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물고기가 사는 기업생태계의 중요성
나는 2006년부터 3년간 다음커뮤니케이션을 다닐때 임원으로서 여러가지 다양한 일을 맡았었다. 서비스지원본부, 서비스혁신본부, DKO, 대외협력본부, 글로벌센터 등 짧은 기간동안 다양한 일을 했다. 그러면서 많게는 150명쯤 있는 본부의 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라이코스CEO로 발령받아 미국 보스턴으로 떠났다.
다음시절 내가 맡았던 분야들은 처음에는 마케팅부터 영화, 금융, 미즈넷 등 미디어정보섹션쪽, 로그인, 빌링, 회원정보 등 인프라, 고객지원, 사업제휴, 대외홍보, 법무까지 정말 다양했다. 그야말로 포털회사에서 일하는 거의 모든 직군의 사람들과 같이 했던 느낌이다. 모두 20대와 30대중반의 젊은 직원들이었다. 그런데 요즘 그때 같이 일하던 본부원들을 테헤란로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일이 있다. 지난 9년간 다음이 어려가지 곡절을 겪으면서 그때의 동료들이 많이 회사를 떠났다.
그런데 요즘 느끼는 것이 그들중 쿠팡이나 카카오(다음과 합병전에 미리 가있었다는 뜻이다) 같은 회사에 가있는 친구들이 많다. 이들은 모두 밝은 표정으로 나에게 인사한다. 예전에 다음에서 같이 일할 때 주니어였던 친구들도 이제는 시니어로서 팀장이나 프로젝트리더로서 일을 하고 있다. 얼굴을 보니 일을 재미있게 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요즘에는 이들이 배달의 민족, 쏘카 등 더 다양한 스타트업회사로 퍼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처음 다음에 다니다가 라이코스를 떠나기 직전인 2006~2008년쯤에는 이직을 하려고 해도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네이버 아니면 SK컴즈(싸이월드)로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있었던 야후코리아도 사라지고 파란닷컴(KTH)도 사업을 접고 싸이월드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선택지는 더욱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나도 혹시 다음을 떠나야 하는 일이 생기면 어디를 가야하나 생각해봤는데 업계안에서 갈만한 회사가 네이버나 SK컴즈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 암담했었다.
그런데 좋은 스타트업이 많아지는 지금은 선택지가 넓어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중견급 팀장들도 경험있는 인재가 필요한 스타트업에 가서 CTO 등을 맡아 즐겁게 일하고 있다. 이제는 꺼꾸로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쪽의 인재유출을 걱정해야 할 시기가 된 것 같다.
고래만 몇 마리 있는 기업생태계보다 이처럼 많은 다양한 물고기가 있는 기업생태계가 휠씬 더 사람들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이렇게 다음 다닐때의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낀다. 내가 미국에 있으면서 목도한 보스턴이나 실리콘밸리의 기업생태계가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너무 좋은 회사들이 많고, 인재들이 나와서 새로 창업한 유망한 스타트업들이 넘쳐 흘러서 인재들이 회사를 골라서 갈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들은 인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직원들에게 열심히 잘해줄 수 밖에 없다. 고용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
대기업에게 청년고용을 늘리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청년희망재단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이처럼 좋은 기업들이 많이 나오고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면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
혁신적 스타트업, 왜 한국에서는 쉽게 등장하지 못할까
미국에서 5년간 살다가 2013년말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국의 스타트업을 돕고 바람직한 스타트업생태계를 만드는 일을 시작한지 이제 2년이 되어 간다. 그런데 그동안 관찰한 결과 정부가 창조경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창업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지만 생각만큼 다양한 분야에 걸쳐 스타트업이 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 쿠팡으로 대표되는 소셜커머스분야나 배달의 민족이 있는 O2O분야, 선데이토즈, 데브시스터즈가 떠오른 모바일게임분야를 제외하고는 아직 많은 성공사례가 나오지는 않았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다.
특히 몇몇 분야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불모지에 가까왔다. 금융분야에서 혁신을 추구하는 핀테크스타트업이 전세계적으로 수천개씩 쏟아나와 있는데도 한국에는 지난해까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스마트폰과 택시를 연결해주거나 일반인이 자신의 차로 직접 택시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미국의 우버, 리프트나 중국의 디디타처 같은, 교통분야에서의 혁신을 추구하는 서비스들이 전세계적으로 다양하게 뜨고 있는데도 한국은 최근에 카카오택시가 인기를 끌기 전까지는 유사한 서비스가 거의 없었다.
중국의 DJI 같은 기업이 일반 대중이 즐길 수 있는 드론을 만들어 세계시장을 호령하고 세계적으로 다양한 드론기업이 수백개 쏟아져 나올 동안에도 한국에는 드론파이터라는 드론을 만드는 바이로봇외에 눈에 띄는 드론기업이 없었다.
스마트폰시장에서도 샤오미나 원플러스 같은 새로운 중국 스마트폰 스타트업들이 등장해 중국은 물론 세계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동안 한국시장에는 새로운 기업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팬택은 쓰러지고 LG전자의 스마트폰비즈니스는 더욱 고전하는 중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왜 한국에서는 이런 핀테크, 드론, 교통, 스마트폰 분야의 혁신스타트업이 잘 나오지 않을까. 단지 시장이 작아서 그런 것인가. 그 이유를 몇가지 생각해봤다.
미국의 규제스타일은 네거티브형, 한국은 포지티브형.
미국의 도로에서는 아무 교차로에서나 유턴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유턴을 할 수 없는 곳에만 금지표시가 되어 있다. 규제시스템도 비슷하다. 안되는 것(Negative)만 표시해놓고 규제대상으로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은 자유롭게 해봐도 되는 시스템이다. 그렇기 때문에 규제를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분야에서 도전을 하는 기업이 많이 나온다.
한국같으면 위법이라 못할 사업도 미국에서는 거침없이 한다. 2015년 2월 삼성전자가 약 2천5백억원을 주고 인수한 루프페이 윌 그레일린CEO를 컨퍼런스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직접 물어봤다. 루프페이는 신용카드정보를 읽어서 스마트폰에 집어넣는 방식인데 기존 카드회사들의 허락을 받고 했냐고 했다. 그랬더니 “그런 규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해도 된다. 허락받지 않고 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덕분에 루프페이는 이런 신기술을 킥스타터를 통해 ‘시도’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삼성전자의 연락을 받았다.
