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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감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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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나오는 두 정상의 다정한 모습. NSA스캔들은 메르켈총리의 오바마에 대한 신뢰에 금을 가게 했다.(출처:구글이미지검색)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나오는 두 정상의 다정한 모습. NSA스캔들은 메르켈총리의 오바마에 대한 신뢰에 금을 가게 했다.(출처:구글이미지검색)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미국의 정보기관이 그동안 독일·프랑스·멕시코 같은 우방국 정상의 휴대전화와 이메일을 도청해 왔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 화가 난 우방국 정상들을 달래느라 오바마가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 연일 뉴스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혹자는 “모든 나라의 정보기관들은 어차피 서로 도청전쟁을 벌이는 것 아닌가. 서로 알면서도 쉬쉬하던 공공연한 비밀이었을 뿐이다. 흥분할 필요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저런 도청-감시 전쟁은 고위 인사나 유명인들의 이야기지 나 같은 보통 사람과는 관계없는 딴 세상 이야기라고 치부한다. 누가 할 일 없이 나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전화통화나 이메일을 감시하겠는가.

그렇지 않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스마트폰과 빅데이터 기술은 이제 사람들의 사생활 속으로 그 활동 영역을 침범해 들어가고 있다. 기계가 모든 사람을 감시하고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초감시사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찍히고 분석당하고 있다.

NCR Restaurant Guard라는 소프트웨어 소개문구. 레스토랑전산시스템의 Add-on으로 제공되는 것 같다. 시스템에 기록되는 종업원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감시해 의심되는 건이 있으면 경보를 울린다.

NCR Restaurant Guard라는 소프트웨어 소개문구. 레스토랑전산시스템의 Add-on으로 제공되는 것 같다. 시스템에 기록되는 종업원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감시해 의심되는 건이 있으면 경보를 울린다.

 얼마 전 흥미로운 기사를 접했다. 미국의 인기 체인레스토랑 약 400곳에 종업원들의 행동을 감시하는 소프트웨어가 시범 설치됐다. 미국의 외식업체들한테는 종업원의 절도행위가 큰 골칫거리다. 음식계산서에 보통 15~20%로 추가로 주는 팁은 종업원의 몫이기 때문에 더 많은 팁을 받기 위해서 음식이나 음료를 공짜로 제공하거나 현금을 일부 빼돌리는 행위가 많다는 것이다. 이익률이 2~5%밖에 되지 않는 외식업종에서 종업원 절도로 인한 손실이 전체 매출의 1%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고 일일이 몰래카메라를 식당 곳곳에 설치하고 종업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주문시스템에 추가 설치되는 이 소프트웨어는 식당 안에서 일어나는 음식 주문, 계산, 쿠폰 사용 등 모든 행위를 분석한 뒤 일상적이지 않은 의심스러운 경우가 감지되면 매니저에게 경보를 보낸다.

 이 소프트웨어가 설치된 뒤의 변화가 놀랍다. 설치 전과 비교해서 이 400곳 레스토랑의 매출이 평균 7% 올랐다는 것이다.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종업원들이 편법으로 돈을 조금 더 벌기보다는 고객에게 더 음식을 주문하도록 유도해 팁을 더 받는 쪽을 택한 것이다. 감시당하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더 정직하게 행동하게 된 것이다.

Awareness Technologies라는 회사의 Interguard MobileMoniter라는 소프트웨어. 이 제품은 회사직원의 스마트폰에 심어져 전화, 이메일, 문자등을 회사가 모두 모니터할 수 있게 해준다. 블랙베리, 안드로이드폰에서만 된다고.

Awareness Technologies라는 회사의 Interguard MobileMoniter라는 소프트웨어. 이 제품은 회사직원의 스마트폰에 심어져 전화, 이메일, 문자등을 회사가 모두 모니터할 수 있게 해준다. 블랙베리, 안드로이드폰에서만 된다고.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에는 이런 기사도 나왔다. 버지니아주의 한 해충제거회사의 임원은 외근직원들이 근무시간 중에 개인적인 일을 많이 본다는 의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그는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지급한 스마트폰에 위치추적 소프트웨어를 몰래 설치했다. 그 결과 한 직원이 지나치게 특정 주소에 자주 드나든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추궁한 결과 근무시간에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 직원은 바로 해고됐다. 이후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개인 용무를 봐야 할 일이 생겼을 때는 회사로 연락해 미리 양해를 구하게 됐다며 관리자들은 흡족해한다.

 우리는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 내 카톡메시지, 이메일, 전화통화는 누군가 항상 보고 듣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컴퓨터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탈을 실시간으로 잡아낸다. 젊은 날 한번의 실수도 인터넷 검색으로 평생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세상이다. 그야말로 사생활이란 없는 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일년 365일 24시간 나의 사생활은 낱낱이 감시당하고 있다고 체념하자.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사는 것이 곧 다가올 새로운 미래를 대비하는 삶의 지혜라고 해야 할 듯싶다.

***

지난주에 실린 한겨레 생각의 단편 칼럼.

예전에 “모든 것을 다 찍는 경찰의 소형비디오카메라-엑손 플렉스“라는 글을 쓴 일이 있다. 그 내용은 미국 리알토시 경찰이 법집행과정을 엑손 플렉스라는 비디오카메라가 장착된 선글래스를 통해 녹화하기 시작하면서 경찰과 시민이 보다 “얌전하게” 행동하게 됐다는 것이다. 비디오카메라를 통한 감시가 사람들의 행동을 바꿨다는 것이다.

위 칼럼은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쓴 것이다. 특히 NCR의 레스토랑가드 같은 소프트웨어가 식당종업원들의 행동을 분석하면서 부정행위를 실시간으로 잡아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섬뜩하다. 컴퓨터가 사람을 감시하는 세상으로 돌입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NSA스캔들은 이런 초감시사회가 정말로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엄청난 컴퓨팅파워, 촘촘히 전세계가 연결된 인터넷망, 스마트폰의 보급, 빅데이터기술의 발전 등이 이런 초감시사회를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11월 3일자 NYT 일요판에 실린 NSA에 대한 심층보도기사(No Morsel Too Minuscule for All-Consuming N.S.A.)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Today’s N.S.A. is the Amazon of intelligence agencies, as different from the 1950s agency as that online behemoth is from a mom-and-pop bookstore. It sucks the contents from fiber-optic cables, sits on telephone switches and Internet hubs, digitally burglarizes laptops and plants bugs on smartphones around the globe.

오늘날의 NSA는 정보기관들의 아마존이라고 할 수 있다. NSA와 50년대 정보기관의 차이는 마치 온라인공룡 아마존과 동네 구멍가게 서점의 차이만큼 다르다. NSA는 광케이블에서 콘텐츠를 빨아들이고, 전화교환기와 인터넷허브위에 앉아있고, 랩탑컴퓨터를 디지털하게 강도질하고, 전세계의 스마트폰을 감청한다.

예전에는 정보를 아무리 많이 모아도 분석할 사람이 없으면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을 컴퓨터가 해준다. 인공지능, 빅데이터기술을 이용해서 사람보다도 휠씬 빠르고 영리하게. 우리는 정말 무서운 세상에 돌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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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3일 at 9:25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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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베리, 노키아 그리고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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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베리의 경영위기에 대해서 보도하는 캐나다의 CBC방송화면.

