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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자의 나라, 창업자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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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준비를 하느라 한국, 미국, 일본, 중국의 부자랭킹을 살펴봤다. 일전에 여기저기서 본 것은 있지만 내가 직접 좀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서 그랬다. 세계의 부자랭킹은 미국의 잡지 포브스가 매년 집계한다.

주로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상장된 주식이나 비상장주식의 가치를 인정받아 부자랭킹에 드는 경우가 많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각 나라별로 당대에 창업해서 부호가 된 사람(자수성가, Self made)과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아서 부호가 된 사람의 비율이었다. 부자랭킹에 상속자보다 창업자들이 많다면 그 나라의 경제는 보다 역동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새로운 기업이 나와서 계속 기존 강자를 위협하며 성장하고 있다는 얘기니까 말이다. 그래서 대충 살펴보니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 내가 각국별 포브스랭킹을 캡처한 것이다.

*한국의 포브스 부자 30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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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회장이나 서경배회장 같은 분들을 단지 상속자로만 적는 것은 좀 문제가 있긴 하다. 이 분들은 상속받은 회사를 본인의 경영능력으로 휠씬 큰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기 때문이다. 그런 점은 감안하고 봐주시면 좋겠다. 7위가 스마일게이트 권혁빈회장, 8위가 넥슨 김정주회장, 9위가 부영의 이중근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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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에 다음카카오의 김범수의장이 보인다. 15위에 미래에셋의 박현주회장이 있고 17위가 셀트리온 서정진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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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위~30위 사이에는 창업자가 1명이다. 아이에스동서의 권혁운회장이다.

(Update: SPC그룹 허영인회장은 처음에는 창업자로 분류했다가 상속자로 바꿨다. 허회장은 삼립식품의 2세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견 회사를 물려받아 크게 키운 분들을 그냥 상속자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냥 상속자로 분류했다.)

대충 봐도 한국은 상속자들의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0위안에 창업자가 7명이고 상속자가 23명이다. 이중 범삼성가가 7명이나 된다는 것도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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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어떨까. 한국 1위 이건희회장이 미국에 가면 29위가 될 정도로 미국엔 엄청난 거부들이 많다. IT거물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공동 6위인 코크형제는 비상장회사들을 경영하고 있다. 보수주의자로 유명한 사람들이다. 9위, 10위의 월튼 가족은 월마트의 상속자들이다. 하지만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짐 월튼만 월마트 이사회에 들어가있다. (그는 따로 자신의 은행을 경영한다.) 귀찮아서 10위까지만 봤다. 11위, 14위에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이 있는데 최근 구글의 주가폭등을 고려하면 지금은 10위안에 들고도 남는다. 포브스지에 따르면 미국부자 전체 400위 랭킹의 69%정도가 자수성가한 창업자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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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일본도 창업자들이 많다. 1위는 유니클로 창업자인 야나이 타다시씨다. 2위는 손정의. 4위는 라쿠텐의 미키타니 히로시. 일본에 생각보다 큰 상속부자들이 적은 것은 재벌이 일찌감치 해체되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3위의 노부타다 사지씨는 창업한지 120년이 넘는 산토리의 창업가문 4대다. 10위안에 한국계가 2명이나 있다는 것도 특기할만하다.

그리고 가만히 미국과 일본의 부자순위를 살펴보면 상속자로서 순위 상위에 있는 경우 비공개기업의 오너이거나 대주주인 경우가 많다. 공개기업의 경우 대규모투자를 받으면서 일단 창업자의 지분이 희석되고 또 그 재산을 상속받으면서 상속세를 내기 때문일 것이다. 코크형제의 회사들도 비공개기업이며 일본의 산토리도 비공개기업이다.

그럼 이제 중국을 보자. 최근 수십년간 급속한 산업화를 이룬 중국의 부호는 대부분 자수성가한 창업자일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30위까지 살펴보고 좀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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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터넷을 이끄는 BAT, 즉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 삼두마차의 창업자들이 1~3위를 점하고 있다. 샤오미의 창업자 레이준도 8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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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위에 가서야 겨우 상속자가 한명 보인다. 부동산기업을 물려받은 34세의 양휘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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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서 30위까지 모두 창업자들이다. 창업자 대 상속자의 비율이 29대 1이다. 믿기지가 않아서 한명 한명 클릭해서 모두 확인해봤다. 모두 Source of Wealth에 Self made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것을 보니 가히 한국은 ‘상속자의 나라’, 중국은 ‘창업자의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중국의 기업의 역사가 일천해서 그렇기도 하다. 수십년이 또 지나면 중국도 한국처럼 상속자의 나라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이런 차이가 두 나라의 경제의 역동성에 어떤 차이를 줄지 한번 생각해볼만 하다. 요즘 중국기업들의 의사결정이 빠르고 도전적으로 세계시장에서 활약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2세, 3세가 아니라 기업가정신이 넘치는 창업자들이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대기업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을 키워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주의 : 포브스의 부자순위가 절대적으로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저의 상속자-창업자 분류도 부정확할 수 있습니다. 틀렸다고 생각되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Written by estima7

