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낳기 위해서 ‘아주 이상한 사람’을 응원하자
일본에서 ‘신경제서밋’이란 행사가 열렸던 것 같다. 일본인터넷업계의 거물인 라쿠텐 미키타니사장이 이끄는 신경제연맹이 주최한 행사다. 안드로이드의 아버지, 앤디 루빈, 트위터 창시자 잭 도시 등 쟁쟁한 인물들이 참가해 인터넷을 통한 일본갱생의 길을 논한다는 행사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 행사를 다룬 IT미디어의 기사에서 일본인으로서 MIT미디어랩의 소장(디렉터)을 맡고 있는 이토 조이치씨의 흥미로운 발언을 접했다. “혁신을 낳기 위해서 ‘아주 이상한 사람’을 응원하자”라는 제목의 짧은 기사인데 ‘일본’을 ‘한국’으로 바꿔도 그대로 들어맞는 얘기같다. 재미있어서 전문을 아래 의역해보았다. “変な人”는 ‘이상한, 독특한, 튀는 사람’정도의 뜻으로 바꿨다.
혁신을 낳기 위해서 ‘아주 이상한 사람’을 응원하자.(원문링크)
일본에서 파괴적인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신경제서밋2013’에서 MIT미디어랩의 소장인 조이 이토씨는 “이상한 사람을 지키고, 응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사회전체를 중심부터 변화시키는 것보다는 변방에 있는 특이한 사람을 지원해야한다. 특이한 사람에게는 대단한 가치가 있고 그런 일본인은 아주 많다. 예를 들어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은 세계로 나가면 대단한 사람이 된다.”
미국에서 성장한 이토씨는 일본의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모범생’을 키우는 일본의 교육이 창의적인 인재를 말살하고 있다. 권위를 부정하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행동하면서 가설을 생각해 나가는 인재가 필요하다. (그렇게) Creative를 Unlock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이 글을 읽고 나서 바로 머니투데이 유병율기자의 “싸이가 창조경제? 너무 심각한 어른들이 문제”라는 기사를 접했다. 창조경제의 모범사례로 싸이의 젠틀맨을 모범사례로 들고 나온 정부와 창의성을 말살하는 한국교육의 문제를 지적하는 글이다. 이 중에서 아랫 부분을 읽으며 이토씨의 말을 떠올렸다.
1년 전쯤 인터뷰에서 싸이는 한국교육에 대해 내내 분노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제가 늘 듣던 말이 ‘산만하다. 딴 생각하지마. 잡생각 하지마’였어요. 이골이 날 정도로 혼나고 맞았죠. 지금도 그게 억울해요. 저는 산만해서, 딴생각 많이 해서, 잡생각 많이 해서, 재미있는 이상한 아이였고, 그런 게 지금 제 음악의 모든 것이 된 거에요. 산만하고 딴짓만 하는 아이가 한번 몰입하면 얼마나 무섭게 하는데, 맨날 혼만 내면 어쩌라는 거죠? 잡생각을 잡스럽게 보니까 잡생각이지, 좋게 보면 창의에요. 잡생각에서 창의가 나오고 창의가 반복되면 독창적이 되고, 독창적인 게 반복되면 독보적인 게 되는 거 아닌가요?”
어떤가 위 조이씨의 말에 나오는 ‘아주 이상한 사람’이 바로 싸이가 아닐까?
창조경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암기에 능한 모범생보다는 튀고 자기 생각이 있는 ‘이상한 학생’을 복돋워주는 교육을 먼저 만들고 실패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그런 사회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래야 제 2의 싸이가 계속 나오지 않을까.
웨이터법칙
기내에서 항공승무원에게 행패를 부린 모대기업 상무가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대화제다. 기존 언론은 두리뭉실하게 몇줄만 보도했지만 인터넷과 트위터를 통해서 그 임원의 실명과 항공사의 내부 대응기록(?)이 전파되면서 겉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 그러다 타임라인에서 “Waiter Rule”이란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싶어서 찾아보았다. (위키피디아 링크)
“If someone is nice to you but rude to the waiter, they are not a nice person.”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는 잘 대해주지만 웨이터에게는 거만하게 행동한다면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이것이 소위 “웨이터법칙”이다. 사실 웨이터뿐만 아니라 호텔메이드, 경비원, 청소부 등 우리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보면 그들이 자신의 부하들을 어떻게 대할지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적항공사 비즈니스클래스에서 일하는 항공사승무원의 경우는 우리 사회의 소위 ‘지도층인사’들을 항상 접할 텐데 정말 많은 것을 느낄 것 같다.