블랙베리의 경영위기에 대해서 보도하는 캐나다의 CBC방송화면.

블랙베리라는 스마트폰이 있다. 한국에서는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캐나다의 블랙베리라는 회사가 만든 스마트폰의 원조 격인 제품이다. 전화에 컴퓨터 자판 같은 작은 물리적 키보드를 붙여서 이메일을 주고받기 편리하게 만든 점이 강점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해 아이폰이 등장한 뒤에도 몇년간 북미 스마트폰 시장의 절반가량을 점유했을 정도로 한때 세상을 호령했다. 전성기 블랙베리의 기업가치는 약 80조원에 이르는 등 ‘캐나다의 자존심’이란 이야기까지 들을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이 회사의 가파른 추락이 화제다. 블랙베리는 지난 분기에 약 1조원의 손실을 내고 곧 전체 직원의 40%인 4500명을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아이폰의 등장 이후 급격한 시장의 변화와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창업자들을 포함한 경영진의 몇 가지 전략적 실수까지 이어지면서 불과 몇년 만에 북미 시장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이 1% 안팎으로까지 떨어지는 굴욕을 맛보며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참고 : 블랙베리의 몰락-업데이트(에스티마블로그))

블랙베리의 본사는 캐나다의 최대 도시 토론토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인구 약 10만의 소도시 워털루라는 곳에 있다. 이 거대기업의 몰락이 이 지역 경제에 끼칠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뉴스를 검색해봤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다른 내용이 나왔다. 캐나다의 <시비시>(CBC) 방송 보도를 보면, 워털루는 오히려 수많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기반으로 삼아 혁신의 중심지로 재탄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고 : 워털루의 불확실한 미래 CBC보도) 브렌다 핼로랜 시장은 “이 지역의 탄탄하게 성장하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블랙베리에서 나온 인력들을) 충분히 흡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희망 섞인 보도이기는 했지만 캐나다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릴 만큼 관련 인재와 스타트업이 워털루에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다 싶었다.

예전 세계 휴대폰시장을 호령했던 노키아가 있는 핀란드도 마찬가지다. 노키아의 몰락이 꼭 핀란드의 경제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핀란드가 앵그리버드로 유명한 로비오로 대표되는 워낙 탄탄한 벤처커뮤니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기울면서 해고된 노키아의 고급인력들이 시작한 스타트업이 400여개이고, 특히 최고 인재들이 더는 노키아만 바라보지 않으면서 벤처업계에 인재가 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참고: 왜 노키아의 몰락이 핀란드의 스타트업들에게 좋은 뉴스인가 WSJ블로그)

한국을 보자. 캐나다와 핀란드의 자존심 격인 기업들이 몰락한 마당에 세계적으로 승승장구하며 애플과 한판승부를 펼치고 있는 삼성전자를 가진 우리 국민은 행복해야 할 것 같다. 분기 영업이익이 10조원을 돌파한 삼성전자는 한국의 국보급 회사다. 마땅히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소위 ‘삼성고시’에 매년 10만명이 지원한다는 것이나 삼성전자로 인해 우리 경제가 실제보다 잘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가 있다는 최근 보도를 접하고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취업을 바라는 한국의 수많은 인재들을 비롯해 나라 전체가 한 기업에 너무 심하게 의존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참고:  ‘삼성 고시’ 후유증…삼성 “채용 방식 변화 고민중”(한겨레), 삼성전자에 가려진 경제 위기…’착시효과’ 우려(SBS보도))

삼성전자가 영원히 잘나간다는 보장은 없다. 기업은 잘될 때가 있으면 안될 때도 있다. 노키아와 블랙베리의 예에서 보듯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호황을 누리던 기업도 순식간에 운명이 바뀔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상황은 삼성전자가 기침을 하면 나라가 독감에 걸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삼성 의존적이다.

핀란드나 캐나다처럼 대기업들이 위기를 맞을 때 탄력 있게 경제를 받쳐줄 스타트업 생태계가 한국에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스타트업들을 키워내는 데 정부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의 지원도 필요하다. 이들이 장차 삼성전자의 우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2013년 10월 7일자 한겨레신문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 칼럼으로 기고한 글.

맨마지막에 “삼성전자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쓴 것은 삼성전자가 실리콘밸리에 쏟고 있는 관심과 정성에 비하면 한국의 스타트업커뮤니티에는 조금 소홀한 것이 아닌가 해서이다. (내가 과문해서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삼성은 1조2천억원짜리 펀드를 조성해 미국의 초기단계 스타트업에 투자하기로 했고 팔로알토에 오픈이노베이션센터라는 스타트업액셀러레이터도 열었다. IT의 메이저리그격인 실리콘밸리에서의 입지를 강화하는데 이처럼 큰 투자를 하는데는 전혀 이의가 없다.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핀란드나 캐나다의 예처럼 대기업이 어려울 때 대신 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스타트업커뮤니티를 한국에 키우는데도 삼성이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하는 생각에서 칼럼마무리를 이렇게 해봤다.

Written by estima7

2013년 10월 8일 at 3:54 pm

적국 정상의 글도 실어주는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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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기고문이 실린 9월12일자 NYT Op-ed면.

푸틴의 기고문이 실린 9월12일자 NYT Op-ed면.

지난주 <뉴욕 타임스>는 백악관과 미국 의회를 발칵 뒤집어놓는 글을 실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기고문을 게재한 것이다. 이 글에서 푸틴은 “점점 많은 세계인들이 미국을 민주주의 모델이 아닌 폭력에만 의존하는 국가로 여긴다”고 썼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시리아 공격 계획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 비유하면 한국의 대표 신문이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한국 비판 글을 받아서 실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푸틴이 글에서 주장하는 내용의 정당성은 차치하고라도 나는 이처럼 다양한 인물의 다양한 견해를 과감히 수용해 게재하는 뉴욕타임스의 편집 방침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사설과 칼럼이 실리는 지면을 미국 신문에서는 옵에드(Op-Ed)면이라고 한다. 푸틴의 기고문이 실린 옵에드면을 의견-사설면(Opinion-Edtorial)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여기서 옵에드는 ‘사설의 반대’(Opposite-Editorial)의 약자다. 논설위원들이 무기명으로 작성하는 신문사의 공식적인 주장인 사설과 대치되는 의견이라는 뜻이다. 1970년에 처음 등장한 뉴욕타임스 옵에드면은 회사 외부인들의 뉴욕타임스와는 다른 의견을 소개하고자 만들어졌다.

이런 외부인의 다양한 시각을 담은 글은 뉴욕타임스의 지면을 차별화한다. 그리고 간간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는 글이 나온다.

2012년 골드만삭스의 간부였던 그레그 스미스는 ‘왜 나는 골드만삭스를 떠나는가라는 기고문으로 월스트리트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글이 뉴욕타임스에 실리는 날 새벽에 보스에게 사직 이메일을 보낸 그는 작심하고 직접 경험한 탐욕스러운 골드만삭스의 문화에 대해서 기고문을 통해 조목조목 고발했다. 골드만삭스의 주가는 그날 3.4% 하락하고 이후 월스트리트의 탐욕에 대한 보도가 잇따랐다.

