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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과 엑티브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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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이 한국에 진출한다고?”

지난주 한 매체가 아마존의 한국 진출설을 보도한 이후 국내 누리꾼들이 술렁였다. 미국 시애틀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아마존은 세계 최대의 온라인쇼핑몰을 운영하는 공룡기업이다. 아마존은 시가총액이 190조원에 이르며 세계 최대의 오프라인 유통업체 월마트와 맞짱을 뜨는 거대기업이다.

(이달초에 미국 CBS 60 Minutes보도로 큰 화제를 모은 아마존의 무인헬기를 이용한 배달실험. 혁신가로서의 제프 베이조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1994년 인터넷으로 책 판매를 시작해 지금은 모든 것을 다 판다는 종합온라인쇼핑몰로 성장한 아마존은 자타가 공인하는 혁신기업이기도 하다. 2007년 전자책 리더인 ‘킨들’을 내놓아 전자책 시대를 열어젖혔으며, 기업의 빅데이터를 인터넷에 연결된 대규모 컴퓨터 서버를 통해 처리해주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며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베조스는 지난 8월 <워싱턴 포스트>를 개인적으로 인수해 전세계 언론인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어쨌든 세계적인 화제의 기업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아마존의 한국 진출설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세계적인 공룡 대기업이 한국 시장에 들어온다는데도 경계심은커녕 환영 일색이었다. 트위터에서는 이런 반응들이 나왔다.

http://twitter.com/jhnha/status/416454689454952449

얼마나 액티브엑스와 공인인증서에 진절머리가 나면 국외기업에 이런 구원을 바랄까. 소비자들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 한국의 인터넷규제 현실이 기가 막힐 뿐이다.

인터넷속도가 느린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휴대전화 통화도 안 되는 곳이 부지기수인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다 돌아왔다. 그렇다 보니 전국 구석구석은 물론이고 운행중인 지하철 안에서까지 뻥뻥 터지는 모바일인터넷 등 훌륭한 한국의 인터넷 인프라에 감탄하게 된다.

단지 한번 클릭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아마존닷컴의 원클릭구매버튼은 온라인쇼핑을 너무나 쉽게 만들어줬다.

단지 한번 클릭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아마존닷컴의 원클릭구매버튼은 온라인쇼핑을 너무나 쉽게 만들어줬다. 덕분에 충동구매를 자주하게 만드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반면 인터넷쇼핑이나 금융을 이용하려면 좌절하게 된다. 피시든 스마트폰이든 아마존에서 사고 싶은 물건을 원클릭(단 한번만 클릭하면 미리 저장되어 있는 신용카드 정보와 주소로 결제가 완료되고 제품이 배달된다)만으로 구매하던 습관에 익숙해져 있는 나로서는 겹겹이 액티브엑스를 설치하고 본인인증을 하는 등 보안 스무고개를 넘어야 물건을 살 수 있게 만든 한국의 전자상거래 관련 규제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Screen Shot 2014-01-01 at 8.48.12 PM

반면 윈도PC에서 인터넷익스플로러를 사용하며 액티브X를 겹겹히 설치해야만 구매가 가능하도록 만든 한국의 온라인쇼핑사이트는 구매의욕을 꺾는다. 특히 평소 액티브X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해외동포들의 경우는 구매결제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것은 마치 정부가 온라인금융이나 인터넷쇼핑업계에서는 혁신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는 것 같다. 액티브엑스는 해외의 수많은 한국인 동포와 주한 외국인들의 한국 인터넷쇼핑을 막는 원흉이기도 하다. 또 컴퓨터에 익숙한 젊은 사람도 어려울 정도니 노년층은 인터넷쇼핑을 하지 말라는 것 같다. 아이패드에서 몇번 터치로 쉽게 쇼핑을 하는 미국의 노인들과는 천지차다.

국내 온라인쇼핑몰 사업자들은 발에 무거운 족쇄를 달고 국외업체들과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한 전자책회사의 지인은 “국외동포들에게 한국 전자책을 판매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결국은 항상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며 “동포들은 항상 복잡한 인터넷 결제 방법에 질려서 구매를 포기하기가 일쑤였다”고 말했다.

이제는 모든 분야에서 국경이 없어지는 시대다. 복잡한 결제 절차와 비싼 가격에 질린 사람들은 간편한 국외쇼핑몰에서 직접 구매에 나서고 있다. 이런 ‘직구족’의 등장에 아마존도 한국 진출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리라. 아마존의 진출이 뭔가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주길 나도 간절히 바란다.

***

2013년 12월31일자 (마지막날) 한겨레칼럼으로 기고한 글. 아래는 부가설명.

보스턴에 있을 때 아내가 영어를 배운 미국인 할머니부부와 친하게 지냈었다. 우리 부모님과 연세가 비슷한 70대의 노부부이셨다. 책 읽기를 즐기는 할머니께 아마존 킨들을 선물해 드렸었다. 그때 할머니의 한마디.

“I don’t know how it works. But it’s like a magic. It’s so easy to use!” 킨들로 책을 구매해서 읽는 과정이 “마치 마술같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보고 싶은 책을 그냥 원클릭으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너무 편하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결제과정이 어렵지 않고 한번 신용카드정보와 주소지를 입력해두면 편하게 주문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연배가 높은 어르신들도 어렵지 않게 온라인쇼핑을 이용한다.

