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Tagged ‘스타트업’
블랙베리, 노키아 그리고 삼성전자
블랙베리라는 스마트폰이 있다. 한국에서는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캐나다의 블랙베리라는 회사가 만든 스마트폰의 원조 격인 제품이다. 전화에 컴퓨터 자판 같은 작은 물리적 키보드를 붙여서 이메일을 주고받기 편리하게 만든 점이 강점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해 아이폰이 등장한 뒤에도 몇년간 북미 스마트폰 시장의 절반가량을 점유했을 정도로 한때 세상을 호령했다. 전성기 블랙베리의 기업가치는 약 80조원에 이르는 등 ‘캐나다의 자존심’이란 이야기까지 들을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이 회사의 가파른 추락이 화제다. 블랙베리는 지난 분기에 약 1조원의 손실을 내고 곧 전체 직원의 40%인 4500명을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아이폰의 등장 이후 급격한 시장의 변화와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창업자들을 포함한 경영진의 몇 가지 전략적 실수까지 이어지면서 불과 몇년 만에 북미 시장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이 1% 안팎으로까지 떨어지는 굴욕을 맛보며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참고 : 블랙베리의 몰락-업데이트(에스티마블로그))
블랙베리의 본사는 캐나다의 최대 도시 토론토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인구 약 10만의 소도시 워털루라는 곳에 있다. 이 거대기업의 몰락이 이 지역 경제에 끼칠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뉴스를 검색해봤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다른 내용이 나왔다. 캐나다의 <시비시>(CBC) 방송 보도를 보면, 워털루는 오히려 수많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기반으로 삼아 혁신의 중심지로 재탄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고 : 워털루의 불확실한 미래 CBC보도) 브렌다 핼로랜 시장은 “이 지역의 탄탄하게 성장하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블랙베리에서 나온 인력들을) 충분히 흡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희망 섞인 보도이기는 했지만 캐나다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릴 만큼 관련 인재와 스타트업이 워털루에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다 싶었다.
예전 세계 휴대폰시장을 호령했던 노키아가 있는 핀란드도 마찬가지다. 노키아의 몰락이 꼭 핀란드의 경제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핀란드가 앵그리버드로 유명한 로비오로 대표되는 워낙 탄탄한 벤처커뮤니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기울면서 해고된 노키아의 고급인력들이 시작한 스타트업이 400여개이고, 특히 최고 인재들이 더는 노키아만 바라보지 않으면서 벤처업계에 인재가 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참고: 왜 노키아의 몰락이 핀란드의 스타트업들에게 좋은 뉴스인가 WSJ블로그)
한국을 보자. 캐나다와 핀란드의 자존심 격인 기업들이 몰락한 마당에 세계적으로 승승장구하며 애플과 한판승부를 펼치고 있는 삼성전자를 가진 우리 국민은 행복해야 할 것 같다. 분기 영업이익이 10조원을 돌파한 삼성전자는 한국의 국보급 회사다. 마땅히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소위 ‘삼성고시’에 매년 10만명이 지원한다는 것이나 삼성전자로 인해 우리 경제가 실제보다 잘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가 있다는 최근 보도를 접하고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취업을 바라는 한국의 수많은 인재들을 비롯해 나라 전체가 한 기업에 너무 심하게 의존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참고: ‘삼성 고시’ 후유증…삼성 “채용 방식 변화 고민중”(한겨레), 삼성전자에 가려진 경제 위기…’착시효과’ 우려(SBS보도))
삼성전자가 영원히 잘나간다는 보장은 없다. 기업은 잘될 때가 있으면 안될 때도 있다. 노키아와 블랙베리의 예에서 보듯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호황을 누리던 기업도 순식간에 운명이 바뀔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상황은 삼성전자가 기침을 하면 나라가 독감에 걸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삼성 의존적이다.
핀란드나 캐나다처럼 대기업들이 위기를 맞을 때 탄력 있게 경제를 받쳐줄 스타트업 생태계가 한국에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스타트업들을 키워내는 데 정부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의 지원도 필요하다. 이들이 장차 삼성전자의 우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2013년 10월 7일자 한겨레신문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 칼럼으로 기고한 글.
