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이용해본 Airbnb의 가능성
지난 5월 개인적인 일로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왔다. 모교인 UC버클리에서 열리는 Reunion 행사와 샌프란시스코시내에서 열리는 벤처창업관련행사에 참석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숙소는 샌프란시스코시내의 교통이 좋은 곳에 자리한 값싼 호텔에 묵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정일을 며칠 안남겨두고 호텔예약을 하려고 했더니 웬만하면 모두 세금포함해 2백불이 넘는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모텔은 자동차가 없이는 접근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렌터카비용을 생각하면 결국 2백불이하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없었다. 바쁜 일정속에 내가 필요한 것은 단지 잠만 자면 되는 장소인데 그렇게 큰 돈을 지불하기는 너무 아까왔다. 잘못하면 2박에 한화로 50만원 가까운 돈을 쓰게 되는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Airbnb라는 웹서비스가 떠올랐다. 지난해부터 꾸준히 화제를 모으기 시작한 이 서비스는 값싼 숙박을 원하는 여행자와 집안의 남는 방을 대여해 수입을 얻고자하는 집주인을 인터넷으로 연결해주는 일종의 공유서비스다. Airbnb라는 이름은 간이침대를 뜻하는 공기침대(Air bed)와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여관인 B&B(Bed and breakfast)를 결합한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 같지만 나는 사실 이 서비스에 대해 좀 부정적이었다. 어떻게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을 자신의 집에 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또 어떻게 낯모르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편안히 묵을 수가 있을까? 이 두가지가 나의 가장 큰 의문이었다. 그래서 그다지 적극적으로 이용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샌프란시스코여행의 너무 비싼 숙박비용이 나로 하여금 Airbnb.com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도록 했다. 이 사이트에서 샌프란시스코와 버클리근처를 중심으로 검색해봤다. 그러자 샌프란시스코에서 멀지않은 오클랜드와 버클리쪽에 생각보다 많은 방들이 나왔다. 그중에 마음에 드는 방을 하나 발견했다. 1박에 겨우 54불이었다. 지하철역에서도 겨우 5분거리의 위치여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대중교통으로 3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30명이 넘는 예전 숙박객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실명으로 긍정적인 리뷰를 남겨놓았다는 것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또 집주인입장에서도 나를 페이스북 계정과 휴대전화번호로 실명인증을 해서 기본적인 신원확인은 할 수 있다는 점이 안심이 될 것이다. (몇몇 집주인들은 나에 대해 기본정보이상의 추가설명을 메일로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낮에 체크인하려고 갔는데 집주인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사소한 걱정이 있었다. 그래서 집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질문했다. 그러자 걱정할 필요 없고 그 시간에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답장이 몇시간안에 도착했다. 내 우려는 대부분 해소된 셈이다. 그래서 바로 웹사이트에서 카드로 결제했다. 2박 108불외에 Airbnb로 가는 12%의 커미션 13불을 더해서 총 121불을 냈다. 그러자 집의 약도, 주소, 집주인의 휴대폰, 이메일 등 연락처가 표시된 깔끔한 영수증이 이메일로 날아왔다.
실제 집에 묵은 경험은 내가 원하던 딱 그대로였다.(즉, 잠자는 것 이외에는 별로 바라는 것이 없었다.) 집주인인 젊은 부부는 내게 아파트의 현관과 집열쇠를 넘겨주었고 나는 그들을 방해할 필요없이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 내가 필요한 대로 아침 일찍 샤워한 후에 집을 나서서 볼 일을 보고 저녁에 들어와서 취침하는 방식으로 무사히 깔끔한 방에서 이틀을 보냈다. 집의 무선인터넷을 썼으므로 인터넷접속도 쉽고 속도도 빨리서 마음에 들었다. 체크아웃도 그냥 열쇠를 집주인에게 건내주는 것으로 끝이었다.
집을 떠나면서 이렇게 여분의 방을 렌트하기 시작한지 1년이 넘었다는 집주인에게 얼마나 자주 예약이 들어오느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믿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거의 매일 예약이 되어 있다”고 대답했다. 지하철역에서 워낙 가까와서 그런 것 같다는 설명이었다. 또 내가 체크아웃하면 바로 다음날 숙박비 108불이 Airbnb에서 자신의 계좌로 입금된다고 한다.
그 집을 나서면서 이거야 말로 비용을 절약하기를 원하는 여행자와 남는 방을 활용해 여분을 돈을 벌고자 하는 집주인 모두에게 윈윈(Win-win)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Airbnb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여행에서 최소한 3백불은 더 숙박에 지불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친 김에 6월에 워싱턴DC를 방문하는 길에 Airbnb를 또 이용했다. DC도 샌프란시스코못지 않게 시내의 호텔비가 비싼 도시였기 때문이다. 1박 2백불이하로는 거의 호텔방을 구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DC 다운타운에서 버스로 10여분거리의 주택가에 있는 스튜디오를 1박에 120불에 빌렸다. 이번에는 집주인과 얼굴을 마주칠 필요도 없었다. 그가 이메일로 보내준 안내서에 따라 아파트앞에 달아둔 Lockbox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키를 꺼내 아파트에 들어갔다.
조용하고 깔끔한데다 집 바로 앞이 버스정류장이어서 특히 편리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집주인에게 메일로 물어보면 금새 답이 왔다. (집주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체크아웃도 집열쇠를 다시 Lockbox에 넣고 잠그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 이 스튜디오 역시 내 앞 뒤로 계속 숙박객이 있었다.
이처럼 내 Airbnb 경험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아마도 내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고, 집주인과 대면하기도 원하지 않았으며, 개인적인 여행이었기 때문에 괜찮았던 것 같다. 업무상 출장을 가는데 만약 집주인이 없어 집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집에 문제가 있어서 일정을 변경해야 한다면 큰 문제일 것이다.
김동주님(@mynameisdjkim)의 GeekTrip #2 – 불쾌했던 Airbnb 경험 포스팅에 보면 Airbnb로 예약을 하고 갔는데 집주인이 나타나지 않아서 발을 동동구른 상황이 묘사되고 있다.
호스트의 말에 따르면 아파트에 도착하면 현관문은 열려 있을 것이고, 탁자위에 키가 있을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철썩같이 믿고, 그 아파트에 도착을 했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다행히 집주인의 전화번호가 있어서 그 번호로 연락을 했는데 집주인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시간은 이미 오후 5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타지에서 오후5시가 넘었는데 숙소를 못 구할때의 당황스러움은 겪어본 사람들만이 알 수 있을것이다.
결국 김동주님은 Hotels.com을 통해 다른 숙소를 구했다. 물론 조성문님처럼 환상적인 Airbnb경험을 한 경우도 있다. 새로운 플랫폼 위에 지어진 비즈니스, Airbnb-조성문의 실리콘밸리이야기. 하지만 조성문님도 지금까지 4번정도 Airbnb를 이용해봤는데 이용경험이 그닥 좋지 않았던 경우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Airbnb는 주목할 만한 모델임이 분명하다. 모델자체도 신선하지만 웹사이트를 참 잘 만들었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도 많지만 예약에서부터 결제, 이용까지 깔끔한 사용자경험을 제공한다.
