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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재 전쟁 시대
지난 3월 말 ‘실리콘밸리의 한국인’이란 콘퍼런스를 열었다.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한인들이 주축인 베이에어리어 케이그룹의 회원 9명을 한국으로 초청해 연 행사였다. 인텔, 어도비, 트위터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젊은 엔지니어들과 토종 한국인으로서 현지에서 창업한 분들이 와서 실리콘밸리의 기업문화와 삶에 대한 강연과 함께 열띤 토론을 했다. (참고링크: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동영상과 발표자료)
이 행사에 대한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유료 티켓이 순식간에 동난 것은 물론 <한겨레>를 비롯한 많은 매체에서 이 내용을 다뤘다. 케이그룹 회원들은 다양한 언론매체의 취재에 응하고 여러 대학에서 분주하게 강연 일정을 보내며 그들이 직접 체험한 실리콘밸리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이런 현상을 보며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과 주로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한 직장인들이 해외취업에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실감하게 됐다. (참고 기사: 실리콘밸리의 한국인들 “자유로운 조직문화가 혁신 만든다”, “실리콘밸리 매력은 높은 연봉이 아니라 삶의 질·노동환경”-한겨레)
요즘 해외 인터넷쇼핑몰에 직접 물건을 주문하는 ‘해외 직구’가 일반화되고 있다. 인터넷세상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국경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기업의 인력수급에서도 국경이 사라져 간다는 것을 느낀다. 국경을 넘어 쉽게 정보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덕분이다. 그중 특히 자신의 업무와 관련한 경력과 업적을 공개할 수 있는 링크드인(Linkedin)이란 에스엔에스는 글로벌하게 일할 수 있는 인재에 대한 기업의 접근성을 예전보다 몇배는 올려주었다. 링크드인에 이력서를 공개한 유명 한국 기업 직원의 경우 해외 헤드헌터에게서 연락을 받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닌 것이다. 실력만 있다면 실리콘밸리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참고포스팅 : 최고의 글로벌인명사전 링크드인)
얼마 전 알게 된 사례 하나. 어떤 모임에서 곧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석사과정 졸업 예정인 한 여학생을 만났다. 한국에서 나고 교육받은 이 학생은 우연한 기회에 페이스북의 채용 인터뷰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번의 프로그래밍 테스트와 전화인터뷰를 거쳐 본사에서 엔지니어로서 일할 수 있는 채용 제의를 받았다. 그런데 다른 매력적인 글로벌기업에서도 채용과정을 진행하던 그는 페이스북의 제의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고 망설였다. 그러자 페이스북에서는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에 이은 회사의 2인자인 셰릴 샌드버그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직접 그 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설득에 나섰다. 이런 적극성에 깜짝 놀란 그 학생이 페이스북으로 가기로 결심했음은 물론이다.
