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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콤 경영진의 한국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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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의전사회’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지나친 의전문화를 꼬집은 글을 쓴 일이 있다. 높은 사람들이 실질보다 형식을 너무 따지고 과도하게  대접받는 것에 익숙한 한국식 의전문화의 폐해에 대해서 써봤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 이런 과잉 의전문화가 관뿐만 아니라 일반 대기업에도 폭넓게 퍼져있다고 해서 더 놀랐다. 물론 모든 기업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기업 회장이나 고위임원을 제왕처럼 모시는 문화가 한국은 너무 지나친 감이 있다. 이런 귀빈이 행사에 나오거나 어디 출장을 간다고 하면 밑에 있는 사람들은 미리 동선을 짜고 예행연습을 하느라고 죽어난다. 이런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느라 진짜 해야 할 일을 못한다. 의전에서 실수하면 진짜 중요한 업무에서 실수한 것보다 승진에서 더 큰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한국의 의전 문화를 보면서 해외기업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야 원래 수평한 문화로 유명한 곳이니 이런 의전문화가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유럽의 대기업들은 한국회사와 비슷한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얼마전 한국을 방문한 스위스콤의 최고경영진을 만나면서 꼭 그렇지만은 않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그때 경험을 메모해 둔다.

***

실리콘밸리에 있는 후배의 소개로 지난해 12월에 이야기는 시작됐다. 후배를 통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스위스콤 벤처스의 헤드를 소개받았다. 우리는 이메일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스위스콤의 CEO 및 최고경영진이 1월말에 한국에 방문할 예정인데 한국의 스타트업을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스위스콤이 어떤 기업인가. 스위스의 KT, SKT 같은 기업이다. 2013년 전체 매출은 14조7천억원규모, 영업이익은 2조7천억원쯤 되는 공룡기업이다.(스위스콤홈페이지의 재무정보 링크) 스위스의 통신시장의 60%쯤을 점유하고 있으며 유선전화, 휴대전화, 브로드밴드, IPTV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KT와 흡사하다. (KT는 2013년 연결기준 매출 23조8천억원, 영업이익은 8천7백억원. SKT는 2013 매출 16조6천억원 영업이익 2조원) 스위스콤은 공개기업은 아니지만 구글파이낸스에서 검색해보니 현재 대략 37조원정도의 기업가치를 가진 회사다. 이 정도 기업의 최고경영진이 오는데 한국의 작은 스타트업들을 만나보겠다니 사실 좀 놀랐다. 어쨌든 후보 스타트업 명단을 만들어 보냈고 1월말의 금요일 오후에 우리 사무실에 방문해 스타트업들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1월말 스위스콤미팅에 앞서서 스위스대사관만찬에 초대받았다. 연륜이 풍부한 스위스대사와 함께 한국을 막 방문한 스위스콤 경영진 일행을 만났다. CEO와 CTO, 마케팅, 전략 담당 임원 등 4명이었다. 내가 놀란 것은 그들이 단 4명만 왔다는 것이었다. 최소한 (이번 미팅을 조율한) 스위스콤벤처스에서 누군가 올 줄 알았다. 아니면 비서실 소속 부장이나 과장정도 실무진이 CEO와 임원들을 직접 수행하고 다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최고경영진 단 4명만 왔다고 해서 좀 뜻밖이었다.

스위스콤 일행중 회사 홈페이지 경영진명단 제일 위에 나와있는 CEO와 CTO.

스위스콤 일행중 회사 홈페이지 경영진명단 제일 위에 나와있는 CEO와 CTO.

스위스콤 CEO는 이번 첫 한국방문을 1. 세계에서 가장 앞서있다는 한국의 막강 브로드밴드 환경에 대해서 배우고 2. 또 모바일인터넷서비스는 어떤 것이 나와있는지 살펴보고, 그리고 3. 한국의 스타트업들을 만나보고 싶어서라고 목적을 이야기했다. 급변하는 통신업계의 환경을 생각해보면 스타트업에서 혁신을 가져와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섣불리 스타트업을 인수했다가 그 혁신을 죽여버리는 경우가 많으므로 참 조심해야 하고 그래서 고민이 많다는 얘기도 했다. 어쨌든 그들은 이렇게 배우기 위해 한국에 왔기 때문에 KT, 네이버, 다음카카오, SK플래닛, 삼성전자 등을 방문하는 바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라고 했다.

