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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주문 대기시간을 8분에서 1분으로 줄인 파네라의 디지털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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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초쯤 보스턴근교의 파네라브레드에 갔다가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오랜만에 가본 그 가게에는 사람이 주문을 받는 계산대가 절반이하로 줄고 그 자리에 아이패드를 이용한 주문시스템이 대신 자리잡고 있었다. 화면위의 음식사진을 눌러 주문하고 신용카드를 긁고 번호표를 받아가면 음식을 테이블로 가져다 준다. 사용은 간편했다.

나는 당시 이것이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전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한겨레에 “태블릿이 고객의 주문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칼럼을 썼었다. 나는 당시에 이런 조치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것뿐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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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WSJ에서 “어떻게 파네라가 모쉬핏(Mosh Pit)문제를 풀었는가”라는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모쉬핏은 공연등에서 군중이 무대앞에 몰리는 것을 뜻하는데 주문한 음식을 받으러 사람들이 몰려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파네라는 이 디지털주문시스템으로 고객이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을 평균 8분에서 1분으로 줄였다. 그리고 회사의 실적도 대폭 향상됐다.

파네라브레드는 주로 샌드위치, 샐러드, 수프를 파는 빵집이다. 가격이 적당하고 맛이 좋아서 나도 애용했던 체인이다. 일찍부터 모든 매장에서 성능좋은 무료 wifi가 제공했다. 또 Pick 2라는 메뉴는 샐러드나 샌드위치, 수프 중 2개를 골라서 반반씩 시키면 가격이 7불대로 저렴해서 자주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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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Tripadvisor에서 가져온 사진. 내가 제일 좋아하던 조합은 시저샐러드와 감자수프, 그리고 바게트 한 조각.)

문제는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많은 미국인 고객들은 점심시간에 가서 차를 주차하고 줄서서 주문하고, 음식을 픽업해서 가지고 나와서 사무실로 돌아가서 먹는다. 어쩔 수 없이 제법 시간이 걸린다. 라이코스에서 일하던 나도 점심에 나가서 파네라음식을 픽업해오는데 아무리 빨라도 30분은 걸렸다. 나는 원래 그러려니 하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파네라의 CEO 로날드 쉐이크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정말 깊이 고민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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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기사에 따르면 쉐이크 CEO는 이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디지털기술로 풀고자 했다. 그리고 2012년 매사추세츠주의 파네라매장에 처음 타블렛주문시스템을 시범 설치했다. 그리고 그는 그냥 회장실에 앉아있지 않았다. 타블렛주문시스템을 설치한 파네라매장에 일주일에 100시간씩 나가서 무엇이 문제인지 주시했다는 것이다. 그가 찾아낸 것은 크게 한두가지를 고치는 것이 아니었다. 대신 수백가지의 작은 것들(hundreds of little things)를 찾아내 조정했다. 고객이 사용하는 주문대의 타블렛 UI나 주문을 받아 처리하는 직원들이 보는 키친디스플레이시스템 등의 미세하게 불편한 점을 찾아내 고친 것이다.

이렇게 한 결과 파네라매장의 디지털주문은 지금 전체주문의 26%까지 올랐다. 또 디지털주문시스템 덕분에 효율적으로 배달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전체매장의 24%에서 배달주문이 되고 연말까지  미국전체 파네라매장의 40%까지 배달주문이 가능해진다. 3불의 배달비를 내면 5불이상주문부터 배달해준다는데 내가 미국에 있었다면 매일처럼 이용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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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혁신 덕분에 올해 1분기 미국 패스트푸드체인의 매출이 2.2% 줄어든 가운데 파네라는 오히려 5.5% 매출이 증가했다.

하지만 이런 성공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내가 처음 파네라의 타블렛주문시스템을 본 2013년부터 이후 3년동안 매년 1천억원이상의 디지털 투자가 이뤄졌다. 그 기간동안 이익은 제자리였고 비용을 줄여서 이익을 늘리라는 투자자들의 압력도 거셌다. 하지만 이를 이겨낸 파네라는 2016년 1분기부터 경쟁사를 따돌리고 큰 실적 호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실적이 뒷받침되자 주가도 계속 오르기 시작했고 올해 4월에는 유럽의 JAB홀딩스가 20%의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약 8조원에 파네라브레드를 인수했다. 일종의 스타트업 엑싯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파네라의 이런 성공을 보며 대기업의 혁신 과정도 스타트업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1. 고객의 문제를 인식하고 기술혁신으로 고치려는 창업자 : 일주일에 100시간씩 매장에 나가서 고객을 관찰한 파네라 CEO 로널드 쉐이크.
  2. 디테일이 강한 실행력 : hundreds of little things를 찾아내서 고치는 실행력.
  3. 인내력을 가지고 장기 투자 : 매년 1천억원정도의 비용을 디지털 업그레이드에 투자. 3년간 당장 눈에 보이는 실적개선이 없었음에도 끈기 있게 진행.

결국 모든 것은 리더의 비전과 실행력에 달렸다는 생각을 파네라를 보면서 했다.

가끔 내가 만나는 대기업중에 “사장님이 직원들이 스타트업처럼 일하도록 교육시켜달라고 하십니다”라는 얘기를 듣는다. 자사 직원들이 대기업에 다닌다고 안주하지 말고 스타트업 직원들처럼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어달라는 주문이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어처구니가 없다. 나는 “리더부터 스타트업처럼 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꾸고,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직접 나서서 혁신하는 방식으로 솔선수범하셔야 됩니다”라고 조언한다. Lead by example이다.