맨마지막에 “삼성전자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쓴 것은 삼성전자가 실리콘밸리에 쏟고 있는 관심과 정성에 비하면 한국의 스타트업커뮤니티에는 조금 소홀한 것이 아닌가 해서이다. (내가 과문해서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삼성은 1조2천억원짜리 펀드를 조성해 미국의 초기단계 스타트업에 투자하기로 했고 팔로알토에 오픈이노베이션센터라는 스타트업액셀러레이터도 열었다. IT의 메이저리그격인 실리콘밸리에서의 입지를 강화하는데 이처럼 큰 투자를 하는데는 전혀 이의가 없다.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핀란드나 캐나다의 예처럼 대기업이 어려울 때 대신 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스타트업커뮤니티를 한국에 키우는데도 삼성이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하는 생각에서 칼럼마무리를 이렇게 해봤다.
한국의 새로운 스타트업산실, D.캠프
지난해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놀라운 필력을 자랑하던 이나리위원이 신문사를 떠나서 은행쪽협회의 창업지원센터일을 하겠다고 했을때 내심 놀랐다. 공채출신도 아닌 여성기자가 주류신문사에서 그 정도 위치에 오른다는 것이 사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런 성취를 미련없이 버리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는 것에 감탄했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성공하시길 기원했다.
그후 대략 1년뒤, 얼마전 서울에 들렀을때 이나리센터장의 작품인 D.캠프(드림캠프)에 가서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투어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선릉역근처의 신축건물 4,5,6층에 마련된 이 새로운 창업지원센터가 이제 한국의 스타트업문화를 상징하는 명소가 될 것이라는 점을 예감할 수 있었다. 다음은 그때 찍어두었던 몇장의 사진 소개다. 창업문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멤버로 등록하고 기회가 되면 꼭 가보실 것을 추천한다. (찾아가는 길)
일단 D.캠프는 선정릉이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기가 막힌 전망을 가지고 있다. 선릉역에서 강남구청역쪽으로 올라가면서 왼쪽에 있는 새롬빌딩에 위치해 있다. 접근성도 좋고 전망도 일품인 곳이다.
입구에 보니 벌써 많은 한국IT업계의 귀빈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리고 방문한 인사들이 이곳 멤버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벤트를 자주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D.캠프 커뮤니티에 들어오면 이렇게 유명한 분들을 많이 만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다.
D.캠프 멤버십에 등록하고 인증을 받으면 (창업관련 활동이 있어야 함) 위 4층의 Co-working space를 이용할 수 있다. 마치 샌프란시스코의 깔끔한 코워킹스페이스를 연상케 하는데 약 80석의 좌석이 있다. 멤버들은 여기서 자유롭게 일하면서 다른 창업자들과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다. 그런데 벌써 항상 만원인 듯 싶다. 처음 이 센터를 기획할때는 “여기에 누가 오겠느냐. 노숙자들이나 오는 것 아니냐”는 냉소에 시달렸다고 한다. 여기에도 붙여져 있는 ‘우아한 형제’의 포스터가 인상적이다.
인상적으로 본 것 하나는 SK플래닛에서 제공한 오픈랩이다. D.캠프 멤버들이 다양한 모바일디바이스를 테스트해볼 수 있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데이터이용료까지 다 지원한다고 한다. 안드로이드의 파편화를 고려하면 모바일서비스를 준비하는 스타트업들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회의실도 여기저기 마련되어 있고 여기저기 자유롭게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노란 플라스틱 박스 같은 것도 준비되어 있다. 벽은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거나 메모하면서 서로 토론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아직 책은 많지 않지만 도서관도 있다. 이제 책을 채워넣는 중이다. 재미있는 것은 거의 돈을 안들이고 값싼 소재를 이용해서 인테리어를 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깔끔하고 멋있어 보인다.
5층에는 스타트업이 입주해 일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위에 나온 팀은 Smiley Family다. 전망이 죽인다. 그리고 작은 소규모 미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칸막이를 붙였다 떼었다 하면서 이벤트참석인원에 따라 공간조절이 자유롭게 만들었다. 인테리어에 비용을 아꼈지만 반면 책상, 의자 등 가구는 비싼 것을 썼다고 한다.
또 인상적인 것은 6층의 다목적 홀이다. 가운데 놓인 의자외에도 양옆으로 앉을 자리와 방석이 가득 놓여있어서 2백명은 거뜬히 들어갈 것 같다. D.캠프를 방문한 많은 명사들이 여기서 강연을 갖는다.
