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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WC19를 동영상으로 구경하기
지난 1월에 CES를 동영상으로 구경하기라는 포스팅을 해서 좋은 반응을 얻은 일이 있다. 올해의 CES를 가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분위기인지 보기 위해서 공부 삼아 찾아본 것이다.
그런데 매년 1월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CES에 쌍벽을 이루는 행사가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2월말에 열리는 MWC,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다. 이것은 세계이동통신사들의 협회인 GSMA에서 개최하는데 전자제품이 중심인 CES보다는 모바일기기에 중심을 맞춘 행사다. 약 2천개의 회사와 10만명이 오는 MWC는 약 3천5백개회사와 16만명이 참관하는 CES보다 규모는 작다. 하지만 등록비가 거의 무료에 가까운 CES에 비교하면 100만원~300만원의 등록비를 받는데도 이렇게 많은 참관객이 간다는 것이 놀랍다.
올해는 마침 나도 프레스티켓을 발급 받을 수 있어서 처음으로 참관해 봤다. 이제 돌아와서 이번 MWC의 분위기를 잘 전하는 동영상을 찾아봤다. 그런데 아쉽게도 CES때와 달리 MWC의 전체 분위기를 잘 정리해 보여주는 리포트는 생각보다 찾기 어려웠다. 그래도 몇개 보이는 것을 아쉬운데로 아래 소개해본다. 주로 해외동영상 위주로 봤다.
이번 MWC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은 폰은 화웨이의 메이트X일 것이다. 물론 삼성 갤럭시 폴드도 있지만 MWC전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미리 발표를 했기 때문에 MWC현장에서는 화웨이의 메이트X가 주목을 많이 받았다. 물론 접히는 힌지 부분이 쭈글쭈글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많이 받았지만 현지에서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과연 사람들이 2백, 3백만원을 내고 이런 접히는 폰을 쓸까? 아이패드도 있는데 굳이 이런 것이 필요할까? 난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와봐야 안다고 생각한다. 위 동영상은 유명한 테크 유튜버인 마이클 피셔가 찍은 것이다.
삼성, 화웨이 이외에도 TCL, OPPO 등 주로 중국업체들이 폴더블폰 프로토타입을 많이 선보였다. 종합해서 소개하는 동영상이다. 생각해보면 기존 스마트폰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어려우니 폴더블폰 개발경쟁이 벌어진 것 같다.
MWC는 유럽에서 열리는 행사여서 그런지 생각보다 미국회사들의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AT&T, 버라이존 등 통신사 이외에 퀄컴, 시스코 등 통신업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미국회사들이 큰 부스를 냈다. 그런데 의외로 MWC에서 큰 존재감을 보이며 신제품을 선보인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다. 사티아 나델라CEO까지 직접 와서 혼합현실 헤드셋인 홀로렌즈 2를 선보였다. MS부스에서는 이 신제품을 테스트해보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나도 한번 써보려고 했는데 2시간쯤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포기했다. 위는 MWC에서 MS의 홀로렌즈 2 프레스 이벤트를 엔가젯이 13분으로 요약해 편집한 것이다.
독특한 스마트폰도 많이 나왔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아닌가 싶은 노키아가 다시 돌아와서 흥미로운 제품을 선보였다. 노키아 9 퓨어뷰는 5개의 카메라가 붙어서 DSLR못지 않은 고품질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한 폰이다. 한정판이라고.
삼성 부스를 보여주는 동영상이다. 갤럭시 폴드를 전시하기는 했는데 만질 수 없도록 유리 케이스안에 집어넣고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게 줄을 쳐서 막아두었다.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다. 무난한 전시였다고 생각한다.
MWC LG관에서는 너무 많은 것을 보여줄려고 했던 것 같다. 또 듀얼스크린 폰에 대해서는 “꼭 내놔야 했을까”하는 말을 사람들이 많이 했다.
MWC에는 사실 전세계 통신사들의 부스가 가득하다. 하지만 그들이 매력적인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신제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통신사 부스를 취재해 소개해주는 경우는 드물어서 아쉬웠다.
SKT이 직접 만들어 공개한 MWC SKT부스 소개 동영상이다. 5G서비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KT에서 만든 부스 소개 동영상이다. 역시 5G서비스가 중심이다. 5G를 이용한 스카이십, 스마트팩토리, 게임 등을 보여줬는데 나름 잘 준비했다고 생각했다.
아쉬운 것은 MWC의 부대행사로 스타트업 600여개사가 참가한 4YFN를 잘 소개한 동영상이 없다는 것이다. 본 행사장인 Fira Gran Via와 꽤 떨어진 곳에서 진행되다 보니 미디어가 4YFN까지 신경을 쓰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4YFN이 열린 피라 몬주익 현장 분위기를 보여주는 동영상이다.
이밖에도 흥미로운 제품과 부스가 많았다. MWC를 결산하는 동영상이 이번주에 조금 더 나올 것 같은데 발견하면 추가하려고 한다.
샌드위치 삼성
한달전 상하이와 도쿄를 연달아 다녀왔다. 상하이에서는 CES아시아에 들렀는데 그야말로 중국인들의 창업열기가 하늘을 찌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마트홈, 가상현실(VR), 드론, 웨어러블 등 새로운 분야에서 뭔가 만들겠다고 창업하는 회사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조잡해 보이는 제품이 많지만 이렇게 도전하고 뭔가 만들어낸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이렇게 빠른 실행을 하다보면 실력이 쌓인다.