외국에서 일하다 보면 한국 인재의 우수성을 실감하게 된다. 머리가 좋고 근면하고 성실한 한국 출신 인재들은 어떤 직장에서든지 쉽게 두각을 나타내고 자리를 잡는다. 한국 출신 인재가 한명이라도 자리잡은 회사는 계속해서 한국 출신 인재를 채용하게 된다. 특히 억척스럽고 근면한 한국 여성들은 한국 남성보다 더 외국기업 적응력이 뛰어나고 환영받는다. 글로벌 인재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한국인의 채용을 늘리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런 시대 변화에 맞춰 한국 기업들도 변해야 한다. 상명하달식 군대식 조직문화를 평등한 조직문화로 바꾸어야 한다. 획일적인 문화를 다양성을 포용하는 문화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해외취업을 꿈꾸는 국내 인재를 품고 다양한 글로벌 인재를 끌어올 수 있다. 이제는 한국 대기업들도 글로벌 인재 전쟁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다가는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한국에서 품귀 상태가 되어가는 몇 안 되는 고급 엔지니어들도 해외기업에 빼앗기게 될지 모른다. 글로벌 인재들이 오고 싶어하는 매력적인 직장으로 한국 기업을 탈바꿈시키려는 연구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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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5일자 한겨레신문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 칼럼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평등한 토론에서 나오는 혁신
예전에 카리스마가 넘치는 리더가 주재하는 어떤 한국 회사의 회의에 초대되어 간 일이 있다. 6명쯤이 같이 한 회의였는데 한 시간 동안 그 리더와 나 둘이서만 이야기했다. 이상하게도 그 리더 밑에서 일하는 다른 참석자들은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반면 그 리더는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회의가 끝났다. 그러자 그 리더는 사무실로 들어가고 남은 사람들은 “차 한잔 하자”며 나를 잡아끌었다. 회사 밖의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며 그들은 그제야 내게 이야기를 걸어왔다. 그래서 “아니 왜 아까는 전혀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리더가 부하들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고 의견을 내면 면박만 준다. 그래서 점차 시키지 않으면 아무도 말을 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조금이라도 심기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벼락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위계질서와 자기검열이 이 정도로 심한데 무슨 좋은 아이디어가 이 조직에서 나오고 실행될 수 있을까. 그 리더가 스티브 잡스라도 이런 조직에서는 혁신을 이뤄내기 어려울 것이다.
얼마 전에 이스라엘에 다녀왔다. 이스라엘인들은 회의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거침없이 난상토론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몇년 전에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사람들과 워크숍을 한 일이 있다. 그때 서로 싸움을 하듯이 거칠게 자기주장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상대적으로 나는 조용히 듣기만 했는데 나중에 상관인 이스라엘 CEO에게서 주의를 받았다. “모든 사람이 다 자기 머릿속에 있는 의견을 꺼내놓아야 한다”며 나에게도 적극적으로 회의에 참여해 의견을 낼 것을 주문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만난 한 이스라엘 벤처기업 임원에게도 당신들도 그렇게 평등하게 회의에서 토론하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는 “좀 극단적으로 느낄 수 있겠지만”이란 단서를 달며 이렇게 설명했다. 자기 부하가 CEO와 임원인 자기와 같이 회의를 할 때 CEO나 임원의 의견에 대해서 “어리석은 생각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하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말을 할 수 있고 그것을 CEO나 임원들이 받아들이는 문화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첨단 스타트업 기업들이 쏟아져 나오는 ‘창업국가’로 유명하다. 과연 이런 명성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혁신적인 디자인 사고를 가르치는 곳으로 유명한 미국 스탠퍼드대의 D.School이라는 곳이 있다. 이 학교의 공간을 디자인한 세계적인 디자인컨설팅회사 아이디오의 데이비드 켈리는 <공간 만들기>(Make Space)라는 책 서문에 이렇게 썼다.
“새로운 공간을 만들면서 우리의 첫번째 과제 중 하나는 학생들과 교수진의 위치를 평등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실에 들어오면 누가 가르치는 사람인지, 누가 배우는 사람인지 판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혁신은 이런 평등함 속에서 번창합니다. 보스나 교수가 방의 머리 부분에 서 있으면 마치 ‘무대 위에 서 있는 현인’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보스가 내 생각을 싫어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에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공간적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참여를 진정으로 환영한다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One of our first challenges was to equalize the respective status of students and faculty. When you walk into one of our classes, it’s almost impossible to tell who’s teaching and who’s learning. Innovation thrives on this kind of equality. With a boss or a professor standing at the head of the room, it feels like a “sage on stage”-people are reluctant to share their ideas(“What if the boss doesn’t like it?”). Reconfiguring the physical relationship is a powerful signal that participation is truly welcome. -David Kelley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다양한 의견에서 나온다. 회의석상에서 윗사람이 권위로 아랫사람을 짓눌러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나온 아이디어가 발전하기도 어렵다. 여러 사람이 모인 ‘팀’의 힘을 증폭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창조경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회의실에서 권위주의를 몰아내고 모두가 평등하게 말할 수 있는 문화를 북돋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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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으로 기고한 글.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스티브 잡스의 ‘run by ideas, not hierarchy’ 라는 말이 생각났다. 예전에 블로그에 썼던 글이지만 워낙 인상에 남는 부분이며 ‘평등한 토론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낳는다’는 윗 글의 주제에도 연결되는 것 같아 다시 옮겨본다.