이런 서비스는 외국관광객이 몰려들고 있지만 적당한 가격의 호텔방은 찾기 힘든 서울에서도 잘 될 수 있는 모델이 아닐까?
사실 이미 비앤비히어로, 코자자 같은 한국형 소셜민박사이트들이 이미 한국의 Airbnb를 꿈꾸며 성업중이다. 이런 공유경제형 인터넷서비스가 페이스북이나 리뷰문화가 약한 한국에서도 제대로 뿌리내리며 성장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지켜봐야지.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 나이를 잊고 일한다는 것
미국에서 일하다 보면 여러 면에서 한국의 직장문화와 다른 차이를 느끼게 된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서로 나이에 비교적 연연해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이 미국 직장문화의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연공서열이나 장유유서의 개념이 희박한 미국 회사에서는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상관이거나,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부하로 두고 일하는 것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후배가 자기보다 먼저 승진하거나, 나이는 들어 가는데 일정 직급 이상 승진하지 못하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직을 떠나야 하는 한국 문화와는 확실히 다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우선 따로 존대어가 없는 영어를 쓴다는 것이 크다. 상하관계를 의식하지 않고 수평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호칭이나 직함을 쓰지 않고 이름만으로 서로를 부르는 문화도 크게 작용한다. 회사 사장에게 “정욱” 하고 이름만으로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언어습관 외에 제도적인 뒷받침도 크다. 직장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배제하기 위해서 많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3년 전 라이코스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놀란 것 중의 하나는 사장도 직원들의 인적사항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당시 80여명 되는 직원들을 좀 더 잘 알고 싶어서 인사담당 매니저에게 직원들의 신상파일을 보여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그는 “사장도 직원들의 나이·인종·결혼 여부 등의 인적사항은 볼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인사 업무상 필요한 담당 직원 이외에는 누구도 직원들 개개인의 인적사항을 알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직원을 채용할 때도 내가 최종면접을 하겠다고 하니 그는 “면접 때 물어봐서는 안 될 것”이 적힌 메모를 한 장 보여주었다. 그 메모에는 지원자의 나이, 종교 등은 물론이고 결혼 여부, 자녀가 몇 명인지, 아이를 가질 예정인지, 시민권은 갖고 있는지, 질병 이력이 있는지 등을 물어봐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었다. 또 고교나 대학을 언제 졸업했는지, 어떤 명절을 쇠는지, 어떤 억양을 쓰는지 등 나이, 종교, 출신국가 등을 유추해낼 수 있는 질문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력서에 사진, 주민등록번호, 키, 몸무게, 부모의 직업·학력까지 적는 문화에 익숙한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직장에서 상대방이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는 가급적 개인의 인적사항을 물어보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선입관을 갖지 않게 된다는 측면에서 장점이었다. 주어진 일만 잘하면 되지 나이, 성별, 인종 등이 무슨 상관인가. 물론 사람이 일하는 회사이니 친해지면 비공식적으로 나이나 결혼 여부 등 개인 신상을 대충 알게 된다. 하지만 적어도 채용 과정에서는 최대한 그런 요소를 배제하고 해당 직무에 적합한 사람인지만을 본다.
2년 전부터 인사담당 부장으로 나와 함께 일한 다이애나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다. 나는 50살 정도로 생각했는데 한번도 나이를 물어본 일이 없었다. 같이 일하면서 나이가 부담스럽기는커녕 오히려 그분의 다양한 경험과 연륜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조직을 원만하게 운영해가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러다가 최근 처음으로 그의 나이를 알게 되었다. 내 추측보다 10살이나 많은 60살이었다.
한국의 직장에서 60살 여성이 자기 아들뻘을 상관이나 동료로 삼고 부담 없이 일할 수 있을까. 미국이 이렇게 된 것은 지난 수십년 동안 소수자들이 줄기차게 차별에 항의하고 소송을 내어 고용차별을 철폐하는 법안이 제정되는 등 계속해서 감시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우리도 진지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7월 3일자 한겨레신문 오피니언란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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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에 상관없이 일할 수 있는 문화는 예전부터 해보고 싶은 이야기여서 한겨레신문에 칼럼형식으로 써봤다. 그런데 지면의 제한 때문에 쓰고 싶은 내용을 다 쓸 수 없었다.
윗 글을 읽고 오해하면 안될 것은 모든 미국회사의 문화가 다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회사에 따라 연장자를 존경하고 나이를 중히 여기는 회사도 있을 것이다. 채용시에 겉으로는 차별하지 않는 척하면서 은근히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을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법적으로 물어봐서는 안된다고 하지만 면접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지원자의 자녀가 몇명이라는 것이 드러나기도 한다. (본인이 먼저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또 사내 추천을 통해서 들어오는 경우 추천자를 통해서 알려지기도 한다.)
한번은 멀리서 출퇴근하는 어린 두 아이의 엄마를 채용할 일이 있었는데 한 임원이 “저 사람을 뽑으면 나중에 자르기 어렵다”고 뽑지 않는 것이 좋다고 내게 이야기한 일도 있었다. (그래도 뽑았다) 새로 들어오는 직원이 아이 5명의 엄마라고 해서 화제가 된 일이 있었는데 본인은 아주 불쾌해 하며 다음부터는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일도 있었다.
한 백인직원은 남부의 어떤 회사에서 일한 일이 있었는데 백인들이 흑인들을 차별하는 문화에 질려서 그만뒀다는 얘기를 내게 한 일도 있었다. 회사마다 분위기가 참 많이 다르다.
하지만 위에 적은 것처럼 어쨌든 한국과 비교해서는 미국의 직장문화가 상대적으로 휠씬 나이나 호칭, 상하관계를 덜 신경쓰고 일할 수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미국사람들이 특별히 더 나이스하고 훌륭한 사람들이어서 이렇게 나이차별이 없는 문화를 가지게 됐다는 것이 아니다.
언어습관 등의 문화도 있지만 이것은 오랜 시간동안 부당한 차별에 항거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정적으로 보지만 소송대국이라는 것도 한 몫을 했다. 뭐든지 차별이 있다고 보면 계속해서 소송이 이어졌고 그래서 한단계씩 직장에서의 차별이 법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법시스템이 바로 서있고 그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물론 미국도 한국못지 않게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상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그것은 물론 부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역시 상대적으로보면 한국보다는 휠씬 법이 서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HR디렉터인 다이애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미국도 옛날에는 똑같았다”는 말을 한다. 매드맨이란 드라마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백인 남성들이 사무실에서 시가를 피우고 위스키를 마시는 남성위주의 세계, 여성들은 곱게 차려입고 비서나 타이피스트로만 일하는 세계가 매드맨에서는 펼쳐진다. 그 직장공간에 흑인이나 소수민족은 보기도 어렵다.
지금도 다이애나는 가끔 유럽에서 온 이력서를 보면 사진이나 생년월일, 여권번호 같은 개인정보들이 붙어있어서 놀란다고 한다.
