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리프와 테슬라 모델S가 주도하는 실리콘밸리의 전기차 붐
전세계의 얼리어답터들이 모여있다는 실리콘밸리. 이곳에 어떤 첨단기기가 유행하는지를 보면 미래 트랜드를 미리 읽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실리콘밸리의 도로에서 자주 보이는 전기자동차의 모습이 흥미롭다. 과연 전기차가 이제 본격적으로 부상하고 있는가? 다음은 전기차와 관련된 나의 몇가지 경험담이다.
나는 애플본사가 있는 쿠퍼티노에서 산호세의 사무실까지 약 30분거리를 매일 출퇴근한다. 그런데 요즘 들어 닛산 리프라든지 테슬라 모델S같은 100% 전기자동차를 길에서 보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불과 1년전만해도 거의 보기가 어려웠다. 최근에는 내 앞에 닛산 리프 3대가 동시에 달리고 있는 것을 목격한 일도 있다.
주변에 실제로 전기차를 구매한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특히 가격이 저렴한 닛산 리프는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사이에 큰 인기다. 반도체회사인 마벨에 다니는 박정일씨는 “회사에 전기차충전이 가능한 주차공간이 10대분이 있는데 요즘 전기차 소유자가 40명이상으로 늘어나면서 자리를 얻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자기들끼리 메일링리스트를 만들어서 교대로 충전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 “타보니까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엔지니어들끼리 모이면 전기차구입을 화제에 올리고 있다고 한다. 소위 너드(Nerd), 긱(Geek)들 사이에 인기있는 신종 ‘전자제품’이나 ‘첨단장난감’으로 닛산리프가 등장한 느낌이다.
반면 실리콘밸리의 재력가들은 테슬라 모델S같은 고급 전기스포츠카를 선호한다. 부자들이 많이 사는 팔로알토 같은 곳의 고급레스토랑에 가면 주차장에서 테슬라를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얼마전 만난 XG벤처스 데이빗 리는 새로 구입한 테슬라를 몰고 나왔다. “실제로 몰아보니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지금까지 가져본 물건중에서 단연 최고다(The best one I’ve ever owned)”라고 격찬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동석한 다른 분도 “내 BMW리스가 곧 끝나는데 다음 차로 테슬라를 고려해봐야겠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전기차는 아직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일반적인 자동차는 기름을 가득 넣고 보통 5백km이상을 주행할 수 있는데 반해 전기차는 아직 배터리를 완전충전한 상태에서도 120km(닛산 리프)나 최대 400km(테슬라 고급사양)까지만 주행이 가능하다. 또 다시 충전하는데 몇시간이상이 소요된다. 충전할 수 있는 곳도 아직 제한적이다.
그런데도 왜 실리콘밸리에서 전기차가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첫번째로 가격이 많이 싸졌기 때문이다. 최근 닛산 리프를 단거리 출퇴근용으로 2년간 리스한 퀄컴의 김민장씨의 경우 2년간 리스하면서 처음에 2천불을 내고 이후 월 150불씩 내는 계약을 했다. 회사주차장에서 자주 충전하면서 기름값이 절약되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더 저렴한 딜이다. (외부에서 충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달에 몇백불들던 기름값이 몇십불 전기료로 줄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싸게 전기차 구입이 가능한 것은 미국의 연방정부와 주정부에서 각종 세금혜택을 주기 때문이다. 테슬라 모델S는 기본모델이 6만불부터 시작하는등 비싸기는 하지만 역시 세금혜택이 있어 다른 고급차와 비교하면 가격 경쟁력이 있다.
두번째로 전기차의 품질이 많이 향상됐다. 김민장씨는 닛산 리프에 대해 “아반테급의 자동차가 렉서스급의 승차감을 제공한다”라고 평가했다. 테슬라 모델S는 컨슈머리포트의 자동차리뷰사상 최고점수인 100점만점에 99점을 받아 큰 화제가 될 정도로 고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 자동차가 점차 ‘전자제품’화 되어가고 인터넷과 연결되는 등 첨단기능이 들어가면서 첨단제품에 열광하는 실리콘밸리사람들을 더욱 자극하는 측면도 있다.
세번째로 친환경적인 것을 장려하는 캘리포니아의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토요타의 하이브리드자동차인 프리우스가 특히 캘리포니아에서 인기를 얻었던 것처럼 역시 친환경적인 자동차를 캘리포니아의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벤츠나 BMW를 타는 것보다 이런 친환경차를 타는 것이 더 ‘쿨(Cool)’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테크기업들도 주차장에 충전시설을 늘리며 직원들의 전기차구입을 장려하는 분위기다. 주차해놓고 충전할 수 있는 무료충전스테이션도 아주 많아졌다. 닛산리프로 실리콘밸리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장거리운전을 자주한다는 전 갈라넷대표 정직한씨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항상 충전을 하고 나서 돌아오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밖에 눈도 안오고 춥지 않은 온화한 날씨, 집마다 보통 차를 2대이상 가지고 있기 때문에 1대는 주행거리가 짧은 전기차를 구입해도 상관이 없다는 점 등이 전기차가 실리콘밸리에서 환영받는 요인이다.