2011년에는 억만장자 워런 버핏이 ‘슈퍼리치 감싸기를 멈추라’라는 글을 기고해 자신의 소득세율이 자기 직원들의 그것보다 훨씬 낮다고 고백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부자들이 솔선수범해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정치권부터 언론까지 광범위한 토론이 이어졌다.

얼마 전에는 유명 할리우드 배우인 앤절리나 졸리가 ‘나의 의료 선택’이라는 글을 기고해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졸리가 유방암 예방 차원에서 이중 유방절제술을 받은 사실을 용기 있게 밝히면서 세계적으로 유방암의 위험에 처한 여성들에게 조명이 집중된 것이다.

이런 글들은 뉴욕타임스에 실린 뒤 텔레비전·신문·라디오·SNS에 후속 보도와 토론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에게 ‘생각해볼 거리’를 던진다. 꼭 뉴욕타임스 독자가 아니더라도 웬만하면 내용을 알게 될 만큼 파급효과가 엄청나다.

뉴욕타임스는 매주 수천통씩 들어오는 기고문을 모두 읽어보고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 대부분은 거절되지만 채택하기로 결정된 글의 경우에는 면밀한 사실확인과 편집을 거쳐 작성자 본인의 동의를 받은 뒤에 발표된다. 이런 글들은 뉴욕타임스 사설과 유명 칼럼니스트의 글과 나란히 게재된다.

유명인사라고, 외국의 정상이라고 우대해서 글을 실어주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시의성이 있고 색다른 시각을 제공해 논쟁을 유발할 수 있는 좋은 글이어야 한다. 푸틴의 기고는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시의적절하게 들어왔으며 논쟁점을 잘 부각한 좋은 글이었기 때문에 게재했다는 것이다.

갈수록 당파성이 심해지는 한국의 신문에서 신문사의 논조와 배치되는 시각을 담은 외부 기고자의 글을 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됐다. 회사 논조와 다르더라도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겸허히 경청해 소개하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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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7일자 한겨레지면에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 칼럼으로 기고한 내용.

이번 칼럼차례에서는 유독 마지막까지 어떤 내용을 써야할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곤혹스러웠다. 꼭 데드라인이 닥쳐야 글을 쓰는 평생의 버릇 때문에 일요일을 소비한다. (한달에 한번씩 일요일오후가 데드라인이다.)

그러다가 NYT 목요일자에 실려 화제가 된 푸틴의 기고문을 떠올렸다. 안그래도 오바마와 푸틴이 서로 사이가 안좋아 불편하고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됐고, 시리아사태에 있어서도 양국이 완전히 상반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데 오바마의 앙숙과도 같은 푸틴의 글을 과감히 받아서 실은 NYT의 편집이 신기했다. 특히 진보적이며 항상 오바마의 정책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NYT 아닌가.

그리고 떠올려보니 ‘왜 나는 골드만삭스를 떠나는가'(그레그 스미스), ‘수퍼리치 감싸기를 멈추라'(워런 버핏), ‘나의 의료선택'(앤절리나 졸리) 같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NYT Op-ed면 기고문들이 생각났다. 당시에 얼마나 화제가 됐는지 내 기억에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글들이다. NYT에 실린 날, 이 내용을 미국의 거의 모든 언론이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래서 이 내용을 가지고 칼럼을 쓰기로 하고 Op-ed면의 역사에 대해서 몇개의 글을 읽고 공부했다. 위키피디아의 Op-ed소개 항목 외에도 NYT의 Op-ed에 대한 자세한 소개글 ‘And Now a Word From Op-Ed‘, 푸틴의 글이 실리게 된 경위를 소개한 NYT 퍼블릭에디터의 글 ‘The Story Behind the Putin Op-Ed Article in The Times’ 등을 참고했다.

다만 좀 쫓겨서 쓴 탓에 글이 나가고 나서 몇가지 비판을 받았다.

우선 제목을 ‘적국 정상의 글도 실어주는 신문’으로 한 점. 러시아가 미국의 라이벌국가이긴 하지만 적국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며 많은 부분에서 미국의 외교정책과 러시아의 외교정책이 대척점에 있고 특히 푸틴과 오바마의 사이가 나쁘다는 점에서 좀 강력하게 제목을 써봤다. (미국 뉴스에서 푸틴을 “Foe”라고 지칭하는 것을 들은 일도 있다.) 그리고 사실 좋은 제목 아이디어가 없어서 급하게 붙이고 한겨레에 보냈는데 수정 않고 그대로 내보내주셨다. 그래서 문제제기성 코맨트를 여러번 받았다. 내가 좀 경솔했다.

두번째로 Opposite-Editorial의 Opposite를 ‘반대’로 번역했는데 ‘반대편’이 조금 더 적절할 뻔 했다. 사실 ‘반대’와 ‘반대편'(다른쪽)의 두가지 의미가 혼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NYT를 너무 미화한 것 같아서 찜찜하기도 했다. 짧은 분량 탓에 충분히 설명할 수가 없었는데 미국신문들도 자신들의 성향에 따라 입맛에 맞는 외부기고를 받는 경향이 물론 있다. WSJ 같은 경우 보수적이고 항상 오바마를 비판하는 칼럼으로 가득하다. NYT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번 푸틴 칼럼의 경우처럼 전혀 의외의 인물의 다양한 시각을 담은 글을 게재하는 경우가 NYT는 많은 편이다. 그래서 소개하고 싶었다.

영어적인 표현이 많아서 문장이 부자연스럽다는 지적도 받았다. 미국에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은 것 같고, 또 퇴고를 소홀히 한 탓이기도 하다.

어쨌든 한겨레 지면을 포함해서 너무 한쪽의 정치적인 주장만 넘쳐나는 글이 가득찬 한국신문의 오피니언면은 좀 피곤하다. (나만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세상을 좀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생각거리, 논쟁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글들이 실리는 오피니언면을 바라는 마음에서 좀 주제넘은 글을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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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7일 at 4:3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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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세습, 창업의 세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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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en Shot 2013-08-27 at 10.40.46 PM

지난달 고급 스피커로 유명한 ‘보스 코퍼레이션’의 창업자 아마르 보스 박사의 부고기사를 접하고 블로그에 글을 쓴 일이 있다.

원래 그런 인물이 있는지도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의 생애에는 남다른 점이 많이 있었다. 그는 미국으로 망명한 인도 독립운동가의 아들이다. 1950년대 엠아이티(MIT) 학생일 때 쓰던 오디오 스피커의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 좋은 스피커를 만드는 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64년 아예 보스를 창업한다. 이후 그는 거의 반세기에 걸쳐 보스를 2조8000억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세계적인 회사로 키워냈다. 하지만 회사를 끝까지 주식시장에 상장하지 않고 비공개로 가져갔다. 단기수익을 요구하는 월가의 압력을 받지 않고 장기적인 비전이 있는 연구개발을 추진하려면 기업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엠비에이(MBA)가 이끄는 회사에 있었다면 100번은 잘렸을 겁니다”라는 그의 말은 그런 의미에서 여운을 남긴다. 그는 또 회사를 경영하는 것과 동시에 평생 엠아이티 교수로 후학을 기르는 데 전념했으며 83살로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에는 보스의 주식 등 몇 조 단위가 될 대부분의 재산을 엠아이티에 기부했다.