2015년 7월 27일 at 12:17 오전

[라이코스 이야기 2] 낮에 하는 무비나잇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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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코스 이야기를 연재하겠다고 해놓고 벌써 몇주가 흘렀다. 출장 등으로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왠지 뭔가 글을 잘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전혀 글을 못쓰겠다. 아무도 안 읽어도 되고 내 자신을 위해 기록을 남긴다는 마음으로 그냥 대충 쓰려고 한다. 우선은 스토리볼에 연재했던 내용을 좀 보완해서 하나씩 기록해 나가기로 다짐.

*****

라이코스CEO로 2009년 3월에 공식적으로 부임한 이후 한동안은 악착같이 비용을 줄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흑자 전환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재무 팀장과 엑셀 시트의 비용 항목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이건 무엇인지 줄일 수 있는 것인지를 하나하나 물어보면서 몇백, 몇천불이라도 줄여나갔다.

Pasted Graphic

콘트롤러(재무팀장)과 앉아서 이 비용이 무엇을 뜻하고 왜 필요한 것인지 물어봤다. 예를 들어 위는 각종 사무실운영비용인데 ‘아이언 마운틴’이라는 항목이 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어보니 종이로 된 오래된 서류를 아이언마운틴이란 회사에 보내면 아카이빙해서 보관해준다는 것이다. 미국회사들은 대부분 이용하는 서비스라는데 한국에서 온 CEO로서는 하나하나 물어보기 전에는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필요없는 출장, 컨퍼런스 참가 등도 모두 줄였다. 출장을 갈 경우에도 CEO부터 전 임원이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는 것으로 했다. 출장항공권이나 호텔예약조차도 비서나 여행사에 부탁하는 것이 아니고 익스피디아를 통해 직접 예약했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 복지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하지만 회사가 어려운 상황인 만큼 다들 이해하고 참아주었다.

그러다 보니 반 년 후 조금씩 월별 수지가 개선되면서 소폭의 혹자로 돌아섰다. 기쁘기도 하고 너무 비용 절감만 외친 것이 미안하기도 해서 HR매니저 존과 상의해서 직원 사기진작을 위한 이벤트를 갖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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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돈 들이지 않고 어떤 행사를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나온 것이 무비나잇(Movie Night)이었다.  직원들이 모두 다같이 근처 극장에 가서 영화를 관람하고 팝콘, 음료 정도를 회사비용으로 사준다는 것이다. 소박한 아이디어였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도 비슷한 행사를 가진 일이 있기에 쉽게 이해가 됐다. 회사 일과가 끝나고 다같이 극장으로 출발해서 영화를 관람한 다음 나와서 맥주 한잔을 하고 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 운전을 하고 귀가해야 하고 근처에 술집도 거의 없는 보스턴 교외지역에서 영화를 보고 맥주 뒤풀이까지 하기에는 좀 무리다 싶었다. 그래서 영화만 보는 것으로 생각하고 HR매니저와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무비 나잇 당일이 됐다. 오후 2시쯤 존이 내 자리로 와서 “이제 전 직원들과 극장으로 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난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 무비 나잇은 이름 그대로 밤에 하는 행사가 아닌가? 왜 그걸 시퍼런 대낮에 하자고 하는 것이지? 게다가 회사에서 돈을 대주고 가는 것인데 왜 업무시간을 빼먹고 가야 하는 것이지?”

한국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이해가 안됐다. 솔직히 좀 화가 났다.

존에게 왜 2시에 나가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질문했다. 그러자 그가 당당하게 대답했다.

“영화가 끝나는 시간이 오후 5시를 넘으면 안됩니다. 5시이후는 패밀리 타임입니다.”