나는 마틴 루터 킹목사를 비롯한 많은 선구자들 덕분에 미국내 아시안들도 비교적 차별없는 사회에서 살게 됐다고 생각한다.(세상을 바꾼 선구자들-여성마라톤의 경우 포스팅 참고)
한국에서도 말로만 차별이 있다고 하지말고 법적, 제도적 장치를 꾸준히 만들어나가고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그 부당성을 끈질기게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 부러운 미국의 졸업식 축사 문화
해마다 5월에서 6월초까지는 미국의 졸업시즌이다. 이 즈음엔 교육도시인 보스턴의 호텔은 방이 완전히 동이 난다. 자식들의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기 위해 전세계에서 날아온 학부모들 때문이다. 이런 미국의 졸업식에서 내가 유독 부러워하는 것이 있다. 졸업식축사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미국대학의 가장 훌륭한 전통중 하나다.
전현직 대통령부터 뉴스앵커, 소설가, 대법관, 기업인, 영화배우, 코미디언까지 다양한 분야의 명사들이 미국전역의 대학에서 새롭게 세상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을 축복하고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을 한다. 더구나 요즘은 유튜브를 통해 이들의 축사가 학교울타리를 넘어 더 많은 이들에게 전달돼 감동을 주고 있다. 그래서 나도 이맘때에는 이런 훌륭한 졸업식 축사를 인터넷에서 찾아 보며 인생의 지혜를 배우곤 한다.
명사들의 축사가 감동을 주는 것은 이들이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은 판에 박힌 공자님 말씀을 되풀이 하지 않는다. 이들은 인생경험에서 우러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성공담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실패담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역경과 고난을 어떻게 극복해냈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배웠는가를 졸업생들과 공유한다.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대 졸업식축사 원문과 번역-사계블로그)
그 대표적인 예가 역사상 가장 훌륭한 졸업식축사 중 하나인 2005년 스탠포드대의 스티브 잡스 졸업식축사다. 유명한 극작가인 애론 소킨에게 졸업식축사작성을 부탁했던 그는 소킨이 마지막까지 도와주지 않자 할 수 없이 졸업식 직전 어느날 밤 직접 축사를 작성한다. 암투병을 포함한 그의 인생에서의 3가지 역경이야기를 담은 그 졸업식축사는 가슴을 때리는 진실된 내용을 담은 것이었다. 그는 “애플에서 해고된 것은 내게 일어난 최고의 일이었다”고 말했다.
해리 포터시리즈의 작가인 JK롤링의 2008년 하버드대 축사 도 그렇다. 그녀는 애딸린 실직 이혼녀로서 바닥까지 떨어졌던 자신의 인생을 회상하며 “실패를 겪고 나서 더 강인하고 현명해졌다. 실패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그 어떤 자격증보다도 가치있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에게도 졸업식축사는 소중한 시간이다. 올해 보스턴대에서 있었던 아들의 졸업식에 참석했던 월드뱅크의 이기훈씨는 “축사를 맡은 구글의 에릭 슈미트회장이 얼마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지 학생과 학부모들 모두 폭소를 터뜨리며 들었다”고 말했다. 슈미트회장은 이날 축사 에서 “하루 한시간은 스마트폰을 끄고 진짜 사람과 대화하라”고 충고했다. 이씨는 특히 전체 졸업식외에도 단과대별로 졸업식이 따로 있는데 아들이 속한 단과대에서는 7살때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됐으나 평생의 노력으로 장애의 역경을 딛고 일어선 동문이 와서 축사 를 해 숙연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17년전 내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할 때는 가족과 기념사진을 찍은 것 이외에는 어떤 기억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졸업식풍경이 어떤지 트위터를 통해서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요즘도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학교 높으신 분들의 틀에 박힌 이야기만 이어져 졸업식장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경우도 있었다. 더 가슴아프게 느꼈던 것은 취업에 실패한 졸업생의 경우 아예 졸업식에 가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대학졸업식에서도 미국의 경우처럼 이런 멋진 전통이 생겨나고 졸업생과 학부모들이 축사연사의 이야기를 즐겼으면 좋겠다. 적어도 졸업식때만큼은 한국의 대학졸업생들도 앞으로 다가올 인생의 고단함을 잠시 잊고 긍정과 도전의 에너지로 가득찬 희망의 시간을 갖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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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지난 6월12일자 한겨레신문에 칼럼으로 기고한 것입니다. 어떤 내용을 주제로 첫 칼럼을 쓸까 고민하다가 평소 마음속으로 부러워하던 미국의 졸업식 문화에 대해서 썼습니다. 사실 소개하고 싶은 졸업식 축사가 많이 있었는데 위에 몇가지만 칼럼에 언급했습니다. 저부터도 시간이 없어서 다 들어볼 수도 없었고 부족한 영어실력때문에 100%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많아서 아쉬웠습니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몇번씩 들어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위에 소개한 3개의 동영상중 스티브 잡스의 축사는 다 보셨을테고 JK롤링의 축사를 저는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그녀의 약간 수줍어하는 듯한 모습과 진솔한 표정이 마음을 움직입니다. 자신의 솔직한 실패담과 경험의 공유가 공감할 수 있게 합니다. 해리포터가 어떻게 해서 나왔는지 그녀의 축사를 듣고 조금 이해가 갔습니다.
에릭 슈미트회장의 보스턴대 축사 동영상은 졸업생들의 활기찬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미국대학 졸업식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어쨌든 미국에 와서 3년째 봐오고 있는 졸업식축사인데 이제는 거의 모든 졸업식 축사 동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되는 분위기가 된 것 같습니다. 한국의 졸업식도 이렇게 의미있는 이벤트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적어봤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세상을 바꾼 선구자들-여성마라톤의 경우
미국에 살면서 나이, 성별, 인종 등을 차별하지 않도록 잘 법제화된 사회시스템을 보고 가끔씩 감탄할 때가 있다. 사람이 사는 곳이니 물론 완벽하게 차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전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서도 소수자를 배려하는 법과 문화가 잘 갖춰진 곳이 미국인듯 싶다.
이런 말을 미국인들에게 하면 미국도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도 잘 아는 인종차별은 물론이고 여성에 대한 차별, 나이에 의한 차별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대신 미국은 이런 부당한 차별에 대해 항의하고 기존 권위에 도전해 변화를 이끌어낸 선구자들이 있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의회에서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고 또 그 법제도를 실제 사회에 적용하기 위해 치열한 법적 다툼을 벌여서 이런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어제 CBS뉴스를 보다가 이런 선구자를 또 한명 발견했다. 여성마라톤에 처음 도전한 캐서린 스위처라는 65세의 여성이다. 나는 사실 여성이 마라톤을 뛰는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45년전에는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그녀는 40년전 제정된 타이틀9이라는 법안이 제정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으로 소개됐다.
동영상 보기 Marathon pioneer Kathrine Switzer looks back on Title IX (CBS뉴스)
당시 20세의 캐서린은 코치에게 감화를 받아 보스턴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코치조차도 여성이 마라톤을 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를 지도한 코치조차도 여성이 마라톤을 뛸 수 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여성이 그런 운동선수가 된다면 커다란 다리를 갖게 되며, 가슴에 털이나고, 장차 아이도 갖게 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60년대는 여성에 대한 이런 인식이 지배적인 시기였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Mad Men이란 드라마를 보면 알 수 있다”는 말을 한다. 60년대의 뉴욕 광고업계의 모습을 다룬 이 드라마에는 백인남성중심의 미국사회의 모습이 리얼하게 그려진다. 이 드라마에서 여성은 그야말로 남성을 보조하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녀는 여성임이 드러나지 않도록 이니셜로만 마라톤대회에 등록한 다음, 보스턴마라톤에 참가했다. 코치가 대신 번호표를 받아왔다. 그리고 출발점에 그녀가 나타나자 난리가 났다.