국내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은 이런 그의 생애에 대해서 글을 쓰자 놀라울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내 개인 블로그인데도 거의 2만에 가까운 조회수를 올린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보스 박사의 생애에 감동한 듯싶었다. 그리고 어떤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보다 그런 부를 축적하고도 자식에게는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고, 아들도 자기 이름으로 따로 회사를 창업해서 성공했다는 것에 감탄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에 모 재벌 방계 회사의 총무부서에 다니는 지인의 푸념을 들은 일이 있다. 해외유학까지 하고 왔는데 기껏 자신이 하는 일은 오너 가족의 먹고사는 일을 챙기는 것이 대부분이란 이야기였다. 오너의 친인척에게 돌아갈 이권사업을 문제가 안 되는 한에서 찾아서 챙겨주는 것이 그의 업무였다.

한국의 수많은 재벌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에서도 1세대 기업인들은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는 궁리를 한다. 자식들은 어떻게 하면 부모의 회사에서 떡고물을 더 얻어먹을 수 있을까를 궁리한다.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더라도 처음부터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모회사의 우산 속에서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을 궁리한다. 외부 투자를 받기보다는 부모 회사의 쌈짓돈을 가져다 회사를 만들고 부를 증식한다. 위험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한국식 부의 세습 문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샌드라 커치그와 앤디 커치그 모녀는 2대에 걸친 창업정신에 대해 스탠포드대학에서 같이 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샌드라 커치그와 앤디 커치그 모녀는 2대에 걸친 창업정신에 대해 스탠포드대학에서 같이 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올해 4월 미국 산호세에서 열린 실리콘밸리의 성공 비밀에 대한 토론회를 본 일이 있다. 그 행사에 토론자로 참석한 원로 여성기업인 샌드라 커치그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아기 엄마로서 방 한구석에서 소프트웨어 벤처를 시작한 커치그는 나중에 회사를 성공시켜 거액에 대기업에 매각하는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이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창업에 도전하고 있으며, 장성한 두 아들도 각각 회사를 창업해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돈을 댄 것이 아니고 선배 창업가로서 조언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대를 잇는 왕성한 창업정신이 실리콘밸리가 진정으로 번성하는 비결이라는 얘기를 했다. ‘창업의 세습’인 것이다.

창조경제는 단순히 돈을 많이 풀고 창업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정책지원과 돈줄이 없어지면 다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구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창업은 문화가 되어야 한다. ‘부의 세습’이 아니라 ‘창업의 세습’을 자랑스러워하는 문화로 말이다. 한국 부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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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8월27일자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으로 실린 내용입니다.

Written by estima7

2013년 8월 27일 at 10:48 pm

생각의 단편에 게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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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은 독서의 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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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지하철 내부 모습. 좌석 한칸에 앉은 승객 전원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광경이 드물지 않다.

서울의 지하철 내부 모습. 좌석 한칸에 앉은 승객 전원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광경이 드물지 않다.

일년에 한두번씩 한국에 출장을 올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이 있다. 갈수록 심화되는 사람들의 스마트폰 중독 현상이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공공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 화면에 몰입해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무엇을 하는지 자세히 보면 대부분 게임을 즐기거나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사람도 많다. 이렇다 보니 공공장소에서 책이나 신문을 읽는 사람은 이제 희귀동물처럼 느껴지는 세상이 됐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분들을 만났다. 사상 최악이라고 한다. 소위 출판계의 대형 악재라는 올림픽·대통령선거가 겹친 지난해에도 최악이라고 그랬다. 그런데 그때보다도 더 책이 안 팔린다는 것이다. 어떤 책이든 도대체 초판 이상을 찍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는 통계조사로도 뒷받침된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올해 1분기 신간도서 발행량은 모두 1만8450종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13.2% 감소했다. 가구당 서적구입비도 처음으로 2만원대가 무너져 1만9000원이 됐다.

 이처럼 스마트폰을 필두로 한 기술의 진보는 출판업계를 죽이는가? 스마트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더는 책을 읽지 않게 되었나.

 미국의 예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종이책 판매는 줄고 있지만 전자책과 오디오북의 성장으로 미국의 전체 출판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북스탯의 조사를 보면 지난해 미국의 상업출판시장은 전년 대비 6.9% 성장했다. 줄어든 종이책 판매를 메꾼 것은 전년 대비 44% 늘어나 미국 출판시장의 20%를 점유하게 된 전자책의 성장이었다. 또 흥미로운 점은 책을 성우가 읽어주는 오디오북시장이 최근 몇년간 매년 두자릿수씩 급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오디오북을 쉽게 내려받아서 들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디오북은 예전에는 바빠서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던 사람들을 새로운 독자로 끌어들이고 있다. 이들은 운전하면서 혹은 운동하면서 책을 ‘듣는다’. 스마트폰은 이처럼 사람들이 책을 소비하는 방법을 변화시키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책을 바로 사서 볼 수 있는 아이북스스토어(US), 오른쪽은 오디오북을 사두었다가 언제든지 들을 수 있는 Audible app.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책을 바로 사서 볼 수 있는 아이북스스토어(US), 오른쪽은 오디오북을 사두었다가 언제든지 들을 수 있는 Audible app.

 이런 생각을 하면서 60대 여성인 미국의 지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열렬한 독서가인 그분에게 나는 6년 전 당시 처음 나온 아마존의 전자책 리더기인 킨들을 선물했다. 이후 그분은 아이폰·아이패드까지 첨단기기를 모두 구입해 애용하고 있다. 나는 그분에게 “킨들 이후 독서습관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하다”고 썼다. 그러자 캘리포니아에 살다가 지금은 프랑스 파리에서 일하고 있는 그분에게 이런 답이 왔다.

 “킨들 이후 나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책을 사고 읽게 됐습니다. 새로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책을 언제 어디서나 즉시 사서 읽을 수 있다는 ‘즉시성’을 너무 사랑하게 된 것이죠. 지금 나는 파리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지하철을 매일 이용하는데 항상 어디서나 읽을 수 있는 다양한 책을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이 큰 기쁨입니다. 문제는 책 욕심에 다 읽지도 못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책을 구입하게 됐다는 것이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디지털기기가 출판업계에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르네상스를 가져다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위기는 기회다. 좋은 책을 전자책으로 적극적으로 내고 구입하기 편하게 만들면 이런 진성 독자들과 더욱 강하게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 아닐까. 많은 한국의 독서가들은 “읽고 싶은 책이 전자책으로 나오지 않아 불편하다”고 말한다. 출판업계의 혁신과 분발을 기대한다.

***

2013년 8월 6일자 한겨레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으로 기고한 글. 한국에 올때마다 온 국민이 더욱더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모습이 걱정이 되서 한번 써봤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을 달고 사는지라 이런 지적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고백하면 책에 호기심만 있지 사실 많이 읽지도 못한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정말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문명의 이기인데 대부분이 게임, 메신저, TV보기에만 열중하는 모습은 좀 지나친 것 같다. 더구나 사람들이 계속 메신저에 답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뉴스조차도 아주 짧은 호흡으로 휙휙 넘겨보는 습관이 정착된 것 같다. 긴 글을 정독하는 습관이 사라져가는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생부터 다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모습도 지나치다.

