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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코스 이야기 13] 차별없이 사람 뽑기
라이코스에 있을때 처음 1년반을 나와 함께 일했던 콘트롤러(회사의 회계와 재무를 책임지는 재무팀장을 Controller라고 한다) 멜라니는 주위에서 워커홀릭으로 불렸다. 일에 대한 책임감이 무척이나 강했던 그녀는 매일밤 야근을 밥먹듯이 하고 필요하면 주말에도 나와서 일을 했다.
회계업무라는 것이 매주, 매달 데드라인이 있으므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는데 내가 좀 쉬어가면서 하라고 해도 “할 일이 많아서 어쩔 수 없다”며 항상 열심히 일했다. 일반적인 미국직원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래서 본사에서도 그녀를 좋아했다.
조금 가까와지자 멜라니는 자신은 뉴햄프셔 소도시의 가난한 집의 딸로 태어나서 대학가느라 빌린 학자금대출을 이제 나이 서른에 다 갚았다는 얘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한마디로 억척스럽게 사는 평범한 백인처녀였다. (지금 생각하니 요즘 말하는 소위 ‘흙수저’다.) 그녀는 자신은 고생하는데 야근하지 않고 일찍 퇴근하는 팀원들을 가끔 원망하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직장 분위기에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팀원들에게 무조건 야근을 강요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갑자기 페이롤을 담당하던 줄리의 해고로 인해서 결원이 생기면서 추가로 재무팀원을 뽑아야 할 일이 생겼다. 기본적인 회계처리업무는 물론 온갖 잡무를 같이 맡아줄 사람을 뽑아야 했다. 나는 일에 있어서 무척 깐깐한 멜라니가 어떤 사람을 팀원으로 뽑을까 내심 궁금했다. 백인동네에서 성장한 멜라니가 자신과 비슷한 배경을 가진 부지런한 백인여성을 뽑지 않을까 예상했다. 오래지나지 않아서 멜라니는 새로 뽑기로 한 직원이라며 입사예정자를 데려왔다. 그런데 그 새로운 팀원은 내 예상과는 달리 젊은 중국여성이었다.
20대중반의 후지에 장은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상하이에서 미국계 회계법인을 다니다 보스턴의 대학원으로 유학왔다. 그리고 2년동안 회계학을 공부, 졸업을 앞두고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것도 아니고 미국체류경험은 2년정도다. 일단은 졸업후 1년간 유효한 OPT비자(학교졸업후 한시적으로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비자)를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비자스폰서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도 멜라니가 외국인을 뽑았다는 것이 내게는 의외였다.
그래서 왜 후지에를 뽑았느냐고 멜라니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똑똑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열심히 일할 것 같아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때 깨달았다. 능력만 된다면 미국회사에 들어가는데 인종이나 국적여부가 그렇게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물론 이렇게 쉽게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그 전까지 가지고 있던 미국회사에 대한 선입견과는 달랐다는 얘기다.)
이후 후지에는 멜라니의 기대대로 일을 잘했다. 중국인특유의 액센트가 있는 영어를 구사했지만 업무를 위한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충분히 영어를 잘했고 회계관련 업무도 금세 배워서 능숙하게 처리했다. 멜라니는 후지에를 열심히 가르치고 좋아했다. 마치 자신의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 그리고 또 팀에 한명을 더 충원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후지에가 추천한 그녀의 친구인 비슷한 경력을 지닌 중국여성을 또 한명 뽑았다. 그녀도 역시 일을 잘했다. 아 이렇게해서 중국인들이 미국회사에 자리를 잡아가는구나 싶었다.
