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 EstimaStory.com

Thoughts on Internet

Archive for 2월 2014

평등한 토론에서 나오는 혁신

with 20 comments

예전에 카리스마가 넘치는 리더가 주재하는 어떤 한국 회사의 회의에 초대되어 간 일이 있다. 6명쯤이 같이 한 회의였는데 한 시간 동안 그 리더와 나 둘이서만 이야기했다. 이상하게도 그 리더 밑에서 일하는 다른 참석자들은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반면 그 리더는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회의가 끝났다. 그러자 그 리더는 사무실로 들어가고 남은 사람들은 “차 한잔 하자”며 나를 잡아끌었다. 회사 밖의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며 그들은 그제야 내게 이야기를 걸어왔다. 그래서 “아니 왜 아까는 전혀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리더가 부하들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고 의견을 내면 면박만 준다. 그래서 점차 시키지 않으면 아무도 말을 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조금이라도 심기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벼락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위계질서와 자기검열이 이 정도로 심한데 무슨 좋은 아이디어가 이 조직에서 나오고 실행될 수 있을까. 그 리더가 스티브 잡스라도 이런 조직에서는 혁신을 이뤄내기 어려울 것이다.

얼마 전에 이스라엘에 다녀왔다. 이스라엘인들은 회의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거침없이 난상토론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몇년 전에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사람들과 워크숍을 한 일이 있다. 그때 서로 싸움을 하듯이 거칠게 자기주장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상대적으로 나는 조용히 듣기만 했는데 나중에 상관인 이스라엘 CEO에게서 주의를 받았다. “모든 사람이 다 자기 머릿속에 있는 의견을 꺼내놓아야 한다”며 나에게도 적극적으로 회의에 참여해 의견을 낼 것을 주문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만난 한 이스라엘 벤처기업 임원에게도 당신들도 그렇게 평등하게 회의에서 토론하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는 “좀 극단적으로 느낄 수 있겠지만”이란 단서를 달며 이렇게 설명했다. 자기 부하가 CEO와 임원인 자기와 같이 회의를 할 때 CEO나 임원의 의견에 대해서 “어리석은 생각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하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말을 할 수 있고 그것을 CEO나 임원들이 받아들이는 문화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첨단 스타트업 기업들이 쏟아져 나오는 ‘창업국가’로 유명하다. 과연 이런 명성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D스쿨과 데이빗 켈리(사진출처 스탠포드대와 IDEO홈페이지)

D스쿨과 데이빗 켈리(사진출처 스탠포드대와 IDEO홈페이지)

혁신적인 디자인 사고를 가르치는 곳으로 유명한 미국 스탠퍼드대의 D.School이라는 곳이 있다. 이 학교의 공간을 디자인한 세계적인 디자인컨설팅회사 아이디오의 데이비드 켈리는 <공간 만들기>(Make Space)라는 책 서문에 이렇게 썼다.

“새로운 공간을 만들면서 우리의 첫번째 과제 중 하나는 학생들과 교수진의 위치를 평등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실에 들어오면 누가 가르치는 사람인지, 누가 배우는 사람인지 판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혁신은 이런 평등함 속에서 번창합니다. 보스나 교수가 방의 머리 부분에 서 있으면 마치 ‘무대 위에 서 있는 현인’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보스가 내 생각을 싫어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에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공간적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참여를 진정으로 환영한다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One of our first challenges was to equalize the respective status of students and faculty. When you walk into one of our classes, it’s almost impossible to tell who’s teaching and who’s learning. Innovation thrives on this kind of equality. With a boss or a professor standing at the head of the room, it feels like a “sage on stage”-people are reluctant to share their ideas(“What if the boss doesn’t like it?”). Reconfiguring the physical relationship is a powerful signal that participation is truly welcome. -David Kelley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다양한 의견에서 나온다. 회의석상에서 윗사람이 권위로 아랫사람을 짓눌러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나온 아이디어가 발전하기도 어렵다. 여러 사람이 모인 ‘팀’의 힘을 증폭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창조경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회의실에서 권위주의를 몰아내고 모두가 평등하게 말할 수 있는 문화를 북돋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한겨레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으로 기고한 글.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스티브 잡스의 ‘run by ideas, not hierarchy’ 라는 말이 생각났다. 예전에 블로그에 썼던 글이지만 워낙 인상에 남는 부분이며 ‘평등한 토론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낳는다’는 윗 글의 주제에도 연결되는 것 같아 다시 옮겨본다.

