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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에릭 슈미트와의 대화’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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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좋은 행사를 접했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회장이 연세대를 방문해서 한국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200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간 구글의 CEO를 맡았던 에릭 슈미트회장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실리콘밸리의 현자다. 뛰어난 경영능력과 리더쉽으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라는 두 명의 설익은 천재 창업자를 도와 구글을 세계최대의 혁신적인 인터넷기업으로 만들어낸 사람이다. 소프트웨어엔지니어로 버클리대박사출신인 Geek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는 리더쉽을 갖추고 다방면에 관해 박학다식해 어떤 분야에 대한 질문에도 막힘없이 대답하는 불가사의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난체하지 않고 온화하고 인자한 인품을 가지고 있는 보기드문 현인이다. 구글내에서도 에릭 슈미트에 대해서 나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고 모두의 존경을 받고 있는 경영자다. 이 분이 없었다면 오늘의 구글은 결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 분의 발표를 유튜브에서 여러차례 본 일이 있는데 복잡한 기술이야기를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능력이 탁월해 언제나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다.

이런 분이 연세대에서 대담을 했다고 하고 그 내용이 바로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기에 기쁜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한국대학생청중을 위해 평소보다 약간 느리게 더 알기 쉬운 표현으로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의 영어는 보통 미국인이 말하는 것보다 휠씬 우리에게 알아듣기 쉽다.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것이다.)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선 사람들과 대화해야 한다” 등 통찰력이 담긴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그럼에도 내가 아쉽게 여길 수 밖에 없던 것은 이 행사 운영이었다. 첫번째 아쉬움은 진행자 선정이었다. 인터넷업계나 구글, 에릭 슈미트에 대해 잘 모르는 아나운서보다는 이 방면에 대해 노련한 교수가 해주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단지 영어실력만으로 진행자를 선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 정도였다.

두번째 아쉬움은 동시통역이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대학에서 열리는 행사에서 왜 영어만으로 진행을 했을까? 영어 잘하는 학생이 많다고 자랑하는 것은 아닐테고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통역으로 진행할 경우 장점이 많다. 그 분야에 대해 철저히 공부하고 통역에 임하는 동시통역사들을 통해서 궁금한 내용을 질문할 경우 휠씬 심도있는 질문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물론 잘하기는 하지만 (당연히) 모국어보다 어설프고 어색한 영어로 질문하는 학생과 그것을 제대로 풀어서 에릭 슈미트에게 전달해주지 못하는 진행자를 보고 든 생각이다.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대략 48분40초부분에서 한 학생이 한 질문이 에릭 슈미트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은 것이다. 이 학생은 얼마전 국내언론에서도 큰 화제가 되고 나도 블로그로 소개를 했던 페이스북 COO 쉐릴 샌드버그의 하버드경영대학원 축사내용인 “로켓에 자리가 나면 일단 올라타라“에 대해 질문을 했다. 아래는 내가 번역한 쉐릴 샌드버그의 축사 발췌다.

내가 스프레드시트에 정리해두었던 취업후보중 하나는 구글의 첫 비즈니스유닛담당 부문장이었다. 지금 들으면 괜찮은 자리로 들리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도 일반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인터넷회사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2001년 당시는 닷컴버블이 막 꺼진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나는 솔직히 그 포지션이 존재하는지조차도 의심스러웠다. 구글은 당시 비즈니스부문이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매니지하라는 말인가? 그리고 그 자리의 타이틀은 내가 다른 회사에서 받은 제안보다 몇단계 급이 낮은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당시 막 CEO가 된 에릭 슈미트와 마주 앉았다. 그리고 내가 정리한 내 잡오퍼를 담은 스프레드시트를 그에게 보여주며 구글이 제시한 포지션이 내 기준에는 하나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내 스프레드시트에 손을 올리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세요.(Don’t be an idiot)” 훌륭한 커리어조언이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로켓에 올라타세요. 회사가 빠르게 성장할 때에는 많은 충격이 있고 커리어는 알아서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고 회사의 미션이 별로 얘기가 안될 때에는 정체와 사내정치가 시작됩니다. 로켓에 자리가 나면 그 자리가 어디 위치했는지 따지지 마세요. 우선 올라타세요.” – 쉐릴 샌드버그의 2012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졸업식 축사에서

무척 긴장한 모습의 이 학생은 당황했는지 조금 완벽하지 않은 영어로 “당신은 10년전 당시 작은 회사이던 구글에 인터뷰를 하던 쉐릴 샌드버그에게 ‘바보짓 말고 로켓에 올라타라’고 조언을 했는데 그때 어떻게 구글이 그렇게 빨리 성장할 것을 확신하고 그런 조언을 했느냐“는 질문을 했다. 좋은 질문이었지만 영어로 듣기에는 조금 명확하지 않았다. 자신도 슈미트회장에게 잘 전달이 되었는지 자신이 없었는지 “Do you understand?”이라고 토를 달았다.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슈미트회장이 그냥 “잘 못 알아들었다. 다시 해달라”고 하지 않고 “Because of acoustics, maybe you could repeat it for me?”라고 한 것이다. 질문을 제대로 알아듣게 못했다고 학생이 무안해할까봐 “음향장치 때문에 잘 못들은 것 같다. 다시 이야기해줄 수 있느냐”고 옆에 앉은 진행자에게 부탁한 것이다. 참 사려깊다. 그런데 진행자는 툭 “Sorry, I didn’t understand”라고 말한다. 그러자 학생은 다시 영어로 질문하려고 하나 어찌해야할지 몰라서 당황한다. 그러자 오히려 슈미트 회장이 “You can ask in Korean and she can ask me.”라고 구원에 나선다. 이건 정말 진행자가 먼저 해야 할 말이다. 그제서야 학생은 한국어로 자기가 말하고 싶었던 질문을 설명한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점은 이 질문을 진행자가 통역하지 않고 대담석에 앉아있는 한 학생에게 넘긴다. 그리고 그 질문을 대신 통역한 학생도 (엄청 당황한데다)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쉐릴 샌드버그 대신 래리 페이지가 어쩌고 하면서 대충 통역하고 내용을 얼버무린다. 그러자 대충 질문에 대해서 감을 잡은 슈미트회장이 (할 수 없이) “쉐릴 샌드버그는 대단히 뛰어난 인재고 나는 그녀에게 당시(페북으로 옮길때) 그녀에게 최선의 선택을 하라고 조언했고 그녀는 그 뒤 아주 잘해내 자랑스럽다”라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끝냈다. 즉, 결국 질문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어 다른 대답을 한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그 질문을 다시 바로잡아주지 않고 잠시 정적후 다음 질문자로 넘어갔다. 허탈하게도. (Update: 신기하게도 위 질문을 했던 당사자인 유병수님이 아래에 댓글을 달아주심.^^)

한국을 대표하는 명문대와 한국 메이저방송사가 같이 주최하는 행사에서 보여준 이같은 아마추어리즘. 아쉽다. 에릭 슈미트회장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리고 한국의 대학에서 한국말로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의사전달이 잘 안되는 어설픈 영어로 질문하는 것보다 또박또박 한국말로 질문하는 모습이 외국인들에게는 더 당당하게 보일 것이다. 영어에 지나치게 매몰된 우리자신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 느낌이었다.

Written by estima7

2012년 9월 29일 at 8:59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