모바일에서의 결제과정이 쉽기 때문에 미국에서 모바일쇼핑비중이 날이 갈수록 급성장중이다. (출처:블룸버그TV보도)

모바일에서의 결제과정이 쉽기 때문에 미국에서 모바일쇼핑비중이 날이 갈수록 급성장중이다. (출처:블룸버그TV보도)

휴대폰을 통한 본인인증도 필요없고 신용카드만 있으면 PC이든 맥이든 스마트폰이든 타블렛이든 어떤 브라우저에서든지 결제가 가능하다. 아이디와 패스워드입력만으로도 결제가 가능한 페이팔(Paypal)도 결제를 쉽게 하는 요소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엄청나게 많이 쓰이는 휴대폰결제가 미국에서는 인기가 거의 없다.

이제 한국을 보자. 우리 부모님은 컴퓨터를 안쓰시고 아이패드만 쓰신다. 나는 도저히 온라인쇼핑을 가르쳐 드릴 수가 없다. 설사 랩탑을 쓰더시더라도 마찬가지다. 컴퓨터를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 도저히 액티브X 깔라고 표시가 나오면 무조건 ‘예’를 하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다. 부모님께는 각종 악성소프트웨어와 ‘안전한’ 액티브X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나도 사실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이 설치할 때마다 찜찜하다. 매번 신용카드정보를 처음부터 다시 입력하고 본인확인 등 을 거치는 회원가입이나 구매과정도 너무 복잡하다.

어쨌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온라인뱅킹이나 전자상거래분야에서 한국 기업들, 특히 스타트업들의 혁신은 요원하다. 오히려 발에 족쇄가 달린 한국의 기업들이 이런 규제를 우회한 외국기업들에게 한국고객을 다 빼앗겨 버릴지도 모르겠다.

아마존이 사이트만 한글화해서 값싼 제품 가격과 편리한 결제로 한국에서 엄청난 매출만 올려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언젠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Written by estima7

2014년 1월 1일 at 10: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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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욱의 생각의 단편] 리더의 공감결핍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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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대기업에 다니는 몇몇 후배와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다 대기업에는 정말 고약한 임원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일부러 새벽 일찍이나 금요일 저녁에 회의를 잡는 고위 임원. 회의 중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사소한 일로 중간간부에게 면박을 주는 고위 임원. 실행하기 어려운 상사의 지시에 대해 부하가 납득할 만한 의견을 얘기했는데도 자신의 명령에 토를 단다며 책상을 내려치고 고성을 지르는 임원. 이런 얘기를 들으며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임원직에 올랐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설득보다는 자신의 지위와 권위로 부하를 움직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나는 너의 보스니까 너는 내 말을 들어야 돼”라는 식의 발상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보스일수록 부하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쉽다.

감성지능(EQ) 이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은 이처럼 강한 권력을 지닌 리더일수록 공감능력결핍증후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솔직한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들이 승진해서 조직의 사다리 위로 높이 올라갈수록 아랫사람들은 상사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다가가지 못하며 직언도 어려워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될수록 그 고위 임원들은 부하들의 감정을 이해 못하게 되고 점점 더 자기중심적인 세계관 속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골먼에 따르면 공감능력에는 세 가지가 있다. 타인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인지적 공감능력과 타인의 감정에 즉시 공명할 줄 아는 감정적 공감능력, 그리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챙겨줄 줄 아는 감정이입적 공감능력이 있다. 리더들에게 이런 공감능력이 결핍되는 징후로서는 직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목표·전략 등을 수립하고 강요하거나, 직원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을 이해 못하고 차갑고 무관심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골먼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리더가 자신에게 솔직한 의견을 말해주는 그룹을 찾거나 만들어서 끊임없이 경청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회사 안을 일부러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격의 없는 시간을 보내는 리더나, 보스에게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은 회사 분위기를 조성하는 리더는 이런 증상에 빠질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비단 일반회사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어떤 조직에서나 마찬가지다. 나도 내가 모시던 보스가 직급이 더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솔직한 말씀을 드리기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리더와 부하 간의 관계를 대통령·국회의원·고위관료와 국민 간의 관계로 바꿔서 생각해봐도 된다. 조직의 보스에게도 솔직한 피드백을 드리기 어려운데 하물며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기는 얼마나 어려울까. 재벌총수, 대통령이 되어 인의 장막에 싸이게 되면 그 앞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임원이나 권력자나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말단 직원, 국민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기는 힘들어진다.

넬슨 만델라는 정말 탁월한 공감능력을 가진 리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흑백을 초월해 화합시키는 것을 넘어서 전세계의 리더들까지 그의 추종자로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그것을 가능케 했다.

넬슨 만델라는 정말 탁월한 공감능력을 가진 리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흑백을 초월해 화합시키는 것을 넘어서 전세계의 리더들까지 그의 추종자로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그것을 가능케 했다.