위 다목적홀 바깥쪽에는 이런 멋진 테라스가 있어서 이벤트뒤에 뒷풀이를 하기 좋게 되어 있다.
열정 하나로 한국의 스타트업생태계를 위해 이런 멋진 장소를 만들어내신 이나리센터장께 경의를 표한다.
사실 실리콘밸리나 샌프란시스코에도 이런 곳은 없다. 무지막지하게 비싼 돈을 내고 써야 하는 샌프란시스코의 코워킹스페이스(책상하나 빌리는데 한달에 4백불~7백불씩 한다)나 엄격한 심사를 뚫고 들어가야 하는 500 스타트업이나 어느 정도 임대료를 내고 들어가는 플러그앤플레이테크센터 등이 있을 뿐이다. 실리콘밸리 인사들도 D.캠프에 방문해서 “한국에 이런 곳이 있느냐”고 깜짝 놀란다고 한다. 그럴만 하다.
최근에 미국의 경제케이블채널인 CNBC가 “재벌은 잊어라. 한국은 스타트업붐이다”라는 리포트를 했는데 그 내용의 주요무대가 D.캠프였다.
D.캠프가 한국 스타트업생태계의 허브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 같아서 가볍게 지난번에 찍은 사진 위주로 소개해봤다. 꼭 가보시길!
스타트업 칠레, 스타트업 코리아
얼마전 한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회사의 행사에 갔다가 음식배달 주문용 앱 ‘배달의 민족’으로 유명한 회사 ‘우아한 형제’의 회사 소개 발표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 회사 김봉진 대표는 이번이 미국 초행길이라고 하고 동행한 이승민 전략기획실장도 겨우 두번째 미국 방문이라고 해서 솔직히 이들이 발표를 잘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좀 버벅대더라도 잠재적인 미국 투자자들 앞에서 발표를 한번 해보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다 싶었다.
그런데 내 걱정은 기우였다. ‘우아한 형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보급률을 자랑하는 한국의 스마트폰 문화부터 뭐든지 주문만 하면 번개처럼 가져다주는 한국의 음식배달 문화까지 앱 개발 배경설명부터 시작해 한국인들이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만든 자신들의 앱이 왜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그 결과 오히려 같이 발표한 다른 미국 벤처기업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모으고 질문도 많이 받았다. 흔히 유행하는 미국의 인터넷서비스를 따라했다면 별로 관심을 못 받았겠지만 한국 시장에 맞는 자신만의 서비스를 개발해낸 것이 오히려 미국 투자자들에게 신선한 인상을 준 것이 아닌가 싶다. (참고 : 첫번째 해외회사설명회에 도전한 우아한 형제들)
이 일을 통해 내가 한국 벤처기업의 실력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발표가 끝나고 겸손해하는 김 대표에게 “앞으로 좀더 해외에 자주 나가고 견문을 넓히라”고 이야기했다. 꼭 해외진출 목적이 아니더라도 이런 경험을 통해 더 성장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도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행사 뒤 식사를 하면서 한 샌프란시스코의 현지 벤처 CEO와 이야기를 했다. 얼마 전 한국 출장을 다녀왔다는 그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이 너무 한국 시장밖에 모르고 국외 시장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방문한 회사마다 거의 100% 한국인 직원만 있는 것 같았는데 그러니 더욱 해외 시장을 이해하고 진출하기가 어려운 것 아니냐는 말도 했다. 사실 얼마 전에 만난 한 일본인 벤처투자가한테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요즘 한국의 벤처기업 실력이 많이 올라간 것 같은데 너무 시장을 한국 안으로만 좁게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들이 글로벌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은 큰 시장인 미국에 자리잡고 있고 영어로 제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다른 이유는 세계 각국의 인재들이 모여드는 실리콘밸리의 특성상 인종·국적·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을 직원으로 채용한다는 데 있다. 이미 회사 안의 모습이 ‘유엔’을 방불케 하기 때문에 따로 글로벌을 부르짖을 필요가 없다.
