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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와 실리콘밸리에서 온 두 자매 : 황진이, 레베카 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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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여기저기서 알게된 멋진 인연들이 있다. 200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만난 레베카 황이나 2015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 레베카의 언니 황진이님 같은 분들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타지에 이민을 갔지만 한국인으로서 자기가 있는 곳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멋진 분들이다. 이런 분들이 한국에 올 때 스얼에 모셔서 더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내 큰 보람중의 하나다. 오늘 테헤란로런치클럽은 이 두 자매를 모셔서 이야기를 들었다.

우선 6살 때 아르헨티나로 이민간 레베카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성장한 레베카는 대학공부를 위해 MIT로 갔다.

많은 똑똑한 수재들이 그렇듯 레베카도 골드만삭스 같은 월가 엘리트회사에 입사해 평탄한 인생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무엇에 끌렸는지 인도에 가서 일을 해볼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저개발국가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문제를 해결하는 창업가의 길을 걷게 된다.

에콰도르 같은 라틴아메리카 저개발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워터필터 등을 개발해 보급하기도 하고 많은 경험을 하면서 레베카는 스탠포드로 옮겨서 박사과정을 밟게 된다. 그러다가 유누들이라는 회사를 창업해 창업가의 길로 나서게 된다. 지금은 동료에게 유누들의 CEO자리를 물려주고 리빗 벤처스, 카레이벤처스를 통해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레베카는 본인의 이런 인생역정 이야기를 지난해 TED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레베카는 마지막 슬라이드에서 얼룩말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Contrarian의 길을 이야기한다.

남들을 따라 똑같은 길을 택하는 사람보다 뭔가 반대로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면서 그의 언니인 황진이가 그런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황진이님이 등장했다. 좀 튀는 이름이다. 진이님은 한국말로 발표했다.

황진이님은 한국계로서는 최초로 아르헨티나에서 방송 앵커가 된 사람이다.

당시의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설명해줬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르헨티나에서는 앵커가 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앵커교육학원까지 있다고 한다. 경쟁률도 엄청나다. 그런데 진이님은 아무 것도 모르고 그냥 앵커에 지원했다. 그리고 나서 이게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같이 지원한 아르헨티나인들은 너무도 잘나고 잘생긴 사람들 투성이였다.

나 같으면 포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진이님은 반대로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다들 아르헨티나인들만 지원한다면 아시아인인 내가 오히려 심사위원들에게는 튀어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인들은 이태리계, 스페인계, 독일계가 대부분이다.) 즉, 따분해 하는 심사위원들에게 오히려 내가 자극이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도전했고 합격했다.

그렇게 앵커로서 7년을 일했다. 하지만 인맥이 없는 한국계로서 한계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미국 NYU로 유학을 가서 법학을 공부하고 현지에서 일을 하다가 돌아왔다.

계속 무엇을 할까 고민을 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조금씩 한국에 대한 관심이 올라오고 있었다. 방송에서 한국에 대한 소개프로그램을 하고 싶었지만 시간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그때 유튜브가 뜨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3년전에 유튜버로 시작을 해보기로 했다.

방송인이 왜 그런 것을 하냐며 돈이 되겠냐며 주위에서 걱정도 하고 많이 말렸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K팝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한글을 배우고 싶어하는 라티노들이 많지만 그것을 스페인어로 잘 가르쳐주는 유튜브채널은 없었다. 진이님은 한글도 가르치고 한국문화도 알리고 한국화장술 등도 가르쳐주는 동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본인은 꽤 화장도 잘하는데 이것도 앵커로서 일할 때 배웠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방송국에서 일할 때 방송국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다른 아르헨티나인들은 화장을 손봐주겠지만 진이님은 경험해본 일이 없는 아시안이라 화장을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가 직접 방송 메이크업을 하게 됐고 그게 지금 유튜브채널을 운영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3년전에 시작했는데 열심히 한 결과 지금은 지니채널이 70만명의 구독자를 가진 스페인어 한류채널 1위라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했다. 지금 라틴아메리카의 한류열풍이 정말 대단하고 그래서 자신도 정말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튜버가 된 다음에 성격도 더 적극적으로 바뀐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4년전에 뵈었을 때보다 휠씬 더 밝고 적극적으로 바뀐 것 같다.)