대사관만찬을 갖고 사흘뒤 스위스콤 일행은 귀국 직전 마지막 일정으로 스타트업을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스타트업과 미팅을 갖기에 앞서서 국내VC들과의 점심식사를 갖기로 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헬리콥터 착륙지연으로 스위스콤 일행이 식사시간에 한시간 지각을 했다. 구미의 삼성공장에 다녀온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그 임원 4명이 움직였을뿐 따로 수행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스위스대사관에서 상무관이 나오기는 했는데 그는 따로 연락을 받고 식사장소에 먼저 와 있었고 스위스콤 일행과 같이 움직이지는 않았다. 늦을 것 같다고 미안하다고 처음 알려온 것도 누굴 통해서가 아니라 김포공항에서 CTO가 직접 나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왔다.

스위스콤 경영진과 한국VC오찬.

스위스콤 경영진과 한국VC오찬.

일정이 지체되고 있어 식사를 빨리 주문해놔야 할 것 같아서 메뉴 사진을 찍어서 CTO에게 문자(iMessage)로 보냈다. 식사장소는 양식당이었다. 그랬더니 “햄버거 4개를 주문해 달라”고 즉각 답이 왔다. 이 CTO는 스위스콤 경영진 홈페이지에서 CEO 다음으로 서열 2번째에 있는 사람이다.

대절한 차를 타고 일행이 레스토랑에 지각 도착했다. 식사하는 중에 임원이 한명 안와서 어디갔냐고 물어봤더니 스타트업미팅을 마치고 바로 공항으로 가야 하므로 짐을 우리 사무실로 올려두러 우리 직원과 같이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는 짐을 가져다 놓고 10분뒤에 왔다.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늦게 왔다고 정말 미안해했다) 스타트업 얼라이언스에 있는 큰 회의실에서 스타트업 6개사와 미팅을 시작했다. 2시15분부터 6개팀을 각 20분씩 만나고 아무리 늦어도 4시반에는 대기하는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야했다. 6팀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만날 기회를 줘야 하므로 거의 쉴 시간도 안주고 6팀의 발표세션을 밀어붙였다.

Screen Shot 2015-02-01 at 1.52.22 PM

공기도 잘 안통하는 좁은 회의실에 모셨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했는데 이들은 게으름 피우지 않고 화장실에 잠깐 다녀오는 시간을 빼놓고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열심히 스타트업의 발표를 듣고 질문을 했다. 그리고 끝나자마자 바로 공항으로 떠났다. 미리 대절해둔 차가 와서 4명이 그대로 공항으로 향했다.

금요일밤 비행기를 타고 돌아간 스위스콤 CTO는 내게 토요일 오후 2시에 메일을 보내서 (미리 약속했던대로) 그룹내 스타트업 담당임원을 소개해줬다. 스위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메일을 쓴 것 같다.

솔직히 이들의 출장일정을 보면서 말도 잘 안통하는 나라에 처음 갔는데 수행비서를 데리고 와서 같이 다니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거대기업의 최고임원진이 거들먹거리지 않고 이렇게 소탈하게 출장 일정을 소화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또 스위스인들이 참 실용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쨌든 이 분들이 모처럼 한국스타트업에 관심을 갖고 방문했는데 준비부족으로 너무 누추한 곳에 정신없이 모신 것 같아서 미안한 생각이 계속 남아있다. 잘 될지는 모르지만 이것을 인연으로 스위스콤이 한국스타트업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

