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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0년은 한국스타트업의 중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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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이스라엘을 스타트업 강국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어마어마한 스타트업들이 많습니다. 인텔이 15B(16조)을 주고 인수한 모빌아이부터 나스닥에 상장해 7B(8조)이상 가치의 테크회사가 된 wix.com 등 대단한 회사가 많습니다. 지난 10년간 큰 성과를 낸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을 소개하는 이 표를 보면 우리가 모르는 조단위 엑싯을 한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큰 엑싯 성과를 보여주는 표(IPO와 M&A) 출처 : Entree Capital

하지만 이스라엘에 가보면 오히려 한국을 부러워합니다. 이스라엘에는 의외로 큰 대기업이 없습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LG전자 같은 글로벌 대기업은 이스라엘에 없습니다. 모빌아이나 윅스, 웨이즈 같은 유명한 스타트업들도 자세히 보면 이스라엘보다 미국쪽에 더 중심을 두고 있는 회사들이라 완전히 이스라엘회사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또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결국 미국회사에 매각되고 비즈니스의 중심이 해외로 이전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작은 나라라서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죠.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부족한 점이 많고 스타트업 강국인 이스라엘처럼 되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도 처음부터 이렇게 스타트업들이 잘 된 것은 아닙니다.

ICQ Messenger by Mirabilis

처음 계기는 미라빌리스라는 작은 스타트업이 만들었습니다. 98년 ICQ라는 인터넷 메신저를 만든 미라빌리스라는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미국 AOL에 4억불(지금 환율로 약 4천4백억)에 매각된 것입니다. 매출이 거의 없는 기업인데도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거액에 미국 공룡 IT기업에 팔린 것이죠. 단번에 이스라엘의 영웅이 됐습니다. 이 딜은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엄청난 자극이 됐다고 합니다. 이들을 흉내낸 많은 테크 스타트업 창업이 이어졌습니다. 미라빌리스의 엔젤투자자였던 요시 바르디는 투자 수익으로 계속 활발히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에 투자를 이어갔고 이것이 생태계의 선순환을 이루는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제 이스라엘 같은 이런 현상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2015년까지만해도 테크 스타트업의 가장 큰 엑싯이라고 해봐야 내비게이션앱 김기사가 카카오에 626억에 팔린 정도였습니다. 수천억원대의 스타트업M&A딜은 실리콘밸리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2019년말에 수아랩이라는 인공지능 스타트업이 2300억원에 미국 코그넥스에 인수됐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배달의 민족앱을 만든 우아한 형제들이 독일의 딜리버리히어로에 약 5조원 규모로 인수되는 딜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비디오채팅앱 아자르로 유명한 하이퍼커넥트가 약 1조9천억원에 미국의 매치그룹에 인수되는 딜이 나왔습니다. 하이퍼커넥트는 그동안 사실 투자를 받을 필요가 없어서 1조원대 가치의 유니콘 스타트업 리스트에도 들어있지 않던 기업이었습니다. 그리고 곧 쿠팡이 뉴욕증시에 상장되서 30조원 이상 가치의 회사가 될 예정입니다.

혹자는 이런 알짜기업들이 해외에 팔리면 국부유출이 아니냐고 합니다. 하지만 회사가 해외에 매각된다고 그 회사를 들어서 외국으로 옮기는 것은 아닙니다. 회사는 그대로 한국에 남아있습니다. 거액의 인수자금은 이 회사들을 창업한 창업자와 위험을 감내하고 초기에 투자한 벤처캐피탈에 돌아가게 됩니다. 이스라엘 미라빌리스의 사례처럼 이런 딜로 돈을 번 창업자와 스타트업 임직원들은 다시 창업에 나설 것입니다. 그리고 투자자들도 더 열심히 좋은 스타트업을 찾아서 더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게 될 것입니다.