난 그 이야기를 듣고도 라이코스 직원들이 군기가 빠져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다른 미국회사도 그런지 궁금했다. 트위터를 통해 트친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다른 회사도 그런지 물어봤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회사에 다니는 다른 한국 분들의 대답이 돌아왔다. 대부분 자기들 회사도 똑같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영화를 보러 갈 때는 일찍 가서 저녁시간이 되기 전에 영화가 끝나고 귀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직원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간 Burington의 AMC영화관. (사진출처 Yelp)

직원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간 Burington의 AMC영화관. (사진출처 Yelp)

결국 나는 순순히 직원들과 다같이 극장에 가서 즐겁게 영화를 관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영화도 꼭 다같이 같은 영화를 볼 필요가 없었다. 본인이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해서 삼삼오오 같이 들어가서 감상했다.

몇몇 안 보이는 얼굴들도 있었다. 물어보니 영화에 별로 흥미가 없는 직원들은 회사에 남거나 일찍 집으로 갔다고 한다. 회사 행사라고 모든 직원들을 다 강제로 가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 일을 통해 한국과 미국의 직장 문화의 차이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예전 직장에서는 직원들의 단합회식은 업무시간이 끝난 저녁에 하는 것이 당연했다. 심지어 단합대회 워크숍을 토요일에 가는 것도 당연하게 여겼다. 그리고 열외는 인정되지 않았다. 중병이 걸린 것이 아니면 모두 참석해야 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이런 문화가 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최소한 미국의 직장은 한국보다 더 구성원들이 가족 중심적으로 살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다.

Written by estima7

2015년 7월 26일 at 10:54 오후

직장학교 추천사-이제는 호기심이 새로운 학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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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학교

16년지기인 박이언님(필명)의 ‘직장학교’ 저서출간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부족하나마 추천사를 썼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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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직장인’은 어떻게 가능할까?

내가 박이언 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여름이었다. MBA과정 유학을 위해 GMAT 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에서 만났다. 과묵하고 진중한 성격의 그는 국내 대기업을 다니다가 나와 같은 시기에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 그리고 나는 원래 있던 신문사로 돌아갔고 그는 다국적기업의 마케팅 담당 임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가끔 만났지만 그가 가진 생각의 깊이에 대해서는 몰랐다. 이후 2009년 나는 라이코스 CEO로 일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도 다국적회사의 중국과 대만, 일본 지사를 거치면서 해외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 출장이 겹쳐 다시 만난 우리는 해외에서의 근무를 통해 참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한국과 외국의 직장문화 차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회의에서는 총명함이 실종되는 한국인이라든지, 지나치게 권위적인 문화에 눌려 있는 한국의 직장문화에 대해 문제의식을 공감했다. 그리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오던 한국 직장생활에서의 규범이 얼마나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인의 성취를 가로막고 있는지를 토로했다.

그는 자신이 느낀 것을 나처럼 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해 남겨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이후 ‘개똥이’라는 아이디의 트위터 유저가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아주 좋은 글을 쓰는 것을 발견했다. 꼭 읽어야 할 글이라고 몇 번 내 트위터 팔로어들에게 소개했고 큰 호응을 받았다. 그러다 궁금증이 일어 “도대체 누구세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정욱씨, 저 모르세요? 박이언(필명)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후 지금까지 그의 글을 통해 많이 자극을 받고 배우고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생각을 모아 책을 펴낸다니 무척 반가웠다.

그의 역작인 『직장학교』를 읽으면서 내 지난 20년의 커리어를 되돌아보았다. 나는 사실 행운아다. 매년 회사에서 새로운 일을 맡게 되거나 직장을 옮기면서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돈을 받아가며 항상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직장생활을 통해 새로운 문물, 새로운 사람들을 접하고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직장은 마땅히 그런 곳이 되어야 한다.

특히 나는 이 책에서 “이제는 호기심이 새로운 학벌이다.”라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저자의 말대로 혁신경제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은 민첩한 배움이고 그 근간은 세상사에 대한 호기심이다. 그 호기심을 풀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는 습관이 새로운 학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항상 자신에게 ‘나는 남들보다 호기심이 부족하지는 않은가?’라는 질문을 던지라 한다. 그리고 호기심이 가득하다면 자부심을 가지라 한다. 부족하다면 스트레스를 받으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새로운 학벌이기 때문이란다. 졸업장과 성적표에 매달려 사는 직장인의 인생에서 탈출하라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게도 이런 호기심이 직장생활의 원동력이었다. 직장에서 힘든 일도 많았지만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했다.

『직장학교』는 혁신경제로 인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혜를 준다. 직장을 단순히 돈을 벌어 먹고살기 위한 대상이 아닌 배움을 추구할 수 있는 학교로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한국과 해외기업을 오가며 쌓은 저자의 20년 내공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성공이란 무엇인지,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천착한다. ‘직장=개인의 삶=성공=행복’ 방정식이 성립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각 장별로 나오는 <실전 특강>이 유용하다.