무엇보다 파네라의 쉐이크 CEO처럼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남부러울 것 없는 큰 회사를 만들었다고 회장실에 숨어있으면 안된다. 고객의 불편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현장에 가서 살펴보고, 고객과 직원들과 대화하고, 끊임없이 작은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타블렛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찾아보니 파네라브레드의 고용인원수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만명에서 5만명으로 1만명 늘어났다. WSJ에 따르면 파네라는 음식배달 기사를 올해 1만명 더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물론 좋은 일자리는 아닐지 모르지만 어쨌든 당장 고용의 감소는 없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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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estima7

2017년 6월 6일 at 12:02 am

혁신적 스타트업, 왜 한국에서는 쉽게 등장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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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5년간 살다가 2013년말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국의 스타트업을 돕고 바람직한 스타트업생태계를 만드는 일을 시작한지 이제 2년이 되어 간다. 그런데 그동안 관찰한 결과 정부가 창조경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창업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지만 생각만큼 다양한 분야에 걸쳐 스타트업이 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 쿠팡으로 대표되는 소셜커머스분야나 배달의 민족이 있는 O2O분야, 선데이토즈, 데브시스터즈가 떠오른 모바일게임분야를 제외하고는 아직 많은 성공사례가 나오지는 않았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다.

특히 몇몇 분야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불모지에 가까왔다. 금융분야에서 혁신을 추구하는 핀테크스타트업이 전세계적으로 수천개씩 쏟아나와 있는데도 한국에는 지난해까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스마트폰과 택시를 연결해주거나 일반인이 자신의 차로 직접 택시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미국의 우버, 리프트나 중국의 디디타처 같은, 교통분야에서의 혁신을 추구하는 서비스들이 전세계적으로 다양하게 뜨고 있는데도 한국은 최근에 카카오택시가 인기를 끌기 전까지는 유사한 서비스가 거의 없었다.

중국의 DJI 같은 기업이 일반 대중이 즐길 수 있는 드론을 만들어 세계시장을 호령하고 세계적으로 다양한 드론기업이 수백개 쏟아져 나올 동안에도 한국에는 드론파이터라는 드론을 만드는 바이로봇외에 눈에 띄는 드론기업이 없었다.

스마트폰시장에서도 샤오미나 원플러스 같은 새로운 중국 스마트폰 스타트업들이 등장해 중국은 물론 세계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동안 한국시장에는 새로운 기업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팬택은 쓰러지고 LG전자의 스마트폰비즈니스는 더욱 고전하는 중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왜 한국에서는 이런 핀테크, 드론, 교통, 스마트폰 분야의 혁신스타트업이 잘 나오지 않을까. 단지 시장이 작아서 그런 것인가. 그 이유를 몇가지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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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규제스타일은 네거티브형, 한국은 포지티브형.

미국의 도로에서는 아무 교차로에서나 유턴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유턴을 할 수 없는 곳에만 금지표시가 되어 있다. 규제시스템도 비슷하다. 안되는 것(Negative)만 표시해놓고 규제대상으로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은 자유롭게 해봐도 되는 시스템이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를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에서 도전을 하는 기업이 많이 나온다.

올 5월의 아시아리더십컨퍼런스에서 만난 루프페이 윌 그레일린 CEO. 루프페이의 초기모델은 스마트폰에 동글을 끼우고 카드정보를 입력해 쓰는 것이었다. (사진출처 루프페이)

올 5월의 아시아리더십컨퍼런스에서 만난 루프페이 윌 그레일린 CEO. 루프페이의 초기모델은 스마트폰에 동글을 끼우고 카드정보를 입력해 쓰는 것이었다. (사진출처 루프페이)

한국같으면 위법이라 못할 사업도 미국에서는 거침없이 한다. 2015년 2월 삼성전자가 약 2천5백억원을 주고 인수한 루프페이 윌 그레일린CEO를 컨퍼런스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직접 물어봤다. 루프페이는 신용카드정보를 읽어서 스마트폰에 집어넣는 방식인데 기존 카드회사들의 허락을 받고 했냐고 했다. 그랬더니 “그런 규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해도 된다. 허락받지 않고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덕분에 루프페이는 이런 신기술을 킥스타터를 통해 ‘시도’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삼성전자의 연락을 받았다.