한국같으면 카드정보를 스마트폰에 저장한다는 것부터 위법일 가능성이 있고 또 카드회사들의 반발로 시작도 하지 못할 아이템이다. (실제로 모카드회사분에게 물어본 일이 있는데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루프페이의 기술을 이용해 삼성페이를 개발해 8월20일부터 국내서비스를 시작했고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루프페이가 만약 한국회사였다면 이런 기술을 개발해 선보이고, 삼성 같은 대기업에 인수될 가능성은 아주 희박했을 것이다.

지금은 6조가 넘는 기업가치의 회사가 됐지만 2007년 렌딩클럽도 아주 미약하게 시작했다. 2007년 페이스북위에서 투자자와 돈을 빌리고자 하는 사람들을 중계해주는 회사로서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스타트업이 규제를 신경쓰지 않고 시작했더라도 회사가 덩치가 커지면 그때 규제당국이 나선다. 소비자보호를 위해 필요할 경우다. 개인간의 투자와 대출을 연결해주는 렌딩클럽의 경우 2007년 창업후 규제에 상관없이 비즈니스를 키우다가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의해 영업정지를 당했다. 하지만 6개월뒤 규제기관과 합의를 했고 P2P대출이 제도권에서 인정을 받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후 P2P대출은 미국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의 도로에서는 유턴은 무조건 안된다. 허용되는 곳에만 표지만이 있다. 규제시스템도 비슷하다. 허용되는 것만 촘촘하게 규정해놓은 가이드라인이 있고 그곳에 없는 것을 하면 무조건 위법이다. 규제에 걸릴 것 같더라도 소비자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부분이 있으면 우버처럼 일단 질러보는 미국의 스타트업들과는 달리 한국의 스타트업은 시작하기도 전에 법령을 세심히 살펴야 한다. 사후규제가 아니고 사전규제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국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필요이상으로 법률지식에 해박하다. 제품개발보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이라든지 전자금융거래법 몇조 몇항을 외울 정도로 해박하게 알고 있는 스타트업창업자들을 만나서 놀라기도 했다. 이런 꼼꼼한 규제는 창업자들의 상상력을 제한한다. 그리고 결국 그들을 좌절시키고 포기하게 만든다.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자인 트랜스링크캐피탈의 음재훈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규제시스템은 방목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커다란 목장에 양떼를 풀어놓고 울타리를 쳐놓는 식이죠. 울타리안에만 있는 한은 마음대로 뭐든지 해보라는 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혁신이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더 많은 데이터를 공개하는 미국, 데이터를 감추는 한국.
미국은 공공데이터를 되도록 많이 공개한다. 법원의 판례정보, 부동산거래정보 등등 수많은 공공데이터가 공개되어 있고 그 데이터를 가공해서 판매하는 데이터업자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해서 자동으로 투자를 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거나 개인이나 기업의 공개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용분석을 해주는 핀테크기업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빅데이터 산업도 이런 기반위에서 성장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공공기관도 사기업도 데이터를 꽁꽁 싸매고 공개하지 않는 편이다. 공개를 하더라도 가공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엄격한 보안규정도 그렇고 개인정보보호법이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스타트업이 공공데이터에 기반한 사업을 시작하기가 어렵다.
아웃소싱문화의 미국, 전부 직접 내부에서 해야 하는 한국.
미국기업들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핵심비즈니스에만 집중한다. 그렇지 않은 것은 주저 없이 외부기업의 제품을 사서 쓴다. 예를 들어 휴렛패커드 같은 대기업이 사내 인사관리시스템은 워크데이라는 외부기업의 인사관리 소프트웨어를 계약해서 쓴다. 내부에서 직접 만들어 쓰지 않는다. 핵심에만 집중하기 위해서다. 이런 풍토가 뛰어난 역량을 지닌 외부 소프트웨어회사들이 클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반면 한국기업들은 어떤가. 외부 회사의 제품을 쓰지 않는다. 필요한 소프트웨어는 그룹내 계열IT회사를 시켜서 직접 제작하거나 하청을 줘서 만들어서 쓴다. 최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가져다 쓰기 보다는 좀 품질이 떨어져도 내부 계열사의 것을 우선해서 쓴다. 그렇게 하다보니 역량있는 독립 소프트웨어회사들이 클 수 있는 자리가 없다. 올해부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제품을 쓰지만 삼성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문서작성을 하는데 내부에서 만든 훈민정음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했다.
좋은 품질의 외부제품보다 내부 계열사의 제품을 쓰는 것을 우선시하는 이런 문화는 기업들의 전체적인 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 그리고 국내에서 큰 B2B(엔터프라이즈)소프트웨어회사가 나올 수 없게 한다. 정부나 기업이 사주질 않으니 나올 수가 없다. 기업들은 하청업체처럼 쓸 수 없는 오라클, SAP, 마이크로소프트 등 외국대형소프트웨어회사들의 소프트웨어정도를 직접 구매한다.
혁신에 둔감한 리더
그리고 한국은 정부나 기업의 최고의사결정권자들이 혁신을 받아들이는데 둔감하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은 요즘 이메일 때문에 궁지에 몰려있다. 국무장관시절 사설 이메일서버를 써서 주고 받은 이메일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FBI가 힐러리가 사설이메일서버를 통해 국가기밀이 담긴 이메일을 주고 받은 일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는데 그 이메일갯수가 3만여통이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장관들이 얼마나 업무에 이메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지 알 수 있다.
또 젭 부시 등 공화당 대선후보들은 우버를 옹호하며 유세중에 우버차량을 불러서 이용하기도 한다. 4백60만명의 팔로어를 가진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의 달인’이다. 이처럼 미국의 교수, 기업인, 관료 등 지식인들을 만나보면 능수능란하게 트위터, 블로그 등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며 우버 등 새로운 혁신서비스를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금태섭변호사의 신간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에는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이야기가 나온다. 국가의 IT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이메일도 쓸 줄 모른다는 것이다. 얼마전 나는 장관 등 고위직을 역임한 분들이 많은 그룹에 강연을 하면서 인터넷쇼핑이나 인터넷뱅킹을 직접 하시는 분이 계신지 물어보았다. 20여분의 그룹에서 단 2명이 손을 들었다.
지금은 정부부처의 상당수는 세종시로 옮겨가 있고 많은 정부산하기관들이 전국으로 이전해있다. 그런데 내가 만나보는 상당수의 공무원이나 산하기관직원들은 출장을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화상회의나 컨퍼런스콜을 하면 간단히 끝날 일을 위해 하루를 날린다. 물어보면 고위층일수록 이메일이나 화상회의에 익숙하지 않다고 한다. 그냥 오라고 한다는 것이다. 클라우드서비스조차 다 차단해놓아서 외부에서 업무를 보는 것도 어렵다는 하소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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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최종의사결정권자인 사회고위층이 혁신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미국보다 한국이 휠씬 보수적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혁신기업이 더디게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런 경우 혁신기업에 대해 우호적인 정책이나 투자, 인수합병 등의 의사결정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뭔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 가치를 제대로 산정하고 투자를 하겠는가.
