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티마의 인터넷이야기 EstimaStory.com

Thoughts on Internet

Archive for 6월 2016

질문이 창의력의 원천이다

with 7 comments

Screen Shot 2016-05-29 at 2.29.11 PM

사진출처 : 블룸버그

요즘 여기저기 강연을 할 기회가 많다. 나도 아는 것이 많지는 않지만 뭔가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내가 배우는 것이 더 많다. 그래서 강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을 감사히 생각한다.

그러면서 ‘질문’의 힘에 대해서 요즘 생각할 때가 많다. 강연을 마치고 항상 질문을 받는데 그룹에 따라서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일반화해서 말하기는 조금 조심스럽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다. 한국학생들보다 외국학생들에게서 더 질문이 많이 나온다.

끊임없이 질문하는 외국학생들

가장 열렬(?)한 질문을 받았을 때는 외국학생들 을 대상으로 강연했을 때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스타트업생태계에 대해서 강연을 4~5번쯤 했던 것 같다. 미국, 싱가폴에서 온 학생들들 각각 수십명그룹,  그리고 세계각국에서 스타트업프로젝트를 하러 온 1백여명 그룹앞에서 어눌한 영어로 강연을 하고 질문을 받았다. 질문을 받는다고 하자마자 바로 손을 들고 질문이 나오기 시작해서 시간이 다 되서 멈출 때까지 거의 끝도 없이 질문이 나왔던 기억이 있다. 아주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하기하면서 질문한다.

반면 한국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을 할 때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큰 그룹으로 수업을 할 경우 특히 그런데 “질문해달라”고 요청하면 잠시 정적이 흐른다. 다른 강사들은 이 순간을 견디지 못해 “질문이 없으면 이만 끝내겠습니다”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가능하면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30초에서 1분정도는 질문을 기다리며 여기저기 둘러본다. 그러다 보면 멈칫거리다가 질문을 하는 학생이 나온다. 보통 누군가 질문을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봇물터지듯 다른 학생들의 질문도 이어진다.

어떤 학교 학생들은 질문이 많고, 어떤 학교 학생들은 질문이 별로 없다. 왜 그런 차이가 나오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국학생과 외국학생들이 반반씩 섞여있는 수업에서 강연해 본 일도 몇번있다. 질문은 거의 외국인 학생들이 도맡아 한다. 나중에 수업이 끝나고 나왔는데 교정에서 어떤 학생들이 쫓아와서 “수업 잘 들었습니다”라고 인사한다. 그리고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왜 아까는 질문하지 않았나요”라고 물어보니 영어를 잘 못하기도 하고 자기가 너무 유치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닐까 걱정됐다고 한다. “영어와 질문은 많이 해봐야 느는 것이니 다음부터는 그런 걱정하지 말고 용감하게 질문하라”고 조언해줬다.

보수적인 문화의 회사일수록 질문이 없다

기업강연을 나가보면 조직문화가 보수적일수록 질문이 없는 편인 것 같다. 회사가 전통산업보다는 좀 새로운 영역에 있고 강연대상이 젊은 직원들일수록 질문을 많이 한다. 회사가 전통산업쪽에 기운 오래된 회사일수록, 강연대상자들이 중년남자 일색일 경우 질문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머리가 굳어버린 것일까. 질문이 나오는 경우에도 그 강연장에서 가장 직급이 높은 분들이 하는 경우가 많다. 사장님이 질문을 먼저해야 그 옆에 있는 임원들의 질문이 따라나오는 경우도 있다.

