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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이 터질 때 주의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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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거품이 걷히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른다. 미국의 벤처 투자금액은 지난해 1309억 달러, 약 150조원이 넘을 정도로 크게 늘어났다. 기업 가치가 1조 2000억원이 넘는 비상장 회사를 뜻하는 유니콘 스타트업도 전 세계에서 거의 400개, 미국에서만 200개 정도가 나왔다. 닷컴 거품이 최고조였던 2000년을 능가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유니콘 스타트업들이 거품 붕괴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 NYT

우선 전 세계에서 공유 오피스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위워크가 논란의 주인공이다. 애덤 뉴먼이 2010년 뉴욕에서 창업한 위워크는 소프트뱅크가 투자하면서 기업 가치가 47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한국에 오면 시가총액이 SK하이닉스와 맞먹는 엄청난 기업 가치다. 그런데 창업자 애덤 뉴먼의 방만한 경영과 조 단위 적자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결국 애덤은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고 위워크는 일단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위워크의 기업 가치는 3분의1로 떨어졌다. 이미 상장에 성공한 우버나 리프트, 슬랙 같은 유니콘 스타트업들의 주가도 하향곡선을 그리면서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거기다가 최근 제조업 지수 하락 등 미국 경제의 불황 가능성이 더해지면서 테크 거품 붕괴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있다.

이런 뉴스에 지금부터 19년 전인 2000년 중반을 떠올렸다. 당시 내가 유학으로 실리콘밸리에 인접한 버클리에 갔을 때다. 입학허가서를 받고 갔을 때만 해도 실리콘밸리는 뜨거웠다. 테크 기업에서 쉽게 일자리를 얻고 큰 돈을 번 사람들의 이야기가 회자됐다.

UC버클리 하스 경영대학원

그런데 내가 거품이 터졌다고 느낀 첫 징조는 가을에 터졌다. 다음해 섬머인턴 채용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하루 전날 시스코시스템스가 모두 취소했다. 이어서 다른 회사들도 채용 인터뷰를 줄줄이 취소했다. 실리콘밸리의 IT회사에서 섬머인턴 기회를 잡을 기회가 없어졌다.

그리고 펫츠닷컴, 웹밴 등 닷컴 회사들이 본격적으로 파산하기 시작했다. 신선식품을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집에까지 30분 안에 배달해 준다고 했던 웹밴은 당시 무려 4억 달러 이상을 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받았다. 그리고 상장에 성공해 기업 가치가 48억 달러에 달하기도 했다. 요즘의 유니콘이다. 하지만 8억 달러가 넘는 적자를 기록하며 2001년 파산해 버렸다. 한때 3500명에 이르렀던 직원들은 모두 일자리를 잃었다.

9ㆍ11 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경제상황은 더 엄중해졌다.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고속도로에는 차가 줄어 교통체증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친하게 지내던 동네 아저씨 칼은 “실리콘밸리의 오만함이 터져 버렸다. 실리콘밸리는 다시 재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내게 했다. 2002년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벤처기업의 상당수는 사기였다는 생각을 했다.

2002년 당시 이런 봉투를 주고 받으며 넷플릭스에서 DVD를 빌려봤다.

그런데 내가 당시에 전혀 못 본 것이 있었다. 새로운 기회를 포착해 성장하는 회사들이다. 우선 구글이 있었다. 당시 야후 대신 구글로 검색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검색만으로 어떻게 돈을 벌지?” 하는 생각에 나를 포함해 구글의 성장 가능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다. 또 당시 우편으로 DVD 영화를 보내 주는 넷플릭스라는 서비스가 있었다. 유학 시절 무척 편리하게 이용했다. 내가 졸업하던 2002년 5월 이 회사가 나스닥에 상장됐는데 그때는 전혀 몰랐다. 9ㆍ11 테러가 터진 다음달인 2001년 10월에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을 처음 발표했다. 당시는 테러의 충격이 가라앉지않아서 아이팟이란 제품이 나왔는지 전혀 몰랐다. 한참 지나서야 그때 그런 참신한 제품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장에 돈이 넘치면 잘나간다는 소문이 난 회사에 유행처럼 돈이 몰리며 거품이 생긴다. 일부 창업자들은 오만함과 허영심에 사로잡힌다. 지나치게 부풀어 오른 거품은 당연히 터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세상은 계속 변화한다. 기술의 진보와 사회의 변화에 맞춰서 새로운 기회를 노리고 도전하는 창업가들은 계속 나온다. 그리고 그런 창업가들이 결국 세상을 또 바꾼다. 내가 끝났다고 생각하고 떠난 암흑기의 실리콘밸리에서 구글, 넷플릭스가 탄생했고, 애플이 다시 재기했고, 모두 수백조의 기업 가치를 가진 공룡이 됐다.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치게 번성하면 기울게 돼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그런 사이클이 또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항상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아 성장하는 창업가들이 있다. 거품이 빠지는 과정에서 오히려 옥석이 가려진다. 터지는 거품만을 보고 이면의 진짜 변화와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자. 거품이 터질 때는 오히려 진짜를 만날 수 있는 기회다.

***

2019년 10월 6일 서울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여담인데 2002년 5월 넷플릭스가 상장할 때 주식을 1천불어치라도 사두고 묻어놨으면 지금 1억원 가까이 됐을 것 같습니다…

Written by estima7

2019년 10월 12일 at 9:43 오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