도쿄는 근래 20여년중 가장 분위기가 밝아보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경기가 좋다”고 하고 시내곳곳에 새로 올라가는 빌딩 천지였다. 긴자거리에는 중국관광객이 흘러넘쳤다. 내가 출장가있는 동안 일본신문에는 “닛케이지수가 10일 연속으로 상승했는데 이는 27년만의 일”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돈이 넘쳐나니 일본대기업들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의지도 높았다.
이번 출장을 통해 내가 실감한 것 또 하나는 애플과 중국회사들의 공세에 샌드위치가 된 한국 대표기업 삼성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똑같은 이유로 어려움을 겪게 될 한국경제에 대한 걱정이었다.
우선 상하이에서 지하철을 타보니 애플의 약진, 삼성의 몰락이 그대로 느껴졌다. 차량을 이동해 가면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수십명의 사람들을 관찰했는데 반이상이 아이폰이었다. 지난해 방문했을때와 비교해서 아이폰의 비중이 높아진 것을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아이폰이외에는 샤오미, 레노보, 쿨패드 등 다양한 중국산 안드로이드폰이 많이 보였다. 삼성폰을 쓰는 사람은 거의 보기가 어려웠다.
상하이 현지분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신제품인 갤럭시S6나 엣지도 거의 반응이 없다고 한다. 반면 샤오미는 여전히 잘 나가고 특히 샤오미 노트가 잘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삼성의 문제는 소프트웨어라고 지적했다. 샤오미의 OS인 MIUI는 중국현지에 맞게 튜닝이 잘됐고 중국인에게 쓰기 편리하다. 반면 삼성은 그런 장점이 느껴지지 않고 오래 쓰면 쓸수록 소프트웨어가 느려진다는 평판이 있다는 것이다. 이 분의 경우 몇년전까지만 해도 샤오미를 깔봤고 삼성을 높이 평가했는데 이제는 반대로 생각하게 됐다. 지금은 샤오미 구매를 고려하고 있고 삼성은 다시 살 생각이 전혀 없어졌다.
이미 중국에서는 안드로이드폰은 다양한 현지브랜드가 제품이 쏟아져 나와서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화웨이, 레노보, ZTE 같은 대기업외에도 오포, 메이주, 쿨패드 등 다양한 브랜드의 꽤 괜찮은 스펙의 중국스마트폰이 삼성폰의 절반값인데 삼성을 살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즉, 안드로이드시장은 중국업체들이 거의 평정했다.
아이폰은 중국의 비즈니스맨들과 젊은 여성층에서 특히 절대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내가 최근에 만난 알리바바의 임원들은 모두 아이폰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CES아시아전시장과 쇼핑몰, 공항 등에서 보면 젊은 여성일수록 예외없이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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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아이폰점유율이 높은 일본이었지만 이제는 더 높아진 것을 체감했다.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들중 70%정도는 아이폰을 쓰는 것 같다. 일본에서 안드로이드폰으로는 소니의 엑스페리아가 가장 많이 보였다. 역시 삼성폰은 볼 수가 없었다. 일본의 휴대폰판매랭킹을 집계하는 BCN사이트에서 찾아보니 갤럭시 S6는 34위에 불과하다.(6월21일 현재)
삼성이 전력투구한 명품 하드웨어폰인 갤럭시S6와 엣지가 왜 이렇게 먹히지가 않을까.
그것은 스마트폰업계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하드웨어만 잘 만들면 되는 시대는 끝났다. 소프트웨어나 관련 IoT제품 생태계로 차별화를 해야 한다. 애플이 맥북, 아이패드, 아이폰, 애플워치까지 소프트웨어로 얼마나 정교하게 연결해 놓았고 앱스토어를 중심으로 한 생태계를 만들어놓았는지 애플유저들은 잘 안다. 하드웨어는 아이폰과 비슷하게 고급으로 만들 수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삼성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샤오미 같은 중국회사들은 그것을 삼성보다도 잘 한다. 샤오미는 중국고객들이 쓰기 편하게 최적화되어 있는 모바일 소프트웨어OS를 만들고 좋은 앱들을 발굴해 자체 앱생태계를 만들었다. 미밴드, 스마트체중계, 액션카메라 등 샤오미폰에서 쓰기 편하면서도 값이 싼 IoT제품을 쏟아내면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샤오미가 중국고객들을 충성스럽게 만드는 동안 삼성은 중국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와 생태계를 만드는데 실패했다. 이제는 애플조차 iOS에 중국고객을 의식한 각종 편의 기능을 넣는데 노력하고 있는 판국에 말이다.