여기 나오는 방법만 숙지하고 따라서 해도 유능한 직장인이 될 수 있다. 상사가 시킨 일을 수동적으로 반복하는 로봇 같은 직장인보다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찾고 ‘생각하는 직장인’이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Written by estima7

2015년 7월 20일 at 11:15 오후

FDA와 한국 식약처의 규제정책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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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헬스케어

김치원님(서울와이즈요양병원원장)이 쓴 ‘의료, 미래를 만나다'(부제:디지털헬스케어의 모든 것)을 읽었다. 스마트폰, 웨어러블 등의 등장으로 혁신에 가속도가 붙은 디지털헬스케어시장을 한 눈에 조망한 책이다.

책을 읽다가 177페이지 ‘통제와 지침의 창구인 규제기관’부분의 미국 FDA와 한국 식품의약품 안전처의 규제현황에 대한 비교가 눈에 들어왔다. 기존 금융기관만을 보호하고 새로운 기업과 혁신 모델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포지티브규제로 꽉꽉 막아놓은 핀테크분야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억해두고 공유하고 싶어서 저자의 허락을 얻어서 주요부분만 발췌해서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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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A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로고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FDA의 규제 방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기존의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환자에게 미칠 위험에 바탕을 두고 규제하겠다는 원칙을 세워 지키고 있다. 의료기기 데이터 시스템에 대한 규제를 지속적으로 완화한 것이나 액세서리 기기를 메인 의료기기와 별도로 규제하기로 정하는 등 환자에게 미치는 위험이 적다고 밝혀진 분야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규제를 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둘째,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규제 지침을 내놓을 때 지침에서 다루는 대상을 정의하고 지침이 다루지 않는 내용을 분명히 함으로써 혼동의 여지를 줄이고 있다. 또 앞선 지침 혹은 보고서에서 향후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하는 분야를 명시하면 곧 이어 그에 대한 지침이 나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FDA는 민간 영역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규제 지침을 내놓기 전에 규제 지침 초안을 발표해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고 있다. FDA에서 생각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바꾸어 가기보다는 민간 영역의 생각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미국 FDA의 규제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본 것은 우리나라 식약처가 FDA규제 변화를 시차를 두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식약처의 규제 방향은 FDA와 비교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규제의 폭이 넓다. 비록 건강 관리용 웰니스 제품에 대한 규제를 풀겠다고 밝히기는 했지만 FDA와는 달리 모바일 의료용 앱을 규제대상과 비규제대상만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의료기기에 해당하는 모든 앱을 규제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두번째, 규제 내용을 보완하고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FDA가 꾸준히 지침을 개정하면서 관련 기기들이 환자의 안전에 미칠 영향을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위험이 적다면 과감하게 규제를 완화하는 것과는 달리 한 차례 규제지침 발표후 추가 발표가 없다.

세번째 예측 가능성이 낮다. 디지털 헬스케어 가운데 아직 다루지 않은 분야가 무엇인지를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향후 식약처가 어떤 분야에 대한 지침을 내놓을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특히 삼성전자가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때 그에 대한 규제를 뒤늦게 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이런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식약처는 환자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기관인 것은 맞다. 하지만 마찬가지 입장인 FDA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기술을 의료에 적용하는 것을 전향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비해서 식약처는 아직 규제에 치우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회사들이 최신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개발해 우리나라 국민들이 혜택을 보는 것이 점점 힘들어 가는 것이 사실이다.

흥미로운 점은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에 새로운 헬스케어 센서를 탑재할 때마다 식약처가 이와 관련된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책에 따르면 2014년 3월 삼성전자가 갤럭시S5에 심박 센서를 탑재했을 때 심박수를 표시하는 제품은 용도에 상관없이 의료기기로 관리한다는 입장을 바꿔 새로운 고시 개정안을 내놓았다. 2014년 9월 삼성이 갤럭시 노트4에 탑재된 미국에서는 허용되는 산소포화도측정기가 국내에서는 의료기기로 간주되자 비활성화해서 출시했다. 그러자 2015년 1월 식약처는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의료용과 비의료용으로 구분하는 제정 공고안을 행정 예고했다.

업계인사중에서는 식약처가 특정 규제를 완화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음 갤럭시 모델에 특정 기능이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예측까지 하는 분이 나왔다. ㅠ.ㅠ 이는 마치 삼성전자가 삼성페이를 준비한다고 하자 먼저 연락해서 도와줄 것이 없냐고 문의했다는 금융위관계자의 코맨트를 연상하게 한다.