이 웨이터법칙을 소개한 USA투데이기사에서는 웨이터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하는 이런 사람일수록 “난 이 레스토랑을 사버리고 널 잘라버릴 수 있어”라든지, “난 이 레스토랑 주인을 잘 아는데 널 날려버릴 수 있어”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불행히도 이런 발언은 그의 힘을 과시하기보다는 그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가를 나타낼 뿐이다.
절친한 선배의 형수가 모항공사승무원이셨다. 하루는 카운터에서 업무를 보는데 모대기업의 특급VIP가 체크인을 하려고 왔다. 그런데 규정을 넘어서는 가방을 기내로 체크인하겠다고 해서 규정상 안된다고 짐을 부치라고 정중히 말씀드렸단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대단한 고객인데 이렇게 대할 수 있냐며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밀리언마일리지카드를 두동강 내면서 떠났다고 한다. 너희 회장에게 널 자르라고 얘기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이 일을 이야기하면서 격분하던 선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런 비슷한 일들이 정말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스튜어디스룰’이라는 것이 나와야하지 않을까 싶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통해 방금 알게 된 Dove의 광고캠페인이다. 지금 보고 나서 그 훌륭한 메시지에 감탄했다.
경찰에서 오래 근무했던 몽타주 전문가가 한 여성의 자신의 용모에 대한 묘사를 듣고 (실제로 보지 않고) 스케치를 한다. 그런 다음에 방금 몽타주를 그렸던 그 같은 여성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묘사를 듣고 또 하나의 스케치를 그린다. 그리고 그 본인과 함께 두개의 그림을 비교해 본다.
놀랍게도 어느 그림이나 자신이 묘사한 자신의 모습보다 다른 사람이 묘사한 자신이 모습이 휠씬 나아보인다.
“당신은 당신이 챙각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습니다.”(You are more beautiful than you think.)
이 광고의 메시지다. 자신의 외모에 더 자신감을 가지고 살자. 당신은 사실은 못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참 파워풀한 메시지가 아닌가. 정말 멋진 광고캠페인이다.
지난 일요일 게시된 이 광고의 유튜브동영상은 5일만에 벌써 8백만뷰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여러분들도 한번 감상해보시길. 3분.
코플리스퀘어 단상
10개월전까지 내가 살던 곳에 폭탄테러라니 세상에 안전한 곳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폭탄이 터진 코플리스퀘어(Copley square)는 보스턴공립도서관이 위치한 곳으로 내가 시내에 나갈때마다 즐겨가던 곳이다. 나는 보스턴도서관의 신관보다 구관쪽이 휠씬 마음에 들었었다. 참 멋진 도서관이다.
그리고 코플리스퀘어역을 나서면 바로 보이는 올드사우스처치도 내가 좋아하는 건축물이었다. 보스턴은 미국의 도시중 보기드물게 아담하고 유럽의 향기가 흐르는 멋진 곳이다.
마침 오늘은 Patriots’ Day였다. 매사추세츠주와 메인주에서만 휴일로 지정된 미국독립전쟁의 시초인 렉싱턴-콩코드전투를 기념하는 날이다. 새벽 6시에 렉싱턴에서 당시의 전투를 재현하는 행사가 열린다. 그리고 매년 보스턴마라톤이 열리는 뜻깊은 날이다. 아직도 보스턴에 살고 있었으면 나도 시내에 가족과 함께 나가서 봄나들이겸 마라톤을 구경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멋진 코플리스퀘어거리가 오늘 아비규환의 현장이 됐다니 가슴이 아플뿐이다.
위에 소개한 보스턴공립도서관과 올드사우스처치사이에서 폭탄이 터졌다.
이 분 말씀에 동감한다. 이 시대에 이 세상에서 어디가 과연 안전할까. 지난 연말 비극적인 총격사건이 일어난 커넥티컷 뉴타운도 보스턴에서 불과 2시간 거리다.