비용만 지불하면 원하는 스펙으로 스마트폰을 설계해주는 디자인하우스가 심천에는 1백여곳이 있다. 여기서 받은 설계도로 폭스콘 등에 스마트폰을 주문생산하는 스마트폰 메이커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이 스마트폰의 심천모델이다. (출처 : 닛케이비즈니스)
심천발 중국스마트폰의 도전도 무시할 수 없다. 하드웨어는 중국업체들에 의해서 평준화되고 있다. 그야말로 충분히 좋으면서도 (good enough) 가격은 프리미엄폰의 절반가격인 폰들이 넘쳐난다. 샤오미외에도 심천의 하드웨어생태계에서 수많은 가격대성능비가 뛰어난 저가 스마트폰이 넘쳐난다. 원플러스원 같은 스마트폰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제 중국내수시장을 넘어서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이런 폰을 한번 써본 소비자는 안드로이드폰을 아이폰 정도의 가격을 지불하고 사려하지 않는다. 삼성의 프리미엄폰이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삼성의 중국에서의 시장점유율은 급전직하중이다. 과연 4월에 출시한 갤럭시 S6로 얼마만큼 점유율을 만회했을까 궁금한데 내가 체감한 느낌으로는 큰 회복은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저만치 앞서가는 혁신기업 애플과 무서운 기세로 쫓아오는 중국의 스마트폰업체들. 삼성은 그야말로 샌드위치 신세다. 그리고 사실 삼성이 처한 현실이 한국경제가 처한 그것을 그대로 투영한다. 여전히 혁신으로 앞서나가는 미국, 엔저로 호황을 맞은 일본, 창업열기를 통해 역동적인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하는 중국, 이 틈바구니에서 한국은 어떻게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가.
/최근 시사인에 기고했던 글을 보완.
스티브 잡스의 Why
Becoming Steve Jobs라는 잡스전기에서 인상적으로 읽은 부분을 소개한다. 잡스가 애플의 리더를 교육하는 내부조직인 애플유니버시티를 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팀 쿡이 아래와 같이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스티브는 ‘Why’에 집착했습니다.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Why입니다. 제가 보기에 그가 젊었을 때는 (주위에 상관없이) 그냥 뭔가를 실행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나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했는지, 그가 어떤 사안에 대해서 왜 특정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등등을 설명하는데 할애했습니다.- 팀 쿡
“Steve cared deeply about the why,” says Cook. “The why of the decision. In the younger days I would see him just do something. But as the days went on he would spend more time with me and with other people explaining why he thought or did something, or why he looked at something in a certain way. -Tim Cook
생각해보면 이것은 리더십의 진화다. 잡스는 젊었을 때는 창업자로서의 권위로 그냥 부하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명령하고 실행했다. 그 과정에서 욕도 많이 먹었고 결국에는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쫒겨나기까지 했다. 하지만 넥스트와 픽사를 거쳐 애플에 복귀한 뒤로는 그는 변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그는 자신이 하려는 것에 대해서 주위 팀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이해시켰다는 얘기다. 왜 애플이 그토록 성공적인 회사가 됐으며 잡스가 떠난 뒤에도 잘 나가는지에 대해서 약간의 해답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사이먼 사이넥의 그 유명한 TED강연과 책을 다시 봤다. 위 팀 쿡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어서다.
“당신의 ‘왜’를 말하면 거기에 동감하는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사이먼 사이넥
사이넥의 책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Start with why)“를 보면 다음과 같은 부분이 나온다.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CEO의 임무는 ‘왜’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의 ‘왜’가 줄줄 흘러넘치게 하는 것이다. ‘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설파하는 것이다. 회사의 믿음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왜’는 목적이고 회사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이를 나타내는 목소리다. 마틴 루터 킹과 그가 주창한 사회운동처럼 리더의 임무는 계약을 체결하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감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야말로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했던 행동과 같다.
이 책에는 또 한가지 흥미로운 은유가 나온다. ‘스쿨버스테스트’다. “당신 기업의 창업자나 리더가 스쿨버스에 치이게 된다면 책임자 없이도 당신의 기업은 동일한 속도로 계속 번창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렇게 답이 나와있다.
“스쿨버스 테스트를 통과하려면, 즉 창업자가 자기 역할을 다한 후에도 기업이 여전히 사회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으려면, 창업자의 ‘왜’를 잘 발췌해 기업문화에 통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더욱이 강력한 승계 계획을 마련해, 창립 철학을 고취시키며 이를 기꺼이 다음 세대에게 안내할 준비된 리더를 찾아내야 한다.”
잡스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것을 모두 준비한 것 같다. 애플유니버시티라는 것을 사내에 만들어 애플의 역사에서 중요한 결정들이 왜 그렇게 내려졌는지를 리뷰하고, 스티브 잡스의 의사결정과정과 그의 미학적, 마케팅적 방법론을 미래의 애플리더들에게 공유하고자 했다. 그리고 팀 쿡이라는 그의 철학을 계승할 수 있는 후계자를 정했다. 그 결과가 요즘의 애플의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어떻게 보면 이 스쿨버스테스트의 시험대에 삼성이 섰다. 이건희회장의 갑작스러운 와병이후 이재용부회장이 본격적으로 그룹경영을 물려받아 지휘봉을 잡았다. 과연 이재용부회장은 애플의 팀 쿡처럼 삼성의 Why를 잘 승계할수 있는 리더인가. 앞으로 몇년이 지나면 결과를 알 수 있을듯 싶다.
사이먼 사이넥의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TED강연은 생각을 자극하는 정말 좋은 강연이다. 안보신 분들은 이 기회에 꼭 보시길 추천한다.
에스티마의 심천탐방기
올초 세계최대의 가전제품전시회인 라스베가스 CES에 다녀왔다.2년만의 방문이었다. 삼성과 LG의 거대한 부스의 위용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깜짝 놀란 것이 있었다. 중국, 그중에서도 심천기업들의 부상이었다. 참조: CES 단상-한국경제의 미래가 걱정된다
전체 참가사 3천6백개의 기업중 1천개가까이 중국기업이었고 그중 절반이 센젠(Shenzhen)을 회사이름에 넣은 심천기업이었다. CES안내책자에 4백여 심천기업의 이름이 4페이지 빼곡이 들어있었다. 심천회사 부스에 있는 몇몇 서양인들과 이야기해봤다. 왜 이렇게 심천에서 많이 왔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나 “심천은 전세계 전자제품의 수도니까”, “심천은 하드웨어의 실리콘밸리”라는 약간 잘난 척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심천은 어떤 곳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좀 무리해서 기회를 만들어 2월초 심천을 방문했다.