그 결과로 신문, 잡지, 책 등 종이매체가 퇴조하는 것은 일견 당연한 트랜드로 보인다. 요즘은 일부 유행을 탄 책을 제외하고 1만부 이상이 판매된 책이 극히 드물고 아무리 좋은 책도 1쇄 이상 찍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출판계분들에게 많이 들었다. 책에 대한 호기심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비약하면 “스마트폰이 온 국민의 우민화를 진행하고 있는가”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어쨌든 미국에서도 종이책의 판매감소와 오프라인서점의 퇴조가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지만 전체 출판시장 자체는 불황은 아니라는 점을 칼럼에서 소개하고 싶었다. 오디오북 덕분에 독서의 저변인구가 늘고 있다는 얘기도 있고, 위에 소개한 분처럼 오히려 종이책시대보다 더 많은 책을 소비하는 독서가들도 많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라는 걸출한 인물이 2007년도 킨들을 내놓으며 전자책시장을 그야말로 새로 만들어냈다. 아마존의 막강한 힘으로 출판사들이 전자책을 모두 내도록 단기간내에 유도해냈으며 구매하고 읽기 편한 구매프로세스와 전자책 리더(와 소프트웨어)를 내놓아 전자책사용경험이 없는 독서가들을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냈다. (그렇기 때문에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한 그가 신문업계에 어떤 변화를 끌어낼지 더욱 궁금하다.)

우리나라에도 출판업계를 구하기 위해서 이런 강력한 게임체인저가 등장했으면 싶다. 지금 한국의 출판계와 미디어는 스마트폰이 자신들을 죽인다고 불평만 할 뿐, 과감하게 전자책을 종이책과 동시에 내고 독자입장에서 진정 쓰기 편한 플렛홈을 만드는 노력은 부족해 보인다. (물론 아주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람들이 좋은 콘텐츠에 지갑을 여는데 인색한 점도 아쉽다. 결국 이러다가 2009년 아이폰이 처음 상륙했을 때처럼 아마존, 애플, 구글 같은 외세(?)의 힘으로 또 한번 떠밀려서 변화를 겪을지도 모르겠다.

Written by estima7

2013년 8월 9일 at 6:02 pm

고인 이름이 없는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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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별생각 없이 지나치던 것에 외국 생활을 하면서 다른 점을 발견하고 문화의 차이를 느끼는 일이 있다. 신문 부고와 전기에 관한 문화를 보며 한국과 미국 사회의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느꼈다.

일반적인 한국신문의 부고란.

일반적인 한국신문의 부고란.

부고는 “어떤 사람의 죽음을 연고자에게 알리는 것이나 그러한 글”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부음’, ‘궂긴소식’(<한겨레>)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한국 신문 부고란의 대부분은 천편일률적인 형식을 따른다. “김○○ ××기업 전무 부친상=○○일 ○○시 ○○병원, 발인 ○○일 ○○시 전화번호”의 형식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부고 기사인데 정작 고인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한겨레>는 예외적으로 고인 이름을 적는다.) 고인이 현직에 있는 사람이거나 과거에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가 있었던 사람이 아니면 그냥 자식들의 이름 다음에 ‘부친상’, ‘장인상’ 같은 식으로 처리된다. 특히 평범한 주부로 평생을 살아온 분의 경우는 거의 예외 없이 고인의 이름 없이 ‘모친상’ 아니면 ‘장모상’, ‘조모상’으로 나온다. 자식들의 이름만 직업이나 직함과 함께 열거된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듯 지나치던 이런 부고란의 문제점을 알아챈 것은 미국 신문의 부고란을 읽게 되면서부터다. 여기서 부고의 주인공은 고인이다. 그 자손들이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From NYT obituaries.

From NYT obituaries.

 “로다 레인버그. 82. 루이스의 부인. 리사와 데이비드의 엄마. 벤저민, 리오라, 시라의 할머니. 그녀는 따스하고 온화한 영혼, 낙천적인 성격, 유머, 호기심, 강건함, 세상을 따뜻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처럼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부고의 목적이다. 더 긴 부고 글에는 고인의 인생 역정을 간결하게 소개한다. 자손들은 이름만 나올 뿐, 직업이나 직함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주인공은 고인이다. 부고란을 읽는 재미도 있다. 사랑이 느껴진다.

우리 동네 반스앤노블의 전기서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전기-자서전이 활발하게 출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동네 반스앤노블의 전기서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전기-자서전이 활발하게 출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에 와서 신기하게 느낀 것이 전기 장르의 인기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전기를 어릴 때나 읽는 위인전 같은 고리타분한 책으로 여겼다. 그런데 미국에서 전기나 자서전은 정치인, 기업인, 과학자, 예술인, 언론인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에 대해 끊임없이 신간이 쏟아져 나오고 읽히는 인기 장르다. 스티브 잡스 전기처럼 밀리언셀러인 전기가 많다. 서점에 가면 전기만 진열한 큰 서가가 따로 있고 평생 전기만을 쓰는 전업 작가들이 많다. 이런 전기들은 한 인물의 삶을 단순히 미화하기보다는 그 시대 상황을 세밀히 묘사하면서 공과 과를 균형있게 서술해 독자가 한 인물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2006년 상원의원이던 오바마가 시카고교외의 한 공공도서관 포스터를 위해 Team of rivals 책을 읽는 모습을 포즈를 취했다.

2006년 상원의원이던 오바마가 시카고교외의 한 공공도서관 포스터를 위해 Team of rivals 책을 읽는 모습을 포즈를 취했다.

왜 이렇게 전기가 인기가 있을까? 전기를 탐독하는 한 지인은 내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역사책은 딱딱해서 읽기가 어려운 데 반해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의 전기를 읽으면 그 사람의 생애를 통해 흥미롭게 역사를 배울 수 있다.” 역사는 반복되고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런 의미에서 옛 인물의 생애를 따라가 보는 것은 독자에게 지혜와 용기를 준다는 것이다. 전기를 통해 일종의 멘토를 찾게 되는 것이다. 10여년간 링컨을 연구한 역사학자 도리스 컨스 굿윈은 2005년 <권력의 조건>(원제 Team of Rivals)이라는 링컨 전기를 펴냈다. 이 책은 스테디셀러가 됐고 2009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오바마에게 큰 영감을 줬다. 그는 이 책에서 라이벌을 끌어안는 링컨의 리더십에 자극받아 힐러리를 국무장관으로 영입했다.

이런 서구의 문화에 비해 우리는 사람의 인생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한국의 부고도 마치 문상 올 사람을 모집하는 것 같은 형식을 버리고 이처럼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형식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 * *

7월16일자 한겨레신문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칼럼으로 기고한 내용.

집에서 구독하는 NYT의 Obituaries란을 보다가 문득 한국신문의 부고란과 비교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찾아봤는데 (내 기억처럼) 역시 (한겨레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문부고란은 망자의 이름이 빠진채로 나와있었다. 그래서 저번에 블로그에 “한국신문의 부고, 미국신문의 부고“라는 글을 올렸고 이번에 한겨레칼럼으로 다시 써봤다.