(2분 50초지점부터 아래 부분 시작)
Jobs: What I do all day is meet with teams of people and work on ideas and solve problems to make new products, to make new marketing programs, whatever it is. (내가 하루종일 하는 일은 팀원들과 만나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궁리해내거나 신제품을 만드는데 있어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마케팅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등입니다.)
Mossberg: And are people willing to tell you you’re wrong? (그럼 직원들이 (잡스가 틀렸을때) 당신이 틀렸다고 기꺼이 발언을 하는지요?)
Jobs: (laughs) Yeah.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럼요.”)
Mossberg: I mean, other than snarky journalists, I mean people that work for… (내 말은, 짜증나는 기자들이 아닌, 당신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 직원들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죠.)
Jobs: Oh, yeah, no we have wonderful arguments. (아, 물론이죠. 우리는 항상 멋진 논쟁을 벌입니다.)
Mossberg: And do you win them all? (그럼 당신이 항상 모든 논쟁을 이기겠지요?)
Jobs: Oh no I wish I did. No, you see you can’t. If you want to hire great people and have them stay working for you, you have to let them make a lot of decisions and you have to, you have to be run by ideas, not hierarchy. The best ideas have to win, otherwise good people don’t stay. (아닙니다. 내가 모든 논쟁을 다 이겼으면 좋겠지요. 하지만 그럴수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만약 뛰어난 사람들을 채용하고 그들이 당신을 위해서 계속 일하게 하고 싶다면 그들이 많은 결정을 직접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결정은 회사의 계급에 따라 이뤄져서는 안되며 아이디어에 따라 이뤄져야 합니다. 최고의 아이디어가 항상 논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훌륭한 사람들은 회사를 결국 떠나게 됩니다.)
Mossberg: But you must be more than a facilitator who runs meetings. You obviously contribute your own ideas. (하지만 잡스 당신은 단순히 회의를 진행하는 사람이 되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요? 자신의 아이디어로 기여하고 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Jobs: I contribute ideas, sure. Why would I be there if I didn’t? (물론 나도 내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IT 비정상의 정상화
새해 초에 한 보안업체 보안전문가와 식사를 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사용하기에 너무나도 복잡한 한국의 온라인 금융과 쇼핑 사이트에 대한 이야기로 옮아갔다. 나는 미국의 아마존에서 단 한번의 클릭으로 사고 싶은 물건을 쇼핑하고, 피시든 맥이든 스마트폰이든 태블릿 컴퓨터에서든 별 불편 없이 온라인 은행거래를 하고 신용카드 사이트를 이용하던 경험을 말했다. 그리고 이제 한국에 돌아오니 새로운 사이트에 가입할 때마다 매번 휴대전화 본인인증을 통해 주민등록번호 등 과도하게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하며 피시에서만 실행되는 공인인증서, 액티브엑스 설치 등을 요구해 이용이 너무 불편하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신문 회원 가입, 족구하라고 해요-들풀님의 글이 내 심정을 잘 표현해주셨다.)
