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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Why
Becoming Steve Jobs라는 잡스전기에서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을 소개한다. 잡스가 애플의 리더를 교육하는 내부조직인 애플유니버시티를 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팀 쿡이 아래와 같이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스티브는 ‘Why’에 집착했습니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Why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가 젊었을 때는 (주위에 상관없이) 그냥 뭔가를 실행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나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했는지, 그가 어떤 사안에 대해서 왜 특정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등등을 설명하는데 할애했습니다.- 팀 쿡
“Steve cared deeply about the why,” says Cook. “The why of the decision. In the younger days I would see him just do something. But as the days went on he would spend more time with me and with other people explaining why he thought or did something, or why he looked at something in a certain way. -Tim Cook
생각해보면 이것은 리더십의 진화다. 잡스는 젊었을 때는 창업자로서의 권위로 그냥 부하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명령하고 실행했다. 그 과정에서 욕도 많이 먹었고 결국에는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쫒겨나기까지 했다. 하지만 넥스트와 픽사를 거쳐 애플에 복귀한 뒤로는 그는 변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그는 자신이 하려는 것에 대해서 주위 팀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이해시켰다는 얘기다. 왜 애플이 그토록 성공적인 회사가 됐으며 잡스가 떠난 뒤에도 잘 나가는지에 대해서 약간의 해답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사이먼 사이넥의 그 유명한 TED강연과 책을 다시 봤다. 위 팀 쿡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어서다.
“당신의 ‘왜’를 말하면 거기에 동감하는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사이먼 사이넥
사이넥의 책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Start with why)“를 보면 다음과 같은 부분이 나온다.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CEO의 임무는 ‘왜’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의 ‘왜’가 줄줄 흘러넘치게 하는 것이다. ‘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설파하는 것이다. 회사의 믿음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왜’는 목적이고 회사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이를 나타내는 목소리다. 마틴 루터 킹과 그가 주창한 사회운동처럼 리더의 임무는 계약을 체결하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감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야말로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했던 행동과 같다.
이 책에는 또 한가지 흥미로운 은유가 나온다. ‘스쿨버스테스트’다. “당신 기업의 창업자나 리더가 스쿨버스에 치이게 된다면 책임자 없이도 당신의 기업은 동일한 속도로 계속 번창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렇게 답이 나와있다.
“스쿨버스 테스트를 통과하려면, 즉 창업자가 자기 역할을 다한 후에도 기업이 여전히 사회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으려면, 창업자의 ‘왜’를 잘 발췌해 기업문화에 통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더욱이 강력한 승계 계획을 마련해, 창립 철학을 고취시키며 이를 기꺼이 다음 세대에게 안내할 준비된 리더를 찾아내야 한다.”
잡스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것을 모두 준비한 것 같다. 애플유니버시티라는 것을 사내에 만들어 애플의 역사에서 중요한 결정들이 왜 그렇게 내려졌는지를 리뷰하고, 스티브 잡스의 의사결정과정과 그의 미학적, 마케팅적 방법론을 미래의 애플리더들에게 공유하고자 했다. 그리고 팀 쿡이라는 그의 철학을 계승할 수 있는 후계자를 정했다. 그 결과가 요즘의 애플의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어떻게 보면 이 스쿨버스테스트의 시험대에 삼성이 섰다. 이건희회장의 갑작스러운 와병이후 이재용부회장이 본격적으로 그룹경영을 물려받아 지휘봉을 잡았다. 과연 이재용부회장은 애플의 팀 쿡처럼 삼성의 Why를 잘 승계할수 있는 리더인가. 앞으로 몇년이 지나면 결과를 알 수 있을듯 싶다.
사이먼 사이넥의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TED강연은 생각을 자극하는 정말 좋은 강연이다. 안보신 분들은 이 기회에 꼭 보시길 추천한다.
2007년 1월의 잡스 아이폰발표 키노트 동영상 다시보기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탄생비화를 전한 ‘스티브께서 가라사대, “아이폰이 있으라”‘(NYT기사를 카소봉님 번역)를 읽고 2007년 1월 맥월드에서 있었던 잡스의 아이폰 첫 발표 프리젠테이션 동영상을 다시 봤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6년전에 봤던 잡스의 아이폰 발표키노트 프리젠테이션은 내 기억에 거의 완벽했다. 그런데 위 글에 따르면 리허설 마지막날까지도 아이폰과 그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오작동을 반복하는 버그투성이의 기계였다. 위 글을 읽고 위 동영상을 다시 보니 정말 감탄이 나온다. 12분지점에서 잡스가 직접 조니 아이브와 필 쉴러에게 아이폰으로 전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때는 얼마나 스탭들이 조마조마했을까. 기사 내용에 따르면 아무 문제없이 발표가 끝난 것이 거의 기적 같다.
