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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밍서비스로 인한 콘텐츠업계의 부활
오늘 닛케이에서 콘텐츠 산업 부활극의 사각지대라는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음반업계가 MP3 등의 부상으로 인해서 완전히 고사 직전까지 몰렸다가 온라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의 부상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스마트폰의 보급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다시 성장 고민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위 그래프에서 보듯이 음반업계는 MP3를 필두로 하는 해적판이 범람하고 CD판매 비즈니스모델이 몰락하면서 극도의 위기를 맞았다. 그러다가 2014년 143억불의 매출을 바닥으로 반전해서 2018년까지 34% 상승했다.

음반업계를 구원해준 것은 스포티파이를 위시로 한 뮤직스트리밍서비스였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이용량이 폭증했다.
동영상 마켓도 마찬가지다. DVD판매가 사라지고 넷플릭스 등의 정액 스트리밍서비스가 자리잡으면서 시장의 비즈니스모델이 바뀌고 있다.
다만 디지털서적의 판매는 줄어들고 있다. 미국출판협회에 따르면 미국 전자서적시장에서의 13년부터 4년간 36% 매출이 감소했다. 같은 기간 종이책은 12% 증가했다. 디지털피로가 현실화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지금부터의 문제는 전세계 스마트폰의 출하대수가 정체상태라는 것이다. 이제 더이상 이런 서비스들이 압도적인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뭔가 새로운 것이 나와서 또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지도 모른다.
20여년전 나는 카세트테이프가 닳도록 같은 음악을 워크맨으로 들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당시의 나보다 휠씬 다양한 음악을 유튜브나 뮤직스트리밍사이트에서 쉽게 찾아서 듣는다. 그리고 그렇게 듣는 음악은 매번 카운트되서 소액이라도 저작권자에게 돈이 지급된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아도 알고 보면 또 다른 엄청난 기회가 존재한다. 다만 이런 미래의 변화를 이해하고 미리 선점하는 사람에게만 이런 기회가 보이는 것 같다.
누적 약 60억원을 투자유치한 퍼블리 박소령 대표

프리미엄 콘텐츠 스타트업 퍼블리가 오늘 38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DSC인베스트먼트, 인터베스트, 옐로우독, 메디아티 등 벤처캐피탈, 임팩트투자자, 미디어액셀레이터 등 투자자가 이번 투자에 참여했다.
퍼블리 박소령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2011년 8월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서였다. 하버드대의 공공정책대학원인 케네디스쿨에 유학하던 박대표를 트위터에서 알게 되서 만나본 것이다. (나는 그때 라이코스CEO로 근무중이었다.) 세상 일에 호기심이 많고, 지적이고, 생각이 깊은 소령님에게 하버드 케네디스쿨과 경영대학원 투어를 부탁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소령님이 한국으로 돌아와 무슨 일을 할지 정하지 못하고 한동안 방황하던 것을 봤다. 그러다가 2015년 4월 미디어 스타트업을 창업한다고 해서 의외라고 생각했었다. 처음에는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해 보이지 않았고, 나중에는 콘텐츠를 위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 만든다고 했다. (지금은 쏘카대표인) 이재웅대표가 엔젤투자를 하면서 창업을 부추겼다고 하던데 “한국에서 과연 미디어 스타트업이 가능할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언론계에서는 저런 모델이 될리가 없다고 악담을 하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잘 됐으면 좋겠다고 응원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퍼블리의 행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후 이제 거의 4년이 흘렀는데 박대표는 퍼블리를 “저게 과연 될까”에서 이제는 지식을 갈망하는 젊은 층에게 지지를 받는 고급 지식 콘텐츠 유료플랫폼으로 성장시켰다. 그리고 누적으로 약 60억원의 투자를 유치해 투자자들의 지지를 끌어내는데도 성공했다. 오늘 투자유치소식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2017년 11월에 나라경제에 기고한 퍼블리 박소령 대표 인터뷰를 아래 다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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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꼭 필요한 콘텐츠를 특별한 경험으로 제공합니다.”
