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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문의 부고, 미국신문의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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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en Shot 2013-07-12 at 12.17.13 AM한 신문의 부고. 한국에 있을때는 아무 생각없이 지나가다가 미국에 와서 살게 되면서 이상하게 생각하게 된 것. 부고 기사인데 정작 ‘고인’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고인이 현직에 있는 사람이거나 과거에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었던 사람이 아니면 그냥 자식들의 이름 다음에 ‘모친상’, ‘장인상’ 같은 식으로 처리된다. 특히 평범한 가정주부의 경우는 거의 예외없이 ‘모친상’ 아니면 ‘장모상’, ‘조모상’으로 나온다. 고인의 이름없이 자식들의 이름만 열거되는데 게다가 왜 직업이나 직함까지 왜 꼭 나와야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내세울 것이 없는 형제자매의 경우는 ‘자영업’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평생 자식을 키우면서 본인의 이름없이 ‘OO엄마’로 불리우던 여성들이 눈을 감고서도 역시 아무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미국신문의 Obituary를 읽게 되면서부터다.

Screen Shot 2013-07-12 at 12.22.10 AM저명인사가 아닌 경우 물론 공짜로 실어주는 것은 아니고 유료로 게재하는 내용이지만 고인의 삶을 돌아보는 이런 부고기사의 주인공은 ‘고인’이다. 그 자손들이 아니다.

Screen Shot 2013-07-12 at 12.24.12 AM

페드라 에스틸. 100년 4개월 26일만에 세상을 떠난 나의 어머니. 그녀의 따뜻한 미소와 아름다움은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감쌌다. 그녀는 가장 멋진 엄마였으며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녀의 가슴, 영혼은 항상 나와 함께 했다. 그녀를 영원히 사랑하고 그리워할 것이다. 도비.

이처럼 간결하게 고인의 이름을 쓰고 추모하는 글을 쓰는 것이 참 마음에 든다. 줄줄이 자식의 이름과 직업, 직함을 열거할 필요가 있을까?

Screen Shot 2013-07-12 at 12.24.32 AM

로다 레인버그. 82. 루이스의 부인. 리사와 데이빗의 엄마. 벤자민, 리오라, 시라의 할머니. 그녀는 따스함과 온화한 영혼, 낙천주의, 유머, 호기심, 용기, 세상을 따뜻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기억될 것이다.

한국의 부고기사도 마치 문상을 오는 사람을 모집하는 것 같은 형식을 버리고 이처럼 고인을 추모하는 형식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Written by estima7

2013년 7월 12일 , 시간: 12:49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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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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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형용사적 표현이 많은지 명사적 표현이 많은가의 차이가 보이네요. 안타깝지만, 확실히 유럽, 미국의 정신 문화가 우월한듯.. 그래도 아시아에선 우리나라가 가장 열심히 따라가고 있으니까.. 희망이 보입니다. 구경 잘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이광

    2013년 7월 12일 at 1:12 am

  2. 짧게 고인을 추모하는 부고란이라… 굳이 자기소개서처럼 자기 경력을 나열하는 부고란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듭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도 언젠간 이와 같이 고인을 추모하는 형식으로 바뀌겠죠?

    듀얼코어

    2013년 7월 12일 at 7:19 am

  3. 확실히 문상손님 모집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결혼이나 장례 모두 축하-조문객 모집, 더 나아가서는 부조금 고지서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사실이 그렇기 때문인 듯 합니다. 예식비용을 나눠 부담하는 그야말로 ‘부조’때문인 것이죠. 넉넉한 사람들에겐 별 필요 없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서민들에겐 부담스러우면서도 필요한 양날의 도구라고나 할까요.

    • 그런데 그런 부조는 사실 주위 가까운 친지들에게만 알리면 되지 일부러 신문에까지 게재할 필요는 없지요. 그리고 또 서민들이야말로 신문에 부고기사를 낸다는 것을 생각못하는 경우도 많고요. 저도 부고기사는 신청해서 지면에 여유만 있으면 누구나 실어준다는 것을 신문사 근무경험을 통해서 알았으니까요. 특별한 사람들만 실어주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estima7

      2013년 7월 12일 at 1:35 pm

      • 신문이라는 매체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미국이나 캐나다의 대도시가 아니고 중소규모의 도시라면 주변 이웃들과의 관계가 우리나라의 현재의 그것보다는 조금더 친밀하고 깊어요. (뭐, 적어도 저의 경험에서라면요…) 그래서 저렇게 부고를 실어주는 것이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는 분들에게 ‘예의’로 인식 되기도 하구요.

        NethMazter

        2013년 7월 13일 at 5:53 pm

  4. 비교하고 보니 확실히 이상하네요.
    고인 본인의 이름이 없는 부고라니
    본연의 의도가 변질된 것 같습니다.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hinerva

    2013년 7월 12일 at 7:40 pm

    • 그러게요… 관점이 참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강신규

      2013년 7월 14일 at 7:03 am

  5. […] 망자의 이름이 빠진채로 나와있었다. 그래서 저번에 블로그에 “한국신문의 부고, 미국신문의 부고“라는 글을 올렸고 이번에 한겨레칼럼으로 다시 […]

  6. […] 평범한 가정주부의 경우는 거의 예외없이 ‘모친상’ 아니면 ‘장모상’, ‘조모상’으로 나온다. 고인의 이름없이 자식들의 이름만 열거되는데 게다가 왜 직업이나 직함까지 왜 꼭 나와야하는지 모르겠다. 평생 자식을 키우면서 본인의 이름없이 ‘OO엄마’로 불리우던 여성들이 눈을 감고서도 역시 아무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via 한국신문의 부고, 미국신문의 부고 | 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 […]

  7. 귀한 깨우침 감사드립니다.
    외국영화나 책을 보면 부고담당기자가 종종 등장하지요.

    송숙희

    2014년 7월 25일 at 8:39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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