외국에서 컨퍼런스 등에 가보면 일방적인 강연보다는 패널토론위주로 구성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단방향 강연보다는 ‘대화’를 더 중시한다는 뜻이다. 외국에서 일을 해보면 회의에서 아무 말도 안하고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보다 적절하게 질문을 하면서 상사와 동료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해내는 사람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을 알 수 있다. 질문을 하지 않는 문화에서 성장한 한국인의 국제경쟁력이 이래서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질문하는 힘은 반복하면 키울 수 있다

고백컨대 내성적인 성격의 나도 성장하면서 전혀 질문이 없던 학생이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기사를 써야 하니 취재원과 1대1로 질문은 했지만 기자회견장처럼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거의 질문을 하지 않았다. 질문을 하는 것이 창피하기도 했고 질문거리가 잘 생각나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성향은 내가 작은 회사의 CEO를 해보고, 다음으로 옮겨서 조직의 장이 되고, 특히 SNS를 통해서 많은 질문을 받고 답을 하면서 상당히 바뀌었다. 질문을 하고, 질문에 답을 하면서 더 많이 배우게 되고 호기심과 생각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질문과 답을 주고 받으면서 일방적으로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어려운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을 통해서 내 생각을 키울 수 있게 된다.

좋은 질문은 관심과 준비를 통해서 나온다

가끔은 컨퍼런스나 세미나에서 사회자역할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는 역할을 맡는다. 미리 다른 분들이 발표할 내용을 리뷰하고, 세미나의 주제분야를 더 깊이 찾아보면서 공부를 하게 된다. 좋은 질문은 그렇게 ‘준비’를 해야 나온다. 그리고 대화할 때 관심을 가지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맥락에 맞는 적확한 질문을 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경험해본 가장 질문을 잘하고 많이 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뭐든지 궁금한 점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참지 않고 질문을 해댔다. 무례하게 보여도 상관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교육받고 자랐다. 당신도 우리처럼 바로바로 질문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질문하는 교육이야말로 ‘호기심’을 키우는 교육이다. 항상 의문을 갖고 진리를 탐구하는 소위 Critical thinking(비판적 사고)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다양한 아이디어와 창의성있는 아이디어도 이런 과정에서 나온다.

 

Screen Shot 2016-06-26 at 7.22.16 PM

영화 빅 숏에서 스티브 카렐이 연기한 펀드 매니저 마크 바움.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계속 질문을 던진다.

영화 빅숏에서 계속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마크 바움(스티브 카렐 분)의 모습을 보면서 ‘전형적인 유대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학교는 물론 밥상머리에서부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유대인중에 성공한 사람들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모 강연에서 이렇게 질문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어떤 분이 자신의 딸 이야기를 들려줬다. 자신의 초등학생 딸이 유난히 질문이 많은 아이였다고 한다. 하루는 학교담임선생님 면담을 하는데 “따님이 너무 질문을 많이 해서 진도를 나가는데 방해가 됩니다. 그러지 않도록 주의해주시길 바랍니다”라는 말을 들었단다. 너무 충격을 받은 그 분은 아이를 지금은 제주도의 국제학교로 전학시켰다고 한다.

우리 국민의 창의력을 향상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우선 학교에서, 직장에서 항상 누구나 평등하게 질문을 하고 답하는 문화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Written by estima7

2016년 6월 26일 at 7:33 pm

짧은 생각 길게 쓰기에 게시됨

Tagged with ,

카카오를 위한 변명

leave a comment »

Screen Shot 2016-06-15 at 11.00.27 PM

대기업이 된 카카오가 골목상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말이 많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는 O2O분야에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들어가 시장을 개척중인데 카카오가 택시, 대리운전, 미용실예약 등 분야에 들어와서 막강한 자본력을 업은 마케팅으로 스타트업을 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골목상권에 들어가 문어발처럼 사업을 확장하는 재벌대기업과 닮은 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대기업이 하면 반드시 스타트업을 이기고 O2O시장을 순식간에 장악해버릴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인터넷업계에서는 스타트업을 당하지 못하고 나가 떨어진 대기업이 많았다.

지금은 재벌기업 취급을 받는 카카오도 원래는 스타트업이었다.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니다. 2010년 3월 서비스를 시작한 카카오톡은 당시의 대기업이던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내놓은 마이피플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당시 나는 다음의 미국자회사인 라이코스CEO를 맡고 있었다.