우리의 벤처기업인들도 한층 더 이런 글로벌 환경에 노출되고 다양한 외국인들과 교류해야 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성공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물 밖으로 나가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칠레 정부가 진행하는 ‘스타트업 칠레’라는 프로그램에 주목하고 싶다. 스타트업 칠레는 세계의 벤처기업 중 신청을 받아 선발된 기업에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회사를 6개월간 운영할 수 있도록 4만달러와 비자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세계 곳곳의 똑똑한 인재들을 칠레로 불러모아 교류시켜 자국 벤처업계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이었다.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엔 이르지만 2010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세계 미디어들의 관심을 모아 70여개국 1600여 벤처기업의 지원을 받았다. 한국도 ‘스타트업 코리아’ 같은 프로그램을 마련해 세계의 인재들을 한국으로 끌어모아보면 어떨까 싶다. 우리 창업가들이 세계의 인재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면 국외진출 성공 사례는 저절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
얼마전 한겨레신문 생각의 단편 칼럼으로 썼던 글. 글은 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이 내용을 쓰고 싶었던 이유가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방문할 때마다 백인, 인도인,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러시아인 등 다양한 인종이 격의없이 어울리면서 나오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에너지가 부러웠다. 모름지기 다양한 사람과 교류해야 서로를 자극하면서 새로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실리콘밸리만한 곳이 없다. 전세계에서 모인 똑똑한 사람들이 가장 장벽없이 일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미국 동부만 해도 백인주류사회와 이민사회간의 벽이 있고 그런 장벽을 글래스실링(Glass ceiling)이라고 한다. 물론 실리콘밸리라고 해서 그런게 없다고 할수는 없지만 아마도 전세계에서 가장 이방인에게 차별이 없는 곳일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다 내부가 작은 UN총회다.
그런 의미에서 칠레의 스타트업칠레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외국인들을 산티아고로 끌어들여 칠레의 벤처커뮤니티를 자극해보고자 하는 칠레정부의 좋은 아이디어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성과를 거두고 있지 않나 싶다. 칠레처럼 한국의 창업자들이 보다 많이 외국인들과 접촉해 다른 문화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많이 배우고 자극받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가볍게 한번 위 글을 써봤다.
미국의 혁신, 책의 힘
세계 최대의 창업국가이자 혁신이 넘치는 나라는 누가 뭐래도 미국이다. 실리콘밸리로 상징되는 미국의 혁신은 애플·구글·페이스북 등 혁신기업을 통해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인류의 생활양식까지 바꾸는 파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 이처럼 독창적인 스타트업이 넘쳐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창의성을 북돋우는 교육에서부터 기발한 아이디어에 투자하고 그 제품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주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 살면서 이런 혁신문화의 밑거름은 활발한 출판문화가 제공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미국의 서점에 갈 때마다 느끼는 점은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시각을 담은 책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온다는 것이다. 사회현상을 남다르게 바라보고 깊이있게 연구한 지식인들의 책이 신간 진열대를 가득 채운다. 매달 새로운 경영이론서는 물론 현직 대통령을 분석해서 쓴 정치분석서들이 계속 나오고, 어떤 인물의 일생을 연구한 흥미로운 전기들이 연이어 출판된다. 추리, 판타지, 로맨스, 과학소설까지 다양한 장르의 오락물도 계속 나온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성찬이 계속 펼쳐지는 것이다.
출판사들은 재능 있는 잠재 작가들을 열심히 발굴해내어 큰돈을 투자한다. 블로그 등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서 찾아낸다. 저명한 작가들과는 장기계약으로 유대관계를 강화한다. 정성 들여 만들어낸 책은 적극적으로 마케팅한다. 책 한권 한권을 만드는 것이 일종의 벤처투자다.
언론들도 좋은 책을 띄우기 위해 노력한다. 화제의 책이 나오면 텔레비전, 신문, 라디오, 잡지 할 것 없이 적극적으로 저자를 초대해 책을 소개한다. 신문이나 잡지의 지면을 크게 할애해 책의 핵심내용을 그대로 발췌해 소개하는 일도 잦다.