심천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하드웨어엑셀러레이터 핵스(HAX)였다. 설립된지 3년쯤되는 핵스는 하드웨어스타트업을 단기간내에 집중적으로 육성해주는 곳이다. 세계최대의 전자상가라는 화창베이역앞에 있는 고층빌딩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프랑스인 제네랄파트너 벤자민 조프는 한중일 등 아시아에서만 15년을 살다가 심천에 정착한 사람이다. 그는 심천의 강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심천에는 어떤 부품이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전자상가와 함께 소량으로도 시제품을 만들어주는 공장들이 가득합니다. 화창베이에는 10층짜리 규모의 전자상가빌딩이 한 20개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뭐든지 쉽게, 값싸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제품을 대량생산해서 전세계 어디로든지 배송할 수 있는 글로벌배송시스템이 갖춰져 있습니다.”
심천이 세계최고의 하드웨어생태계를 갖춘 곳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핵스는 심천의 하드웨어생태계를 이용해 외지에서 온 하드웨어스타트업이 빠르게 제품화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문화된 스타트업육성센터다. 심천을 이용하고는 싶지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는 외국 스타트업들을 위해 다리를 놔주는 것이다.
현재 6번째 기수를 받아 육성중인 핵스에는 스타트업 15팀이 들어와 있다. 벤자민은 “지금 프로그램에 참가중인 15팀중 절반이 미국과 캐나다에서 왔고 4분지 1이 유럽팀 그리고 2팀이 중국, 1팀이 한국출신이다”라고 말했다. 핵스는 시제품출시이전의 유망한 스타트업을 골라 2만5천불을 투자하고 6%의 지분을 받는다. 이는 3명팀이 심천에 와서 4개월간 지내면서 시제품을 개발하는데 적당한 금액이다. 4개월동안 시제품을 완성한 이들은 ‘졸업식’격인 데모데이는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한다. 제품은 심천에서 만들었지만 이들의 투자자와 잠재고객은 실리콘밸리에 있기 때문이다.
벤자민은 실제 스타트업 창업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라며 누군가를 데리고 왔다. 여기서 1년전에 IoT(사물인터넷)카메라를 만들어서 킥스타터를 통해 펀딩에 성공했다는 샌프란시스코 스타트업 오토(Otto)의 데이빗이다. 그는 “심천에 대한 전설을 예전부터 들어서 한번 꼭 와보고 싶었다”며 “6개월전에 프로그램에 들어와 심천을 경험한 뒤로는 계속 샌프란시스코와 심천을 왕복하며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심천의 강점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소량으로 주문하기도 어렵고 주문을 해도 받는데 몇달 걸리는 카메라부품을 심천에 와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것도 10분의 1가격에 구했다. 그게 진품이었는지는 내게 묻지마라.(웃음) 어쨌든 제품을 테스트하고 만드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어떤 카메라 센서는 온라인 타오바오몰을 통해 5개를 주문했는데 45분만에 배달을 받는 놀라운 경험을 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부품가게가 내가 있는 곳 바로 아래층에 있었던 것이다! 이곳은 하드웨어엔지니어들에게는 천국같은 곳이다.”
화창베이의 전자상가상인들이 크고 작은 공장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스타트업에 아주 우호적이라는 것도 강점이다. 조프씨는 “몇십개, 몇백개의 소량을 주문해도 제품의 가능성을 보고 기꺼이 만들어 주는 공장주인들이 많다”며 “이중에서 백만개이상씩 파는 히트상품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에 공장쪽도 같이 모험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핵스에서 제품을 준비하는 BBB의 최재규대표는 “한국의 공장들은 대기업눈치를 엄청보면서 스타트업을 상대해주려하지 않는다”며 “반면 영어가 잘 안통해도 어떻게든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오픈마인드로 스타트업을 대하는 심천의 분위기에 놀랐다”고 말했다.
핵스는 전세계에서 온 하드웨어스타트업이 심천의 하드웨어생태계를 이용해 빠르게 시제품을 만들도록 도와준뒤 4개월 프로그램이 끝나면 이 팀들을 모두 샌프란시스코로 데리고 가서 투자자들에게 제품을 선보이는 데모데이를 갖는다. 조프씨는 “심천이 훌륭한 하드웨어생태계를 가지고 있지만 중국은 얼리아답터마켓은 아니다”라며 “이들이 만든 혁신적인 제품을 사줄 최고의 얼리어답터마켓은 역시 아직도 미국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데모데이를 갖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심천에는 세계최대의 전자제품 공장이 있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 애플의 제품 대부분을 위탁 생산하는 폭스콘의 공장이 심천시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스타트업과 협력하고 싶다며 공장구석구석을 안내해준 조슈아 다이씨는 “폭스콘은 혁신 전자제품을 스타트업과 같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며 “사물인터넷(IoT)분야에서 같이할 스타트업을 전세계에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27만명이 일한다는 폭스콘공장은 그야말로 작은 도시였다. 1백여개의 건물들이 있고 12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는 심천 폭스콘내에는 공장직원들이 생활하는 아파트같은 모습의 기숙사들과 함께 수퍼마켓, 은행, 우체국, 식당 등이 자리잡은 상가건물들도 있었다. 이런 거대기업조차 스타트업과 일하겠다는 모습이 놀라웠다.
