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 첫번째 안드로이드폰을 내놓을 뻔했다?
한달반전에 In the plex라는 책을 읽다가 안드로이드의 아버지, 앤디 루빈과 삼성전자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를 발견해 블로그에 소개했었다.
그런데 (물론 내 블로그를 보고 쓰신 것은 아니겠지만) 이 내용이 중앙일보 칼럼 “[이철호의 시시각각] S급 천재를 걷어찬 삼성”에 소개되고, 또 구글의 모토롤라인수뉴스이후 “안드로이드 걷어찬 삼성, 품에 안은 구글”(조선일보)등 계속 뉴스를 타고 있다.
그러면서 언론은 괜히 “삼성은 앤디 루빈이라는 S급 인재를 놓쳐서 작금의 스마트폰전쟁에서 뒤지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그것은 틀린 얘기다. 2005년 당시에는 누구도 지금의 이런 트랜드를 예견하기 어려웠고 당시 삼성이 앤디 루빈의 회사를 인수한다고 해서 지금의 안드로이드처럼 키울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사실 앤디 루빈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으로 치고 나온 덕을 단단히 본 것이다. 애플이 아이폰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스마트폰이 이처럼 빨리 성장할 수 있을지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구글의 모토롤라인수와 관련해 오늘 실린 WSJ의 기사 “The Man Behind Android’s Rise“, 즉, “안드로이드의 아버지”에 대한, 앤디 루빈을 조명한 기사에서 또 우리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있는 흥미로운 부분을 포착했다.
In mid-2007 he faced a setback when LG Electronics Co. backed out of a deal to build the first Android phone, said a person familiar with the matter. Mr. Rubin then turned to little-known HTC Corp., which had built a phone for Microsoft.
(2007년중반, 앤디 루빈은 LG전자가 첫번째 안드로이드폰을 만든다는 딜을 포기하면서 시련을 겪었다고 그와 가까운 지인이 말했다. 루빈은 결국 잘 알려지지 않은 대만의 HTC라는 주로 MS스마트폰을 만들던 회사와 함께 첫번째 안드로이드폰을 내놓게 된다.)
역시 WSJ의 이 보도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LG가 첫번째 안드로이드폰을 내놓고 구글과의 관계를 지금의 HTC처럼 긴밀하게 가져갔다면 윗 그림의 HTC와 LG의 위치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잘 알려진대로 대만의 신흥휴대폰제조업체인 HTC는 스마트폰에 올인, 특히 최근 몇년간 구글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하면서 첫번째 안드로이드폰인 G1, 그리고 넥서스원 등을 내놓으면서 급성장한 회사다. 특히 지난 4월에는 시가총액이 노키아를 넘어서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반면 LG전자가 스마트폰에 대한 대응에 늦어 고전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져있다.
결국 LG전자에도 기회는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사례를 통해 기회가 보였을때 트랜드나 패러다임의 변화를 빨리 이해하고, 멀리 내다보고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회사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Update : 어제밤에 WSJ의 앤디 루빈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LG에 대해서 흥미로운 언급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가볍게 윗글을 썼다. (나는 WSJ를 온오프라인유료구독을 해서 전문을 읽을 수 있는데다 항상 내일 조간을 그 전날 밤에 확인하고 자는 편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소식이 조금 빠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자고 일어나서 보니까 삼성 이어 엘지도 ‘안드로이드폰’ 걷어 찼었다(한겨레), 앤디루빈, 2007년엔 LG전자에 안드로이드 제안했었다?(디지털타임즈) 두 군데서 이 내용을 받았다. 나도 WSJ를 인용한 것이니 상관없지만 위 블로그에 쓴 내 생각을 그대로 인용해서 깜짝 놀랐다. 별 생각없이 두서없이 쓴 글인데 (온라인기사기는 하지만) 매스컴을 통해 나가다니. 이것 참 앞으로 글을 쓸 때는 조심해야겠다. (그런데 그럼 이것도 일종의 특종인가??)
HTC는 윈모 때부터 잘 만드는 걸로 유명한 회사였죠. 사실 LG의 문제는 단순히 기회를 놓친 측면 보단 좀 더 내부적인 데 있어 보입니다. 여하튼 사실이라면 기회를 놓친 건 부인할 수 없는 실책이겠죠.