오늘 폭탄테러에서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부상자들의 쾌유를 기원한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닮은 나사엔지니어
얼마 전 올림픽 중계를 제쳐놓고 본 실황중계가 있었다. 나사(NASA·미국 항공우주국)의 큐리오시티 화성탐사선의 화성 착륙 중계였다. 시속 1600㎞의 무서운 속도로 화성의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900㎏의 탐사선을 낙하산에 이어 로켓 분사력으로 감속시켜 안전하게 착륙시킨다는 어려운 임무도 그렇거니와 그 과정을 ‘7분간의 테러’라고 명명해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나사의 홍보감각도 칭찬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눈길을 끈 것은 방송에 등장한 독특한 나사 엔지니어의 모습이었다. 이 어려운 임무를 지휘하는 리더로 나오는 이 엔지니어는 마치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시키듯이 머리에 기름을 발라 빗어 올리고 구레나룻을 기른 외모의 사나이였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공붓벌레 스타일의 천재 엔지니어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어쩐지 범상치 않아 보여 이 사람에 대해서 찾아봤다. 그는 나사의 선임엔지니어인 애덤 스텔츠너였다. 그의 이야기를 읽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다음은 언론 보도와 위키피디아에 소개된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부유한 가정 출신인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별로 똑똑하지 못한 아이”라는 말을 들었다. 친아버지에게서 “넌 막노동꾼 이상은 될 수 없을 거야”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 부모가 얼마나 그에게 실망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고교 때는 기하학에서 F플러스(+)로 간신히 낙제를 면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두 번이나 계속 수준 미달의 결과를 가져오는 그를 담당 교사가 다시 보기 싫어서 그냥 플러스를 붙여 통과시켜 준 것이라고 한다. 공부 대신 그는 고교 시절 섹스, 마약, 로큰롤에 탐닉했다. 당연히 고교 졸업 후에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클럽밴드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록스타가 되는 것을 꿈꿨다.
그렇게 생활하던 그는 어느 날 클럽에서 연주를 마치고 밤늦게 집에 돌아가다가 밤하늘을 보고 별의 위치가 바뀐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별의 움직임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그는 커뮤니티칼리지에 들어가 천문학 강좌를 수강하려고 했다. 그런데 천문학을 듣기 위해서는 먼저 물리학 강좌를 이수해야 했다. 물리학 수업 첫번째 시간에 접한 공식을 통해 그는 자연현상의 법칙을 연구하는 이 학문이 그가 원하던 것임을 알게 됐다. 그는 “나는 나의 종교를 찾아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듬해 그는 음악을 완전히 접고 공부에 몰두해 결국 UC데이비스에 진학해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그런 뒤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석사, 위스콘신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다음 나사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는 지난 10년 동안 큐리오시티 탐사선 프로젝트에서 화성 착륙 시스템의 디자인 및 실행 작업을 지휘했다. 마치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그는 멋지게 성공시켰다.
스텔츠너의 인생 궤적을 따라가 보면서 열정을 바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또 천재는 꼭 타고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천재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평생 ‘동기부여’를 해줄 대상을 찾는 것이다. 자신의 ‘종교’를 찾아낸 스텔츠너가 무인탐사선의 화성 착륙이라는 전인미답의 일을 성취해낼 수 있었던 이유다.
명문대 입학만을 목표로 하는 암기형 공붓벌레 영재들을 키워내는 것보다 우리 아이들이 평생을 바칠 수 있는 ‘꿈’을 찾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참교육’이 아닐까 문득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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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14일자 한겨레신문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칼럼으로 기고한 글이다. 사실 CBS뉴스에서 접한 아담 스텔츠너의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동해서 찾아봤었다. 그리고 가볍게 ‘쿨한 나사엔지니어들’이란 블로그포스팅을 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칼럼용으로 조금더 가다듬어서 한겨레신문에 기고(라고 쓰고 재탕이라고 읽는다)한 것이다. 세상엔 참 멋진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아시안이 점령한 잡스의 고향
보스턴에서 실리콘밸리로 이사 온 지 두 달이 지났다. 비록 같은 나라 안이긴 하지만 동부에서 서부로 옮긴다는 것은 마치 다른 나라로 이주한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그렇다. 전에 살던 보스턴의 교외지역은 백인이 주류인 유서깊은 곳이었다. 중국인, 인도인 등 아시안 인구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백인이 90% 가까운 인구를 점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백인들 사이에 끼여 소수자로 사는 것에 익숙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 지역의 중심에 있는, 우리 가족이 자리잡은 쿠퍼티노는 그 반대다. 이곳은 아시안이 주인인 곳이다. 인도계와 중국계가 점령한 쿠퍼티노에선 백인들을 보기가 힘들다. 우리 애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중학교에는 한 반에 백인 학생이 1~2명밖에 없을 정도다. 그들마저 인도·중국계 엄마들의 치맛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얼마 전 지인의 초대로 그분이 다니는 반도체회사의 야유회에 간 일이 있다. 행사에 온 직원들 대부분이 아시안 등 비백인이었다. 백인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보일 정도였다. 말레이시아계 화교가 창업한 회사라서 그런지 더더욱 아시안이 많고 백인은 마케팅이나 재무 부서에 좀 있는 정도라는 설명을 들었다. 전세계에 직원이 수천명인 수조원 가치의 회사가 그렇다.