우리는 중국전자제품하면 짝퉁을 연상하지만 그런 면에서도 심천은 변화하고 있었다. 화창베이전자상가에는 생각보다 짝퉁제품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대신 곳곳에 자리잡은 비공식 애플과 샤오미가게를 통해서 애플과 샤오미의 대결구도를 느낄 수 있었다.
아이폰6와 함께 다시 중국스마트폰 시장 1위를 탈환한 애플과 샤오미, 화웨이, 레노보와 각종 중국신생 스마트폰 브랜드들의 각축속에 삼성이 밀리고 있다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참고 포스팅 : 중국시장에서 각축을 벌이는 애플, 샤오미 그리고 삼성.)
드론시장에서 세계 1위인 심천의 DJI는 변화하는 중국의 신세대 전자업체를 상징한다. 2006년 프랭크 왕이 설립한 이 회사는 연간 수천억원규모로 추정되며 급팽창하고 있는 세계 민간드론시장의 1위업체로 드론시장에서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카메라를 달아서 멋진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는 이 회사의 팬텀2 모델은 전세계에서 드론매니아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드론중 하나다. 전세계 드론관련 뉴스에 가장 자주 나오는 베스트셀링 모델이다. 이 회사는 해외제품을 카피해서 빠르게 내놓는 다른 중국회사들과는 달리 자신만의 오리지널한 제품을 내놓는다.
최근 4년간 직원수가 50명에서 3천명이상으로 급증할 정도로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실리콘밸리의 명문VC들이 투자하겠다고 몰려드는 회사다. 얼마전 실리콘밸리에서 직접 들은 루머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의 명문VC인 시콰이어캐피털이 기업가치 2조원에 이 회사의 구주를 인수했으며 지금은 기업가치가 10조원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사실 많은 드론매니아들은 DJI가 중국회사인지도 모를 정도다. DJI는 새롭게 떠오르는 신세대 중국테크회사를 상징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실제로 팬텀2를 사서 날려보고 이 회사의 기술력에 감탄했다.
이렇듯 심천은 급성장하며 전세계의 하드웨어혁신을 빨아들이고 있다. 생각이상으로 현대화된 심천시내 곳곳에 첨단빌딩이 속속 건설되고 있었다. 거리도 깨끗한 편이며 지하철 등 대중교통수단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심천에서 뻗어나가는 중국의 기세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소수의 대기업에 성장과 혁신을 의존하는 한국경제는 이대로 괜찮을 것인가.
중국시장에서 각축을 벌이는 애플과 샤오미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우는 심천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곳은 화창베이 전자상가. 용산전자상가의 10배~20배쯤 되는 규모라고 생각하면 된다. 세운상가 같은 곳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현대적인 큰 빌딩들이 즐비하고 그 안에 가득히 각종 전자제품가게들이 채워져있다.
여기서 조금만 걸어다녀보면 애플과 샤오미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 사진들은 워낙 애플과 샤오미가게가 붙어있는 것이 많이 보여서 몇군데 찍어본 것이다.
샤오미는 99%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심천에는 이렇게 샤오미대리점(?)이 많아서 좀 당황스러웠다. 알고 보니 이곳 전자상가업자들이 손에 넣은 제품들을 (샤오미 허락도 없이) 샤오미 간판을 달고 판매하는 것이다. 애플공식스토어가 심천에 있기도 하지만 이런 비공식(?) 애플스토어가 휠씬 많다. (애플 브랜드가 저렇게 마구 사용되는 것을 보면 스티브 잡스가 무덤속에서 막 화를 낼 것 같다.)
애플이나 샤오미 짝퉁을 파는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전시중인 제품을 자세히 살펴봤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심천은 짝퉁천국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화창베이 전자상가를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그렇지 않았다. (물론 전자상가의 어딘가에서는 그런 것들을 잔뜩 쌓아놓고 팔고 있겠지만 저렇게 겉으로는 그런 제품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전자제품은 아니지만 화창베이근처에서 본 가장 노골적인 짝퉁제품은 이 뉴 바룬(?)운동화였다. 뉴밸런스와 똑같다. ㅎㅎ
통신사의 대리점은 거의 없고 (아마도) 모두 언락폰을 파는 것도 특이했다. 고객은 원하는 폰을 사가서 마음대로 쓰던 USIM을 바꿔끼워서 쓰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더더욱 거센 스마트폰 판매경쟁이 있는 것 같다.
심지어는 저렇게 샤오미를 가두판매하는 곳도 많았다.
휴대폰수리센터에 붙어있는 로고를 보면 어느 회사 제품이 가장 인기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애플, 삼성, 샤오미, 화웨이 로고가 붙어있다.
물론 삼성로고를 붙인 가게들도 많이 있었지만 잘보이는 곳에서는 거의 애플과 샤오미가 한판 붙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3대 메이커에 대한 중국후발주자들의 맹렬한 추격도 느껴졌다.
화웨이는 거대기업답게 아주 깔끔한 자체매장을 선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폰자체가 사람들에게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후발주자중 가장 많이 보이는 간판은 Oppo였다. 아이폰6보다 얇다는 R5가 매력적이었다.
MEIZU도 많았다.
VIVO라는 브랜드도 여기저기서 눈에 띄였다.
