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 EstimaStory.com

Thoughts on Internet

Archive for 4월 10th, 2011

영어강의 의무화에 대한 생각

with 24 comments

우리집에서 약 30분 거리의 MIT교정

예전부터 한국인들이 보다 더 영어를 잘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영어로 얻을 수 있는 지식의 양이 만만치 않고, 영어를 해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해외에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지난 2년간 미국에 와서 일하면서 더 강해졌다. 영어라는 언어를 통해 정말 많은 폭넓은 콘텐츠를 접하고 즐겁게 읽고 호기심을 채우고 트위터를 통해 한국에 계신 분들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나를 팔로우하신 분들은 공감해주실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한국어로 제대로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는 바탕이 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에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아니지만 대학교에서 나름 영어공부와 일본어공부를 열심히 했었다. 영어로 하는 수업을 한번도 들어본 일은 없지만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도서관에 쌓여있는 NYT 영어기사를 찾아읽기도 하고 영어오디오북을 사다가 들어보려는 노력을 하면서 영어실력을 키웠다. 토익성적을 올리고자한 공부는 아니었지만 나쁘지 않은 토익성적도 부차적으로 따라왔다. 93년인가에 토익 895점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토익성적이 높다고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기억이 있다. (물론 요새는 이 점수로 명함도 못내민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일본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학교1학년 여름방학에 아버지의 배려로 아버지일본친구분의 아들이 하는 피자가게에 가서 한달간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피자를 자르고, 상자를 접고 자투리시간에는 공사판일을 따라나서기도 했다. 당시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상태에서 처음 갔다가 일본이라는 나라에 호기심을 느껴 일본어학습에 동기부여가 됐다. 거의 만화-소설 등을 통해 독학으로 일본어를 익혔다. 보통 매년 한번씩 일본에 갔는데 갈때마다 내 일본어가 향상되는 것에 기쁨을 느껴 더 열심히 하게 됐다. 일본은 많이 갔지만 일본에 장기체류하거나 일본학교에 유학한 경험은 없다. 그래도 일본어로 일을 하는 회사를 경영하기도 했었고 일본인들과 비즈니스를 많이 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일본에 살아본 일도 없으면서 어떻게 일본을 그렇게 잘 아느냐는 말을 일본인들로부터 많이 들었다. 그것은 다 일본에 대한 호기심이 원동력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한국에서의 영어강의 의무화 때문이다. 예전에 지인의 부탁으로 서울의 모대학 국제대학원에 가서 영어로 인터넷트랜드에 대한 강의를 한 일이 있다. 솔직히 지금도 영어에 스트레스가 많은 나는 당시에 “될대로 되라”라는 식으로 가서 더듬거리며 강의를 했다. 대략 45분간 20여명의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질문을 받으면서 놀랐다. 학생들이 생각과 달리 영어원어민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런지 궁금한 내용을 속시원히 질문하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도 속시원히 답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알고 보니 학생들중에서 중국에서 온 학생 1명만이 영어원어민이라고 했다. 그 때 든 생각은 “도대체 이게 뭔가”, “참 유연성이 부족하다”였다. 배움의 목적이 영어가 아닐진데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인교수의 강의만 영어로 하면 됐지 무엇때문에 모국어가 한국어인 사람들끼리 더듬거리는 영어로 어색한 장면을 연출하는가 싶어서였다. 그냥 우리말로 강의를 했으면 휠씬 더 많은 얘기를 해줬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리고 오늘 트위터를 읽다가 공감이 되는 글을 하나 발견했다. 카이스트 교수님의 글 같았다. 제목은 영어강의에 대한 개인 의견과 경험담.

한국어는 한국의 대표언어이고, KAIST는 한국의 과학대표 대학인데, 그런 대표 대학에서 자기나라 말이 아닌 영어로 100% 학문을 해야만 한다는 것은, 그 국가의 수치라고 믿습니다. 고등 학문을 자기나라 말로 하지 못하고, 자기 말로 배우지 못해 외국어로 사유해야 한다면, 그 국가의 국민들은 잘못하면 <미개인>취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의 언어를 갈고 닦으려면 그 국민들이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학자들도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중략~ 결과적으로 제가 영어를 잘 하게 된 것은, 탄탄한 수학 전공 실력이 있어서였고, 그런 수학 전공 실력은 우리말로 KAIST의 교수님들께 잘 배운 덕분이었으며, 그래서 박사과정에서 제 영어 실력과 상관없이 박사과정 동기들이 제 전공 실력을 보고 저와 같이 공부하자고 온 덕분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원래 영어를 잘 못했지만, 오랜 시간동안 준비를 하면서 이를 키워 나갈 기회를 거친 이후에야 영어 실력을 키울 수 있었고, 또 그런 실력 키울 기회도, 준비 안된 제가 영어 강의를 들으면서 영어 실력이 는 것이 아니라, 전공 실력이 바탕이 된 덕에 쌓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자신의 모국어가 확고하게 자리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또 다른 외국어로 어려운 전공과목을 배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그 언어권의 나라에 가서 24시간 그 언어환경에 노출된 상태로 철저하게 붙어야한다. 수업만 영어로, 그것도 거의 단방향으로 받고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한국어로 잡담하는 식으로는 되지 않는다.