언론계·출판계 등 고급콘텐츠를 다루는 업계인들 사이에서 주목받는 스타트업이 있다. ‘퍼블리(Publy.co)’다. 많은 이들이 이 회사의 독특한 콘텐츠 실험이 과연 성공할지 주시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쉽게 볼 수 있는 무료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퍼블리는 거꾸로 가치 있는 콘텐츠를 제값 받고 판매하겠다는 전략을 내걸고 출발했기 때문이다. 콘텐츠 유료화에 실패한 언론인들이나 책이 안 팔려 울상인 출판인들에게 이런 퍼블리의 시도는 무척 당돌하게 들린다. 그래서 퍼블리가 처음 시작할 때는 (나를 포함해서) “그게 되겠어?” 하고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퍼블리 박소령 대표는 창업한 지 2년여 만에 1만5천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그리고 그중 절반을 평균 3만원 이상을 내는 유료고객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또 다음(Daum) 창업자인 이재웅 씨의 초기 투자에 이어 캡스톤파트너스 등 잘 알려진 벤처캐피털(VC) 3사로부터 지난 8월 10억원을 추가로 투자받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2019년 2월 38억원을 추가로 투자받았다. 총 누적 투자금액은 약 60억원이다.) 이번 2017년 11월호에서는 프리미엄 콘텐츠 스타트업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일궈가고 있는 퍼블리 박소령 대표를 만나봤다.
박 대표에게 회사소개를 해달라고 하자 “퍼블리는 콘텐츠를 만들어서 파는 회사입니다. 특히 ‘지적콘텐츠’를 만들어 ‘유료’로 판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고급콘텐츠를 제값 받고 판다는 뜻이다.
고객이 원하는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기획하고 판매하기 위해 퍼블리가 선택한 방법은 크라우드 펀딩이다. 인터넷에서 다수의 개인에게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모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해외에서는 킥스타터나 인디고고가 유명하며 국내에서는 와디즈나 텀블벅이 잘 알려진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다. 이런 사이트에서는 보통 손에 잡히는 아이디어 제품을 기획해 돈을 모으는 것이 일반적이다. 2015년 4월 퍼블리를 창업한 박 대표는 2016년 초 퍼블리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를 개설하고 콘텐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이 이용할까.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부터 퍼블리 프로젝트에 상당한 돈을 내고 참가했다. 나는 VC산업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았다. 한국 스타트업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데 VC의 역할이 특히 크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실제 한국 VC생태계의 현황과 문제점에 대해 깊이 알 수 있는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참에 퍼블리의 ‘한국벤처캐피털리즘 -VC가 말하다’라는 프로젝트를 접하게 됐다. VC로서 활발하게 활약하고 있는 젊은 심사역 3명이 쓴 보고서를 제공받는 것과 함께 이들과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 대표 등 시니어VC들이 모여 4시간 동안 진행하는 토론회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보고서 구매와 참가비용은 무려 14만원. 무료로 참석할 수 있는 콘퍼런스나 세미나가 넘쳐나는 시대에 황당할 만큼 비싼 가격이었다. 하지만 다른 어디서도 구하기 어려운 콘텐츠이기 때문에 큰마음을 먹고 등록했다. 약 50명분의 티켓은 오래지 않아 매진됐다. 토론회 당일 대부분 투자가였던 참석자들은 상당한 금액을 들인 만큼 전원 출석했고, 모두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충만한 훌륭한 분들이었다. 그날 인사한 여러 명의 투자가들과 이후 계속 교류를 하게 됐다. 또 일류 경영컨설팅 회사의 자료 못지않은 품질의 보고서 내용도 만족스러웠다. 콘텐츠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고급 네트워킹까지 가능한 오프라인 행사를 개최한 퍼블리의 기획력에 감탄했다.

이처럼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깊이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저자가 취재와 보고서 작성 계획을 퍼블리 홈페이지에 밝히고, 미리 설정해둔 가격에 맞춰 프로젝트 자금을 모금한다. 펀딩에 성공하면 디지털보고서를 발간하고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독자들의 질문에 답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60개의 프로젝트를 시도했고 그중 5개가 펀딩에 실패했습니다. 50여개는 최종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낸 것이죠.”
기념비적인 프로젝트는 칸 광고제 프로젝트다.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칸 국제광고제는 광고시상식 이외에도 광고, 크리에이티브,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방대한 세미나와 워크숍이 진행되는 거대한 행사다. 광고와 게임전문가 2명이 현지취재를 해서 보고서를 전달하는 프로젝트에 500여명이 참여해 1,700여만원의 금액이 모였다.