쿨패드도 꽤 큰 심천회사라도 들었는데 그렇게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또 모토로라를 인수한 레노보도 스마트폰이 있고 ZTE라는 큰 회사에서 스마트폰도 있다. 그밖에 잘 모르는 브랜드도 많았다. 폭스콘에서 만난 분은 “화창베이에는 거의 100개의 중국 스마트폰브랜드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그중 다크호스가 오포, 메이주 같은 업체들이다”라고 말했다. 제2의 샤오미가 되기 위해서 난리다. 만져보면 다 디자인도 괜찮고 쓸만해 보인다.
이상하게도 LG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G3가 괜찮은 폰인데도 말이다. 똑같이 노키아 등 윈도우폰도 안보이고 소니에릭슨 같은 브랜드도 전혀 없다. 애플, 삼성 대 중국연합군의 대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심천 화창베이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다. 거리 한편에 MS 스토어를 공사중인 모습이 보였다. (설마 진짜 MS스토어겠지?)
샤오미는 정말 잘나가고 관심의 촛점인 것 같다. 서점마다 샤오미의 마케팅 성공전략을 쓴 ‘참여감’이란 책이 잘 보이는 곳에 놓여있다. 내가 손에 들고 뒤적이자 점원이 웃으면서 와서는 “샤오미를 좋아하냐?”하고 막 뭐라고 하고 간다.
중국남방항공 기내지에도 샤오미의 레이준이 크게 나온다.
일주일간 상해, 심천을 다니며 스마트폰을 쓰는 중국인들을 유심히 봤다. 지난 4분기에 애플이 중국에서 스마트폰 판매 1위를 탈환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판매대수로 애플, 샤오미, 삼성, 화웨이순이었다.)
정말 중국인들이 아이폰 많이 쓴다. 다른 중국산스마트폰보다 월등히 비싼데도 그렇다. 샤오미도 많이 보이기는 하지만 애플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샤오미의 가능성도 대단한 것 같다. 전자상가 상인들이 저렇게 자진해서 샤오미 브랜드 간판을 달고 대리점을 자처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만큼 일반 소비자들이 샤오미를 원하니까 저렇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이미 중국에서 스마트폰 브랜드가치로는 삼성에 필적하게 올라온 것이 아닌가 싶다.
삼성은 샌드위치신세다. 위로는 애플에 막혀있고 아래에서는 샤오미 등이 막 치고 올라온다. 중국에서의 이 전세가 글로벌하게 퍼지면 어떻게 하나하는 생각도 든다. 삼성의 분발을 바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미 이 정도 제품을 자력으로 내놓고 있는 중국 스마트폰 업계가 과연 팬택같은 회사에 관심을 가질까 하는 생각도 든다. (특허포트폴리오정도에 관심을 가질 수는 있겠다.) 아쉽게 주저앉아버린 팬택이 참 아쉽다.
나도 샤오미를 좀 제대로 이해해보고 싶어서 샤오미대리점(?)에서 MI4모델을 하나 사왔다. 가격은 1999위안. 한화로는 대략 35만원정도 한다. 샤오미생태계가 어떤 것인지 좀 자세히 들여다 봐야겠다.
CES단상-한국경제의 미래가 걱정된다
세계최대 가전쇼인 라스베가스 CES에 다녀왔다. 2년만에 다시 방문했는데 해가 갈수록 조금씩 더 커지는 규모, 여전한 인파, 엄청난 참가업체수에 정신이 없었다. 이틀동안 주마간산으로 대충 살펴봤다. 그리고 든 생각과 찍은 사진 몇장을 간단히 메모해서 공유.
2년전의 CES와 비교해서 비슷한 점은 대기업들의 부스였다. 삼성, LG, 소니, 퀄컴, 인텔 등 주요업체들의 부스는 2년전과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크기였다. 세부 전시내용은 달랐지만 전체적인 부스디자인은 예년과 비슷한 경우도 많았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자회사인 애플이나 요즘 한창 뜨는 샤오미가 참가하지 않은 CES에서 여전히 가장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회사는 삼성전자였다. 윤부근사장의 키노트발표는 미국언론의 CES 개막기사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하지만 주로 대기업관이 있는 센트럴홀과 노스홀은 지루했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불만이 없을 정도로 요즘 TV는 이미 충분히 화질이 좋다. 그런데 TV업체들은 4K다 8K다 SUHD다 퍼펙트블랙이다 퀀텀닷이다 온갖 마케팅용어를 가져다대며 홍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별 의미없이 공허했다. 혹자는 부스에 정신없이 장식된 대형TV스크린들을 보고 “하이마트에 온 것 같다”고 평했다. 포드, 아우디, 현대자동차 등이 나온 자동차관도 솔직히 2년전과 비교해 그다지 색다른 모습을 보기는 힘들었다.
반면 다양한 웨어러블, 사물인터넷(IoT), 스마트홈관련 스타트업이 나온 테크웨스트관(샌즈엑스포)와 수많은 작은 전자업체들이 나와 드론 등이 전시된 사우스홀은 달랐다. 이곳에서는 스타트업과 작은 중국중소업체들이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휠씬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었다. 많은 참관객들이 대기업관보다 스타트업과 작은 기업들이 모여있는 이곳에서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혁신은 이쪽에서 나오고 있구나”라는 말을 하는 분들이 많았다.
전체적으로 무엇보다도 내 눈길을 끈 것은 중국의 부상이었다. 특히 심천(Shenzhen)의 부상이었다.
