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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규제개혁장관회의 참석 후기
미래부의 요청으로 9월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리는 규제개혁장관회의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원래 8월20일로 예정이 되어 있던 회의였는데 2주 연기가 되는 바람에 이제야 참석하게 된 것입니다. 거의 1달전에 규제환경과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를 2분만 해달라고 해서 10여분만에 후다닥 요지를 적어서 보냈는데 채택이 됐던 것 같습니다. 설마했는데 정말 회의날이 다가와서 어제 처음으로 청와대 구경을 했습니다.
청와대 시화문에서 간단한 등록절차를 마치고 이름표를 받아서 영빈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넓은 곳입니다. 각자 좌석에 이름표가 올려져 있습니다. 저는 당연히 제 자리는 저 뒤켠 어디 있을 줄 알았습니다. 이름표뒤에 자리가 있는 열이름이 적혀있다고 해서 봤습니다. ‘H/T’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뭐죠?”라고 하니 “헤드테이블”이랍니다. 설마하고 가서 봤더니 헤드테이블 정가운데 있는 대통령 바로 옆자리입니다. 세상에 이럴수가. 정말 놀랐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우여곡절로 해서 대통령 바로 옆에 밀착해 앉아서 4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주 Surreal한 경험이었습니다. 대통령은 회의에 어떻게 임하고, 메모는 어떻게 하고, 마무리 발언 등에서 어떻게 생각을 정리해 발언하는지 잘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다른쪽에 계신 총리부터 항상 TV에서만 보던 부총리, 장관 등 정부각료들을 가까이서 보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큰 경험이었습니다. (저를 포함) 많은 분들이 정부고위관료와 정치인들을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분들을 가까이서 보고 발언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참 다 대단한 분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장장 4시간이 넘도록 화장실도 못 가고 참으면서 제가 발언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원래 2분만 이야기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자리가 자리이다 보니 제 차례를 기다리면서 이야기할 내용을 조금 수정하고 자연스럽게 바꿨습니다. 그렇게 했더니 3분넘게 발언한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제 앞쪽에 계신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님과 눈을 맞췄습니다. 제 이야기에 잘 고개를 끄떡여 주셔서 말하는데 큰 힘이 됐습니다. 가끔 오른쪽을 보며 대통령님과 눈을 맞추기도 했습니다. 맨날 불합리한 한국의 인터넷규제에 대해 불평한 일이 많은데 정작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앞으로 바람직한 좋은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미래부의 규제혁파내용도 아주 잘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동아일보기사) 최양희장관님은 본인이 직접 인터넷사이트에서 회원가입을 해보면서 연구를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실행만 잘 된다면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래는 제가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한국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임정욱 센터장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5년간 살다가 작년말에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앞에서 커머스플래닛 김수일대표가 말씀하신 내용들(페이팔, 스퀘어, 스마트폰으로 수표를 찍어 입금하는 모바일디파짓 등)은 저도 미국에서 자주 썼습니다. 반면 한국에 돌아와보니 안되는 것이 너무 많아 불편해 죽겠습니다.(웃음)
저는 혁신의 현장, 실리콘밸리에서 2년가까이 살면서 느낀 것이 많습니다. 그들은 규제환경과 상상력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서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만듭니다. 처음에 이야기를 들으면 황당하거나 도저히 될 것 같지 않은 아이디어에도 벤처캐피탈들이 거액을 투자하면서 밀어줍니다.
대표적인 예가 자신의 집에 남는 방을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빌려준다는 얼핏 듣기에 황당한 아이디어로 지금은 10조가치 회사가 된 에어비앤비(Airbnb)입니다. 이 회사는 전세계의 호텔업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최근 구글, 애플이 헬스케어 분야에 투자하는 것외에도 모바일페이먼트 방면에서의 미국의 혁신은 눈부십니다. 특히 핀테크(Fintech)스타트업이라 부르는 금융분야의 혁신스타트업이 실리콘밸리와 뉴욕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쉽고 안전하게 모바일앱으로 개인간에 서로 돈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스타트업(Square cash, Venmo)이나 모바일 환전서비스(Ripple)를 제공하거나, 자영업자가 은행에 가지 않고도 온라인에서 바로 SNS 등 빅데이터를 통한 신용체크를 통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스타트업(Ondeck)도 등장해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돈이 더 잘 돌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얼마전에 베이징을 다녀왔는데요. 중국도 알리페이를 통해 온라인쇼핑은 물론 택시, 쇼핑몰, 음식점 등에서 지갑없는 생활을 벌써 실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마트폰시장에서 무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샤오미를 방문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회사는 불과 4년만에 올 상반기 5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 매출이 99% 온라인을 통해서 나옵니다. 샤오미에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알리페이 덕분이라고 합니다. 아이디와 패스워드만 넣으면 30만원이 넘는 스마트폰을 쉽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의료․금융 등 여러 산업분야가 스마트폰, 인터넷과 결합하면 충분히 사업성을 갖고 해외 진출까지 넘볼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규제,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실현되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습니다. 해외직구트랜드에서 보듯 이제 국경이 없는 시대입니다. 해외스타트업들이 이런 분야에서 힘을 키울 동안 한국의 스타트업은 규제현실때문에 사업을 시작할 엄두를 못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그건 우리나라에서는 어차피 안될거예요“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스타트업들이 이런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등장하고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
조금더 세게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도 있었지만 톤다운을 좀 했습니다.^^ 박대통령은 회의가 끝나고 퇴장하면서 저와 악수하면서 “다 잘 해결될 겁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혹시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더 잘 준비해서 가야할 것 같습니다.