어떤 연령층을 타깃으로 하느냐고 묻자 박 대표는 돈을 벌기 시작한 25세의 젊은 층이라 답했다.
“대학교육을 마친 이후 사회에 진출한 젊은이는 계속 뭔가 배움을 통해서 성장하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중국어 등 외국어 공부, 시험 공부 사이트는 많아도 자기 자신의 지적 성장욕구에 적합한 플랫폼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런 시장에 공백이 있다는 생각으로 퍼블리를 만들었고, 그것이 맞아떨어진 것이죠.”
미디어에 대한 자신의 이상을 펼치는 퍼블리를 창업하기까지 박소령 대표는 먼 길을 돌아왔다. 서울대 경영학과 00학번인 박 대표는 졸업 후 맥킨지, 티플러스 등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4년 반 정도 일했다. 이후 뜻한 바가 있어 2010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로 유학을 갔다가 2014년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
“미디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변화하는 세계를 대중에게 쉽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저널리스트의 역할에 끌렸습니다. 그래서 미디어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제가 있을 곳을 찾지 못했어요. 초조해졌습니다.”
소위 ‘오버스펙’이었던 박 대표는 의외로 길어지는 백수생활에 방황을 하다가 젊은 창업자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이재웅 대표를 만났고, 이 대표의 권유로 창업에 나서게 됐다. 창업을 결심하는 데 이재웅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이다.
퍼블리는 이제 제법 축적된 콘텐츠를 기반으로 또 다른 유료화 모델도 시도 중이다. 두 달 전부터 월 2만1,900원을 내면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는 멤버십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판매가 종료된 지난 콘텐츠도 읽고 싶다는 고객의 요구 덕분이다. 또 출판사 미래엔과 계약을 하고 고객의 호응이 컸던 콘텐츠를 재편집해 책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2019년 2월 현재 월정액 멤버십 서비스로 약 160개의 리포트, 1400편의 콘텐츠를 제공한다.)
박 대표는 앞으로 ‘스타트업’으로서 정체성을 갖기 위해 퍼블리의 기술 기반에 더 투자해나갈 방침이다.
“기술 기반의 콘텐츠플랫폼이 만들어져야 비즈니스를 더 빠르게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콘텐츠 기획과 개발의 중요성을 동등하게 보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이나 책에서는 얻기 힘든, 살아 있는 고급정보에 굶주려 있는 사람이라면 퍼블리 사이트를 한번 방문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혹시 관심이 있다면 오프라인 행사에도 참여해 저자와 소통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퍼블리가 한국의 지적자본을 쌓아나가는, 새로운 시대의 고급콘텐츠 비즈니스 회사로 쭉쭉 성장해가기를 바란다.
넷플릭스가 한국에서 성공할 이유
넷플릭스가 한국시장에 1월6일 처음 상륙한지 한달이 지났다. 첫 한달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어서 호기심에 가입해본 사람들이 많을텐데 이제 두번째달부터는 유료로 전환됐다. 한달 사용요금은 화질이나 동시시청가능여부에 따라 미화 8불에서 12불사이다. 역시 한달에 만원내외하는 한국의 경쟁서비스에 비해 그리 비싼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콘텐츠가 빈약하다고 비판을 받았다. 한국영화나 드라마 등 한국콘텐츠가 크게 부족하며 빅뱅이론이나 모던패밀리 등 보통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미국드라마도 많지 않다. 미드골수팬이 아닌 일반대중이 넷플릭스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미국에서 넷플릭스를 오랫동안 사용해 본 사람으로서 나는 결국 넷플릭스가 한국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2001년 미국 유학시절 당시 DVD우편대여서비스를 하던 넷플릭스를 우연히 알게 되어 처음 고객이 됐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왔다가 다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에 거주하는 동안 인터넷 VOD서비스로 변신한 넷플릭스를 꾸준히 이용해 왔다.
지난 15년간 내가 지켜본 넷플릭스는 수없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는 위기를 돌파하며 미디어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꿔나간 혁신기업이다. CEO 리드 헤이스팅스의 초지일관 비전과 직원을 프로야구선수처럼 대하는 독특한 조직운영이 이 회사가 지금까지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결국 승승장구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에서 넷플릭스가 ‘찻잔속의 태풍’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나는 결국 장기적으로 넷플릭스가 유튜브처럼 한국시장에서 자리잡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음은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다.