(2분 50초지점부터 아래 부분 시작)

Jobs: What I do all day is meet with teams of people and work on ideas and solve problems to make new products, to make new marketing programs, whatever it is. (내가 하루종일 하는 일은 팀원들과 만나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궁리해내거나 신제품을 만드는데 있어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마케팅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등입니다.)

Mossberg: And are people willing to tell you you’re wrong? (그럼 직원들이 (잡스가 틀렸을때) 당신이 틀렸다고 기꺼이 발언을 하는지요?)

Jobs: (laughs) Yeah.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럼요.”)

Mossberg: I mean, other than snarky journalists, I mean people that work for… (내 말은, 짜증나는 기자들이 아닌, 당신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 직원들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죠.)

Jobs: Oh, yeah, no we have wonderful arguments. (아, 물론이죠. 우리는 항상 멋진 논쟁을 벌입니다.)

Mossberg: And do you win them all? (그럼 당신이 항상 모든 논쟁을 이기겠지요?)

Jobs: Oh no I wish I did. No, you see you can’t. If you want to hire great people and have them stay working for you, you have to let them make a lot of decisions and you have to, you have to be run by ideas, not hierarchy. The best ideas have to win, otherwise good people don’t stay. (아닙니다. 내가 모든 논쟁을 다 이겼으면 좋겠지요. 하지만 그럴수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만약 뛰어난 사람들을 채용하고 그들이 당신을 위해서 계속 일하게 하고 싶다면 그들이 많은 결정을 직접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결정은 회사의 계급에 따라 이뤄져서는 안되며 아이디어에 따라 이뤄져야 합니다. 최고의 아이디어가 항상 논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훌륭한 사람들은 회사를 결국 떠나게 됩니다.)

Mossberg: But you must be more than a facilitator who runs meetings. You obviously contribute your own ideas. (하지만 잡스 당신은 단순히 회의를 진행하는 사람이 되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요? 자신의 아이디어로 기여하고 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Jobs: I contribute ideas, sure. Why would I be there if I didn’t? (물론 나도 내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Written by estima7

2014년 2월 21일 at 11:09 오후

진격의 페이스북

with one comment

2014년 2월4일자로 이 세상에 등장한지 10주년을 맞은 페이스북을 나는 한 7년정도 써왔다.

2004년 2월 하버드대학의 내부 SNS로 등장해 성장하던 페이스북은 약 2년반만인 2006년 9월 이메일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다. 나는 2007년 당시 처음 페이스북을 써보고 친구들의 새로운 소식을 끊임없이 전달해주는 그 뉴스피드의 장점에 매료됐었다. 그리고 나는 페이스북이 아주 잘 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처럼 엄청난 세계인들이 사랑하는 SNS로, 시가총액 172조원의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공룡기업으로 성장할 줄 몰랐다. (마크 저커버그 CEO는 2007년 당시 야후의 1조원 인수제안을 차버린 겁없는 젊은이로 화제가 된 일이 있다. 그가 소유한 페이스북 주식가치는 지금 29조원어치쯤 된다.)

2007년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인데 이제 페이스북은 한국에서도 아주 잘 나가는 것 같다. 일단 지난해말 한국으로 귀국한 내가 페이스북을 미국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쓰게 됐다. 트위터로 올리는 글보다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이 더 많은 반응을 받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많은 글을 쓰는 나로서는 어느 경로를 통해 내 독자들이 내 블로그에 오는지를 항상 볼 수 밖에 없다. 몇년전까지만해도 내 블로그 유입경로 1위는 트위터였다. 내가 많은 트위터팔로어가 있기도 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면 일단 트위터에 올려서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내 블로그에 트래픽을 몰아주는 1등매체는 압도적으로 페이스북이 됐다. 지난 한달간 내 블로그통계를 보니 구글-네이버 등 검색엔진의 4배가까운 트래픽을 페이스북이 가져다 주었다. 내 글이 주로 페이스북에서 화제가 되면서 회자되었기 때문이겠지만 사람들이 콘텐츠를 페이스북을 통해서 접하고 공감하면 또 적극적으로 주위와 공유하기 때문인 것 같다. 똑같은 글을 8만여명의 팔로어가 있는 트위터와 2천여명의 페친과 팔로어가 있는 페이스북에 동시에 똑같이 공유해도 페이스북을 통한 반응이 휠씬 크게 느껴진다. 나는 페이스북의 파워를 이렇게 직접 체감하고 있다.

