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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정치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백악관기자단만찬
4월30일 토요일밤 워싱턴DC에서는 2011 White House Correspondents’ Dinner 라는 행사가 있었다. 백악관출입기자협회(WHCA)에서 주관하는 행사로 1920년부터 지금까지 90년동안 열려온 유서깊은 행사다. 최근에는 점점 헐리웃스타 등 유명인들이 많이 참석하면서 오락성행사(?)로 변질되고 있는 것 같은데 어쨌든 대통령의 유머감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행사인듯 싶다. 이날만은 대통령이 “Comedian in chief”다.
매년 4월 마지막 토요일에 한다. 이번에는 사실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다음날인 오늘 일요일 아침에 NYT사이트를 통해 접하게 되어 동영상을 흥미롭게 감상했다. 한국언론을 찾아보니 마침 연합뉴스가 오바마, 출생논란 소재 화끈한 조크로 ‘복수’란 제목의 기사로 소개했는데 동영상도 없고, 사진도 없고, 번역을 통해서는 그 미묘한 정치조크의 뉘앙스를 이해하기는 무리라고 생각해서 여기 간단히 소개해본다. (이처럼 동영상과 사진자료가 공개되어 있을 경우는 한국언론도 반드시 자료와 관련링크를 붙여줬으면 좋겠다.)
위에 링크한 비디오를 실행하면 “I’m a real american.”이란 노래와 함께 화면에 오바마의 하와이 출생증명서가 작렬하는 비디오를 잠시 보여주고 대통령의 인사말이 시작된다. 오바마는 얼마전 도널드 트럼프의 집요한 의혹공세에 지쳐, “Long form birth certificate”를 공개했었다. 요약판이 아닌 문서전체(Long form)을 공개해 그가 사실은 외국태생이라는 논란을 완전히 잠재웠다.
오바마는 이 사실을 소개한뒤 “한발 더 나아가 오늘 최초로 내 출생비디오(Birth video)를 공개한다. 사실 나도 처음 보는 것이다”라고 동영상을 보여줬다. 그것은 바로….
라이온킹의 일부장면ㅎㅎ. 그가 항상 아프리카의 아들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을 빗댄 조크다. 비디오를 보여준뒤 그는 “(노파심에서) 한가지 여기 있는 폭스뉴스팀에게 확실히 하고 싶다. 이건 조크다. 이것은 나의 출생비디오가 아니다. 애들보는 만화영화다. 디즈니라는 회사에서 만들었다. 찾아보면 Long form 비디오도 있다.”라고 항상 자신을 둘러싼 의혹설을 증폭시키는 폭스뉴스에 한방 먹였다.
그는 특히 이날 워싱턴포스트의 초청으로 만찬에 참석한 도날드 트럼프를 집중적으로 놀렸다.
“Donald Trump is here tonight,” “Now, I know that he’s taken some flak lately, but no one is prouder to put this birth certificate to rest than The Donald. Now he can get to focusing on the issues that matter. Like, did we fake the moon landing? What really happened at Roswell? And where are Biggie and Tupac?”
오바마는 “이제 나에 관한 출생의혹이 해소된 만큼 그는 이제 더 중요한 이슈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과연 달착륙이 진짜인가? 로스웰UFO사건이나 베기와 두팍은 과연 어떻게 죽었는가?”라고 웃음을 유도했다. 달착륙조작설, 로스웰, 베기와 투팍은 미국에서 이제 의혹설의 대명사가 된 사건들이다.
그리고 이 만찬에서 항상 백악관과 언론이 팀을 이뤄 만든 코미디동영상을 공개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는데 이번엔 King’s speech를 패러디해서 웃음을 자아냈다.
영국의 조지6세가 한 치료사의 도움을 받아 말더듬이증세를 치료한다는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풀어낸 이 영화를 패러디해 “The President’s speech”라는 영화예고편(?)을 만들어낸 것이다.
대체적인 줄거리는 오바마의 텔레프롬프터예산이 삭감되었다는데서 시작된다. (오바마는 텔레프롬프터없이는 연설을 못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심지어는 유치원에서 연설하면서도 텔레프롬프터를 설치한 일이 있어 코미디소재로 한참 웃음거리가 된 일도 있었다. 역으로 말하면 그만큼 말에 조심을 한다는 해석도 할 수 있을 듯 싶다.)
연설장애(?)를 겪는 그에게 강력한 도우미가 등장한다. 조셉바이든 부통령이다. 그는 “가슴에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공식석상에서 F***워드를 남발해 자주 구설수에 휘말린다.) 킹스스피치 라이오넬로그역의 패러디역할인 그의 도움으로 오바마는 감동적으로 연설장애를 극복한다. 뭐 그런 식으로 만든 듯 싶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고 보면 이 비디오를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비디오 제작에 MSNBC의 크리스 매튜, NBC뉴스의 사반나거트리 백악관출입기자가 참여해서 천연덕스럽게 “텔레프롬프터 예산이 사라졌다. 오바마가 Yes, we can에서 No I can’t가 됐다”의 멘트를 날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웃음이 넘치는, 미국정치계의 여유를 보여주는 행사인 것 같지만 꼭 반응이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백악관과 언론이 서로 긴장관계를 늦추고 지나치게 친목을 다지는 자리라는 비판도 있다.
어쨌든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사인 것 같아서 좀 길게 소개해봤다. 하루가 지나서도 이렇게 행사의 내용을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C-SPAN의 덕이다. 모든 국회행사와 주요정치행사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C-SPAN채널은 방대한 인터넷라이브러리를 구축, 미국정치계의 모든 움직임을 투명하게 전달한다. C-SPAN의 백악관출입기자만찬 홈페이지에 가보면 2006년도 만찬동영상부터 다 찾아볼 수 있다. 예전자료는 모든 발언내용도 정리되어 있어 완벽하게 검색까지 될 정도다.
C-SPAN 덕분에 일부정치인들의 망언이나 추태를 다 실시간으로 볼 수 있고, 얼마든지 인터넷에서 찾아서 트위터, 페이스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더욱 조심하는 이유다. 정치인들의 공적인 모습의 일거수 일투족을 이처럼 완벽하게 공개해야 투명성이 향상된다. 한마디한마디에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자신의 생각, 정책을 녹여내기 위해서 노력하게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준엄한 언론과 국민의 비판을 이겨내기 어렵다. 한국정치계도 이런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소개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