전국의 기업, 학교, 도서관 등에서도 수시로 저자들을 초청해 강연회를 연다. 강연회 내용은 인터넷으로 모두 공개된다. 엄청나게 바쁘게 활동하는 교수나 언론인들도 짬을 내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을 내어 대중들과 소통한다. 꼭 명문대 출신 교수가 쓴 책이 아니라도 좋은 아이디어를 담고 있으면 팔린다. 좋은 책을 꾸준히 사주는 두터운 독자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린 스타트업>이란 책의 저자인 에릭 리스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다. 그가 5년 전 다니던 스타트업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모색할 당시만 해도 그는 29살의 무명 엔지니어였다. 하지만 그가 당시 남들과 달랐던 것은 스타트업을 운영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새로운 경영이론을 고안해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끊임없이 블로그로 소통하면서 벤처커뮤니티의 호응을 얻은 그는 여기저기서 강연을 통해 그 이론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판사의 도움으로 2011년에 <린 스타트업>이란 책을 출판해 베스트셀러로 만들고, 이제는 실리콘밸리의 명사가 됐다. 그의 경영이론은 이제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뿐 아니라 대기업, 미국 정부까지 가져다 적용하고 있다. 그는 명문대 박사학위 소지자도 아니고 성공한 벤처기업인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참고:린스타트업의 에릭 리스 인터뷰 후기)
이런 독창적인 책이 풍부한 미국의 출판문화를 보면서 치유(힐링)와 자기계발서에 지나치게 쏠린 한국의 독서문화를 우려한다. 외국 번역서가 많이 팔리기도 하지만 그것도 저자의 유명세나 간판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하다. 과연 마이클 샌델 교수가 하버드대 교수가 아니고 미국의 덜 알려진 대학교수였다고 하더라도 정의론이 한국에서 그렇게 많이 팔렸을까?
책 문화에는 그 사회의 모습이 투영된다. 한국의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좀더 다양한 분야의 독창적인 생각을 담은 책들이 등장하길 기대한다.
2월19일 한겨레신문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 칼럼 게재
——————————————————————-
위 글을 쓴 이유가 있다. 무조건 미국이 낫고 한국이 후지다고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난 4년간 미국에 살면서 느껴왔던 점을 쓴 것이다.
특히 지난해 <인사이드애플>을 번역해 내고 나서 한동안 미국에서 출간된 책중에 한국에 번역해서 낼 만한 책이 또 있는지 흥미를 가지고 살펴봤었다. 그래서 출판사도 도와줄 겸 미국의 서점에 가면 평소보다 더 자세히 신간을 보고 책 내용을 파악했다.(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책 구경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NYT, WSJ 등의 북리뷰도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았다. 그러면서 미국에는 정말 책이 많이 나오고 내용도 깊이가 있는 책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쉽게 쓰고 쉽게 읽어버리는 책이 아니라 사회현상을 깊게 고찰하고 취재해서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정리해서 독창적으로 써낸 책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이 정말 열심히 책을 소개한다. 뉴욕의 대형출판사들의 로비력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일단 일요일에 나오는 NYT 북리뷰섹션은 웬만한 잡지 한권 분량이다. 꼭 북섹션에서만 책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고 주말판 신문에서는 적극적으로 좋은 책의 내용을 발췌해서 소개한다. 그리고 이런 책소개가 가끔씩 뜨거운 논쟁을 부르며 사회적 담론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2011년 1월에 예일대교수 에이미 추아는 WSJ 토요판 섹션 머릿기사로 “왜 중국엄마는 더 뛰어난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며칠후면 출판되는 자신의 책 “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의 핵심내용을 발췌해 실은 엄청나게 긴 내용이었다. 이 기고에는 거의 9천개 가까운 댓글이 달렸을 정도로 미국내에서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렀다. 이 글은 거의 2주간 WSJ의 페이지뷰 1위를 했고 모든 언론에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책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음은 물론이다.
TV나 라디오에서도 책을 열심히 소개한다. 저자를 초대하거나 전화로 연결해서 인터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CBS This Morning이라는 모닝쇼에서는 매일아침 CTM Reads라는 코너를 마련해서 화제의 신간저자를 초청해 책의 내용에 대한 대담을 나눈다.
책을 낸 저자들은 미국 전역을 돌면서 북투어를 한다. 미국전역의 기업, 도서관, 학교 등에서 초청을 한다. 출판사가 섭외를 해서 대형서점에서도 강연회를 갖고 사인회를 갖는다. 내가 번역을 한 <인사이드애플>의 저자 아담 라신스키는 책을 낸지 일년이 넘었는데도 꾸준히 북투어와 책관련 강연을 하러다닌다고 한다.