한국같으면 카드정보를 스마트폰에 저장한다는 것부터 위법일 가능성이 있고 또 카드회사들의 반발로 시작도 하지 못할 아이템이다. (실제로 모카드회사분에게 물어본 일이 있는데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루프페이의 기술을 이용해 삼성페이를 개발해 8월20일부터 국내서비스를 시작했고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루프페이가 만약 한국회사였다면 이런 기술을 개발해 선보이고, 삼성 같은 대기업에 인수될 가능성은 아주 희박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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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6조가 넘는 기업가치의 회사가 됐지만 2007년 렌딩클럽도 아주 미약하게 시작했다. 2007년 페이스북위에서 투자자와 돈을 빌리고자 하는 사람들을 중계해주는 회사로서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스타트업이 규제를 신경쓰지 않고 시작했더라도 회사가 덩치가 커지면 그때 규제당국이 나선다. 소비자보호를 위해 필요할 경우다. 개인간의 투자와 대출을 연결해주는 렌딩클럽의 경우 2007년 창업후 규제에 상관없이 비즈니스를 키우다가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의해 영업정지를 당했다. 하지만 6개월뒤 규제기관과 합의를 했고 P2P대출이 제도권에서 인정을 받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P2P대출은 미국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의 도로에서는 유턴은 무조건 안된다. 허용되는 곳에만 표지만이 있다. 규제시스템도 비슷하다. 허용되는 것만 촘촘하게 규정해놓은 가이드라인이 있고 그곳에 없는 것을 하면 무조건 위법이다. 규제에 걸릴 것 같더라도 소비자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으면 우버처럼 일단 질러보는 미국의 스타트업들과는 달리 한국의 스타트업은 시작하기도 전에 법령을 세심히 살펴야 한다. 사후규제가 아니고 사전규제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국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필요이상으로 법률지식에 해박하다. 제품개발보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이라든지 전자금융거래법 몇조 몇항을 외울 정도로 해박하게 알고 있는 스타트업창업자들을 만나서 놀라기도 했다. 이런 꼼꼼한 규제는 창업자들의 상상력을 제한한다. 그리고 결국 그들을 좌절시키고 포기하게 만든다.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컨퍼런스에서 이야기하는 트랜스링크 음재훈대표.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컨퍼런스에서 이야기하는 트랜스링크 음재훈대표.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인 트랜스링크캐피탈의 음재훈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규제시스템은 방목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커다란 목장에 양떼를 풀어놓고 울타리를 쳐놓는 식이죠. 울타리안에만 있는 한은 마음대로 뭐든지 해보라는 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혁신이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더 많은 데이터를 공개하는 미국, 데이터를 감추는 한국.

미국은 공공데이터를 되도록 많이 공개한다. 법원의 판례정보, 부동산거래정보 등등 수많은 공공데이터가 공개되어 있고 그 데이터를 가공해서 판매하는 데이터업자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해서 자동으로 투자를 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거나 개인이나 기업의 공개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용분석을 해주는 핀테크기업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빅데이터 산업도 이런 기반위에서 성장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공공기관도 사기업도 데이터를 꽁꽁 싸매고 공개하지 않는 편이다. 공개를 하더라도 가공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엄격한 보안규정도 그렇고 개인정보보호법이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스타트업이 공공데이터에 기반한 사업을 시작하기가 어렵다.

아웃소싱문화의 미국, 전부 직접 내부에서 해야 하는 한국.

미국기업들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핵심비즈니스에만 집중한다. 그렇지 않은 것은 주저 없이 외부기업의 제품을 사서 쓴다. 예를 들어 휴렛패커드 같은 대기업이 사내 인사관리시스템은 워크데이라는 외부기업의 인사관리 소프트웨어를 계약해서 쓴다. 내부에서 직접 만들어 쓰지 않는다. 핵심에만 집중하기 위해서다. 이런 풍토가 뛰어난 역량을 지닌 외부 소프트웨어회사들이 클 수 있는 기회를 준다.

Workday의 HR시스템(출처: Workday 홈페이지)

Workday의 HR시스템(출처: Workday 홈페이지)

반면 한국기업들은 어떤가. 외부 회사의 제품을 쓰지 않는다.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그룹내 계열IT회사를 시켜서 직접 제작하거나 하청을 줘서 만들어서 쓴다. 최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가져다 쓰기 보다는 좀 품질이 떨어져도 내부 계열사의 것을 우선해서 쓴다. 그렇게 하다보니 역량있는 독립 소프트웨어회사들이 클 수 있는 자리가 없다. 올해부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제품을 쓰지만 삼성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문서작성을 하는데 내부에서 만든 훈민정음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했다.

좋은 품질의 외부제품보다 내부 계열사의 제품을 쓰는 것을 우선시하는 이런 문화는 기업들의 전체적인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 그리고 국내에서 큰 B2B(엔터프라이즈)소프트웨어회사가 나올 수 없게 한다. 정부나 기업이 사주질 않으니 나올 수가 없다. 기업들은 하청업체처럼 쓸 수 없는 오라클, SAP, 마이크로소프트 등 외국대형소프트웨어회사들의 소프트웨어정도를 직접 구매한다.

혁신에 둔감한 리더

그리고 한국은 정부나 기업의 최고의사결정권자들이 혁신을 받아들이는데 둔감하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은 요즘 이메일 때문에 궁지에 몰려있다. 국무장관시절 사설 이메일서버를 써서 주고 받은 이메일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FBI가 힐러리가 사설이메일서버를 통해 국가기밀이 담긴 이메일을 주고 받은 일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는데 그 이메일갯수가 3만여통이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장관들이 얼마나 업무에 이메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지 알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을때 우버를 사용할 것이라고 밝힌 젭 부시.(출처 : 베이에어리어 KPIX방송)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을때 우버를 사용할 것이라고 밝힌 젭 부시.(출처 : 베이에어리어 KPIX방송)

또 젭 부시 등 공화당 대선후보들은 우버를 옹호하며 유세중에 우버차량을 불러서 이용하기도 한다. 4백60만명의 팔로어를 가진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의 달인’이다. 이처럼 미국의 교수, 기업인, 관료 등 지식인들을 만나보면 능수능란하게 트위터, 블로그 등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며 우버 등 새로운 혁신서비스를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출처 : 이기는 야당을 갖고싶다.(금태섭 저) 37쪽.