대회운영자인 디렉터가 이 사실을 알고는 이성을 잃었다. 그는 레이스중인 캐서린을 쫓아와 “그 번호표를 내놓고, 내 마라톤대회에서 꺼져라”(Get the hell out of my race and give me those numbers)라며 번호를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남자친구가 끼여들어 그녀를 구해냈다. 성난 디렉터를 붙잡아 레이스에서 끌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무사히 보스턴마라톤을 완주했다.
이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전 미국에서 화제가 된 것 같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교육과 취업, 스포츠에서 여성의 권익향상에 대한 토론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는데 기여했으며 결국 72년 “타이틀 9(Title IX)”이라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되게 됐다. 이 타이틀9은 교육프로그램에 있어서 성별로 차별을 하면 안되고 남녀 동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담은 법안이다. 물론 법안 제정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으며 이후에도 예외를 인정해 달라는 수많은 논쟁과 법적다툼끝에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어쨌든 그녀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캐서린처럼 두려움없이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이렇게 조금씩 바뀌어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65세가 된 캐서린은 내년 4월에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40번째 마라톤완주를 노릴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동안 캐서린이후 1만명이 넘는 여성이 보스턴마라톤을 달렸다고 한다. 캐서린이 없었으면 여성의 마라톤참가는 십년은 더 늦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Belaunch Going Global세션과 인사이드애플 강연회 공지
제가 6월 11일주에 한국에 가서 ‘인사이드애플’강연회를 한번 더 갖고 Belaunch 2012컨퍼런스에 참가합니다.
우선 Belaunch 2012 컨퍼런스는 한국스타트업의 글로벌진출을 주제로 한 이벤트입니다. 6월13일~14일 양일간에 걸쳐서 열립니다. 저는 첫날 11시30분에 열리는 Going Global세션에 사회자로 참가해 위에 보이는 훌륭하신 네 분을 모시고 30분간 토론을 가질 예정입니다. 아래는 간단한 세션 설명입니다. (이 세션은 영어로 진행되고 동시통역이 제공될 예정입니다.)
“글로벌로 간다.”(Going Global)세션.
어떻게 한국의 스타트업이 글로벌마켓에 진출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는 세션. 글로벌비즈니스에 다양한 경험을 가진 토론참가자들이 각기 한국의 벤처커뮤니티를 위해 자신의 경험과 팁을 공유한다.
스타트업바이블의 저자이자 스트롱벤처스의 공동대표인 배기홍씨는 뮤직쉐이크라는 스타트업을 미국에서 4년여동안 이끌면서 겪은 경험을 공유한다. 특히 그는 한국의 벤처기업가들이 미국시장에 들어오면서 범하기 쉬운 실수와 그 실수를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구글이스라엘지사의 신사업개발부서 Principal로 일하는 Jachin Cheng은 구글에서의 그의 경험을 나눌 예정이다. 특히 그는 가장 창업이 활발한 것으로 알려진 ‘스타트업국가’ 이스라엘에서 현지스타트업들의 멘토역할을 하고 있어 이스라엘벤처기업들의 강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서원일 넥슨아메리카 부법인장은 미국, 일본 등지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올해 도쿄증시 상장까지 성공적으로 이뤄낸 넥슨의 해외진출스토리를 들려줄 예정이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벤처인큐베이터인 Plug and Play Tech센터의 Canice Wu사장은 오랜 기간동안 실리콘밸리에서 쌓은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스타트업의 해외진출과 관련한 조언을 해줄 예정이다.
이날 대담 진행은 전 라이코스CEO였던 임정욱씨가 맡는다.
이 Belaunch행사는 글로벌진출을 꿈꾸는 한국의 벤처기업인이나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아주 유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료는 아니고 유료입니다. 행사참가신청은 여기서 하시면 됩니다.
온오프믹스 Belaunch 2012 참가신청 링크
그리고 제가 또 인사이드애플 강연회를 한번더 갖습니다. 6월11일 월요일 저녁 7시30분부터 강남역인근 비트교육센터에서 가질 예정입니다. 예스24와 청림출판 주최입니다. 좀 쑥스럽지만 예스24의 소개배너입니다.
불과 얼마전 강연회를 갖고 여러번 보도가 된 바가 있어서 이번에는 그리 많이 오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번 강연회내용보다는 좀더 보강을 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만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많이 안오셔도 수십명정도의 분들과 오붓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면 좋겠습니다. Q&A시간에 애플 이야기말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도 환영합니다.^^
참가신청은 Yes24 참가신청 페이지에서 (Yes24아이디로 로그인하셔서) 댓글로 해주시면 됩니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 신청만 하시면 다 참가하실 수 있을 겁니다.
Yes24 인사이드애플 강연회 참가신청 페이지 가기
그럼 이번 한국방문에서 또 많은 분들을 만나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구글 지식그래프
아마도 지난 몇년간 보아왔던 구글의 검색기능 혁신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글 지식그래프(Knowledge graph). 지난주부터 영어검색에서 작동되기 시작해 즉각 그 편리함을 체감했다. 인명, 도시, 스포츠팀 등 자주 찾는 검색어에 대해 검색결과 오른쪽에 작은 상자모양으로 필수정보를 뽑아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정보는 편집자들을 통해서 직접 편집하는 것이 아니고 알고리듬에 의해 자동으로 편집되는 것이다. 위키피디아나 음악, 영화카탈로그웹사이트 등에서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해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키워드에 따른 유저들의 검색패턴에 따라서 조금씩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오늘자 WSJ 기사에 따르면 이 지식그래프도입이후 구글사용자들이 더 검색을 많이하게 됐다고 구글대변인이 밝혔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인터넷업계에서는 상당히 주목해야 할 뉴스다.
예를 들어 뉴욕의 전현직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와 루디 줄리아니의 경우 보여주는 정보가 조금씩 다르다. 거부로 소문난 블룸버그의 경우 재산(Net worth)가 나와있다. 반면 그 정보는 줄리아니의 경우에는 빠져있다. 검색유저들이 어떤 정보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는 반영한 것이다. 연관검색인물의 면면도 다르다. 공화당대선후보로 거론됐던 줄리아니의 경우는 블룸버그를 제외하고 모두 공화당 대선후보등 공화당 유력인사들이다. 블룸버그의 경우 쿠오모 뉴욕주지사, 크리스틴 퀸 뉴욕시의회 대변인 등이 들어있다.
자동 편집되는 만큼 유명인의 인사이동 등이 빨리 반영되지 못하는 등의 문제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자그마치 5억개의 항목을 이렇게 자동편집해서 보여준다는데 어느 정도의 오류는 불가피해보인다. 문제는 얼마나 알고리듬을 개선해서 앞으로 정확도를 높여나가는가일 것 이다. 사람이 편집한다면 사실 더 오류가 많을 수 있겠다.