지난주 타계한 넬슨 만델라는 공감능력이 탁월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27년간의 혹독한 감옥생활을 거치면서 그는 오히려 세상에 대해 달관했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 결과 백인·흑인을 모두 아우르는 대화합을 이뤄냈고 전세계 가는 곳마다 그에게 감복하고 따르는 추종자를 만들어냈다. 말로만 국민이 원하는 것이라고 외치며 실제는 국민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정치인들도 ‘공감결핍증후군’에 걸리지 않았는지 돌아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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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9일자 한겨레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 칼럼을 블로그에 백업. 다니엘 골먼의 리더의 공감 결핍 증후군에 대한 글을 번역해 소개한 블로그 포스팅을 바탕으로 칼럼으로 다시 써본 글이다. 골먼의 글은 내게도 공감이 되는 글이어서 한번 번역해서 내 생각을 조금 덧붙여 소개해봤는데 페이스북에서 6천회이상의 공유와 함께 거의 4만뷰의 조회수가 나와서 나도 놀랐다.

이 글에 대한 이런 높은 관심은 한국의 조직에도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아랫사람의 어려움을 헤아리지 못하는 꽉 막힌 ‘불통’ 리더들이 가득하다는 뜻이리라. 공감능력을 키워주는 리더십교육이 절실하다.

Written by estima7

2013년 12월 22일 at 12:34 오후

저녁이 있는 삶과 창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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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근교 라이코스사무실에서 본 바깥 정경. 이 풍경을 3년동안 매일 봤었다.

보스턴 근교 라이코스사무실에서 본 바깥 정경. 이 풍경을 3년동안 매일 봤었다.

거의 5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최근 한국에 돌아왔다. 동부의 보스턴에서 3년 반, 서부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에서 1년 반을 살았다. 나름 미국이라는 나라를 동쪽과 서쪽에서 균형있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던 셈이다. 더구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혁신의 산실인 보스턴과 실리콘밸리에서 직접 살아볼 기회를 가졌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하지만 미국에 살면서 지역에 상관없이 전체 미국 사회가 뿜어내는 혁신의 양에 감탄하기도 했다. 미국은 엉망인 의료보험제도, 풀리지 않는 총기 규제 이슈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지만 다른 나라를 압도하는 혁신 콘텐츠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혁신 대국이다.

나는 우선 서점에 갈 때마다 쏟아지는 신간 서적의 양에 놀라곤 했다. 매주 20~30권의 신간 책 비평을 소개하는 <뉴욕 타임스> 북리뷰에는 매주 1000권 가까운 신간 서적이 배달된다고 한다.

또 사업 모델이 독특한 혁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나와서 빠른 시간 안에 성장해 나가는 곳이 미국이기도 하다. 애플, 야후,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 몇 년마다 한번씩 기발한 아이디어와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기업이 등장해 수백조원 가치의 회사로 성장해 간다.

나는 이런 창의력이 샘솟는 미국 사회의 저력이 어디에 있을까 궁금했다. 세계 각지의 인재들이 모이는 용광로,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거대한 시장 크기 등 많은 요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피부로 느낀 창의력의 원천이 있다. 바로 ‘저녁이 있는 삶’이다.

2009년 초 보스턴에 있는 미국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처음 한동안은 간부 직원들에게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청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약속을 잡고 바쁘게 살던 한국에서의 버릇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였다. 친밀도도 높이고 회사 이야기를 깊이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묘하게 사람들은 나와 같이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을 꺼렸다. “집에 물어보고 가능한지 알려주겠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서 알게 됐다. 미국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고서는 회사일로 상대방의 저녁을 청하는 것은 실례였다. 반대로 내게 저녁 시간을 내주길 요청하는 미국인의 경우는 “가족들에게 폐가 되지 않겠느냐”고 꼭 물어봤다.

그런 문화를 알게 된 뒤에는 나도 가급적이면 저녁 약속을 잡지 않았다. 온갖 복잡한 사회관계, 각종 모임, 경조사에서 벗어나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보스턴으로 이사 간 나는 한국에 있을 때와는 비할 수 없이 많은 저녁과 주말을 가족과 함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업무 시간 이외의 많은 시간을 미국 사회와 정보기술(IT) 업계를 이해하기 위한 공부에 투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과 경험을 블로그 등에 글로 옮길 수 있었다.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생각의 힘’을 키울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런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미국인들의 왕성한 창의력은 이런 여유로운 저녁 시간, 즉 잉여 시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예를 들어 첫 애플 컴퓨터는 회사일이 끝나고 취미로 컴퓨터를 만들던 스티브 워즈니악의 잉여 활동에서 태어났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로 다시 돌아와 생활하다 보니 여백이 있는 미국에서의 삶이 그리울 때가 있다. 초경쟁사회에서 남들에게 뒤처질까봐 두려워 정신없이 사는 한국인들은 정작 깊이 사색하며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부족하다. 열심히 일하면 남들을 따라잡을 수 있겠지만 창의력은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창의는 잉여에서 나온다. ‘창조경제’를 위해서라면 우리도 조금은 느리게 살았으면 한다.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

***

이번주 한겨레칼럼으로 기고한 내용. 또 무슨 내용을 쓰나 고민하다가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을 써봤다. 너무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을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다른 소재도 없고 해서 주말동안 고민하다가 써서 보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말 받은 분들이 공감해주셨고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2천번이상 공유가 됐다.

