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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 샤피로의 핫시트
‘핫시트’라는 책을 감수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감수의 글을 썼다.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위한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얼마전 시애틀 출장을 간 김에 일부러 이 책의 저자인 댄 샤피로를 연락해서 만나기까지 했다. 그와 나눈 이야기와 책의 흥미로운 내용을 일부 블로그로 소개하고 싶은데 게으르기도 하고 짬이 안나서 하지 못했다. 일단 감수의 글부터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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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가 왜 강한가”라는 이야기를 할 때 나는 항상 이렇게 설명한다. 실리콘밸리의 강점중 하나는 스타트업을 창업해 실패를 겪고, 또 다시 시작해 성공시켜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어서 그렇다고. 실리콘밸리는 전세계의 어떤 곳보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곳이며 그리고 그들의 경험과 지식이 적극적으로 전파되고 공유되는 문화를 갖고 있다고.
(비록 실리콘밸리는 아니고 시애틀에 살고 있지만) 이 책의 저자 댄 새피로도 그런 풍부한 스타트업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중의 하나다. LA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리얼네트웍스 같은 시애틀의 테크 대기업을 거쳤다. 그리고 10년전인 2005년 그의 첫번째 스타트업인 온텔라를 창업했다. 온텔라는 스마트폰이 나오기 이전 시대에 휴대폰에 들어있는 사진을 온라인으로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스타트업이다. 포토버킷이란 당시 유명했던 스타트업에 매각됐다. 그의 두번째 스타트업인 스파크바이는 온라인쇼핑몰의 물건 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쇼핑검색엔진이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구글에 매각됐고 그는 구글의 자회사CEO로 2년넘게 일했다. 그의 3번째 스타트업인 로봇터틀스는 보드게임을 통해 코딩의 개념을 배울 수 있는 게임을 만들었다. 그의 이 제품은 킥스타터에서 당시 가장 많은 돈을 모금해 화제를 모았었다. 그는 다시 또 도전을 시작해 2014년부터는 글로우포지라는 3D레이저프린터를 만드는 스타트업을 시작해 주목을 받고 있다.
한마디로 그는 스타트업창업자로서 겪을 수 있는 과정을 대부분 경험했다. 소프트웨어 대기업에서 제품개발 과정을 관리한 경험을 바탕으로 B2B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을 창업해 대기업과 협업했다. 그리고 매각했다. 그런다음 쇼핑검색엔진을 창업해 바로 구글에 팔고 또 인수된 스타트업회사의 창업자로서 구글에 들어가 일해봤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 자녀들을 위한 보드게임을 만들어 당시 뜨고 있는 크라우드펀딩사이트에 공개해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이번에는 하드웨어스타트업에 도전중이다. 실리콘밸리에서도 소프트웨어에서부터 하드웨어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가진 창업가를 만나기는 힘들 정도다. 그 과정에서 그는 아마도 수백번 이상의 투자협상과 회사 매각협상을 경험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한마디로 360도 전방위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는 스타트업CEO라고 할 수 있다.
이 핫시트는 그가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녹여서 진솔하게 써낸 책이다. 공동창업자들과 함께 스타트업을 창업해서 초기 제품을 개발하고, 투자자들에게 열심히 제품과 비즈니스계획을 발표한 뒤 투자를 받고, 회사를 경영하고, 또 매각하는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경우에 대해서 과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위주로 풀어냈다. 특히 투자과정에서 어떻게 벤처캐피털들을 소개받는지, 투자자에게 피칭하기 위한 발표자료는 어떻게 만드는 것이 좋은지 등에 대해서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면 쓰기 어려운 아주 현실적인 내용으로 조언한 것이 인상적이다.
이 책은 우선 스타트업 창업자나 구성원들이 읽기에 적합하다. 공동창업자와 함께 창업하고 지분을 나누는 방법, 벤처캐피털리스트나 엔젤 등 투자자들에게 효과적으로 투자를 받는 방법, 이사회를 잘 운영하는 방법 등 현실적인 교훈과 팁이 가득하다. 물론 주로 미국의 스타트업문화를 담고 있어서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도 일부있다. 하지만 많은 국내 스타트업들이 해외진출을 준비하고 있고 실리콘밸리VC에게 투자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알아두면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많다. 한국의 스타트업생태계도 점차 진화하면서 미국처럼 변화해 하고 있기도 하다.