Update: 회의 동영상이 공개되어 추가합니다. 2시간 15분 부분부터 제가 말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동전으로 ‘카드 다이어트’ 하실래요? – Coin
현대인은 누구나 다양한 카드를 지니고 다닌다. 보통 신용카드 2~3장 외에도 은행 현금인출카드, 커피숍 포인트 카드, 헬스클럽 멤버십 카드 등을 하나씩 넣다 보면 지갑이 금세 불룩해지기 마련이다. 한 달에 한 번 쓸까 말까 한 카드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도 많다. 멤버십 정보를 스마트폰에 저장해서 바코드 형식으로 쓸 수 있게 해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도 있긴 하지만, 매번 앱을 구동하는 것도 귀찮고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 가맹점도 많다.
이런 점에 착안해서 ‘카드 다이어트’를 실현한 미국의 스타트업이 있다. ‘코인’(Coin)이라는 제품을 만든 샌프란시스코의 코인사다. 이 회사의 CEO인 카니쉬 파라샤(Kanishk Parashar)씨가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그와 만나 코인에 관한 얘기를 나누면서 제품을 직접 만져보았다. (그를 만난 얘기를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한국에서도 이 제품을 선주문한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파라샤 씨는 2013년 10월, 최대 8개까지의 다양한 카드를 한 장의 플라스틱 카드에 통합해서 쓸 수 있는 제품 ‘코인’을 홍보하는 동영상을 자사 홈페이지(https://onlycoin.com)에 공개했다. 이후 인터넷을 통해 정가에서 50% 할인된 50달러에 선주문을 받았다.
그의 목표는 우선 1000명으로부터 선주문을 받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품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호소하는 홍보 동영상이 전 세계에 퍼지면서 ‘대박’이 났다. 고객 1000명 확보라는 당초 목표는 고작 40분 만에 달성됐다. 그리고 5시간 만에 100만 달러(약 10억원)에 이르는 선주문을 받았다. 2만 개의 주문을 5시간 만에 받은 것이다. 실제 제품은 이듬해 여름에 배달한다는 조건이었음에도 그 뒤로도 수십만 개의 주문이 이어졌다. 대략 100억원이 넘는 셈이다. 95%가 미국 내 주문이었지만 한국에서도 주문이 많았다고 한다.
코인의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본인의 신용카드 정보를 코인에서 지급하는 카드 리더기를 이용해 입력한다. 그리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카드의 앞뒷면을 찍는다. 그런 후 코인카드를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미리 저장한 카드 정보와 동기화시키는 것이다. 코인을 사용할 때는 버튼을 눌러서 사용하고자 하는 카드 정보를 선택한 다음 그냥 신용카드처럼 긁기만 하면 된다.
얼핏 들으면 민감한 신용카드 정보를 쉽게 복제할 수 있어서 위험할 것 같다. 보안 문제에 대한 질문에 파라샤 씨는 “코인 카드에는 신용카드의 번호 전체가 나오는 것이 아니어서 도난당해도 카드번호가 유출될 위험이 없고 스마트폰에서 일정 거리, 일정 시간 이상 떨어지면 자동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잠겨버리기 때문에 안전하다”라고 설명했다.
파라샤 씨는 코인 시제품을 가지고 샌프란시스코·뉴욕·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3개 대도시에서 실제로 테스트 중이며 아직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을 방문하는중에도 이 카드를 가지고 계속 (시험삼아) 결제를 했는데 택시에서 안됐던 경우 한번을 제외하고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코인은 이 제품을 우선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초기 주문자 5000명에게 발송해 이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제품을 보완한 뒤 전 세계에 공식 출시할 계획이다.
하지만 코인이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먼저 한국에서 많이 쓰이는 IC칩 기반의 금융카드는 코인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게다가 카드사 이외의 사업자가 신용카드 정보를 저장하기 어려운 한국에서는 코인에 신용카드 정보를 복제해 집어넣는 것 자체가 불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는 코인을 보면서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보수적인 한국의 규제와 법규가 새로운 혁신을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다시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