이런 열렬한 반응을 접하면서 너무나 바쁜 삶을 살아가는 우리 한국인들이 모두 “저녁이 있는 삶”에 뭔가 갈증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회시스템과 문화를 송두리채 바꾸기 전에는 미국처럼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또 서울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1천만명이 넘는 인구가 몰려사는 이유도 있다. 우리는 개인주의적인 미국인들에 비해서 친구, 친지들과 휠씬 더 서로 자주 연락하고 자주 만나는 편이다. 그런데 웬만하면 1시간이내에 다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바쁠 수 밖에 없다.

솔직히 고백하면 보스턴에서는 정말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았는데 지난 1년여동안의 실리콘밸리 생활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보스턴과 비교해서 워낙 한국분들도 많이 사시고 한국에서 오시는 손님들도 많아서 보스턴보다는 몇배 바쁜 저녁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클릭하면 스토리볼로 이동

클릭하면 스토리볼로 이동

사실 위 칼럼에서 살짝 쓴 라이코스에서의 경험은 다음 스토리볼 연재 1화로 “매니저들과 저녁같이 하기”라는 글로 몇주전에 썼던 것이다. 이때도 예상외로 3천번이 넘는 공감을 받았기에 한겨레칼럼으로도 비슷한 소재를 써볼 생각을 했던 것이다.

어쨌든 가능한 한 한국에서도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만들려고 노력중이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Written by estima7

2013년 11월 21일 at 11:39 오후

초감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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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나오는 두 정상의 다정한 모습. NSA스캔들은 메르켈총리의 오바마에 대한 신뢰에 금을 가게 했다.(출처:구글이미지검색)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나오는 두 정상의 다정한 모습. NSA스캔들은 메르켈총리의 오바마에 대한 신뢰에 금을 가게 했다.(출처:구글이미지검색)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미국의 정보기관이 그동안 독일·프랑스·멕시코 같은 우방국 정상의 휴대전화와 이메일을 도청해 왔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 화가 난 우방국 정상들을 달래느라 오바마가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 연일 뉴스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혹자는 “모든 나라의 정보기관들은 어차피 서로 도청전쟁을 벌이는 것 아닌가. 서로 알면서도 쉬쉬하던 공공연한 비밀이었을 뿐이다. 흥분할 필요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저런 도청-감시 전쟁은 고위 인사나 유명인들의 이야기지 나 같은 보통 사람과는 관계없는 딴 세상 이야기라고 치부한다. 누가 할 일 없이 나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전화통화나 이메일을 감시하겠는가.

그렇지 않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스마트폰과 빅데이터 기술은 이제 사람들의 사생활 속으로 그 활동 영역을 침범해 들어가고 있다. 기계가 모든 사람을 감시하고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초감시사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찍히고 분석당하고 있다.

NCR Restaurant Guard라는 소프트웨어 소개문구. 레스토랑전산시스템의 Add-on으로 제공되는 것 같다. 시스템에 기록되는 종업원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감시해 의심되는 건이 있으면 경보를 울린다.

NCR Restaurant Guard라는 소프트웨어 소개문구. 레스토랑전산시스템의 Add-on으로 제공되는 것 같다. 시스템에 기록되는 종업원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감시해 의심되는 건이 있으면 경보를 울린다.

 얼마 전 흥미로운 기사를 접했다. 미국의 인기 체인레스토랑 약 400곳에 종업원들의 행동을 감시하는 소프트웨어가 시범 설치됐다. 미국의 외식업체들한테는 종업원의 절도행위가 큰 골칫거리다. 음식계산서에 보통 15~20%로 추가로 주는 팁은 종업원의 몫이기 때문에 더 많은 팁을 받기 위해서 음식이나 음료를 공짜로 제공하거나 현금을 일부 빼돌리는 행위가 많다는 것이다. 이익률이 2~5%밖에 되지 않는 외식업종에서 종업원 절도로 인한 손실이 전체 매출의 1%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고 일일이 몰래카메라를 식당 곳곳에 설치하고 종업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주문시스템에 추가 설치되는 이 소프트웨어는 식당 안에서 일어나는 음식 주문, 계산, 쿠폰 사용 등 모든 행위를 분석한 뒤 일상적이지 않은 의심스러운 경우가 감지되면 매니저에게 경보를 보낸다.

 이 소프트웨어가 설치된 뒤의 변화가 놀랍다. 설치 전과 비교해서 이 400곳 레스토랑의 매출이 평균 7% 올랐다는 것이다.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종업원들이 편법으로 돈을 조금 더 벌기보다는 고객에게 더 음식을 주문하도록 유도해 팁을 더 받는 쪽을 택한 것이다. 감시당하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더 정직하게 행동하게 된 것이다.

Awareness Technologies라는 회사의 Interguard MobileMoniter라는 소프트웨어. 이 제품은 회사직원의 스마트폰에 심어져 전화, 이메일, 문자등을 회사가 모두 모니터할 수 있게 해준다. 블랙베리, 안드로이드폰에서만 된다고.