집 근처에는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일본·인도·중국·아랍식 식료품 슈퍼가 있고, 차로 5분 거리에 한국 슈퍼가 있다. 각 민족의 인기식당에 갈 때면 중국, 인도, 일본 등에 가 있는 느낌이 난다.
쿠퍼티노는 애플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스티브 잡스가 쿠퍼티노의 홈스테드고교를 졸업하던 72년에는 거의 100% 백인만이 살던 동네였다. 잡스와 애플의 고향이 이렇게 아시안들에게 점령이 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
인텔, 에이치피(HP), 시스코시스템스 등 글로벌 아이티(IT) 기업과 구글·페이스북 등 새로운 인터넷 강자들의 보금자리인 실리콘밸리는 미국 경제의 희망이다.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구원자이기도 하다. 그런 이곳이 아시안의 힘으로 지탱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기 위해 유입된 히스패닉 이민과 달리 대개 석·박사급의 고급인력인 아시안들은 이곳 기업들의 연구개발 분야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서는 백인 엔지니어를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다.
유시(UC)버클리의 교수인 비벡 와드와의 2009년 조사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 중 이민자가 창업한 비율은 52%에 달한다. 실리콘밸리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혁신의 힘이 이민자에게서 나온다는 증거다.
실리콘밸리의 혁신 비결을 열대우림의 생태시스템에 비유해 분석해낸 ‘레인포레스트’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벤처캐피털리스트 빅터 황은 ‘왜 실리콘밸리는 계속해서 혁신을 이어나가는데 다른 지역은 그렇지 못한가?’라는 질문에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다. 그는 열대우림의 다양한 잡초에서 억센 생명력이 나오는 것처럼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교류가 일어나면서 가장 큰 경제적 효과가 나온다고 설명한다. 또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피부색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관습과 문화를 뛰어넘어 열린 마음으로 서로 신뢰하고 일하는 곳이 실리콘밸리라고 한다. 이종 간의 협업과 실험을 통해 기발한 혁신이 나온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에 와서 살면서 이 지역의 다양성과 외부인에 대한 포용력에 새삼스레 감탄했다. 다문화에 대한 이런 관용과 포용력이 없이는 인재 부족으로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참, 항상 청명하고 쾌적한, 축복받은 날씨가 진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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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2년 9월4일자로 기고했던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칼럼. 기록을 위해서 블로그에 다시 옮긴다.
처음 쿠퍼티노에 가서 예상과 달리 도서관, 상점 등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대부분 중국, 인도인이라는 것을 보고 “이곳이 애플의 본사가 있는 곳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평일에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백인들은 자세히보면 애플직원이고 실제 주민들은 대부분 아시안이다. 학교에 가서 애들 학부모들과 이야기해보면 거의 획일화되어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거의 대부분 IT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다들 어딘가에서 미국으로 이민온 사람들이다. 사실 쿠퍼티노뿐만이 아니고 실리콘밸리 전체가 이렇게 변모해가고 있다. 내가 버클리에 다니던 10년전보다도 휠씬 많이 늘어난 느낌이다.
이처럼 이방인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것이 실리콘밸리다. 이방인들이, 특히 각국의 인재들이 와서 살고 싶게 만드는 것이 실리콘밸리의 으뜸 경쟁력이다.