일본어도 영어로 배운다는 얘기도 있다. 정말 황당하다. 하긴 국어도 영어로 수업한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듯 싶다. (한겨레 “일어도 영어로 배워…’장짤’땐 낙오자” 숨쉴틈 없었다”)

중국사도 동양철학도 일본어도 영어로 배운다.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딱 한번 한국어로 강의를 받아본 적이 있다. 보강수업이어서 가능했다. 너무 잘 알아들을 수 있어서 혁명적이었다.” 게시판에는 “영어 강의를 한번도 이해해본 적이 없다”는 글도 올라와 있다.

나는 2년전부터 미국에 와서 한국사람이 한명도 없는 회사를 맡아서 경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참 힘들었다. 10년전에 2년간 버클리경영대학원을 다닌 일은 있지만 유학하면서 내가 영어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했었다. 한번도 내가 영어를 미국에서 일할 수 있을만큼 잘한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말을 더듬대면서 나도 어렸을때 미국에서 교육을 받아서 원어민처럼 영어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래도 지금은 하루종일 직원들과 회의하고 일대일미팅하고 필요하면 전체직원을 모아놓고 이야기도 한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있다. 우선 듣는 능력이 중요하다. 일단 알아들어야 의사결정을 내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경영능력이다. 그것은 꼭 언어로 좌우되지 않는다. 미국에는 영어를 어눌하게 하는 이민자들이 많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짜 실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내용을 잘 알아듣고 조금 더듬대더라도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할 수 있으면 된다. 결국 그런 사람이 오래간다.

지금 돌이켜보면 항상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미국에 대해서 열심히 배우고, 인터넷트랜드에 대해서 열심히 배우고, 직원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회사운영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결과 자연스럽게 리더쉽을 가져갈 수 있게 됐다. 영어를 아무리 잘하더라도 미국문화와 인터넷업의 본질에 대해서 잘 모르면 누가 사장을 믿고 따라가겠는가. 그리고 직접 부딪히면서 일을 하면서 실전영어가 정말 많이 늘었다.

얼마전 우리 회사를 방문한 Ybrant인도본사 Chairman 슈레쉬(오른쪽에서 두번째), 이스라엘본사CEO 제이콥(왼쪽에서 두번째). 내가 영어가 좀 부족하다는 이야기에 둘다 하는 얘기가 "정욱, 뭘 걱정하나. 우리 모두 다 억양이 있는 영어를 구사한다. 다 마찬가지다. 자신을 가져라"고 말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20년전에 비해 지금은 엄청나게 영어공부하기가 좋은 환경이 되어 있다. 마음만 먹으면 굳이 영어수업을 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영어실력을 늘릴 수 있는 학습자료들이 인터넷에 널려있다. 특히 요즘은 학교에서 한국인교수들의 영어수업을 굳이 듣지 않아도 유튜브만 열면 세계 석학들의 영어강의를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시대다. 마이클샌달교수의 정의론조차 유튜브, 팟캐스트 등으로 전편이 공개되어 있다.

학교에서는 한국어로 교수님과 깊이 있게 공부하고 내공을 쌓은 뒤에 더 호기심이 있으면 흥미로운 외국교수의 동영상강의를 들어보고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는 시대다. 그리고 그 실력을 바탕으로 해외유학에 나서서 열심히 공부하면 얼마든지 세계의 인재들과 경쟁하고 같이 일할 수 있는 영어실력을 쌓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도 어려서부터 영어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해주고 영어를 통한 지식에 대해 충분히 호기심을 갖도록 유도해주면 값비싼 영어유치원, 조기유학 등이 없이도 영어를 충분히 잘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영어원어민처럼 영어를 하기는 어렵겠지만 굳이 외국인으로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뜻만 충분히 통하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한국 조기유학생들이나 교포2세들이 정작 한글이메일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를 보는데 오히려 그것도 안타까왔다.)

결국 중요한 것은 “Being Curious”다. 언어는 도구일 뿐이다. 자신의 모국어로 내공을 충분히 쌓은 다음에 영어수업을 해도 늦지 않을까 싶다.

Written by estima7

2011년 4월 10일 at 6:56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