두 자매가 같이 질문을 받다가…

진이님은 갑자기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라틴아메리카의 팬들을 소환했다. 불과 2~3분 짧은 라이브에 라틴아메리카 전역의 팬 3백여명이 화답했다.

오늘 찾아주신 약 70명의 청중들은 이 에너지 넘치는 두 자매와 열심히 인사를 나누고 돌아갔다. 여기서 또 맺어진 인연을 통해서 라틴아메리카와 한국사이에 또 어떤 멋진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멋진 친구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기분 좋았던 하루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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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9일 at 11: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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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세 노모와 아들의 사진을 통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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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없이 봤다가 감동한 TED 강연. 캐나다의 화가이자 사진가인 토니 루치아니의 테드x캠브리지 강연이다. 13분30초분량. 강추하는 내용이다.

그는 몇년전 91세된 노모와 함께 토론토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이탈리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13세때 결혼하고 캐나다로 이민와서 정착한 그의 어머니는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공장에서 다양한 이민자들을 감독하기 위해서 다양한 언어를 공부할 정도로 열정이 있고 호기심 넘치는 어머니는 91세의 나이에도 유머감각이 있고 활달하다.

그림을 그리던 아들은 카메라를 사서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카메라에 우연히 잡힌 어머니의 모습에 영감을 얻어 어머니의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어머니와 대화를 시작하고 어머니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된다.

유머러스한 어머니의 사진도 많이 보인다. 어머니는 카메라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과감하다. 심지어 어머니에게 카메라를 선물했더니 열심히 좋은 사진을 많이 찍었다.

청중들도 몰입해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데 어머니가 이제는 치매가 심해져서 같이 살지 못하고 아들 집 근처의 요양원으로 옮겼다. 그는 이틀에 한번씩 어머니를 찾는다. 어머니는 이제 아들의 이름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얼굴은 기억한다. 아들을 보면 항상 웃는다. 아들은 어머니를 천천히 떠나보내고 싶다. 아버지부터 그와 가까왔던 많은 사람들과 갑자기 이별한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토니 루치아니의 절제되고 호소력있는 본인의 이야기에, 각 대목마다 적절하게 보여주는 멋진 사진들이 심금을 울린다. 최근에 공개된 동영상이라 한글 자막은 아직 없는데 어렵지 않은 영어이니 한번 보시길 추천한다. TED동영상 링크는 여기.

Written by estima7

2019년 2월 5일 at 5: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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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스시장인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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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추천이 나와서 아무 생각없이 봤다가 살짝 감동한 동영상. 뉴욕 맨하탄에 있는 Sushi Noz의 쉐프 아베 노조무씨의 하루를 버즈피드 테이스티가 10분짜리 동영상으로 소개했다. 스시 장인의 하루다. 아래와 같은 루틴으로 반복된다.