Screen Shot 2014-02-15 at 9.57.30 AM

이런 파괴력을 지닌 페이스북이 10주년을 맞아 페이퍼(Paper)라는 모바일앱을 새로 출시했다.

나오자마자 대호평을 받고 있는 이 앱은 기존 페이스북앱을 대체하는 아름다운 앱이다. 스마트폰의 터치스크린에 맞게 아래부분에 돌아가는 카드처럼 펼쳐지는 페친들의 소식을 돌려가면서 보다가 자세히 읽고 싶으면 위로 스와이프해서 올리면 된다. 보고 나서는 손가락으로 다시 아래로 밀어서 내리면 된다. 아주 자연스럽다.

주목할만한 점은 기존 페이스북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이 페이퍼앱에 뉴스를 모아주는 섹션기능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주요속보뉴스를 전해주는 ‘헤드라인’, 기술업계관련 뉴스를 모아주는 ‘테크’, 대중문화뉴스를 전해주는 ‘팝라이프’, 스포츠뉴스를 전해주는 ‘스코어’ 등 흥미로운 분류의 19개의 섹션이 있다. 그리고 각 섹션에는 뉴욕타임즈, CNN 같은 전통매체부터 허핑턴포스트, 테크크런치 같은 온라인미디어들도 뉴스를 공급한다. 각 기사마다 ‘좋아요’숫자와 페이스북 사용자들의 댓글을 바로 볼 수 있다.

나는 조금 사용해보고 모든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이 페이퍼앱으로 갈아탄다면 일반인들의 뉴스소비패턴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루종일 페이스북을 손에서 떼지 못하는 사람들이 손가락질 한번으로 페친들이 공유하는 흥미로운 뉴스에 접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만약 페이스북이 한글버전 페이퍼앱을 내놓고 그 섹션은 한국뉴스로 채운다면 현재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앱에서 뉴스를 읽는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에서 뉴스를 소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페이스북 페이퍼앱은 이같은 페이스북의 야심이 드러난 신병기다. MIT테크놀로지리뷰는 “페이퍼는 당신이 뉴스를 페이스북에서 읽도록 만들 것이다”(Paper Will Make You Want to Read News on Facebook)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기도 했다.

***

페이스북의 주가추이(출처:Google Finance)

페이스북의 주가추이(출처:Google Finance)

2012년 5월 큰 기대속에 뉴욕증시에 상장한 페이스북은 공모가인 38불에 휠씬 못미치는 주가로 큰 곤욕을 치렀다. 지난해 6월에는 주가가 22불까지 떨어지는 치욕을 겪기도 했다. 월스트리트는 페이스북의 수익모델과 모바일대응능력에 의문을 표시했고 페이스북의 공모가는 과대평가된 것으로 치부됐다.

페이스북의 월간사용자수와 매출그래프(출처 : WSJ)

페이스북의 월간사용자수와 매출그래프(출처 : WSJ)

그러나 페이스북은 지난해 중반부터 쑥쑥 실적이 좋아지더니 4분기 매출 25억9천만달러(약 2조7천억원), 순이익 5억2천300만달러(5천6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63%, 순익은 800% 증가한 놀라운 실적을 보여줬다. 특히 전년동기 76%가 늘어난 광고매출중 53%가 모바일에서 나온 광고매출로 이제 페이스북은 명실상부한 ‘모바일’회사라는 것을 보여줬다.

***

그리고 또 한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페이스북이 2012년에 1조원(발표금액)으로 인수한 인스타그램이다. 인수당시만해도 1조원이란 금액에 압도되서 “매출1원도 없는 회사를 어떻게 저런 엄청난 돈을 주고 사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딜에 주식교환이 섞여있던 탓에 최종인수금액은 8천억도 안되는 735M이 됐다.