한국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의 혁신스타트업이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위에 열거한 규제시스템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 한국에서 창조경제가 불을 뿜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통령과 장관들부터 직접 솔선수범해서 혁신트렌드를 배우고, 혁신스타트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직접 쓰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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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1일 한국일보에 기고했던 글을 다듬어서 다시 블로그에 써봤습니다.
마션의 원작자 앤디 위어의 1년8개월전 구글강연
화제의 소설 마션(The Martian)을 읽고 영화도 봤다. 맷 데이먼 주연,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은 원작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살린 훌륭한 영화다. 다만 원작을 읽은 분들은 책에서 마크 와트니가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이 많이 생략되어 있어서 아쉬웠을 것이다.
책과 영화의 여운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나는 유튜브를 검색해서 마션의 원작자인 앤디 위어가 1년8개월전에 구글에서 가졌던 강연동영상을 찾아냈다. 호기심에 약간 들여다본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끝까지 다 봤다.
흥미로웠던 포인트 몇가지를 메모.
- 앤디 위어가 소설 집필을 위해 만든 Orbit이라는 프로그램. (14분 40초지점 소개)
위어는 마션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쓰기 위해서 실제 지구, 화성, 그리고 헤르메스호의 궤적을 시뮬레이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소설내에 나오는 헤르메스호의 항해궤도와 지구와의 통신소요시간 등은 모두 이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뒤에 쓴 것이라고 한다. 작품에 묘사되는 내용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직접 코딩까지 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소설가가 얼마나 많이 있을까.
2. 그가 마션을 출간하게 된 과정.(22분지점)
마션은 원래 그가 블로그에 토막토막 쓰던 글이다. 인기를 얻자 독자들이 “읽기 쉽게 한권의 전자책으로 엮어줄 수 없느냐”는 요청을 했다. 그래서 킨들에 넣어서 읽기 쉽도록 하나로 모아서 ePub, mobi 포맷으로 만들어서 그의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그러자 그것도 어렵다며 “킨들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도록 아마존에 올려줄 수 없느냐”는 요청이 들어왔다. (전자책파일을 다운받아 킨들에 파일로 전송하는 것은 처음해볼때는 조금 복잡하긴 하다.)
그래서 그가 아마존 킨들플랫폼을 확인해보니 누구나 전자책을 쉽게 출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다만 아마존은 자선단체가 아닌지라 최소가격으로 99센트를 부과하도록 되어 있었다. 어쨌든 독자를 위해서 그는 99센트에 아마존 킨들버전으로 책을 공개했다.
그리고 그는 아마존의 전자책 유통능력에 놀랐다. 그의 웹사이트에서 공짜로 공개한 것보다 휠씬 많은 사람들이 킨들을 통해서 그의 책을 99센트에 구매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SF소설 랭킹 톱 10에 오르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됐다.
그렇게 조금씩 주목을 받게 되자 랜덤하우스의 줄리안이란 편집자가 그의 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위어에게 바로 접촉하지는 않고 북에이전트인 데이빗에게 “이 책 한번 읽어보고 출간계약을 할만한지 의견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데이빗은 책을 읽고 나서 “충분히 출간할 만한데 잠깐만 내가 먼저 이 작가의 전속에이전트로 계약해야 겠다”고 하고 위어에게 연락해서 먼저 에이전트계약을 했다. 순발력이 대단하다. 그리고 데이빗이 나서서 랜덤하우스와 출간계약을 해줬다.
한마디로 위어는 돈에도 관심이 없었고, 책을 유명출판사와 계약하는데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콘텐츠의 내용이 워낙 좋으니 독자의 호응으로 SF웹소설이 저절로 주류시장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자가출판(Self publishing)이 가능한 아마존 킨들이라는 플랫폼의 힘이 있었다. 즉, 이런 전자책 플랫폼을 통해 앞으로는 숨겨진 좋은 작가들이 더욱 더 쉽게 나올 수 있게 될 것 같다.
3. 화성의 모래폭풍.(32분40초지점)
마션은 대단히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쓰여진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옥의 티가 있는데 그것은 도입부에 나오는 모래폭풍이다. 화성의 대기밀도는 지구에 비해서 극히 낮기 때문에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부상을 입고 날라갈 정도의 모래폭풍이 생길 가능성은 아주 낮다. 작가인 위어는 이 강연 동영상에서 “비밀인데 사실은 화성에 강력한 모레폭풍은 없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극적인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 이 부분은 타협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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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위어는 이 구글에서의 강연을 책이 정식 출간된지 이틀만에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편한 분위기다. 유명해지기 전이어서 그런지 청중도 많지 않다. 덕후스러운 분위기가 넘치는 구글직원들의 질문도 재미있고, 그런 질문에 자신있게, 재치있게 답하는 위어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NASA의 조직과 내부 정치가 너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고 혹시 직접 취재하고 쓴 것인지 상상한 것인지 물어보는 질문에 “다 만들어낸 것이다.(Made it all up!)”이라고 일말의 주저도 없이 자신있게 대답하는 모습이 매력적이다.(29분20초지점)
낙천적인 성격에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문제의 해결방법을 과학적으로 모색하는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의 캐릭터는 앤디 위어 그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20세기 폭스사가 판권을 사갔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 책이 영화화될지 모른다는 얘기도 한다.
또 그는 당시 모바일아이언이라는 회사의 안드로이드개발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다음 책이 계약되면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될 것이라는 말을 한다. 지금은 아마도 그렇게 됐을 것이다.
어쨌든 그의 강연동영상에서 기술의 진보에 대해 항상 낙천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모습을 봤다. 이 책을 쓴 계기도 사람을 화성에 보낸다면 어떻게 할까를 과학적으로 상상해보면서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앤디 위어에게서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긱(Geek-덕후)의 모습을 봤다. (자기는 자신을 Dork이라고 표현한다. Dork은 Geek보다도 더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다. 좀 심한 오타쿠라고 할까.)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실리콘밸리가 실리콘밸리인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달은 것. 미국에서는 이런 과학소설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우주탐사에 대한 동기부여를 해주는 강력한 로켓같은 추진력을 낸다. 그렇게 해서 미국의 과학기술이 항상 세계를 리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어려운 한국의 기업생태계
대기업간의 불공정한 내부거래는 그 기업의 자체 경쟁력을 갉아먹는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스타트업들의 비즈니스 기회를 앗아간다.