Screen Shot 2016-06-15 at 11.00.50 PM

다음은 당시 최고의 인기였던 걸그룹 소녀시대를 기용해서 TV광고까지 포함한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하지만 결국 카카오톡에 무릎을 꿇었고 합병되서 회사 자체가 사라졌다.

이런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대기업은 생각만큼 쉽게 스타트업을 이길 수 없다. 다음과 같은 이유다.

우선 대기업은 스타트업에 비해 선택과 집중을 하기 어렵다. 스타트업은 회사의 모든 리소스를 한가지에만 집중하는 조직이다. 전직원이 밤낮없이 핵심 제품 하나만을 놓고 연구하고 고민하고 끊임없이 개선해 나간다. 반면 대기업은 보통 이미 돈을 잘 벌어주는 기존 사업이 있다. 다음의 경우에는 검색, 뉴스, 카페, 게임 등 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마이피플이라는 새로운 메신저서비스가 중요하다고 해도 회사전체의 역량을 집중해서 밀어주기는 쉽지 않았다.

두번째로 대기업은 스타트업에 비해 의사결정 속도가 느리다. 특히 관료주의에 시달리는 대기업은 의사결정이 느리다. 초기 카카오가 카카오톡에 사용자가 원하는 새로운 기능을 집어넣을때는 팀에서 그냥 토의해서 합의한뒤 바로 실행했을 것이다. 심지어는 스타트업에서는 위의 허락을 받지 않고 말단 개발자가 바로 새로운 기능을 집어넣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기업의 경우는 다르다. 해당 사업팀장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내용이 제한되어 있다. 여러가지 사업을 동시에 맡고 있는 임원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임원회의에 안건으로 올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에 실제 현장을 모르는 임원들과 CEO에게 왜 이런 기능을 집어넣어야 하는지 진땀을 빼며 설명해야 한다. 그렇게 하고도 현장에서 원하는 결정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료주의에 좌절한 인재가 회사를 떠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세번째로 대기업직원들은 일에 대한 동기부여가 스타트업직원보다 높기 어렵다. 성공에 대한 보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는 신사업이 성공해도 큰 보상을 받는 경우가 많지 않다. 사내 포상을 받거나 승진하는 정도가 전부다. 반면 스타트업구성원에게는 스톡옵션 등 큰 인센티브가 주어져서 성공하면 목돈을 마련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 카카오의 경우가 그랬다.

이런 이유로 대기업이라고 해도 스타트업과의 전쟁에서 쉽게 이길 수 없다. 덩치가 크면 오히려 동작이 굼띨 수 있다. 민첩한 작은 회사가 현장에서는 실제로 유리한 경우가 많다. TV광고 등 마케팅공세를 퍼부어도 잠깐이다. 일반 소비자들은 결국 쓰기 편한 서비스로 돌아간다.

나는 오히려 카카오가 걱정된다. 5년전 스타트업이었던 카카오는 모바일메신저전쟁에서 다음, 네이버, SKT(틱톡) 등 대기업을 멋지게 이겼다. 심지어 공룡회사들인 이동통신사들은 조인(Joyn)이라는 메신저를 만들어서 카카오에 도전하기까지했지만 달걀로 바위치기였다. 카카오는 그리고 2014년 5월 다음과 합병해서 지금의 대기업이 됐다. 하지만 지금의 카카오는 오히려 너무 많은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느라 집중력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매출성장과 수익은 둔화되고 있다. 예전의 다음과 비슷하다.

카카오택시도 미완의 성공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수익모델은 없다. 콜비를 유료화하는 순간 지금의 사용자들이 상당수 외면할지도 모른다. 미국의 우버, 리프트, 중국의 디디추싱 같은 수십조가치의 공룡경쟁기업들과 경쟁하기엔 갈 길이 멀다.