한국은 사실 스타트업창업에 있어서 전세계 어느 나라 못지 않은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은 열심히 공부하고 해외유학까지 다녀온 젊은 인재들을 많이 보유한 나라입니다. 카이스트, 포스텍, 유니스트 같은 훌륭한 연구중심 이공계 대학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시장도 그리 작지 않습니다. 1인당 3만불이상의 국민소득을 가진 5천만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나라입니다. 많은 국민들이 얼리어답터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작은 나라가 이커머스시장은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 3위일 정도입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강한 제조업 역량을 가진 대기업들이 포진하고 있고 정보통신 인프라가 잘 갖춰진 나라입니다. 200곳이상의 벤처캐피탈 투자사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연간 7조원이상의 벤처자금이 스타트업에 투자됩니다. 이런 혁신 스타트업들을 인수해 줄만한 IT대기업들도 많습니다. 네이버, 카카오는 수십조원이상의 기업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게임 대기업, 그리고 1조원이상의 가치를 지닌 유니콘 스타트업도 10개가 넘게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창업지원에 있어서는 전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정부지원 프로그램이 있는 나라입니다. 많은 나라들을 다녀봤지만 이 정도로 환경이 잘 갖춰진 나라를 보지 못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같은 한국의 활발한 스타트업 생태계 역량을 해외에서는 아직은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배달의 민족과 하이퍼커넥트 같은 메가 딜이 나오면서 이같은 상황도 바뀔 것으로 기대합니다. 많은 해외 투자자들과 IT기업들이 한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케이팝과 한국드라마, 영화 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타이밍이라 더 좋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10년이 스타트업 코리아의 중흥기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국이 10년뒤에는 이스라엘을 능가하는 스타트업 강국으로 글로벌하게 인정을 받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결코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사실 20여년전을 돌이켜보면 삼성전자, 현대차가 이 정도의 글로벌 기업이 되고, 한국 콘텐츠가 이렇게 전세계에서 사랑을 받을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한국스타트업들도 전세계적인 한류 히트상품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Written by estima7

2021년 2월 13일 at 12:53 pm

알토스벤처스 애뉴얼 미팅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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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11일 알토스벤처스의 Annual meeting이 구글캠퍼스서울에서 있었다. 벌써 열흘전의 일인데 늦게라도 가볍게 사진위주로 기록해둔다.

김한준대표의 배려로 3년전 캘리포니아 하프문베이에서 열린 알토스벤처스의 애뉴얼미팅에 가볼 기회가 있었다. 벤처캐피탈회사의 애뉴얼미팅행사는 투자펀드에 돈을 투자해준 투자자(LP-Limited partner라고 한다)에게 지난 일년간의 성과를 보고하는 이벤트다. 그리고 투자포트폴리오회사의 CEO들이 투자자들을 위해 회사소개 프리젠테이션이나 대담을 하고 끝나고 나서 같이 식사를 하며 어울리는 자리다. 즉 벤처투자펀드에 돈을 대는 투자자들, 벤처에 직접 투자하는 VC들, 벤처기업가들이 함께 모여서 교류하는 흥미로운 시간이다.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회사인 알토스벤처스는 실리콘밸리에서 애뉴얼미팅을 갖는다. 그런데 이 한국에서 갖는 애뉴얼미팅은 알토스가 운영하는 코리아펀드의 성과를 투자자들에게 설명하는 자리다. 해외에서온 투자자들이 절반이상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영어로 진행됐다.

벤처캐피털리스트는 스타트업에 돈을 투자해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들도 역시 다른 대형투자자들에게 투자를 받아서 펀드를 조성해야 그 돈을 가지고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다. 알토스벤처스는 미국, 중국, 일본 등의 해외투자자, 대기업 등을 설득해서 한국스타트업에 투자할 목적으로 만든 코리아펀드에 투자하도록 만든 것이다.

2시부터 시작된 이벤트에서 우선 2시간동안은 LP들만 모아놓고 설명회를 가졌다. (감사하게도 투자자가 아닌데도 나도 참관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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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한국시장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한국회사들은 상당한 시장가치를 가지고 있고, 한국정부는 스타트업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한국의 스타트업생태계는 성숙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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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이미 12개정도의 유니콘급 인터넷회사들이 있는 큰 시장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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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투자생태계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엔젤투자자도 늘어나고 엑셀러레이터, 코워킹스페이스도 많아지고 있다. 스타트업을 시작하기에 좋은 환경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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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에 창업열풍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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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스타트업은 밸류에이션면에서 매력적이다. 초기투자 밸류에이션은 비슷한 미국회사들보다 2~3배 낮다. 한국스타트업의 자금소모율(Burn rate)도 낮다. 한달에 1억이하다! 그런데 그런 스타트업이 성장하면서 후기투자단계에 가면 글로벌수준의 밸류에이션으로 올라간다. 글로벌투자자들이 들어와 한국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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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국스타트업에 국내외 벤처투자자들이 이처럼 다양하게 들어와 투자하고 있다. 이들은 알토스벤처스와 협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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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토스는 글로벌/국내시장지향성과 엔터테인먼트/편리서비스 등의 관점에서 다양한 한국스타트업에 이처럼 투자하고 있다.

