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델
악화된 컴퓨터판매실적의 영향으로 델(Dell)의 주가가 22일 12%, 그리고 23일 17% 연달아 폭락했다. 5~6조원의 시가총액이 이틀만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특히 실적발표에서 델의 CFO가 “소비자들의 구매가 ‘alternative mobile computing devices‘로 옮겨졌다고 하는 말에 주목했다. 이것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데 사실은 소비자제품의 매출의 하락이 아이패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뜻이다. 뭐 아이패드를 얼마나 많이들 쓰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이패드유저들이 만족하고 있는지를 주위 사람들을 통해 체감하고 있는 나로서는 놀라운 소식은 아니다. 올 것이 왔다고나 할까.
지난 분기 델의 PC매출은 대략 12~13%하락했다. 세상의 변화를 애써 무시하고 준비를 게을리하고 있던 댓가를 톡톡히 치르는 느낌이다. 델처럼 큰 회사가 도대체 모바일혁명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초기의 혁신에 안주하고 더이상 발전이 없는 회사와 끝없이 노력하면서 혁신을 추구해 세상을 놀라게 한 회사가 장기적으로 보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델과 애플을 비교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9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했을 당시 마이클 델은 한 테크놀로지 컨퍼런스에서 “당신이라면 애플을 어떻게 회생시키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출처 (NYT : Michael Dell Should Eat His Words, Apple Chief Suggests)
“나라면 회사를 문닫고 남은 돈을 주주들에게 돌려주겠습니다.” “I’d shut it down and give the money back to the shareholders.”
이를 애플과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 스티브 잡스는 절치부심하며 애플을 살려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2006년 1월 주가상승으로 인해 드디어 시가총액에서 애플이 델을 추월했을때 회사전체에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팀, 마이클 델은 미래를 예측하는데 결국 완벽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늘 주식시장 종가로 볼때 애플은 이제 델보다 더 가치있는 회사가 됐습니다. 주가라는 것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합니다. 내일은 또 결과가 달라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이 순간을 기억해두고 싶습니다. 스티브.”
“Team, it turned out that Michael Dell wasn’t perfect at predicting the future. Based on today’s stock market close, Apple is worth more than Dell. Stocks go up and down, and things may be different tomorrow, but I thought it was worth a moment of reflection today. Steve.”
당시의 애플과 델, 두 회사의 시가총액은 각각 72B정도였다. 그럼 6년후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지금 현재 (5월23일 종가) 현재 애플의 시가총액은 533.5B로 세계최고가치의 회사이며 델은 22B로 주저앉았다. 무려 24배차이다. 불과 6년만에 두 회사의 격차가 이렇게 벌어진 것이다.
나는 97년쯤인가 한국을 방문한 마이클 델을 인터뷰한 일이 있다. 몇몇 기자들과 함께 신라호텔에 가서 그를 만났다. 당시 나는 델의 Direct PC모델에 큰 관심이 있어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인터뷰장소에 갔는데 의외로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마이클 델의 모습에 실망을 금치 못한 기억이 난다. 비저너리로서의 모습은 전혀 없었다. 나는 그가 이른 성공으로 인한 자만심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97년 애플에 대한 발언도 그런 자만심에서 나왔을 것이다. (아마 그는 두고두고 그 발언을 한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그 이후 델은 회사덩치는 커졌을지 모르지만 혁신은 거의 보여주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두 창업자의 그릇 차이가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문득 오늘 아침 두 회사의 차이를 보고 짧게 써봤다.
스티브 잡스의 뒷끝은 정말 대단하네요.
n
2012년 5월 23일 at 8:55 am
원래 뒷끝있기로 유명하잖아요. ㅎㅎ 그리고 델의 발언이 워낙 화제가 되기도 했었죠.
estima7
2012년 5월 23일 at 8:47 pm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Dell (마이클 델)은 Apple은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고, HP와 IBM과 경쟁하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Apple의 회생은 스티브 잡스의 리더쉽에 따른 기적과도 같은 성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Dell은 PC 사업으로 돈을 벌자 HP, IBM과 같은 서버 사업 영역으로 뛰어듭니다.
