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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와이프와 최고의 사랑으로 본 한미드라마제작시스템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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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5일 시즌 3가 시작된  ‘굿와이프'(The Good Wife)는 보기드문 명품드라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법정드라마속에 정치드라마가 조화롭게 녹여져 있는데다 주연여배우 줄리아나 마골리스의 명연기와 함께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돋보이는 근래에 보기 드문 수작이다.

특히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그 치밀한 각본에 감탄했다. 우선 이 작품은 실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2008년 뉴욕주지사 엘리옷스피처의 콜걸스캔들 기자회견당시 스피처의 옆을 지키고 서있는 ‘현모양처’의 모습에서 Good Wife의 영감을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사례로 역시 남편이 섹스스캔들에 휘말린 힐러리 클린턴과 엘리자베스 에드워드의 경우, 이 두사람이 변호사라는 점에서 극중 알리시아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자신이 콜걸과 혼외정사를 가졌음을 인정하는 기자회견을 갖는 뉴욕주지사 엘리옷 스피처(왼쪽) 굿와이프의 한 장면(오른쪽)

이 작품은 주인공인 알리시아가 난제에 봉착한 어려운 법정케이스의 변론을 맡아 마치 CSI요원처럼, 멘탈리스트의 패트릭제인처럼 매번 멋지게 해결해 나가는 법정드라마다. 에피소드마다 한가지씩 색다른 사건이 펼쳐진다. 이런 법정드라마와 동시에 부정을 저지르고 감옥에 투옥됐으나 다시 주검사선거에 출마하려는 야망을 불태우는 남편 피터와의 부부생활, 가족간의 갈등을 다룬 정치적 드라마가 같이 진행된다.

미국드라마는 보통 두가지 형식이 있다고 한다. 매회 한가지씩 다른 이야기를 다루는 “Procedural”(ex. NCIS), 몇년에 걸쳐 스토리라인이 진행되는 “Serialized shows”(ex. LOST)가 있다. 굿와이프는 이 두가지형식의 장점을 취한 하이브리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WSJ의 Cooking Up a Hit Show라는 기사참조.)

굿와이프는 또 특이하게도 무대는 시카고로 꾸며져 있지만 로케이션은 뉴욕에서 진행한다. 주연배우이며 한살짜리 아기의 엄마이기도 한 줄리아나 마골리스가 자신의 집이 있는 뉴욕에서 드라마를 찍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뉴욕의 층이 두터운 연극-뮤지컬무대가 이 드라마에 훌륭한 배우들을 공급해주는 부수효과를 거두고 있다. (‘The Good Wife‘ Emerges as TV Refuge for Stage ActorsNYTimes) 한편 드라마의 작가진은 LA에 있어 매주 화상으로 회의를 진행한다고 한다.

어쨌든 굿와이프를 보면서 관련기사들을 읽고 위키피디아의 설명을 들여다보니 미국드라마의 제작시스템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최근 2년동안 본 한국드라마는 마침 ‘최고의 사랑’밖에 없기에 한번 두 드라마의 제작환경의 차이를 내 나름대로 비교해봤다.

-마치 미국의 학교처럼 9월에 시작해 이듬해 5월에 마감하는 미국드라마.

굿와이프 시즌 1의 시작은 2009년 9월 22일. 에피소드 3화가 방영된 10월6일 다음날 CBS는 이 시리즈를 원래 계획했던 13 에피소드에서 23 에피소드로 연장하기로 결정한다. 즉, 시청율을 보고 결정한 것이다. 첫 시즌의 피날레에피소드는 2010년 5월25일에 방영됐다.

시즌 2를 만들 것인지는 2010년 1월14일에 결정됐다. 역시 좋은 반응에 CBS가 결정한 것이다. 5월에 방영이 끝나면서 잠시 여름휴가시즌을 갖고 시즌 2는 2010년 9월28일에 시작됐다. 23화로 구성된 시즌 2 피날레는 2011년 5월 17일에 방영됐다.

CBS는 2011년 5월 18일 시즌 3 계획을 발표하면서 그동안 화요일 밤 10시에 방영하던 것을 일요일 밤 9시로 옮겼다.
즉, 내가 알게 된 것을 정리하면,

미국드라마도 완전 사전제작시스템은 아니다. 드라마가 시작되는 9월말까지 보통 4~5편을 제작해놓고 시작한다. 그리고 첫 한달간의 시청율과 반응을 보고 연장여부(Full season pick-up)를 결정한다.
미국 지상파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즌은 마치 미국의 학교스케줄과 비슷하다. 9월말에 시작해서 5월중순이나 말에 끝난다. 여름동안은 쉰다. (배우, 스탭들도 여름휴가를 가져야하니까?)
-연장방영이 결정된 드라마 한 시즌은 보통 22~24화다. 이것이 대략 8개월에 걸쳐서 방영된다. 8개월은 34.7주다. 즉, 드라마가 방영되지 않고 넘어가는 주(hiatus)가 보통 10주가량은 된다.