첫번째 이유는 넷플릭스는 단기승부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지난 1월 한국을 포함한 130개국가로 서비스를 확장한다고 발표했다. 넷플릭스는 한국시장만을 공략하는 것이 아니다. 190개국 글로벌시장 동시진출 전략의 일환으로 한국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기적인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한국서비스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한국에서 초기 반응이 시원찮다고 쉽게 서비스를 접을 것이 아니란 얘기다. 글로벌전략을 한국에서도 장기적으로 밀어붙일 것이다. 로컬에 현지 서비스를 위해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인력을 채용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회사는 도대체 한눈을 팔지 않는다. 매달 고객에게 일정액을 받고 고객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불편없이 볼 수 있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97년, 18년전 창업이후 계속 그렇게 해온 기업이니 쉽게 얕볼 수 없다.
두번째는 압도적인 사용의 편이성이다. 넷플릭스는 결제하는데 액티브X도 필요없고 한번 로그인해두면 다음부터 아이디, 패스워드를 귀찮게 다시 물어보지도 않는다. 스마트폰이든, 타블렛이든, 랩탑컴퓨터든 어디서 어떤 브라우저로 봐도 잘 재생된다. 여러 기기를 옮겨가면서 봐도 이전 기기에서 보던 장면에서 그대로 이어져서 편리하다. 광고도 전혀 없다. 이런 편리함을 경험한 한국고객들은 한번 가입하면 넷플릭스를 잘 빠져나가지 않을 것이다.
세번째는 다양한 넷플릭스 독점콘텐츠다. 넷플릭스 한국서비스에는 화제작 ’하우스 오브 카드’는 아직 빠져있지만 데어데빌, 제시카 존스, 나르코스 등 넷플릭스가 직접 제작한 개성있는 오리지널프로그램이 많이 있다. 그리고 계속 새로운 프로그램이 추가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올해 콘텐츠구매및 제작비용으로 6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넷플릭스는 또 봉준호감독의 신작 ‘옥자’의 제작비 5천만불(약6백억원)을 투자한다고 지난해 11월 발표했다. 향후 한국드라마프로덕션을 통해 한국드라마시리즈를 직접 제작할 가능성도 크다. 나중에 넷플릭스에서 ‘응답하라 1988’같은 히트작이 안나오리란 법이 없다. 향후 한국인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가 대거 투입된다면 넷플릭스의 한국시장에서의 영향력이 국내 방송국을 넘어설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네번째는 결국 젊은 세대의 TV시청 습관이 실시간시청에서 보고 싶을때 즉시 보는 온디맨드시청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어린 아이들이 TV와 넷플릭스를 동일시한다는 얘기도 있다. 유튜브가 한국에서 자리잡은 것처럼 넷플릭스도 결국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시간문제다.
어쨌든 넷플릭스의 한국진출은 침체된 한국의 콘텐츠산업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새로운 글로벌TV네트워크로 부상하고 있는 넷플릭스플랫폼을 잘 활용하면 한국콘텐츠를 세계로 유통시킬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강남스타일이 유튜브를 타고 전세계를 휩쓸었던 것처럼 한국영화나 드라마가 넷플릭스를 타고 글로벌하게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또 넷플릭스는 매너리즘에 빠진 국내 방송시장이나 인터넷동영상시장에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국내 사용자들이 불편한 불법다운로드서비스를 이용하기 보다는 넷플릭스 같은 정액제서비스를 이용하게 함으로서 동영상 불법복제시장이 줄어드는 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 넷플릭스의 한국진출이 한국콘텐츠산업계에는 위협이 아니라 오히려 기회라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다.
