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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티마의 심천탐방기
올초 세계최대의 가전제품전시회인 라스베가스 CES에 다녀왔다.2년만의 방문이었다. 삼성과 LG의 거대한 부스의 위용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깜짝 놀란 것이 있었다. 중국, 그중에서도 심천기업들의 부상이었다. 참조: CES 단상-한국경제의 미래가 걱정된다
전체 참가사 3천6백개의 기업중 1천개가까이 중국기업이었고 그중 절반이 센젠(Shenzhen)을 회사이름에 넣은 심천기업이었다. CES안내책자에 4백여 심천기업의 이름이 4페이지 빼곡이 들어있었다. 심천회사 부스에 있는 몇몇 서양인들과 이야기해봤다. 왜 이렇게 심천에서 많이 왔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나 “심천은 전세계 전자제품의 수도니까”, “심천은 하드웨어의 실리콘밸리”라는 약간 잘난 척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심천은 어떤 곳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좀 무리해서 기회를 만들어 2월초 심천을 방문했다.
심천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하드웨어엑셀러레이터 핵스(HAX)였다. 설립된지 3년쯤되는 핵스는 하드웨어스타트업을 단기간내에 집중적으로 육성해주는 곳이다. 세계최대의 전자상가라는 화창베이역앞에 있는 고층빌딩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프랑스인 제네랄파트너 벤자민 조프는 한중일 등 아시아에서만 15년을 살다가 심천에 정착한 사람이다. 그는 심천의 강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심천에는 어떤 부품이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전자상가와 함께 소량으로도 시제품을 만들어주는 공장들이 가득합니다. 화창베이에는 10층짜리 규모의 전자상가빌딩이 한 20개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뭐든지 쉽게, 값싸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제품을 대량생산해서 전세계 어디로든지 배송할 수 있는 글로벌배송시스템이 갖춰져 있습니다.”
심천이 세계최고의 하드웨어생태계를 갖춘 곳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핵스는 심천의 하드웨어생태계를 이용해 외지에서 온 하드웨어스타트업이 빠르게 제품화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문화된 스타트업육성센터다. 심천을 이용하고는 싶지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는 외국 스타트업들을 위해 다리를 놔주는 것이다.
현재 6번째 기수를 받아 육성중인 핵스에는 스타트업 15팀이 들어와 있다. 벤자민은 “지금 프로그램에 참가중인 15팀중 절반이 미국과 캐나다에서 왔고 4분지 1이 유럽팀 그리고 2팀이 중국, 1팀이 한국출신이다”라고 말했다. 핵스는 시제품출시이전의 유망한 스타트업을 골라 2만5천불을 투자하고 6%의 지분을 받는다. 이는 3명팀이 심천에 와서 4개월간 지내면서 시제품을 개발하는데 적당한 금액이다. 4개월동안 시제품을 완성한 이들은 ‘졸업식’격인 데모데이는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한다. 제품은 심천에서 만들었지만 이들의 투자자와 잠재고객은 실리콘밸리에 있기 때문이다.
벤자민은 실제 스타트업 창업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라며 누군가를 데리고 왔다. 여기서 1년전에 IoT(사물인터넷)카메라를 만들어서 킥스타터를 통해 펀딩에 성공했다는 샌프란시스코 스타트업 오토(Otto)의 데이빗이다. 그는 “심천에 대한 전설을 예전부터 들어서 한번 꼭 와보고 싶었다”며 “6개월전에 프로그램에 들어와 심천을 경험한 뒤로는 계속 샌프란시스코와 심천을 왕복하며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심천의 강점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소량으로 주문하기도 어렵고 주문을 해도 받는데 몇달 걸리는 카메라부품을 심천에 와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것도 10분의 1가격에 구했다. 그게 진품이었는지는 내게 묻지마라.(웃음) 어쨌든 제품을 테스트하고 만드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어떤 카메라 센서는 온라인 타오바오몰을 통해 5개를 주문했는데 45분만에 배달을 받는 놀라운 경험을 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부품가게가 내가 있는 곳 바로 아래층에 있었던 것이다! 이곳은 하드웨어엔지니어들에게는 천국같은 곳이다.”
화창베이의 전자상가상인들이 크고 작은 공장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스타트업에 아주 우호적이라는 것도 강점이다. 조프씨는 “몇십개, 몇백개의 소량을 주문해도 제품의 가능성을 보고 기꺼이 만들어 주는 공장주인들이 많다”며 “이중에서 백만개이상씩 파는 히트상품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에 공장쪽도 같이 모험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핵스에서 제품을 준비하는 BBB의 최재규대표는 “한국의 공장들은 대기업눈치를 엄청보면서 스타트업을 상대해주려하지 않는다”며 “반면 영어가 잘 안통해도 어떻게든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오픈마인드로 스타트업을 대하는 심천의 분위기에 놀랐다”고 말했다.