5월초 50불대에 머물렀던 테슬라의 주가는 올해 1분기 첫 흑자뉴스와 함께 각종 호재로 5월 28일 현재 110불의 종가를 기록할 정도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한 2년전 구글의 최우형씨가 내게 새로 리스한 닛산 리프를 보여주고 시승시켜준 일이 있었다. 그 당시만해도 신기했지만 닛산 리프의 성공가능성에는 반신반의했다. 우선 가격이 지금보다 많이 비쌌고 자동차의 주행거리가 너무 짧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불과 2년만에 실리콘밸리의 길거리에서 이렇게 많은 전기차를 보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지금 아마도 세계의 많은 자동차회사 경영진 내부에서는 논란이 치열할 것이다. 전기차기술에 얼마나 많이 투자를 해야 하는가가 토론의 큰 주제일 것이다. 전기차시대가 오기는 오겠지만 아직은 시기상조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큰 투자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임원들도 많을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실리콘밸리의 모습을 보면 전기차시대가 생각보다 빨리 열릴 것 같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코닥이 디지털사진의 시대가 열릴 것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코닥의 문제는 그 디지털사진시대가 실제보다 천천히 올 것이라고 잘못 예상한데 있었다.
닛산 리프 광고. “What if you could drive the future,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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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최근호 칼럼으로 기고했던 글을 조금 수정해서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항상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전기차가 극복해야할 전력확보와 배터리와 같은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마지막 말씀처럼 생각보다 빨리 대중화될 수 있다고 긴장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SC.Cho
2013년 6월 7일 at 9:16 am
90년대초반에 흑백랩탑을 쓰면서 완전 컬러랩탑이 언제 나오나 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당시 도시바였나 5 color lcd가 장착된 랩탑컴퓨터를 보며 군침을 흘렸는데 기술적으로 풀컬러가 나오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기사를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금세 컬러LCD와 랩탑이 대중화됐죠. 그리고 다이얼업모뎀도 56K가 압축해서 데이터를 전달하는 한계며 그 이상은 빨라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ADSL등으로 브로드밴드가 대중화되고 이젠 wifi까지는 맘대로 쓰는 신기한 세상이 됐지요. 전기차 시대도 갑자기 빨리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
estima7
2013년 6월 7일 at 10:15 am
마켓스토리에서 이 항목을 퍼감.
박승용
2013년 6월 7일 at 3:10 pm
세단과 B2B 모델들은 전부 잘 안되고 Niche인 경차와 럭셔리 써드카만 남았다는게 한계죠. Better place와 A123 같은 배터리나 충전소 등의 전체 Value chain까지 위축되어서 완성차 업계가 당장 뛰어들기는 부담스럽습니다. 생산하는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요. 전기차 업계 Consolidation에 대해 예전에 정리한 포스트 링크 걸어봅니다. http://ideafurnace.me/2012/12/12/falling-electric-car-startups/
ideafurnace
2013년 6월 7일 at 5:22 pm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Better place는 창업국가 도입부에 나오는 회사라 잘 알고 있고, A123는 보스턴쪽 라이코스 있을때 바로 근처에 있던 회사였습니다. 지적하신 부분을 보면 정말 전기차의 보급에 걸림돌이 많을 것 같고 저도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실리콘밸리 길거리에 닛산 리프와 테슬라가 너무 많이 보이고 (GM Volt는 거의 없습니다) 주위에도 사신 분들이 많이 보여서 한번 써본 글입니다. 사신 분들도 대부분 다 아주 만족중입니다. 잘못샀다고 도저히 못타겠다고 반납하겠다고 하시는 분들은 전혀 못봤습니다. 테슬라에 대해서 불평하는 것도 잘모르겠고요. (테슬라 모델S오너와는 겨우 2명정도하고만 이야기해봤습니다만)
물론 몇년지나봐야 알게 되겠지만 전기차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다면 그 혁신은 상당부분 실리콘밸리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estima7
2013년 6월 7일 at 6:48 pm
리프와 테슬라가 이렇게까지 잘 될줄은 전혀 예상 못했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ideafurnace
2013년 6월 7일 at 10:32 pm
VC들과 이야기하면서 사실 테슬라는 망할 줄 알았다는 얘기를 사람들이 많이 했습니다.ㅎㅎ 물론 더 두고 봐야겠지만요.
estima7
2013년 6월 7일 at 10:52 pm
원자력발전과 전기차는 궁합이 잘 맞는것 같은데 한국은 전기차시장이 왜 안열릴까 아파트가 많아서 오히려 충전소 만드는것도 쉬울것 같은데 말이죠 밤에 전기가 남아돈다고 하던데 …
김준호 (@koreanjuno)
2013년 6월 7일 at 8:43 pm
정말 그러네요. 사실 주행거리로 따지면 한국의 출퇴근거리가 휠씬 짧은데…
estima7
2013년 6월 7일 at 10:56 pm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전기차가 보급된다면 제일 혜택이 클 것 같습니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있으니 충전소를 세우기 좋고, 엄청난 교통체증을 생각하면 연비좋은 전기차가 좋죠. 그리고 전기차 보급이 시작되면 특히 서울의 안좋은 공기가 매우 좋아질 것 같네요.