스마트 기기와 콘텐츠 홍수 속의 괴로움
며칠 전 인근 애플스토어에 나가 새로 나온 아이패드 미니를 만져보았다. 예전보다 크기만 작아지고 새로운 혁신은 그리 없다고 느낀 제품이지만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둘 것은 분명해 보였다. 아이패드 미니는 올해 미국에 홍수처럼 쏟아져나온 태블릿 컴퓨터들의 대미를 장식하는 제품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서피스 태블릿, 윈도폰, 구글의 넥서스 시리즈, 아마존의 킨들 시리즈,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 등 전세계를 뒤덮어가는 첨단기기의 행진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나는 인터넷업계에서 일하기도 하거니와 첨단기기를 사서 직접 써보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기에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이 나오면 일부러 무리해서라도 사서 써보는 편이다. 그런 나도 이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 나오는 스마트 기기의 융단폭격에 피곤을 느끼고 있다. 사서 쓴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첨단기기도 금세 구형으로 전락하는 세상이다. 게다가 이미 집에 있는 티브이, 랩톱컴퓨터, 태블릿컴퓨터, 스마트폰까지 해서 스크린이 10개가 훨씬 넘는다. 그러다 보니 4명의 가족이 대화 없이 각자 자기만의 화면을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스마트 기기를 통해 편리하게 소비하는 콘텐츠도 실은 피로를 가중시킨다. 앱만 실행하면 공짜이거나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볼 수 있는 영화·드라마가 사방에 널려 있다. 사놓고 읽지도 못하는 전자책이 내 스마트 기기 속에 잔뜩 들어 있다. 엄청난 양의 신문·방송 뉴스도 터치 몇 번이면 스마트 기기로 다 볼 수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인들이 추천해주는 좋은 정보는 얼마나 많은가. 꼭 읽어봐야겠다고 별마크를 해놓았다가 못 읽고 그냥 넘어가는 글이 한두 개가 아니다. 읽고 싶어서 사놓은 좋은 책들도 끈기를 갖고 읽지 못하고 중단해버린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들은 고스란히 마음속에 부담으로 남는다. “시간이 없는 것이 한”이라는 말을 되뇐다. 이처럼 나는 정보의 풍요 속에서 생활하며 오히려 깊이 알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정보 편식자가 돼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곤 한다.
예전엔 이런 고민이 없었다. 콘텐츠가 희소했기 때문이다. 20여년 전을 돌이켜보면 아침마다 구독하던 조간신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여유롭게 읽었다. 신문광고에서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고 동네서점에 들렀는데 마침 없어서 주인아저씨에게 주문해달라고 부탁한 일도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구매한 책을 아껴서 음미하며 읽곤 했다. 티브이에서 주말의 명화 시간에 보고 싶은 영화를 할 때에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가 온 가족이 꼼짝 않고 집중해서 봤다. 기다리던 가수의 레코드판이 나오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워크맨으로 닳아빠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그처럼 콘텐츠를 귀하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터치 한번이면 책, 신문, 잡지, 영화, 음악 등 온갖 콘텐츠가 순식간에 내 손안에 들어오는 시대가 됐다. 빌 게이츠가 ‘당신 손가락 위의 정보’가 세상을 바꾼다고 20여년 전 설파했던 세상이 눈앞에 있다. 내가 꿈꾸던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가끔은 좀 피곤하다. 꼭 이렇게 많은 정보가 필요한가? 너무 지나치게 편리해진 것이 아닌가? 스마트폰은커녕 휴대폰도 없던 세상에서도 우리는 행복하게 살지 않았는가?
스마트 기기와 디지털 콘텐츠의 홍수 속에 앞으로 더욱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될 듯싶다. 평소 모바일혁명의 찬미자인 나도 가끔은 정보의 유통이 적고 느린 세상으로 도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이 오히려 괴롭다.
/2012년 11월 6일자 한겨레 칼럼.
사실 3년전에 “콘텐츠의 홍수속에서 너무 괴롭다”는 글을 쓴 일이 있었다. 그때의 글을 지금 다시 읽고 생각해보니 콘텐츠와 정보의 홍수현상이 3년전보다 더 가중이되면 되었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지금은 쏟아져 나오는 흥미로운 앱들까지 내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잔뜩 쌓여있고 다들 내가 한번만 실행해주길 기다리고 있다. 넘쳐나는 훌륭한 콘텐츠로 즐거움을 느껴야하는데 반대로 조금씩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니 정말 아이러니다.
방법이 없다. 욕심을 버리고 진짜 중요한 정보만 취사선택하고 시간을 잘 활용해 내가 정말 재미를 느끼는 콘텐츠만 즐겨야겠다. 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