핵스는 전세계에서 온 하드웨어스타트업이 심천의 하드웨어생태계를 이용해 빠르게 시제품을 만들도록 도와준뒤 4개월 프로그램이 끝나면 이 팀들을 모두 샌프란시스코로 데리고 가서 투자자들에게 제품을 선보이는 데모데이를 갖는다. 조프씨는 “심천이 훌륭한 하드웨어생태계를 가지고 있지만 중국은 얼리아답터마켓은 아니다”라며 “이들이 만든 혁신적인 제품을 사줄 최고의 얼리어답터마켓은 역시 아직도 미국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데모데이를 갖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심천에는 세계최대의 전자제품 공장이 있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 애플의 제품 대부분을 위탁 생산하는 폭스콘의 공장이 심천시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스타트업과 협력하고 싶다며 공장구석구석을 안내해준 조슈아 다이씨는 “폭스콘은 혁신 전자제품을 스타트업과 같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며 “사물인터넷(IoT)분야에서 같이할 스타트업을 전세계에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27만명이 일한다는 폭스콘공장은 그야말로 작은 도시였다. 1백여개의 건물들이 있고 12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는 심천 폭스콘내에는 공장직원들이 생활하는 아파트같은 모습의 기숙사들과 함께 수퍼마켓, 은행, 우체국, 식당 등이 자리잡은 상가건물들도 있었다. 이런 거대기업조차 스타트업과 일하겠다는 모습이 놀라웠다.
우리는 중국전자제품하면 짝퉁을 연상하지만 그런 면에서도 심천은 변화하고 있었다. 화창베이전자상가에는 생각보다 짝퉁제품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대신 곳곳에 자리잡은 비공식 애플과 샤오미가게를 통해서 애플과 샤오미의 대결구도를 느낄 수 있었다.
아이폰6와 함께 다시 중국스마트폰 시장 1위를 탈환한 애플과 샤오미, 화웨이, 레노보와 각종 중국신생 스마트폰 브랜드들의 각축속에 삼성이 밀리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참고 포스팅 : 중국시장에서 각축을 벌이는 애플, 샤오미 그리고 삼성.)
드론시장에서 세계 1위인 심천의 DJI는 변화하는 중국의 신세대 전자업체를 상징한다. 2006년 프랭크 왕이 설립한 이 회사는 연간 수천억원규모로 추정되며 급팽창하고 있는 세계 민간드론시장의 1위업체로 드론시장에서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카메라를 달아서 멋진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이 회사의 팬텀2 모델은 전세계에서 드론매니아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드론중 하나다. 전세계 드론관련 뉴스에 가장 자주 나오는 베스트셀링 모델이다. 이 회사는 해외제품을 카피해서 빠르게 내놓는 다른 중국회사들과는 달리 자신만의 오리지널한 제품을 내놓는다.
최근 4년간 직원수가 50명에서 3천명이상으로 급증할 정도로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실리콘밸리의 명문VC들이 투자하겠다고 몰려드는 회사다. 얼마전 실리콘밸리에서 직접 들은 루머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의 명문VC인 시콰이어캐피털이 기업가치 2조원에 이 회사의 구주를 인수했으며 지금은 기업가치가 10조원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사실 많은 드론매니아들은 DJI가 중국회사인지도 모를 정도다. DJI는 새롭게 떠오르는 신세대 중국테크회사를 상징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실제로 팬텀2를 사서 날려보고 이 회사의 기술력에 감탄했다.
이렇듯 심천은 급성장하며 전세계의 하드웨어혁신을 빨아들이고 있다. 생각이상으로 현대화된 심천시내 곳곳에 첨단빌딩이 속속 건설되고 있었다. 거리도 깨끗한 편이며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심천에서 뻗어나가는 중국의 기세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소수의 대기업에 성장과 혁신을 의존하는 한국경제는 이대로 괜찮을 것인가.
중국시장에서 각축을 벌이는 애플과 샤오미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우는 심천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곳은 화창베이 전자상가. 용산전자상가의 10배~20배쯤 되는 규모라고 생각하면 된다. 세운상가 같은 곳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현대적인 큰 빌딩들이 즐비하고 그 안에 가득히 각종 전자제품가게들이 채워져있다.