사실은 18년전 신문사 사회부 신참기자로 일할때 부고란을 작성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아무 생각없이 팩스로 전달되어 온 부고게재요청을 형식에 맞게 적은 다음 전화번호가 맞는지 직접 걸어서 확인하고 신문에 실었다. “왜 망자의 이름은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은 못했다. 내 조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러던 것이 문화가 다른 나라에 가서 살게되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칼럼을 쓰고 나서 우연히 이 문제를 10년전에 지적했던 “신문 부고란엔 망자가 없다”라는 제목의 미디어오늘 기사(2003년게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런 부고문화를 풍자한 김승희시인의 ‘한국식 죽음’이란 시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출처:꿈마이, 책에 빠지다 블로그

출처:꿈마이, 책에 빠지다 블로그

더불어 이 시가 지적한 내용을 가지고 쓴 블로그글 “그런데 누가 죽었다고? … 김승희「한국식 죽음」“도 읽어보고 생각해볼 만한 글이다.

죽은 자의 신분은 자식의 지위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조문을 가는 사람들은 망자를 애도하기보다 산 자를 보고 돈을 내고, 산 자를 위해 식장에 좀 머물며 국밥을 먹을 뿐이다.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에 대한 정보로 가득한 부고란은 산 자들을 위해 죽음마저도 이용하려 드는 우리네 일그러진 장례 문화의 단면이다. 부고란은 죽은 자를 두 번 죽이고 있다.

우리 장례문화에 대한 이런 지적은 정말 뼈아프다. 어쨌든 이런 시, 기사가 나온지 10년이 지났는데도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또 아쉽기만 하다.

* * *

칼럼의 후반부분에서 이야기한 미국의 전기문화는 올초 트루먼전기를 읽고 받은 감상이다. 유명한 전기작가인 데이빗 맥컬로라는 사람에 관심이 있어서 (해리 트루먼대통령에 대해서는 일절 관심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읽어봤는데 총 1120페이지짜리 긴 책을 너무나 흥미롭게 읽었다. (참고: 일주일 걸려 쓴 책, 10년 걸려 쓴 책) 그리고 “전기라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거”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그리고 보니 미국에는 스티브 잡스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아인슈타인, 벤자민 프랭클린),  도리스 컨스 굿윈 등 기라성 같은 전기작가들이 많이 있고 정말 수많은 전기가 매달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처럼 전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독자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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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뉴욕에 잠깐 출장을 갔는데 엄청나게 더운 날 30대초반쯤 되어 보이는 한 백인여성이 머리에는 얼음주머니를 엊은 채로 집안에 있는 잡동사니를 끌어다 길에 놓고 모두 $1라며 팔고 있다. 내 눈길은 끈 것은 무지 두꺼운 워싱턴 전기였다. 3년전쯤 나온 책이다. 당시 나는 “아니 세상에 워싱턴이면 우리나라의 세종대왕, 이순신장군 급의 위인인데 어떻게 또 새로 전기가 나오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전기는 모든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책이다. 본문만 822페이지다. 어쨌든 백만년쯤 뒤에 읽게 되겠지만 책 욕심에 이 책을 집어들고 1달러를 건냈다. 그러자 그 여성이 빙긋 웃으며 “He’s my hero!”라고 한마디한다. 이런 독자들이 있기 때문에 전기가 계속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Written by estima7

2013년 7월 19일 at 12:34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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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에 모인 NYT신문광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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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keyad

지난 6월 초 집에 배달되어 온 <뉴욕 타임스>를 읽다가 ‘터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전면광고를 만났다. 당시 거세게 벌어지고 있던 터키 시민들의 반정부 시위에 대해 미국인들이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광고였다. 최루가스를 뿜어내는 최루탄 그림과 함께 “우리는 이대로 억압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터키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쓰여 있었다. 어떤 단체가 이런 광고를 냈는지 궁금해서 살펴봤더니 “전세계의 뜻있는 개인들이 크라우드펀딩을 해서 모았다”고 적혀 있었다. 놀랍기는 했지만 예전에 가수 김장훈이 <뉴욕 타임스>에 독도 광고를 게재하는 것을 지원했던 것처럼 어떤 돈 많은 독지가가 이 광고비 대부분을 냈겠지 생각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지난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했다가 발표자인 인디고고의 슬라바 루빈 사장의 이야기를 통해 이 신문광고가 실리게 된 과정을 듣게 되었다. 인디고고는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프로젝트 계획을 인터넷사이트에 올리고 그 소요자금을 다수의 개인으로부터 소규모 후원이나 투자 형식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크라우드펀딩 회사다.

지난 5월 말 미국 뉴욕의 터키인 3명은 터키에서 조용히 시작된 시민들의 시위를 터키 정부가 거세게 진압하는 것을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접하고 자신들도 뭔가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터키의 조부모에게 연락했다가 이 뉴스의 보도를 외면하는 터키 언론 탓에 그들이 지금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이들은 <뉴욕 타임스>에 광고를 내는 방법으로 터키의 상황에 대해서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기술업계에서 일하는 그들은 트위터와 크라우드펀딩 웹사이트를 이용하면 필요한 광고비용을 효과적으로 모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뉴욕 타임스>에 연락해 그들은 전면광고비를 대폭 할인된 5만2천달러로 협상해냈고 모금을 촉구하는 내용을 인디고고에 올렸다. 그리고 트위터를 통해서 이 계획을 홍보한 결과 놀랍게도 21시간 만에 목표 금액을 채웠다. 세계 50개국에 있는 사람들이 시간당 2500달러의 속도로 모금을 해줬다는 것이다.(Update:52만달러로 잘못 표기했던 것을 5만2천달러로 고쳤습니다.6월28일)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세계인들이 촘촘히 에스엔에스와 스마트폰으로 묶인 시대에는 권력의 힘이 점점 개인으로 옮겨가면서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거대자본이나 권력기관의 지원 없이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있다면 몇 명의 개인이 거액을 하루 만에 모을 수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리고 한편 이런 시대의 변화에 맞춰 리더도 겸손하게 작은 개인의 목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이는 ‘겸허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지난 10년간의 경제성장 실적을 등에 업고 10년 이상 장기집권한 터키의 에르도안 총리는 높은 지지율에 취해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낸 ‘주머니 속의 인터넷’은 이제 대중의 강력한 무기가 됐다. 일반 대중은 어떤 권력자 못지않게 자유롭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힘을 가진 자의 오만을 접할 때마다 쉽게 조직화된 분노를 표출한다. 최근 대중교통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브라질의 전국적인 시위 사태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대에는 “내가 보스니까 내 말을 들어라”라는 리더보다는 공감 능력을 갖춘 겸손한 리더가 대중과 더 잘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터키에 대해 일말의 관심도 없던 나도 이 광고를 계기로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터키 시민들이 왜 거리로 나섰는지 이해를 하게 되었다. 이런 작은 실행이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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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en Shot 2013-06-23 at 4.12.43 PM

지난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뉴욕타임즈 토머스 프리드먼 글로벌포럼에 참석했다가 들은 이야기를 칼럼으로 써봤다. 위 사진에서 왼쪽이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고 오른쪽이 인디고고의 슬라바 루빈CEO다.