오전 9시반 : 출근. 보통 집에서 8시반에 일어나서 9시반쯤 가게에 도착한다.
오전 10시 : 일본에서 날아온 생선이 도착한다. 거의 도쿄의 도요쓰수산시장에 주문해서 받는다. 항상 설레이는 마음으로 받는다.
오전 11시 : 스시 준비를 위해 생선손질을 시작한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부터 이어온 에도마에 방식인데 생선과 대화하듯 상태를 파악하고 정성을 들인다.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서 생선을 손질하고 숙성시킨다. 이 작업은 보통 3~4시까지 이어진다.
오후 3시 : 잠시 쉬면서 보통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주방에 앉아서 먹는다.
오후 3시30분 : 칼 갈기 작업을 한다. 보통 5개의 칼을 쓰는데 일주일에 2~3번정도 칼을 간다.
오후 4시 : 메뉴를 정한다. 화이트보드에 그날의 생선의 상태 등을 생각해서 메뉴를 정해 적어둔다.
오후 4시30분 : 레스토랑을 잘 정돈한다. 손님들에게 최고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홀내부의 장식물까지 모두 깔끔하게 배치한다.
오후 5시 : 고객이 오는 것에 맞춰 카운터를 준비한다. 식자재 등을 정리해 둔다.
오후 5시45분 : 스탭미팅을 가지고 모두 다 잘 준비되었는지 점검한다. 우리는 팀으로 일한다.
오후 5시 55분 : 손님들이 입장한다. 6시부터 2시간반동안 1차로 8명을 받는다.
오후 6시 : 저녁식사 서빙 시작. 2시간 반뒤 잠시 브레이크를 갖는다.
오후 9시 : 2차 저녁식사 서빙을 시작한다.
오후 11시30분 : 마지막 손님이 떠난다.
자정 12시 : 청소를 시작해서 1시쯤 끝낸다.
새벽 1시 : 내일을 위한 생선을 주문한다. 토요쓰수산시장에 있는 거래처와 새벽 1시반까지 통화한다. (도쿄는 오후 3시반)
새벽 1시반 : 귀가에 나서 2시쯤 집에 도착한다. 식사하고 취침.

다 보고 나서 “아, 정말 이 사람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데도 불평하지 않고 그렇게 한다.

스시 노즈가 어떤 곳인가 더 찾아봤다. 홈페이지도 아주 잘 만들어져 있다.

사진 출처 : Sushi Noz홈페이지.

홋카이도에서 공수해서 만든 200년된 히노키로 만든 히노키카운터룸이다. 8석. 1인당 300불이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열고 일요일은 쉰다. 6시, 9시 예약이 가능하다. 메뉴는 완전히 오마카세다. 쉐프가 정해주는데로 먹는 것이고 따로 주문은 받지 않는다. 미쉐린 원스타 식당이다. 가만 보니 식사라기보다 2시간반동안의 스시장인의 퍼포먼스를 보는 ‘스시 극장’이라는 느낌도 든다.

사진 출처 : Sushi Noz홈페이지.

무척 젊어보이는 노조무씨는 스시경력이 20년이라고 한다. 홋카이도출신으로 올해 36세쯤 되는 것 같다. 삿포로에서 스시견습생으로 일하다가 도쿄로 이주해 에도마에스타일 스시를 배웠다. 2007년 자신의 가게를 열겠다는 꿈을 가지고 뉴욕으로 이주했고 3년간 유명한 스시덴이란 식당에서 일했다. 그리고 자신의 식당을 열었다.

너무 당연한 일이겠지만 자신의 스시를 먹고 좋아하는 손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 가장 기쁜 일이라고 한다.

검색해보니 그가 어떻게 스시를 준비하는지 조금 더 자세히 보여주는 동영상도 있다. 한시간동안 문어다리를 주무르며 부드럽게 손질하는 모습이나 최상의 온도상태를 맞추기 위해 특별 제작한 냉장고를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어쨌든 어떤 분야이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고 그만큼의 열정과 노력을 다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상적으로 봐서 메모해 둔다.

Written by estima7

2019년 2월 2일 at 11:10 오전

SBS 비디오머그 내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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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김수형 기자의 추천으로 생애 처음으로 내레이션(해설)을 맡아보는 경험을 하게 됐다. 비디오머그 스마트시티편과 디지털헬스케어편이다. 유럽 네델란드, 핀란드와 미국 보스턴 등의 현지취재를 통해 4차산업혁명의 현장을 담은 내용이다.