프로야구 선수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지난주 샌프란시스코의 한 저녁모임에 다녀왔다. 한국에서 실리콘밸리 연수를 온 대학원생들을 만나는 자리였는데 스탠퍼드대에서 유학중인 공대 학생들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학생들의 전공이 모두 전산학(컴퓨터과학)이었다는 점이다. “요즘 한국 학생들은 모두 전산 전공으로 몰린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인기입니다”라고 그중 한 학생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한국에서는 공대와 전산학이 별로 인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요…”라고 토를 달았다. (참고 : [위기의 한국 SW 산업] 명문대 나와도 SW개발자는 시간급 인생…”장가가기도 힘들어” -조선일보 2011)
미국에서 전산학의 인기는 통계가 뒷받침한다. 스탠퍼드대에서 지난해 전산학 전공 학생은 220명으로 가장 많았던 2000년의 등록 인원보다도 25%가 더 많다고 한다. (참고: 스탠포드엔지니어링뉴스) 스탠퍼드대뿐만이 아니고 미국 대학 전반적으로 전산학이 인기를 얻고 있다. 높은 실업률 속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최고의 유망직종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각종 직업 관련 조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유망직업 1순위로 꼽히고 있다. 창의력을 요구하는 도전적인 직업인데다 나이를 먹어서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소프트웨어가 첨단기술 회사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거의 모든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이 되면서 시장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스탠퍼드 학생들을 만난 이야기를 트위터에서 전하자 @doniikim님은 “우리나라와는 반대네요. 서울대 컴퓨터공학부도 미달까지는 아니지만 매 학기마다 자퇴생들이 많다고 합니다”라고 답했다. 한국도 정보기술(IT) 강국의 반열에 드는 나라인데 왜 미국과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는 직업을 바라보는 양국의 문화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오래 일한 일본의 벤처기업가 나카지마 사토시는 “미국의 아이티 업계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프로야구 선수 같은 존재”라고 비유한 바 있다. 실제로 얼마 전 실리콘밸리의 유명 인터넷업체인 넷플릭스를 방문한 블로거 김동주씨는 “넷플릭스의 엔지니어들을 프로야구 스타플레이어처럼 대우하는 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구단은 선수가 최상의 컨디션에서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스타플레이어에게는 그에 맞는 최상의 대우를 한다. 이처럼 회사도 뛰어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게 프로야구 선수 같은 대우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소프트웨어산업은 개인의 창의력을 기반으로 한 분야이고 그렇기 때문에 개인을 예술가처럼 대접해줘야 한다는 철학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소프트웨어산업을 일종의 건설산업처럼 대한다. 대기업이나 정부는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지 않고 대형 아이티 회사에 맡긴다. 대형 아이티 회사는 이런 프로젝트를 수주해서 작은 하청소프트웨어업체에 또 맡긴다. 하청업체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납품 날짜까지 제품을 완성하기 위해 야근을 밥 먹듯이 하면서 매달린다. 개인의 실력 차이를 인정하기는커녕 비용은 국가가 정한 소프트웨어 노임 단가를 기준으로 경력에 따라 일률적으로 정해진다. 단가가 높은 나이 많은 엔지니어는 관리자가 되지 못하면 밀려나야 한다. 이런 풍토에서 똑똑한 젊은이들이 전산학을 선택해주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최고와 평범한 엔지니어는 100배의 실력 차이가 날 수 있다”며 그가 창의적 인재를 뽑기 위해 들이는 노력에 대해 설명한 바가 있다. 우리 인재들이 전산학, 더 나아가 이공계에 매력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인재를 우대하는 문화와 제도를 우선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몇 안 되는 인재들마저 모두 외국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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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24일자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칼럼이다. 썼던 글을 정리하다가 빠진 것을 알고 블로그에 백업했다.
이 글은 2010년에 “일본에서 아이폰같은 혁신적인 소프트웨어제품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썼던 블로그포스팅의 내용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일본의 나카지마 사토시씨의 글을 읽고 공감이 되서 내용을 소개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소개한지 몇년지난 지금에도 한국의 사정은 그다지 변하지 않은 듯 싶다. 능력있는 소프트웨어엔지니어들은 여전히 해외에서 일을 하는 것을 꿈꾼다. 개인적으로 나를 찾아와서 미국으로 전직이 가능할지에 대해서 자문을 구한 엔지니어들도 몇 있었다.
그리고 컴퓨터공학과정으로 이름난 미국의 한 대학 학부과정에 다니는 아는 한인학생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 학생은 최근 2년간 두번의 여름방학 인턴을 미국의 인터넷기업과 한국의 IT대기업에서 각각 했다. 이번 여름에 또 섬머인턴자리를 구하는 이 학생과 한번 통화했는데 “한국에서 엔지니어생활을 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탑다운방식에다가 조직의 부속품처럼 시키는 일만 해야하는 한국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문화가 답답하게 여겨졌다는 것이다.