어떤 대기업이 글로벌시장에 내놓고 경쟁해야 하는 하드웨어제품이 있다고 해보자. 그리고 그 하드웨어는 인터넷에 연결해 사용하는 요즘 유행하는 사물인터넷(IoT)제품이다. 그런데 이 제품을 개발하고 서비스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클라우드(Cloud)서비스도 IT계열사에서 만든 것만 써야 하고, 그 콘텐츠플랫폼을 올릴 통신망도 계열통신사의 것만 가능하고, 핵심부품도 관련계열사가 만든 것위주로 써야 한다면 어떨까. 제품을 배송하는데 필요한 물류도 관련 계열사를 써야 하고, 광고 마케팅도 계열사인 광고대행사만 써야 한다면 어떨까. 각 분야에서 최고로 잘하는 회사들의 서비스를 써서 제품을 만드는 경쟁사와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그리고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 쓰는 사무용소프트웨어까지 계열 IT회사에게 의뢰해서 개발시킨다면 어떨까. 설사 외부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쓰더라도 관련 계열사를 통해서만 구입하게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제품의 원가가 높아진다. 제품의 경쟁력도 떨어진다. 계열사끼리의 비즈니스는 결국 거져먹는 장사라고 생각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도 안할 것이다. 한마디로 그 안에서는 경쟁이 없는 것이다.
해외 같았으면 이런 방식으로 경영하는 회사는 일찌감치 경쟁에서 밀려서 탈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하는 것이 그동안은 먹혔다. 덩치를 키워서 그룹의 물량만 내부에서 소화해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외부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계열회사를 통해서 외부소프트웨어 등을 구입할 때는 갑을관계를 이용해 최대한 가격을 깎아서 오히려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심지어 그룹 임직원들에게 다른 경쟁사의 제품을 쓰지 못하게 하고, 계열사의 제품을 그룹임직원과 가족에게 강매하는 경우도 있다.
그룹의 대표상품을 만드는 핵심회사는 이렇게 해서 국내시장을 장악했고 여기서 얻은 힘을 바탕으로 해외에는 국내보다 더 싸게 제품을 팔아서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갔다.
이런 식으로 하다보니 이런 성을 쌓은 성의 성주(소위 오너)들 입장에서는 왕국의 규모를 크게 키우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일단 성의 규모가 커지면 정부와 언론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가져가는 것이 중요했다. 각종 사업권, 면허를 정부로부터 얻고, 독점시장에 경쟁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규제의 틀을 지키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런 카르텔을 언론이 문제삼지 않도록만 하면 웬만해서는 이 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오너들은 계열사의 사장은 누가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게 됐다. 어차피 내부거래로 쉽게 장사하는 이상 계열사의 사장들은 말 잘 듣는 충성스러운 사람을 월급쟁이로 앉히면 된다. 능력보다는 이런 문화를 깨지 않는 충성심이 우선이다. 그러니 이런 문화를 이해 못하는 외국인 경영자는 못 데리고 온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타겟으로 삼은 B2B소프트웨어스타트업들의 광고를 심심치 않게 본다. 이 Onelogin이라는 스타트업은 유니콘스타트업(가치가 1조이상되는 비상장스타트업)을 겨냥해 이런 광고를 냈다.
문제는 이런 한국의 대기업위주 기업생태계가 작은 물고기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기업관행은 수많은 작은 회사들이 대기업과 공정한 거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다. 대기업을 상대로 판로를 개척한다고 해도 대기업 IT계열사들을 통해서 을이나, 병 관계로 해서 값싸게 간접적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팔게 된다. 당당하게 자신의 제품을 가지고 대기업과 파트너십을 가져간다는 것은 꿈같은 얘기다. 오히려 거래 중소기업이 잘 되는 것 같으면 거래단가를 깎거나 계약을 파기하는 방식으로 견제한다.
이런 불공정한 거래, 카르텔구조를 깨야 혁신적인 제품을 가진 작은 회사들이 비즈니스를 키워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런 문화가 없어지지 않는한 성공한 회사들도 성장하면 다른 기업과 똑같이 계열사를 만들어서 성을 쌓게 된다. 규모가 커지는데 따라 계열 IT회사를 만들고, 건설회사를 만들고, 광고회사를 만든다. 덩치를 키우는데 급급하다. 어줍잖게 그룹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행세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되니 동반성장을 하는 건전한 생태계는 없고 각 재벌 그룹사들의 크고 작은 생태계만 넘친다. 그런 생태계가 유지되도록 정부가 라이센스를 주고 보호막을 쳐준다. 오너가 범법을 저지르더라도 타이밍을 봐서 사면해 준다. 큰 기업이 어려워지면 국책은행을 동원해서 구제금융을 해준다. 이런 정부의 따뜻한 도움에 대기업들은 대규모투자계획과 채용계획을 발표하면서 화답한다. 이것이 한국적 기업생태계다. 실리콘밸리에서 보는 것처럼 작은 기업들이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만을 가지고 급성장을 하기는 참 힘들다. B2B시장은 막혀있고 B2C시장의 많은 길목도 대기업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실리콘밸리 스톰벤처스의 남태희디렉터를 만났다. 그 분은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어려운 한국대기업생태계의 문제를 그림까지 그리며 설명해주셨다. 위쪽이 B2C, B2B시장이고 아래쪽이 스타트업, 그 중간이 Goto market채널이다. 빗금친 부분이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다. 즉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피해 위로 올라가기가 극히 어렵다.
미국은 수많은 기업들이 자신의 전문분야에만 집중하고,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성장하는 혁신중심 기업생태계를 갖고 있다. 역동적이다. 우리와 기업생태계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 일본만해도 일찌기 재벌이 해체되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휠씬 더 다양성이 존재하는 기업생태계를 가지고 있다.
해외출장을 다니며 외국의 상대적으로 건전한 기업생태계를 보면서 부러웠다. 한국의 이런 재벌중심 기업생태계와 문화가 좀 바뀌어야 진정한 창조경제가 이뤄질 것 같다. 결국 공정한 시장을 위한 감시자가 되야 하는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의 분발을 촉구한다.
한글날 가볼만한 국립한글박물관
한글날 기념포스팅. 지난 월요일 개관 일주년 기념으로 새로운 전시기획물을 선보인 국립한글박물관에 갔다.