출처 : 이기는 야당을 갖고싶다.(금태섭 저) 37쪽.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금태섭변호사의 신간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에는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이야기가 나온다. 국가의 IT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이메일도 쓸 줄 모른다는 것이다. 얼마전 나는 장관 등 고위직을 역임한 분들이 많은 그룹에 강연을 하면서 인터넷쇼핑이나 인터넷뱅킹을 직접 하시는 분이 계신지 물어보았다. 20여분의 그룹에서 단 2명이 손을 들었다.

지금은 정부부처의 상당수는 세종시로 옮겨가 있고 많은 정부산하기관들이 전국으로 이전해있다. 그런데 내가 만나보는 상당수의 공무원이나 산하기관직원들은 출장을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화상회의나 컨퍼런스콜을 하면 간단히 끝날 일을 위해 하루를 날린다. 물어보면 고위층일수록 이메일이나 화상회의에 익숙하지 않다고 한다. 그냥 오라고 한다는 것이다. 클라우드서비스조차 다 차단해놓아서 외부에서 업무를 보는 것도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

이처럼 최종의사결정권자인 사회고위층이 혁신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미국보다 한국이 휠씬 보수적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혁신기업이 더디게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런 경우 혁신기업에 대해 우호적인 정책이나 투자, 인수합병 등의 의사결정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뭔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 가치를 제대로 산정하고 투자를 하겠는가.

한국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의 혁신스타트업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위에 열거한 규제시스템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 한국에서 창조경제가 불을 뿜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통령과 장관들부터 직접 솔선수범해서 혁신트렌드를 배우고, 혁신스타트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직접 쓰는 모습을 보고 싶다.

***

지난 8월 31일 한국일보에 기고했던 글을 다듬어서 다시 블로그에 써봤습니다.

Written by estima7

2015년 10월 18일 at 6:59 pm

스타트업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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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혁신을 주도하는 미국의 비밀병기 : H1B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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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계 미국인 과학자인 미치오 카쿠가 지난 2011년에 한 토론에서 이야기한 내용을 담은 동영상을 뒤늦게 봤다. 그의 이야기가 내가 미국에서 살면서 비슷하게 느꼈던 점이기에 공감했다. 그는 미국의 과학교육이 엉망인데도 미국의 과학기반이 경쟁력을 잃지 않는 이유를 “H1B비자라는 비밀병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3분이 안되는 동영상이니 한번 보길 추천한다.)

미국의 비밀병기가 무엇인지 압니까? 그 무기는 H1B입니다. H1B가 없으면 이 나라의 과학기반은 폭삭 주저앉아버릴 겁니다. 구글, 실리콘밸리? 다 잊어버리세요. H1B가 없으면 실리콘밸리도 없습니다.”(America has a secret weapon! That secret weapon is the H-1B, without the H-1B the scientific establishment of this country would collapse! Forget about Google. Forget about Silicon Valley, there would be no Silicon Valley without the H-1B.)

해외에서 온 인재로 가득찬 실리콘밸리에서 살면서 나도 그 점을 절감했다. 쿠퍼티노에서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단지는 가히 ‘리틀인디아’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인도사람들이 많았는데 얘기해보면 거의 대부분 인도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뱅갈로르의 IT회사에서 일하다가 애플, 오라클 등에서 H1B비자를 받고 온 사람들이었다. 우리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인 마난의 아빠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이들은 미국에 정착한 다음에는 스타트업 창업에 나서거나 유망한 스타트업에 조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관련 포스팅 : 아시안이 점령한 스티브 잡스의 고향)

일부 천재 백인엔지니어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가본 실리콘밸리 회사들의 허리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들은 거의 대부분 인도, 중국, 한국, 유럽출신 사람들인 경우가 많았다. 이제 실리콘밸리에는 서울공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출신들도 굉장히 많다. 한국의 인재유출이 실제로 걱정될 정도다. 미치오 카쿠가 얘기하는 것처럼 중국이나 인도의 인재들은 상당수 본국으로 돌아가 자국의 ‘실리콘밸리’를 만들고 있기도 하다. 한국은? 글쎄 별로 그렇지는 못한 것 같다.

어쨌든 “H1B가 없으면 실리콘밸리도 없습니다.” 정말 공감하는 얘기다.

Written by estima7

2015년 2월 21일 at 5:24 pm

대기업을 위협하는 세상의 빠른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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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구글이미지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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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받는 CB Insights의 메일을 통해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 From 1973 to 1983, 350 corporations fell out of the Fortune 1000.
  • From 2003 to 2013, 712 corporations fell out of the Fortune 1000.

즉, 1973년에 1천대기업랭킹에 있던 기업중 10년뒤에 350개의 기업이 탈락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3년의 랭킹을 10년뒤인 2013년에 보면 712개의 기업이 이 랭킹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포춘1000랭킹은 비즈니스잡지인 포춘이 매년 발표하는 것으로 매출액기준으로 미국의 1천대기업을 선정한 것이다.)

물론 단순히 탈락했다기 보다 다른 기업에게 흡수 합병되어 랭킹에서 빠진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70년대에는 10개의 대기업중 7개가 10년뒤에도 대기업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최근 2000년대에는  10개의 대기업중 3개만이 남아있었을 정도로 세상의 변화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73년에서 83년사이에는 아마 76년 설립된 애플같은 회사가 새로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새로운 도전자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2003년에서 2013년사이에는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의 IT업계에서만 셀수없이 많은 회사들이 새로 랭킹에 들어갔다. 그동안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구태의연한 회사들은 매년 랭킹이 떨어지다가 1천위 바깥으로 밀려났을 것이다.