활발한 창업, 성공, 재창업이 이뤄지는 벤처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뛰어난 엔지니어풀이 밑거름이 되야한다. 그러니까 이런 인력을 잘 양성하고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복돋워주는 정책과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위 칼럼에 썼던 것처럼 몇 안되는 인재들마저 모두 외국으로 빠져나갈까봐 우려스럽다.
17세 벤처신화의 주인공, 섬리의 닉 델로이시오
17세 영국소년이 벤처신화의 주인공이 됐다.
2013년 3월25일 야후는 영국의 고등학생 닉 댈로이시오가 개발한 섬리(Summly)라는 회사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정확한 인수금액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테크블로그매체인 올씽스디지털은 인수가가 3천만불, 즉 한화로 3백30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만약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상당지분을 가지고 있는 이 17세의 고교생은 적어도 1백억원이상의 돈방석위에 올라앉게 된다.
댈로이시오가 만든 앱은 ‘섬리’다. 다양한 소스의 뉴스를 스마트폰에서 보기 쉽게 400자 이내로 자동으로 요약해서 보여주는 모바일앱이다. 지난해 11월에 아이폰용으로 발표되어 지금까지 1백만 다운로드가 이뤄졌다. 당시에도 16세 소년이 발표한 앱이라고 해서 화제가 됐었다. 이 앱은 단순히 뉴스기사의 앞부분만 잘라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인공지능 알고리듬을 통해서 중요한 내용을 순식간에 요약해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당시 필자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즉시 다운로드받아서 사용해 봤었는데 사용하기 편리한 깔끔한 디자인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아직 매출도 전혀없는 이런 앱을 야후가 3백억이 넘는 거액에 인수한 것에 좀 놀랐다.
아마도 사상 최연소 벤처대박신화를 이룬 인물로 기록될 댈로이시오를 사람들은 그저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으로 여길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댈로이시오의 성공이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처음 모바일앱을 만들어 발표한지 벌써 6년째가 됐고 그동안 인정받기 위해서 피나게 노력한 나름 중견(?)창업가이기 때문이다.
신화탄생의 계기는 아이폰과 연관이 있다. 2008년 댈로이시오가 12살때 그는 애플키노트행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외부개발자가 자신이 원하는 아이폰앱을 개발해 앱스토어를 통해 발표할 수 있는 신세계가 열린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다음날 그는 바로 애플스토어에 가서 “아이폰앱을 만들려면 어떻게 하나요”하고 물어봤다. 컴퓨터언어 C를 공부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멍청이도 할 수 있는 C’라는 컴퓨터언어입문서를 사서 바로 공부를 시작, 앱을 만들기 시작했다. 엄청난 실행력이다.
그의 첫번째 아이폰앱인 ‘페이스무드’는 페이스북친구의 글을 분석해서 아이콘으로 친구들의 기분을 보여주는 아이디어앱이었다. 16살이상이어야 앱을 등록할 수 있는 앱스토어의 규정때문에 그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신의 첫번째 앱을 등록했다.
그뒤 그는 텍스트분석기술을 더 발전시켜 섬리의 원형이 되는 ‘트리밋’(Trimit)이라는 앱을 15살때 발표했다. 그는 당시 기즈모도라는 테크매체에 이 앱에 대한 기사를 실어달라고 수백통의 메일을 보내 기자를 질리게 했다. 그가 겨우 15세 소년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기자는 결국 그를 인정하고 기사를 실어주었다. (참고 내가 어떻게 15살짜리 앱개발자를 울렸나-기즈모도) 그런 편집광적인 열정과 노력 덕분인지 이 앱이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언론보도를 본 홍콩의 거부, 리카싱의 투자팀이 그에게 메일을 보내 20만불의 초기투자로 이어지게 됐다. 그는 이 투자로 직원을 고용하고 사무실을 임대해 본격적으로 스타트업 CEO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후 애쉬톤 커쳐, 오노 요코, 스티븐 프라이 등 유명인들이 줄줄이 그에게 투자했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속에서 그는 트리밋을 발전시킨 섬리를 지난해 11월에 발표하고 불과 4개월만에 회사를 야후에 매각하게 된 것이다.(위 홍보동영상 참고)
댈로이시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려면 아직도 1년반이 남았다. 그는 그 기간동안 야후의 런던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학업과 일을 병행할 예정이다. 야후는 이 매력적인 컴퓨터천재 미소년을 회사를 상징하는 얼굴역할인 대변인으로 쓸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야후의 CEO 마리사 메이어는 아무래도 섬리라는 앱보다는 댈로이시오라는 인물에 매력을 느껴서 거액을 투자한 듯 싶다.
