로 삼은 B2B소프트웨어스타트업들의 광고를 심심치 않게 본다. 이 Onelogin이라는 스타트업은 유니콘스타트업(가치가 1조이상되는 비상장스타트업)을 겨냥해 이런 광고를 냈다.
문제는 이런 한국의 대기업위주 기업생태계가 작은 물고기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기업관행은 수많은 작은 회사들이 대기업과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다. 대기업을 상대로 판로를 개척한다고 해도 대기업 IT계열사들을 통해서 을이나, 병 관계로 해서 값싸게 간접적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팔게 된다. 당당하게 자신의 제품을 가지고 대기업과 파트너십을 가져간다는 것은 꿈같은 얘기다. 오히려 거래 중소기업이 잘 되는 것 같으면 거래단가를 깎거나 계약을 파기하는 방식으로 견제한다.
이런 불공정한 거래, 카르텔구조를 깨야 혁신적인 제품을 가진 작은 회사들이 비즈니스를 키워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문화가 없어지지 않는한 성공한 회사들도 성장하면 다른 기업과 똑같이 계열사를 만들어서 성을 쌓게 된다. 규모가 커지는데 따라 계열 IT회사를 만들고, 건설회사를 만들고, 광고회사를 만든다. 덩치를 키우는데 급급하다. 어줍잖게 그룹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행세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니 동반성장을 하는 건전한 생태계는 없고 각 재벌 그룹사들의 크고 작은 생태계만 넘친다. 그런 생태계가 유지되도록 정부가 라이센스를 주고 보호막을 쳐준다. 오너가 범법을 저지르더라도 타이밍을 봐서 사면해 준다. 큰 기업이 어려워지면 국책은행을 동원해서 구제금융을 해준다. 이런 정부의 따뜻한 도움에 대기업들은 대규모투자계획과 채용계획을 발표하면서 화답한다. 이것이 한국적 기업생태계다. 실리콘밸리에서 보는 것처럼 작은 기업들이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만을 가지고 급성장을 하기는 참 힘들다. B2B시장은 막혀있고 B2C시장의 많은 길목도 대기업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실리콘밸리 스톰벤처스의 남태희디렉터를 만났다. 그 분은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어려운 한국대기업생태계의 문제를 그림까지 그리며 설명해주셨다. 위쪽이 B2C, B2B시장이고 아래쪽이 스타트업, 그 중간이 Goto market채널이다. 빗금친 부분이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다. 즉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피해 위로 올라가기가 극히 어렵다.
미국은 수많은 기업들이 자신의 전문분야에만 집중하고,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성장하는 혁신중심 기업생태계를 갖고 있다. 역동적이다. 우리와 기업생태계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 일본만해도 일찌기 재벌이 해체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휠씬 더 다양성이 존재하는 기업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해외출장을 다니며 외국의 상대적으로 건전한 기업생태계를 보면서 부러웠다. 한국의 이런 재벌중심 기업생태계와 문화가 좀 바뀌어야 진정한 창조경제가 이뤄질 것 같다. 결국 공정한 시장을 위한 감시자가 되야 하는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의 분발을 촉구한다.
한글날 가볼만한 국립한글박물관
한글날 기념포스팅. 지난 월요일 개관 일주년 기념으로 새로운 전시기획물을 선보인 국립한글박물관에 갔다.
새로운 전시물의 이름은 ‘디지털 세상의 새 이름_코드명 D55C AE00‘. 개인적으로 전시명이 너무 어려운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한글이 컴퓨터와 만나서 어떻게 자리를 잡게 됐는지 그 역사를 보여준다. 한글날 한번 가볼만한 곳이라고 생각해서 찍어둔 사진 몇장 소개.
이 기획을 소개하면서 김상헌 한글박물관 후원회장은 레고로 만든 훈민정음해례본 등 흥미로운 전시물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중학생시절 내가 컴퓨터에 처음 관심을 갖게 만든 제품. 삼보컴퓨터에서 만든 트라이젬 컴퓨터. 애플II의 클론제품이다. 이 제품을 가지고 컴퓨터를 가르치는 입문강좌를 들으러 여의도 삼보컴퓨터본사까지 갔었다.
내가 컴퓨터를 배우고 싶다고 조르자 어머니가 어디 컴퓨터학원을 찾아서 등록해주셨다. 그곳에서는 삼성의 SPC-1000을 가지고 BASIC언어를 배웠다. 카세트테이프에 작성한 코드를 저장하던 기억이 새롭다. HU-Basic이었던가.
대학교에 가서 IBM-XT호환기종을 사고 나서는 보석글에 의존했다.
그러다가 아래한글 워드프로세서를 만난뒤 신세계가 열렸다.
당시에는 DOS환경에서 한글을 쓰기위해 벼라별 노력을 다했다. 그 중 하나가 도깨비한글.
DOS에서 한글을 소프트웨어적으로 구현해주기도 했고 보다 빠른 속도로 쓰려면 도깨비한글카드를 사서 끼웠던 것 같다.
완성형한글이 얼마나 우리를 괴롭게 했는지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지난 일년사이에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마다 애용하는 우아한 형제들이 만든 한나체도 전시되어 있다.
전시물을 돌아보고 옛날 생각을 하면서 지금 컴퓨터환경이 얼마나 좋아진 것인지 다시 실감했다.
어쨌든 국립한글박물관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바로 옆에 있다. 관람료는 무료이니 시간되시는 분들은 한번 가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