인스타그램은 그뒤 급성장해서 이젠 트위터의 규모를 넘본다. 매출도 이제 슬슬 나기 시작한다. 페이스북의 약점으로 지적되는 젊은층이 떠나고 있다는 부분을 보완해주는 효과도 있다. 이젠 735M이라는 금액도 헐값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돈 조금 아낄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금액이 비싸다고 생각했는지 확신이 없었는지.. 인스타그램을 놓쳐버린 트위터로서는 이제 가슴을 칠 일이 됐다. 트위터는 앞으로가 진짜 위기가 아닐까 싶다.

1조원의 인수제의를 차버린 경험이 있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냥 행운일까. 저커버그의 수를 읽는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스타그램인수딜은 이제와서 보면 ‘신의 한수’다.

어쨌든 10주년을 맞아 내놓아 대호평을 받고 있는 페이퍼앱은 이런 페이스북의 쾌진격이 당분간 이어진다는 상징처럼 보인다. 앞으로 페이스북이 미디어업계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궁금하다.

/지난주 시사인 IT칼럼으로 기고했던 글입니다.

Written by estima7

2014년 2월 15일 at 10:35 오전

자넷 옐런 교수에 대한 기억

with 3 comments

UC버클리 하스경영대학원건물과 자넷 옐런 연준의장(출처:위키피디아)

UC버클리 하스경영대학원건물과 자넷 옐런 연준의장(출처:위키피디아)

아침에 중앙일보 이상렬 뉴욕특파원의 ‘미국 중앙은행 총재가 부러운 이유’를 읽고 모교 은사인 자넷 옐런교수에 대한 기억과 미국의 고위직 인사시스템에 대해 간단히 써보고 싶어졌다. 칼럼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CEO 주가’라는 게 있다. 괜찮은 CEO가 오면 시장이 먼저 알아보고 주가가 뛰는 것을 말한다. 어디 CEO 주가뿐이랴.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중앙은행 총재 주가’라는 것도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지난 11일 그가 취임 후 첫 공개석상인 하원 청문회에서 “기존 통화정책 고수”를 선언하자 세계 주가가 급등했다. ‘버냉키 시대’가 가고 ‘옐런 시대’가 도래했음을 시장이 노래한 것이었다.

그러나 옐런의 성공적인 데뷔는 그 자신만의 성취가 아니다. 연준 의장을 뽑는 미국의 정교한 정치시스템이 그 이면에 있다. 버냉키 의장의 후임을 뽑는 작업은 대략 반 년 전부터 본격화됐다.

미국에 있을때 WSJ를 사무실에서 구독하면서 그래도 헤드라인정도는 매일 훑어봤던 내 기억으로 옐런이 처음 언론에 연준의장 후보로  언급되기 시작했던 것은 재작년쯤이었던 것 같다. 벌써 꽤 오래됐다. 왜 기억하냐하면 옐런은 내가 MBA학위를 받기 위해 버클리 Haas경영대학원을 다니던 2001년에 경제학을 배운 은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직접 강의를 들은 교수님이 소위 ‘세계경제대통령’후보로 거론된다는 기사가 눈에 확 들어왔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연준의장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워낙 쟁쟁한 남성후보들이 많았고 그녀가 그런 경쟁을 뚫고 올라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거물인 래리 서머스와 경합하면서 언론상에서 엄청난 검증과 찬반이슈가 이어졌다. 난 당연히 래리 서머스에게 밀릴줄 알았다. 내 오산이었다.

두 사람이 떠올랐다.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였던 래리 서머스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과 연준 부의장인 옐런이었다. 그러자 각계에서 검증과 찬반이 일어났다. 급기야 서머스가 오바마에게 연준 의장 포기 편지를 쓰고 자진 하차했다. 민주당 상원의원 3명의 공개적인 인준 반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곡절 끝에 인준을 통과한다 해도 인준 과정의 불협화음이 연준의 위상에 흠집을 낼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끝에 옐런교수는 지난해 10월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됐다. 학교 다닐때 상당히 ‘외유내강’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지루한 여론검증과정에서도 확신에 찬 모습으로 자신이 연준의장을 잘 수행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칼럼을 읽어보면 마지막까지 버냉키를 존중하면서 2인자처세도 탁월했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결국 지난해 10월 옐런을 차기 연준 의장으로 지명했다. ~중략~ 옐런의 2인자 처세는 탁월했다. 버냉키가 물러나는 순간까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올 1월 초 상원 인준 통과로 연준 100년 역사상 첫 번째 여성의장으로 확정됐지만 자기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 덕분에 버냉키는 마지막까지 레임덕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특히 칼럼에서 공감한 부분은 아래와 같다.