참고기사-[이슈추적] 개인정보 동의 강요는 기업들 ‘돈벌이용'(중앙)
십여년간 이런 시스템에 익숙해진 한국인들에게는 문제가 아닐지 모르지만 내게는 명백한 ‘비정상’인 것이다. 그리고 내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드러난 주민등록번호를 넘겨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는 말도 했다. 그러자 그분은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사실은 아마존처럼 고객 입장에서 사용하기에 간단하고 쉽게 만드는 것이 업체에게는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아마존이라고 왜 보안 문제를 걱정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고객은 느끼지 못하게 하는 한편 뒤에서는 다양한 첨단 보안기술을 적용해 각종 해킹 시도를 막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나라 사이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이중 삼중으로 고객이 복잡하게 인증을 하도록 해서 보안 강화를 한 것 같지만 사실 내부적으로 보안 기술은 별것이 없고 정보보호 관리체제도 허술합니다. 보안에 나름 투자하지만 정말 중요한 부분에 집중하기보다는 겉에 보이는 것만 보안을 강화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제 보안 기술이 다양하게 잘 발전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고객에게만 복잡한 보안인증절차를 강요하고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개인정보를 받는 한국의 문화가 고객만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티(IT)업계 전반의 혁신과 발전까지도 가로막는 비정상적인 문화라고 생각했다. 고객 중심이 아닌 행정편의적 문화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나눈 지 불과 이틀 뒤에 케이비국민카드, 롯데카드, 엔에이치농협카드에서 보유하고 있던 회원정보 1억건이 불법유출됐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어처구니없게도 이번 정보유출은 개인신용평가회사인 코리아크레딧뷰로의 직원이 개인정보를 유에스비 메모리에 담아서 외부 업자에게 돈을 받고 팔다가 적발됐다. 보안전문가가 우려했던 대로 내부의 허술한 보안체계에서 사고가 터진 것이다.
고객이 온라인 사이트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다. 선진국에서도 해킹을 통한 정보유출 사고는 빈발하지만 해당 업체는 신속한 사과와 관련 조처를 취해 고객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유출 사고로 인해 설사 피해를 입더라도 절대 고객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한다.
불신에 사로잡힌 한국의 온라인 쇼핑족들은 해외 직접구매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가격이 싸다는 장점도 있지만 이용하기도 편한 해외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직구’ 규모가 지난해 1조원을 넘어섰다. 한국 고객들을 대상으로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미국 온라인 쇼핑몰들이 회원들에게 미국 휴대전화번호를 통한 본인인증과 사회보장번호를 요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반대로 보면 한국의 온라인 쇼핑몰들은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는 셈이다.
이제는 쇼핑도 온라인으로 국경 없이 이뤄지는 시대에 전근대적인 전봇대가 곳곳에 박혀 있는 한국의 온라인 보안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의 아이티업계는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혁신을 거듭하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자들에게 밀려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할지 모른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도록 아이티 비정상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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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21일자 한겨레신문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 칼럼으로 게재한 내용.
갑들에게 감시카메라를
지난주 5월9일 미국의 이른 새벽 시간, 순조롭게 마무리되는 듯하던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찬물을 끼얹는 게시물 하나가 미국의 한 한인주부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왔다. 대통령을 수행한 청와대 윤창중 대변인이 인턴으로 일한 동포 여학생을 성추행했다는 내용이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나는 출근을 준비하면서 이 소식을 트위터를 통해서 처음 접했다. “설마 그럴 리가.” 반신반의하면서 사무실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켜보니 트위터는 온통 이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한국은 자정을 훨씬 지난 새벽 시간이었는데도 포털의 급등 검색어 1위가 이미 ‘윤창중’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관련 온라인뉴스가 속속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청와대의 윤 대변인 해임 뉴스가 떴다. 처음 의혹 제기에서 해임까지가 겨우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나는 옛날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정보의 확산 속도에 경악했다.
소위 ‘라면 상무’ 사건도 그렇고 남양유업 욕설 녹취 파일 사건도 그렇다. 예전 같으면 텔레비전이나 신문의 토막뉴스로 끝났을 일들이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의 힘으로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사회적 이슈로 순식간에 탈바꿈한다. 이제 국민들은 힘있는 자, 갑들의 오만한 행동에 즉각적으로 공분을 표출한다. 더구나 이제는 국경도 없다. 전세계의 한국인들이 동시에 같은 이슈를 공유하고 한마디씩 자신의 생각을 보탠다.