아래는 키노트발표 관련 주요 부분의 발췌.(카소봉님의 번역에서)
그리뇬은 아이폰 리허설 팀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잡스가 90분 동안 프레젠테이션하는 광경을 많이 봤지만, 실수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 잡스는 5일 내내 기조연설을 연습했고, 심지어 리허설 마지막 날에 아이폰은 여전히 통화가 잘 안 되거나 인터넷 연결이 끊어지고, 얼어서 꺼야 할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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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연을 100번 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매번 뭔가 문제가 생겼죠. 좋은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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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은 노래나 영상의 일부를 재생할 수 있었으나, 전체 클립을 안정적으로 재생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메일을 보낸 후의 웹서핑 정도는 괜찮았지만, 그 반대 순서는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그래서 엄청난 시도와 실수 끝에 엔지니어들이 일컫는 “골든 패스(golden path)”가 만들어졌다. 특정 방식으로 특정 순서에 따라 아이폰을 움직여서 마치 아이폰에 버그가 없는 양 소프트웨어를 돌리는 매뉴얼이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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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의 와이파이 라디오 소프트웨어는 너무나 불안정해서 그리뇬과 그의 팀은 아이폰의 안테나를 무대 뒤의 전선에 연결 시킬 정도로 확대했다. 무선 신호의 이동 거리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해당 주파수에 대한 접근은 금지됐다. 그의 말이다. “심지어 베이스스테이션 ID을 숨긴다 하더라도 말이죠. 그러니까 노트북의 무선 신호에 잡히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조연설 청중 5천명이 다 컴퓨터 광들입니다. 어떻게 신호를 해킹할 방법을 알아내겠죠.” 그래서 그는 에어포트 소프트웨어를 수정하여 미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운영하는 것인 양 만들었다. 미국에서 허용 안되는 주파수를 일본 와이파이가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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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가 무대 위에서 할 전화 송신이 잘 될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뇬과 그의 팀은 좋은 신호가 잡히기만을 기도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아이폰용 통신사인 AT&T가 휴대용 통신탑을 가져왔기 때문에 신호 자체는 강력할 터였다. 잡스의 결재에 따라 그들은 신호 강도를 나타내는 다섯 개의 막대가 실제 강도와는 관계 없이 언제나 다 채워지도록 했다. 90분의 기조연설 중 잡스가 전화기를 사용하는 동안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낮았지만 어느 때라도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높았다. 그리뇬의 말이다. “우리 의심대로 만약 라디오가 충돌돼서 재시작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실제 막대바를 보기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예 하드코딩을 하여 항상 다섯 개 막대가 보이도록 해 놓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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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9일, 잡스가 아이폰을 얘기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제가 2년 반 동안 꿈꿔 왔던 날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소비자들이 어째서 자기 휴대폰을 싫어하는지 잔뜩 이야기를 들려 줬다. 그리고는 자기가 그 모든 문제를, 분명히 풀어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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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가 아이폰으로 음악과 영상을 재생하고 아이폰의 아름다운 화면을 보여줬을 때, 그리뇬과 다른 이들은 청중 속에서 초조해 하며 앉아 있었다. 그는 다시 발명해낸 주소록과 보이스메일을 보여 주며 전화를 걸었고, 문자와 이메일을 보냈으며, 터치-스크린 키보드가 얼마나 타자 치기에 쉬운지도 보여줬다. 그는 여러 사진을 스크롤 하면서 두 손가락으로 사진을 크게, 작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단순한지 보여주고, 뉴욕타임스와 아마존 웹사이트를 보여 주면서 아이폰용 인터넷 브라우저가 자기 컴퓨터의 브라우저만큼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구글 지도에서 스타벅스를 발견하고는 무대 위에서 스타벅스로 전화를 걸었다. 아이폰이 없으면 왜 안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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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 되자 그리뇬은 안도만 한 것이 아니었다. 아예 그는 취했다. 스카치 한 병을 사서 자신의 초조함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말이다. “엔지니어, 관리자 등 우리 모두는 다섯 번째 열인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시연이 끝날 때마다 스카치 한 잔씩 했죠. 대 여섯 명 쯤 있었을 겁니다. 시연이 한 번씩 지날 때마다 해당 기능 책임자가 원샷 했어요. 마지막이 되자 우리는 스카치를 다 비웠습니다. 모두가 잘 흘러갔고, 정말 우리가 봐 온 시연 중 최고였어요. 나머지는 그냥 전체 아이폰 팀에게는 [욕설 삭제] 날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도시에서 하루 내내 마시며 보냈어요. 엉망진창이었지만, 정말 근사했습니다.”
짧게 편집된 위 동영상에 나오지 않은 잡스가 스타벅스에 4천개의 카페라테를 주문하는 부분이 아래 동영상이다. 장난전화를 건 장본인이 스티브 잡스인지도 몰랐던 이 스타벅스 직원은 이후에 “4천개의 라테 주문” 장난전화에 꽤 시달렸다고 한다.
2007년 당시에 정말 마술같은 발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봐도 대단하다.
다시한번 RIP.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 서거 2주기에 읽는 아이폰 탄생 비화
얼마전에 썼던 블랙베리에 대한 글에서 블랙베리창업자 라자리디스가 처음 아이폰을 접했을 때 느낀 충격에 대한 부분이 있다.
2007년초 마이크 라자리디스는 러닝머신에서 운동하면서 TV를 보다가 처음으로 애플 아이폰을 접하게 되었다. 아이폰에 대해서 그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몇가지 있었다. 그래서 그해 여름, (아이폰이 출시되고 나서) 그는 아이폰을 분해해서 내부를 들여다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마치 애플이 맥컴퓨터를 휴대폰안에 구겨넣은 것 같잖아(It was like Apple had stuffed a Mac computer into a cellphone)”라고 그는 생각했다.
고교때부터 직접 오실로스코프와 컴퓨터를 만들었던 라자리디스에게 있어서 아이폰은 모든 게임의 규칙을 부수는 물건이었다. OS만 메모리에서 7백메가를 차지했고 프로세서가 2개 들어있었다. 반면 블랙베리는 프로세서 한개 위에서 돌아가며 겨우 32메가만 차지했다. 블랙베리와는 달리 아이폰은 인터넷이 제대로 돌아가는 브라우저를 가지고 있었다. 그 말은 아이폰이 AT&T 같은 이통사의 망을 교통체증상태로 빠뜨릴 것이란 얘기였다. 그런 일은 이통사가 허용하지 않던 것이었다. 반면 RIM(블랙베리)은 데이터사용량을 제한하는 원시적인 수준의 브라우저를 제공하고 있었다.
“”난 도대체 애플은 어떻게 AT&T가 이것을 허용하게 한 것이지?”라고 반문했습니다. “이것은 네트웍을 다운시킬텐데..” 그리고 실제로 나중에는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더 글로브앤메일에서 발췌. 참고 포스팅 : 블랙베리의 몰락-더글로브앤메일의 기사를 읽고
당시 스마트폰시장의 톱에 있던 블랙베리의 창업자가 이렇게 충격을 받을 정도라면 엄청난 혁신이다. 도대체 그 당시 스티브 잡스는 어떻게 이런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을 윗 글을 읽으면서 했다. 저 당시의 혁신에 비하면 지금 아이폰5s, 5c의 혁신은 별로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맞다.

NYT의 “And Then Steve Said, ‘Let There Be an iPhone’” 기사는 일요판 NYT와 같이 배달되는 NYT매거진에 실렸다. 사진은 천지창조에 빗대 아이폰의 탄생을 그린 이 기사의 삽화.