새로운 전시물의 이름은 ‘디지털 세상의 새 이름_코드명 D55C AE00‘. 개인적으로 전시명이 너무 어려운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한글이 컴퓨터와 만나서 어떻게 자리를 잡게 됐는지 그 역사를 보여준다. 한글날 한번 가볼만한 곳이라고 생각해서 찍어둔 사진 몇장 소개.
이 기획을 소개하면서 김상헌 한글박물관 후원회장은 레고로 만든 훈민정음해례본 등 흥미로운 전시물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중학생시절 내가 컴퓨터에 처음 관심을 갖게 만든 제품. 삼보컴퓨터에서 만든 트라이젬 컴퓨터. 애플II의 클론제품이다. 이 제품을 가지고 컴퓨터를 가르치는 입문강좌를 들으러 여의도 삼보컴퓨터본사까지 갔었다.
내가 컴퓨터를 배우고 싶다고 조르자 어머니가 어디 컴퓨터학원을 찾아서 등록해주셨다. 그곳에서는 삼성의 SPC-1000을 가지고 BASIC언어를 배웠다. 카세트테이프에 작성한 코드를 저장하던 기억이 새롭다. HU-Basic이었던가.
대학교에 가서 IBM-XT호환기종을 사고 나서는 보석글에 의존했다.
그러다가 아래한글 워드프로세서를 만난뒤 신세계가 열렸다.
당시에는 DOS환경에서 한글을 쓰기위해 벼라별 노력을 다했다. 그 중 하나가 도깨비한글.
DOS에서 한글을 소프트웨어적으로 구현해주기도 했고 보다 빠른 속도로 쓰려면 도깨비한글카드를 사서 끼웠던 것 같다.
완성형한글이 얼마나 우리를 괴롭게 했는지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지난 일년사이에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마다 애용하는 우아한 형제들이 만든 한나체도 전시되어 있다.
전시물을 돌아보고 옛날 생각을 하면서 지금 컴퓨터환경이 얼마나 좋아진 것인지 다시 실감했다.
어쨌든 국립한글박물관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바로 옆에 있다. 관람료는 무료이니 시간되시는 분들은 한번 가보시길.
페이스북 신캠퍼스 구경하기
지난주 실리콘밸리출장을 갔다가 오랜만에 다시 페이스북 본사를 방문했다. 최근에 막 페이스북에 입사한 주희상님 얼굴도 볼 겸 새로운 페이스북 건물을 구경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멘로파크의 샌프란시스코만 바로 옆에 위치한 페이스북의 캠퍼스는 원래 썬마이크로시스템의 본사였다. 한때 잘 나가던 썬마이크로시스템이 오라클에 인수된 뒤에 이 캠퍼스를 페이스북이 차지하게 됐다. 직원 모두에게 작은 사무실(방)을 주는 썬마이크로시스템의 문화와 달리 개방형 사무실 공간을 지향하는 페이스북은 대대적인 공사를 통해 벽을 허물고 모든 사무실을 오픈된 공간으로 만든다.
그 결과 페이스북본사는 아주 개방적인 모습을 띄게 됐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페이스북 본사의 주소는 1 Hacker way이며 가운데 광장에 HACK이라는 거대한 글자를 새겼다.
하지만 마크 저커버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스타일의 건물을 세우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전설적인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에게 의뢰해서 바로 옆에 새로운 캠퍼스를 건설하고 지난 5월말 새로 입주를 시작했다.
구캠퍼스에서 신캠퍼스의 거리는 얼마되지 않지만 걸어가기엔 좀 애매한 거리라서 그런지 이런 셔틀이 다닌다.
새 캠퍼스 건물의 전체 전경은 이렇다.
이런 분위기의 업무공간. 천정이 8미터높이라고 한다.
대략 넓이를 평으로 계산해보니 1만2천평정도된다. 이 정도 공간을 칸막이나 벽 없이 하나의 연결된 공간으로 만들었다. 너무 넓어서 5개의 존으로 나눠놓았다.
바닥을 보면 내가 어느 존에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표시해 놓았다.
놀란 것은 옥상정원의 모습이다. 옥상에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흙바닥과 잔디, 그리고 여기저기 4백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는 산책로는 그냥 도시속의 생태공원 같다는 느낌이다. 도저히 옥상에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역시 옥상도 너무 넓어서 지도를 봐야 현재위치를 알 수 있다.
한바퀴 돌면 1Km는 휠씬 넘을 것 같다. 이 옥상정원은 9에이커라고 한다. 1에이커는 대략 미식축구장 하나 크기로 본다. 이 정원이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다.
참고로 아래 비디오에서 마크 저커버그는 이 새 캠퍼스에 대해서 안내해준다.
자신의 자리도 보여준다. 방없이 그냥 평범한 책상 하나다. 책상위에 그가 읽는 책이 가득 쌓여있다. 사람들은 뒤에 있는 회의실에서 만난다고 소개한다.
이 동영상에서 나오는 저커버그의 설명에 그의 사무공간에 대한 철학이 집약되어 있다.
“By having an open floorplan where people work close to each other, it facilitates people sharing and communicating that what they’re doing, which enables better collaboration, which is key to building best services for our community”
“사람들이 밀접하게 붙어서 같이 일할 수 있는 개방형공간을 통해서 우리는 직원들이 서로가 하는 일을 더욱더 잘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렇게 하면서우리 커뮤니티를 위해 최고의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가져야 할 핵심역량인 협업을 더욱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
나를 안내해준 주희상님은 내부에 들어와서 보니 페이스북의 모든 지표가 상상이상으로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서 놀랐다고 한다. 페이스북본체뿐만 아니고 메신저,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 모든 주요서비스가 상승세다. 이렇게 분위기가 좋다보니 인력채용도 엄청나다고 한다. 이렇게 거의 3천명이 근무할 수 있는 새 캠퍼스건물을 열었지만 계속 주위에 새로운 건물을 증축중이다. 그야말로 진격의 페이스북이다.
주희상님은 사내에서 매주 직원들과 전체미팅을 하면서 질문에 답하는 마크 저커버그의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고 한다. 항상 직원들에게 좋은 질문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가끔은 어리석거나 무례한 질문도 나오는데 마크가 참 대답을 잘 한다는 것이다. 희상님은 저커버그가 이런 문답시간을 끊임없이 가지면서 경영자로서 더욱 성숙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앞으로 인터넷영역에서 구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회사를 꼽는다면 현재로서는 페이스북이 유일할 것 같다. 마크 저커버그가 아직 젊은 만큼 이 회사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이상 페이스북 신캠퍼스를 구경하고 든 생각 메모.