직접적으로 스타트업과 관련이 없더라도 평소 스타트업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게도 추천할만한 책이다. 창업자의 관점에서 스타트업의 창업부터 매각까지의 과정이 잘 서술되어 있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어떻게 창업되고 투자받아 성장해 나가고 매각을 통한 엑싯을 하는 것인지 궁금한 분들은 이 책을 읽어보면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아무쪼록 한국의 스타트업생태계에서도 댄 새피로와 같은 경험을 한 창업자들이 후배들을 위해 이런 좋은 책을 많이 써내기를 기대한다. 이런 경험과 노하우를 혼자서만 알고 있는 것보다 많은 이들과 나눠야 전체 생태계가 건강하게 발전해 나갈 수가 있다.
데이터가 지배하는 아마존 북스
미국 시애틀 출장길에 벼르고 벼르던 곳에 방문했다. 바로 세계적인 온라인 유통공룡 아마존이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개설한 오프라인 서점 ‘아마존 북스’다. 그렇다. 온라인에 있는 가상의 서점이 아닌 실제로 책이 꽃힌 서가가 있는 오프라인 서점이다.
창사 20년동안 고집스럽게 온라인으로만 책을 팔아온 아마존. 심지어 킨들이라는 전자책리더를 내서 종이책의 종말을 재촉해오던 이 회사가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오프라인 서점을 냈을까 궁금했다.
겨울로서는 드물게 화창한 날씨에 방문한 아마존북스는 생각보다 작고 아담한 예쁜 서점이었다. 하지만 일반 서점과는 몇가지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첫번째, 잡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책이 데이터에 의거해 선택되어 진열되어 있다. 책마다 아마존 고객평점이 붙어있는데 모두 4점이상(5점만점)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리뷰가 10개이하인 경우는 별점을 표시하지 않았으나 아마존에서 검색해보니 그런 경우에도 모두 4점이상이었다. 즉 아마존북스에서 진열되고자 하는 책은 최소한 4점이상의 평점을 받아야 한다.
서점 곳곳에 아마존 데이터가 살아 숨쉰다. 들어가자마자 정면에 있는 코너는 4.8점이상 높은 평점을 받은 책들이 쌓여있다.
새로운 소설코너에는 “고객평점, 선주문, 판매량 등의 데이터에 의거해 고른 책”이라는 설명이 써있다.
또 한쪽 코너에는 ‘당신이 제로투원을 좋아한다면’이라고 써있고 피터 틸의 제로투원과 비슷한 성향의 창업관련 서적이 소개되어 있다. 마치 아마존 웹사이트의 책 진열을 그대로 오프라인으로 옮겨온 것 같다.
킨들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줄을 많이 친 대목인 Popular Highlight도 이런 식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두번째, 모든 책이 표지가 정면으로 보이게 비스듬히 눕혀서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책마다 간단한 설명글과 고객평점을 담은 작은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 여기에는 책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나 독자리뷰를 짧게 발췌해서 소개하고 있다. 고객이 책을 들춰보지 않아도 책 내용에 대해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책을 세로로 촘촘히 꽃아놓지 않아서 같은 면적의 서점에 비해 소장도서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서점을 방문한 고객에게 최대한 많은 책을 노출시키겠다는 전략을 읽을 수 있었다.
세번째 아마존북스의 책에는 가격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물론 출판사에서 붙인 정가는 책 자체에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도서정가제가 시행되지 않는 미국에서는 서점마다 그 책의 판매가격을 다시 붙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아마존북스의 책에는 그런 가격표시가 없고 서점 곳곳에 “책의 가격은 아마존닷컴의 가격과 같습니다”라고 써있다.