마침 스티브 잡스 2주기를 맞아 NYT는 “스티브께서 가라사대, “아이폰이 있으라”“(And Then Steve Said, ‘Let There Be an iPhone’-카사봉님이 이 긴 기사를 세심하게 번역해주셨다. 필독)라는 장문의 아이폰탄생비화를 게재했다. 이 글을 읽어보면 블랙베리 창업자가 어떻게 이런 제품이 나올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점이 납득이 될 정도로 아이폰개발이 대단히 어려운 프로젝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기사에서 읽은 몇군데 인상적인 부분을 인용한다. (카사봉님의 번역에서 그대로 인용)
2007년 1월 아이폰을 선보이기로 한 결정은 분명 도박이었다. 잡스는 새로운 종류의 휴대폰(애플이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종류였다)을 선보였을 뿐 아니라, 그 휴대폰은 잘 작동하지도 않는 프로토타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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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울정도로, 잡스는 이미 전화기 한 번 만들어 보라는 설득을 받아 왔었다. 전화기는 잡스의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대화 주제 중 하나였고, 애플이 아이포드를 만들었던 2001년부터 계속 제기돼 왔었다. 개념은 분명했다. 소비자들이 이메일과 사진, 음악용 기기로 하나를 원하지 두 세 개를 원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였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잡스와 그의 경영팀이 그 아이디어를 자세하게 알아볼 때마다 전화기 제조는 자살에 가까웠다. 휴대폰용 칩과 속도는 너무나 느려서 인터넷이나 음악, 영상 다운로드를 휴대폰 통신망으로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메일 정도만 전화기에 붙일 만했지만 RIM의 블랙베리가 이미 그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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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애플의) 간부와 엔지니어들은 아이포드의 성공으로 한껏 고양돼 있었기 때문에 휴대폰 만들기는 조그마한 매킨토시 만들기와 비슷하리라 여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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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아이폰에 수정된 버전의 오에스텐(모든 맥에 탑재돼 있다)이 들어가기 바랬다. 그렇지만 아무도 오에스텐과 같은 거대한 프로그램을 휴대폰 칩에 올려 놓을 시도를 하지 않았었다. 오에스텐을 거의 1/10로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코드 수 백만 줄을 없애거나 다시 작성해야 했으며, 칩이 2006년에나 나왔기에 엔지니어들은 칩 속도와 배터리 수명을 시뮬레이션하여 작업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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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스텐을 줄이고 멀티터치 스크린을 제조하기란 혁신적이기는 해도 어려웠다. 적어도 기업으로서 애플이 당시 갖고 있던 기술로는 말이다. 오에스텐 디자인을 다시 생각해서 집어 넣어줄 회사는 애플 말고 없었다. 액정이야 모든 노트북과 아이포드에 LCD를 넣으니 LCD 업체들을 애플도 알고 있기는 했지만, 휴대폰은 완전히 다른 분야였다. 그리고 2006년 아이폰 작업을 하고 나서야, 애플은 자신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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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프로젝트는 너무나 복잡해서 애플 전체에 위협을 가할 때도 종종 있었다. 애플 내 수석 엔지니어들이 아이폰 프로젝트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다른 일의 시한을 늦춰야 할 때가 발생해서였다. 아이폰이 애플을 다 덜어내느냐, 아니냐의 문제였다. 애플은 당시 대규모적인 제품 발표를 아이폰 외에 갖고 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이폰 프로젝트의 한 수석 간부에 따르면 아이폰이 실패할 경우, 애플의 수석 엔지니어들이 실패 때문에 좌절하여 애플을 떠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런 상상을 초월하는 난관을 뚫고 애플의 엔지니어들을 지휘해 초인적인 독재자, 스티브 잡스는 2007년 1월 맥월드에서 아이폰을 발표했다. 과연 이때 아이폰이 나오지 않았다면,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어내는데 결국 실패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폰을 쓰고 있을지 궁금하다. RIP.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의 진정성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중 하나는 진정성이라고 한다. 진정성을 보여주는 리더는 부하들이 믿고 따라가게 만든다. 픽사출신인 박석원 성균관대교수의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기고글 “박석원교수, 픽사에서 7년간 일해보니”에서 스티브 잡스의 진정성을 느끼게 한 대목이 있어서 소개한다.
픽사에서 가장 나를 감동시킨 경험은 스티브 잡스가 디즈니와 합병한다는 소식을 발표한 2006년이었다. 사실 그때 직원들은 잡스에게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불과 한 달 전에 디즈니와 합병하는 건 루머일 뿐이라고 해명했기 때문이다. 우린 디즈니와 사이가 최악이어서 픽사가 디즈니에 소속되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잡스는 차분하게 이렇게 말했다.
“디즈니의 CEO(밥 아이거)는 제가 사적으로 만나보니 좋은 사람이에요. 디즈니는 지금 픽사의 배급사이죠. 그런데 만약 다른 배급사와 계약한다면 전과 같이 흥행할 것이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디즈니만 한 배급사가 없으니 말입니다. 특히 2004년 췌장암 진단 이후 건강이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픽사의 문화가 변할 것이란 염려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디즈니 최대 주주가 됩니다. 그러는 한 픽사의 문화는 안 바뀝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초상집 분위기는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잡스에게 감동한 것이다.
저렇게 대단한 사람이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공개하면 부하들은 믿고 따르게 되지 않을까. 자신의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는 잡스의 이야기에 직원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애플본사에서 픽사본사까지는 80km거리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운전하고 다녀오기에 만만치 않은 거리다. 건강이 좋지 않은 잡스로서는 두 회사를 동시에 경영한다는 것이 무리였으리라.
위 발언이 혹시 어디에 보도된 것이 없을까 열심히 검색해봤는데 픽사 내부 미팅에서 나온 말이라 그런지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스티브 잡스가 육성으로 왜 디즈니가 픽사의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MP3 파일이 있어서 소개한다. 링크 : Steve Jobs talks about why he thinks Disney is a good fit for Pixar. (MP3) 윗 발언과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애플 자신에게 하는 다짐.
오늘 아침에 뉴욕타임즈를 훑어보다가 위와 같은 애플의 전면광고를 만났다.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유난히 지난주의 키노트발표중에 많이 나왔던 문구다. 하지만 같이 실린 광고 카피를 읽어보니 이건 뭔가 애플이 고객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다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This is it.
This is what matters.
The experience of a product.
How it makes someone feel.