물론 나도 카카오가 한국에서 작은 스타트업들과 경쟁하기 보다는 글로벌무대에서 구글, 페이스북과 맞짱을 뜨면서 경쟁하는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렇다고 카카오가 내수사업을 하면 안된다고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이 하는 것은 무조건 악이고 작은 기업이 하는 것은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누가 만들든 소비자를 위해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결국은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민첩한 스타트업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대기업이 알게 되면 결국은 손을 들고 오히려 스타트업에게 투자하거나 인수를 시도하게 될 것이다. 사실 카카오는 그동안 김기사, 파크히어 등 스타트업을 많이 인수해 왔다. 또 김범수의장이 설립한 케이큐브벤처스를 통해서도 많은 스타트업에 투자해왔다. 이번에도 O2O시장에서 직접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카카오는 계속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인수해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스타트업을 응원한다. 대기업이었던 다음을 누르고 시장을 평정한 예전의 스타트업 카카오처럼 대기업이 된 카카오와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시장을 압도하는 스타트업이 계속 나오기를 기대한다.

Written by estima7

2016년 6월 15일 at 11:11 pm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 온 인공지능비서-아마존 에코

leave a comment »

지난 3월 한국을 강타한 알파고 충격.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충격의 4대1 패배를 당한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인공지능이 바꿀 미래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을 모두 깨닫게 됐다. 정부는 대책회의를 열고 5년간 1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또 대기업주도의 인공지능연구소를 세우기로 했다. 갑자기 호떡집에 불이 난 느낌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인공지능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와 있다. 미국의 가정에는 지난해부터 인공지능비서가 급속하게 보급되고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아마존 에코다.

*****

아마존 에코 홍보비디오에서 캡처한 사진.

아마존 에코 홍보비디오에서 캡처한 사진.

지난해말 미국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화제의 제품을 하나 사왔다. 아마존에서 나온 에코라는 원통형 무선 블루투스 스피커다. 180불로 좀 비싸다. 이미 블루투스 스피커는 많이 있는데도 이 제품을 구입한 이유는 우선 호기심 때문이었다. 2014년 여름 아마존은 파이어폰이라는 첫 스마트폰을 내놨다가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그런 다음 2014년 11월에 평범해 보이는 원통형 스피커를 내놓은 것이다. “누가 저런 것을 살까. 아마존도 어지간히 만들 것이 없었나 보다”하는 생각도 잠시, 이 제품은 놀랄만한 히트상품이 됐다. 아마존에서 에코에 3만6천개의 리뷰가 달렸으며 평균 평점은 5점만점에 4.4점이다. 조사기관인 CIRP에 따르면 에코는 3월현재 에코는 미국에서는 4백만대가 팔렸다.

[에코의 쓰임새를 잘 설명한 아마존 홍보 비디오. 한번 보시길.]

다른 블루투스 스피커와 차별화되는 이 제품의 특징은 목소리로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비서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항상 켜져있기 때문에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그냥 “알렉사”라고 부르면 번쩍거리며 스피커가 깨어난다. “플레이 뮤직”이라고 음악을 틀어달라고 하면 알아서 미리 아마존클라우드에 저장해 둔 곡을 틀어준다. 소리가 너무 크면 “볼륨 다운”이라고 하면 된다. 음악재생을 중단시키려면 “알렉사, 스톱”이라고 하면 된다. 라면을 끊일 때도 냄비에 면을 넣으면서 “알렉사, 셋더타이머포포미닛”이라고 하면 된다. 그러면 4분뒤에 알람을 울려준다.

영어원어민이 아닌 관계로 이 제품을 집에 가져와서 좀 유치하게 쓰고 있지만 아내는 아주 편리해 한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요리를 할 때 음악을 듣는 용도로 주로 쓴다.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누를 필요가 없이 음성으로 켜고 끌 수 있으니 편하다는 것이다.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춘 제품인 것이다. 스마트폰을 조작해서 특정 음악을 틀거나 날씨를 알아보거나 뉴스를 읽는 것은 번거로울 수 있다. 하지만 말로 명령하는 것은 4살짜리 어린 꼬마도 쉽게 할 수 있다. 더구나 집안 어디에서나 “알렉사”하고 부른 다음에 물어보면 대답해준다.