이런 크로마키 배경이 있는 스튜디오에서 대본 낭독과 약간의 촬영을 약 1시간동안했다. 솔직히 익숙하지 않아서 쉽지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가 위처럼 나왔다. 얼굴에 포토샵으로 엄청 보정을 해주신 것 같다. 실제보다 휠씬 젊어보이게 나온 것 같다. 하지만 역시 어색하다… 그래도 기념으로 블로그에 해당 동영상을 아래와 같이 기록해둔다. SBS, 감사합니다!


스마트시티는 똑똑한 미래형 첨단도시입니다. 도시 인프라가 하나로 연결돼 버튼 하나만 누르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21년을 목표로 부산시와 세종시에 각각 스마트시티를 조성할 예정입니다. 삶의 질을 끌어올리고 행복도를 올려줄 중요한 프로젝트입니다. 비디오머그는 이미 스마트시티 건설에 착수한 핀란드와 네덜란드를 직접 방문했는데요. 비머가 엿본 도시의 미래, 지금 함께 보시죠. 영화에서나 보던 미래 도시를 여러분께 ‘진짜’로 보여드립니다 / 비디오머그

비디오머그는 인류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세계 유수의 의과대학을 방문해 그곳의 연구자들을 직접 취재했습니다. 이들은 과연 어떤 연구를 하고 있을까요? 비머가 엿본 의료 혁명의 현장, 지금 함께 보시죠. 신에 도전하는 인간의 무기… ‘디지털 헬스케어’ / 비디오머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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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9일 at 7:05 오후

초등학생 장래희망 5위가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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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12위. 내가 어릴 적에는 과학자가 1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유튜버의 인기는 매년 더 올라갈 것 같다. 향후 몇년안에 1위가 될 수도 있다. 이제 방송에 맞는 최고의 인재들은 방송국에 가지 않고 유튜버가 되는 시대다. (요즘에는 방송국 사람들도 여유시간에 유튜브에 동영상을 만들어서 업로드한다고 한다. 그래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며…)

Written by estima7

2018년 12월 13일 at 10:47 오후

이메일실명제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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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힐 교수. 출처 조선일보.

지난주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에 실린 기사중 린다 힐 하버드대 경영대학원교수의 인터뷰기사가 와닿았다. 그중에 특히 아랫 부분.

―천재적인 조직을 만드는 데 성공한 리더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경험이 적거나 젊은 직원의 의견도 무시하지 말고, 직원들이 의견을 말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치약과 세제 등 생활용품을 만드는 미국 콜게이트 파몰리브(Colgate Palmolive)는 S&P500에 포함된 상장사 중 주가 상승률이 가장 높은 그룹에 속합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제너럴일렉트릭(GE)보다 자본력이나 영업이익률 등이 더 높은 회사입니다. 특이하게도 콜게이트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배려’인데, 누구든지 아이디어를 내놓도록 배려하고 합리적인 실패를 용인합니다. 2007년 퇴임한 콜게이트의 장수 CEO인 루벤 마크는 ‘리더로서 경영자가 할 일은 직원들의 좋은 아이디어를 이끌어내고 이를 상용화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십여년 전 인터넷이 막 보급되던 때 제가 경영학 수업을 듣는 학생에게 ‘인터넷 시대에는 어떤 기업이 뜰까요?’라고 물었습니다. 한 학생이 이베이를 추천해주더군요. 제 눈에는 수익 모델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작은 신생 기업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당시 제 상식으로 이베이는 연구 대상이 될 만한 기업이 아니었지만, 인터넷 문화에 더 친숙한 학생의 눈에는 달랐던 겁니다.”

***

꼭 천재적인 조직까지 가지 않더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빠르게 실행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처럼 다양한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평등하게 경청하고 실행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서 18년전의 내 경험이 떠올라 소개해 본다.

98년초 나는 조선일보 경제과학부기자로 일하다가 사장실로 발령이 났다. 회사의 경영전략 등을 실행하는 부서였는데 내가 막내였다. 인터넷 등에 밝다고 해서 그렇게 발령이 난 것이었다.