Written by estima7

2015년 2월 1일 at 2:07 오후

의전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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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미국에 있을 때의 일이다. 한국 쪽이 주최하는 콘퍼런스에 초청되어 간 일이 있었다. 정부의 실세 고위인사가 인사말을 하는 귀빈으로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는 행사였다. 대부분이 일반인인 청중 수백명이 자리에 앉아서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행사장 옆에 마련된 큰 방에는 관련 업계의 대표, 유명 교수 등이 빼곡히 앉아서 행사 시작 전에 그 고위인사와 차를 한잔하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행사시간이 되어 가는데도 그 고위인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다들 잡담을 나누며 지루하게 기다렸다. 거의 30분을 지각한 그 인사는 별로 미안해하지도 않고 기다리던 귀빈들과 일일이 악수를 한 뒤 행사가 지체되고 있는데도 앉아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담소를 나눴다. 그리고 잠시 후 지루하게 행사 시작을 기다리던 청중 앞에 나가 형식적인 축하의 인사말을 한 뒤 귀빈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또 다음 일정 때문에 바쁘다”며 일찍 떠나버렸다. 행사의 실질적인 내용인 강연이나 토론에는 전혀 참가하지 않은 것이다. 그 인사가 떠난 뒤 다른 귀빈들도 뒤따라 빠져나갔다.

당시 나는 한국이 참으로 대단한 ‘의전사회’가 됐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한시간여의 ‘의전적인’ 행사 동안 업계의 현안 등 실질적인 얘기는 전혀 오가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비위를 맞추는 공허한 덕담만 오갔다. 그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 어쩌면 중요한 미팅이나 출장 일정도 미루고 온 민간기업 중역들의 시간은 누가 보상할까. 또 알맹이 없는 귀빈들의 축사를 듣느라 낭비된 청중들의 시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더 나아가 그때 내가 우려한 것은 그렇게 중요한 국정을 살피는 분이 형식적인 행사와 모임에 참석하느라 도대체 일을 할 시간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듣자 하니 장차관 이상 고위인사들의 점심과 저녁 식사는 거의 한달 전에 다 찬다고 한다. 요즘에는 조찬모임도 흔하다. 잘못하면 새벽부터 저녁까지 행사장과 식사 약속 자리를 계속 이동하기만 하다가 하루를 다 보낼 수 있겠다 싶었다.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서 읽고 공부해야 할 것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과연 저렇게 시간을 낭비해도 되는 것일까. 저렇게 해서 세계적인 리더들이 방문했을 때 그들을 감복시킬 만한 통찰력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인가.

이상한 해경 인력 배치..수색보다 '윗분 의전'-SBS뉴스 5월7일보도. (위 사진을 누르면 기사로 이동)

이상한 해경 인력 배치..수색보다 ‘윗분 의전’-SBS뉴스 5월7일보도. (위 사진을 누르면 기사로 이동)

의전사회의 폐해는 세월호 참사에서도 드러났다. 높은 사람이 오면 그에 맞춰서 의전을 준비하는 데 익숙해진 공무원들은 현장에서 고통받는 희생자 가족들의 입장에서 배려하는 방법을 몰랐다. 위기상황에서 효율적으로 구조활동을 펼치는 방법에 대한 매뉴얼은 없는데 높은 사람들을 모시는 의전방법은 매뉴얼로 머릿속에 박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한국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과도한 의전문화를 없애자고 제언하고 싶다. 쓸데없는 의전에 소비하는 시간을 줄이면 그 시간에 사색하고 실질적인 대화를 하고 보고서를 깊이있게 읽고 토론할 수 있다. 행사 진행자들이 높은 사람이 아닌 일반 참석자들을 위해서 더 많은 배려를 하고 내실있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는 필요하지 않은데도 끌려들어가서 자리를 지켜야 하는 회의에 대해서 불평한다. 안 가도 되는 불필요한 회의와 외부 미팅이 많은 문화의 회사에 다니다 보면 업무시간에는 일을 못하고 결국 야근과 주말근무로 해결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과도한 의전문화도 똑같다. 윗사람들이 형식적이고 관행적인 행사를 쫓아다니는 동안 조직 전체의 효율성은 떨어진다. 대한민국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 리더들부터 솔선수범해서 이런 형식적이고 권위적인 의전문화를 없애보면 어떨까.

***

한겨레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으로 마지막으로 쓴 칼럼. 2012년 6월에 시작해서 2014년 5월까지 1년11개월동안 연재했다.

Written by estima7

2014년 5월 8일 at 11:01 오후

생각의 단편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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