예를 들어 구글은 매주 다양한 책의 저자들을 구글캠퍼스에 불러서 Authors@Google이라는 강연행사를 갖고 이 내용을 모두 유튜브에 공개한다. 위 동영상은 구글에서 가진 아담 라신스키의 강연이다.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그의 인사이드애플 관련 강연이 수십개가 검색된다. 웬만한 유명저자는 거의 다 구글에 들러서 강연을 했고 그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와있다고 보면 된다. (검색해보세요.)
린스타트업의 에릭 리스 인터뷰후기에도 썼지만 독특한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분석한 이런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책들이 새로운 혁신의 씨앗이 된다.
위는 500 Startup이라는 벤처인큐베이터의 CEO David McClure의 발표에서 본 슬라이드다. 그는 자신의 펀드자금을 몇몇 유망 스타트업에 몰아서 투자하는 것보다 수없이 작게 쪼개서 수많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그의 방법론을 Venture Capital 2.0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데이터를 분석해서 개선하고 작은 실험을 반복하는 그런 방법론을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이나 에릭 리스의 ‘린스타트업’같은 책에서 아이디어를 받아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그래서 그런 미국의 출판문화와 비교해서 좋은 책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너무 산문집이나 자기계발서, 힐링서적 위주로 베스트셀러랭킹이 매겨지는 우리 출판문화가 좀 아쉬웠다. 한겨레칼럼은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서 써본 글이었다.
출판사는 독창적이고 깊은 내용을 다룬 책을 많이 내놓고, 언론은 다양한 책을 열심히 소개하고, 독자들은 그런 좋은 책을 많이 사서 읽고 즐기는 그런 출판문화가 우리나라에도 자리잡기를 바란다.
책값이 아깝다고 하기에 앞서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어떤 훌륭한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담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 배우는데 있어 돈 1만원~2만원을 지불하는 것은 거의 거져나 다름 없는 것 아닌가?
실리콘밸리에서 인도계가 약진하는 이유
실리콘밸리에 처음 온 이들은 인도인들의 강한 존재감에 놀라게 된다. 유명 테크기업에 방문해보면 최고경영진부터 핵심 엔지니어까지 인도계가 다수 포진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구글의 경우 비즈니스 담당 최고임원(니케시 아로라, CBO)부터 엔지니어링을 담당하는 핵심 수석부사장들 다수가 인도계다. 워낙 인도계 엔지니어들이 많다 보니 애플이나 인텔 같은 회사의 구내식당에 가면 따로 인도 음식만을 내는 코너가 항상 마련되어 있을 정도다. 실리콘밸리는 인도계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민자 출신이 미국 기업의 상층부에 오르려다 부딪히는 장벽을 ‘글래스실링’(유리천장)이라고 하는데 인도계는 이런 벽도 뛰어넘은 듯싶다. 펩시콜라의 시이오인 인드라 누이처럼 인도계로서 미국 대기업의 최고경영진 자리에 오른 사례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특기할 만한 것은 그들의 왕성한 창업정신이다. 지난달 발표된 카우프먼재단의 조사결과를 보니 지난 6년간 미국에서 이민자가 창업한 테크기업 중 32%가 인도계에 의한 것으로 나왔다. 이는 2위 그룹인 중국계(8.1%)부터 8위 그룹인 한국계(2.2%)까지 7개 이민자그룹의 창업 숫자를 합한 것보다도 많은 것이다. (이 인용과 위 그래프는 조금 다름. 위 그래프는 실리콘밸리에서의 창업만을 통계로 잡은 것인듯.) – 출처 Then and Now: America’s New Immigrant Entrepreneurs, Part VII
도대체 인도계는 어떻게 이렇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일까. 흔히 말하듯 우리보다 영어를 잘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높은 교육열 때문일까. 항상 개인적으로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한 행사에서 그 실마리를 얻었다.