위는 수십장의 슬라이드중 일부만 소개한 것이다. 김한준, 앤소니, 호 파트너, 박희은 수석심사역 등 4명이 번갈아가면서 한국의 스타트업시장이 왜 매력적인지, 당신들이 왜 계속 한국펀드에 투자해야 하는지를 설득력있게 이야기한다.

2시간동안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서 4시부터는 새롭게 알토스가 투자한 스타트업들을 선보이는 시간이다. 이번에는 Von Von, 트릴리어네어, 하이퍼커넥트, 레트리카, 렌딧 등 5개 회사가 발표했다. 이 시간부터는 LP외에 알토스와 친한 다른 VC들과 알토스의 포트폴리오기업 창업자들도 초대되어 참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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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n Von의 김종화대표. 페이스북위에서 여러가지 흥미로운 분석을 해주는 심심풀이 서비스인데 이미 글로벌하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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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전용 역직구 뷰티커머스 후이서울(Huiseoul)의 송호원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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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커넥트의 안상일대표. 전세계적으로 3천만다운로드를 돌파한 비디오채팅앱인 아자르를 운영하는 회사다. 지난주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으로부터 100억원을 투자받았다.Screen Shot 2015-11-16 at 2.31.26 PM

레트리카의 박상원대표. 전세계에서 3억다운로드를 기록한 카메라 필터앱이다.Screen Shot 2015-11-16 at 2.31.41 PM

P2P대출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스타트업 렌딧의 김성준대표다.

어디서 이런 회사들을 찾아서 투자했나 싶을 정도로 좋은 회사들이다. 알토스의 선구안이 참 놀랍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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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시간에는 인근 파크하이야트로 옮겨서 칵테일리셉션과 디너행사가 진행된다. 본격적으로 서로 대화하는 시간이다. 왼쪽에 본엔젤스 장병규대표, 오른쪽끝에 강석흔이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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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투자자들이 꽤 많이 왔다. 몇몇 붙잡고 “어떤 계기로 투자하게 됐고 오게 됐냐”고 물어봤다. 미국에서 온 투자자 대부분은 “한킴과의 오랜 인연으로 투자하게 됐다”고 대답했다. 오래전부터 실리콘밸리 알토스벤처스에 투자해왔고 신뢰하는 관계가 됐기에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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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가 시작됐다. 김한준대표가 건배를 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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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타트업이 글로벌화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해외투자자들이 한국스타트업에 투자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스타트업생태계의 매력을 해외투자가들에게 설명하고 투자하도록 인도하는 다리역할을 하는 알토스벤처스는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알토스는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알토스는 소프트뱅크에서 1조원을 투자받은 쿠팡이나 역시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트업으로 성장중인 배달의 민족에 투자했다. 직방, 하이퍼커넥트, 비트, 미미박스, 잡플래닛, 이음, 비바리퍼블리카 등 주목받는 스타트업들에 줄줄이 투자했다. 알토스는 이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좋은 조언을 해주고 해외투자가들을 연결해주고, 해외진출까지 도와주고 있다.

초기스타트업발굴보다 안정적인 수익률을 내는 투자에만 열중하는 한국의 VC업계에 알토스의 활동이 좋은 자극이 됐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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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렇게 김한준대표가 나를 각별히 애뉴얼미팅에 초청해주시는 이유가 있다. LP들에게 나를 소개해주시면서도 밝혔는데 2013년 5월에 하프문베이에서 골프라운딩을 한 일이 있다. 그때 나와 같은 카트를 타고 라운딩을 했는데… 홀인원을 하셨다.^^ 그래서 나와 같이 하면 행운이 따를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나… 그때 찍어둔 사진을 지금 찾아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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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estima7