방송사와 신문사만 잘 대응하면 됐던 올드미디어 환경에 익숙한 정부나 기업의 리더들은 이런 미디어 상황의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변해야 한다. 바뀐 세상을 원망하기보다는 리더가 먼저 이런 변화를 잘 이해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이제는 내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 항상 보고 있고 기록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겠다. 그도 그럴 것이 스마트폰을 넘어서서 이제는 말 한마디로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녹화할 수 있는 일종의 스마트안경인 구글글라스가 내년이면 상용화될 예정이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의 눈이 일종의 감시카메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내부 조직의 교육을 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여기에 한가지 좋은 참고사례가 미국에 있다.
요즘 미국 경찰에는 경찰관의 선글라스에 장착해서 필요할 경우 동영상 녹화가 가능한 담배 한 개비 크기의 소형 카메라가 보급되고 있다. (참고:모든 것을 다 찍는 경찰의 소형비디오카메라-엑손 플렉스) 시민에게 법집행을 하는 현장의 모습을 경관의 시선에서 쉽게 담아 증거로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일종의 블랙박스다. ‘빅브러더’라는 반발도 있었지만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리앨토시 경찰국은 1년 전부터 이 제품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실험에 나섰다. 54명의 제복경찰 중 매일 무작위로 절반을 선택해 이 카메라를 착용하고 시민과 접촉하는 경우 반드시 촬영하도록 했다.
그 결과는 놀랍다. 카메라 도입 이전과 비교해서 시민들의 경관에 대한 불평 민원 신고가 88% 줄었다. 카메라를 착용했을 경우 경관이 시민에게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행동을 최대한 조심했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경관이 법집행을 위해서 무력을 사용한 경우도 60% 줄어들었다. 카메라의 존재를 의식한 시민들도 억지를 부리지 않고 얌전하게 행동하는 효과가 있었다. 빅브러더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갑의 횡포 뉴스를 읽으며 앞으로 일정 직급 이상의 고위공직자나 기업 간부들에게 미국 경찰처럼 이런 카메라 착용을 일반화하고 일반 시민이나 ‘을’과 접촉할 때는 촬영을 의무화하도록 하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그렇게 하면 국민이 항상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정말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 제안이 단지 농담으로만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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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4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칼럼.
항공기 승무원의 법칙
기내식으로 제공되는 라면에 대해 불평을 하면서 항공기 승무원에게 행패를 부린 대기업 상무 이야기가 대화제다. 처음에는 방송 단신으로 임원의 실명과 구체적인 내용 없이 몇 줄만 가볍게 보도됐던 것이 트위터, 인터넷커뮤니티를 통해 실명과 항공사의 내부 대응 기록문건이 퍼지면서 일파만파가 됐다. 뜻밖에도 많은 이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 임원의 고약한 행동에 분노의 감정을 표출했다. 아마도 평소 직장에서 그런 상사를 접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러다 트위터를 통해서 ‘웨이터의 법칙’이라는 말을 접하게 되었다. 데이브 배리라는 작가의 글에서 유래한 이 법칙은 다음과 같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는 잘 대해주지만 웨이터에게는 거만하게 행동한다면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은 미국의 시이오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일종의 불문율이라고 한다. 시이오가 회사의 임원을 뽑을 때 꼭 명심해야 할 말이라는 것이다.
시이오가 회사 내부나 바깥의 누군가와 식사할 때는 다들 그가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잘 보이려고 예의를 다해서 행동한다. 시이오에게는 누구나 좋은 사람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식사 상대가 웨이터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자세히 보면 그 사람의 진짜 성품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보다 지위가 낮다고 사회적 약자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직장에서도 부하들에게 비슷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자기도 모르게 권위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웨이터뿐만 아니라 호텔 종업원, 경비원, 청소원 등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하인 부리듯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회사에서 많은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시이오나 임원의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2006년 이 웨이터의 법칙을 소개한 <유에스에이 투데이> 기사에서는 웨이터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난 이 레스토랑을 사버리고 널 잘라버릴 수 있어”라든지, “난 이 레스토랑 주인을 잘 아는데 널 해고시킬 수도 있어”라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소개했다. 곧 “너,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과시다. 불행히도 이런 발언은 그 사람의 힘을 과시하기보다는 그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지를 나타낼 뿐이다.