매번 느끼는 것인데 규제를 잘하는 것도 정부의 중요한 능력이다. 규제 자체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산업계의 혁신속도가 달라진다. 대기업, 라이센스 사업자 등 업계의 기득권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소비자의 니즈와 해외트랜드를 잘 보면서 합리적으로 규제정책을 가져가는 것이 당국이 할 수 있는 혁신이다. 특히 작은 스타트업이 업계의 터줏대감인 대기업들과 경쟁해서 불공정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한국당국의 정책 혁신 능력은 미국당국에 비해서 참 많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규제정책의 틀이 소비자들을 위한 혁신을 빨리 수용할 수 있도록 송두리째 바뀌어야 한다.

Written by estima7

2015년 7월 19일 at 11:49 오후

백악관과 청와대의 대통령과 비서실장과의 거리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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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en Shot 2015-07-03 at 12.16.17 AM

오마바케어가 6대3으로 미국연방대법원에서 통과됐을때의 백악관 내부 사진이 공개됐다. 백악관 전속 사진사인 피트 수자가 찍은 사진이다. 오전 10시10분쯤 오마바의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백악관스탭들과 모닝브리핑을 시작하는 모습이다.

Screen Shot 2015-07-03 at 12.24.55 AM

처음 대법원의 판결결과를 들었을 때의 오바마의 표정이다. 순간을 놓치지 않는 피트 수자의 순발력이 놀랍다. 오바마는 환호하고 나서 오른쪽에 있는 문으로 나가서 비서실장을 찾는다.

Screen Shot 2015-07-03 at 12.16.35 AM

문을 나가니까 바로 데니스 맥도너 비서실장이 보인다. 기쁨의 제스쳐를 교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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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너 비서실장은 좀 연배가 있어보이는데 실제로는 69년생으로 아직 40대후반이다.

오바마는 그리고 나서 다시 오벌오피스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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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부통령도 모닝브리핑에 참석하러 왔다. 그러면서 오바마에게 축하인사를 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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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실장과 부비서실장을 각각 부통령과 대통령이 포옹하면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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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즐거운 담소. 끝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편하게 앉아있는 수전 라이스 보좌관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내가 이 사진을 보면서 주목한 것은 미국 대통령집무실(오벌오피스)과 비서실장(Chief of Staff)방이 얼마나 가까운가 였다.

출처 : 위키피디아

출처 : 위키피디아

위에서 보면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와 비서실장방이 지척거리다. 문을 열고 나섰을때 비서실장이 바로 눈앞에 보였던 것이 이해가 간다. 문열고 나가면 복도 맞은 편에 바로 비서실장과 부통령 방이 있다. 이렇게 가까이들 지내고 있으니 수시로 모여서 수다도 떨수 있고 편한 소통이 가능할 것이다. 드라마 웨스트윙에서 자주 보던 모습이다. 사실 이게 정상이다.

***

그럼 청와대에서 비서실장과 대통령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전 MB정권에서 홍보수석을 지낸 이동관씨와 노무현정부에서 홍보수석을 지낸 윤승용씨는 2013년 2월 CB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출처 : “대통령 관저는 귀곡산장, 집무실은 근정전”…청와대 공사 필요-CBS노컷뉴스)

◇ 정관용> 아마 우리 청취자 분들이 그 점은 이해가 안 가실 텐데. 다들 청와대 비서실하고 대통령 집무실이 같은 건물에 있는 걸로 알아요.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죠?
◆ 윤승용> 걸어서 가면 한 10분.
◇ 정관용> 걸어서 가면 10분.
◆ 윤승용> 차를 타고 가도 차 불러서 대기시켜서 가면 한 5분.
◇ 정관용> 그러니까요.

◆ 이동관> 도어 투 도어로 가면 15분 이상 걸리죠. 문 나서서.
◇ 정관용> 대통령이 집무하는 곳은 사실 몇 사람 없는 거죠. 직원이?
◆ 윤승용> 그건 부속실 직원들밖에 없습니다.

청와대 본관 2층과 경내. (출처 중앙일보)

청와대 본관 2층과 경내. (출처 중앙일보)

위 중앙일보의 그래픽을 보면 이해가 빠르다. 설사 한국대통령이 천지개벽할 기쁜 소식을 듣는다고 해도 비서실장을 만나서 기쁨을 나누려면 아무리 빨라도 15분은 걸린다는 얘기다. 일단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기쁜 소식이 있으니 최대한 빨리 집무실로 오라고 해도 실장이 차를 부르고 계단을 내려가서 차를 타고 청와대 집무실로 올라가는데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15분은 걸린다. 청와대본관에 가서도 대통령을 바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서실장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 이런 구조에서 자유로운 소통이 될리 없다.