구글의 이런 검색혁신이 앞으로 검색업계판도에 어떤 변화를 줄지 궁금하다. 구글이 이 지식그래프를 정착시킨다면 유명인, 지명, 사물정보에서 더 나아가 레스토랑 등 로컬정보까지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직 이 지식그래프는 영어권에만 적용되며 다른 언어에는 언제 적용될지 정확한 일정은 공개되어 있지 않다고 하는데 과연 언제 한글판에도 적용될지도 주목거리다. (개인적으로 위키피디아 등의 웹콘텐츠인프라가 취약한 한국웹에서 구글지식그래프가 영어권처럼 실현 가능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최고의 커리어조언 : “로켓에 자리가 나면 일단 올라타라.”
(Update : @Imseong의 번역을 Dongwoo Son님이 한글자막으로 입힌 동영상으로 교체)
보면서 감탄한 페이스북 COO 쉐릴 샌드버그의 2012년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식 축사 동영상.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졸업생들을 위한 주옥같은, 진실한 내용을 담은 명연설이다. 이 동영상을 보면서 “미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나온다면 쉐릴 샌드버그일 것이다”라는 평가가 그렇게 과장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2006년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구글의 임원이라는 그녀와 가볍게 명함을 교환하며 인사한 일이 있는데 이렇게까지 거물로 성장할 줄은 몰랐다. (나보다 생일이 한달 빠른 사람인데 말이다.)
자신의 경험이 어우러진 진솔한 커리어 조언이 담긴 22분간의 연설내용이 모두 들을만 한데 특히 내게도 큰 공감이 된 것은 로켓에 자리가 나면 일단 올라타라는 다음 부분이다. 발췌해서 간단히 번역해봤다.
One of the jobs on that sheet was to become Google’s first business unit general manager, which sounds good now, but at the time no one thought consumer internet companies could ever make money. I was not sure there was actually a job there at all. Google had no business units, so what was there to generally manage. And the job was several levels lower than jobs I was being offered at other companies.
내가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해두었던 취업후보중 하나는 구글의 첫 비즈니스유닛담당 부문장이었다. 지금 들으면 괜찮은 자리로 들리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도 일반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인터넷회사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2001년 당시는 닷컴버블이 막 꺼진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나는 솔직히 그 포지션이 존재하는지조차도 의심스러웠다. 구글은 당시 비즈니스부문이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매니지하라는 말인가? 그리고 그 자리의 타이틀은 내가 다른 회사에서 받은 제안보다 몇단계 급이 낮은 것이었다.
So I sat down with Eric Schmidt, who had just become the CEO, and I showed him the spread sheet and I said, this job meets none of my criteria. He put his hand on my spreadsheet and he looked at me and said, Don’t be an idiot. Excellent career advice. And then he said, Get on a rocket ship. When companies are growing quickly and they are having a lot of impact, careers take care of themselves. And when companies aren’t growing quickly or their missions don’t matter as much, that’s when stagnation and politics come in. If you’re offered a seat on a rocket ship, don’t ask what seat. Just get on.
그래서 나는 당시 막 CEO가 된 에릭 슈미트와 마주 앉았다. 그리고 내가 정리한 내 잡오퍼를 담은 스프레드시트를 그에게 보여주며 구글이 제시한 포지션이 내 기준에는 하나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내 스프레드시트에 손을 올리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세요.(Don’t be an idiot)” 훌륭한 커리어조언이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로켓에 올라타세요. 회사가 빠르게 성장할 때에는 많은 충격이 있고 커리어는 알아서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고 회사의 미션이 별로 얘기가 안될 때에는 정체와 사내정치가 시작됩니다. 로켓에 자리가 나면 그 자리가 어디 위치했는지 따지지 마세요. 우선 올라타세요.”
About six and one-half years later, when I was leaving Google, I took that advice to heart. I was offered CEO jobs at a bunch of companies, but I went to Facebook as COO. At the time people said, why are you going to work for a 23-year-old? The traditional metaphor for careers is a ladder, but I no longer think that metaphor holds. It doesn’t make sense in a less hierarchical world.
약 6년반뒤 내가 구글을 떠날 무렵, 나는 그 에릭 슈미트의 조언을 가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많은 회사에서 CEO직을 제의받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페이스북에 COO로서 조인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내게 왜 23살짜리를 위해서 일하러 가느냐고 했지요. 전통적인 커리어를 위한 메타포는 사다리입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런 비유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덜 계급적인 세상에서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쉐릴 샌드버그가 구글에 합류한 2001년에는 나도 실리콘밸리에서 멀지않은 버클리에서 공부하고 있던 때였다. 당시 구글이라는 회사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저그런 스타트업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당시 스탠포드 컴퓨터공학과를 다니던 한 친구의 말에 따르면 구글이 스탠포드대에 와서 테이블을 놓고 직원을 뽑으려고 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런 당시에 하버드MBA출신의 잘 나가던 쉐릴 샌드버그가 구글을 선택한 것은 큰 모험이었을 것이다. 구글을 선택해서 큰 보상을 받은 샌드버그는 2008년 페이스북의 COO로 합류하는 또 한번의 과감한 선택을 했고 또 다시 성공했다. 실리콘밸리의 역사를 새로쓰는 두 회사에서 핵심역할을 담당하는 흔치 않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영어원문 출처 Poets & Quants : Sheryl Sandberg’s Inspiring Speech At Harvard Business School
한글기사 참고 높은 자리 원했더니 … 슈밋 “멍청한 소리”(중앙일보)
Update : [번역] 쉐릴 샌드버그, 2012년 하바드 비지니스 스쿨 졸업 축사 by @Imseong
Serial Entrepreneur, 마이클 양
Serial Entrepreneur라는 말이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이 말은 창업해서 한번 성공한 것에 그치지 않고 계속 창업에 도전하는 기업가를 지칭한다.
나는 항상 이 말을 들으면 Mysimon.com의 창업자이자 Become.com의 전CEO이신 마이클 양을 떠올린다. 오늘 마침 그를 인터뷰한 연합뉴스의 기사 ‘마이사이몬’ 마이클 양 “세계 겨냥 창업 바람직”을 읽으면서 그 분에 대해서 한줄 적어 본다.
나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UC버클리의 경영대학원인 Haas school of business를 다녔는데 2001년 당시 1학점짜리 인터넷관련강의가 있었다. 일주일에 한시간짜리인 이 강의는 학생들이 직접 섭외해서 외부스피커를 초청해 진행하는 시간이었다. 당시 나도 뭔가 기여를 하기 위해 초청을 할만한 외부인사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2000년 1월 쇼핑 가격비교 검색엔진인 Mysimon.com을 7억불에 CNET에 매각해 유명해진 마이클 양이 Haas MBA선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찌어찌 연락이 닿아서 강의에 외부연사로 초청을 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링크드인이나 페이스북, 트위터같은 소셜네트워크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누군가를 찾고 섭외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마이클 양이 강연요청을 수락해주셔서 정말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비록 닷컴버블이 꺼졌다고는 하지만 당시 환율로 거의 1조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회사를 매각한 것이기에 나는 강연에서 자신의 성공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는 잘나가는 비즈니스맨의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접한 마이클 양은 조용히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야기하며 성공은 단지 행운이었다고 계속 반복해서 겸손하게 이야기했다. 그는 특히 “내 손으로 만든 마이사이먼을 계속 키워나가고 싶었는데 CNET와서 사겠다고 했다. 나는 반대했지만 내 투자자들과 내 집사람까지 포함해 주위 모든 사람들이 모두 파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회사를 팔았는데 그리고 나서 얼마지나지 않아 나스닥시장이 폭락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정말 Lucky했다고 성공을 운으로 돌렸다.