Awareness Technologies라는 회사의 Interguard MobileMoniter라는 소프트웨어. 이 제품은 회사직원의 스마트폰에 심어져 전화, 이메일, 문자등을 회사가 모두 모니터할 수 있게 해준다. 블랙베리, 안드로이드폰에서만 된다고.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에는 이런 기사도 나왔다. 버지니아주의 한 해충제거회사의 임원은 외근직원들이 근무시간 중에 개인적인 일을 많이 본다는 의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그는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지급한 스마트폰에 위치추적 소프트웨어를 몰래 설치했다. 그 결과 한 직원이 지나치게 특정 주소에 자주 드나든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추궁한 결과 근무시간에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 직원은 바로 해고됐다. 이후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개인 용무를 봐야 할 일이 생겼을 때는 회사로 연락해 미리 양해를 구하게 됐다며 관리자들은 흡족해한다.

 우리는 항상 감시당하고 있다. 내 카톡메시지, 이메일, 전화통화는 누군가 항상 보고 듣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컴퓨터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탈을 실시간으로 잡아낸다. 젊은 날 한번의 실수도 인터넷 검색으로 평생 낙인처럼 따라다니는 세상이다. 그야말로 사생활이란 없는 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일년 365일 24시간 나의 사생활은 낱낱이 감시당하고 있다고 체념하자.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사는 것이 곧 다가올 새로운 미래를 대비하는 삶의 지혜라고 해야 할 듯싶다.

***

지난주에 실린 한겨레 생각의 단편 칼럼.

예전에 “모든 것을 다 찍는 경찰의 소형비디오카메라-엑손 플렉스“라는 글을 쓴 일이 있다. 그 내용은 미국 리알토시 경찰이 법집행과정을 엑손 플렉스라는 비디오카메라가 장착된 선글래스를 통해 녹화하기 시작하면서 경찰과 시민이 보다 “얌전하게” 행동하게 됐다는 것이다. 비디오카메라를 통한 감시가 사람들의 행동을 바꿨다는 것이다.

위 칼럼은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쓴 것이다. 특히 NCR의 레스토랑가드 같은 소프트웨어가 식당종업원들의 행동을 분석하면서 부정행위를 실시간으로 잡아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섬뜩하다. 컴퓨터가 사람을 감시하는 세상으로 돌입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NSA스캔들은 이런 초감시사회가 정말로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엄청난 컴퓨팅파워, 촘촘히 전세계가 연결된 인터넷망, 스마트폰의 보급, 빅데이터기술의 발전 등이 이런 초감시사회를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11월 3일자 NYT 일요판에 실린 NSA에 대한 심층보도기사(No Morsel Too Minuscule for All-Consuming N.S.A.)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Today’s N.S.A. is the Amazon of intelligence agencies, as different from the 1950s agency as that online behemoth is from a mom-and-pop bookstore. It sucks the contents from fiber-optic cables, sits on telephone switches and Internet hubs, digitally burglarizes laptops and plants bugs on smartphones around the globe.

오늘날의 NSA는 정보기관들의 아마존이라고 할 수 있다. NSA와 50년대 정보기관의 차이는 마치 온라인공룡 아마존과 동네 구멍가게 서점의 차이만큼 다르다. NSA는 광케이블에서 콘텐츠를 빨아들이고, 전화교환기와 인터넷허브위에 앉아있고, 랩탑컴퓨터를 디지털하게 강도질하고, 전세계의 스마트폰을 감청한다.

예전에는 정보를 아무리 많이 모아도 분석할 사람이 없으면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을 컴퓨터가 해준다. 인공지능, 빅데이터기술을 이용해서 사람보다도 휠씬 빠르고 영리하게. 우리는 정말 무서운 세상에 돌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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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3일 at 9: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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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베리, 노키아 그리고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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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베리의 경영위기에 대해서 보도하는 캐나다의 CBC방송화면.

블랙베리의 경영위기에 대해서 보도하는 캐나다의 CBC방송화면.

블랙베리라는 스마트폰이 있다. 한국에서는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캐나다의 블랙베리라는 회사가 만든 스마트폰의 원조 격인 제품이다. 전화에 컴퓨터 자판 같은 작은 물리적 키보드를 붙여서 이메일을 주고받기 편리하게 만든 점이 강점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해 아이폰이 등장한 뒤에도 몇년간 북미 스마트폰 시장의 절반가량을 점유했을 정도로 한때 세상을 호령했다. 전성기 블랙베리의 기업가치는 약 80조원에 이르는 등 ‘캐나다의 자존심’이란 이야기까지 들을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이 회사의 가파른 추락이 화제다. 블랙베리는 지난 분기에 약 1조원의 손실을 내고 곧 전체 직원의 40%인 4500명을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아이폰의 등장 이후 급격한 시장의 변화와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창업자들을 포함한 경영진의 몇 가지 전략적 실수까지 이어지면서 불과 몇년 만에 북미 시장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이 1% 안팎으로까지 떨어지는 굴욕을 맛보며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참고 : 블랙베리의 몰락-업데이트(에스티마블로그))

블랙베리의 본사는 캐나다의 최대 도시 토론토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인구 약 10만의 소도시 워털루라는 곳에 있다. 이 거대기업의 몰락이 이 지역 경제에 끼칠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 뉴스를 검색해봤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다른 내용이 나왔다. 캐나다의 <시비시>(CBC) 방송 보도를 보면, 워털루는 오히려 수많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기반으로 삼아 혁신의 중심지로 재탄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고 : 워털루의 불확실한 미래 CBC보도) 브렌다 핼로랜 시장은 “이 지역의 탄탄하게 성장하는 스타트업 생태계가 (블랙베리에서 나온 인력들을) 충분히 흡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희망 섞인 보도이기는 했지만 캐나다의 실리콘밸리라고 불릴 만큼 관련 인재와 스타트업이 워털루에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다 싶었다.