가격을 확인하고 싶으면 서점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바스캐너에 책을 대거나 스마트폰의 아마존앱을 사용해 바로 검색해보라고 한다. (서점내에서는 무료와이파이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 인터넷속도가 아주 빠르다.) 온라인과 가격이 같다고 하니 책을 구매할 때 일종의 ‘안심감’이 들었다.
네번째, 아마존북스는 현금을 받지 않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신용카드로만 책을 살 수 있다. (애플페이 등은 되지 않는다.) 아마존닷컴에서 결제한 이력이 있는 카드로 책값을 지불하니 자동으로 아마존 회원정보와 연동되어 결제가 됐다. (물론 아마존회원이 아니어도 책을 살 수 있다.) 회원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아이디나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절차를 요구하지 않아서 정말 편했다.
나중에 아마존에서 확인해 보니 이렇게 구매내역이 다 기록되어 있다. ‘Amazon Books Store Purchases’라는 항목이 따로 생겨있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다섯번째로 아마존북스에는 전자제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그렇다. 아마존이 직접 만들어서 파는 파이어TV, 파이어타블렛, 킨들 등이다. 애플스토어처럼 전시되어 있는 제품을 마음껏 만지고 써볼 수 있다.
한쪽켠 잡지서가 옆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이곳에도 파이어타블렛이 의자옆에 비치되어 있어 편하게 써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아마존북스에 대체로 긍정적인 인상을 받았다. 좋은 책들이 군더더기없이 빽빽히 진열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흔히 대형서점에서 출판사가 판촉하는 실속없는 책이 가득찬 서가나 베스트셀러랭킹이 아마존북스에는 없었다. 책마다 정성들여 작성한 듯한 안내문도 인상적이었다. 오프라인서점에 가는 이유가 온라인에서는 찾기 어려운 좋은 책을 우연히 발견해 구매하는 기쁨에 있는데 아마존북스는 그런 고객들을 배려해서 만든 서점 같았다. 물론 아마존이 만드는 전자제품들을 판매하는 전시공간 역할도 중요하겠다.
다만 너무 무미건조하게 데이터에 의존해서 책을 큐레이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어서 점원에게 “누가 책을 고르는 것이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아마존 데이터를 활용해 ‘사람’이 진열할 책을 골라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데이터가 지배하는 미래의 서점을 본 느낌이 들었다.

이번 여름 오픈을 준비중인 샌디에이고 지점. Photo by Chris Jennewein.
아마존은 아마도 이 오프라인서점을 미국 전역에 오픈할 것 같다. 이미 두번째 지점을 샌디에이고에서 이번 여름에 개점할 예정이다. 보더스가 문을 닫고 반스앤노블도 고전하는 가운데 미국의 쇼핑몰에서 서점이 사라져가는 것이 유감이었는데 아마존북스가 독서애호가들의 새로운 인기장소로 부상할 것 같다.
시애틀-밴쿠버-캠브리지 도서관 구경하기
세계 어디에 가든 기회가 있으면 도서관구경을 즐기는 편이다. 책을 꼭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일단 지친 발걸음을 쉴 수가 있고 인터넷을 무료로 쓸 수 있으며 가볍게 그 지역의 신문, 잡지, 책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 지역 주민의 모습과 함께 도서관건물과 분위기를 보면 그 도시가 얼마나 도서관을 소중히 여기는지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도서관구경을 즐긴다. 미국의 경우는 신기하게도 관광지 작은 마을에 가도 도서관이 있다. (미국의 도서관들은 대부분 로그인정보 없이 브라우저를 열고 약관동의만 하면 마음껏 쓸 수 있는 wifi가 무료 제공된다.)
렘 콜하스의 시애틀중앙도서관
최근 시애틀과 캐나다 밴쿠버를 갔는데 독특한 도서관을 만났다. 우선 시애틀시내에 있는 공공도서관.(사진은 위키피디아출처 사진 1장을 제외하고 모두 아이폰5(시애틀-밴쿠버), 아이폰4(캠브리지)로 직접 찍은 것. 사진을 누르면 확대됨)
외관이 정말 독특하다. 이 시애틀중앙도서관은 2004년 건립된 것으로 네델란드출신의 유명한 건축가 렘 콜하스가 디자인한 것이라고 한다. 아무 생각없이 시내를 걸어가다 우연히 만난 독특한 건물의 모습에 놀랐고 이 건물이 도서관인 것을 알고 또 놀랐다.