옐런의 연준 의장 등극기는 솔직히 부럽다. 차기 연준 의장이 거론-지명-확정되는 6개월 이상의 과정엔 미국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한다. 연준 의장을 세계의 경제대통령으로 만드는 파워는 단순히 달러를 찍어내는 권한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미 의회와 월스트리트의 금융인들과 상공인들이 연준 의장을 뒷받치고 있다.

서머스가 낙마하고 옐런이 유력 후보로 혼자 남자 백악관은 민주당 상원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옐런의 보호를 요청했다. 연준 의장이 취임도 하기 전에 정치적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되면 자리에 합당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떤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가 3월 말 끝나는데도 새 총재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더구나 이번부터는 혹독한 국회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데도 그렇다. 우리는 언제까지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공개하는 한은 총재를 맞아야 하는가.

미국의 인사시스템을 살펴보니 정말 이런 식이 많다. 후보로 점찍어놓은 사람이 있으면 대통령이 갑자기 발표하는 것이 아니다. 의회나 언론에 살짝 흘려서 간을 본다. 중요한 자리일수록 더욱 그렇다. 지난해 오바마대통령은 수전 라이스 유엔대사를 국무장관후보로 흘려서 여론을 살폈으나 공화당과 여론의 거센 반발과 검증공세속에 결국 케리를 국무장관으로 선택했다. 내가 보기엔 중요한 자리일수록 이런 시스템이 필요한 것 같다. 정말 우리는 언제까지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공개하는 OOO를 맞아야 하는가.

***

자넷 옐런교수에 대한 기억.

자그마한 체구에 항상 온화한 미소를 띄고 있던 할머니교수(당시 나이는 사실 그리 많지 않아서 55세정도)라는 느낌이었다. 당시 버클리교수로 재직하다가 90년대말 클린턴정부에서 경제자문역으로 일했었고 2001년 부시정부로 바뀌면서 다시 학교로 돌아와있던 참이었다.

부드러운 말투로 어려운 경제학을 잘 가르친다는 것이 (기억은 잘 안나지만) 당시 내 느낌이었다. 하지만 부드러운 인상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철학은 확고하게 서있는 분이었다. 해고가 자유로운 미국의 유연한 고용시스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한 유럽출신 학생이 미국시스템을 비판하자 상당히 강하게 논쟁에 나서면서 옐런교수는 미국시스템의 장점을 옹호했던 기억이 있다. 학생들은 교수가 미국시스템의 신봉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어쨌든 옐런교수도 유명한 분이라고 들었지만 내게는 당시 하스스쿨의 학장이던 로라 타이슨교수가 더 거물인 느낌이었다. (여성 파워!) 결정적으로 2001년 3월 옐런교수의 남편인 조지 애컬로프 버클리경제학과교수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수상소식이 발표되고 아마 다음날 있었던 경제학 수업시간에 모두 일어나서 옐런교수에게 남편의 수상소식을 박수를 치며 축하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는 옐런교수는 노벨상수상자남편을 둔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훗날 옐런교수가 노벨상수상자인 남편 애컬로프교수보다 더 유명한 사람이 될지는 정말 몰랐다. (내 기억에 의외로 학점도 박했다…ㅠ.ㅠ)

어쨌든 교수시절과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부드러운 화법으로 의회증언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옐런 연준의장의 모습을 보니 한국에서도 보다 많은 여성들이 고위직에 진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온갖 구설수끝에 어이없이 장관직에서 중도하차한 윤진숙장관의 케이스가 참 안타깝다. 뒤따르는 여성인재들을 위해서 좋은 롤모델이 됐었어야 하는데…

Written by estima7

2014년 2월 15일 at 9:21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