Ellery
2013년 6월 8일 at 8:18 am
네, 전기차가 에너지효율면에서 정말 친환경적이냐는 논란도 있지만 그 방향은 맞는 것 같습니다. 정책적으로 어떻게 전기차를 지원하느냐의 문제일 것 같네요.
estima7
2013년 6월 13일 at 7:18 am
오늘 Brea Mall이라고 집 근처 몰에 다녀 왔는데 주차장에 테슬라 로고와 함께 두 대 정도 주차할 공간을 따려 마련해 놓았더군요. 충전기도요. 그리고 몰 안에 테슬라 매장을 열 예정으로 공사 중이고요. 미국에서 차는 보통(특히 저와 같은 시골 지역) 한적한 곳에 따로 메이커 매장들이 모여서 거대한 차 시장 군을 형성하고 있던데, 테슬라는 다르게 접근하나 봅니다. 지금 모델은 일반인들이 타기에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점점 컴팩트 모양도 나오겠지요. 매장 오픈을 두 아들들과 꽤 기대하며 지나갔습니다. ^^
docchoccho
2013년 6월 9일 at 3:53 pm
인사이드애플이란 책에도 나오는데 테슬라는 마치 매장을 애플스토어처럼 만든다고 합니다. 애플의 경영방식을 흉내내는 자동차회사로 소개되고 있는데 그런 분석이 맞는 것 같습니다.^^
estima7
2013년 6월 13일 at 7:17 am
임계점이 어느 순간에 이뤄지느냐에 따라 보급 확장의 변수를 매우 유동적이라고 할수 있겠네요,,, 인프라도 그렇지만 웬만한 곳은 전기 충전 시설이 가능 한 곳이 많고 그냥 확장 개몀으로만 하여도 일반 주요소에 추가로 만들어 놓아도 가능 하겠죠 ,, 단지 베터리충전 시간의 싸움이긴 하겟습니다만 ㅎㅎ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노 기술이나 2차 전지 기술이 발전 하면 이러한 급속 충전이나 최대 허용 용량치 연비로 치면 한번 충전에 gas 차처럼 500 km ~ 700 km 가는 수준 이오면 더욱 급속히 전개 될리라고 보고 오히려 이러한 장벽을 넘어 설수도 있겠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1회 충전에 1000 km 정도 달릴 수 있는 전지차가 나와 준다면 기존 시장의 게임을 뒤엎을 수도 있겠죠 …..
rapael99
2013년 6월 9일 at 10:48 pm
이것도 어느 순간에 breakthrough기술이 나와서 확 진보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stima7
2013년 6월 13일 at 7:19 am
[…] 미치는 영향을 Tesla 의 미국내 선전 기사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최근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임정욱 글로벌 센터장이 그의 블로그에 쓴 글 또한 현재 캘리포니아 내에서 일어나는 전기자동차 시장의 변화 물결에 […]
이스라엘에서 전기자동차는 왜 실패했을까? | Memes from Korea
2013년 6월 13일 at 3:51 pm
2년전에 Tesla 공장이랑 Palo Alto에 있는 대리점에서 시승한 기억이 나요. 개인적으로 차를 좋아하고, 로터스도 좋아하는데요. 그 당시 대시보드를 보고 약간 갸우뚱했었거든요. 아날로그 감성이 전혀 없었거든요. 엔진음도 스피커가 만들어주는 음이라 좀 아쉬웠어요.
Hyoungjin Kim
2013년 6월 18일 at 2:40 am
좋은 자료 잘 보고 가져 갑니다
밝은미소
2013년 6월 25일 at 11:50 am
올해 1월에 오키나와 갔을때보니, 우리의 민속촌 같은데에도,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전기차 전용 주차장이 있더군요. 충전할 수 있는.
종철 (@cooljc23)
2013년 6월 30일 at 8:52 pm
[…] 테슬라가 전기자동차로 자동차업계를 Disruption. 넷플릭스가 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와 오리지널프로그램으로 TV업계를 Disruption. Airbnb가 공유경제모델로 호텔업계를 Disruption. Lyft가 공유경제모델로 택시업계를 Disrup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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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22일 at 12:2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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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모델S 구경 | 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
2013년 10월 1일 at 9:30 pm
좋은 글 보고, 공유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캘리포니아 내 우리 플랜트업계가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이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JinWoong Park
2014년 3월 8일 at 11:5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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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8일 at 11:59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