사물인터넷(IoT) 대응 제품을 연결하면 음성으로 조명을 켜거나 끌 수 있다. 아마존을 통해 자주 쓰는 일용품을 주문할 수 있다. 피자를 주문하거나 심지어 차고에 있는 자동차의 시동을 미리 켜거나 우버택시를 호출할 수도 있다. 편리한 인공지능 개인비서다. 심지어 아이들은 알렉사와 친구처럼 대화하기도 한다.

에코의 성공에 고무된 아마존은 이 제품을 사물인터넷 허브로 만들기 위해서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와 쉽게 연결될 수 있도록 표준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확장성을 높였다. 인터넷에 보면 심지어 아마존 에코와 테슬라 전기자동차를 연결해 “알렉사, 테슬라를 차고에서 꺼내라”라는 명령으로 테슬라를 차고에서 자동으로 꺼내는 사람까지 나왔다. 아마존 리뷰에 한 사용자는 “알렉사, 내 사랑. 알렉사가 온 뒤로 외롭지 않게 됐다”고 고백하기까지 했다.

아마존 에코가 파이어폰의 처참한 실패를 딛고 나온 제품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파이어폰은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개발된 음성인식, 인공지능 기술이 에코에 적용되는 바람에 의외의 히트상품이 나왔다.

Screen Shot 2016-05-25 at 11.42.46 PM

Google Home

이렇게 에코돌풍이 일어나자 이번에는 구글이 반격에 나섰다. 구글은 지난 5월 18일 열린 구글개발자컨퍼런스에서 ‘구글 홈’이라는 무선 블루투스 스피커를 올해말에 내놓는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컨퍼런스에서 보여준 데모동영상에서 한 가족이 이 스피커를 중심으로 바쁜 아침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헤이 구글”이라고 스피커에 말을 걸며 아들방에 불을 켜라고 시키기도 하고, 저녁식당예약시간을 변경해달라는 요청도 쉽게 한다. 아이들은 숙제를 하면서 어려운 내용을 몰래 구글 홈에게 물어본다.

[구글I/O컨퍼런스에서 공개된 구글 홈 홍보 동영상. 역시 아마존 에코처럼 온가족이 다같이 자유롭게 사용하는 컨셉으로 만들었다.]

과연 구글 홈이 아마존 에코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가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구글에 이어 애플도 아마존 에코 대항마를 개발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스피커형태의 인공지능비서 개발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

이런 인공지능비서는 모바일메신저안으로도 침투중이다. 페이스북이 최근에 발표한 챗봇은 메신저서비스를 통한 인공지능 고객응대 서비스다. 사람들이 페이스북메신저에서 대화형식으로 쇼핑도 하고 뉴스와 교통상황도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신문사인 월스트리트저널, 의류회사인 H&M, 꽃배달회사인 800플라워스 등이 페이스북의 챗봇기능을 우선 도입하기로 했다.

Screen Shot 2016-06-06 at 2.21.53 PM

[페이스북의 챗봇을 이용해 하이얏호텔을 예약하는 모습. 사진출처: 페이스북]

예를 들어 메신저창에 대고 “꽃을 보내고 싶어요. 장미꽃이요.”, “이런 꽃다발이 있는데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챗봇]”, “1번이 좋겠네요.”, “누구에게 보내실 겁니까.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세요.[챗봇]” 이런 대화를 인공지능봇과 나누면서 물건을 주문하게 되는 것이다.

