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 EstimaStory.com

Thoughts on Internet

Archive for 1월 25th, 2015

미국에서는 토론을 잘해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릭 페리의 웁스 모우먼트

with 4 comments

나는 오바마가 첫번째 임기를 시작한 바로 다음달인 2009년 2월에 미국 보스턴으로 건너가 5년간 살다가 귀국했다. 그 기간동안 오바마가 첫번째 임기를 수행하고 2011년말 대선에서 또 승리해 재임하는 것을 지켜봤다. 특히 2011년 1년동안 진행된 미국의 대선레이스를 지켜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미국대선은 뭐랄까 거대한 미디어 정치쇼다. 수많은 공화당후보들이 나와서 경선레이스를 거쳐서 현직 대통령에게 도전하는 과정자체가 하나의 박진감넘치는 TV쇼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특히 밋 롬니를 비롯한 공화당대선후보들이 초반에 경쟁하는 가장 치열한 무대가 후보합동토론회였다. 예선부터 본선까지 대통령이 되려면 끝도 없이 토론회를 거쳐야 한다.

나는 2011년 대선레이스중에 가장 유력한 공화당 후보중 하나였던 텍사스 주지사 릭 페리가 토론에서 실수를 해서 허망하게 탈락해 버린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없애겠다고 한 정부부처 3곳중 한 곳의 이름을 토론회에서 기억해내지 못해 망신을 당하고 사퇴해 버렸다. (조선일보 관련 기사 링크)

위 동영상을 보면 릭 페리는 자기 차례에서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다가 “내가 대통령이 되면 없앨 부처가 3군데 있다”며 상무부, 교육부까지 이야기하고 세번째 부처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옆에 서있는 론 폴 등 다른 후보들은 “5군데 아니냐” 등 농담을 던지며 놀렸고 토론을 진행하는 앵커는 “EPA(환경보호부처)냐? 아니냐? 기억을 못하는 것이냐?”라며 집요하게 추궁했다. 약 1분가까이 진땀을 빼던 릭 페리는 “미안하다. 기억을 못하겠다. 웁스”라고 사과했다.

그때까지 텍사스주지사로서 마초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보수파에게 높은 지지를 받고 있던 릭 페리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다음날 미국뉴스와 신문은 “Oops moment”라며 이 장면을 대대적으로 다뤘다. 나는 당시 사람이 긴장하다 보면 부처이름 하나 기억해내지 못할 수도 있는데 너무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진행자가 그냥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TV뉴스에서는 “미국 대통령은 극도의 긴장상태에서도 나라를 이끌어야하는데 저런 능력으로는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나는 미국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머리도 좋아야 하지만 저런 상황을 넘어설 수 있는 담력도 아주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SNL 등 각종 코미디프로그램에서 릭 페리는 완전히 웃음거리가 됐다. 릭 페리는 텍사스 주지사직을 잘 수행하고 지난 1월에 퇴임했는데 당시에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을 것이다.

3번째 부처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릭 페리를 풍자한 이 SNL 에피소드를 보고 나는 당시에 포복절도했다. (영어의 압박이 있겠지만) 한번 꼭 보시라. 정말 재미있다.

오늘 아침 2008년 대선에서 존 매케인의 러닝메이트로 나왔다가 인터뷰와 토론에서의 엉뚱한 답변으로 인해 망신을 당하고 매케인의 패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라 페일린이 또 대선출마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를 읽고 릭 페리의 에피소드가 생각나 가볍게 적어봤다.

당시 어떤 뉴스에서 한 80세쯤 되어 보이는 백인 할머니가 “토론을 잘 못하는 후보는 대통령이 될 자질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장면을 본 것이 내 뇌리에 깊게 남아있다. 우리도 다음부터는 꼭 토론 잘하는 대통령을 뽑았으면 한다.

Written by estima7

2015년 1월 25일 at 5:44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