When you start by imagining
What that might be like,
You step back.
You think.
Who will this help?
Will it make life better?
Does this deserve to exist?
If you are busy making everything,
How can you perfect everything?
We don’t believe in coincidence.
Or dumb luck.
There are a thousand “no’s”
For every “yes.”
We spend a lot of time
On a few great things.
Until every idea we touch
Enhances each life it touches.
We’re engineers and artists.
Craftsmen and inventors.
We sign our work.
You may rarely look at it.
But you’ll always feel it.
This is our signature.
And it means everything.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이것은 마치 1997년에 나온 Here’s to the Crazy Ones이라는 유명한 애플의 광고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위에 나온 카피중 “모든 것을 다 만드느라 분주하다면 어떻게 또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만들겠는가?”라는 반문과 “Yes 하나에는 천번의 No가 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제품에 대한 “집중”에 대한 철학이 위 카피문구에 녹아있는 느낌이다.
참고글.
스티브 잡스 전기를 읽고 느낀 교훈, ‘포커스’
훌륭한 아이디어에 매일같이 No를 연발하는 회사-애플
이번 여름이 지나고 10월 5일이면 잡스 사후 2주기가 된다. 팀 쿡 선장이 이끄는 애플은 7백불까지 올랐던 주가가 4백불대 초반까지 떨어지면서 외부의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다. 매출이나 이익 등 겉으로 보이는 성과는 아직 크게 나쁘지는 않지만 초인에 가까왔던 잡스가 이끌던 애플과 비교하면 뭔가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다. 이럴 때일수록 애플의 경영진에게는 유혹이 많을 수 있다. 그냥 눈 딱 감고 저가형 아이폰을 내놓는다든지, 화면이 큰 아이폰을 내놓는다든지, 최종완성도가 좀 떨어져도 애플 마크를 붙여서 TV를 내놓는다면 단기적인 매출성장이나 이익은 쉽게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팀 쿡은 그런 유혹을 많이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그동안 잡스가 쌓아올린 애플의 가치, 문화를 훼손하는 일일 것이다. 한번 그런 문화가 무너지면 애플은 더 이상 애플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광고는 마치 애플이 애플 자신에게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끝까지 지켜가겠다고 다짐하는 것 같이 들린다. 적어도 내게는…
인사이드애플 역자후기
제가 번역한 ‘인사이드애플’을 출간하면서 책 서두에 실은 역자후기를 블로그에 공개합니다. 2월말부터 본격적으로 번역을 시작하면서 참 힘들어서 번역을 맡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깔끔하게 만들어져서 나온 책을 보니 보람을 느낍니다. 언제 한번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애덤 라신스키에게 점심을 얻어먹기로 했습니다.^^
인사이드애플 한국어판 구매 교보문고링크, Yes24 링크, 인터파크링크 알라딘링크
1990년대 중반 모 신문의 IT담당 기자로 일할 당시 나는 컴퓨터광, 얼리어답터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사실 2003년까지 애플은 내 관심 밖에 있었다. 나도 이 책의 저자 애덤 라신스키(Adam Lashinsky)처럼 PC와 윈도우 운영체제의 신봉자였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세상은 윈도우PC가 지배하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 공화국’인 한국은 물론, 2000년부터 2002년까지 UC버클리의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도 학교 컴퓨터와 대부분의 친구들이 갖고 있는 컴퓨터는 PC였다. 매킨토시를 쓰는 사람은 본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당시 나는 미국에 있으면서도 2001년 가을에 스티브잡스가 첫 아이팟을 발표한 사실조차 몰랐다. (그때는 9․11 테러가 일어난 직후라 무척 어수선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2003년 1월, 우연찮게 샌프란시스코에서 매년 열리는 정보기술IT 전시회인 ‘맥월드(Macworld)콘퍼런스’에 참석하게 됐다. 그리고 거기서 잡스의 키노트 발표를 현장에서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 당시 애플과 매킨토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지만, 한 시간 남짓 펼쳐진 잡스의 키노트 발표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명확하고 강렬한 메시지, 청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혁신적이며 고객 입장에서 디자인된 제품들. 특히 “한 가지 더…One More Things…”라고 하면서 청중들에게 당시 새로이 출시한 프레젠테이션 소프트웨어 ‘키노트’를 공짜로 선물한 마지막의 깜짝쇼를 잊을 수가 없다. “의자 밑을 보라”는 잡스의 말을 듣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말 의자 밑에 키노트 소프트웨어박스가 붙어 있었다. 그 순간 골수 애플 팬들이 대부분이었던 청중들은 크게 환호했다. 왜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 하는지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는 진정한 프레젠테이션의 마스터였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아이팟을 구입했고 다시 몇 년 뒤 맥북프로로 매킨토시에 입문했다. 2007년 6월 말에는 마침 아이폰이 처음 출시되던 주일에 뉴욕에 머물렀던 덕에 갓 나온 아이폰을 구입해 한국으로 가져와 사용해본 몇 안 되는 한국인이 됐다. 아이폰을 일찍 써본 덕분에 나는 세상의 변화를 다른 사람보다 몇 년 빨리 경험할 수 있게 됐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미국에서 첫 아이폰이 발매되고 약 2년 5개월 후에 아이폰이 출시됐다.)