캡쳐출처 : 채널A

캡쳐출처 : 채널A 

채널A의 [뉴스A]역대 정권마다 증·개축 논란…청와대 구조, 어떤 점이 문제?에서 박민혁기자의 뉴스리포트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위성사진을 통해서 제기하고 있다. (여기서 인용한 CBS, 중앙일보, 채널A의 보도는 모두 2013년 2월 박근혜대통령의 취임 당시에 나온 것들이다.)

캡처 출처 채널A

캡처 출처 채널A

청와대 본관에 도착해서도 집무실은 2층에 있다. 저렇게 장엄한(?) 계단을 통해서 2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박민혁기자의 말에 따르면 대통령집무실은 농구코트의 2/3정도 넓이가 된다고 한다. 박기자에 따르면 김영삼대통령은 처음 집무실에 가서 “집무실이 어디냐”고 물었을 정도고, 이명박대통령의 첫 반응은 “여기서 테니스를 쳐도 되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백악관 웨스트윙구조. 출처 중앙일보.

백악관 웨스트윙구조. 출처 중앙일보.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2012년 12월 중앙일보에 기고한 “미국 대통령제 성공 비밀은 백악관 공간 정치에 있다”라는 글에서 “청와대 구중궁궐에서 시민 대통령을 꿈꾸는 것은 도심 아파트에서 생태주의 자녀 교육을 꿈꾸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시도”라고 썼다. 그리고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모두 이 ‘공간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기사 : 미국 대통령제 성공 비밀은 백악관 공간 정치에 있다

오바마와 그 스탭들의 격의 없는 소통모습과 그런 소통이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백악관의 촘촘한 구조를 사진을 통해서 보면서 청와대 리모델링이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제발 다음 정권으로 미루지 말고 후대를 위해 총대를 매고 리모델링계획을 승인했으면 한다.

Written by estima7

2015년 7월 3일 at 2:55 오후

“회사의 진정한 문화는 보상, 승진, 해고가 결정한다”-남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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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Storm Ventures

사진출처: Storm Ventures

오늘 스톰벤처스 남태희매니징디렉터(변호사)의 코너오피스 인터뷰가 뉴욕타임즈에 실렸다. 이 코너오피스는 매주 NYT일요판에서 미국의 주요 기업리더들과 문답을 통해 리더십에 대해서 탐구하는 코너다. 주옥같은 인터뷰가 많다.

마침 남변호사는 내가 실리콘밸리에 있을때 만나뵙고 대단한 내공에 감탄했던 분이다. 미국에 5살때 가족과 함께 이민을 가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됐으나 실리콘밸리로 가서 결국 벤처캐피털리스트로 변신한 분이다.

인터뷰내용중 기업문화에 대한 문답이 인상적이라서 기억해두려고 번역해봤다.

질문은 “당신은 수많은 다양한 기업문화를 지켜봐왔다. 문화에 있어서 무엇이 가장 큰 차이를 가져오는가”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남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내게 있어서 문화란 사람들이 위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일일이 지시를 받지 않아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회사안에서 누가 승진되며, 누가 연봉을 올려받고, 누가 해고되는지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론 CEO는 우리 회사의 문화는 이런 것이라고 공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진정한 문화는 보상(compensation), 승진(promotions), 해고(terminations)에 의해 정의됩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회사내의 누가 성공하고 실패하는지 관찰하면서 문화를 형성하게 됩니다. 회사내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회사가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는가를 보여주는 롤모델이 됩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회사의 문화가 형성됩니다.

“Culture, to me, is about getting people to make the right decision without being told what to do. No matter what people say about culture, it’s all tied to who gets promoted, who gets raises and who gets fired. You can have your stated culture, but the real culture is defined by compensation, promotions and terminations. Basically, people seeing who succeeds and fails in the company defines culture. The people who succeed become role models for what’s valued in the organization, and that defines culture.”

“만약 CEO가 회사의 비전선언문의 일부로서 기업문화가 어떤 것인지 공식화하고 그것이 회사의 (누가 보너스를 받고 승진하고 해고되는지에 기반한) 비공식적인 문화와 일관성을 가지고 합치된다면 최고의 기업문화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공식적인 문화와 실제 비공식문화가 서로 일치하지 않으면 회사조직내에는 혼란(chaos)이 발생합니다.”