/시사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추가 생각1 : 야후는 이 인수발표와 함께 Summly를 앱스토어에서 제거해 버렸다. 덕분에 정작 이 인수보도를 쓴 많은 기자들은 실제로 Summly를 써보지 못한 듯 싶다. 나는 지난해말에 이 앱이 나오자마자 한번 설치해본 덕분에 다시 써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게 3백억이나 주고 살만한 앱이고 기술인지는 솔직히 의아하다. 사실 고도의 기술을 적용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뉴스기사는 리드 부분을 옮기기만 해도 요점을 전달하는데 충분하기 때문이다. 섬리의 UI는 깔끔하고 멋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계속 사용하기에는 부족하다. 나도 한번 써보고 나서 이 뉴스가 다시 나오기까지는 완전히 이 앱에 대해서 잊어버린 상태였다. 많은 이들이 그랬을 듯 싶다. (요즘은 사실 좋은 뉴스앱이 너무 많다.) 완전 자체기술도 아니고 (SRI의 기술을 라이센스), 수백만명의 고정사용자를 확보한 것도 아닌데 너무 세게 지른 것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워낙 어리고 말 잘하고 잘 생긴 댈로이시오의 상품가치(?) 덕분에 야후는 충분한 홍보효과를 누린 듯 싶다. NBC뉴스 등 프라임타임뉴스에서 이 소식을 중요하게 다뤘으며 댈로이시오는 모닝쇼의 인기게스트가 됐다. 야후가 유망한 모바일스타트업을 열심히 인수하고 있다는 훌륭한 홍보소재가 됐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통찰력이 넘치며 오리지널한 혼이 깃든 기사를 정성들여 쓰고 있는 언론종사자들에게는 좀 힘이 빠지는 뉴스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리 좋은 글이 많은 뉴스매체라고 해도 누가 선뜻 몇백억이 아니라 몇억도 투자하려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댈로이시오의 섬리에 루퍼트 머독이 투자했다…)
추가 생각2: 애플의 키노트발표에 자극받은 영국소년이 앱을 만들었다. 이 소년은 자신의 앱을 미국의 테크블로그매체에 직접 접촉해서 홍보했다. 이것을 본 홍콩의 거부가 이메일로 연락해서 첫 투자로 이어졌다. 영국, 미국의 유명인들을 투자자로 끌어들인 이 소년은 그들의 도움으로 새 앱을 발표해 전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그 결과 실리콘밸리의 야후가 이 영국소년의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스타트업의 성공을 위해서 꼭 실리콘밸리에 있을 필요는 없지만 영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중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이렇게 쉽게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RIP 로저 이버트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가 오늘 2013년 4월4일 세상을 떴다. 향년 70세.
내가 에스콰이어지의 The Essential Man이란 기사를 읽고 “목소리를 읽어버린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 이야기“라고 블로그에 썼던 것이 약 3년전이다. 누구보다도 활발하게 말을 하는 재담꾼이었던 그가 암으로 아래턱을 잃고 음식도 먹을 수 없고 목소리도 잃게 됐지만 절망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글을 쓰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것이 감동적이었다.
“When I am writing, my problems become invisible, and I am the same person I always was,”
“내가 글에 몰입할 때면, 나의 장애는 사라지고, 나는 예전의 나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있다.” 에스콰이어지에 했던 이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2011년 TED에 나와서 자신이 목소리를 잃어버리게 된 것과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목소리를 되찾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들려주기도 했다.
불과 그저께 로저 이버트는 “Leave of presense”라는 마지막 블로그포스팅을 통해 “암이 재발해서 방사선치료를 받느라고 예전처럼 영화를 많이 볼 수가 없다”며 “할 수 없이 일의 양을 줄이겠다”고 썼었다.
그는 그리고 자신이 평소 매년 2백개가량의 영화리뷰를 쓰는데 작년에는 306개로 신기록을 세웠다고 했다. 그런 만큼 이제는 병마와 싸우면서 좀 영화평을 줄이고 암투병과 관련된 글을 좀 써볼까 한다고 블로그에 밝혔었다. 그런데 불과 이틀만에 세상을 등진 것이다.
