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 없는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크게 바꾸고 있다. 특히 지난 10여간 등장한 스마트폰, 타블렛컴퓨터, LTE 등 고속이동통신망은 우리를 사무실 책상에 묶여있는 것에서 해방시켜줬다. 이제는 랩탑컴퓨터나 아니면 스마트폰으로도 어디서든 일할 수 있게 됐다. 모바일메신저로 실시간으로 연락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필요하면 화상회의로 어디서나 연결해서 회의한다. 화상회의도 1대1이 아니라 얼마든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할 수 있다. 전체 직원미팅, 교육 등도 얼마든지 원격으로 할 수 있다.
아예 사무실자체가 없이 전직원이 재택으로만 일하는 회사도 등장하고 있다. 온라인교육 스타트업 스터디파이는 전 직원이 재택으로 근무한다. 아예 사무실이 없다. 그리고 매년 전직원이 다같이 해외로 한달동안 가서 일한다. 그렇게 회사를 운영해도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0여년간 하나도 변하지 않은 곳이 있다. 바로 정부를 비롯한 공공부문이다.
이제 많은 정부부처들이 세종시, 대전 등에 분산되어 있다. 공공기관, 공기업도 전국 혁신도시에 산재해 있다. 이들 공무원들은 마치 유목민처럼 거의 매주 서울에 올라왔다가 볼 일을 보고 내려간다. 그런데 이들이 일하는 방식은 10년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온갖 화상 회의 제품이 넘쳐나는 시대에 공무원이 화상회의로 만나자는 얘기를 들어본 일이 없다. 화상으로 연결해서 조금만 얘기하면 될 것을 하루종일을 소비해 직접 대면으로 보고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잊을만하면 정부가 “공무원의 화상회의를 장려한다”는 보도가 나온다. 하지만 간편하게 쓸 수 있는 민간 화상회의 서비스는 다 막혀 있고 화상회의 절차가 복잡해 실제로는 쓸 수가 없다고 한다.
온라인 공유기능이 없는 불편한 문서편집기를 사용하는 것도 문제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못쓰니 온라인으로 문서를 실시간 수정하고 서로 공유하는 것도 안된다. 문서파일을 수정할 때마다 끝없이 파일이름을 바꿔가며 메일에 첨부해서 보낸다. 수십번 이상 고치면서 메일로 계속 주고받다보니 문서관리도 어렵다.
보안 때문에 외부에서는 이메일을 접속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다. 공무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함흥차사인 경우가 많다. 답을 재촉하는 문자를 보내면 외부에서는 확인이 어렵다고 “세종 사무실로 돌아가면 답장을 드리겠다”고 답변이 온다.
공공기관 내부망은 클라우드서비스 등 외부의 인기있는 인터넷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다 막혀있다. 외국사람들과 교류를 해야 하는 부서에서 구글클라우드나 드롭박스가 막혀 있어서 곤란을 겪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외국에서 온 메일에 달려온 중요한 파일이나 정보를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래서 어떻게 글로벌 비즈니스를 할까.
필자가 2006년에 다음커뮤니케이션에 입사했을 때 전 직원이 다 랩탑컴퓨터를 쓰는 것을 보고 놀란 일이 있다. 회의를 할 때도 다 자신의 랩탑컴퓨터를 들고 간다. 이제는 거의 모든 민간 회사에서는 일상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정부부처는 아직도 육중한 데스크톱컴퓨터만 쓴다. 사무실에서는 무선인터넷(wifi)가 아예 안되는 곳도 많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공공의 불편한 시스템을 민간에도 강요하는 것이다. 정부 지원을 받으려는 스타트업은 이런 구식시스템에 맞춰서 문서를 준비하고 지원해야 한다. 액티브X를 계속 설치하고 쓰다보니 컴퓨터가 느려져서 정부지원 서류용 컴퓨터를 따로 준비했다는 회사도 있었다.
보안 때문에 그렇다는 것은 물론 이해한다. 하지만 너무 과도하다. 직원들을 신뢰하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좀 풀어줘야 하지 않을까. 세상은 광속의 속도로 변하는데 정부만 제자리 걸음이다. 일하는 방식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데 공무원들은 “이건 원래 어쩔 수 없는거야”라며 자포자기중이다. 하지만 그래도 일은 해야 한다. 정부이메일을 쓰면 일을 빨리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공무원들은 민간 서비스에 의존한다. 카톡이나 네이버메일, 지메일에 온갖 정부 중요 서류가 둥둥 떠다닌다.
4차산업혁명은 꼭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차 등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5G, 클라우드, 사물인터넷 등 신기술을 이용해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는 것도 포함된다. 5G가 보급되면 화상회의도 어디서나 더욱 생생하고 실감나게 할 수 있다. 또 어떤 상상하지 못하던 혁신적인 서비스가 나올지 모른다. 이런 시대의 변화에 맞게 정부의 일하는 방식도 좀 바꿀 때가 됐다. 제발 민간을 위해서도.
(서울신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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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5일 at 3:32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