이처럼 내가 경험한 미국회사에서는 일만 잘하면 인종이나 국적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회사의 엔지니어들중에는 러시아출신, 인도출신, 중국출신 등이 있었다. 다 나름대로 자신의 역할을 잘하는 좋은 엔지니어들이었다. 다만 몇몇 외국출신 일부 엔지니어들은 맡은 일은 잘 했지만 커뮤니케이션에는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었다. 같이 대화를 해보면 영어에 액센트가 심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내가 영어실력이 떨어져서 못알아듣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들의 담당 매니저가 하루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친구들이 뭘 하자고 주장하는데 솔직히 뭘 말하려고 하는지 알아듣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확실하게 처리하기 때문에 괜찮기는 한데 그 친구들에게 다른 사람을 관리하거나 리드하는 매니저역할을 맡기기는 어려워요.” 즉, 해야할 것이 명확한 시킨 일이나 혼자서 하는 일은 잘하지만 남들을 설득하고 이끄는 일은 쉽지 않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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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미국기업에서 경영진으로 올라가는 승진의 사다리가 소위 소위 뱀부실링(대나무천장-Bamboo ceiling)으로 막혀있다는 말이 있다. 물론 아직도 상당부분 존재하는 인종에 대한 차별, 편견, 선입견이 뱀부실링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라이코스에서의 경험을 통해 뱀부실링은 물론 차별도 있겠지만 주류미국인에 비해 아시아계가 커뮤니케이션과 리더십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똑똑하고 성실한 아시아계가 취업은 잘하고 자기 몫은 충분히 하지만 미국회사의 경영진까지 올라가겠다는 야망과 노력은 좀 부족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미국회사는 능력주의다. 아니 미국사회전체가 다른 어떤 국가에 비해서 능력위주다. Meritocracy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바마 같은 사람이 48세의 젊은 나이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회사에 비해 실력만 있다면 인종, 국적, 학력, 나이 등에 구애받지 않고 뽑는 편이니 능력을 갖추고 계속 도전하다보면 문은 열린다. 열심히 일하고 능력있는 한국인들은 일단 미국회사에 들어가면 빨리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조직의 사다리를 올라가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이나 리더십 능력 키우기에는 소홀한 편이다.

닛케이비즈니스의 인도계 CEO특집기사
이런 부분에서는 같은 아시아계지만 인도계들이 아주 적극적이다. 내가 만난 인도계 경영자들은 자신들에게는 뱀부실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자신감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미국에 어릴 때 이민간 사람도 아니고 나처럼 모국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온 사람도 이렇게 자신감 있게 이야기하는 것을 접하고 놀랐었다. 그리고 나서 몇년 뒤에 보니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도 모두 인도계 CEO로 바뀌었다.
우리 한국인들도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능력, 그리고 자신감 등을 보완한다면 앞으로 미국대기업에서도 많은 한국계 CEO들을 배출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어차피 차별 때문에 안될거야하는 선입관을 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반대로 우리 기업에서도 외국인이라고 차별하지 말고 능력이 있다면 과감하게 리더로서 기용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라이코스 이야기 6] 직원면접
라이코스 이야기를 쓰겠다고 선언하고 5편까지만 쓰고 중단한지 5개월이 됐다. 예전에 스토리볼에 썼던 글을 더 잘 가다듬어 써보겠다고 하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안되겠다. 그냥 그 글을 블로그에 그대로 옮겨놓는다고 생각하고 빨리 마무리해야겠다. 이번에는 직원면접 이야기다. 예전에 썼던 내용인데 또 재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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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초 라이코스에 CEO로 간지 얼마되지 않아 새로운 직원을 뽑아야 할 일이 생겼다. 나는 당시 말단 직원을 뽑더라도 최종면접은 CEO가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직원이 수천~수백명도 아니고 80명정도의 회사였으니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마음에 걸렸던 것은 한국에서 온지 얼마되지 않은, 영어도 어눌한 CEO가 인터뷰를 할 경우 오히려 입사지원자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만약 회사의 다른 점은 다 마음에 드는데 CEO가 별로라서 안오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돌이켜보면 참 소심한 생각이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느꼈다.
그래도 (CEO로서의 책임감에) 새로 뽑기로 한 직원은 마지막으로 내가 한번 만나는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로 충원하는 직원은 보통 HR매니저의 도움을 받아 담당매니저와 같이 일할 팀원들이 인터뷰를 해서 뽑는다. 채용이 거의 확정된 마지막 단계에서 내가 가볍게 만나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HR매니저인 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오히려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예전 CEO들은 중요 포지션을 뽑는 경우가 아니면 직접 면접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면접때 뭘 질문할 작정이냐고 물어본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문화적 차이를 이해못하고 직무와 불필요한 질문을 면접당사자에게 하는데 그건 위험하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차별혐의로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 아니 날 뭘로 보고… 뭘 그렇게 과민반응을 하나 싶었다.