이런 변화의 속도는 지금 갈수록 더 빨라지고 있을 것이다. 당장 Airbnb, Uber같은 회사들이 몇년안에 진입할 것이다. 그러면서 기존 호텔체인이나 운송회사가 랭킹에서 빠질 수 있다. 특히 미국처럼 다윗(스타트업)이 골리앗(대기업)에 도전해 넘어뜨리는 일이 많은 나라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이처럼 경제의 신진대사가 활발하기 때문에 미국기업들이 계속 글로벌혁신을 주도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료화된 대기업은 스스로 혁신하기 어렵다. 외부의 혁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최근 미국, 일본, 중국의 대기업들이 열심히 인수합병과 스타트업 투자에 나서는 이유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대기업들은 그들에게 우호적인 정부 규제와 언론환경으로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편하게 기업활동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들이 스타트업 투자나 인수합병에 그토록 둔감한 것도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정부에만 잘보이면) 그동안 자기들의 위치를 쉽게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벤처투자업무보다 대관업무가 더 중요한 시대였던 것이다.

과연 앞으로의 10년도 그렇게 땅짚고 헤엄치기식으로 할 수 있을까. 그렇게는 못할 것이다. 이런 체제가 유지되면 될 수록 한국의 국가경쟁력도 같이 가라앉기 때문이다.

어쨌든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현재까지는 재벌계열사로 가득차 있는 한국의 대기업순위에 한국의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하길 기대한다.

Written by estima7

2014년 10월 12일 at 12:36 pm

혁신을 낳기 위해서 ‘아주 이상한 사람’을 응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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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신경제서밋’이란 행사가 열렸던 것 같다. 일본인터넷업계의 거물인 라쿠텐 미키타니사장이 이끄는 신경제연맹이 주최한 행사다. 안드로이드의 아버지, 앤디 루빈, 트위터 창시자 잭 도시 등 쟁쟁한 인물들이 참가해 인터넷을 통한 일본갱생의 길을 논한다는 행사였던 것 같다.

MIT미디어랩소장 이토 조이치

MIT미디어랩소장 이토 조이치

그런데 이 행사를 다룬 IT미디어의 기사에서 일본인으로서 MIT미디어랩의 소장(디렉터)을 맡고 있는 이토 조이치씨의 흥미로운 발언을 접했다. “혁신을 낳기 위해서 ‘아주 이상한 사람’을 응원하자”라는 제목의 짧은 기사인데 ‘일본’을 ‘한국’으로 바꿔도 그대로 들어맞는 얘기같다. 재미있어서 전문을 아래 의역해보았다. “変な人”는 ‘이상한, 독특한, 튀는 사람’정도의 뜻으로 바꿨다.

혁신을 낳기 위해서 ‘아주 이상한 사람’을 응원하자.(원문링크)

일본에서 파괴적인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신경제서밋2013’에서 MIT미디어랩의 소장인 조이 이토씨는 “이상한 사람을 지키고, 응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사회전체를 중심부터 변화시키는 것보다는 변방에 있는 특이한 사람을 지원해야한다. 특이한 사람에게는 대단한 가치가 있고 그런 일본인은 아주 많다. 예를 들어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은 세계로 나가면 대단한 사람이 된다.”

미국에서 성장한 이토씨는 일본의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모범생’을 키우는 일본의 교육이 창의적인 인재를 말살하고 있다. 권위를 부정하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행동하면서 가설을 생각해 나가는 인재가 필요하다. (그렇게) Creative를 Unlock하지 않으면 안된다.”

Screen Shot 2013-04-21 at 8.48.07 PM

그런데 이 글을 읽고 나서 바로 머니투데이 유병율기자의 “싸이가 창조경제? 너무 심각한 어른들이 문제”라는 기사를 접했다. 창조경제의 모범사례로 싸이의 젠틀맨을 모범사례로 들고 나온 정부와 창의성을 말살하는 한국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는 글이다. 이 중에서 아랫 부분을 읽으며 이토씨의 말을 떠올렸다.

1년 전쯤 인터뷰에서 싸이는 한국교육에 대해 내내 분노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제가 늘 듣던 말이 ‘산만하다. 딴 생각하지마. 잡생각 하지마’였어요. 이골이 날 정도로 혼나고 맞았죠. 지금도 그게 억울해요. 저는 산만해서, 딴생각 많이 해서, 잡생각 많이 해서, 재미있는 이상한 아이였고, 그런 게 지금 제 음악의 모든 것이 된 거에요. 산만하고 딴짓만 하는 아이가 한번 몰입하면 얼마나 무섭게 하는데, 맨날 혼만 내면 어쩌라는 거죠? 잡생각을 잡스럽게 보니까 잡생각이지, 좋게 보면 창의에요. 잡생각에서 창의가 나오고 창의가 반복되면 독창적이 되고, 독창적인 게 반복되면 독보적인 게 되는 거 아닌가요?”

어떤가 위 조이씨의 말에 나오는 ‘아주 이상한 사람’이 바로 싸이가 아닐까?

창조경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암기에 능한 모범생보다는 튀고 자기 생각이 있는 ‘이상한 학생’을 복돋워주는 교육을 먼저 만들고 실패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그런 사회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래야 제 2의 싸이가 계속 나오지 않을까.