2015년 11월 21일 at 10:11 pm

한국의 스타트업생태계에 대해 아르헨티나에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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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의 첫주 벤처기업협회의 초청으로 아르헨티나에 다녀왔다.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시에서 개최한 벤처캐피털포럼아르헨티나에서 패널토론에 참가했다. 어떻게 하면 아르헨티나의 스타트업생태계를 활성화할 수 있을까가 주제인 이 포럼에서 미국에서 라틴아메리카펀드를 운영하는 수산나 가르시아 로블스의 키노트 발표가 끝나고 바로 이어지는 50분간의 패널토론이었다. 앞서 키노트발표를 한 수산나가 사회를 보고, 이스라엘 카난파트너스의 Ehud Levy와 나를 패널게스트로 초청해 이스라엘과 한국의 스타트업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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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렇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내게 이런 국제행사에서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큰 도전이다. 10년전만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인데 여러번 하다보니 좀 나아졌다. 대충 기억나는대로 나간 영어로 진행되는 컨퍼런스를 꼽아보니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OCED회의(2007),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WIPO심포지움(2008), MIT 아시아비즈니스컨퍼런스(2012, 2015) , 아시안리더십컨퍼런스(2015), 비글로벌SF(2014) 등이 있다. 대중앞에서 부족한 영어로 토론하는데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여러번 하다보니 좀 나아졌다. 물론 라이코스에서 3년간 CEO로 근무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미리 말할 내용을 준비해두지 않으면 쉽지 않다.

사실 아르헨티나에서의 발표도 사회자인 수산나는 슬라이드발표없이 말로만 진행한다고 질문리스트를 미리 보내줬다. 그래도 지구반대편에 있는 나라에서 온 사람이 비주얼한 자료가 없이 설명해주면 와닿지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서울-로마-부에노스아이레스를 잇는 총 12시간+14시간의 비행시간동안 짬을 내서 평소하는대로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설명하는 간결한 슬라이드를 준비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됐을때 약 10분동안 슬라이드와 함께 가볍게 설명했다.

한국이 얼마나 모바일인프라가 잘 되어 있는 나라인지,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한 대기업은 많지만 스타트업은 많지 않았는데 2년전부터 정부의 창조경제정책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테헤란로의 스타트업붐과 각종 정책으로 인해 스타트업생태계에 선순환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소프트뱅크에게서 1조원의 투자를 유치한 쿠팡같은 유니콘스타트업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긍정적인 이야기만 했다.

이것이 청중들에게 예상외로 좋은 인상을 준 것 같다.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생태계가 강하다는 것은 어차피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한국에서 그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는 몰랐다는 것이다. 세션이 끝나고 내 이야기를 인상적으로 들었다는 인사를 아르헨티나 현지인들로부터 많이 들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 두번째로 큰 신문사인 La Nacion의 기자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한국스타트업생태계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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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메일로 보낸 질문에 답을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따로 시간을 내서 Luján Scarpinelli 기자를 만났다. 직접 만나서 설명을 해줘야 제대로 내용이 전달될 것 같아서다. 햄버거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도 어떤 면에서는 언론사 선배(?)인지라 신문업계의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사람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한 것 같았다. 자기의 어린 남동생은 종이신문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나.

어쨌든 이 인터뷰후에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팔로업을 했다. 이런 기사를 작성하려면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숫자’가 필요한데 나름 자료를 찾아서 제공했다. 그 결과 지난 9월23일 한국스타트업생태계에 대한 기사가 멋지게 La Nacion지면을 장식했다.

제목은 “강남 스타일 이후 창업으로 세계를 제패하려는 한국”. 아주 긍정적인 내용이라 감탄했다.

LaNacion

갑자기 잡힌 출장이었지만 그래도 아르헨티나에 한국스타트업생태계에 대해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 흐뭇했다. 한국을 알리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현지 컨퍼런스에서 발표하고 현지 언론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한달전의 일이지만 기억해두기 위해서 블로그에 메모.

 

 

Written by estima7

2015년 9월 28일 at 4:21 pm

“스타트업 영웅이 필요하다” – 바람직한 스타트업생태계에 대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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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혁신지대인 실리콘밸리에서 3년, 또 하버드, MIT 등 명문대가 즐비한 최고의 교육도시인 보스턴에서 3년여동안 살아보는 행운을 누렸다. 보스턴에서 라이코스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는 동안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일하며 텔아비브를 방문해 현지의 스타트업들을 만나보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11월부터 한국에 복귀해 스타트업얼라이언스센터장으로 일하면서 세계 각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근접해서 관찰할 기회를 갖기도 했다. 물론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지난 1년여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이었다. 그러면서 바람직한 스타트업 생태계는 어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왔다.