구글도 개발자컨퍼런스를 통해 ‘알로’라는 인공지능 모바일메신저를 내놨다. 이 메신저에는 구글비서가 들어가 있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우리 근처 한국식당에 가서 점심할까?”라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해보자. 구글비서가 끼여들어서 “근처 한국식당은 1. 아리랑 2. 무궁화 3. 금강산이 있습니다”라고 알려준다. 그런 다음 친구와 “아리랑이 맛있겠다. 1시가 어떨까”, “그래, 그렇게 하자”고 대화가 오간다면 구글비서가 “1시 아리랑으로 예약을 완료했습니다”라고 알려준다.

Screen Shot 2016-06-06 at 2.27.01 PM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눈치빠른 인공지능비서와 음식점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소위 O2O(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해주는) 비즈니스환경 덕분이다.

이처럼 싫든 좋든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다. 아마존 에코나 구글을 음성으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문화를 가진 미국에서는 일반인들이 거부감 없이 이런 인공지능비서를 이용하는 시대다. 가족끼리 같이 이용하는 것을 고려하면 아마존 에코는 이미 천만명이상이 이용하고 있을 것이다.

구글은 아예 ‘알파고’를 일상생활에 비서로서 파견할 기세다. 이들 인공지능비서는 스피커의 모습으로, 스마트폰의 모습으로 조용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필요할 때 끼여든다. 지금까지는 “알렉사”하고 물어봐야 답을 하지만 앞으로는 물어보기도 전에 척척 “아기 기저귀가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미리 주문해 둘까요”라고 먼저 말을 걸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프라이버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된다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애플 같은 회사들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는 ‘빅브라더’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creen Shot 2016-06-06 at 2.52.23 PM

[메리 미커의 인터넷트렌드2016 슬라이드에 나온 아마존 알렉사 플랫폼의 목표. 음성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는 플랫폼을 지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둑고수들의 수를 학습해서 실력을 키운 알파고처럼 수백만명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아마존 에코는 갈수록 더 똑똑해진다. 얼마지나지 않아 나와 대화하는 상대가 진짜 사람인지 컴퓨터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워질지 모른다.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인간세상에 들어오는 이런 인공지능컴퓨터와 어떻게 같이 살아갈 것인가. 우리 아이들의 일자리를 이들이 빼앗아가는 것은 아닐까. 고민이 깊어진다.

***

한국일보에 기고했던 글을 업데이트.

Written by estima7

2016년 6월 6일 at 2:56 pm

[라이코스 이야기 23] 세금 보고

leave a comment »

이번에는 미국직장에서는 어떻게 연말정산을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직장에서는 2월중순까지 연말정산을 완료하고 지난 한해동안 원천징수한 근로소득세와 주민세를 정산해서 더 낸 부분이 있다면 환급받고 덜 냈다면 모자라는 세금을 더 낸다. 그리고 그 결과는 2월분 월급에 반영된다.

미국직장에서도 기본적으로 비슷하게 연말정산이 진행된다. Tax Return이라고 한다. 다만 직장인의 경우 마감시한이 4월15일로 한국보다 더 늦다. 그리고 회사에서 도와주지 않는다. 직접 본인이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공짜가 아니다. 돈이 꽤 든다.

***

미국의 회사는 직원개인의 지난 1년간의 임금내역과 연방 및 주 세금 원천징수내역이 담긴 W-2라는 서류를 직원의 집주소로 1월31일까지 발송해 주게 되어 있다. 그럼 이 W-2를 받은 미국의 직장인은 4월15일까지 미국연방국세청(IRS)과 거주하고 있는 주의 세금담당부서로 Tax return 보고를 해야 한다. 그럼 정산내역에 따라서 더 낸 세금을 돌려받거나 모자라는 세금을 더 납부하게 된다.

