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짜리 에어비앤비 투자기회를 날린 투자자
요즘 스타트업이 초기 투자받는데 있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 The Upstarts라는 책에서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이 있어 간단히 소개해 두고 싶다. 아래는 책의 한 부분을 요약한 것.
***
2008년 여름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 당시 막 시작한 에어비앤비(Airbnb)가 초기투자금을 받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들은 LA베이스의 페이지 크레이그라는 엔젤투자자를 만나게 됐다. 해병대출신인 그는 엔젤투자자로 변신해 숙박비즈니스에 투자할 기회를 찾다가 에어비앤비를 만나게 됐다. 에어비앤비 창업자들의 열정과 성실한 자세에 반한 그는 25만불을 투자하기로 결심했다.(지금 환율로 약 2억8천만원) 6주간에 걸친 협상끝에 가을에 만나서 밸류에이션까지 합의하고 같이 저녁식사까지 했다. 다음날 사인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에어비앤비 CEO인 브라이언 체스키가 사인을 거부하고 투자를 받지 않기로 했단다. 그리고 이유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
책 저자인 브래드 스톤이 브라이언 체스키의 지인을 통해 취재한 바로는 식사를 마치고 술 한잔을 하면서 이 페이지 크레이그가 브라이언 체스키에게 있어 어려운 투자자(a difficult partner)가 될 것 같은 인상을 줬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right investor는 회사에 도움을 주지만 difficult partner는 회사에 끝없는 문제를 가져다 준다는 통설이 있기 때문에 피했을 것이란 얘기다.
영문을 모르던 페이지 크레이그는 몇년뒤 지인을 통해서 당시 에어비앤비 창업자들이 그를 “Crazy marine”(미친 해병)으로 결론내리고 마음을 바꿨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이런 엄청난 기회를 놓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한 이 책의 저자에게 이메일로 “난 그들이 왜 그랬는지 알 것 같아서 화를 내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구글에서 내 이름을 검색해보면 ‘바보같은 돈‘(dumb money)라고 나와 있었거든요. 그게 제 이미지였습니다. 그 일이 제가 커리어경험을 다듬고, 창업자들에게 더 프렌들리한 브랜드를 만들어 좋은 투자를 할 수 있게 한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물론 아주 비싼 교훈이었죠…“라고 말했다.
***
책에 보면 당시 에어비앤비는 만나는 투자자마다 “그게 되겠냐“며 거절을 당하고 있던 시절이다. 그런 상황에서 거의 3억원이나 되는 투자금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브라이언 체스키는 이 투자자의 성향과 평판을 보고 막판에 투자받는 것을 철회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 페이지 크레이그라는 투자자도 반성하고 자신의 좋은 브랜드를 쌓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실리콘밸리가 확실히 평판시스템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금은 당시보다도 이런 평판시스템이 휠씬 강화됐다. 내가 올초에 버클리에 갔다가 유명한 엔젤투자자인 코슬라벤처스의 벤 링 Ben Ling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엔젤투자를 할 때는 빨리 결정을 내려줘라. 안할 것이면서 질질 끌지 마라“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투자자들에게 조언했다. 그러면서 “Founder talks”라고 덧붙였다. 창업자들에게 안좋은 투자자라는 인상을 남기면 그들이 온라인 등에서 이야기하게 되고 그게 당신의 평판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장차 좋은 딜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당시 페이지 크레이그가 25만불을 투자해서 한 10~20%의 지분을 투자했더라면 지금 그 가치는 못해도 1~2조원이 됐을지도 모른다. 에어비앤비의 지금 기업가치가 거의 40조원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그의 이름 Paige Craig를 구글링해보고 흥미로운 글을 찾아냈다. 그가 에어비앤비에 투자기회를 놓친 경험에 대해서 “Airbnb, My $1 Billion Dollar Lesson”이라 제목으로 쓴 블로그 글이다. 블로그에서는 책과는 조금 다르게 브라이언 체스키가 막판에 투자를 안받기로 한 이유를 YC(와이콤비네이터)에 들어가기로 했기 때문인 것으로 썼다. 어쨌든 인상적인 것은 아래 부분이다.
“에어비앤비 같은 딜을 놓친 것은 너무 뼈아프다. 하지만 이런 거절을 통해 큰 교훈을 얻었다. 퇴짜를 먹은 뒤에 나는 내가 밖으로 나가서 더 훌륭한 지식을 흡수하고, 인맥을 만들고, 투자자로서의 브랜드를 쌓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처음 에어비앤비를 찾아냈을 때는 투자자세계에서 난 아무 것도 아니었다. 노바디(Nobody)였다. 하지만 그 이듬해 나는 미국전역을 돌아다니며 창업자와 투자자를 만나는데 썼다. 수십개의 이벤트에 참석하거나 내가 이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가능한한 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다. 최대한 많이 읽고 공부했으며 1대1대화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나서 비로소 다음 딜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지금 페이지 크레이그의 이름으로 검색하면 좋은 회사에 많이 투자한 꽤 훌륭한 투자자로 나온다. 깔끔한 위키피디아 소개페이지까지 있다. 저절로 된 것이 아니고 그가 다년간 노력해서 쌓은 것이다. 그리고 그 동네에서는 이런 레벨의 투자자가 된다는 것은 정말 큰 의미가 있다. 그래야 유명 스타트업의 딜에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에 좋은 스타트업이 몰리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이처럼 경쟁을 통해 실력을 갖추고 높은 신뢰도와 좋은 평판을 쌓은 스타트업 투자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스타트업투자생태계도 이렇게 평판시스템으로 바뀌어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해봤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