국적항공사 비즈니스클래스에서 일하는 항공사 승무원의 경우는 우리 사회의 소위 ‘지도층 인사’들을 항상 접하기 때문에 이 ‘웨이터의 법칙’을 몸으로 느낄 것 같다. 이번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어 파문이 일고 있지만 그 임원보다도 더 잘나고 힘센 인사들의 비슷한 무례한 행동은 알려지지 않고 묻히는 일이 많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힘있는 사람에게는 깍듯이 하면서 식당의 종업원이나 골프장의 캐디는 마치 하인 부리듯 반말조로 막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만 해도 수년 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까운 한 선배의 형수가 항공사 승무원이었다. 하루는 카운터에서 업무를 보는데 한 대기업의 최고위급 중역이 체크인을 하려고 왔다. 그런데 규정을 넘어서는 크기의 가방을 기내로 가지고 들어가겠다고 해서 원칙상 안 된다고 짐을 부치라고 정중히 말씀드렸단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대단한 고객인데 이렇게 대할 수 있냐며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고객카드를 두 동강 내면서 떠났다고 한다. 또 너희 회장에게 널 자르라고 얘기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일을 이야기하면서 격분하던 선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누군가가 당신에게는 잘해주지만 항공기 승무원에게는 거만하게 행동한다면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이 기회에 한국에서는 이런 ‘항공기 승무원의 법칙’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아무쪼록 한국의 경영자들도 이 법칙을 명심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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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3일자 한겨레 생각의 단편 칼럼으로 게재된 글이다.
이 한겨레칼럼 마감시간은 항상 미국시간으로 일요일저녁인데 그날 따라 써놓은 글이 그저 그랬다. 그래서 전날 블로그에 가볍게 ‘웨이터의 법칙‘이라고 써두었던 글을 한겨레측의 양해를 얻어 더 길게 써서 보냈다. 내가 그동안 보냈던 칼럼글들과 달리 시의성이 있는 내용이어서 좀 반응이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뜨거울 줄은 몰랐다.
이 시간까지 페이스북에서 2천회이상, 트위터에서 5백회이상 공유되어 한겨레기사중에 가장 많이 공유된 기사 1위로 올랐다. 솔직히 잘 쓴 글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웨이터룰’이라는 생각자체에 워낙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신 것 같다.
우연히 알았는데 5년전 박연차회장의 기내난동사건도 비슷한 경우에 속하는 것 같다. 참고링크 : 항공기 난동 박연차 회장… 박준용판사에 혼쭐(로이슈) 다만 그때는 한국에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차이랄까? 내 글이 조국교수, 선대인소장 같은 파워트위터유저의 도움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보고 소셜미디어의 파워를 또 느꼈다.
어쨌든 이렇게 정보가 순식간에 퍼지는 세상이 무섭기도 하다.
아시안이 점령한 잡스의 고향
보스턴에서 실리콘밸리로 이사 온 지 두 달이 지났다. 비록 같은 나라 안이긴 하지만 동부에서 서부로 옮긴다는 것은 마치 다른 나라로 이주한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그렇다. 전에 살던 보스턴의 교외지역은 백인이 주류인 유서깊은 곳이었다. 중국인, 인도인 등 아시안 인구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백인이 90% 가까운 인구를 점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백인들 사이에 끼여 소수자로 사는 것에 익숙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 지역의 중심에 있는, 우리 가족이 자리잡은 쿠퍼티노는 그 반대다. 이곳은 아시안이 주인인 곳이다. 인도계와 중국계가 점령한 쿠퍼티노에선 백인들을 보기가 힘들다. 우리 애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중학교에는 한 반에 백인 학생이 1~2명밖에 없을 정도다. 그들마저 인도·중국계 엄마들의 치맛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얼마 전 지인의 초대로 그분이 다니는 반도체회사의 야유회에 간 일이 있다. 행사에 온 직원들 대부분이 아시안 등 비백인이었다. 백인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보일 정도였다. 말레이시아계 화교가 창업한 회사라서 그런지 더더욱 아시안이 많고 백인은 마케팅이나 재무 부서에 좀 있는 정도라는 설명을 들었다. 전세계에 직원이 수천명인 수조원 가치의 회사가 그렇다.