여기서 조금만 걸어다녀보면 애플과 샤오미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 사진들은 워낙 애플과 샤오미가게가 붙어있는 것이 많이 보여서 몇군데 찍어본 것이다.
샤오미는 99%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심천에는 이렇게 샤오미대리점(?)이 많아서 좀 당황스러웠다. 알고 보니 이곳 전자상가업자들이 손에 넣은 제품들을 (샤오미 허락도 없이) 샤오미 간판을 달고 판매하는 것이다. 애플공식스토어가 심천에 있기도 하지만 이런 비공식(?) 애플스토어가 휠씬 많다. (애플 브랜드가 저렇게 마구 사용되는 것을 보면 스티브 잡스가 무덤속에서 막 화를 낼 것 같다.)
애플이나 샤오미 짝퉁을 파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전시중인 제품을 자세히 살펴봤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심천은 짝퉁천국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화창베이 전자상가를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그렇지 않았다. (물론 전자상가의 어딘가에서는 그런 것들을 잔뜩 쌓아놓고 팔고 있겠지만 저렇게 겉으로는 그런 제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전자제품은 아니지만 화창베이근처에서 본 가장 노골적인 짝퉁제품은 이 뉴 바룬(?)운동화였다. 뉴밸런스와 똑같다. ㅎㅎ
통신사의 대리점은 거의 없고 (아마도) 모두 언락폰을 파는 것도 특이했다. 고객은 원하는 폰을 사가서 마음대로 쓰던 USIM을 바꿔끼워서 쓰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더더욱 거센 스마트폰 판매경쟁이 있는 것 같다.
심지어는 저렇게 샤오미를 가두판매하는 곳도 많았다.
휴대폰수리센터에 붙어있는 로고를 보면 어느 회사 제품이 가장 인기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애플, 삼성, 샤오미, 화웨이 로고가 붙어있다.
물론 삼성로고를 붙인 가게들도 많이 있었지만 잘보이는 곳에서는 거의 애플과 샤오미가 한판 붙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3대 메이커에 대한 중국후발주자들의 맹렬한 추격도 느껴졌다.
화웨이는 거대기업답게 아주 깔끔한 자체매장을 선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폰자체가 사람들에게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후발주자중 가장 많이 보이는 간판은 Oppo였다. 아이폰6보다 얇다는 R5가 매력적이었다.
MEIZU도 많았다.
VIVO라는 브랜드도 여기저기서 눈에 띄였다.
쿨패드도 꽤 큰 심천회사라도 들었는데 그렇게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또 모토로라를 인수한 레노보도 스마트폰이 있고 ZTE라는 큰 회사에서 스마트폰도 있다. 그밖에 잘 모르는 브랜드도 많았다. 폭스콘에서 만난 분은 “화창베이에는 거의 100개의 중국 스마트폰브랜드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그중 다크호스가 오포, 메이주 같은 업체들이다”라고 말했다. 제2의 샤오미가 되기 위해서 난리다. 만져보면 다 디자인도 괜찮고 쓸만해 보인다.
이상하게도 LG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G3가 괜찮은 폰인데도 말이다. 똑같이 노키아 등 윈도우폰도 안보이고 소니에릭슨 같은 브랜드도 전혀 없다. 애플, 삼성 대 중국연합군의 대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심천 화창베이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다. 거리 한편에 MS 스토어를 공사중인 모습이 보였다. (설마 진짜 MS스토어겠지?)
샤오미는 정말 잘나가고 관심의 촛점인 것 같다. 서점마다 샤오미의 마케팅 성공전략을 쓴 ‘참여감’이란 책이 잘 보이는 곳에 놓여있다. 내가 손에 들고 뒤적이자 점원이 웃으면서 와서는 “샤오미를 좋아하냐?”하고 막 뭐라고 하고 간다.
중국남방항공 기내지에도 샤오미의 레이준이 크게 나온다.
일주일간 상해, 심천을 다니며 스마트폰을 쓰는 중국인들을 유심히 봤다. 지난 4분기에 애플이 중국에서 스마트폰 판매 1위를 탈환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판매대수로 애플, 샤오미, 삼성, 화웨이순이었다.)
정말 중국인들이 아이폰 많이 쓴다. 다른 중국산스마트폰보다 월등히 비싼데도 그렇다. 샤오미도 많이 보이기는 하지만 애플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샤오미의 가능성도 대단한 것 같다. 전자상가 상인들이 저렇게 자진해서 샤오미 브랜드 간판을 달고 대리점을 자처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만큼 일반 소비자들이 샤오미를 원하니까 저렇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이미 중국에서 스마트폰 브랜드가치로는 삼성에 필적하게 올라온 것이 아닌가 싶다.