그때까지 나는 (기자로서의 경력을 통해) 닷컴붐으로 벼락부자가 된 뒤 잘난 척을 하는 기업가들을 많이 봐왔기에 마이클 양의 그런 겸손한 태도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마이클 양은 그뒤 오래지나지 않아 Netgeo라는 회사를 창업하셨고 그 뒤 이어진 한 만남에서 “왜 또 기업을 시작하셨는가?”라는 내 질문에 “창업은 나에게 주어진 소명(Mission)인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즉, 첫 기업을 통해서 돈을 벌었기 때문에 다시 또 기업을 시작해서 성공시키는 것이 사회에 다시 보답을 하는 길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시 나는 평생 놀아도 될 만큼 돈을 많이 번 실리콘밸리의 거부들이 또다시 창업에 나서는 것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했었다. 투자자로서만 유유자적하게 살아도 될 것 같은데 왜 또 저런 고생을 사서 할까? 하지만 마이클 양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 Serial entreprenuer들이 실리콘밸리의 오늘을 만든 원동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스티브 잡스도 따지고 보면 자신이 창업한 애플을 나와서 넥스트컴퓨터를 만들고 픽사를 인수해 성공시킨 Serial Entrepreneur 아닌가.
연합뉴스의 인터뷰를 보면 이런 부분이 나온다.
— 90년대 말 이후 지금까지 10년 넘게 왕성하게 창업과 경영활동을 했는데 원동력이 무엇인가.
▲ 몸속에 창업 DNA가 있는지 모르겠다. 창업이 재미있고 좋아하는 것 같다. 어떤 기회를 보고 아이디어를 이용하고 기술을 응용해 새 회사를 차린다는 게 엄청난 기회라고 생각한다. 특히 여기(실리콘밸리)서는 나이가 장애가 되지 않는다. 마이사이먼을 시작할 때 이미 37세였다. 40대, 50대에도 충분히 활동할 수 있다. 한국에서 능력이 있는 사람인데도 40대에 명예퇴직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
또 내가 몰랐던 것은 “마이사이먼 당시 자금조달을 위해 200곳을 찾아갔으나 195곳에서 거절당했다. 전문 투자가들이 안 된다고 할 때 정말 안 되는 것인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라는 부분이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우리는 항상 “7억불 매각 대박”이라는 기사제목만 보고 쉽게 성공했구나 하는데 자세히 이면을 들여다보면 항상 지난한 노력이 있었다. 앵그리버드를 내놓기 전에 로비오도 51번의 그저그런 게임을 내놓으며 실패를 맛보았다고 하지 않던가.
2002년 5월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나는 한동안 마이클 양을 다시 뵙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7년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Daum Knowledge Officer라는 직함을 가지고 실리콘밸리를 다시 왕래하면서 마이클 양을 다시 연락드리고 뵙게 됐다. 나를 잘 기억해주고 계셨다. 이번에는 Become.com이라는 마이사이먼과 비슷한 가격검색엔진 스타트업을 시작하셔서 왕성하게 또 기업을 이끌고 계셨다.
이후 2009년 내가 라이코스CEO를 맡게 되면서 더 자주 연락드리고 미국기업을 경영하는데 필요한 노하우를 자문받았다. 가끔 사람고민까지 포함해 기업을 운영하는데 있어 어려운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을 받기도 했다. 나의 CEO멘토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연합뉴스인터뷰를 통해서 마이클 양 자신도 유료로 전직 CEO출신 “CEO코치”의 자문을 받고 계신 것을 처음 알았다. 내게 공짜로 조언은 물론 밥까지 자주 사주셨는데… (감사합니다!)
— 창업과 경영과 관련해 멘토가 있는지.
▲ 특별한 멘토는 없지만 주변에 조언을 해주는 친구들이 있다. 지난 2년간은 CEO를 상대로 전문적인 조언을 주는 전직 CEO 출신 ‘CEO코치’의 도움을 받았다. 시간당 400달러나 되지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고 사적인 일까지 들어주고 중립적인 피드백을 준다.
이 기사를 보고 다시 느꼈는데 CEO에게는 믿고 고충을 털어놓고 조언을 받을 수 있는 멘토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회사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이 정말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비용까지 들여가면서 CEO코치를 받고 계신지는 몰랐다. 그만큼 그 가치와 필요성을 알고 계신 탓이리라.
지난 3월 Become.com의 CEO에서 이사회의장으로 자리를 옮기신 마이클 양을 뵙고 식사를 한 일이 있다. 8년간 쉼없이 이끌어왔던 Become.com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만큼 이제는 재충전하면서 또 다른 도전을 하시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평소 미국의 유대인이나 중국인, 인도인커뮤니티에 비해 한국인들의 네트워크파워가 약하다는 점을 안타까워하셨는데 이번에 ‘CKA(Council of Korean Americans)’를 결성하셨다. 권율, 샘 윤 등 성공한 한국계2세들이 참여한 CKA는 6월7일 백악관에서 Korean community를 위한 브리핑행사를 개최한다. 감사하게도 나도 초청해주셔서 그날 행사에 참가할 예정이다.

사진 출처. http://www.councilka.org
평소 존경하던 분의 인터뷰를 연합뉴스에서 접하고 블로그에 가볍게 그 분과의 인연을 적어보았다.