그 뒤 2009년 보스턴의 라이코스 CEO로 부임하면서 나는 매년 아이폰, 아이패드를 신모델로 업그레이드하고 맥북에어를 사용하는 소위 ‘애플 팬’이 됐다. 그 과정에서 스티브 잡스와 애플에 대해 높아진 관심이 나로 하여금 《iCon 스티브 잡스iCon Steve Jobs》,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의 자서전 《스티브 워즈니악iWoz》, 《픽사 이야기The Pixar Touch》,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 《스티브 잡스Steve Jobs》 등 수많은 애플 관련 서적을 읽고 관련 뉴스를 좇으며 소위 ‘애플 전문가’가 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책들은 대부분 스티브 잡스라는 걸출한 인물의 독특한 개인사나 괴팍한 성격, 천재성에 초점을 맞추었을 뿐, 정작 MBA가 가르치는 모든 경영 이론을 거스르고도 세계 최고의 회사로 우뚝 선 애플이라는 회사의 독특한 운영방식을 제대로 조명한 경우는 드물었다.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의 스티브 잡스 전기도 마찬가지다. 아이작슨의 책은 그가 잡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쓴 공식 전기다. 역시 대단히 훌륭하고 흥미진진한 책이지만 대체로 애플 간부와 잡스와 가까운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쓴, 잡스 중심의 책이다. 실제 애플이라는 회사의 문화는 무엇이고 직원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며, 제품 개발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고 그 멋진 키노트 발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준비되는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라신스키의 이 책은 칭찬할 만하다. 이 책은 정말 실리콘밸리를 발로 뛰며 쓴 책이다. 베테랑 기자답게 그는 수십 명의 전․현직 애플 직원을 최고위층부터 말단 엔지니어까지 그리고 애플과 함께 일했던 제휴회사 직원들까지 폭넓게 인터뷰해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허락 없이 회사 일을 외부에 전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애플의 문화에 비춰볼 때, 이 정도로 솔직한 인터뷰를 담은 것은 10여 년간 실리콘밸리에서 구축한 그의 인맥과 취재원들과 쌓은 깊은 신뢰관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 같은 폭넓은 인터뷰와 연구를 바탕으로 그는 나름대로 애플이 어떤 회사인지를 훌륭하게 설명해낸다. 지난 2012년 3월에 샌프란시스코의 <포춘Fortune> 지국에서 그를 직접 만났을 때, 나는 애플이 어떤 회사인지 짧게 정리해 얘기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역시 그는 단 1초도 주저하지 않고 막힘없이 대답했다. (참고-애덤 라신스키 인터뷰)
“한마디로 말한다면, 애플은 규율이 제대로 서 있고(disciplined), 비즈니스에 밝으며(business like), 제품에 집중하는(product focused) 조직입니다. 단순함을 숭상하며 목표를 향해 매우 근면하게 일하는 조직이지요. 애플은 효율성이 높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조직입니다.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좇기보다는 일단 주어진 과업을 완수하는 데 집중합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그가 얼마만큼 애플을 연구했고 그 내용이 머릿속에 얼마나 잘 정리돼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전부터 애플과 스티브 잡스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관련 뉴스나 기사를 빠짐없이 탐독하며 트위터와 블로그에 계속 글을 써왔다. 때문에 미국에서 《인사이드 애플》이라는 책이 나올 것이란 사실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한 인연으로 한국어판 출간 소식을 접하고는 이렇게 번역자로 나서기에 이르렀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문장을 곱씹어 읽어보고 또 저자와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한 것이 내게 많은 공부가 됐고 애플의 경영방식과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이 책은 “애플이라는 회사는 어떻게 운영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여기에는 풍부한 인터뷰에 근거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대거 등장한다. 완벽한 결혼식 동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새해 첫날 하와이로 로케를 떠난 애플 마케팅팀의 이야기나 잡스가 야후 제리 양에게 조언해준 이야기 등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소개되는 일화다. 또 어떤 프로젝트를 직접 책임지는 사람을 뜻하는 ‘DRI(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나 비밀스럽게 열리는 ‘톱 100’ 모임 등 이 책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애플만의 독특한 문화와 제도를 통해 우리는 애플이 어떻게 움직이고 경영이 이뤄지는지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무서우리만큼 디자인을 중시하는 문화,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절대 타협하지 않는 문화,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제외하고 누구도 손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문화, 훌륭한 아이디어에 ‘아니오’라고 외치는 문화 등을 통해 우리는 잡스가 애플에 주입한 DNA가 어떤 것인지 엿볼 수 있다.
라신스키는 실리콘밸리에서 오랫동안 비즈니스 저널리스트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애플을 살핀다.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을 ‘IT 저널리스트’가 아닌 ‘비즈니스 저널리스트’라고 강조했다. 즉 이 책은 애플이 어떻게 기술 혁신을 이뤄내는지를 기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IT 관련 서적이 아니라 잡스와 애플의 경영진들이 어떻게 애플을 경영해왔는지를 조명하는 경영서적인 것이다. 라신스키는 이것이 바로 다른 책과의 차이점이라 강조했다.
이 책의 또 다른 가치는 팀 쿡의 리더십을 조명한 데 있다. 라신스키는 쿡의 스타일이 어떻게 잡스의 그것과 잘 조화를 이뤘는지 그리고 대조적이면서도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했는지를 설명한다. 또한 어떻게 이 조용한 남부 출신의 전직 IBM맨이 애플의 2인자로 부상해, 궁극적으로 전설적인 리더를 이어 CEO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잡스가 쿡을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한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게 됐다.
한편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애플이 가진 패러독스에 대해 더 큰 놀라움을 느낌과 동시에 애플의 미래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될 수 있다. 투명경영, 권한이양, 지역거점분산형 경영, 정보공유 등을 강조하는 현대 경영학 이론을 애플은 모든 면에서 거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플이 이런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스티브 잡스’라는 걸출한 천재의 힘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럼 잡스는 애플을 자신이 떠난 다음에도 영속할 수 있는 위대한 기업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을까? 여기에는 그가 자신의 DNA를 애플에 심는 데 성공했을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라신스키는 애플이 아이폰, 아이패드로 이룩한 지금의 번영을 앞으로 몇 년간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오늘의 영화로 이끈 그 독특한 애플의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고 기업의 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쿡이 잡스가 만들어낸 애플의 문화를 바꾸기보다는 숭상하고 더욱 잘 살려내는 스타일의 경영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애플은 과연 5년 후에도 지난 15년 동안 보여줬던 놀라운 혁신과 성장을 이어나가며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계속해서 애플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12년 4월 보스턴에서
임정욱
애플과 델
악화된 컴퓨터판매실적의 영향으로 델(Dell)의 주가가 22일 12%, 그리고 23일 17% 연달아 폭락했다. 5~6조원의 시가총액이 이틀만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특히 실적발표에서 델의 CFO가 “소비자들의 구매가 ‘alternative mobile computing devices‘로 옮겨졌다고 하는 말에 주목했다. 이것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데 사실은 소비자제품의 매출의 하락이 아이패드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뜻이다. 뭐 아이패드를 얼마나 많이들 쓰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아이패드유저들이 만족하고 있는지를 주위 사람들을 통해 체감하고 있는 나로서는 놀라운 소식은 아니다. 올 것이 왔다고나 할까.