UC버클리 캠퍼스전경(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UC버클리 캠퍼스전경(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우선 실리콘밸리가 언제나 잘 나갔던 것은 아니다. 15년전을 돌아보자. 나는 2000년에서 2002년까지 실리콘밸리에 인접한 UC버클리에서 유학했다. 당시는 닷컴버블이 꺼지고 2001년에 9.11테러까지 발생해서 실리콘밸리는 암울한 분위기였다. 거품을 끼고 부풀어 올랐던 웹밴(Webvan), 펫츠닷컴(Pets.com) 등 많은 닷컴회사들이 도산했다. 실리콘밸리에는 실업자가 넘쳐흘렀다. 내가 떠날 당시의 실리콘밸리는 재기가 불가능해보였다.

***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2년 여름 나는 실리콘밸리의 한가운데에 있는 쿠퍼티노로 이주했다. 그리고 다음커뮤니케이션의 글로벌부문장으로 일하며 투자와 제휴를 위해 많은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과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을 만났다. 마치 2000년의 닷컴붐이 다시 도래한 것 같았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의 대표 테크기업들은 이미 공룡같은 덩치에도 불구하고 계속 성장하며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 틈바구니안에서도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새로 태어나고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가지고 경쟁하고 있었다. 각종 행사나 데모데이 등을 갈때마다 새로 만나는 실력있는 스타트업들을 접하면서 나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이 ‘하늘의 별처럼 많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왜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그처럼 역동적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이 계속 나올 수 있는지 열심히 관찰했다. 실리콘밸리는 스타트업생태계의 이상향에 가깝다. IT업계인에게 있어서 일종의 메이저리그 같은 곳이다. 다음은 실리콘밸리와 한국의 스타트업생태계 관찰을 통한 내 생각의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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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실리콘밸리는 워낙 특수한 곳이다. 겨울의 약간의 우기를 제외하고는 일 년 내내 화창한 날씨의 축복받은 땅이다. (버클리 다닐때 교수님이 “우리 학교 최고의 경쟁력은 날씨”라고 하는 말도 들었다) 덕분에 전 세계에서 스탠포드와 UC버클리에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이 졸업 후에 상당부분 남아서 정착한다. 날씨 좋고 살기 좋은데다가 IT 관련 일자리도 많기 때문에 전 세계의 IT 인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기도 하다. 하버드, MIT 등 보스턴의 명문대 컴퓨터공학과 졸업생들의 상당수가 실리콘밸리로 온다.

최고 수준의 컴퓨터공학과로 유명한 피츠버그의 카네기멜론대를 나와 실리콘밸리 링크드인에 취업한 한 한국인은 “우리 클래스를 들어다가 그대로 실리콘밸리에 가져다 놓은 것 같다”고 할 정도로 많은 동문들이 이 지역에 와있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인도공대같은 인도 이공계 대학의 졸업생들은 물론, 한국의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출신 엔지니어들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실리콘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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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계 각국의 인재들이 실리콘밸리로 모이는 이유가 있다. 인종, 나이, 종교, 학력, 배경에 상관없이 비교적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깝게 지내던 비디오광고회사 Adap.TV의 헨릭 부사장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이민자출신이다. 그는 실리콘밸리를 “세계에서 가장 텃세가 없는 곳”이라고 했다. 워낙 이민자들이 대부분인 동네다 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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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에서는 창업자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 정부, 대학, 벤처 캐피털(VC), 엔젤투자자, 로펌, 회계사, 심지어 대기업조차도 스타트업 창업자의 지원자다. 스탠포드대학 등은 창업지원센터 등을 만들어 학생들의 창업을 장려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가 가진 지적재산권도 너그럽게 졸업생들에게 공유해주는 편이다. 엔젤이나 VC들은 창업자들이 있는 곳이라면 발 벗고 달려가서 만난다. 회사 설립, 투자, 매각 등의 단계에 있어서 실리콘밸리의 로펌이나 회계법인들은 스타트업의 입장에서 조언해주고 심지어는 인수합병(M&A) 딜까지도 가까이서 조언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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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을 창업해 키워서 상장(IPO)시키거나 매각해서 큰 돈을 번 창업자들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번 돈으로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투자하는 엔젤투자자가 되거나 새로운 스타트업을 시작한다. 이런 사람들을 ‘연쇄창업자(Serial entreprenuer)’라고 한다. 페이팔의 공동창업자로서 많은 부를 축적했지만 테슬라, 스페이스X 등을 창업해 더 큰 도전을 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이런 사람들이 다른 수많은 예비창업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롤모델(Role model)이 된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성공한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또 후배 스타트업을 조건없이 도와주는 것을 실리콘밸리의 페이잇포워드(Pay it forward) 문화라고 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아주 일반화된 문화다. 마크 저커버그 같은 250조원이 넘는 회사의 CEO가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모이는 행사에 나가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조언을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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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소개만으로도 스스럼없이 만나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개적으로 주고받는 ‘열린 문화(Open culture)’도 혁신의 원천이다. 가능하면 정보를 서로 다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만난다. 크고 작은 밋업(Meetup) 행사가 여기저기서 매일 열리고 많은 만남을 통해 아이디어가 적극적으로 교환되며 검증된다. 그런 자리에서 잠재투자자가 연결되고 미래의 공동창업자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UBER에 투자한 벤치마크캐피털의 빌 걸리는 "규제는 기득권자를 보호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실리콘밸리 VC들의 생각이다.