위와 같은 트윗을 하긴 했지만 별 생각 없이 넘어갔다가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주 인상적이었다. 크라우드펀딩이 꽤 활성화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한국에서는 그다지 잘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것은 시장이 워낙 좁고 이런 기부를 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만나보니 통찰력 넘치는 달변에 겸손한 모습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에 귀찮아 하지 않고 웃으면서 기꺼이 포즈를 취해주었다. (사진을 찍어준 매경 손재권기자 Thank you!)

Screen Shot 2013-06-27 at 10.23.48 PM

Written by estima7

2013년 6월 27일 at 10:4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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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칠레, 스타트업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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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en Shot 2013-06-23 at 10.31.26 PM

얼마전 한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회사의 행사에 갔다가 음식배달 주문용 앱 ‘배달의 민족’으로 유명한 회사 ‘우아한 형제’의 회사 소개 발표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 회사 김봉진 대표는 이번이 미국 초행길이라고 하고 동행한 이승민 전략기획실장도 겨우 두번째 미국 방문이라고 해서 솔직히 이들이 발표를 잘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좀 버벅대더라도 잠재적인 미국 투자자들 앞에서 발표를 한번 해보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다 싶었다.

그런데 내 걱정은 기우였다. ‘우아한 형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보급률을 자랑하는 한국의 스마트폰 문화부터 뭐든지 주문만 하면 번개처럼 가져다주는 한국의 음식배달 문화까지 앱 개발 배경설명부터 시작해 한국인들이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만든 자신들의 앱이 왜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그 결과 오히려 같이 발표한 다른 미국 벤처기업들보다 더 많은 관심을 모으고 질문도 많이 받았다. 흔히 유행하는 미국의 인터넷서비스를 따라했다면 별로 관심을 못 받았겠지만 한국 시장에 맞는 자신만의 서비스를 개발해낸 것이 오히려 미국 투자자들에게 신선한 인상을 준 것이 아닌가 싶다. (참고 : 첫번째 해외회사설명회에 도전한 우아한 형제들)

이 일을 통해 내가 한국 벤처기업의 실력을 과소평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발표가 끝나고 겸손해하는 김 대표에게 “앞으로 좀더 해외에 자주 나가고 견문을 넓히라”고 이야기했다. 꼭 해외진출 목적이 아니더라도 이런 경험을 통해 더 성장하고 더 좋은 아이디어도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행사 뒤 식사를 하면서 한 샌프란시스코의 현지 벤처 CEO와 이야기를 했다. 얼마 전 한국 출장을 다녀왔다는 그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이 너무 한국 시장밖에 모르고 국외 시장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방문한 회사마다 거의 100% 한국인 직원만 있는 것 같았는데 그러니 더욱 해외 시장을 이해하고 진출하기가 어려운 것 아니냐는 말도 했다. 사실 얼마 전에 만난 한 일본인 벤처투자가한테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요즘 한국의 벤처기업 실력이 많이 올라간 것 같은데 너무 시장을 한국 안으로만 좁게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들이 글로벌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은 큰 시장인 미국에 자리잡고 있고 영어로 제품을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다른 이유는 세계 각국의 인재들이 모여드는 실리콘밸리의 특성상 인종·국적·배경이 다양한 사람들을 직원으로 채용한다는 데 있다. 이미 회사 안의 모습이 ‘유엔’을 방불케 하기 때문에 따로 글로벌을 부르짖을 필요가 없다.

우리의 벤처기업인들도 한층 더 이런 글로벌 환경에 노출되고 다양한 외국인들과 교류해야 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성공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물 밖으로 나가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칠레 정부가 진행하는 ‘스타트업 칠레’라는 프로그램에 주목하고 싶다. 스타트업 칠레는 세계의 벤처기업 중 신청을 받아 선발된 기업에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회사를 6개월간 운영할 수 있도록 4만달러와 비자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세계 곳곳의 똑똑한 인재들을 칠레로 불러모아 교류시켜 자국 벤처업계를 활성화하려는 목적이었다.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엔 이르지만 2010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세계 미디어들의 관심을 모아 70여개국 1600여 벤처기업의 지원을 받았다. 한국도 ‘스타트업 코리아’ 같은 프로그램을 마련해 세계의 인재들을 한국으로 끌어모아보면 어떨까 싶다. 우리 창업가들이 세계의 인재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면 국외진출 성공 사례는 저절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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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겨레신문 생각의 단편 칼럼으로 썼던 글. 글은 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이 내용을 쓰고 싶었던 이유가 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방문할 때마다 백인, 인도인,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러시아인 등 다양한 인종이 격의없이 어울리면서 나오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에너지가 부러웠다. 모름지기 다양한 사람과 교류해야 서로를 자극하면서 새로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실리콘밸리만한 곳이 없다. 전세계에서 모인 똑똑한 사람들이 가장 장벽없이 일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미국 동부만 해도 백인주류사회와 이민사회간의 벽이 있고 그런 장벽을 글래스실링(Glass ceiling)이라고 한다. 물론 실리콘밸리라고 해서 그런게 없다고 할수는 없지만 아마도 전세계에서 가장 이방인에게 차별이 없는 곳일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다 내부가 작은 UN총회다.

그런 의미에서 칠레의 스타트업칠레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외국인들을 산티아고로 끌어들여 칠레의 벤처커뮤니티를 자극해보고자 하는 칠레정부의 좋은 아이디어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성과를 거두고 있지 않나 싶다. 칠레처럼 한국의 창업자들이 보다 많이 외국인들과 접촉해 다른 문화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많이 배우고 자극받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가볍게 한번 위 글을 써봤다.

Written by estima7

2013년 6월 23일 at 10:54 pm

갑들에게 감시카메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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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5월9일 미국의 이른 새벽 시간, 순조롭게 마무리되는 듯하던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찬물을 끼얹는 게시물 하나가 미국의 한 한인주부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왔다. 대통령을 수행한 청와대 윤창중 대변인이 인턴으로 일한 동포 여학생을 성추행했다는 내용이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나는 출근을 준비하면서 이 소식을 트위터를 통해서 처음 접했다. “설마 그럴 리가.” 반신반의하면서 사무실에 도착해서 컴퓨터를 켜보니 트위터는 온통 이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한국은 자정을 훨씬 지난 새벽 시간이었는데도 포털의 급등 검색어 1위가 이미 ‘윤창중’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관련 온라인뉴스가 속속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청와대의 윤 대변인 해임 뉴스가 떴다. 처음 의혹 제기에서 해임까지가 겨우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나는 옛날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정보의 확산 속도에 경악했다.

 소위 ‘라면 상무’ 사건도 그렇고 남양유업 욕설 녹취 파일 사건도 그렇다. 예전 같으면 텔레비전이나 신문의 토막뉴스로 끝났을 일들이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의 힘으로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사회적 이슈로 순식간에 탈바꿈한다. 이제 국민들은 힘있는 자, 갑들의 오만한 행동에 즉각적으로 공분을 표출한다. 더구나 이제는 국경도 없다. 전세계의 한국인들이 동시에 같은 이슈를 공유하고 한마디씩 자신의 생각을 보탠다.