구글을 다니다 나와서 50여 스타트업에 엔젤투자를 한 미국친구와 CES에서 우연히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 “심천이 대단하다”는 말을 서로 했다. 아니 얼마나 많은 중국회사들이 CES에 온 것이냐며 놀랐다는 얘기다. ‘Shenzhen’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중국회사를 수십개는 본 것 같다는 얘기를 하자 그 친구가 말했다. “CES공식디렉토리를 보면 Shenzhen회사가 4페이지를 차지한다.” 찾아보니 정말 그랬다.
그밖에 심천인근지역인 동관, 항조우, 광조우 등지에서 온 업체들의 수도 만만치 않았다. 휴대폰배터리나 케이스, 주변기기 등을 들고 나온 이들은 다 비슷비슷해보이고 촌티나는 부스를 열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비즈니스기회를 잡겠다는 열정 자체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냥 지나쳐가려는 나를 불러세우고 제품을 열심히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많이 왔다면 분명히 중국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봤다. 정부나 시당국의 지원을 받은 것이 있냐고. 단호하게 없다고 한다. 협의체를 구성해서 오기는 했지만 그런 것 없단다. 다 자기돈 들여서 왔다는 얘기다.
하이얼, 창홍, TCL, 하이센스 등의 중국대기업들이 큰 부스를 열어놓고 삼성, LG 못지 않는 대형TV를 전시하고 있다. 화웨이도 다양한 스마트폰모델을 내놓고 전시하고 있다. 중국세가 갈수록 CES를 압도한다는 생각을 했다. 전체 3천6백여 참가업체의 4분지1 쯤이 중국업체들인 것 같았다.

http://www.fabernovel.com 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CES에서는 850여개의 중국회사들이 참가했다. 한국은 여기 그래프에서 보기로는 참가기업이 꽤 있는 것 같았는데 현장에서의 존재감은 대기업이외에는 떨어졌다.
우리가 다 죽은 것으로 생각하는 일본전자회사들도 많이 나와있다. 샤프, 파나소닉, 소니 같은 전통의 전자회사들외에도 니콘, 캐논, 샤프, 카시오 등의 전자회사들과 자동차관쪽에는 자동차부품업체인 덴소, 자동차스테레오를 만드는 파이오니어, 켄우드 같은 회사들이 열심히 전시중이었다.
프랑스기업들이 은근히 많은 것도 눈길을 끌었다. 위딩스, 네타모 같은 흥미로운 IoT기기를 내는 이 분야에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회사들이 프랑스회사다. 드론으로 유명한 회사 Parrot도 프랑스회사였다. 이들이 내놓은 제품들은 CES에서 대기업제품들보다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스타트업들이 모여있는 ‘유레카파크’ 전시장에서는 이스라엘, 대만, 프랑스, 덴마크, 스웨덴, 우크라이나 등 다양한 국가출신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만날 수 있었는데 프랑스가 66개팀이 참가해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를 압도했다. 프랑스는 전략적으로 CES에 공을 들인 것 같기도 하지만 상당히 유니크한 IoT기업들이 많았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CES 전체에서 한국은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이외에는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내가 실제로 만난 한국중소업체는 한군데밖에 없었다. (몇군데 더 있었지만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았던 것 같다.) 코트라에서 지원한 한국관이 있었다고 했는데 구석에 있어서 그런지 나는 만나지 못했다.
이런 현상을 보고 나는 우리 기업생태계의 신진대사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특히 전자업계의 경우 글로벌하게 알려진 몇몇 재벌 대기업이외에는 눈에 띄는 기업이 없다. 지난 몇년간 전자업계의 패러다임이 헬스케어, 웨어러블, 드론, IoT 등을 중심으로 크게 바뀌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 이 분야에서 새로 주목받는 기업은 거의 없는 것이다.
예전에 주목받던 팬택도 지금 빈사상태고 아이리버는 SKT에 인수됐고 예전에 뜨던 휴대폰회사인 VK는 사라졌다. 국산스테레오를 만들던 인켈이나 맥슨전자, 텔슨전자 등 이런 전시회에 나올만한 중견기업들은 다 사라졌거나 존재감이 없다. 그 많은 삼성, LG 협력업체들도 생각보다 별로 보이지 않았다.
반면 수많은 작은 심천출신의 중국중소기업의 창업자들에게는 열정과 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지나가던 나를 불러세워서 열심히 제품을 설명하는 모습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비즈니스를 만들어내겠다는 열의가 보였다. 이런 그들을 더이상 짝퉁이나 만드는 싸구려 회사라고 깔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들중에서 또 몇년뒤에 제 2의 샤오미가 나올 수도 있다.
얼마전 읽은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의 뉴욕대 폴 로머교수 인터뷰기사에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 혁신경제의 지표는 새로운 기업의 진입률로 따져야 한다는 얘기다. 기업생태계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야 한다는 얘기다.
“선도자로 가기 위해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펴야 합니까? -“경제 운용의 스타일이 변해야 합니다. 각 부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하고, 더 많은 경쟁이 일어날 수 있게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기업들이 등장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겁니다. 기존 기업들을 보호한다면 새로운 기업이나 새로운 혁신이 발생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기업을 보호하기보다는 사람을 보호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다른 기업에서 새로운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기업을 보호하려다 보면 사람들을 보호하지 못합니다.”