지난 5년 간의 성적표 (주가)를 보면, IBM은 나름 제조업에서 서비스 기업으로 혁신하면서
지속적인 주가 상승을 하였습니다. 반면, Dell과 HP는 최근의 경기침체를 배제하면 거의 수평에 가까운
즉, 혁신(변화)을 못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서버+네트워킹+스토리지의 convergence 가속화에 따라, HP는 네트워킹 업체 3Com도 인수하고
CEO 등도 교체하면서 나름 노력해 보지만 아직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Dell도 작년에 $700M에 네트워킹 업체 Force10 Networks를 인수하고, 통합을 가속화하고 있지만
역시 PC 시장 매출 부진으로 쉽지 않을 것 입니다.
Dell이 B2C (PC) 시장에서 B2B (서버, 기업) 시장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혁신의 가능성은 멀어져 간듯
보여집니다. 즉, 혁명(변화, 창의)이 아닌, 점진적 개혁(발전)을 선택한 것이죠…
Elca Ryu (@elcaryu)
2012년 5월 23일 at 1:47 pm
Disruptive한 혁신으로 마켓자체를 파괴, 확장해버리는 애플에 HP, Dell이 견뎌낼 수 없는 것이군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곧 있을 HP의 실적발표도 관심이 가는군요.
estima7
2012년 5월 23일 at 8:04 pm
요즘 IT 세상은 마치 요지경 속 같아서 조금 잘 나간다고 건방 떨다가는 욕이나 먹기 일쑤 인것 같습니다. ㅎ
오늘도 재미있는 예깃꺼리 감사 합니다.
저는 스티브 쟙스가 죽기 직전 드디어 찿았다는 스마트 티비의 간편한 인터페이스에 관한 글을 한번 써 볼려고 생각 중 인데 워낙에 글 재주가 없어 생각만 계속 하고 있는 중 입니다.
마우스, 터치에 이은 거실에서 사용이 편리한 입력 방식을 애플이 또 만든다면. 그래서 스마트 티비 스크린까지 애플의 수중에 넘어 간다면 아이폰에 이어 어떤 일이 또 벌어 질까… 흥미 진진한 스토리가 될것 같습니다. 혹시 글을 쓰게 되면 에스티마님께 보내 드리겠습니다.
스마일 도기 (@YoungkPark0)
2012년 5월 23일 at 2:10 pm
네 애플이 만든다는 TV는 정말 관심의 대상입니다. 언제 나올지 저도 궁금합니다.ㅎㅎ 글 나오면 알려주세요.
estima7
2012년 5월 23일 at 8:04 pm
델의 사업모델은 조립양산+직접유통 모델이었기에 애초부터 애플과는 업의 본질이 완전히 다른 기업었던 것 같고, 델이 애플을 비웃을때는 잡스가 꿈꾸던 거대한 변화를 볼 시각이 없었거나 시각이 있었더라도 잡스가 할 수 있으리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모바일로 급속히 변화하는 와중에 휴대폰은 전통적인 델의 직접유통모델이 통하지 않는 시장이기도 하죠. 특히 미국에선 거의 전적으로 통신사가 단말유통을 틀어쥐고 있기에.
HP/Nokia가 어렵게된 것과 비슷한 이유로 델/Acer/레노보도 고전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최우형 (Woohyong CHOI) (@woohyong)
2012년 5월 23일 at 4:52 pm
업의 본질이 다르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결국은 델이나 애플이나 일반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컴퓨터를 만드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말씀하신 것처럼 잡스가 애플을 그렇게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했겠지요. 그리고 분명히 당시 잘나가던 델의 CEO로서의 오만도 있었겠고요. 공개석상에서 하기에는 좀 지나친 말을 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estima7
2012년 5월 23일 at 8:08 pm
alternative mobile computing devices….
단언하신대로 아이패드를 말하는거죠.
이 기기를 눈으로만 만져본 사람들은 이 기기가 전하는 메시지를 영구히 모를 겁니다.
아마 델도 그런 부류였을 거에요.
글 잘 봤습니다…
H
2012년 5월 23일 at 6:19 pm
델이 설마 모르기야하겠습니까. 다만 안드로이드 타블렛 개발 등에서도 뒤처져있는 모습을 보면 내부적으로 무슨 문제는 있다 싶네요.
estima7
2012년 5월 23일 at 8:48 pm
rivernstar에서 이 항목을 퍼감댓글:
델 같은 기업이 성공하는 기업이 딜레마처럼 갖게 된다는 ‘존속성 기술’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지. ‘와해성 기술’은 늘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기 때문에 계속 미지의 세계를 개척해 나가고, ‘존속성 기술’ 기업은 최고가 됐을 때 안주하기 때문은 아닌지..
rivernstar
2012년 5월 23일 at 9:07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