주당 – 굿와이프 30분 vs. 최고의 사랑 2시간20분.

일주일에 1회만 방영하는 미국드라마는 한시간 슬롯의 경우 중간광고가 들어가기 때문에 실제 방영시간은 43분이다. 굿와이프의 경우 한 시즌이 23화기 때문에 43×23=989분. 즉, 한시즌 16시간반분량을 방영한다. 12월, 1월 등에는 방영을 띄엄띄엄하기 때문에 대략 32~34주간 23~24회를 방영한다. 즉, 평균해보면 방영기간동안 매주 방영분량은 30분이 조금 넘는 셈이다. 대략 5회정도의 사전제작분량을 만들어놓고 방영기간중 계속 촬영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는 양이다.

반면 한국드라마는 어떨까 ‘최고의 사랑’의 경우를 놓고 계산해봤다. 한국드라마의 각 회 분량은 70분. 첫 방영은 2011년 5월4일, 16화 종영은 6월23일이다. 전체 방영분량은 70분x16회=1120분. 즉, 전체 18시간반 분량을 방영한 셈이다. 방영기간동안 매주 2회씩 단 한번도 쉰 일이 없으므로 주간 방영시간은 2시간20분이다.

즉, 단순계산으로 사전제작을 하지 않았다면 굿와이프의 경우 평균 일주일에 30분분량을, 최고의 사랑의 경우는 일주일에 2시간20분분량을 촬영하고 편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일주일에 긴 영화 한편을 찍는 셈인데 이게 가능할까 싶다. 한국드라마 제작진은 다 수퍼맨인듯.

제작진-미국은 팀, 한국은 개인에 의존하는 편.

굿와이프의 Executive producer로 매회 에피소드가 끝날때마다 크레딧이 나오는 것은 리들리-토니스콧형제다. 그 유명한 영화감독형제다. 하지만 이들은 총지휘자, 제작프로덕션사장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세부 제작에는 관여하지 않는듯 싶다.

실제 굿와이프의 아이디어를 내고 드라마로 만들어낸 것은 로버트킹과 미쉘킹부부작가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처음에 드라마의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전체적인 얼개를 짠 경우다. “Created by”라고 크레딧에 표기된다. 하지만 이들 혼자서 드라마각본을 쓰는 것은 아니다. 대개 이런 Head writer 밑에 팀이 붙는다.

굿와이프의 경우 각 에피소드별로 나오는 독특한 법정케이스들을 보면 작가 한두명이 이런 소재를 발굴해 매주 각본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몇명의 작가들이 참여했는지 위키피디아의 에피소드리스트에서 일일이 세어봤다. 굿와이프 시즌 1의 경우 킹부부를 포함 12명이 참여했다. 킹부부가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것은 5번이다.

시즌1 의 연출자(감독)로는 16명정도 참여했다. 즉, 각 에피소드의 연출을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연출자는 누가 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지 이런 시스템운영이 놀랍다.

시즌 2 후반부터는 스토리작가들이 참여하고 킹부부는 Teleplay, 즉 각본을 쓴 것으로 나온다. 이처럼 미국드라마는 팀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실감했다.작가들이 공동으로 @goodwifewriters라는 트위터계정까지 운영할 정도다. 킹부부의 인터뷰에 따르면 각 에피소드의 각본은 대개 방영 2달전에 넘기는 것 같다.

물론 전체적인 스토리를 짜고 제작을 총지휘하는 것은 Head writer다. 미국의 드라마작가도 감독, 프로듀서보다도 더 강력한 귄력을 휘두르며 배우캐스팅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한다고 한다. 마음에 안드는 배우를 극중에서 비참하게 사라지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WSJ –TV작가의 복수(Revenge of the TV writers)참고)

반면 최고의 사랑의 경우 각본은 홍정은, 홍미란 소위 홍자매가 쓴 것으로 되어 있다. 다른 작가가 참여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감독(연출)의 경우도 박홍균, 이동윤 2명이다. 굿와이프에 비해 일주일에 4배가 넘는 양의 드라마를 생산하는데 정작 투입되는 연출자와 작가는 굿와이프의 10~20%밖에 되지 않는다.

아이디어발안에서 각본까지-한달간의 과정

CBS.com의 굿와이프코너에 작가들의 블로그코너가 있다. 어떻게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각본으로 만들어내는가에 대해 아래와 같은 상세한 설명이 나와있다.