가서 보니 사장실에는 당시 김문순실장부터 다들 나보다 휠씬 연배가 높은 훌륭한 선배들이 있었다. 기자생활 3년을 마치고 경영쪽으로 막 옮긴 나로서는 어떻게 일해야 할지 좀 막연하고 걱정도 됐다. 처음에는 그냥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시키는 일을 했다.

그런데 매주 주간회의에서 김실장은 실원 한명 한명에게 잘하고 있느냐고 확인했다. 그리고 뭔가 아이디어가 있으면 내보라고 했다. 막내인 나에게까지 항상 “뭐 없냐”고 물어봤다.

매번 그렇게 물어보시니 뭔가 아이디어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시에 인터넷을 열심히 쓰며 전세계인과 주고 받을 수 있는 통신수단인 이메일에 특히 매료된 상태였다. 경제과학부기자시절이던 96년 4월에는 미국 USA투데이 부사장과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한 일도 있었다. (이메일인터뷰는 아마 한국언론 최초였을 것이다.) 그런 경험을 통해 나는 기자들이 독자들에게 이메일을 통해서 의견이나 제보를 받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보도자료도 이메일을 통해서 받으면 편리할 것이다. 기사로 쓰려고 팩스로 받은 보도자료를 가방에 하나 가득 넣어가지고 다니는 것이 무척 불편하기도 했다.

그래서 기사의 기자이름에 이메일주소를 같이 붙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주간회의시간에 용감하게 그 아이디어를 내놨다. 그런데 신문지면에까지 이메일을 쓰자는 것은 좀 급진적인 것 같아 인터넷기사에만 이메일주소를 붙이자고 했다.

당시는 지금처럼 이메일이 일반화되어 있지 않은 시대였다. 인터넷조차 안써본 사람이 많았다. 선배기자들중에는 이메일을 쓸 줄 모르는 사람도 많았고 아예 이메일주소를 발급받지도 않은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이메일주소를 모든 기자이름에 붙이자는 것은 파격적인 아이디어였다. 실장이 그 자리에서 “그게 무슨 필요가 있냐”며 묵살했어도 사실 아무 불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그거 좋은 아이디어다”라고 받아주셨다. 그리고 밀어주셨다.

사장실이 내놓은 아이디어에 편집국장은 반대했다. “뉴욕타임즈도, 아사히신문도 안하는 것을 왜 우리가 먼저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사실 그때 모든 기사에 기자이메일주소를 집어넣은 언론은 내가 알기로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IT관련기사 정도에 제한적으로 독자제보를 위한 이메일주소를 공개했을 뿐이다.

그런데 사장실장은 내 아이디어를 지지하고 밀어주셨다. 사장을 설득하고 편집국장을 설득해냈다. 방상훈사장은 한술 더 떴다. 아예 신문지면에도 이메일주소를 모두 표기하자고 했다.

나는 신이 났다. 편집국기자들의 절반정도는 이메일주소가 없었는데 내가 한명 한명 연락해서 직접 발급했다. 일주일만에 편집국 전원의 이메일주소가 발급되고 나서 98년 4월24일 1면 사고를 통해서 ‘이메일 실명제’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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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실시하고 보니 당시에는 사람들이 이메일을 많이 쓰지 않던 시기라 기대만큼 이메일이 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사에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지적하는 이메일이 반드시 날라와 좀 언짢아 하는 선배들도 있었다.

하지만 독자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이런 채널을 오픈했다는 사실은 회사의 이미지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모두 신선한 시도라고 생각했다. 독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그러자 경쟁지가 불과 일주일만에 우리를 따라서 기자이름뒤에 이메일주소를 붙이기 시작했다. 몇달이 지나자 심지어는 공중파방송뉴스도 모두 이메일주소를 쓰기 시작했다.