2009년 3월에 보스턴 라이코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는 2010년초 첫번째 세금보고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 나는 회사의 HR부서나 회계부서에서 한국처럼 연말정산가이드를 주고 도와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런 안내가 없었다. 나중에 궁금해서 회사의 IT를 책임지고 있는 조에게 물어보니 “텍스리턴 소프트웨어를 사서 직접 하면 된다”는 답을 받았다.

turbotax

인튜이트의 터보택스

알고 보니 ‘터보택스(Turbo Tax)’, ‘택스액트(Tax Act)’ 같은 40불~60불 정도의 세금정산을 도와주는 소프트웨어를 사서 쓰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내가 명색이 ‘사장’인데 이렇게 직접 연말정산을 직접해야 한다는 것이 좀 놀라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아마존에서 한 50불인가를 주고 터보택스를 구입했다. 그리고 CD를 넣고 실행해봤다. 시키는대로 W-2에 있는 소득내역과 세금내역, 그리고 세금공제를 받을 수 있는 내역을 질문에 따라 입력하면 된다. 예를 들어 “Are you married?(결혼했나요?)”, “자녀는 몇인가요. 각각 몇살인지 입력하세요” 등등 계속 해서 나오는 각종 지시에 따라서 입력하면 세금보고서가 작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에서 살다가 중간에 미국으로 와서 세금보고를 처음으로 하는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주위 한국분들에게 문의하자 “예외사항이 많아서 당신의 경우는 터보택스로 혼자서 세금신고를 하기 어려울 것이다. 회계사나 세무사의 도움을 받으라”는 조언을 받았다. 미국에서 처음하는 세금보고를 잘못했다가 탈세(?) 혐의를 받으면 큰일나지 않겠는가. 겁이 나서 터보택스는 반납하고 다시 주위에 어디에 가서 세금보고를 하면 되냐고 물어봤다.

hr블록

사진출처 garryfrrz.soup.io

그러자 세금보고를 도와주는 ‘H&R블록’이라는 회사가 있으니 그곳에 가보라는 조언을 받았다. 회사 근방에 있는 H&R블록지점을 찾아서 예약하고 회사가 끝난다음에 찾아갔다. 나는 나이가 족히 70세는 넘어보이는 인도출신 할아버지가 담당자로 배정되었다. 이름은 ‘해리’라고 했다. 아주 느릿느릿 독수리타법을 구사하는 그 할아버지와 며칠에 걸쳐 몇시간을 씨름하면서 미국에서의 첫번째 세금보고를 완료했다. 이 할아버지는 은퇴하고 말년에 소일거리로 일주일에 며칠만 나와서 일을 한다고 했다.

이 세금보고를 작성하는데 H&R블록에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2백불넘게 냈던 것 같다. 전년도에 보수적으로 계산해서 세금을 많이 냈던 탓에 IRS와 매사추세츠주 세무부서에 정산내역을 보고하면서 수천불의 환급액이 계산됐다. 그리고 일주일인가 후에 내 은행계좌에 IRS와 주정부에서 각각 세금 환급액이 입금됐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미국직장인의 세금보고에 대해 경험할 기회가 있었다. 무엇보다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많은 미국인들이 이렇게 터보택스 같은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직접 회사의 도움없이 세금보고를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

관련해서 한가지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오바마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티모시 가이트너는 2001년에서 2003년까지 IMF의 디렉터로 일하는 동안 세금보고를 부정확하게 해서 나중에 4만2천불의 세금을 추가로 추징당했다. 그는 2009년의 재무장관 인준 상원청문회 당시 의원들로부터 이 사실을 심하게 추궁당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세금보고를 부정확하게 한 것은 자신이 직접 터보택스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세금내역을 입력하면서 실수를 했기 때문이었다. IMF의 국장이자 나중에 재무장관이 될 정도의 고위인사도 손수 서류를 뒤져가면서 직접 컴퓨터소프트웨어로 세금보고를 하는 것이 미국이다. 위 동영상 마지막부분 2분지점쯤 상원의원이 “어느 브랜드의 소프트웨어를 썼나요”라고 질문하자 가이트너는 멋적게 웃으며 “이건 내 책임입니다. 소프트웨어 회사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며 “터보택스를 썼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문화가 있기 때문에 미국의 소프트웨어산업이 잘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Written by estima7

2016년 6월 4일 at 6:51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