삼성은 샌드위치신세다. 위로는 애플에 막혀있고 아래에서는 샤오미 등이 막 치고 올라온다. 중국에서의 이 전세가 글로벌하게 퍼지면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도 든다. 삼성의 분발을 바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미 이 정도 제품을 자력으로 내놓고 있는 중국 스마트폰 업계가 과연 팬택같은 회사에 관심을 가질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허포트폴리오정도에 관심을 가질 수는 있겠다.) 아쉽게 주저앉아버린 팬택이 참 아쉽다.
나도 샤오미를 좀 제대로 이해해보고 싶어서 샤오미대리점(?)에서 MI4모델을 하나 사왔다. 가격은 1999위안. 한화로는 대략 35만원정도 한다. 샤오미생태계가 어떤 것인지 좀 자세히 들여다 봐야겠다.
CES단상-한국경제의 미래가 걱정된다
세계최대 가전쇼인 라스베가스 CES에 다녀왔다. 2년만에 다시 방문했는데 해가 갈수록 조금씩 더 커지는 규모, 여전한 인파, 엄청난 참가업체수에 정신이 없었다. 이틀동안 주마간산으로 대충 살펴봤다. 그리고 든 생각과 찍은 사진 몇장을 간단히 메모해서 공유.
2년전의 CES와 비교해서 비슷한 점은 대기업들의 부스였다. 삼성, LG, 소니, 퀄컴, 인텔 등 주요업체들의 부스는 2년전과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크기였다. 세부 전시내용은 달랐지만 전체적인 부스디자인은 예년과 비슷한 경우도 많았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자회사인 애플이나 요즘 한창 뜨는 샤오미가 참가하지 않은 CES에서 여전히 가장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회사는 삼성전자였다. 윤부근사장의 키노트발표는 미국언론의 CES 개막기사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하지만 주로 대기업관이 있는 센트럴홀과 노스홀은 지루했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불만이 없을 정도로 요즘 TV는 이미 충분히 화질이 좋다. 그런데 TV업체들은 4K다 8K다 SUHD다 퍼펙트블랙이다 퀀텀닷이다 온갖 마케팅용어를 가져다대며 홍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별 의미없이 공허했다. 혹자는 부스에 정신없이 장식된 대형TV스크린들을 보고 “하이마트에 온 것 같다”고 평했다. 포드, 아우디, 현대자동차 등이 나온 자동차관도 솔직히 2년전과 비교해 그다지 색다른 모습을 보기는 힘들었다.
반면 다양한 웨어러블, 사물인터넷(IoT), 스마트홈관련 스타트업이 나온 테크웨스트관(샌즈엑스포)와 수많은 작은 전자업체들이 나와 드론 등이 전시된 사우스홀은 달랐다. 이곳에서는 스타트업과 작은 중국중소업체들이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휠씬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었다. 많은 참관객들이 대기업관보다 스타트업과 작은 기업들이 모여있는 이곳에서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혁신은 이쪽에서 나오고 있구나”라는 말을 하는 분들이 많았다.
전체적으로 무엇보다도 내 눈길을 끈 것은 중국의 부상이었다. 특히 심천(Shenzhen)의 부상이었다.
구글을 다니다 나와서 50여 스타트업에 엔젤투자를 한 미국친구와 CES에서 우연히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 “심천이 대단하다”는 말을 서로 했다. 아니 얼마나 많은 중국회사들이 CES에 온 것이냐며 놀랐다는 얘기다. ‘Shenzhen’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중국회사를 수십개는 본 것 같다는 얘기를 하자 그 친구가 말했다. “CES공식디렉토리를 보면 Shenzhen회사가 4페이지를 차지한다.” 찾아보니 정말 그랬다.
그밖에 심천인근지역인 동관, 항조우, 광조우 등지에서 온 업체들의 수도 만만치 않았다. 휴대폰배터리나 케이스, 주변기기 등을 들고 나온 이들은 다 비슷비슷해보이고 촌티나는 부스를 열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비즈니스기회를 잡겠다는 열정 자체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냥 지나쳐가려는 나를 불러세우고 제품을 열심히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많이 왔다면 분명히 중국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봤다. 정부나 시당국의 지원을 받은 것이 있냐고. 단호하게 없다고 한다. 협의체를 구성해서 오기는 했지만 그런 것 없단다. 다 자기돈 들여서 왔다는 얘기다.