Written by estima7

2013년 4월 21일 at 8:55 pm

미국의 혁신, 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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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창업국가이자 혁신이 넘치는 나라는 누가 뭐래도 미국이다. 실리콘밸리로 상징되는 미국의 혁신은 애플·구글·페이스북 등 혁신기업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인류의 생활양식까지 바꾸는 파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 이처럼 독창적인 스타트업이 넘쳐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창의성을 북돋우는 교육에서부터 기발한 아이디어에 투자하고 그 제품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주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 살면서 이런 혁신문화의 밑거름은 활발한 출판문화가 제공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미국의 서점에 갈 때마다 느끼는 점은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시각을 담은 책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온다는 것이다. 사회현상을 남다르게 바라보고 깊이있게 연구한 지식인들의 책이 신간 진열대를 가득 채운다. 매달 새로운 경영이론서는 물론 현직 대통령을 분석해서 쓴 정치분석서들이 계속 나오고, 어떤 인물의 일생을 연구한 흥미로운 전기들이 연이어 출판된다. 추리, 판타지, 로맨스, 과학소설까지 다양한 장르의 오락물도 계속 나온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성찬이 계속 펼쳐지는 것이다.

 출판사들은 재능 있는 잠재 작가들을 열심히 발굴해내어 큰돈을 투자한다. 블로그 등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서 찾아낸다. 저명한 작가들과는 장기계약으로 유대관계를 강화한다. 정성 들여 만들어낸 책은 적극적으로 마케팅한다. 책 한권 한권을 만드는 것이 일종의 벤처투자다.

 언론들도 좋은 책을 띄우기 위해 노력한다. 화제의 책이 나오면 텔레비전, 신문, 라디오, 잡지 할 것 없이 적극적으로 저자를 초대해 책을 소개한다. 신문이나 잡지의 지면을 크게 할애해 책의 핵심내용을 그대로 발췌해 소개하는 일도 잦다.

 전국의 기업, 학교, 도서관 등에서도 수시로 저자들을 초청해 강연회를 연다. 강연회 내용은 인터넷으로 모두 공개된다. 엄청나게 바쁘게 활동하는 교수나 언론인들도 짬을 내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을 내어 대중들과 소통한다. 꼭 명문대 출신 교수가 쓴 책이 아니라도 좋은 아이디어를 담고 있으면 팔린다. 좋은 책을 꾸준히 사주는 두터운 독자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린스타트업 한글판표지와 에릭 리스

린스타트업 한글판표지와 에릭 리스

 얼마 전 <린 스타트업>이란 책의 저자인 에릭 리스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다. 그가 5년 전 다니던 스타트업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모색할 당시만 해도 그는 29살의 무명 엔지니어였다. 하지만 그가 당시 남들과 달랐던 것은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새로운 경영이론을 고안해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끊임없이 블로그로 소통하면서 벤처커뮤니티의 호응을 얻은 그는 여기저기서 강연을 통해 그 이론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판사의 도움으로 2011년에 <린 스타트업>이란 책을 출판해 베스트셀러로 만들고, 이제는 실리콘밸리의 명사가 됐다. 그의 경영이론은 이제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뿐 아니라 대기업, 미국 정부까지 가져다 적용하고 있다. 그는 명문대 박사학위 소지자도 아니고 성공한 벤처기업인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참고:린스타트업의 에릭 리스 인터뷰 후기)

 이런 독창적인 책이 풍부한 미국의 출판문화를 보면서 치유(힐링)와 자기계발서에 지나치게 쏠린 한국의 독서문화를 우려한다. 외국 번역서가 많이 팔리기도 하지만 그것도 저자의 유명세나 간판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다. 과연 마이클 샌델 교수가 하버드대 교수가 아니고 미국의 덜 알려진 대학교수였다고 하더라도 정의론이 한국에서 그렇게 많이 팔렸을까?

 책 문화에는 그 사회의 모습이 투영된다. 한국의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좀더 다양한 분야의 독창적인 생각을 담은 책들이 등장하길 기대한다.

2월19일 한겨레신문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 칼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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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을 쓴 이유가 있다. 무조건 미국이 낫고 한국이 후지다고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난 4년간 미국에 살면서 느껴왔던 점을 쓴 것이다.

특히 지난해  <인사이드애플>을 번역해 내고 나서 한동안 미국에서 출간된 책중에 한국에 번역해서 낼 만한 책이 또 있는지 흥미를 가지고 살펴봤었다. 그래서 출판사도 도와줄 겸 미국의 서점에 가면 평소보다 더 자세히 신간을 보고 책 내용을 파악했다.(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책 구경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NYT, WSJ 등의 북리뷰도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았다. 그러면서 미국에는 정말 책이 많이 나오고 내용도 깊이가 있는 책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쉽게 쓰고 쉽게 읽어버리는 책이 아니라 사회현상을 깊게 고찰하고 취재해서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정리해서 독창적으로 써낸 책이 많다는 것이다.

매주 일요일에 발간되는 뉴욕타임즈북리뷰. 26페이지. 1896년에 시작되어 117년의 역사. 매주 배달되어 오는 750~1천권의 책중에서 20~30권을 선택해 리뷰한다고.

매주 일요일에 발간되는 뉴욕타임즈북리뷰. 26페이지. 1896년에 시작되어 117년의 역사. 매주 배달되어 오는 750~1천권의 책중에서 20~30권을 선택해 리뷰한다고.

그리고 언론이 정말 열심히 책을 소개한다. 뉴욕의 대형출판사들의 로비력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일단 일요일에 나오는 NYT 북리뷰섹션은 웬만한 잡지 한권 분량이다. 꼭 북섹션에서만 책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고 주말판 신문에서는 적극적으로 좋은 책의 내용을 발췌해서 소개한다. 그리고 이런 책소개가 가끔씩 뜨거운 논쟁을 부르며 사회적 담론을 형성한다.