“정책의 핵심은 성공을 어떻게 측정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저라면 혁신 정책의 성공 지표로 특허에 집중하지 않을 겁니다. 새로운 기업들의 진입률을 지표로 삼을 겁니다. 나아가 새로운 기업에 밀려 도태되는 기존 대기업의 개수를 성공의 신호로 생각할 겁니다.”
이번 CES를 보면서 지나치게 대기업위주로 형성되어 새로운 기업이 나와서 성공하기 어려운 한국경제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한국에 일고 있는 스타트업붐이 희망적이긴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틀을 깨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새로운 한국기업들이 많이 나오길 기원한다.
블랙베리, 노키아 그리고 삼성전자
블랙베리라는 스마트폰이 있다. 한국에서는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캐나다의 블랙베리라는 회사가 만든 스마트폰의 원조 격인 제품이다. 전화에 컴퓨터 자판 같은 작은 물리적 키보드를 붙여서 이메일을 주고받기 편리하게 만든 점이 강점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해 아이폰이 등장한 뒤에도 몇년간 북미 스마트폰 시장의 절반가량을 점유했을 정도로 한때 세상을 호령했다. 전성기 블랙베리의 기업가치는 약 80조원에 이르는 등 ‘캐나다의 자존심’이란 이야기까지 들을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이 회사의 가파른 추락이 화제다. 블랙베리는 지난 분기에 약 1조원의 손실을 내고 곧 전체 직원의 40%인 4500명을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아이폰의 등장 이후 급격한 시장의 변화와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창업자들을 포함한 경영진의 몇 가지 전략적 실수까지 이어지면서 불과 몇년 만에 북미 시장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이 1% 안팎으로까지 떨어지는 굴욕을 맛보며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참고 : 블랙베리의 몰락-업데이트(에스티마블로그))
블랙베리의 본사는 캐나다의 최대 도시 토론토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인구 약 10만의 소도시 워털루라는 곳에 있다. 이 거대기업의 몰락이 이 지역 경제에 끼칠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뉴스를 검색해봤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다른 내용이 나왔다. 캐나다의 <시비시>(CBC) 방송 보도를 보면, 워털루는 오히려 수많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기반으로 삼아 혁신의 중심지로 재탄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고 : 워털루의 불확실한 미래 CBC보도) 브렌다 핼로랜 시장은 “이 지역의 탄탄하게 성장하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블랙베리에서 나온 인력들을) 충분히 흡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희망 섞인 보도이기는 했지만 캐나다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릴 만큼 관련 인재와 스타트업이 워털루에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다 싶었다.
예전 세계 휴대폰시장을 호령했던 노키아가 있는 핀란드도 마찬가지다. 노키아의 몰락이 꼭 핀란드의 경제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핀란드가 앵그리버드로 유명한 로비오로 대표되는 워낙 탄탄한 벤처커뮤니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기울면서 해고된 노키아의 고급인력들이 시작한 스타트업이 400여개이고, 특히 최고 인재들이 더는 노키아만 바라보지 않으면서 벤처업계에 인재가 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참고: 왜 노키아의 몰락이 핀란드의 스타트업들에게 좋은 뉴스인가 WSJ블로그)
한국을 보자. 캐나다와 핀란드의 자존심 격인 기업들이 몰락한 마당에 세계적으로 승승장구하며 애플과 한판승부를 펼치고 있는 삼성전자를 가진 우리 국민은 행복해야 할 것 같다. 분기 영업이익이 10조원을 돌파한 삼성전자는 한국의 국보급 회사다. 마땅히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소위 ‘삼성고시’에 매년 10만명이 지원한다는 것이나 삼성전자로 인해 우리 경제가 실제보다 잘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가 있다는 최근 보도를 접하고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취업을 바라는 한국의 수많은 인재들을 비롯해 나라 전체가 한 기업에 너무 심하게 의존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참고: ‘삼성 고시’ 후유증…삼성 “채용 방식 변화 고민중”(한겨레), 삼성전자에 가려진 경제 위기…’착시효과’ 우려(SBS보도))
삼성전자가 영원히 잘나간다는 보장은 없다. 기업은 잘될 때가 있으면 안될 때도 있다. 노키아와 블랙베리의 예에서 보듯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호황을 누리던 기업도 순식간에 운명이 바뀔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상황은 삼성전자가 기침을 하면 나라가 독감에 걸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삼성 의존적이다.
핀란드나 캐나다처럼 대기업들이 위기를 맞을 때 탄력 있게 경제를 받쳐줄 스타트업 생태계가 한국에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스타트업들을 키워내는 데 정부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의 지원도 필요하다. 이들이 장차 삼성전자의 우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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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7일자 한겨레신문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 칼럼으로 기고한 글.
맨마지막에 “삼성전자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쓴 것은 삼성전자가 실리콘밸리에 쏟고 있는 관심과 정성에 비하면 한국의 스타트업커뮤니티에는 조금 소홀한 것이 아닌가 해서이다. (내가 과문해서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삼성은 1조2천억원짜리 펀드를 조성해 미국의 초기단계 스타트업에 투자하기로 했고 팔로알토에 오픈이노베이션센터라는 스타트업액셀러레이터도 열었다. IT의 메이저리그격인 실리콘밸리에서의 입지를 강화하는데 이처럼 큰 투자를 하는데는 전혀 이의가 없다.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핀란드나 캐나다의 예처럼 대기업이 어려울 때 대신 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스타트업커뮤니티를 한국에 키우는데도 삼성이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하는 생각에서 칼럼마무리를 이렇게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