“If the C.E.O. can outline, as part of the vision statement, what the stated culture is, and if that official proclamation of culture is aligned and consistent with the unofficial culture — based on who gets raises and promotions and who gets fired — then you have the best culture. When the two are disconnected, you have chaos.”

위 글을 읽고 “과연”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장이 아무리 우리 회사의 최고 가치는 ‘청렴’(integrity)이라고 강조해도 거래처담당자에게 뇌물을 써서 높은 매출을 올린 영업담당자를 임원으로 승진시키고 보너스까지 준다고 하면 직원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과연 자신들도 청렴하게 일을 하려고 할까.

어떤 회사 사장이 “우리 회사는 직원들의 창의력을 존중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우리 회사는 실리콘밸리회사처럼 운영한다”고 항상 자랑하고 다닌다고 하자. 그런데 정작 본인은 사내회의석상에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의견을 낸 사람을 강등시키고, 해고하고, 결국 예스맨만 승진시켜 자신의 심복으로 쓴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리 매일처럼 리더가 창의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들 그 조직은 과연 창의성이 넘치는 문화를 갖게 될까.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회사의 문화에 맞는 인재에게 적절한 보상과 승진을 제공하고 문화에 맞지 않는 사람은 내보내거나 아예 뽑지 말아야 한다. 대내외적으로 내세우는 문화와 실제 인사가 일치해야 한다. 지향하는 문화와 실제 조직내 인사가 일치하지 않으면 혼란이 발생한다. 사실 우리는 전국민이 그것을 매일처럼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Written by estima7

2015년 6월 28일 at 7:27 오후

[라이코스이야기 1] 매니저들과 저녁 같이 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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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코스 본사가 있던 Waltham의 빌딩. 회사가 잘 나가던 90년대말에는 저 건물 전체를 다 썼는데 내가 갔던 2009년에는 규모를 많이 줄여서 3층만 쓰고 있었다.

라이코스 본사가 있던 Waltham의 빌딩. 회사가 잘 나가던 90년대말에는 저 건물 전체를 다 썼는데 내가 갔던 2009년에는 규모를 많이 줄여서 3층만 쓰고 있었다.

내가 보스턴인근 월쌤(Waltham)에 위치한 라이코스의 CEO로 발령을 받은 것은 2009년 2월이었다. 2008년말 리먼브라더스가 붕괴하면서 전세계에 금융위기가 도래해 세상이 얼어붙은 때였다. 미국의 실업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 상승하던 때였다.

미국 유학 경험은 있지만 미국직장에서 일을 해본 경험은 없었던 나로서는 이런 암울한 분위기에서 어떻게 미국인들 80여명으로 구성된 회사를 끌어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더구나 10여명을 구조조정으로 내보내는 와중이어서 직원들은 혹시 자기도 잘릴 수 있다는 공포심에 휩싸여 있는 상황이었다. 사무실을 걸어 다니다 보니 PC화면에 이력서를 띄우고 다듬고 있는 직원들도 보일 정도였다. 후일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회사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회사의 문을 닫으러 온 것이라고 믿는 직원들도 많았다.

직원들과 친밀해지기 : 차 한잔하면서 담소.

어떻게 하면 나를 저승사자로 대할 직원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내가 택한 방법은 1:1 면담이었다. 한 사람당 30분씩 최대한 시간을 내서 차 한잔을 놓고 만나서 이야기했다. 일단 아무 얘기나 하다 보면 친밀감이 형성될 것 아닌가. 직원들도 새로운 CEO가 뭔가 들으려고 한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2002년 MBA졸업후 7년동안 영어를 쓸 일이 별로 없어서 도대체 영어가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하다보니 영어도 늘었다. 하루에 몇명씩이라도 부지런히 이렇게 대화를 했더니 한달이 지나니 거의 대부분의 직원들과 안면을 틀 수 있었다. 심지어 어떤 인도계 직원은 “이 회사에 10년을 다녔는데 CEO와 직접 1대1로 이야기해본 것은 처음”이라며 지나치게 흥분해 당황하기도 했었다.

물론 뒤숭숭한 상황에서 본사에서 온 CEO에게 처음부터 친밀하게 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설사 있었다고 해도 돌이켜보면 다 살아남기 위해서 내게 잘 보이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이름과 얼굴을 익혀 놓으니 서로 휠씬 대하기가 편해졌다.