UBER에 투자한 벤치마크캐피털의 빌 걸리는 “규제는 기득권자를 보호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실리콘밸리 VC들의 생각이다.

기존의 규제나 권위에 굴하지 않고 도전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우버(Uber)나 에어비앤비(Airbnb)의 사례에서 보듯 법령이나 조세제도 등 기존의 규제환경을 고려하면 선뜻 시작하기 어려운 비즈니스에 스타트업이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기존의 규제환경을 따지기 보다는 사람들의 불편을 어떻게 해결했느냐를 더 중시한다. 내가 잘 아는 한 샌프란시스코 스타트업의 경우는 비즈니스 모델에 저작권 침해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벤처캐피털리스트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걱정하지 말고 해봐라. 나중에 서비스가 커져서 저작권자들이 찾아오게 되고 문제가 된다면 그것 자체가 절반의 성공이다”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정부의 그림자도 거의 없다. 민간에서 투자가 일어나고 스타트업들도 정부의 도움을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실리콘밸리가 워싱턴DC에서 멀어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농담들도 많이 한다. 캘리포니아의 주도인 새크라멘토도 실리콘밸리에서 자동차로 3~4시간 거리로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이다. 정부에서 주도하는 행사도 거의 없다. 어떤 행사에 정부관료가 와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을 보기도 힘들다. 정부의 보호나 간섭이 없어서인지 실리콘밸리사람들은 정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거의 안하는 편이다. 그냥 알아서 한다. 쓸데없는 행사에 불려가느라고 시간을 빼앗기는 일도 없다. 그저 제품개발에만 집중한다. 실리콘밸리는 이렇게 자생적인 창업생태계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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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모험감수(Risk taking)의 정신이다. 이것은 아마 160여전 골드러시때부터 이 지역에 심어져 있는 기운인 것 같다.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스타트업에 뛰어드는 것을 응원하는 분위기가 있다. 자신이 직접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창업자만 그렇게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가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큰 IT 대기업에 다니는 직원 중에도 당장 월급은 줄어들더라도 스톡옵션을 통해서 나중에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이 활발하다. 직원들이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천국같은 복지혜택을 제공하는 구글의 경우도 “아무리 잘해줘도 스타트업 하겠다고 퇴사하는 직원들은 막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다.

이 같은 위험에 대한 도전정신은 실패를 용인해주는 문화에도 이유가 있다. 창업해서 결국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발전하고 성숙한 창업자들에게는 투자자들이 또 투자해준다. 그리고 설사 스타트업을 하다가 실패하더라도 실력만 있다면 다시 들어갈 수 있는 수많은 실리콘밸리의 IT 대기업과 셀 수 없는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일종의 (정신적) 안전판(Safty net) 역할을 해준다. Job mobility가 높은 것이다. 즉,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장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스타트업을 지지부진하게 끌고 가느니 그냥 빨리 문을 닫고 남은 돈은 투자자들에게 돌려주고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들어가 억대연봉을 받는 엔지니어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가 기회가 보이면 다시 대기업을 뛰쳐나와 창업한다. 실리콘밸리에 좀비벤처가 별로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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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실리콘밸리의 모든 것이 장밋빛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살인적으로 비싼 물가가 외부인의 실리콘밸리 진입을 어렵게 한다. 한국에서 1년은 버틸 수 있는 자금을 가지고 가도 몇달이면 돈이 동이 난다. 공짜로 사무실을 얻거나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도 거의 없다. 실리콘밸리에 가면 무조건 투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다. 톱클래스 스타트업들의 극심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라 실력이 없으면 금세 도태된다.

아이소켓 창업자 존 래미.

아이소켓 창업자 존 래미.