시진핑주석을 맞은 백악관 국빈만찬장. 그곳에 사람이 있었네.
백악관은 요즘 새로운 블로그플랫폼인 미디엄을 이용해서 다양한 정보를 발신하고 있다. 그런데 마침 오늘 지난주 미국을 국빈방문한 시진핑주석의 백악관방문과 국빈만찬 모습을 담은 미디엄포스팅을 보게 됐다. 백악관의 전속 사진가로 항상 멋진 사진을 찍는 피트 수자의 작품이다.
강대국 정상끼리의 외교는 이런 분위기로 펼쳐지는구나 하고 구경하다가 눈에 들어온 사진이 있었다. 오마바와 시진핑이 오벌오피스에 있는 동안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거물들의 모습이다.
그래도 장유유서인지 바이든부통령과 케리 국무장관이 자리에 앉아있다. 그리고 다른 스탭들은 모두 서서 환담하고 있다. 이렇게 밀착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백악관내부의 구조는 정말 좁기는 좁은 모양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예전에 백악관과 청와대의 대통령과 비서실장과의 거리 비교라는 제목의 포스팅을 하기도 했었다.
이렇게 좁은 백악관의 내부구조가 대통령과 스탭들이 가까이 밀착해서 소통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바로 얼마전에 본 청와대의 어이없는 사진이 떠올랐다.
잘 보이지 않지만 그나마 제일 가까이 서있는 사람이 이병기 비서실장이다. 비서관들은 도대체 왜 저렇게 멀리 떨어져서 서 있는 것일까.
청와대 사진들을 보면 대통령을 포함해서 모두가 권위와 엄숙함의 무게에 짓눌린 듯한 표정과 자세가 느껴진다. 모두 주눅들어 있다.
반면 백악관의 사진들을 보면 사람 사는 모습이 보인다.
만찬 준비를 위해서 분주한 스탭들과 요리사들의 모습도 담아낸다.
만찬이 끝날때 미쉘 오바마는 만찬을 준비해준 요리사들을 불러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4명의 쉐프중 2명은 초청쉐프인 것 같다. 맨 오른쪽의 필리핀계 여성이 크리스 코머포드 백악관 수석주방장이다. 그 옆에 있는 사람이 애니타 로 초빙요리사로 말레이계 이민가정 2세다. 4명이 모두 여성요리사라는 점도 특이하다.
시진핑부부를 배웅하고 맨 마지막으로 나온 사진은 백악관 Social Secretary 디샤 다이어를 미쉘이 포옹하는 모습이다. 소셜 비서관이 뭔가 해서 찾아보니 이런 이벤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직책이다. 아마 이번 만찬을 준비하느라 고생했다고 위로해주는 것 같다.
우리 청와대에서도 이런 사람냄새가 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좀 보고 싶다. 아직 2년이 더 남았는데 노력하면 좀 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의 스타트업생태계에 대해 아르헨티나에 알리다
지난 9월의 첫주 벤처기업협회의 초청으로 아르헨티나에 다녀왔다.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시에서 개최한 벤처캐피털포럼아르헨티나에서 패널토론에 참가했다. 어떻게 하면 아르헨티나의 스타트업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을까가 주제인 이 포럼에서 미국에서 라틴아메리카펀드를 운영하는 수산나 가르시아 로블스의 키노트 발표가 끝나고 바로 이어지는 50분간의 패널토론이었다. 앞서 키노트발표를 한 수산나가 사회를 보고, 이스라엘 카난파트너스의 Ehud Levy와 나를 패널게스트로 초청해 이스라엘과 한국의 스타트업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것이었다.
항상 그렇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내게 이런 국제행사에서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큰 도전이다. 10년전만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인데 여러번 하다보니 좀 나아졌다. 대충 기억나는대로 나간 영어로 진행되는 컨퍼런스를 꼽아보니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OCED회의(2007),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WIPO심포지움(2008), MIT 아시아비즈니스컨퍼런스(2012, 2015) , 아시안리더십컨퍼런스(2015), 비글로벌SF(2014) 등이 있다. 대중앞에서 부족한 영어로 토론하는데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여러번 하다보니 좀 나아졌다. 물론 라이코스에서 3년간 CEO로 근무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미리 말할 내용을 준비해두지 않으면 쉽지 않다.
사실 아르헨티나에서의 발표도 사회자인 수산나는 슬라이드발표없이 말로만 진행한다고 질문리스트를 미리 보내줬다. 그래도 지구반대편에 있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 비주얼한 자료가 없이 설명해주면 와닿지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서울-로마-부에노스아이레스를 잇는 총 12시간+14시간의 비행시간동안 짬을 내서 평소하는대로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설명하는 간결한 슬라이드를 준비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됐을때 약 10분동안 슬라이드와 함께 가볍게 설명했다.
한국이 얼마나 모바일인프라가 잘 되어 있는 나라인지,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한 대기업은 많지만 스타트업은 많지 않았는데 2년전부터 정부의 창조경제정책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테헤란로의 스타트업붐과 각종 정책으로 인해 스타트업생태계에 선순환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소프트뱅크에게서 1조원의 투자를 유치한 쿠팡같은 유니콘스타트업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긍정적인 이야기만 했다.
이것이 청중들에게 예상외로 좋은 인상을 준 것 같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생태계가 강하다는 것은 어차피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한국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는 몰랐다는 것이다. 세션이 끝나고 내 이야기를 인상적으로 들었다는 인사를 아르헨티나 현지인들로부터 많이 들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 두번째로 큰 신문사인 La Nacion의 기자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한국스타트업생태계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원래 이메일로 보낸 질문에 답을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따로 시간을 내서 Luján Scarpinelli 기자를 만났다. 직접 만나서 설명을 해줘야 제대로 내용이 전달될 것 같아서다. 햄버거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도 어떤 면에서는 언론사 선배(?)인지라 신문업계의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사람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한 것 같았다. 자기의 어린 남동생은 종이신문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나.
어쨌든 이 인터뷰후에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팔로업을 했다. 이런 기사를 작성하려면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숫자’가 필요한데 나름 자료를 찾아서 제공했다. 그 결과 지난 9월23일 한국스타트업생태계에 대한 기사가 멋지게 La Nacion지면을 장식했다.
제목은 “강남 스타일 이후 창업으로 세계를 제패하려는 한국”. 아주 긍정적인 내용이라 감탄했다.
갑자기 잡힌 출장이었지만 그래도 아르헨티나에 한국스타트업생태계에 대해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흐뭇했다. 한국을 알리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현지 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현지 언론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한달전의 일이지만 기억해두기 위해서 블로그에 메모.