하이얼, 창홍, TCL, 하이센스 등의 중국대기업들이 큰 부스를 열어놓고 삼성, LG 못지 않는 대형TV를 전시하고 있다. 화웨이도 다양한 스마트폰모델을 내놓고 전시하고 있다. 중국세가 갈수록 CES를 압도한다는 생각을 했다. 전체 3천6백여 참가업체의 4분지1 쯤이 중국업체들인 것 같았다.

http://www.fabernovel.com 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CES에서는 850여개의 중국회사들이 참가했다. 한국은 여기 그래프에서 보기로는 참가기업이 꽤 있는 것 같았는데 현장에서의 존재감은 대기업이외에는 떨어졌다.
우리가 다 죽은 것으로 생각하는 일본전자회사들도 많이 나와있다. 샤프, 파나소닉, 소니 같은 전통의 전자회사들외에도 니콘, 캐논, 샤프, 카시오 등의 전자회사들과 자동차관쪽에는 자동차부품업체인 덴소, 자동차스테레오를 만드는 파이오니어, 켄우드 같은 회사들이 열심히 전시중이었다.
프랑스기업들이 은근히 많은 것도 눈길을 끌었다. 위딩스, 네타모 같은 흥미로운 IoT기기를 내는 이 분야에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회사들이 프랑스회사다. 드론으로 유명한 회사 Parrot도 프랑스회사였다. 이들이 내놓은 제품들은 CES에서 대기업제품들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스타트업들이 모여있는 ‘유레카파크’ 전시장에서는 이스라엘, 대만, 프랑스, 덴마크, 스웨덴, 우크라이나 등 다양한 국가출신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만날 수 있었는데 프랑스가 66개팀이 참가해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를 압도했다. 프랑스는 전략적으로 CES에 공을 들인 것 같기도 하지만 상당히 유니크한 IoT기업들이 많았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CES 전체에서 한국은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이외에는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내가 실제로 만난 한국중소업체는 한군데밖에 없었다. (몇군데 더 있었지만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았던 것 같다.) 코트라에서 지원한 한국관이 있었다고 했는데 구석에 있어서 그런지 나는 만나지 못했다.
이런 현상을 보고 나는 우리 기업생태계의 신진대사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전자업계의 경우 글로벌하게 알려진 몇몇 재벌 대기업이외에는 눈에 띄는 기업이 없다. 지난 몇년간 전자업계의 패러다임이 헬스케어, 웨어러블, 드론, IoT 등을 중심으로 크게 바뀌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 이 분야에서 새로 주목받는 기업은 거의 없는 것이다.
예전에 주목받던 팬택도 지금 빈사상태고 아이리버는 SKT에 인수됐고 예전에 뜨던 휴대폰회사인 VK는 사라졌다. 국산스테레오를 만들던 인켈이나 맥슨전자, 텔슨전자 등 이런 전시회에 나올만한 중견기업들은 다 사라졌거나 존재감이 없다. 그 많은 삼성, LG 협력업체들도 생각보다 별로 보이지 않았다.
반면 수많은 작은 심천출신의 중국중소기업의 창업자들에게는 열정과 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지나가던 나를 불러세워서 열심히 제품을 설명하는 모습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비즈니스를 만들어내겠다는 열의가 보였다. 이런 그들을 더이상 짝퉁이나 만드는 싸구려 회사라고 깔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중에서 또 몇년뒤에 제 2의 샤오미가 나올 수도 있다.
얼마전 읽은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의 뉴욕대 폴 로머교수 인터뷰기사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혁신경제의 지표는 새로운 기업의 진입률로 따져야 한다는 얘기다. 기업생태계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야 한다는 얘기다.
“선도자로 가기 위해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펴야 합니까? -“경제 운용의 스타일이 변해야 합니다. 각 부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하고, 더 많은 경쟁이 일어날 수 있게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기업들이 등장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겁니다. 기존 기업들을 보호한다면 새로운 기업이나 새로운 혁신이 발생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기업을 보호하기보다는 사람을 보호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다른 기업에서 새로운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기업을 보호하려다 보면 사람들을 보호하지 못합니다.”
“정책의 핵심은 성공을 어떻게 측정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저라면 혁신 정책의 성공 지표로 특허에 집중하지 않을 겁니다. 새로운 기업들의 진입률을 지표로 삼을 겁니다. 나아가 새로운 기업에 밀려 도태되는 기존 대기업의 개수를 성공의 신호로 생각할 겁니다.”
이번 CES를 보면서 지나치게 대기업위주로 형성되어 새로운 기업이 나와서 성공하기 어려운 한국경제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한국에 일고 있는 스타트업붐이 희망적이긴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틀을 깨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새로운 한국기업들이 많이 나오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