방송사와 신문사만 잘 대응하면 됐던 올드미디어 환경에 익숙한 정부나 기업의 리더들은 이런 미디어 상황의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변해야 한다. 바뀐 세상을 원망하기보다는 리더가 먼저 이런 변화를 잘 이해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이제는 내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 항상 보고 있고 기록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좋겠다. 그도 그럴 것이 스마트폰을 넘어서서 이제는 말 한마디로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녹화할 수 있는 일종의 스마트안경인 구글글라스가 내년이면 상용화될 예정이다. 이제는 모든 사람들의 눈이 일종의 감시카메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내부 조직의 교육을 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여기에 한가지 좋은 참고사례가 미국에 있다.

사진출처:테이저인터내셔널

사진출처:테이저인터내셔널

요즘 미국 경찰에는 경찰관의 선글라스에 장착해서 필요할 경우 동영상 녹화가 가능한 담배 한 개비 크기의 소형 카메라가 보급되고 있다. (참고:모든 것을 다 찍는 경찰의 소형비디오카메라-엑손 플렉스) 시민에게 법집행을 하는 현장의 모습을 경관의 시선에서 쉽게 담아 증거로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일종의 블랙박스다. ‘빅브러더’라는 반발도 있었지만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리앨토시 경찰국은 1년 전부터 이 제품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실험에 나섰다. 54명의 제복경찰 중 매일 무작위로 절반을 선택해 이 카메라를 착용하고 시민과 접촉하는 경우 반드시 촬영하도록 했다.

 그 결과는 놀랍다. 카메라 도입 이전과 비교해서 시민들의 경관에 대한 불평 민원 신고가 88% 줄었다. 카메라를 착용했을 경우 경관이 시민에게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행동을 최대한 조심했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경관이 법집행을 위해서 무력을 사용한 경우도 60% 줄어들었다. 카메라의 존재를 의식한 시민들도 억지를 부리지 않고 얌전하게 행동하는 효과가 있었다. 빅브러더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세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갑의 횡포 뉴스를 읽으며 앞으로 일정 직급 이상의 고위공직자나 기업 간부들에게 미국 경찰처럼 이런 카메라 착용을 일반화하고 일반 시민이나 ‘을’과 접촉할 때는 촬영을 의무화하도록 하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그렇게 하면 국민이 항상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정말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 제안이 단지 농담으로만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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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4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칼럼.

Written by estima7

2013년 5월 16일 at 11:53 pm

항공기 승무원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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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식으로 제공되는 라면에 대해 불평을 하면서 항공기 승무원에게 행패를 부린 대기업 상무 이야기가 대화제다. 처음에는 방송 단신으로 임원의 실명과 구체적인 내용 없이 몇 줄만 가볍게 보도됐던 것이 트위터, 인터넷커뮤니티를 통해 실명과 항공사의 내부 대응 기록문건이 퍼지면서 일파만파가 됐다. 뜻밖에도 많은 이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 임원의 고약한 행동에 분노의 감정을 표출했다. 아마도 평소 직장에서 그런 상사를 접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러다 트위터를 통해서 ‘웨이터의 법칙’이라는 말을 접하게 되었다. 데이브 배리라는 작가의 글에서 유래한 이 법칙은 다음과 같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는 잘 대해주지만 웨이터에게는 거만하게 행동한다면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이 말은 미국의 시이오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일종의 불문율이라고 한다. 시이오가 회사의 임원을 뽑을 때 꼭 명심해야 할 말이라는 것이다.

 시이오가 회사 내부나 바깥의 누군가와 식사할 때는 다들 그가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잘 보이려고 예의를 다해서 행동한다. 시이오에게는 누구나 좋은 사람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식사 상대가 웨이터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자세히 보면 그 사람의 진짜 성품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보다 지위가 낮다고 사회적 약자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직장에서도 부하들에게 비슷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자기도 모르게 권위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웨이터뿐만 아니라 호텔 종업원, 경비원, 청소원 등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하인 부리듯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회사에서 많은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시이오나 임원의 자리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2006년 이 웨이터의 법칙을 소개한 <유에스에이 투데이> 기사에서는 웨이터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하는 사람일수록 “난 이 레스토랑을 사버리고 널 잘라버릴 수 있어”라든지, “난 이 레스토랑 주인을 잘 아는데 널 해고시킬 수도 있어”라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소개했다. 곧 “너,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과시다. 불행히도 이런 발언은 그 사람의 힘을 과시하기보다는 그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인지를 나타낼 뿐이다.

 국적항공사 비즈니스클래스에서 일하는 항공사 승무원의 경우는 우리 사회의 소위 ‘지도층 인사’들을 항상 접하기 때문에 이 ‘웨이터의 법칙’을 몸으로 느낄 것 같다. 이번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어 파문이 일고 있지만 그 임원보다도 더 잘나고 힘센 인사들의 비슷한 무례한 행동은 알려지지 않고 묻히는 일이 많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힘있는 사람에게는 깍듯이 하면서 식당의 종업원이나 골프장의 캐디는 마치 하인 부리듯 반말조로 막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만 해도 수년 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까운 한 선배의 형수가 항공사 승무원이었다. 하루는 카운터에서 업무를 보는데 한 대기업의 최고위급 중역이 체크인을 하려고 왔다. 그런데 규정을 넘어서는 크기의 가방을 기내로 가지고 들어가겠다고 해서 원칙상 안 된다고 짐을 부치라고 정중히 말씀드렸단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대단한 고객인데 이렇게 대할 수 있냐며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고객카드를 두 동강 내면서 떠났다고 한다. 또 너희 회장에게 널 자르라고 얘기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일을 이야기하면서 격분하던 선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누군가가 당신에게는 잘해주지만 항공기 승무원에게는 거만하게 행동한다면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이 기회에 한국에서는 이런 ‘항공기 승무원의 법칙’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아무쪼록 한국의 경영자들도 이 법칙을 명심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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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3일자 한겨레 생각의 단편 칼럼으로 게재된 글이다.

이 한겨레칼럼 마감시간은 항상 미국시간으로 일요일저녁인데 그날 따라 써놓은 글이 그저 그랬다. 그래서 전날 블로그에 가볍게 ‘웨이터의 법칙‘이라고 써두었던 글을 한겨레측의 양해를 얻어 더 길게 써서 보냈다. 내가 그동안 보냈던 칼럼글들과 달리 시의성이 있는 내용이어서 좀 반응이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뜨거울 줄은 몰랐다.

Screen Shot 2013-04-24 at 2.45.48 PM

이 시간까지 페이스북에서 2천회이상, 트위터에서 5백회이상 공유되어 한겨레기사중에 가장 많이 공유된 기사 1위로 올랐다. 솔직히 잘 쓴 글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웨이터룰’이라는 생각자체에 워낙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신 것 같다.

우연히 알았는데 5년전 박연차회장의 기내난동사건도 비슷한 경우에 속하는 것 같다. 참고링크 : 항공기 난동 박연차 회장… 박준용판사에 혼쭐(로이슈) 다만 그때는 한국에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차이랄까? 내 글이 조국교수, 선대인소장 같은 파워트위터유저의 도움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보고 소셜미디어의 파워를 또 느꼈다.

어쨌든 이렇게 정보가 순식간에 퍼지는 세상이 무섭기도 하다.

Written by estima7

2013년 4월 24일 at 2:53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