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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토론을 잘해야 대통령이 될 수 있다-릭 페리의 웁스 모우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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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바마가 첫번째 임기를 시작한 바로 다음달인 2009년 2월에 미국 보스턴으로 건너가 5년간 살다가 귀국했다. 그 기간동안 오바마가 첫번째 임기를 수행하고 2011년말 대선에서 또 승리해 재임하는 것을 지켜봤다. 특히 2011년 1년동안 진행된 미국의 대선레이스를 지켜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미국대선은 뭐랄까 거대한 미디어 정치쇼다. 수많은 공화당후보들이 나와서 경선레이스를 거쳐서 현직 대통령에게 도전하는 과정자체가 하나의 박진감넘치는 TV쇼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특히 밋 롬니를 비롯한 공화당대선후보들이 초반에 경쟁하는 가장 치열한 무대가 후보합동토론회였다. 예선부터 본선까지 대통령이 되려면 끝도 없이 토론회를 거쳐야 한다.

나는 2011년 대선레이스중에 가장 유력한 공화당 후보중 하나였던 텍사스 주지사 릭 페리가 토론에서 실수를 해서 허망하게 탈락해 버린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없애겠다고 한 정부부처 3곳중 한 곳의 이름을 토론회에서 기억해내지 못해 망신을 당하고 사퇴해 버렸다. (조선일보 관련 기사 링크)

위 동영상을 보면 릭 페리는 자기 차례에서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다가 “내가 대통령이 되면 없앨 부처가 3군데 있다”며 상무부, 교육부까지 이야기하고 세번째 부처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옆에 서있는 론 폴 등 다른 후보들은 “5군데 아니냐” 등 농담을 던지며 놀렸고 토론을 진행하는 앵커는 “EPA(환경보호부처)냐? 아니냐? 기억을 못하는 것이냐?”라며 집요하게 추궁했다. 약 1분가까이 진땀을 빼던 릭 페리는 “미안하다. 기억을 못하겠다. 웁스”라고 사과했다.

그때까지 텍사스주지사로서 마초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보수파에게 높은 지지를 받고 있던 릭 페리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다음날 미국뉴스와 신문은 “Oops moment”라며 이 장면을 대대적으로 다뤘다. 나는 당시 사람이 긴장하다 보면 부처이름 하나 기억해내지 못할 수도 있는데 너무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진행자가 그냥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 TV뉴스에서는 “미국 대통령은 극도의 긴장상태에서도 나라를 이끌어야하는데 저런 능력으로는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나는 미국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머리도 좋아야 하지만 저런 상황을 넘어설 수 있는 담력도 아주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SNL 등 각종 코미디프로그램에서 릭 페리는 완전히 웃음거리가 됐다. 릭 페리는 텍사스 주지사직을 잘 수행하고 지난 1월에 퇴임했는데 당시에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을 것이다.

3번째 부처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릭 페리를 풍자한 이 SNL 에피소드를 보고 나는 당시에 포복절도했다. (영어의 압박이 있겠지만) 한번 꼭 보시라. 정말 재미있다.

오늘 아침 2008년 대선에서 존 매케인의 러닝메이트로 나왔다가 인터뷰와 토론에서의 엉뚱한 답변으로 인해 망신을 당하고 매케인의 패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라 페일린이 또 대선출마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를 읽고 릭 페리의 에피소드가 생각나 가볍게 적어봤다.

당시 어떤 뉴스에서 한 80세쯤 되어 보이는 백인 할머니가 “토론을 잘 못하는 후보는 대통령이 될 자질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는 장면을 본 것이 내 뇌리에 깊게 남아있다. 우리도 다음부터는 꼭 토론 잘하는 대통령을 뽑았으면 한다.

Written by estima7

2015년 1월 25일 at 5:44 오후

미국 대선 토론을 보고 놀란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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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 사이 미국에서는 두차례의 대선 TV토론이 있었다. 현직 대통령인 오바마와 그에 도전하는 공화당 후보 롬니의 1차 토론과 부통령인 조 바이든과 도전자 폴 라이언의 토론이 그것이다. 첫번째 토론에서 롬니의 예상외 승리로 오바마의 우세에서 전세가 다시 박빙이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 대선 TV토론에 별 관심이 없었던 나는 미국의 대선 토론을 보며 세가지 점에서 놀랐다.