인사이드애플 역자후기
제가 번역한 ‘인사이드애플’을 출간하면서 책 서두에 실은 역자후기를 블로그에 공개합니다. 2월말부터 본격적으로 번역을 시작하면서 참 힘들어서 번역을 맡은 것을 후회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깔끔하게 만들어져서 나온 책을 보니 보람을 느낍니다. 언제 한번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애덤 라신스키에게 점심을 얻어먹기로 했습니다.^^
인사이드애플 한국어판 구매 교보문고링크, Yes24 링크, 인터파크링크 알라딘링크
1990년대 중반 모 신문의 IT담당 기자로 일할 당시 나는 컴퓨터광, 얼리어답터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사실 2003년까지 애플은 내 관심 밖에 있었다. 나도 이 책의 저자 애덤 라신스키(Adam Lashinsky)처럼 PC와 윈도우 운영체제의 신봉자였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세상은 윈도우PC가 지배하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 공화국’인 한국은 물론, 2000년부터 2002년까지 UC버클리의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도 학교 컴퓨터와 대부분의 친구들이 갖고 있는 컴퓨터는 PC였다. 매킨토시를 쓰는 사람은 본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당시 나는 미국에 있으면서도 2001년 가을에 스티브잡스가 첫 아이팟을 발표한 사실조차 몰랐다. (그때는 9․11 테러가 일어난 직후라 무척 어수선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2003년 1월, 우연찮게 샌프란시스코에서 매년 열리는 정보기술IT 전시회인 ‘맥월드(Macworld)콘퍼런스’에 참석하게 됐다. 그리고 거기서 잡스의 키노트 발표를 현장에서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 당시 애플과 매킨토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었지만, 한 시간 남짓 펼쳐진 잡스의 키노트 발표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명확하고 강렬한 메시지, 청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혁신적이며 고객 입장에서 디자인된 제품들. 특히 “한 가지 더…One More Things…”라고 하면서 청중들에게 당시 새로이 출시한 프레젠테이션 소프트웨어 ‘키노트’를 공짜로 선물한 마지막의 깜짝쇼를 잊을 수가 없다. “의자 밑을 보라”는 잡스의 말을 듣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말 의자 밑에 키노트 소프트웨어박스가 붙어 있었다. 그 순간 골수 애플 팬들이 대부분이었던 청중들은 크게 환호했다. 왜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 하는지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는 진정한 프레젠테이션의 마스터였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아이팟을 구입했고 다시 몇 년 뒤 맥북프로로 매킨토시에 입문했다. 2007년 6월 말에는 마침 아이폰이 처음 출시되던 주일에 뉴욕에 머물렀던 덕에 갓 나온 아이폰을 구입해 한국으로 가져와 사용해본 몇 안 되는 한국인이 됐다. 아이폰을 일찍 써본 덕분에 나는 세상의 변화를 다른 사람보다 몇 년 빨리 경험할 수 있게 됐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미국에서 첫 아이폰이 발매되고 약 2년 5개월 후에 아이폰이 출시됐다.)
그 뒤 2009년 보스턴의 라이코스 CEO로 부임하면서 나는 매년 아이폰, 아이패드를 신모델로 업그레이드하고 맥북에어를 사용하는 소위 ‘애플 팬’이 됐다. 그 과정에서 스티브 잡스와 애플에 대해 높아진 관심이 나로 하여금 《iCon 스티브 잡스iCon Steve Jobs》,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의 자서전 《스티브 워즈니악iWoz》, 《픽사 이야기The Pixar Touch》,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 《스티브 잡스Steve Jobs》 등 수많은 애플 관련 서적을 읽고 관련 뉴스를 좇으며 소위 ‘애플 전문가’가 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책들은 대부분 스티브 잡스라는 걸출한 인물의 독특한 개인사나 괴팍한 성격, 천재성에 초점을 맞추었을 뿐, 정작 MBA가 가르치는 모든 경영 이론을 거스르고도 세계 최고의 회사로 우뚝 선 애플이라는 회사의 독특한 운영방식을 제대로 조명한 경우는 드물었다.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의 스티브 잡스 전기도 마찬가지다. 아이작슨의 책은 그가 잡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쓴 공식 전기다. 역시 대단히 훌륭하고 흥미진진한 책이지만 대체로 애플 간부와 잡스와 가까운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쓴, 잡스 중심의 책이다. 실제 애플이라는 회사의 문화는 무엇이고 직원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며, 제품 개발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고 그 멋진 키노트 발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준비되는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라신스키의 이 책은 칭찬할 만하다. 이 책은 정말 실리콘밸리를 발로 뛰며 쓴 책이다. 베테랑 기자답게 그는 수십 명의 전․현직 애플 직원을 최고위층부터 말단 엔지니어까지 그리고 애플과 함께 일했던 제휴회사 직원들까지 폭넓게 인터뷰해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허락 없이 회사 일을 외부에 전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애플의 문화에 비춰볼 때, 이 정도로 솔직한 인터뷰를 담은 것은 10여 년간 실리콘밸리에서 구축한 그의 인맥과 취재원들과 쌓은 깊은 신뢰관계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이 같은 폭넓은 인터뷰와 연구를 바탕으로 그는 나름대로 애플이 어떤 회사인지를 훌륭하게 설명해낸다. 지난 2012년 3월에 샌프란시스코의 <포춘Fortune> 지국에서 그를 직접 만났을 때, 나는 애플이 어떤 회사인지 짧게 정리해 얘기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역시 그는 단 1초도 주저하지 않고 막힘없이 대답했다. (참고-애덤 라신스키 인터뷰)
“한마디로 말한다면, 애플은 규율이 제대로 서 있고(disciplined), 비즈니스에 밝으며(business like), 제품에 집중하는(product focused) 조직입니다. 단순함을 숭상하며 목표를 향해 매우 근면하게 일하는 조직이지요. 애플은 효율성이 높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조직입니다.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좇기보다는 일단 주어진 과업을 완수하는 데 집중합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그가 얼마만큼 애플을 연구했고 그 내용이 머릿속에 얼마나 잘 정리돼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전부터 애플과 스티브 잡스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관련 뉴스나 기사를 빠짐없이 탐독하며 트위터와 블로그에 계속 글을 써왔다. 때문에 미국에서 《인사이드 애플》이라는 책이 나올 것이란 사실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한 인연으로 한국어판 출간 소식을 접하고는 이렇게 번역자로 나서기에 이르렀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문장을 곱씹어 읽어보고 또 저자와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한 것이 내게 많은 공부가 됐고 애플의 경영방식과 스티브 잡스의 리더십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이 책은 “애플이라는 회사는 어떻게 운영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여기에는 풍부한 인터뷰에 근거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대거 등장한다. 완벽한 결혼식 동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새해 첫날 하와이로 로케를 떠난 애플 마케팅팀의 이야기나 잡스가 야후 제리 양에게 조언해준 이야기 등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소개되는 일화다. 또 어떤 프로젝트를 직접 책임지는 사람을 뜻하는 ‘DRI(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나 비밀스럽게 열리는 ‘톱 100’ 모임 등 이 책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애플만의 독특한 문화와 제도를 통해 우리는 애플이 어떻게 움직이고 경영이 이뤄지는지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무서우리만큼 디자인을 중시하는 문화,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절대 타협하지 않는 문화,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제외하고 누구도 손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문화, 훌륭한 아이디어에 ‘아니오’라고 외치는 문화 등을 통해 우리는 잡스가 애플에 주입한 DNA가 어떤 것인지 엿볼 수 있다.
라신스키는 실리콘밸리에서 오랫동안 비즈니스 저널리스트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애플을 살핀다.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을 ‘IT 저널리스트’가 아닌 ‘비즈니스 저널리스트’라고 강조했다. 즉 이 책은 애플이 어떻게 기술 혁신을 이뤄내는지를 기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IT 관련 서적이 아니라 잡스와 애플의 경영진들이 어떻게 애플을 경영해왔는지를 조명하는 경영서적인 것이다. 라신스키는 이것이 바로 다른 책과의 차이점이라 강조했다.
이 책의 또 다른 가치는 팀 쿡의 리더십을 조명한 데 있다. 라신스키는 쿡의 스타일이 어떻게 잡스의 그것과 잘 조화를 이뤘는지 그리고 대조적이면서도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했는지를 설명한다. 또한 어떻게 이 조용한 남부 출신의 전직 IBM맨이 애플의 2인자로 부상해, 궁극적으로 전설적인 리더를 이어 CEO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잡스가 쿡을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한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게 됐다.