집 근처에는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일본·인도·중국·아랍식 식료품 슈퍼가 있고, 차로 5분 거리에 한국 슈퍼가 있다. 각 민족의 인기식당에 갈 때면 중국, 인도, 일본 등에 가 있는 느낌이 난다.
쿠퍼티노는 애플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스티브 잡스가 쿠퍼티노의 홈스테드고교를 졸업하던 72년에는 거의 100% 백인만이 살던 동네였다. 잡스와 애플의 고향이 이렇게 아시안들에게 점령이 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
인텔, 에이치피(HP), 시스코시스템스 등 글로벌 아이티(IT) 기업과 구글·페이스북 등 새로운 인터넷 강자들의 보금자리인 실리콘밸리는 미국 경제의 희망이다.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구원자이기도 하다. 그런 이곳이 아시안의 힘으로 지탱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저임금 직종에 종사하기 위해 유입된 히스패닉 이민과 달리 대개 석·박사급의 고급인력인 아시안들은 이곳 기업들의 연구개발 분야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곳에서는 백인 엔지니어를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다.
유시(UC)버클리의 교수인 비벡 와드와의 2009년 조사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 중 이민자가 창업한 비율은 52%에 달한다. 실리콘밸리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혁신의 힘이 이민자에게서 나온다는 증거다.
실리콘밸리의 혁신 비결을 열대우림의 생태시스템에 비유해 분석해낸 ‘레인포레스트’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벤처캐피털리스트 빅터 황은 ‘왜 실리콘밸리는 계속해서 혁신을 이어나가는데 다른 지역은 그렇지 못한가?’라는 질문에 나름의 해답을 제시한다. 그는 열대우림의 다양한 잡초에서 억센 생명력이 나오는 것처럼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교류가 일어나면서 가장 큰 경제적 효과가 나온다고 설명한다. 또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피부색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관습과 문화를 뛰어넘어 열린 마음으로 서로 신뢰하고 일하는 곳이 실리콘밸리라고 한다. 이종 간의 협업과 실험을 통해 기발한 혁신이 나온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에 와서 살면서 이 지역의 다양성과 외부인에 대한 포용력에 새삼스레 감탄했다. 다문화에 대한 이런 관용과 포용력이 없이는 인재 부족으로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참, 항상 청명하고 쾌적한, 축복받은 날씨가 진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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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12년 9월4일자로 기고했던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칼럼. 기록을 위해서 블로그에 다시 옮긴다.
처음 쿠퍼티노에 가서 예상과 달리 도서관, 상점 등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대부분 중국, 인도인이라는 것을 보고 “이곳이 애플의 본사가 있는 곳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평일에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백인들은 자세히보면 애플직원이고 실제 주민들은 대부분 아시안이다. 학교에 가서 애들 학부모들과 이야기해보면 거의 획일화되어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거의 대부분 IT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다들 어딘가에서 미국으로 이민온 사람들이다. 사실 쿠퍼티노뿐만이 아니고 실리콘밸리 전체가 이렇게 변모해가고 있다. 내가 버클리에 다니던 10년전보다도 휠씬 많이 늘어난 느낌이다.
이처럼 이방인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것이 실리콘밸리다. 이방인들이, 특히 각국의 인재들이 와서 살고 싶게 만드는 것이 실리콘밸리의 으뜸 경쟁력이다.
“태블릿이 고객의 주문을 받을 수 있을까?”
“태블릿이 고객의 주문을 받을 수 있을까?”