예전 세계 휴대폰시장을 호령했던 노키아가 있는 핀란드도 마찬가지다. 노키아의 몰락이 꼭 핀란드의 경제위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핀란드가 앵그리버드로 유명한 로비오로 대표되는 워낙 탄탄한 벤처커뮤니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기울면서 해고된 노키아의 고급인력들이 시작한 스타트업이 400여개이고, 특히 최고 인재들이 더는 노키아만 바라보지 않으면서 벤처업계에 인재가 몰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참고: 왜 노키아의 몰락이 핀란드의 스타트업들에게 좋은 뉴스인가 WSJ블로그)

한국을 보자. 캐나다와 핀란드의 자존심 격인 기업들이 몰락한 마당에 세계적으로 승승장구하며 애플과 한판승부를 펼치고 있는 삼성전자를 가진 우리 국민은 행복해야 할 것 같다. 분기 영업이익이 10조원을 돌파한 삼성전자는 한국의 국보급 회사다. 마땅히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소위 ‘삼성고시’에 매년 10만명이 지원한다는 것이나 삼성전자로 인해 우리 경제가 실제보다 잘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가 있다는 최근 보도를 접하고 우려를 금할 수 없었다. 취업을 바라는 한국의 수많은 인재들을 비롯해 나라 전체가 한 기업에 너무 심하게 의존하고 있는 것 같아서다. (참고:  ‘삼성 고시’ 후유증…삼성 “채용 방식 변화 고민중”(한겨레), 삼성전자에 가려진 경제 위기…’착시효과’ 우려(SBS보도))

삼성전자가 영원히 잘나간다는 보장은 없다. 기업은 잘될 때가 있으면 안될 때도 있다. 노키아와 블랙베리의 예에서 보듯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호황을 누리던 기업도 순식간에 운명이 바뀔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상황은 삼성전자가 기침을 하면 나라가 독감에 걸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삼성 의존적이다.

핀란드나 캐나다처럼 대기업들이 위기를 맞을 때 탄력 있게 경제를 받쳐줄 스타트업 생태계가 한국에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스타트업들을 키워내는 데 정부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의 지원도 필요하다. 이들이 장차 삼성전자의 우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2013년 10월 7일자 한겨레신문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 칼럼으로 기고한 글.

맨마지막에 “삼성전자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쓴 것은 삼성전자가 실리콘밸리에 쏟고 있는 관심과 정성에 비하면 한국의 스타트업커뮤니티에는 조금 소홀한 것이 아닌가 해서이다. (내가 과문해서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삼성은 1조2천억원짜리 펀드를 조성해 미국의 초기단계 스타트업에 투자하기로 했고 팔로알토에 오픈이노베이션센터라는 스타트업액셀러레이터도 열었다. IT의 메이저리그격인 실리콘밸리에서의 입지를 강화하는데 이처럼 큰 투자를 하는데는 전혀 이의가 없다.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핀란드나 캐나다의 예처럼 대기업이 어려울 때 대신 성장을 주도할 수 있는 스타트업커뮤니티를 한국에 키우는데도 삼성이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하는 생각에서 칼럼마무리를 이렇게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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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8일 at 3:54 오후

적국 정상의 글도 실어주는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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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기고문이 실린 9월12일자 NYT Op-ed면.

푸틴의 기고문이 실린 9월12일자 NYT Op-ed면.

지난주 <뉴욕 타임스>는 백악관과 미국 의회를 발칵 뒤집어놓는 글을 실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기고문을 게재한 것이다. 이 글에서 푸틴은 “점점 많은 세계인들이 미국을 민주주의 모델이 아닌 폭력에만 의존하는 국가로 여긴다”고 썼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시리아 공격 계획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에 비유하면 한국의 대표 신문이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한국 비판 글을 받아서 실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푸틴이 글에서 주장하는 내용의 정당성은 차치하고라도 나는 이처럼 다양한 인물의 다양한 견해를 과감히 수용해 게재하는 뉴욕타임스의 편집 방침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사설과 칼럼이 실리는 지면을 미국 신문에서는 옵에드(Op-Ed)면이라고 한다. 푸틴의 기고문이 실린 옵에드면을 의견-사설면(Opinion-Edtorial)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여기서 옵에드는 ‘사설의 반대’(Opposite-Editorial)의 약자다. 논설위원들이 무기명으로 작성하는 신문사의 공식적인 주장인 사설과 대치되는 의견이라는 뜻이다. 1970년에 처음 등장한 뉴욕타임스 옵에드면은 회사 외부인들의 뉴욕타임스와는 다른 의견을 소개하고자 만들어졌다.

이런 외부인의 다양한 시각을 담은 글은 뉴욕타임스의 지면을 차별화한다. 그리고 간간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는 글이 나온다.