그 여세를 몰아 기자들을 소개하는 홈페이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아이디어를 또 냈다. 독자들이 기자들을 친근하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편집국’이라는 기자 소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편집국 모든 기자들의 사진과 프로필을 올린 미니 홈페이지였다. 좋은 편집기가 없던 시절이라 내가 직접 FTP로 HTML파일에 직접 들어가서 내용을 편집하고 직접 찍은 기자들의 사진을 올렸다. 역시 좋은 반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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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한국언론의 전향적인 변화에 주목한 일본신문 특파원들이 와서 나를 인터뷰해갔다. 결과적으로 내 사진이 처음 신문지면에 등장한 것은 조선일보가 아니고 산케이신문이었다. (아사히와 마이니치신문에도 내 인터뷰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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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반응이 있었다는 것을 자랑할 겸 기사로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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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이라 아주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초년병이었던 내가 정말 신이 나서 일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김문순사장실장이 주간 회의에서 모든 실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어주었기 때문에 그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애송이 어린 직원의 설익은 아이디어도 무시하지 않고 믿고 밀어주었기 때문에 더 신이 나서 일할 수 있었다.

린다 힐 교수의 “경험이 적거나 젊은 직원의 의견도 무시하지 말고, 직원들이 의견을 말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접하고 18년전 내 경험이 떠올라 장황하게 적어봤다.  솔직히 나는 그때 김실장처럼 경청의 리더십을 실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내가 간부가 되고 나서야 그때 김실장의 리더십의 가치를 깨닫게 됐다. 자주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항상 마음속으로 감사하고 있다.

Written by estima7

2016년 5월 6일 at 9:43 오후

한글날 가볼만한 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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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기념포스팅. 지난 월요일 개관 일주년 기념으로 새로운 전시기획물을 선보인 국립한글박물관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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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전시물의 이름은 ‘디지털 세상의 새 이름_코드명 D55C AE00‘. 개인적으로 전시명이 너무 어려운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한글이 컴퓨터와 만나서 어떻게 자리를 잡게 됐는지 그 역사를 보여준다. 한글날 한번 가볼만한 곳이라고 생각해서 찍어둔 사진 몇장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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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획을 소개하면서 김상헌 한글박물관 후원회장은 레고로 만든 훈민정음해례본 등 흥미로운 전시물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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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시절 내가 컴퓨터에 처음 관심을 갖게 만든 제품. 삼보컴퓨터에서 만든 트라이젬 컴퓨터. 애플II의 클론제품이다. 이 제품을 가지고 컴퓨터를 가르치는 입문강좌를 들으러 여의도 삼보컴퓨터본사까지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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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컴퓨터를 배우고 싶다고 조르자 어머니가 어디 컴퓨터학원을 찾아서 등록해주셨다. 그곳에서는 삼성의 SPC-1000을 가지고 BASIC언어를 배웠다. 카세트테이프에 작성한 코드를 저장하던 기억이 새롭다. HU-Basic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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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가서 IBM-XT호환기종을 사고 나서는 보석글에 의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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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아래한글 워드프로세서를 만난뒤 신세계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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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DOS환경에서 한글을 쓰기위해 벼라별 노력을 다했다. 그 중 하나가 도깨비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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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S에서 한글을 소프트웨어적으로 구현해주기도 했고 보다 빠른 속도로 쓰려면 도깨비한글카드를 사서 끼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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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형한글이 얼마나 우리를 괴롭게 했는지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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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년사이에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마다 애용하는 우아한 형제들이 만든 한나체도 전시되어 있다.

전시물을 돌아보고 옛날 생각을 하면서 지금 컴퓨터환경이 얼마나 좋아진 것인지 다시 실감했다.

어쨌든 국립한글박물관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바로 옆에 있다. 관람료는 무료이니 시간되시는 분들은 한번 가보시길.

Written by estima7

2015년 10월 9일 at 11:02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