지난주 <월스트리트 저널>을 읽는데 이런 제목의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버지니아비치의 한 컵케이크집 주인이 고객의 주문을 받는 10명의 종업원을 태블릿컴퓨터를 이용한 무인주문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현재는 종업원에게 시간당 7.25달러를 주고 있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하는 대로 최저임금이 9달러로 올라갈 경우 채산성이 악화될 것을 우려해서라는 것이다.
이 기사를 보자 얼마 전 보스턴의 파네라브레드라는 빵집에 갔던 일이 기억났다. 오랜만에 가본 그 가게엔 사람이 주문을 받는 계산대가 절반 이하로 줄고 그 자리에 아이패드를 이용한 주문시스템이 대신 자리잡고 있었다. 화면 위의 음식 사진을 눌러 주문하고 신용카드를 긋고 번호표를 받아가면 음식을 테이블로 가져다준다. 생각보다 사용이 간편했다.
지난주에는 또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가 요금징수소의 직원을 모두 없애고 완전 무인화된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카메라가 차량번호판을 촬영해 자동으로 차 주인에게 요금청구서를 우편으로 보내는 방식이다. 금문교는 이렇게 해서 향후 8년간 1600만달러의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뉴스에서는 수십년간 일하던 일터를 잃게 된 요금징수원의 아쉬움과 함께 이런 무인징수시스템이 머지않아 미국의 모든 유료도로와 교량에도 적용될 것 같다는 전망이 뒤따랐다.
심지어 뉴스에 따르면 햄버거고기를 뒤집는 로봇도 개발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한다. 2000만원에서 3000만원 사이에 구입할 수 있는 로봇이 인간이 하는 단순한 일을 대체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실리콘밸리의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끔 구글의 무인운전자동차를 만나기도 한다. 일정 속도로 안정감 있게 주행하는 그 차를 보면 앞으로 버스나 택시운전사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 동영상에 나오는 백스터같은 로봇이 바로 햄버거고기를 뒤집는 로봇으로 개발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참고: 중국 공장을 위협하는 로봇, 백스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컴퓨터로 인한 자동화와 급속히 발전하는 로봇기술이 인간을 단순작업에서 해방시켜줌과 동시에 저임금 노동자의 일자리도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스마트 기기 혁명과 함께 인간이 인간과 대면하고 대화할 기회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점이나 음식점에 갔을 때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고 안부를 나눌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신 상점에 설치된 태블릿컴퓨터가 당신을 맞아줄 것이다. 카메라로 당신의 얼굴을 인식해 인공음성으로 이름을 불러주고 당신이 선호하는 메뉴를 알아서 추천해주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상대방을 앞에 놓고도 스마트폰 화면과 대화하는 것을 더 편해하는 요즘 세대의 아이들에게는 이런 세상이 더 편안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기계와 대화하는 것은 즐기면서 인간과 직접 대면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
앞으로 올 수십년 뒤의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될까. 기술의 진보가 인류에게 더욱 편안한 삶을 보장해주는 것일까? 디지털혁명이 가져온 혁신을 즐기며 신봉해온 나였지만 요즘은 인터넷, 휴대전화 없이도 잘 살았던 수십년 전을 돌아보면서 혁신과잉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그렇다. 태블릿이 고객의 주문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인간의 일자리는 급속히 사라지고 있으며 인간은 더는 인간과 대화하지 않는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의 인간으로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기계가 하지 못하는 비판적 사고능력을 키우며 역설적으로 인간과 효과적으로 대화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미래를 대비해 단순지식을 암기하는 것보다 이런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교육의 방향을 바꿔야 할 것이다.
/2013년 4월2일자 한겨레지면에 실린 칼럼입니다.
Update: 위 칼럼에 나온 무인화된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6월초에 통과할 일이 생겼다. 그리고 열흘만에 6불 요금고지서를 우편으로 받아서 온라인으로 크레디트카드로 납부. 정말 귀찮았다. 얼마나 인건비 절약한다고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