2012년 골드만삭스의 간부였던 그레그 스미스는 ‘왜 나는 골드만삭스를 떠나는가라는 기고문으로 월스트리트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글이 뉴욕타임스에 실리는 날 새벽에 보스에게 사직 이메일을 보낸 그는 작심하고 직접 경험한 탐욕스러운 골드만삭스의 문화에 대해서 기고문을 통해 조목조목 고발했다. 골드만삭스의 주가는 그날 3.4% 하락하고 이후 월스트리트의 탐욕에 대한 보도가 잇따랐다.

2011년에는 억만장자 워런 버핏이 ‘슈퍼리치 감싸기를 멈추라’라는 글을 기고해 자신의 소득세율이 자기 직원들의 그것보다 훨씬 낮다고 고백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부자들이 솔선수범해서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정치권부터 언론까지 광범위한 토론이 이어졌다.

얼마 전에는 유명 할리우드 배우인 앤절리나 졸리가 ‘나의 의료 선택’이라는 글을 기고해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졸리가 유방암 예방 차원에서 이중 유방절제술을 받은 사실을 용기 있게 밝히면서 세계적으로 유방암의 위험에 처한 여성들에게 조명이 집중된 것이다.

이런 글들은 뉴욕타임스에 실린 뒤 텔레비전·신문·라디오·SNS에 후속 보도와 토론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에게 ‘생각해볼 거리’를 던진다. 꼭 뉴욕타임스 독자가 아니더라도 웬만하면 내용을 알게 될 만큼 파급효과가 엄청나다.

뉴욕타임스는 매주 수천통씩 들어오는 기고문을 모두 읽어보고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 대부분은 거절되지만 채택하기로 결정된 글의 경우에는 면밀한 사실확인과 편집을 거쳐 작성자 본인의 동의를 받은 뒤에 발표된다. 이런 글들은 뉴욕타임스 사설과 유명 칼럼니스트의 글과 나란히 게재된다.

유명인사라고, 외국의 정상이라고 우대해서 글을 실어주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시의성이 있고 색다른 시각을 제공해 논쟁을 유발할 수 있는 좋은 글이어야 한다. 푸틴의 기고는 시리아 사태와 관련해 시의적절하게 들어왔으며 논쟁점을 잘 부각한 좋은 글이었기 때문에 게재했다는 것이다.

갈수록 당파성이 심해지는 한국의 신문에서 신문사의 논조와 배치되는 시각을 담은 외부 기고자의 글을 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됐다. 회사 논조와 다르더라도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겸허히 경청해 소개하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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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7일자 한겨레지면에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 칼럼으로 기고한 내용.

이번 칼럼차례에서는 유독 마지막까지 어떤 내용을 써야할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곤혹스러웠다. 꼭 데드라인이 닥쳐야 글을 쓰는 평생의 버릇 때문에 일요일을 소비한다. (한달에 한번씩 일요일오후가 데드라인이다.)

그러다가 NYT 목요일자에 실려 화제가 된 푸틴의 기고문을 떠올렸다. 안그래도 오바마와 푸틴이 서로 사이가 안좋아 불편하고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됐고, 시리아사태에 있어서도 양국이 완전히 상반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데 오바마의 앙숙과도 같은 푸틴의 글을 과감히 받아서 실은 NYT의 편집이 신기했다. 특히 진보적이며 항상 오바마의 정책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던 NYT 아닌가.

그리고 떠올려보니 ‘왜 나는 골드만삭스를 떠나는가'(그레그 스미스), ‘수퍼리치 감싸기를 멈추라'(워런 버핏), ‘나의 의료선택'(앤절리나 졸리) 같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NYT Op-ed면 기고문들이 생각났다. 당시에 얼마나 화제가 됐는지 내 기억에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글들이다. NYT에 실린 날, 이 내용을 미국의 거의 모든 언론이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래서 이 내용을 가지고 칼럼을 쓰기로 하고 Op-ed면의 역사에 대해서 몇개의 글을 읽고 공부했다. 위키피디아의 Op-ed소개 항목 외에도 NYT의 Op-ed에 대한 자세한 소개글 ‘And Now a Word From Op-Ed‘, 푸틴의 글이 실리게 된 경위를 소개한 NYT 퍼블릭에디터의 글 ‘The Story Behind the Putin Op-Ed Article in The Times’ 등을 참고했다.

다만 좀 쫓겨서 쓴 탓에 글이 나가고 나서 몇가지 비판을 받았다.

우선 제목을 ‘적국 정상의 글도 실어주는 신문’으로 한 점. 러시아가 미국의 라이벌국가이긴 하지만 적국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며 많은 부분에서 미국의 외교정책과 러시아의 외교정책이 대척점에 있고 특히 푸틴과 오바마의 사이가 나쁘다는 점에서 좀 강력하게 제목을 써봤다. (미국 뉴스에서 푸틴을 “Foe”라고 지칭하는 것을 들은 일도 있다.) 그리고 사실 좋은 제목 아이디어가 없어서 급하게 붙이고 한겨레에 보냈는데 수정 않고 그대로 내보내주셨다. 그래서 문제제기성 코맨트를 여러번 받았다. 내가 좀 경솔했다.