Once you have the general idea, how do you proceed from there?
It takes a lot of minds noodling it over for a week or two. It’s a very collaborative process. We sit around a big table in a big room, surrounded by dry erase boards, and break the story. (“Breaking” is room terminology for taking an idea and splitting it into individual story points -“beats”- within our five-act structure.) Our writers’ assistants will do research, we’ll talk to our legal and political consultants, and we’ll start blue-skying (brainstorming in the most unstructured, free-form way about what scenes or character beats we’d like to see in the episode.) Gradually, a shape begins to form. Then it’s a matter of pitching it to the showrunners for approval. Once they sign off, the story is officially “off the board” – which means it’s out of the writers’ room and into the hands of the one writer assigned to that episode. That writer then shapes the beats into an outline, and the outline becomes the template for the script.

누군가 첫 아이디어의 씨앗을 가지고 들어오면 1~2주일정도 다같이 검토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것은 대단한 협업프로세스로 진행된다. 커다란 방의 화이트보드로 둘러싸인 커다란 테이블에 다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아이디어에 대해 작가의 조수들이 구체적인 리서치작업에 들어가고, 리걸-폴리티컬컨설턴트들에게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고 의견을 듣는다. 그런 다음에 Blue-skying작업에 들어간다. 블루스카잉은 각 장면과 캐릭터에 대해 아무 구속없이 자유롭게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서서히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그런 다음에 Showrunner에게 보여주고 승인을 얻는다. 일단 그들이 사인을 하면 스토리는 공식적으로 “off the board”상태가 된다. 즉, 작가들의 방을 떠나서 1명의 작가에게 맡겨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작가는 아웃라인을 잡고 스크립트를 만들어낸다.

How long does it take to write an episode?
From the initial idea to the shooting draft… usually about a month, although we’ve taken a lot more time and a lot less.

이같은 과정은 대개 아이디어발안단계에서부터 각본까지 한달정도가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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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홍자매 작품의 팬이다. 한국에 있을 때 마이걸과 환상의 커플을 아주 재미있게 봤다. 그래서 ‘최고의 사랑’이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기에 큰 기대를 하면서 거의 2년만에 한국드라마를 오랜만에 시청했다. 그런데 결과는 솔직히 실망이었다.

처음 몇화는 흥미롭게 봤다. 하지만 후반으로 넘어갈수록 뭔가 밀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갈등이 쉽게 해소되지 않고 질질 끄는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어 지난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이 과도하게 사용되거나 주변인물들의 지엽적인 에피소드가 필요이상으로 많이 나왔다. 뭔가 억지로 내용을 늘린다는 느낌이었다. 특히 마지막 몇회는 안해도 될 것을 일부러 16화에 맞추기 위해서 억지로 만들어 집어넣은 것 같았다.(소위 팬서비스?)

또 한가지 내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은 과도한 PPL의 등장이다. 시도때도 없이 등장하는 비타민워터…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너무 도가 지나치니 제품도 좋지 않게 보이고, 드라마의 질도 같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해외에 수출할 생각으로 만들었을 텐데 해외시청자들에게 한국내수용 제품의 PPL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물론 글로벌시장을 고려해 PPL을 한 경우도 드물게 있긴 하겠지만)

최고의 사랑에 열광하는 한국의 시청자와는 달리 내가 이렇게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게 된 것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호흡이 빠른 미국드라마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특히 왜 우리는 굿와이프처럼 밀도있는 치밀한 드라마를 만들기가 힘들까를 생각해 위와 같은 비교를 한번 해보았다. 해보고 나니 오히려 이해가 간다. 반대로 생각하면 한국의 드라마 제작진은 소수정예로 매주 미국드라마의 4~5배가 되는 분량을 만들어내야하는 열악한 상황에 있는데 오히려 이정도 품질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기적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장금이나 선덕여왕 같은 작품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하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좀 시스템을 바꿔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닐까? 무조건 노가다로 쥐어짜는 악순환에서 벗어나 이제는 좀 체계적으로 작가를 양성하고 스탭, 배우들에게도 좀 휴식시간을 주고 더 많은 배우들에게 기회를 주는 선진시스템으로 이행했으면 싶다.

그래야 우리의 한류콘텐츠가 천편일률적인 사랑놀음 스토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차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헐리웃과 대등한 경쟁을 펼치는 날을 기대한다.

난 주위 미국인, 이스라엘인들에게 항상 “한국은 아시아의 헐리웃”이라고 자랑한다.

Written by estima7

2011년 9월 25일 at 7:50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