하지만 이런 생태계의 선순환이 그곳 기업들의 성공률을 높이고 인재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게 한다. 지난해 만난 아이소켓이라는 샌프란시스코 인터넷광고회사의 창업자 존 래미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미주리주에서 사업을 시작한 나는 처음에는 반(anti)실리콘밸리주의자였다. 자신들이 IT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거만함이 싫었다. 그런데 회사를 키우면서 나중에는 나도 실리콘밸리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내 회사의 주요 고객과 실력 있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그리고 투자자들이 모두 실리콘밸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내의 다른 도시의 뛰어난 테크회사나 인재들도 결국 실리콘밸리 소용돌이(Vortex)에 휩쓸려 가버린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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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어떨까.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특징은 우선 강력한 정부 주도의 스타트업 지원이다. 박근혜 정부의 슬로건이 ‘창조경제’인만큼 한국은 스타트업 주무부서인 중소기업청과 미래창조과학부는 물론 각종 부처와 산하기관에서 경쟁적으로 창업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창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만 노력하면 많은 정부지원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반면 수천만원에서 몇억까지의 초기 투자지원은 늘어나는데 수십억에서 수백억단위의 시리즈 A, B, C, D 등 대형투자는 부족한 편이다.

각종 정부지원책과 마이크로VC와 액셀러레이터의 등장으로 초기 스타트업이 초기단계 투자를 받기 쉬워졌다. 하지만 어느 정도 검증된 스타트업의 빠른 성장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한 번에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 단위의 자금을 투자해줄 대형 투자자는 아직 한국에 많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많은 창업투자사들의 투자펀드가 한국벤처투자 등 정부의 모태펀드에서 지원받고 있기 때문에 모험적인 큰 투자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사실상 국민의 세금으로 펀드가 채워지는 만큼 안정적인 수익이 나는 투자처를 찾기 마련인 것이다. 투자한 기업이 실패하면 나중에 배임으로 몰릴 수 있다고 (나중에 증거가 될 수 있는) 서류를 스타트업에 과중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한국의 벤처캐피털(VC)이 무늬만 VC라는 비난을 듣는 이유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또 기술 분야의 스타트업이 부족하며 비즈니스 아이디어 위주의 창업이 많다. 대표적인 액셀러레이터인 프라이머가 2014년 초까지 투자하고 육성한 23개 스타트업을 보면 패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모바일광고 등 B2C 서비스 분야가 60%, B2B 분야가 26%, 커머스 분야가 13%였다. 이처럼 많은 스타트업이 B2C 분야에 편중돼 있고 기술로 차별화하기 보다는 해외에도 이미 존재하는 비즈니스 아이디어에 기반해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좋은 엔지니어를 구하기 어려운 환경 때문에 그렇다는 의견도 있다.

또 B2B분야 창업이 적은 것은 한국의 기업문화가 다른 회사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사주기 보다는 웬만하면 내부에서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삼성, 현대, LG그룹 등 한국의 대기업집단들은 각기 IT시스템통합(SI)관계회사들을 두고 그룹내부에서 직접 사내용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쓰는 편이다. 이런 문화에서 작은 스타트업이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판로를 개척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에서는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거나 규제가 심한 시장에 새로 들어가서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을 만나기가 어렵다. 정부정책이 기존 대기업 위주로 돼 있고 새로운 사업자에게 비우호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에는 수천개씩 등장해 붐을 이루고 있는 핀테크 스타트업이 국내에는 최근까지 거의 없었다는 것이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그래서 큰 시장에 도전하기 보다는 니치마켓에 들어가려는 고만고만한 스타트업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초기 창업자를 끌어줄 경험 많은 투자자·멘토층이 아직 부족하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에서 창업육성기관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지만, 예비·초기창업자들을 잘 이끌어 줄 경험 많은 투자자나 멘토층은 아직 부족한 편이다. 스타트업으로 성공한 창업가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얼마 안 되는 성공한 창업가들이 대외활동을 잘 하지 않는 문화 탓도 있다. 그 결과 많은 초기창업자들은 경험 있는 선배의 조언을 목말라한다.

대기업의 벤처투자 및 스타트업 인수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사내 벤처캐피털(CVC)을 설립해 스타트업 투자에 나서거나 그로 인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M&A에 나서는 해외 대기업에 비해 국내 대기업들은 스타트업에 대해 관심이 부족하다. 대기업중심의 규제 등으로 보호(?)받고 있고 그룹내에서 웬만한 일은 자급자족(?)하고 있기 때문에 외부의 혁신에 대한 절실함이 외국기업들보다 떨어진다.