두번째로 Opposite-Editorial의 Opposite를 ‘반대’로 번역했는데 ‘반대편’이 조금 더 적절할 뻔 했다. 사실 ‘반대’와 ‘반대편'(다른쪽)의 두가지 의미가 혼재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NYT를 너무 미화한 것 같아서 찜찜하기도 했다. 짧은 분량 탓에 충분히 설명할 수가 없었는데 미국신문들도 자신들의 성향에 따라 입맛에 맞는 외부기고를 받는 경향이 물론 있다. WSJ 같은 경우 보수적이고 항상 오바마를 비판하는 칼럼으로 가득하다. NYT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번 푸틴 칼럼의 경우처럼 전혀 의외의 인물의 다양한 시각을 담은 글을 게재하는 경우가 NYT는 많은 편이다. 그래서 소개하고 싶었다.

영어적인 표현이 많아서 문장이 부자연스럽다는 지적도 받았다. 미국에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은 것 같고, 또 퇴고를 소홀히 한 탓이기도 하다.

어쨌든 한겨레 지면을 포함해서 너무 한쪽의 정치적인 주장만 넘쳐나는 글이 가득찬 한국신문의 오피니언면은 좀 피곤하다. (나만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세상을 좀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생각거리, 논쟁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글들이 실리는 오피니언면을 바라는 마음에서 좀 주제넘은 글을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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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7일 at 4: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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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세습, 창업의 세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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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en Shot 2013-08-27 at 10.40.46 PM

지난달 고급 스피커로 유명한 ‘보스 코퍼레이션’의 창업자 아마르 보스 박사의 부고기사를 접하고 블로그에 글을 쓴 일이 있다.

원래 그런 인물이 있는지도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의 생애에는 남다른 점이 많이 있었다. 그는 미국으로 망명한 인도 독립운동가의 아들이다. 1950년대 엠아이티(MIT) 학생일 때 쓰던 오디오 스피커의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 좋은 스피커를 만드는 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64년 아예 보스를 창업한다. 이후 그는 거의 반세기에 걸쳐 보스를 2조8000억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세계적인 회사로 키워냈다. 하지만 회사를 끝까지 주식시장에 상장하지 않고 비공개로 가져갔다. 단기수익을 요구하는 월가의 압력을 받지 않고 장기적인 비전이 있는 연구개발을 추진하려면 기업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엠비에이(MBA)가 이끄는 회사에 있었다면 100번은 잘렸을 겁니다”라는 그의 말은 그런 의미에서 여운을 남긴다. 그는 또 회사를 경영하는 것과 동시에 평생 엠아이티 교수로 후학을 기르는 데 전념했으며 83살로 세상을 떠나기 몇 해 전에는 보스의 주식 등 몇 조 단위가 될 대부분의 재산을 엠아이티에 기부했다.

국내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은 이런 그의 생애에 대해서 글을 쓰자 놀라울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내 개인 블로그인데도 거의 2만에 가까운 조회수를 올린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보스 박사의 생애에 감동한 듯싶었다. 그리고 어떤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보다 그런 부를 축적하고도 자식에게는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고, 아들도 자기 이름으로 따로 회사를 창업해서 성공했다는 것에 감탄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에 모 재벌 방계 회사의 총무부서에 다니는 지인의 푸념을 들은 일이 있다. 해외유학까지 하고 왔는데 기껏 자신이 하는 일은 오너 가족의 먹고사는 일을 챙기는 것이 대부분이란 이야기였다. 오너의 친인척에게 돌아갈 이권사업을 문제가 안 되는 한에서 찾아서 챙겨주는 것이 그의 업무였다.

한국의 수많은 재벌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에서도 1세대 기업인들은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는 궁리를 한다. 자식들은 어떻게 하면 부모의 회사에서 떡고물을 더 얻어먹을 수 있을까를 궁리한다.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더라도 처음부터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모회사의 우산 속에서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을 궁리한다. 외부 투자를 받기보다는 부모 회사의 쌈짓돈을 가져다 회사를 만들고 부를 증식한다. 위험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한국식 부의 세습 문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샌드라 커치그와 앤디 커치그 모녀는 2대에 걸친 창업정신에 대해 스탠포드대학에서 같이 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샌드라 커치그와 앤디 커치그 모녀는 2대에 걸친 창업정신에 대해 스탠포드대학에서 같이 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올해 4월 미국 산호세에서 열린 실리콘밸리의 성공 비밀에 대한 토론회를 본 일이 있다. 그 행사에 토론자로 참석한 원로 여성기업인 샌드라 커치그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아기 엄마로서 방 한구석에서 소프트웨어 벤처를 시작한 커치그는 나중에 회사를 성공시켜 거액에 대기업에 매각하는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이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창업에 도전하고 있으며, 장성한 두 아들도 각각 회사를 창업해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돈을 댄 것이 아니고 선배 창업가로서 조언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대를 잇는 왕성한 창업정신이 실리콘밸리가 진정으로 번성하는 비결이라는 얘기를 했다. ‘창업의 세습’인 것이다.

창조경제는 단순히 돈을 많이 풀고 창업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정책지원과 돈줄이 없어지면 다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구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창업은 문화가 되어야 한다. ‘부의 세습’이 아니라 ‘창업의 세습’을 자랑스러워하는 문화로 말이다. 한국 부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쉽다.

* * *

한겨레신문 8월27일자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으로 실린 내용입니다.

Written by estima7

2013년 8월 27일 at 10: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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