[라이코스 이야기 5] 미국직장의 점심문화
한국의 직장문화에서 점심은 누군가와 같이 식사하는 시간이다. 적어도 신문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는 그렇게 배웠다. 누군가와 약속을 잡아서 식사를 하면서 사람을 사귀고 정보를 얻는 시간이 점심식사시간이었다. 아니면 따로 약속이 없더라도 같은 부서의 동료들과 같이 나가던지 아니면 어느 누구라도 잡고 둘이서 나가서 밥을 같이 먹어야 되는 문화였다. 혼자서 가서 식사를 하면 웬지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루저’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점심약속을 미리미리 잡아놓고는 했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나서는 대개 다같이 찻집이나 카페로 이동해 커피나 차를 마시는 과정이 뒤따른다. 일이 바쁘거나 입맛이 없어서 점심을 거르거나 간단히 하겠다고 하면 “다 잘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하면서 같이 식당에 가자고 권유하는 선배들이 많았다. 비생산적일 수는 있지만 이런 문화를 통해서 동료들과 더 많이 소통하게 되고 외부인맥도 늘리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보니 사뭇 문화가 달랐다. 미국직장인들은 특별한 점심약속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라이코스의 경우 일단 구내식당이 없고 샐러드나 샌드위치를 파는 카페테리아는 걸어서 5분정도 떨어져 있는 옆 건물에 있었다. 그외의 식당은 제일 가까운 곳도 차를 몰고 가야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서 도시락을 싸오거나 간단히 가까운 곳에서 먹을 거리를 사와서 혼자 먹는 정도였다.
동료들과 같이 담소하면서 먹는 것을 즐기는 몇몇 직원들은 냉장고와 싱크대가 있는 ‘키친’에 앉아서 식사를 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냥 자기 책상에 앉아서 가볍게 점심을 먹는다. 그야말로 우걱우걱 먹는다.
사람들이 싸오는 그 도시락이라는 것도 천차만별이어서 중국인등 아시아인들은 우리처럼 제대로 밥이 들어간 도시락을 싸오기도 하지만 보통은 간단히 샐러드나 샌드위치를 싸온다. 심지어 전자렌지에 데워먹는 파스타나 햄버거 같은 냉동식품을 가지고 오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 저런 것을 먹나 싶은데 다른 사람의 눈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몇명이서 같이 피자를 주문해서 한조각씩 먹기도 한다.
즉, 한마디로 미국인들의 직장 점심문화를 정의하면 “대충 때운다”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구내식당이 있더라도 음식을 자기자리로 가지고 가서 책상에 앉아 혼자 먹는 사람들이 많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직장인의 67%가 책상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할 정도다. 뉴저지에 있는 삼성전자의 미국지사 구내식당에 가본 일이 있는데 그 곳에서도 한국인들은 자리에 앉아서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외국인들은 식사를 가져다 자리 자리에 가서 혼자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호화로운 공짜점심을 제공하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실리콘밸리 회사들은 미국전체로 보면 아주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들 회사가 공짜점심을 제공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직원들이 점심시간을 통해 소통을 하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회사에서도 점심거리를 식당에서 받아다 자기자리에 혼자 앉아 먹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점심을 간단히 먹는 문화는 아마도 식사시간을 최소화하고 일에 집중하기 위한 이유가 크다. 식당이 멀어서 밖에서 먹고 오면 한시간이 훌쩍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그럴 시간이 10분만에 식사를 후딱 해치우고 일을 빨리 끝내려는 것이다. 상사의 눈치를 보는 야근이 없는 문화기 때문에 일을 빨리 끝낸만큼 집에 제시간에 갈 수 있다.
솔직히 이런 미국인의 점심문화는 내 마음에 안들었다. 미국직장에서 동료간에 ‘정’이 한국과 비교해서 없고 개인주의적인 것은 아마 이런 드라이한 점심문화의 영향도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라이코스에 갔을 때 꺼꾸로 이런 문화를 이용했다. 나는 한국식으로 적극적으로 직원들에게 점심을 같이 하자고 청했고 같이 인근 식당에 가서 식사했다. 점심같이하자고 물어보면 상대방이 선약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므로 쉽게 식사상대방을 구해서 점심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을 데리고 차로 한 15분 거리에 있는 렉싱턴시내 한국식당에 가서 돌솥비빔밥을 시켜주고 한국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많은 직원들과 서로 간의 벽을 허물 수 있었다. 음식을 앞에 놓고는 업무미팅때는 할 수 없는 가볍고 사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러다보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놀라울 정도로 개인사를 털어놓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디에서 자라났으며 학교를 다녔고 형제자매는 어떻게 되고 자녀들은 어떤 상황인지 심지어는 기구한 가족사와 이혼경력까지 술술 털어넣는 경우도 있었다. 덕분에 미국인들의 삶과 고민 등에 대해서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서로간의 신뢰를 쌓았다고 할까. 그들도 알고보면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식당에 내 차를 타고 나란히 앉아 같이가고 식당에 마주 앉아 대화하면서 덤으로 영어회화실력도 많이 늘었다.
이처럼 미국에서 직원들에게 저녁식사를 청하는 것은 “NG(No Good)”이지만 점심식사를 청하는 것은 미덕이다. 밀린 일을 따라잡기 위해서든, 공부를 위해서든, 인맥을 넓히기 위해서든 점심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은 직장인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라이코스 이야기 4] 나이와 호칭을 따지지 않는 문화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게 가장 편했던 것은 ‘나이와 호칭을 따지지 않는 문화’였다. 물론 미국이라고 나이와 호칭이 전혀 상관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과 비교해서는 상대적으로 적게 따진다는 얘기다.
반면 한국에 돌아와서 짜증이 나는 것은 끊임없이 나이를 따지는 문화다.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누가 연장자인지 따진다. 감추려고 해도 감추기가 어렵다. 참석명단을 돌리면서 무신경하게 요구하는 주민등록번호 때문에 서로의 나이를 쉽게 알게 된다. 관에서 하는 행사에 가면 필수요건처럼 이름옆에 나이를 표시한다.
***
처음 라이코스에 가서 직원들 면담을 하면서 가끔 상대방의 나이가 궁금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알수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보는 것은 실례라는 것쯤은 알아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직원들의 인적사항을 볼 수 있는 회사 인트라넷이 있느냐”고 인사담당(HR)매니저인 존에게 물어봤다. 펄쩍 뛴다. 직원들의 개인적인 인적사항 정보는 사장이라고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입사나 퇴사 등의 행정적인 절차 때문에 HR정보를 확인해야 경우에 한해 HR담당자인 자신만 보는 것이지 그외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줄 수 없단다. 이력서나 지원서에 나이를 적는 것이 당연시 되고 또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항상 타인에게 자신의 나이를 드러내보일 수 밖에 없는 한국의 문화와 달라서 좀 놀랐다.