첫째, 국민과 언론의 높은 관심이다. 1차 토론회가 열리기 훨씬 전부터 언론은 지난 대선 토론의 중요 장면들을 보여주며 분위기를 띄웠다. 양쪽 진영이 토론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토론회의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는지를 보도하며 국민들의 관심을 환기했다. 대선 TV토론 자체는 <에이비시>(ABC), <엔비시>(NBC) 등 메이저 채널을 비롯해 <폭스>, <시엔엔>(CNN) 등 케이블 채널까지 무려 11개 TV 채널에서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그 결과 닐슨의 조사에 따르면 6700만명이 넘는 미국인이 집에서 TV로 1차 대선 토론을 시청해 대선 TV토론 역사상 32년 만에 최고의 시청률이 나왔다. 모든 채널의 프로그램을 통틀어 올 2월 열렸던 미식축구대회결승전인 수퍼볼 다음으로 시청율이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바에서 스포츠경기를 관전하듯 토론중계를 보는 미국인들.(NYT사진)

마치 스포츠 경기를 관전하듯 삼삼오오 바에 모여 한잔씩 하며 토론을 시청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1차 대선토론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관련트윗이 발생했는지를 분석한 그래프(출처:트위터)

둘째는 소셜미디어의 가공할 영향력이다. 1차 대선 토론이 벌어진 90분 동안 토론과 관련해 1000만개가 넘는 트위터 메시지가 쏟아졌다. 유력정치인부터 일반국민에 이르기까지 토론을 지켜보며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쏟아낸 것이다. 이는 1분당 평균 11만개의 메시지가 쏟아진 것이며, 주목을 끄는 발언이 나올 때면 분당 15만개까지 메시지 수가 늘어나기도 했다. 사람들은 토론을 시청하며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자신과 연결된 사람들과 즉각 의견을 나눴다. 나도 미국인 친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트위터와 스마트폰이 막 성장하기 시작한 4년 전의 대선에서 조금씩 나타나던 현상이 이젠 일반대중에게까지 확산된 것이다. 그 결과 한밤중에 열리는 토론회의 승패를 다음날 아침 조간을 받아보기도 전에 트위터를 통해 즉각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NYT홈페이지 캡처. 위에 동영상을 보여주며 아래에는 자동으로 스크롤되는 토론내용 대본과 함께 오른쪽에 Fact check글을 연결해놓았다.

셋째는 팩트체크, 즉 사실확인에 대한 언론의 노력이다. 미국 언론들은 토론회에서 후보들이 사실에 입각한 정확한 발언을 하는지 검증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뉴욕 타임스>는 토론회 직전까지 20명의 기자를 투입해 76개의 팩트체킹 보고서를 미리 작성해 놓았다. 즉, 감세정책, 실업률, 재정적자 등에 대해 예상되는 토론과 관련 수치를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실시간으로 블로그를 통해 후보의 발언이 정확한지를 검증·해설했다. 그리고 토론이 끝난 뒤 90분간의 토론 전체 대본과 동영상을 누리집(홈페이지)에 올리고 검증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해설기사를 조목조목 게시했다. 이런 현미경 같은 검증공세 속에서 후보자는 정확하고 구체적인 토론을 하기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모습을 보며 동문서답에다 모호한 답을 해도 대충 넘어가며 제대로 된 토론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던 우리의 지난 대선 TV토론이 떠올랐다. 미국처럼 여론의 엄청난 관심이 집중되고 제대로 준비가 된 티브이토론회가 열린다면 우리의 대선 후보들도 더욱 열심히 준비하고 진지한 자세로 임하지 않을까?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리더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후보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대선 토론에 아무리 큰 관심을 기울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온 국민이 면접관이 돼서 월드컵을 시청하듯 열심히 대선 토론을 지켜보고 함께 토론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10월16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렸던 칼럼입니다.)

Written by estima7

2012년 10월 16일 at 8:26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