지난 분기 델의 PC매출은 대략 12~13%하락했다. 세상의 변화를 애써 무시하고 준비를 게을리하고 있던 댓가를 톡톡히 치르는 느낌이다. 델처럼 큰 회사가 도대체 모바일혁명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초기의 혁신에 안주하고 더이상 발전이 없는 회사와 끝없이 노력하면서 혁신을 추구해 세상을 놀라게 한 회사가 장기적으로 보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델과 애플을 비교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9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복귀했을 당시 마이클 델은 한 테크놀로지 컨퍼런스에서 “당신이라면 애플을 어떻게 회생시키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출처 (NYT : Michael Dell Should Eat His Words, Apple Chief Suggests)
“나라면 회사를 문닫고 남은 돈을 주주들에게 돌려주겠습니다.” “I’d shut it down and give the money back to the shareholders.”
이를 애플과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 스티브 잡스는 절치부심하며 애플을 살려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2006년 1월 주가상승으로 인해 드디어 시가총액에서 애플이 델을 추월했을때 회사전체에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팀, 마이클 델은 미래를 예측하는데 결국 완벽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늘 주식시장 종가로 볼때 애플은 이제 델보다 더 가치있는 회사가 됐습니다. 주가라는 것은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합니다. 내일은 또 결과가 달라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이 순간을 기억해두고 싶습니다. 스티브.”
“Team, it turned out that Michael Dell wasn’t perfect at predicting the future. Based on today’s stock market close, Apple is worth more than Dell. Stocks go up and down, and things may be different tomorrow, but I thought it was worth a moment of reflection today. Steve.”
당시의 애플과 델, 두 회사의 시가총액은 각각 72B정도였다. 그럼 6년후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
지금 현재 (5월23일 종가) 현재 애플의 시가총액은 533.5B로 세계최고가치의 회사이며 델은 22B로 주저앉았다. 무려 24배차이다. 불과 6년만에 두 회사의 격차가 이렇게 벌어진 것이다.
나는 97년쯤인가 한국을 방문한 마이클 델을 인터뷰한 일이 있다. 몇몇 기자들과 함께 신라호텔에 가서 그를 만났다. 당시 나는 델의 Direct PC모델에 큰 관심이 있어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인터뷰장소에 갔는데 의외로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마이클 델의 모습에 실망을 금치 못한 기억이 난다. 비저너리로서의 모습은 전혀 없었다. 나는 그가 이른 성공으로 인한 자만심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97년 애플에 대한 발언도 그런 자만심에서 나왔을 것이다. (아마 그는 두고두고 그 발언을 한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그 이후 델은 회사덩치는 커졌을지 모르지만 혁신은 거의 보여주지 못한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두 창업자의 그릇 차이가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문득 오늘 아침 두 회사의 차이를 보고 짧게 써봤다.
잃어버렸던 스티브 잡스의 테이프
Fast Company 5월호는 커버스토리로 “잃어버렸던 스티브 잡스의 테이프”(The Lost Steve Jobs Tape”라는 흥미로운 내용을 실었다. 스티브 잡스와 가까웠던 Brent Schlender라는 기자가 자신의 창고를 뒤지다가 90년대초중반 잡스와 나눴던 녹음된 인터뷰대화내용을 찾아내서 다시 들어보고 쓴 내용이다. (그는 잡스의 집 지척에 사무실이 있어서 수시로 잡스와 어울렸다고 한다.)
이 기사에서 특별히 새로운 비밀(?)이 밝혀진 것은 없지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서 Next를 설립하고 Pixar를 인수한 뒤 성공시키고 애플에 복귀하는 11년간 그가 어떤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고 또 어떤 경영철학을 형성해갔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기사다.
더구나 감사하게도 알비레오의 파워북사이트에 Casaubon님이 번역한 글을 올려주셔서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다.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Schlender는 잡스의 인생이 오페라로 치면 다음 3막으로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비유했다. Act I–The Founding of Apple Computer and the Invention of the PC Industry; Act II–The Wilderness Years; and Act III–A Triumphant Return and Tragic Demise. 그리고 제 2막 광야시대의 11년이 그를 성숙하게 만든 중요한 시기였다고 썼다. 나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 11년간의 고난의 시기가 없이 애플에 그냥 남아있었다면 스티브 잡스는 그저 젊은 나이에 억만장자가 된 건방진 천둥벌거숭이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The lessons are powerful: Jobs matured as a manager and a boss; learned how to make the most of partnerships; found a way to turn his native stubbornness into a productive perseverance. He became a corporate architect, coming to appreciate the scaffolding of a business just as much as the skeletons of real buildings, which always fascinated him. He mastered the art of negotiation by immersing himself in Hollywood, and learned how to successfully manage creative talent, namely the artists at Pixar. Perhaps most important, he developed an astonishing adaptability that was critical to the hit-after-hit-after-hit climb of Apple’s last decade. All this, during a time many remember as his most disappointing.
이 2막 시기의 교훈은 정말 강력하다. 잡스는 관리자이자 보스로서 성숙해졌다. 파트너쉽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배우고 태생적인 고집을 생산적인 인내심으로 바꿀 줄도 알게 됐다. 말하자면 그는 기업 건축가가 됐다. 한 사업의 골조를 세우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의미다. 물론 그는 실제 빌딩 골조에 대해서도 관심이 항상 많았다. 그는 헐리우드에 들어가 협상법을 마스터하고 픽사의 예술가들은 물론, 크리에이티브 영역의 인재들을 성공적으로 다스리는 법도 배웠다. 마지막 10년간 애플에서 끊임 없이 히트작을 내놓을 수 있던 융통성이야말로 그가 개발한 제일 중요한 성질일 것이다. 이 모든 점들이 바로 모두들 제일 실망스러운 시기라 일컫는 그 시기에 만들어졌다. -Fast Company 5월호 (Casaubon님 번역인용)
잡스는 항상 열심히 공부했다. 그가 픽사를 인수해서 같이 일하면서 가진 큰 행운은 테크놀로지기업이 아닌 콘텐츠기업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알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헐리웃과 딜을 하고 애니메이터들을 지휘하면서 인문학과 기술을 융합하는 방향으로 애플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됐다. 픽사가 오늘의 애플을 있게 한 밑거름이 됐다고 할까. 또 기사중 나오는 “픽사는 소프트웨어 천재급과 동일한 보상을 애니메이터에게 준다”는 부분도 의미심장하다. 소프트웨어엔지니어에 이어 애니매이터들을 이끌면서 잡스는 진짜 창조적인 A급인재들을 어떻게 보상하고 동기부여해야하는지 픽사를 통해서 배운 것이다.