최근 들어 한국 대기업들도 점점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는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해외와 교류도 부족한 편이다. 다국적군으로 구성된 실리콘밸리나 이스라엘의 스타트업과 달리 한국의 스타트업의 구성원은 대부분 한국인 일색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에 있어 국제적인 다양한 시각과 아이디어를 불어넣는데도 어려움이 있고 해외진출에 있어서 약점으로 작용된다.

엑시트(투자금 회수)가 아직도 어려운 환경이다. 기업공개(IPO)나 M&A를 통한 스타트업의 엑시트 사례가 많지 않다. 코스닥시장 등의 등록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기업공개 문턱이 높은 편이며, 대기업들도 스타트업 인수합병에 미온적이다. 엑시트가 나와야 투자자금의 선순환이 이뤄지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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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바바 마윈은 중국의 창업자의 가슴에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대표적인 롤 모델이다.

알리바바 마윈은 중국의 창업자의 가슴에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대표적인 롤 모델이다.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성화되고 선순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성공한 스타트업 창업자를 영웅으로 보는 문화가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창업자를 우러러 보고, 청소년의 롤모델으로 만들어야 한다. 젊은이들이 장차 진로를 탐색할 때 정치가, 변호사, 의사 등 안정적인 전문직보다 스타트업 창업자가 되는 것을 더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스티브 잡스, 마크 저커버그, 마윈 같은 롤모델이 한국에서도 나와야 하며 재벌 2세보다 성공한 창업자들이 더 유명해지고 우대를 받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테크업계를 잘 모르는 부모가 들어도 딱 알만한 스타트업 영웅이 나와야 한다.

민간 주도의 자생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스타트업에 대한 직접투자는 민간에 맡기고 스타트업이 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주력해야 한다. 특히 스타트업의 목을 죄고 대기업에게만 혜택을 주는 불합리한 규제를 없애 평등한 경쟁환경(level playing field)을 만드는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 스타트업들이 대기업과 대등하게 경쟁하기 시작하면 대기업들도 새로운 경쟁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와 인수합병을 늘릴 것이다.

학교에서의 창업교육 강화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육성도 필요하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는 스탠퍼드대학은 창업 관련 교육과 컴퓨터 프로그래밍 관련 교육과정이 강력하다. 특히 스탠퍼드는 풍부한 창업 경험을 가진 창업가나 벤처 캐피털 리스트들이 수시로 학교에 와서 강의하고 학생들의 멘토가 되는 시스템을 갖고 있기에 성공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대학에서도 창업교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교육이 현장경험이 없는 교수들의 탁상공론이 되지 않도록 실제로 창업경험을 갖고 성공한 경험이 있는 창업가들이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한다.

스타트업 생태계 구성원의 다양성을 높여야 한다. 해외 인재의 국내 스타트업 참여 유도 및 해외 스타트업 커뮤니티와의 교류를 증진해야 한다. 다양성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나오고 해외 진출도 쉬워진다. 특히 부족한 개발자 인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특정 분야의 재능을 지닌 해외 인재에게 적극적으로 창업 비자를 내주는 것 같은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어쨌든 최근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비키 창업자 호창성·문지원 대표나 올라웍스 창업자 류중희 대표가 엑시트 후 각각 더벤처스, 퓨처플레이 같은 벤처투자회사를 만들고 스타트업 육성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서울대공대, 카이스트 등 명문공대 출신의 유수한 인재들이 스타트업으로 뛰어들거나 삼성, LG, 네이버 등의 대기업을 그만두고 창업에 뛰어드는 사례도 갈수록 많이 목격되고 있다.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디캠프, 마루180,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구글 캠퍼스 서울 등에서 매일매일 좋은 스타트업 행사가 열린다.

수준이 높아진 한국 스타트업에 세콰이어캐피탈, 골드만삭스 등 유명해외 투자자들이 거액을 투자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소프트뱅크의 1조1천억원 쿠팡투자는 예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이 방향으로 잘만 육성해나간다면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실리콘밸리 같은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시간이 걸린다. 한국스타트업생태계의 구성원 모두가 멀리 내다 보고 자생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테크엠에 기고했던 글을 블로그에 옮겼습니다.

Written by estima7

2015년 6월 7일 at 8:40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