나는 트위터로 그를 팔로우하고 그의 열정적인 트윗도 항상 봐왔기 때문에 웬지 마음이 찡하다. 소문난 리버럴인 그는 오바마를 열렬히 지지했고 총기규제 등에 대한 이슈에 대해서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해왔다.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정열을 불태우는 모습이 웬지 스티브 잡스를 연상케 한다. 잡스도 병마와 싸우면서도 마지막까지 수척한 모습으로 키노트이벤트를 진행하고 애플 제2캠퍼스계획을 설명하기 위해서 쿠퍼티노시의회에 모습을 드러냈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RIP. Roger Ebert.
“태블릿이 고객의 주문을 받을 수 있을까?”
“태블릿이 고객의 주문을 받을 수 있을까?”
지난주 <월스트리트 저널>을 읽는데 이런 제목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버지니아비치의 한 컵케이크집 주인이 고객의 주문을 받는 10명의 종업원을 태블릿컴퓨터를 이용한 무인주문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현재는 종업원에게 시간당 7.25달러를 주고 있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는 대로 최저임금이 9달러로 올라갈 경우 채산성이 악화될 것을 우려해서라는 것이다.
이 기사를 보자 얼마 전 보스턴의 파네라브레드라는 빵집에 갔던 일이 기억났다. 오랜만에 가본 그 가게엔 사람이 주문을 받는 계산대가 절반 이하로 줄고 그 자리에 아이패드를 이용한 주문시스템이 대신 자리잡고 있었다. 화면 위의 음식 사진을 눌러 주문하고 신용카드를 긋고 번호표를 받아가면 음식을 테이블로 가져다준다. 생각보다 사용이 간편했다.
지난주에는 또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가 요금징수소의 직원을 모두 없애고 완전 무인화된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카메라가 차량번호판을 촬영해 자동으로 차 주인에게 요금청구서를 우편으로 보내는 방식이다. 금문교는 이렇게 해서 향후 8년간 1600만달러의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뉴스에서는 수십년간 일하던 일터를 잃게 된 요금징수원의 아쉬움과 함께 이런 무인징수시스템이 머지않아 미국의 모든 유료도로와 교량에도 적용될 것 같다는 전망이 뒤따랐다.
심지어 뉴스에 따르면 햄버거고기를 뒤집는 로봇도 개발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한다. 2000만원에서 3000만원 사이에 구입할 수 있는 로봇이 인간이 하는 단순한 일을 대체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실리콘밸리의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끔 구글의 무인운전자동차를 만나기도 한다. 일정 속도로 안정감 있게 주행하는 그 차를 보면 앞으로 버스나 택시운전사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 동영상에 나오는 백스터같은 로봇이 바로 햄버거고기를 뒤집는 로봇으로 개발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참고: 중국 공장을 위협하는 로봇, 백스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컴퓨터로 인한 자동화와 급속히 발전하는 로봇기술이 인간을 단순작업에서 해방시켜줌과 동시에 저임금 노동자의 일자리도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스마트 기기 혁명과 함께 인간이 인간과 대면하고 대화할 기회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점이나 음식점에 갔을 때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고 안부를 나눌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신 상점에 설치된 태블릿컴퓨터가 당신을 맞아줄 것이다. 카메라로 당신의 얼굴을 인식해 인공음성으로 이름을 불러주고 당신이 선호하는 메뉴를 알아서 추천해주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상대방을 앞에 놓고도 스마트폰 화면과 대화하는 것을 더 편해하는 요즘 세대의 아이들에게는 이런 세상이 더 편안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기계와 대화하는 것은 즐기면서 인간과 직접 대면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
앞으로 올 수십년 뒤의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될까. 기술의 진보가 인류에게 더욱 편안한 삶을 보장해주는 것일까? 디지털혁명이 가져온 혁신을 즐기며 신봉해온 나였지만 요즘은 인터넷, 휴대전화 없이도 잘 살았던 수십년 전을 돌아보면서 혁신과잉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 태블릿이 고객의 주문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인간의 일자리는 급속히 사라지고 있으며 인간은 더는 인간과 대화하지 않는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의 인간으로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기계가 하지 못하는 비판적 사고능력을 키우며 역설적으로 인간과 효과적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미래를 대비해 단순지식을 암기하는 것보다 이런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교육의 방향을 바꿔야 할 것이다.
/2013년 4월2일자 한겨레지면에 실린 칼럼입니다.
Update: 위 칼럼에 나온 무인화된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6월초에 통과할 일이 생겼다. 그리고 열흘만에 6불 요금고지서를 우편으로 받아서 온라인으로 크레디트카드로 납부. 정말 귀찮았다. 얼마나 인건비 절약한다고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