But some of the tougher years at NeXT and Pixar had taught him how to stretch a company’s finances, which helped him ride out his first couple of years back, when Apple was still reliant on a weak jumble of offerings. With newfound discipline, he quickly streamlined the company’s product lines. And just as he had at Pixar, he aligned the company behind those projects. In a way that had never been done before at a technology company–but that looked a lot like an animation studio bent on delivering one great movie a year–Jobs created the organizational strength to deliver one hit after another, each an extension of Apple’s position as the consumer’s digital hub, each as strong as its predecessor. If there’s anything that parallels Apple’s decade-long string of hits–iMac, PowerBook, iPod, iTunes, iPhone, iPad, to list just the blockbusters–it’s Pixar’s string of winners, including Toy Story, Monsters, Inc.,Finding Nemo, The Incredibles, WALL-E, and Up. These insanely great products could have come only from insanely great companies, and that’s what Jobs had learned to build.
그러나 넥스트와 픽사에서 보낸 어려웠던 시절은 그에게 회사의 재정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가르쳐줬고, 덕분에 첫 수 년동안 운영을 잘 해낼 수 있었다. 그래도 당시 애플은 몇 가지 제품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새로이 발견한 원칙으로 그는 애플의 제품군을 빠르게 정리했다. 픽사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회사를 몇 가지 프로젝트에 집중시켰는데, 이런 방식은 기술회사로서는 한 번도 없었던 방식이었다. 일 년에 한 번씩 훌륭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내놓는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방식이기 때문이었다. 잡스는 히트작을 차례로 내놓도록 조직을 바꿨고 각 제품을 애플의 소비자용 디지탈 허브에 묶이도록 하고 매번 더 강력해지도록 했다. 10여년에 걸친 애플의 아이맥과 파워북, 아이포드, 아이튠스, 아이폰, 아이패드를 픽사의 토이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인크레더블, 월-이, 업!과 나란히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최고로 위대한 회사만이 최고로 위대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잡스가 배운 교훈이다. -Fast Company 5월호 (Casaubon님 번역인용)
확실히 넥스트와 픽사를 직접 경영하면서 매번 펀딩과 자금운영을 고민하고, 회사의 미래 비전을 짜고, 인재를 찾아 고용하고 해고하는 과정을 직접 거치지 않았더라면 97년 애플에 복귀해 Turnaround를 시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재미있고 많은 교훈을 주는 기사다. Fast Company 아이패드판을 구입하면 당시 스티브 잡스인터뷰 녹음테입의 중요부분 오디오클립을 제공하기도 한다. 17년전의 그의 육성을 들어보면서 항상 사람들과의 대화, 비즈니스 경험을 통해서 비범한 통찰을 끌어내는 그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그는 정말로 대단한 천재였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특이한 일면
요즘 ‘인사이드애플’을 번역하는 관계로 본의아니게 스티브 잡스에 대한 글을 많이 쓰게 됐다. (이 책의 한글판은 4월말 청림에서 출판예정.) 스티브 잡스 전기를 열독한데 이어 ‘인사이드 애플’을 번역하고, 저자 애덤 라신스키를 인터뷰해서 기사를 쓰고, 그와 관련된 많은 글을 읽고 예전 키노트 컨퍼런스 등의 동영상까지 보니 이제는 잡스의 말과 행동에 어떤 일관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너무나도 솔직했고 “세상을 바꿀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자신의 신념에 무서울 정도로 집중했던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We don’t ship junk 참고)
이번주 샌프란시스코-컬럼비아 미주리-샬롯으로 이어지는 긴 여행을 다니면서 우연히 애플의 전직 임원을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를 갖게 됐다. 존 스컬리가 CEO였던 당시와 스티브 잡스가 복귀한 이후 등 두번에 걸쳐 애플에서 일하신 분이다. 이 분과 이야기하면서 스티브 잡스의 리더쉽과 애플의 문화에 대해서 또 몇가지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 몇가지 기억에 남는 것을 잊기 전에 적어본다.
-애플 내부에서도 초기에 아이폰이 성공여부에 대해서 부정적인 분위기였다고 한다. 아이폰이 2007년 1월 맥월드 키노트에서 발표됐지만 실제로 그 터프한 휴대폰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직원들이 회의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6월말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2만여명? 정확치는 않다) 전 애플직원에게도 공짜로 아이폰을 나눠줬다고 한다. 직원들은 실제로 사용해보고 “아, 이게 정말 대단하구나.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고 느끼고 잡스의 방향을 믿고 다시 따라가게 됐다고 한다. (물론 그 분만의 생각일 수는 있다.)
-애플의 세일즈 담당직원들 수백명이 모인 워크숍에 스티브 잡스가 왔었다고 한다. Q&A시간에 한 직원이 손을 들고 건의를 하나 했다. 세일즈맨들에게 지급되는 영업용 회사차를 환경친화적인 프리우스 같은 차로 바꾸면 어떠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잡스의 얼굴이 갑자기 하얗게 변했다. 그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아니, 나도 회사차를 안타는데 당신들이 회사에서 지급하는 차를 타고 있었단 말이냐. 어떻게 그럴수가 말도 안돼.” 뭐 이런 분위기로 말했다는 것 같다. 나도 처음 알고 놀랐는데 스티브 잡스의 벤츠는 회사차가 아니고 개인적으로 구입한 것이란다. 아마 모든 임원들도 개인적으로 구입한 차를 타고 회사를 출퇴근하는 듯 싶다. (미국이라고 다 이런 것은 아니다. 회사별로 다 다르다.)