사진출처 Chinese Grandma.

사진출처 Chinese Grandma.

예를 들어 2011년 1월에 예일대교수 에이미 추아는 WSJ 토요판 섹션 머릿기사로 “왜 중국엄마는 더 뛰어난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며칠후면 출판되는 자신의 책 “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의 핵심내용을 발췌해 실은 엄청나게 긴 내용이었다. 이 기고에는 거의 9천개 가까운 댓글이 달렸을 정도로 미국내에서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렀다. 이 글은 거의 2주간 WSJ의 페이지뷰 1위를 했고 모든 언론에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책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음은 물론이다.

TV나 라디오에서도 책을 열심히 소개한다. 저자를 초대하거나 전화로 연결해서 인터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CBS This Morning이라는 모닝쇼에서는 매일아침 CTM Reads라는 코너를 마련해서 화제의 신간저자를 초청해 책의 내용에 대한 대담을 나눈다.

CBS This Morning의 CTM Reads코너.

CBS This Morning의 CTM Reads코너

책을 낸 저자들은 미국 전역을 돌면서 북투어를 한다. 미국전역의 기업, 도서관, 학교 등에서 초청을 한다. 출판사가 섭외를 해서 대형서점에서도 강연회를 갖고 사인회를 갖는다. 내가 번역을 한 <인사이드애플>의 저자 아담 라신스키는 책을 낸지 일년이 넘었는데도 꾸준히 북투어와 책관련 강연을 하러다닌다고 한다.

예를 들어 구글은 매주 다양한 책의 저자들을 구글캠퍼스에 불러서 Authors@Google이라는 강연행사를 갖고 이 내용을 모두 유튜브에 공개한다. 위 동영상은 구글에서 가진 아담 라신스키의 강연이다.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그의 인사이드애플 관련 강연이 수십개가 검색된다. 웬만한 유명저자는 거의 다 구글에 들러서 강연을 했고 그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있다고 보면 된다. (검색해보세요.)

린스타트업의 에릭 리스 인터뷰후기에도 썼지만 독특한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분석한 이런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책들이 새로운 혁신의 씨앗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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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500 Startup이라는 벤처인큐베이터의 CEO David McClure의 발표에서 본 슬라이드다. 그는 자신의 펀드자금을 몇몇 유망 스타트업에 몰아서 투자하는 것보다 수없이 작게 쪼개서 수많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그의 방법론을 Venture Capital 2.0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데이터를 분석해서 개선하고 작은 실험을 반복하는 그런 방법론을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이나 에릭 리스의 ‘린스타트업’같은 책에서 아이디어를 받아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반디앤루니스서점의 베스트셀러서가

반디앤루니스서점의 베스트셀러서가

그래서 그런 미국의 출판문화와 비교해서 좋은 책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너무 산문집이나 자기계발서, 힐링서적 위주로 베스트셀러랭킹이 매겨지는 우리 출판문화가 좀 아쉬웠다. 한겨레칼럼은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서 써본 글이었다.

출판사는 독창적이고 깊은 내용을 다룬 책을 많이 내놓고, 언론은 다양한 책을 열심히 소개하고, 독자들은 그런 좋은 책을 많이 사서 읽고 즐기는 그런 출판문화가 우리나라에도 자리잡기를 바란다.

책값이 아깝다고 하기에 앞서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어떤 훌륭한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담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 배우는데 있어 돈 1만원~2만원을 지불하는 것은 거의 거져나 다름 없는 것 아닌가?

Written by estima7

2013년 2월 24일 at 3:25 am

인수를 통한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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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Royal Pingdom 블로그에 흥미로운 포스팅이 실렸다. 타이틀은 Innovation by acquisition.

포스팅은 이렇게 시작한다. 플래쉬, 안드로이드, 핫메일, 구글애널리틱스, 파워포인트의 공통점은?

답은 어도비, MS, 구글 등 IT공룡들의 대표적인 프로덕트인 이 제품들이 in-house로 개발된 것이 아니고 모두 인수합병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란 얘기다.

나는 위의 사례들은 거의 다 미리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분들은 잘 모르실듯 싶다. 열거된 제품중 파워포인트는 나도 MS가 87년 작은 벤처를 인수해 흡수한 제품인지는 몰랐다.

미국와서 보면 미국기업들의 적극적인 인수합병에 놀랄 때가 많다. 혁신은 내부에서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고 외부에서 사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주 확실하게 서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항상 인수합병을 이야기하면 그거 간단해 보이는데 그냥 안에서 만들면 안되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일쑤다.

구글은 20%프로젝트를 통해 in-house 혁신과 적극적인 인수합병을 통한 혁신을 잘 조화시키는 좋은 사례가 아닐까 싶다. 사실 Adsense, Adwords라는 엄청난 광고플렛홈과 뛰어난 엔지니어를 가지고 있는 구글이 마음만 먹으면 내부에서 모바일광고플렛홈을 못만들리가 없다. 그런데도 Admob이라는 아직은 작은 회사를 9천억가까운 돈을 주고 인수하는 배포를 보면 놀랍기가 그지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인하우스로 개발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분명한 승산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돌이켜보면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라이코스도 기본 검색브랜드외에 가지고 있는 Tripod, Gamesville 등 모두가 90년대말 인수합병을 통해 흡수한 제품, 브랜드다. 비록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남아서 회사에 기여하고 있는 브랜드기도 하다.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하는 포스팅이다.