김도형
2011년 8월 16일 at 11:22 pm
네, 그래서 경영진은 정말 Big picture를 보는 눈과 함께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엔 사실 너무 어렵죠. 너무 빠르게 급변하니까요.
estima7
2011년 8월 17일 at 4:22 pm
당시 LG에서 진행되던 모델이 사업자와의 딜이 무산되면서 drop되었죠. LG에서도 사실 실험적 프로젝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었구요. 실수라기보다는 모든 면에서 – 스마트폰으로 가는 업계의 흐름을 보는 눈, Android의 기술력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 잘나가는 피쳐폰에 할당된 연구인력을 빼서 불확실한 Android에 투자할 수 있는 결단력, 사주는 사업자가 없더라도 일단 끝까지 프로젝트를 끌고 갈 수 있는 내부 프로세스 등 –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판단력”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문제는 지금은 피쳐폰에 투입하던 인력을 모두 Android에 투입하고 있다는 차이 뿐, 위에서 언급한 요소들에 있어서는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이죠. 한두 해의 고전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LG관계자
2011년 8월 17일 at 12:24 am
LG내부의 이야기는 여러 채널을 통해서 들었었는데 아주 실감나는 코맨트를 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매킨지에서 컨설팅을 잘못해서 그렇게 됐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당시 경영진이 직접 판단을 내리지 않고 컨설팅에 의존하고 또 전략실패의 책임을 컨설팅에 전가하는 모습이 아쉬웠습니다. 아무쪼록 LG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시 입지를 회복하길 빕니다.
estima7
2011년 8월 17일 at 4:18 pm
대기업이 컨설팅에 의존했다는 사실이 의아 하군요. 혁신적인 상품은 기획에 있어 어찌 컨설팅을 믿을 수 있나요? 대다수의 컨설팅사나 소비자가 그런 상품에 대해 알지도 못합니다.
회사 내부의 모험적인 연구팀이 없는 것입니다. 요즘의 정보통신 산업은 급변으로 인해 3년 앞을 내다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따라 잡으려면 수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회사 내부에서는 모험적으로 상품을 연구 개발 하는 체게를 마련해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10명정도의 연구 인력에게 안드로이드에 대해 준비만 시켜 두었더라면 이런 늑장 대우는 있을 수 없었죠.
모험적인 연구에 있어 실패 비율은 당연히 높지만 장기적으로 기업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합니다. 좋은 품질의 기계를 만들어내는 엘쥐 전자가 뒤쳐진데 대해 마음이 아프며 꼭 어려움을 헤쳐 나가시길 빕니다.
정부일
2011년 8월 17일 at 8:52 pm
ㅎㅎ, 저 이야기가 결국 공개 되었군요. 저 당시에 “구글폰”이라는 프로젝트로 우면동 연구단지 내 모 그룹에서 진행중이었습니다. 관련 업계분들은 아시겠지만, 우면동 연구단지내에는 휴대전화를 직접 개발하는 부서는 없었습니다. 연구단지 내 몇개 그룹/팀들이 “컨설팅” 내지는 “개발지원” 명목하에 가산동(?)연구소에 출장/파견을 나가있는 형태였습니다. 결국 구글폰 프로젝트는 사업추진 주도권을 갖지 못하는 부서에서 진행되었고, 그 당시는 (초콜렛폰?과같은) 피쳐폰으로 가산동이 승승장구했을 때였다보니 그냥 파일럿성 프로젝트로 해보다가 접은 것 같습니다.
dzym
2011년 8월 17일 at 12:31 am
그랬군요. 사실, 어제 WSJ의 위에 소개한 부분을 읽고 조금 안타까왔습니다. 당시에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았는데요. 물론 안드로이드가 너무 설익어서 진행하기에 어렵고 미래가 보이지 않았을 수 있었지만 앤디루빈입장에서는 LG에 큰 기대를 걸었을 것 같습니다.
In the plex에서도 당시 앤디 루빈의 팀이 HTC, T모바일과 같이 G1을 내면서 마지막까지 완성도가 떨어져 힘들어했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경영진에서 좀더 멀리 내다보고 프로젝트를 살렸더라면 좋았을텐데요… 아쉽습니다.
estima7
2011년 8월 17일 at 4:21 pm
LG전자의 아는 사람으로부터 당시에 들은 이야기인데, 직원들은 분명히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고 스마트폰이 가져올 혁명을 알고 있었다고 하네요. 모를 것도 없는게, 미국에서는 이미 5년 전부터 스마트폰의 인기가 상당했으니까요. 4년 전에 제가 미국 왔을 때 주변에 스마트폰 안쓰는 사람이 없었으니까..