직원들과 친밀해지기 : 같이 점심 먹기

그리고 점심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한두 명씩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사람은 밥을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하다 보면 서로 쉽게 마음을 열게 된다는 것이 내 경험이었다. (혼자 밥을 먹지 않는 것은 기자시절부터 베인 버릇이다.) 미국사람이라고 그게 다르겠냐 싶었다. 그리고 밥을 같이 먹고 내가 돈을 내면 고마워하고 기뻐했다. (물론 이것은 회사비용으로 했다.) 사장하고 같이 밥을 먹는다고 꼭 사장이 자신 몫까지 계산해 줄 것이라고 생각 않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웬만하면 윗사람이 밥값을 내는 한국식 문화를 적용한 결과 많은 직원들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했다.

당시 가끔 점심을 같이 했던 오퍼레이션 매니저 조 프라노비치와.

당시 가끔 점심을 같이 했던 오퍼레이션 매니저 조 프라노비치.

하지만 내 점심시간은 하루에 한번이기 때문에 단시간에 모든 직원들과 밥을 먹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일단은 매니저급부터 같이 식사하기 시작했다. (1년쯤 지나니까 거의 전 직원과 점심을 한번씩은 따로 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보스턴에 단신 부임이었다. 가족들은 몇 달 뒤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회사 바로 앞에 있는 Extended Stay America라는 모텔에 장기 투숙중이었다. 보스턴에는 아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회사에 나가는 것 외에는 할 일도 없었고 쓸쓸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직원들과 이야기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부족한 내 영어 실력을 보완하는 영어 회화 연습 시간이라고 위안을 삼기도 했다.

한국식 친밀해지기 : 저녁 약속

그런데 문제는 저녁시간이었다. 5시에서 6시사이에 직원들은 거의 다 집에 가버리는데 나는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이 없었다. 모텔에 돌아가서 한국에서 사온 3분카레나 컵라면을 먹기도 했는데 그것도 조금 지나니 질렸다. 저녁 6시이후에는 사무실에 별로 사람이 없고 모텔방은 빛이 잘 안드는 골방같은 곳이어서 있기가 싫었다. 그래서 주요 매니저들에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미국의 패밀리 타임

그런데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더니 몇몇 매니저의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단박에 OK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와이프에게 물어보고 알려주겠다”는 답이 많았다. 아니 그걸 왜 와이프에게 물어보지? 이 사람들 알고 보니 공처가들이구나했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한 2주일 정도 거의 매일 저녁시간에 매니저들을 데리고 저녁을 먹었다. 맥주 한두 잔을 곁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건 점심과 달리 별로 호응도가 높지 않은 것 같았다. 이래저래 집에 일이 있다고 변명을 하면서 빼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가까워진 매니저에게 저녁을 하면서 진심을 물어봤다. 그 친구는 이혼소송이 진행 중이라 아내와 별거 중이었다.

그 친구왈 “여기서는 웬만하면 모두 점심약속으로 하지 저녁약속을 하는 경우는 없다. 비즈니스 때문에 저녁을 하는 경우는 거래처 사람이 출장을 와서 계약을 하거나 하는 중요한 경우에 한하지 웬만해서는 저녁약속을 잘 잡지 않는다. 특히 결혼한 기혼자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한국 모회사에 낙하산으로 온 저승사자 같은 사장이 “저녁 먹자”하니까 내키지 않으면서도 따라 나온 것이었다. 사장이 저녁 먹자고 하면 있는 약속도 취소하고 따라오는 한국식 문화에 익숙해진 나의 실수였다.

1년쯤 지나서 휠씬 친밀해진 HR(인사) 담당 매니저 존과 그때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그 존은 “미국에서는 웬만하면 저녁은 가족과의 시간(패밀리타임)으로 간주하며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면 가족이 있는 사람에게 저녁시간을 내달라고 회사에서 요구 못한다. 자꾸 그런 일이 반복되면 배우자에게 이혼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때 내가 그걸 모르고 실수한 것이라고 따끔하게 한마디했다.

자기가 좋아서 회사에 남아있는 것이라면 괜찮지만 회사에서 직원에게 패밀리 타임을 건드리면서까지 회식(?) 등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계기였다. 예전에 미국에서 공부도 하고 그렇게 많이 출장을 다녔지만 미처 몰랐던 것이었다. 항상 상대방에게 시간을 청할 때 가족과 함께 하는 저녁시간을 침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미국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었다. 너무 바쁘게 사는 한국인은 여기에 너무 무감각해진 듯 싶다.

Written by estima7

2015년 6월 28일 at 10: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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