한편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애플이 가진 패러독스에 대해 더 큰 놀라움을 느낌과 동시에 애플의 미래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될 수 있다. 투명경영, 권한이양, 지역거점분산형 경영, 정보공유 등을 강조하는 현대 경영학 이론을 애플은 모든 면에서 거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플이 이런 독특한 문화를 유지하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스티브 잡스’라는 걸출한 천재의 힘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럼 잡스는 애플을 자신이 떠난 다음에도 영속할 수 있는 위대한 기업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을까? 여기에는 그가 자신의 DNA를 애플에 심는 데 성공했을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라신스키는 애플이 아이폰, 아이패드로 이룩한 지금의 번영을 앞으로 몇 년간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오늘의 영화로 이끈 그 독특한 애플의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고 기업의 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쿡이 잡스가 만들어낸 애플의 문화를 바꾸기보다는 숭상하고 더욱 잘 살려내는 스타일의 경영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애플은 과연 5년 후에도 지난 15년 동안 보여줬던 놀라운 혁신과 성장을 이어나가며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계속해서 애플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12년 4월 보스턴에서
임정욱
스마트폰코리아
2009년 3월 보스턴으로 이주한 이후 나는 보통 1년에 2~3번정도 한국을 잠깐씩 방문해왔다. 보통은 반년에 한번씩 서울을 방문하는 편인데 그때마다 변모하는 모습에 조금씩 놀란다.
그런데 지난해 12월이후 이뤄진 대략 6개월만의 이번 방문에서는 ‘스마트폰의 물결’에 크게 놀랐다. 최근 몇년간 미국, 일본, 유럽, 이스라엘 등의 주요 도시를 출장다닌 내 느낌으로는 서울 사람들의 스마트폰 보급속도와 보급율은 그야말로 이미 세계최고수준에 이른 것이 아닌가 싶다. 일단 한번 쏠리면 끝장을 보는 한국인의 성격이 반영된 것 같다.
우선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에서 모두 스마트폰에 머리를 박고 있다.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들은 가뭄에 콩나듯 있고 모두가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하고 있다. @coolpint님의 말씀처럼 가로로 보고 있는 사람은 TV를 보고 있는 것이고(아니면 다운로드한 동영상), 세로로 쓰고 있는 사람은 카톡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듯 싶다. 보스턴,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의 지하철에서는 이렇게까지 스마트폰을 열심히 쓰고 있는 모습을 보기는 힘든데 그것은 지하에서 인터넷이 터지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최고의 지하 인터넷망을 가진 한국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이 물을 만난 듯 싶다.
또 한가지 미국과 다른 모습은 삼성폰을 위시로 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강세현상이다. 미국의 경우는 내가 대충 체감하기로 7대3정도로 공공장소에서 아이폰이 많이 보이는 것 같다. 특히 4S출시후 아이폰이 크게 늘어난 것 같다. 그런데 서울의 경우는 대체로 아이폰보다 안드로이드폰이 많이 보이는 것 같고 특히 갤럭시노트가 굉장히 많이 보여서 놀랐다. 홈그라운드의 잇점을 십분 살려서 삼성이 갤럭시노트를 한국시장에 안착시킨 것으로 보인다. 내가 보기에도 제품이 잘 나온 듯 싶고, 처음에는 다리미처럼 이상하게 보이던 것이 자꾸보니까 괜찮아 보인다.
미국에서는 갤럭시노트를 쓰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는데 마침 보스턴에 돌아오자 마자 만난 옆집 선배(한국인)가 갤럭시노트를 구입해 만족스럽게 쓰는 것을 보았다. 그 선배의 말로는 미국인들중에도 갤럭시노트사용자가 가끔 보인다고 한다. 향후 갤럭시노트가 글로벌시장에 얼마나 진입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또 아이폰앱을 개발하는 한 벤처CEO분은 “지방에 가면 아이폰을 거의 볼 수 없고 안드로이드가 대세다. 거의 공짜에 가까운 가격으로 할인되서 제공되는 안드로이드폰이 많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과연 안드로이드OS를 만든 구글의 앤디 루빈부사장이 한국을 추켜세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 시내에 나갔을 때 서울시청앞광장부터 명동을 거닐면서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봤는데 거의 대부분 스마트폰을 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교생 같은 어린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롯데백화점 지하의 커피숍이 몰려있는 코너를 지나가는데 앉아있는 젊은이들 대부분이 테이블위에 스마트폰을 놓아두고 있었다. 스마트폰화면을 같이 쳐다보며 이야기하는 커플도 상당수였다. 뭐 이런 분위기에서 일반폰을 쓰면 왕따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70대이신 아버지는 “요즘 친구들 모임나가면 모두들 스마트폰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어르신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얘기다. 아직 일반폰을 쓰시는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하고 스마트폰으로 바꾸라는 권유전화가 온다”고 진절머리를 내신다. 필요도 없고 요금도 비싸서 싫다는데도 “공짜로 주겠다”며 바꾸라고 끈질기게 전화가 온다는 것이다.
지하철에 앉아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꼬마를 데리고 탄 할머니가 사람들의 스마트폰을 흘끔대는 손자에게 “스마트폰 많이 쓰면 중독된다”고 타이르는 모습도 봤다. 이 정도면 정말 남녀노소 전국민이 스마트폰에 홀려있는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블랙베리, 팜 등의 초기 스마트폰이 2000년대 초부터 비즈니스맨을 중심으로 보급되어 왔고 2007년 중반 아이폰이 도입된 미국도 이제야 스마트폰보급율이 50%에 도달됐다. 그런데 2009년 11월 아이폰 상륙이전까지 사실상 스마트폰의 존재가 전무했던 한국이 불과 2년반만에 이 정도 점유율에 도달했다. 휴대전화 가입자 5천255만명중 스마트폰 사용자가 2천672만명으로 50.8%에 이른 것이다. (서울의 스마트폰 점유율은 모르긴 몰라도 이미 50%를 확실히 넘지 않았나 싶다.) 정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는 엄청난 속도의 변화다.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면 스마트폰에 주의를 빼앗기는 빈도도 미국인들보다 휠씬 높아보인다. 얼마전” 스마트폰의 노예가 된 우리들“이란 미국의 스마트폰중독현상에 대한 글을 보스턴에서 쓴 일이 있다. 그런데 한국을 가보니 사실 미국인들이 아니라 한국인들이 더 스마트폰 중독현상이 심한 듯 싶다. 남녀노소 모두다 카톡을 쓰기 때문인 것 같다. (미국인들은 젊은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그렇게까지 문자를 많이 쓰지는 않는 것 같다.)
전국민이 “항상 인터넷에 연결된 손바닥위의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이제 막 시작인데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스마트폰을 가장 친한 친구로 여기는 젊은 세대들은 앞으로 어떤 행동 패턴을 보일 것인가.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스마트폰과 찰떡궁합의 SNS는 한국사회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 당장 이런 스마트폰문화가 올 연말의 한국대선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어느 정도 예견한 일이지만 이런 ‘스마트폰코리아’ 현상을 직접 목도하고 다시 한번 한국사회의 역동성을 느꼈다. 이렇게까지 빨리 변하는 사회는 내가 알기로는 없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