그래도 직원 면담을 할때 내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도는 미리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존에게 이야기하니 이메일로 사전에 취합된 이력서를 보내준다. 하지만 사진, 성별, 나이 등이 없이 학력과 경력이 건조하게 나열된 이력서를 봐서는 정확히 나이를 알기 어려웠다. 그나마 학교졸업연도 등으로 대강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나마 졸업연도도 안 쓴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직원들의 나이가 궁금할 일은 없었다. 나이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보다 휠씬 나이가 많아보이는 일부 엔지니어들이 있어서 조금 궁금하기는 했다. 하지만 존이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어차피 중요한 것이 아니니 나이는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
나이를 따지지 않는 것보다 내가 더 편하게 여긴 것은 이름을 그대로 부르며 존댓말이 없는 영어 언어습관이었다.
한국에서는 나이나 출신학교, 출신지역에 따라 손윗사람의 경우 형님, 선배로 부르거나 아랫사람의 경우는 “준현”, “준현씨”하는 식으로 그냥 이름을 부른다. 연배가 높은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을 “정희”, “재현”하는 식으로 이름만 부르는 것은 큰 실례일 수 있다. 또 이름이 아니고 성에 대표, 부사장, 전무, 국장, 과장, 대리 등 직함을 꼭 붙여서 불러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뭔가 어색해서 상대방을 부를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누구나 상대방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서 망설인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한국의 호칭문화와 달리 미국에서는 직함없이 상대방 이름을 그대로 부르면 된다. 영어의 특성상 존댓말도 없다. 아무나 그냥 이름만 기억하고 부르면 된다. 심지어 가족간에도 그렇게 한다.
직원들과 복도에서 마주치면 “헤이, 정욱 하우아유”(Hey Jungwook, how are you?)라고 말을 건넨다. 한국의 대기업에서 사장에게 말단직원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렇게 이름을 부르기 때문에 한국에 있을 때보다 직원들과 휠씬 평등한 관계에서 말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팀에서 일을 할 때도 서로 나이와 직위를 (한국과 문화와 비교해서) 덜 의식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한 편이다. 미국에서도 동부보다는 서부가, 기존 전통산업계보다는 IT업계의 신생기업일수록 더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일반적인 미국인의 경우 이름이 참 기억하기 쉽다. 크리스, 존, 조, 다이애나, 케빈, 에드, 티파니, 마크… 이들이 내가 밀접하게 일하던 라이코스 핵심매니저들의 이름이다. 몇년이 지나도 잊어버릴 수가 없을 정도로 이름이 쉽다. 크리스처럼 너무 흔한 이름은 사내에서 동명이인이 여럿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성은 보통 다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안된다.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이름을 쉽게, 더 자주 불러주기 때문이다. 이름을 불러주다보면 쉽게 친근감을 가지게 된다.
복잡한 호칭없이 퍼스트 네임만을 불러주고 쉬운 이름을 쓰는 문화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생활속에서 매일 마주치는 주위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라이코스의 동료들은 자주 다니는 샌드위치가게의 점원이름이나 헬스클럽의 매니저이름이 제니퍼라든지 톰이라는지 하는 것을 모두 기억하고 그들을 이름으로 불러줬다. 심지어 매일 아침에 사무실을 청소해주는 여성도 “제인”이라고 이름으로 불러줬다. 더 인간적으로 상대방을 대할 수 있는 것이다.
매일다니는 식당의 종업원이름이나 방을 매일 청소해주는 분의 이름도 “아줌마, 아가씨, 아저씨”, 아니면 “저기요”로 호칭할 수 밖에 없는 한국의 문화와 비교해 나는 이런 미국의 호칭문화를 참 부럽게 느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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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미국인이라고 나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일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는 재무팀장인 티파니에게 한 재무팀원의 나이를 아느냐고 물어본 일이 있다. 그랬더니 펄쩍 뛴다. 자기가 어떻게 그걸 아느냐는 것이다. 알 필요도 없고 관심도 없단다.
나중에 다른 미국인 임원과 이야기했더니 티파니의 이런 반응은 과장이란다. 절대로 나이를 안드러내는 사람도 있지만 일하다보면 편하게 나이를 공개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비공식적으로는 대충은 서로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디까지나 대충이다.)
솔직히 자신보다 드러나게 나이가 많은 사람의 매니저가 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가만히 관찰해보면 나이가 많은 사람이 팀에서 적응을 못하는 것은 나이가 많고 적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게 아니고 그 사람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보다 젊은 세대와 일하는 것을 불편해 하는 경우에 문제가 됐다. 나이가 많더라도 유연하게 젊은 마인드로 일할 줄 아는 사람들은 나이가 어린 동료나 매니저와 일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어쨌든 직장에서 서로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나보다 나이어린 사람이 상관이 되더라도 개의치 않고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 때문에 회사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스트레스도 적은 편이다. 후배가 자기보다 위로 승진하거나, 나이는 들어가는데 일정 직급이상 승진하지 못하면 자의반타의반 조직을 떠나야 하는 한국문화와는 확실히 다르다.
인사담당인 존의 후임으로 들어와서 1년반동안 나와 같이 일했던 HR디렉터 다이애나는 처음 면접때 만났을때 나이가 나보다 휠씬 많아보였다. 어림짐작으로 나보다 10살은 위일 것 같았다. 하지만 존의 강력한 추천도 있었고 일을 잘 할 것 같아서 뽑았다. 그리고 이후 한번도 나이를 물어본 일이 없었다. 본인도 절대 나이를 밝히지 않았다. 같이 일하면서 나이가 부담스럽기는 커녕 오히려 다이애나의 다양한 경험과 연륜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그녀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조직을 원만히 운영해가는데 큰 도움을 받았다.
몇년뒤 둘다 라이코스를 그만두고 나온 뒤에 같이 점심식사를 하면서 나이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는 빙그레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자기 나이가 얼마나 될 것 같냐고 맞춰보라고 했다. 그녀의 실제 나이는 내 예상보다 거의 십년은 위인 60세였다. 같이 일하면서 그녀의 나이를 몰랐던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알았으면 쓸데없는 편견에 사로잡혀 “다이애나는 나이가 많아서 이런 일은 못할거야”라고 지레 짐작하지 않았을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