얼마 전 인도계가 많이 사는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의 공공도서관에서 테크심포지엄이 열렸다. 지역 고등학교의 테크클럽이 주최하는 학생 대상 행사인데 학교에 붙여진 포스터를 통해 이 행사를 알게된 중학생 아들이 가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갔다. 유튜브 등 실리콘밸리 테크기업의 간부와 CEO 등이 와서 강연하는 행사였다. 인도계 학생인 테크클럽 회장이 사회를 맡았는데 자리를 가득 메운 참석자의 절반 이상이 초중고생인 인도계 학생과 학부모였다.
유튜브의 인도계 중역이 온라인비디오의 발전 현황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자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는 근처 인도레스토랑의 협찬으로 인도 음식이 제공됐다. 그 뒤 20대 후반의 젊은 인도계 청년이 연사로 나섰다. 알고 보니 그는 고등학생 때 인터넷회사를 창업해서 150만달러에 팔았다는 성공담의 주인공이었다. 수업을 받다가 고객에게 전화가 오면 화장실에 가서 응대했다는 등 익살이 넘치는 그의 창업 이야기에 학생들은 완전히 매료됐다. 얼마 전 자신이 세번째로 창업한 회사를 오러클에 매각했다는 그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지금 당장 창업하라”는 말로 어린 학생들을 자극했다. 학생들은 열성적으로 질문을 했고 강연이 끝난 다음 그에게 다가가 악수하고 같이 사진을 찍느라 야단법석이었다. 아이돌 스타가 따로 없었다.
마지막으로 첨단로봇을 만드는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 사장이 나왔다. 로봇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그의 강연과 로봇데모가 끝난 뒤 아이들은 줄을 서서 무대 위에 올라가 로봇을 만져보고 어떻게 하면 로봇엔지니어가 될 수 있는지 물어봤다.
알고 보니 그날 초청된 연사들은 대부분 인도계 학부모들의 친척이거나 친구들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연사들은 꽃다발을 안고 인도인가족-친지들에 둘러싸여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런 분위기속에서 인도계 학생들은 그들을 마치 삼촌이나 큰형뻘로 여기고 친근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엔지니어나 창업자가 될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앞서서 성공한 이들이 나서서 젊은 세대에게 영감을 주고 성공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는 모습. 거액의 펀드를 조성하거나 정부지원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보다 이런 문화를 만드는 것이 창업 생태계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다.
/한겨레신문 칼럼 기고글입니다.
참고로 인도계의 실리콘밸리에서의 성공이유에 대해 비벡 와드화교수가 INC에 쓴 글이 있습니다. 일부를 발췌합니다.
- The first few who cracked the glass ceiling had open discussions about the hurdles they had faced.
- They agreed that the key to uplifting their community, and fostering more entrepreneurship in general, was to teach and mentor the next generation of entrepreneurs.
- They formed networking organizations to teach others about starting businesses, and to bring people together. These organizations helped to mobilize the information, knowhow, skill, and capital needed to start technology companies. Even the newer associations had several hundred members each, and the more established associations had more than a thousand members.
- The first generation of successful entrepreneurs—people like Sun Microsystems co-founder Vinod Khosla–served as visible, vocal, role models and mentors. They also provided seed funding to members of their community.
- 유리천장(the glass ceiling)을 뚫고 올라간 처음 몇몇이 그들이 처했던 어려움에 대해서 열린 토론을 갖는다.
- 커뮤니티를 발전시키고 창업정신을 더욱 고양시키는 열쇠는 다음 세대의 창업자들을 가르치고 멘터링하는 것이라고 (위 성공한 첫 세대가) 결론짓는다.
- 그들은 기업을 시작하는 것을 다른이들에게 가르치며 사람을 모으는 네트워킹단체를 만든다. 이런 단체들은 스타트업을 시작하는데 필요한 정보, 노하우, 기술, 자본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한다. 신생단체도 수백명의 멤버가 있으며 좀더 오래된 단체들은 수천명의 멤버를 가지고 있다.
- 선마이크로시스템의 공동창업자인 비노드 코슬라 같은 성공한 1세대 창업자들이 선명하고 강력한 롤모델과 멘토역할을 한다. 그들은 또 커뮤니티멤버를 위해 초기투자까지 제공한다.
와드화교수는 인도계 단체들은 실리콘밸리에서의 교전수칙(Rules of engagement)를 배우고 마스터해서 그곳에서 가장 활발한 조직이 됐다고 합니다. 실리콘밸리의 한국인들도 이런 인도계의 성공에서 배울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