그런데 몇시간 있다가 존은 정말 걱정이 됐는지 “면접시 물어봐서는 안될 것”이 적힌 한 장의 메모를 내게 줬다. “DON’T ASK”라고 그 메모에 적힌 해서는 안될 질문들은 내 예상이상으로 범위가 넓었다. 대충 다음과 같다.
- 당신은 Miss/Ms./Mrs./Mr. 어디에 해당하나요?
- 독신/기혼/이혼자인가요?
- 자녀가 있나요? 있다면 몇살인가요?
- 앞으로 자녀를 가질 계획이 있나요?
- 누군가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요?
- 생년월일은 어떻게 되나요?
- 고교나 대학의 졸업연도가 어떻게 되나요?
- 체포된 일이 있는지요?
- 미국시민인가요? 원래 어디 출신인가요?
- 당신의 영어 액센트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요?
- 군대 다녀왔나요?
-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지 모두 알려주세요.
- 어떤 휴일을 쇠는가요? (각 종교나 민족의 문화에 따른 휴일을 쇠는지 물어보는 것)
- 복지수당을 받아본 일이 있나요?
- 노조원이었던 경험이 있나요?
- 예전에 아팠거나 부상을 당했던 경험이 있나요?

존이 준 리스트를 기억해두고자 그때 바로 사진까지 찍어두었다.
이 질문리스트를 읽고 사실 깜짝 놀랐다. 결혼여부, 자녀유무나 어느 나라-지역 출신인가, 학교졸업연도 등은 인터뷰를 하면서 상황에 따라 물어볼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아무 생각없이 물어볼 수 있는 것들을 물어보면 안된다니 놀랐다.
존의 설명은 “뽑고자 하는 포지션의 업무와 관련된 질문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최소한 “미국시민이냐”정도는 물어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법적으로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느냐”고 돌려서 직무적합성과 연결해서 물어보면 되지 단도직입적으로 국적 등을 물어보면 안된다는 것이다.
존의 조언을 명심하고 잠재 후보자인 한 백인엔지니어와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내가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결국 그 사람은 라이코스에 입사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심한 나는 그뒤부터는 내게 직접 보고하는 포지션의 직원을 뽑는 경우가 아니면 각 담당매니저들이 알아서 뽑도록 했다. 대신 입사가 확정된 직원은 따로 점심을 같이 하며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중에 보니 미국사람들도 경우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밥먹으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보면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불행한 결혼생활, 아이들 문제 등등을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놓는 사람도 많았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개인신상은 절대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가까운 동료에게도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He (or she) is a very private person”이라며 주위 사람들이 가끔 결혼여부 등 개인신상을 궁금해하긴 하지만 그 이상 나가는 법은 없었다.
심지어 모 임원은 늦게 결혼을 했는데 회사전체는 물론 자기 부서부하들에게까지 전혀 알리지 않은 일도 있었다. 나중에 지역 신문의 웨딩란에서 결혼소식을 발견하고 일부 부하들이 섭섭해했지만 그뿐이었다. 어쨌든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니 이처럼 남의 사생활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일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회사에서는 일만 하고 개인적인 시간은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 미국의 보통 직장 풍경이다.
어쨌든 직원채용과정에서 나중에 차별로 느껴질만한 질문은 절대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존에게서 내가 배운 교훈이다. 이후로 항상 명심하고 조심하게 됐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인터뷰를 하다보니 업무와 관련된 그 사람의 능력만을 평가하게 되는 장점이 있었다.
나이가 많아서, 딸린 식구가 많아서, 특정 인종이 아니라고, 영어발음이 이상하다고, 이혼했다고 등등의 이유로 능력은 충분히 있는데 채용과정에서 떨어진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