이날은 너무 날씨가 좋아서 그랬는지 햇볕이 가득 들어오는 내부의 모습도 좋았다.
각 층별로 곳곳에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있는데 특히 10층의 리딩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마치 무슨 피라밋안에 있는 느낌.
이 도서관을 건립하는데 굉장히 큰 예산이 소요됐을 것 같아서 찾아보니 98년 시민투표에 의해 도서관건립계획이 통과됐고 자그마치 거의 2억불의 채권이 발행되서 비용을 충당했다고 한다. 하여간 놀랐다. Pike Place Market에서도 멀지않은 곳에 있으니 시애틀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꼭 한번 찾아가서 1층부터 11층까지 올라가보시길.
로마 콜로세움을 닮은 벤쿠버중앙도서관
밴쿠버의 도서관도 독특했다. 한겨레 구본권기자님이 트윗으로 알려주셔서 지나가다가 한번 들러봤다. (밴쿠버도서관은 미국의 도서관과 달리 wifi를 사용하는데 로그인을 요구했다. 다만 카운터에 이야기하니 id를 확인하고 바로 wifi용 아이디를 발급해주기는 했다.)
오른쪽이 로마의 콜로세움모습으로 생긴 9층짜리 밴쿠버중앙도서관이고 왼쪽이 오피스빌딩이다. 밴쿠버시는 도서관건립을 위한 재원충당을 위해 왼쪽 건물을 같이 짓고 장기 리스를 하고 있다고 한다.
도서관입구를 들어서면 한쪽은 도서관, 한쪽은 오피스빌딩으로 들어가는 아트리움이 나온다.
하지만 도서관 내부는 평범한, 일반적인 도서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도서관 상층부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모습. 콜로시움 모양의 외벽안에 이렇게 빈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120년의 시간이 공존하는 캠브리지도서관
이렇게 도서관을 구경하다보니 1년전까지 내가 살다가 온 보스턴쪽에서 본 인상적인 도서관이 하나 떠올랐다. 하버드와 MIT가 있는 캠브리지지역의 도서관. 위치도 하버드와 MIT의 정확히 중간쯤에 있는 도서관이다.
유서깊은 이 도서관빌딩은 1888년, 즉 125년전에 개관한 것이다. 캠브리지시는 이 역사적인 건축물을 그대로 살리면서 도서관을 확장하는 계획을 세워 새로운 도서관건물을 2009년도에 개관한다.
그 모습은 위와 같다. 신기해서 처음봤을때 이렇게 파노라마사진으로 찍어두었다. 120년짜리 건물옆에 현대적인 건물을 이어서 붙인 것이다.(사진을 클릭하면 확대)
새 도서관건물의 외관도 멋지다.
건물도 멋지지만 이런 지역도서관이 훌륭한 것은 지역주민들과 밀착되어 있고 개방적이라는 것이다. 길을 걷다보면 도시나 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도서관에 쉽게 들어갈 수 있고 마음껏 책이나 DVD등을 빌려볼 수 있다. 인터넷이나 컴퓨터 사용도 자유롭다. 도서카드를 만들면 빌려갈 수 있는 책의 숫자도 너그러워서 (쿠퍼티노 우리 동네 도서관의 경우) 동시에 1백개의 아이템까지 체크아웃할 수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꼭 그 지역주민이 아닌 지나가던 여행객들도 들어가서 인터넷을 쓰고 책을 뒤져보는 것은 자유다. 어린이코너도 잘 되어 있어서 애들을 데리고 가서 마음껏 책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다.
한국의 도서관은 그 숫자에서도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이런 개방적인 분위기도 부족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마침 옛 서울시청건물이 도서관으로 탈바꿈했다고 해서 이번에 한국에 방문하면 꼭 가볼 생각이다.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