Written by estima7

2010년 3월 10일 at 6:06 pm

짧은 생각 길게 쓰기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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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슈미트의 혁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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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워싱턴포스트에 Google CEO 에릭 슈미트가 “Erasing our innovation deficit”(혁신결핍증 없애기)라는 제목의 컬럼을 썼다.

내가 이 인터넷업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CEO가 있다면 주저않고 에릭슈미트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카리스마와 천재성이 넘치지만 그만큼 괴팍하기도 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어떤 면에서는 신 같은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그를 존경한다기보다는 두려워하는, 경외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에릭슈미트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이미지가 느껴지면서도 대단한 지식, 실력, 인품 등을 다 갖춘 최고의 CEO다. 현자다. 유튜브에 가면 그의 강연 동영상이 엄청나게 많이 나와있는데 들어보면 단순히 인터넷을 넘어서 구글의 프로덕트하나하나의 디테일부터 우리 사회에 대한 구석구석에 대한 그의 지식과 통찰력에 대해 찬탄을 금할 수가 없다. 도대체 모르는게 없다. 저렇게 바쁜 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평소에 공부하면 저렇게 잘 알까.

예전에 구글에 있는 후배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구글직원들 모두가 에릭슈미트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감복하며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프로덕트매니저라면 에릭슈미트에게 직접 보고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한다. 그때 직접 이야기를 해보면 그의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에 모두 감복한다는 것이다.

구글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페이지의 원대한 비전과 커다란 그릇이 구글을 만들었다. 하지만 에릭슈미트라는 걸출한 CEO를 파트너로 얻지 못했다면 결코 오늘의 구글이 있지 못했을 것이다.

에릭슈미트는 항상 혁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국이 불황을 극복하고 다시 성장하기 위해서는 ‘혁신’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늘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도 어떻게 하면 ‘혁신결핍증’을 미국이 극복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엔 대한민국보다는 휠씬 미국이 혁신이 많은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한다)

어쨌든 이 칼럼을 읽어보고 그의 혁신에 대한 생각과 혁신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간단히 소개해보고 싶었다. 다음은 컬럼에서 일부 인상적인 부분 발췌.

그가 생각하는 혁신은 이렇다.

More than ever, innovation is disruptive and messy. It can’t be controlled or predicted. The only way to ensure it can flourish is to create the best possible environment — and then get out of the way. It’s a question of learning to live with a mess.

요즘 세상에는 갈수록 혁신은 파괴적이며 엉망진창이다. 혁신은 통제할 수 없으며 예측할 수도 없다. 혁신이 마음껏 일어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최적화된 환경을 만들어주고 절대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난장판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것에 대한 질문이다.

즉, 정부가 혁신을 만들겠다고 억지로 예산을 투입해봐야 소용없다.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5가지를 이야기한다.

First, start-ups and smaller businesses must be able to compete on equal terms with their larger rivals.

첫번째로 스타트업과 작은 회사들은 더 큰 규모의 라이벌회사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혜택을 주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공평하게만, 기존 강자들이 텃새를 부리지 않도록 경기장을 고르게 만들어주면 된다.

Second, encouraging risk-taking means tolerating failure — provided we learn from it.

두번째, Risk-taking이라는 것은 실패를 감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분야에서 리더가 되려면 그만큼 투자를 날릴 수 있다는 것도 명심하자. 성공률이 100%인 프로젝트가 있다고? 거기에는 혁신이 0%일 것이다. (Show me a program with a 100 percent success rate, and I’ll show you one with 0 percent innovation.)

Third, we need to invest more in our knowledge base.

세번째, 지식기반에 더 투자해야한다. 지식을 쌓도록 R&D에 세금혜택을 주자.

Fourth, information must become even more open and accessible.

네번째, 정보는 앞으로 더 개방되어야 하며 모든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 특히 정부지원 연구자료는 모두 공개해 ‘아이디어의 위키피디아’로서 창업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Finally, we need to hang on to talented people.

마지막으로 인재를 붙잡아야 한다. 미국에 공부하러온 전세계의 인재들을 졸업하고 남아있도록 해야한다.

나는 위에서 특히 첫번째와 두번째 이야기가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다. 큰 회사가 작은 회사를 평등하게 파트너로서 대하는 것.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갑-을-병-정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문화에서는 참 보기 어려운 일이다. 작은 벤처기업이 혁신적인 제품이나 기술을 가지고 골리앗과 같은 대기업을 무너뜨리는 스토리는 미국에서는 자주 볼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극히 어려운 이야기다. 공정한 경쟁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패의 위험이 없는 혁신은 없다. 이것도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데 또 너무나 쉽게 간과되고는 한다. 작은 실패를 통해서 진짜 성공, 혁신을 이뤄내는 법인데 모두들 항상 돌다리만 두드려보고 가려고 한다. 심지어는 돌다리를 두드리다 부숴버리기까지 한다.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모험보다는 수성에만 집중한다.

생각해보면 이미 구글안에 저런 환경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평등하지만 혼란(Chaos)스러운 조직. 20%타임을 통해서 자유롭게 제안되는 새로운 아이디어. 그 아이디어를 가지고 평등하게 경쟁하는 사내 그룹들. 내부적으로 개방된 모든 정보, 지식데이터베이스. 그리고 전세계에서 모인 천재적인 두뇌들….

위 5가지 혁신촉진의 방법은 대한민국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Written by estima7

2010년 2월 10일 at 9:17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