순간적으로 전체 직원들의 분위기가 싸~~해졌고 당황한 세일즈담당 부사장이 일어나서 “내가 처리하겠다”고 직원들을 진정시켰다고 한다. 사실 회사가 세일즈맨들에게 회사차를 지급하는 것은 따로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직원들이 자기차를 영업용으로 이용한 만큼 유류비용 등을 정산해주는 것보다 세금처리 등 면에서 회사전체로 보면 더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어쨌든 부사장이 따로 잡스에게 사정을 설명해서 직원들이 영업용차를 안빼앗기고(?) 무사히 넘어가긴 했지만 당시 얼굴이 하얘져서 흥분하던 잡스의 모습을 그 자리에 있던 직원들이 잊지 못한다고 한다.ㅎㅎ 어떻게 세계적인 갑부인 사람이 그런 별 것 아닌 일에 시기심을 보이며 흥분할 수가 있을까. 자기차는 회사차로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텐데…
-텍사스 오스틴에는 애플의 Q&A, 고객상담 콜센터 등 해서 3천명정도의 직원이 있다고 한다. 하루는 담당임원이 잡스에게 “직원들 사기 진작을 위해서 한번 오스틴에 가서 직원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자리에서 딱 잘라서 나온 잡스의 반응. “안간다. 내가 거기 왜 가나. 텍사스는 내 평생 한번도 간 일이 없고 앞으로도 안 갈 것이다.” (정말 한번도 안갔는지 팩트체크는 못했지만 어쨌든 이런 뉘앙스로 얘기했다고 한다.) 가기 싫어도 거기 있는 직원들 사기를 생각해서라도 좀 돌려서 이야기하지 이렇게 직선적으로 답을 할 필요가 있나 싶다. 정말 성격 고약하다.
잡스는 모든 애플 제품을 생산하는 중국 폭스콘공장에 한번도 간 일이 없다. 자신이 관심이 있고 흠모했던 소니 등이 있는 일본에는 자주 갔다. 심지어는 가족 여행으로도 갔다. 자신에 관심을 두는 것에는 무서울 정도로 집착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는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하다. 아예 무시한다. 심지어는 입을 옷을 고르는 것도 귀찮아서 매일 같은 옷을 입지 않았나. 정말 성질이 고약하다 싶기는 하지만 그런 무서운 집중력이 그 놀라운 디테일에 대한 집착을 낳지 않았나 싶다. 인간은 누구나 유한한 시간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쓰레기 같은 제품을 내놓지 않습니다. We don’t ship junk.
2007년 8월 새로운 아이맥을 발표하는 이벤트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스티브 잡스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우연히 보게 됐다. 짧은 동영상이지만 보고 아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CNET의 기자인 몰리 우드(Buzz out loud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아주 유쾌한 여성)가 “애플의 가격정책과 디자인을 보면 넓은 대중고객층을 위한 제품이라기보다 좁은 특정사용자층만 겨냥한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마켓쉐어에 대한 질문을 하고 싶은데 당신의 목표가 PC의 마켓쉐어를 따라잡는 것이 맞느냐”는 질문을 한다. 즉, 몰리 우드의 질문의 뉘앙스는 “그런 식으로 특정사용자층만 겨냥하는 제품 라인업으로 어느 세월에 PC의 마켓쉐어를 따라잡겠느냐”는 것이다. (내가 해석하기로는) 너무 조심스럽게 제품을 내는 애플을 책망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런 뉘앙스의 질문에 좌중의 폭소가 터져나온다. (참고로 2007년은 아이폰이 처음 선을 보인 해이고 이 이벤트는 첫번째 아이폰출시후 불과 한달여뒤에 가진 것이다. 당시 맥의 시장점유율은 미국에서 5%정도도 안되지 않았나 싶다.)
내가 감탄한 것은 이 바로 다음 부분이다. 살며시 미소를 지은 잡스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바로 “Let me tell you what our goal is”라며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한다.
“Our goal is to make the best personal computers in the world and make products we are proud to sell and recommend to our family and friends. We want to do that at the lowest prices we can.
우리의 목표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우리가 자랑스럽게 판매할 수 있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권할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가장 낮은 가격으로 그 목표를 달성하고자 합니다.
“But there’s some stuff in our industry that we wouldn’t be proud to ship, that we wouldn’t proud to recommend to our family and friends. And we just can’t do it. We can’t ship junk,”
하지만 우리 업계에는 우리로서는 내놓기에 자랑스럽지 못한 제품들이 좀 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권할 수 없는 제품들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못합니다. 우리는 (고객에게) 쓰레기를 내놓을 수 없습니다.
“There are thresholds we can’t cross because of who we are. But… We want to make best personal computer in industry.”
우리의 정체성때문에 넘을 수 없는 선이 있습니다. 우리는 업계에서 최고의 개인용컴퓨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하 중략~
타협하지 않는 좋은 제품을 내놓겠다는 생각이 평소에 얼마나 확고했으면 질문을 받자마자 이렇게 주저하지 않고 명료하게 이렇게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권할 수 있는”이라는 정말 이해하기 쉬운 비유에서 “Product first”인 그의 철학이 엿보인다. 자기가 다니는 회사의 제품을 정말 순수하게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게 최고다”라고 추천하는 것이 사실 쉽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직원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지 매출과 이익을 조금 더 올리기 위해서 불필요한 기능을 넣고 쓸데없는 복잡한 모델을 양산하고 각종 crapware들을 끼워넣고 고객을 혼란시키는 업계에서 리더의 이런 확고한 철학은 임직원들에게 명확한 길을 제시해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즉, “He knows what he’s doing”이란 말이 들어 맞는 보스다. 이렇게 열변을 토하는 잡스를 옆에서 힐끗힐끗 쳐다보는 필 쉴러 제품마케팅담당부사장의 모습에서 이런 카리스마 넘치는 보스에 대한 존경심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라이코스에서의 내 경험하나도 떠오른다. 라이코스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전임 CEO들이 직원들에게 전한 메시지나 비전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오래전 CEO중 한명이 전체직원미팅에서 발표한 슬라이드를 꺼내서 읽어봤다. 회사의 목표, 비전, 골 부분에서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무슨 복잡한 삼각형 도형안에 ‘미디어’가 들어있고 “세계최고의 미디어를 만들자” 뭐 어쩌고 하는 내용이 있었다. 뭘 하자는 것인지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 회사에 오래 다녔던 직원에게 이게 뭘 의미하는 것이냐고 물어봤다. 그의 대답. “That’s bullshit. He didn’t even know what he’s talking ab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