근데 정작 LG전자의 사장/부사장/임원들은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을 본 적은 있지만 손에 들고 사용해본 적이 없어서 전혀 공감을 못했기 때문에 이 사업이 탄력을 못받았다고 합니다. 써본 적도 없으면서 “피쳐폰이면 충분해”라고 말했다고 하니, 당시 블랙베리를 쓰고 있던 저로서는 진짜 답답했지요. 저는 들은 이야기니 다른 LG관계자님이 사실 확인을 해주실 수 있을 듯..
Sungmoon
2011년 8월 17일 at 3:42 pm
예전에도 트윗한 일이 있는데 제 이웃에 LG에 다니시다가 미국으로 오신 엔지니어분이 계십니다. 그 분 말씀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답답했다고 하시더군요. 바깥세상이 급변하고 있는데 그런 트랜드를 너무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estima7
2011년 8월 17일 at 4:24 pm
뭐 LG경영진의 과거 실수는 업질러진 물이라 어쩔수 없고, 남용 부회장도 마지막에 자기가 (스마트폰에 대해)잘못 판단했다고 하면서 물러나기까지 했으니 계속 얘기해 봤자 어떻게 되지도 않습니다.
Mobile쪽 경영진의 회사내 입지나 우선권에서 다른 CE(Consumer Electronics) 출신 임원들한테 밀리는 것도 사실이고, TV나 기타 제품을 만들던 무지 느린 개발 사이클을 Mobile에 그대로 가져다 붙이려는 시도도 몇번 있었기에 당황스러운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지요. 마케팅이나 영업쪽 역량도 많이 떨어졌었고, 기획은 뭐 더 말할것도 없었고… 갑자기 Mobile 사업이 잘되면서 급속히 늘어난 사세에 이리저리 급조한 조직으로 운영되던 해외 조직에 긴급 수혈한게 CE쪽 인원들인데, 이게 혈관을 막는 역할을 한 것이라 보이기도 하지요.
Hekjun Jang | 장혁준 (@imgjun)
2011년 8월 17일 at 9:00 pm
ㅎㅎ. 요즘은 글 신경써야 되요. 블로그는 물론이고, 트윗하나 잘못해도 신문에 기사가 실리는 상황이라서 …
LG 건은 정말 답답함의 극치이죠. 이미 지나간 일이니 뒤돌아봐서 뭐하겠습니까만. 지금이라도 큰 물결을 볼 수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직이 너무 큰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
그리고, 대기업들이 컨설팅 조직을 이용해서 자신의 리스크를 전가하는 모습도 보기 안좋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이것을 하는데, 솔직히 보면 담당하는 임원들이나 내부적인 생각들이 있어서 추진하고 싶은데 리스크 때문에 맘에 걸리면 컨설팅을 동원해서 외부로 책임전가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놓고 진행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마치 정부에서 공무원들이 자신들이 책임지기는 싫은데 추진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여러가지 포럼이나 위원회를 이용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 것처럼 …
정지훈 Jihoon Jeong (@hiconcep)
2011년 8월 18일 at 3:15 am
시장 상황은 정말 앞을 예측하기 어렵지요.
흥미로운 글 잘 읽고 갑니다.
이장석
2011년 8월 18일 at 7:26 pm
본문 뿐 아니라 댓글을 통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어 좋습니다 ^^
지인에게 관련 내용 듣다보면 제가 더 답답해 화가 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안망하는게 신기하다… 하곤 했는데 벌써 휘청거리기 시작해 당황스럽기도 하구요. (시장의 변화속도가 지수적 증가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리스크테이킹은 삼성얘기로 치부하며 심지어 사고를 치더라도 안짤리는 공무원조직, 일잘하는 직원을 집단공격해 그만두게하는 사내정치, 아랫사람 이야기는 안듣고 컨설팅이나 외부 인사의 이야기만 신뢰하는.. 여느 기업에나 있는 부분들이겠지만요.
전형적인 탑다운방식 의사결정조직이다보니 더더욱 변화에 둔감한 것 같습니다. 문제의 본질이 윗분들이신데 책임지는 분도 드물고 그분들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가 강력하게 일어날지 걱정스럽습니다.
afewgooddaniel
2011년 8월 19일 at 9:53 am
저는 단순히 LG나 삼성의 스마트폰 대응이 늦었다고 보기 보다는 SKT, KT 등의 이통사도 ‘이대로 조금더’ 자세로 임했던 탓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2004-2006년 정도 당시에 컨설팅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이통사의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것들이었는데, 대부분 스마트폰이 도래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음성과 문자 중심의 요금제 제안 처럼 단순히 지금 있는 것들을 leverage하는 것이나, ‘뭔가 세상에 없는 것을 가져와라’ 라는 투의 비현실적인 프로젝트들이 많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Tyko Kim
2011년 8월 31일 at 8:59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